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 하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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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하"라는 제목 대신에 다른 제목을 붙여본다면 무엇이 될까? 아마도 "지중해 세계의 종말" 내지는 "지중해사의 종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지중해 세계의 종말을 세밀한 필치로 기록하고 있다.

  하권은 상권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상권이 해적의 출몰 배경과 그 피해를 기록하고 있다면 하권은 해적계의 스타플레이어와 이에 맞대항하는 서유럽의 걸출한 해군 제독, 그들을 조종하여 서유럽의 배후를 교란하는 오스만 제국, 그리고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로 등장한 스페인과 프랑스의 파워 게임, 도시국가가 난립한 이탈리아 반도의 혼란과 해적 대책에 관하여 흥미진진하게 기록하고 있다. 코에이사에서 만들어낸 유명한 롤플레임 게임 대항해 시대2를 통하여 한국의 게임머들에게 잘 알려진 안드레아 도리아, 하이레딘, 울구 아리 같은 선장들이 바로 해적계와 이에 맞대응하는 서유럽의 해군 제독계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해군들에 의하여 목욕장으로 끌려가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노예 생활을 감당해야 하는 일반 서민들, 그들을 구출하기 위한 구출 수도회와 구출 기사단, 이슬람과의 전투에서 최선봉에 선 몰타 기사단, 신성로마 제국, 이슬람 세력의 팽창을 막으려고 하는 서유럽과 서유럽으로 이슬람의 집을 확장하려는 투르크 제국, 예니체리군단 등 어느 것 하나 흥미진진하지 않은 것이 없다. 지중해를 배경으로 이름을 날리면서 그 존재감을 역사에 당당하게 남긴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책을 쉽게 놓을 수가 없다. 하권을 보면서 이야기꾼 나나미가 이 많은 사람들을 적당하게 잘 비벼서 아주 맛있는 비빔밥을 만들어 내놓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책을 넘기면서 한 가지 생각해본다. 왜 이렇게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고,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니는 지중해의 이야기가 중세시대를 거치면서 저물어 가는가? 왜 르네상스를 전후하여 그 존재감마저 사라져 버릴 정도로 희미해져 가는가? 두말할 것없이 신대륙과의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 아닐까? 항해 기술의 발달은 신대륙으로부터의 물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오스만제국과의 힘겨루기는 물산의 흐름을 막아 버린 것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물품이 점점 향신료를 포함한 고가의 상품으로 구성되면서 신흥 강국들은 독자적인 항해노선을 개척하기 위하여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는가? 신대륙과 동방으로 가기에는 아무래도 지중해보다는 대서양이 더 유리하지 않았겠는가? 게다가 영토 중심의 민족국가가 형성 되면서 질은 높지만 양이 부족했던 도시국가들이 몰락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로마제국의 전성기와 그 시대의 지중해를 떠올려본다면 지중해의 멸망은 로마의 멸망과 함께 이미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몰락한 지중해의 뒤를 이어 대서양이 해운의 중심이 되었고, 시간이 더 흐른 근대에 와서는 다시 태평양으로 그 중심이 옮겨졌다. 

  이런 시각에서 이 책을 읽노라면 항거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에 관하여 생각해보게 된다. 그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지중해가 더 이상 해운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 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지중해 최고의 해운국 베네치아가, 상인의 집단인 베네치아가 그저 곤돌라의 도시, 낭만의 도시로 취급되어 관광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도시가 될 것이라고 그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역사의 흐름이란 이렇게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아무리 미래를 준비한다고 할지라도 항상 그렇게 잘 맞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계속 자신을 변화시키고 환경에 적응시켜야 한다. 그것이 역사의 한복판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그럼 다시 하나만 더 생각해보자. 우리는 과연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가? 장차 다가올 통일을 위해, 그리고 새롭게 시작될 민족 국가를 위해, 더 나아가 동아시아 경제 블록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통일 국가, 동아시아 경제블록은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그 누구도 상상 못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논의가 되어 가고 있고, 그 필요성을 인정받고 있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들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는가? 그냥 될대로 대라는 식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아니, 오히려 시대에 역행하면서 담을 쌓고 살고 있지 않는가? 자신을 변화시키기 보다는 상황을 거부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철저한 준비를 했던 베네치아도 무너졌다. 화려했던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도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들의 일이다. 준비하지 못하고, 담을 쌓고 살아 이미 한번 식민지로 전락했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그 경험에서 배우지 못하는가?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주는 책이다. 역사의 흐름 앞에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지금 우리가 깊이 고민해야할 가장 시급한 질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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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09-09-11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제 서재에 축하 댓글까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saint236 2009-09-11 14:1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오셔서 댓글 달아 주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