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그리스의 영광과 몰락>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고대 그리스의 영광과 몰락 - 트로이 전쟁에서 마케도니아의 정복까지
김진경 지음 / 안티쿠스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그리스!!! 

  신화, 영화, 뮤지컬, 맘마미야! 

  올림포스, 제우스, 헤라, 아폴론, 아프로디테, 아레스, 아테네, 헤라클레스, 오딧세이, 일리아드, 페가수스, 페르세우스, 아킬레우스, 헥토르, 별자리....음...또 뭐가 있을까? 마라톤전투, 살라미스해전, 아네테, 스파르타, 레오니다스, 페리클레스, 도편추방제, 테미도클레이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델로스 동맹, 펠레폰네소스 전쟁, 마케도니아, 필리포스, 알렉산더...그리스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것들이 참 많이 있다. 신화의 나라, 서양 사상의 출발점, 민주주의의 요람, 폴리스 등등 고대 그리스에 대해서 주워들은 것은 참 많다. 그러나 현대 그리스에 대해서 아는 것은? 2004년 올림픽 우승국, 유로 2004 우승국이라는 것 정도? 이상하게 현대보다 고대에 대해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나라가 그리스이다. 어찌보면 현대 그리스인들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행세하고 있는 신세가 아닌가? 

  고대 그리스에 대해서는 어떤가? 주워들은 이야기들을 정리해본다. 세계사 시간에, 신학을 공부하면서, 철학을 배우면서, 삭구라테스, 후라쉬, 아래도리털라스라는 고대 아테네의 3대 철인에 대해서 지겹게 공부하면서 참 많은 것들을 주워들었지만, 여전히 그리스하면 떠 오르는 것들은 신화에 관련된 것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올림포스 산에 살고 있는 12주신, 프로이드 심리학의 키워드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주인공인 오이디푸스, 거기에 더하여 saint-seia라는 일본 만화를 통해서 재미있게 접하게되 별자리. 요즘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올림포스 가디언까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고대 그리스는 서양 문명과 철학의 발상지가 아니라 여전히 신화의 나라요, 전설의 가득한 이야기 속의 나라이다.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은 이렇게 신화의 나라, 전설의 나라로 포장되어 있는 그리스를 그 포장지를 벗겨내고 역사의 언저리로 끌어 내렸다는 것이다. 끌어내렸다는 표현이 적절한 표현이 될 수 있을까? 여하튼 고대 그리스의 역사 안에 있었던 많은 상황들, 즉 미케네 문명과 도리스인의 도래, 페르시아와의 대립, 폴리스의 형성과 과두정과 민주정의 복잡한 대치 상황,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정치 투쟁 등을 있는 그대로 까발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리얼하게 보여주기 위한 저자의 수고와 노고에 감사하며 박수를 보낸다.  

  이 책을 보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날림으로 세계사를 배워왔던가하는 반성과 함께 이럴 수밖에 없는 한국 역사 교육의 현주소가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한때 역사 교사를 꿈꾸었고, 역사책이라면 닥치는대로 읽었고, 철학을 공부하면서 덤으로 아테네와 스파르파의 역사, 그리고 그리스 로마 신화에 심취해 있었던 나였지만 도대체가 수없이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정리할 수가 없다. 이 사람이 이사람 같고, 저 사람이 이 사람 같고. 이건 뭐하자는 것인지? 폴리스 하면 아테네, 아테네하면 직접 민주주의라는 도식을 머릿속에 그리고 살아왔던 나에게 아테네의 복잡한 정체 변화는 읽기에 무척 난해한 부분이었다. 만약 증보판이 나오게 된다면 각 장마다의 내용을 정리하는 도식을 첨가하는 것이 어떨까? 예를 들어 아테네의 정체 변화를 말한다면 처음 왕정으로 시작하여 어떤 사건을 통해 어떤 사람이 등장하게 되었고 어떤 식으로 변화하게 되었으며, 그 안에서 어떤 나라들이 연결되었는지 한두장으로 도식화 해준다면 훨씬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지도를 넣어 놓았지만 지도가 분명하지 않은 것 또한 옥의 티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167p의 살라미스 해전 진행 상황도 첫 배치만 표시하고 있는 지도 한컷만 나와 있는데 초반, 중반, 후반으로 나누어 3~4컷으로 해 놓으면 더 이해하기 쉽지 않겠는가? 전쟁사에 대하여 기록한 책들에서 살라미스 해전을 다룰 때에도 대체로 이렇게 해놓았기 때문에 자료를 구하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320~321p에 있는 알렉산더의 원정 경로도 그 앞에서 설명은 해 놓았지만 지도 상에 "1, 2, 3" 이런 식으로 숫자를 같이 표시 해두면 더 명확하지 않을까? 

  430페이지라는 분량이 만만하지는 않았지만, 읽고 나서 괜히 읽었다는 후회가 결코 들지 않는 책이다. 초반에는 읽기가 조금은 어렵지만(역사적인 사건도, 그렇게 재미있는 부분도 없기 때문에) 읽어가면 갈수록 수박 겉핥기 식으로 배워왔건 것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도출된 결론인지에 알게 되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대 그리스에 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읽어도 좋을 책이라 생각한다. "살라미스 해전-세계의 역사를 바꾼 전쟁(배리 스트라우스/갈라파고스)"라는 영화와 함께 읽어도 재미있을 것이다. 300이라는 영화를 봤던 사람이라면 더욱 강추이다. 기독교인이라면 에스더에 나오는 아하수에로가 실은 크세르크세스이며, 느헤미야에 나오는 아닥사스다가 아르타 크세르크세스라는 것을 알고 성경의 배경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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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09-11-25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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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은 사랑하지 못하는 병>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두 번은 사랑하지 못하는 병 - 사랑했으므로, 사랑이 두려운 당신을 위한 심리치유 에세이
권문수 지음 / 나무수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두 번은 사랑하지 못하는 병"이라는 제목에서 순애보를 떠올렸다. 클래식에서 혹은 번지 점프를 하다와 같은 영화에서 보는 한 사람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다 바치는 사랑, 그래서 사랑이 끝났을 때 후회도 없고, 뒤 돌아 봄도 없는 그런 사랑에 관한 이야기인줄 알았다. 한창 열애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인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두번 사랑하지 못하는 병"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사랑 때문에 깊은 상처를 받은 사람들을 상당하면서 느꼈던 사랑에 관한 생각들, 그리고 상처를 딛고 일어나 다시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그러나 솔직하게 풀어 놓은 책이다. 책의 내용을 십분 반영한다면 "다시 사랑하기 위해서" 혹은 글의 제일 마지막 문장에서 인용한 이 글의 제목처럼 "사랑, 정말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가 더 어울리지 않겠는가? 

  누구나 그렇겠지만(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긴 하다.) 사랑 이라는 열병에 빠져서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 하기도 하고 가슴 설레이면서 밤잠을 못이루기도 한다. 그러다가 불행히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깨어지게 되면 사랑한만큼 깊은 상처를 받아 눈물로 밤을 하얗게 지새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심각한 경우에는 목숨까지 포기하게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한 사랑하는 것이 숙명이고 당연한 것이라면, 실연의 아픔 때문에 상처받고 힘들어 하는 것 또한 살아 있는 인간이라면 겪게 되는 당연한 일련의 과정이 아니겠는가? 

  자연스럽게 사랑과 이별을 배우면서 인생이 성숙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자연스러운 흐름인데 그 과정이 너무나 힘들고 아픈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다시는 사랑하지 못하게 되기도 하고, 자기만의 동굴에서 살면서 다른 사람과 벽을 쌓고 살아간다. 사랑으로 인해 받은 상처를 사랑으로 치유하고자 끊임없이 다른 대상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이 사랑의 상처를 치윻 주지 못한다는데 있다. 사랑의 상처란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무뎌지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사랑의 상처란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무뎌지는 것이고 무덤덤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일뿐이다.  

  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다. 20살에 나보다 한 살 어린 한 사람을 만났고, 25살까지 만났다. 처음 연애하는 사람 둘이 만나서 좋은 과정을 거치면서 오랜 세월동안 관계를 유지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에 상대방에 대한 소중함과 설레임도 사라지는 권태기 비슷한 과정에 들어가게 되었다. 둘 다 아직 어렸고, 상대방의 상처를 안아 주기보다는 상대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히기에 급급했으며, 결국 그렇게 헤어지고 말았다. 다음 과정은 이 책에 나오는 대로 상실, 불안, 무감각, 중독, 트라우마, 오해, 금기의 과정을 차례차례 밟아갔다. 나는 이렇게 아픈데 세상은 너무나 밝아서 한 때 밤낮 모자를 쓰고 다니기도 했으며, 불면증에 몇달을 시달려 보기도 하고, 상처 때문에 밥을 거의 못먹고 음료수로 연명을 하기도 했다. 상처가 극에 달했을 때에는 약을 먹고 목숨을 포기하려도 했다. 사랑이 깊었던만큼 상처도 깊었고 그 상처가 치유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흘렀다. 상처가 치유되기 전에 다른 사람을 만나보기도 했지만 나에게 위안이 되기보다는 상대방에게 더 큰 상처를 주고 받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상처가 무뎌지고 무덤덤하게 될 즈음에 아내를 만났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하 과정을 통해 깨닫게 된 한가지는 누구나 열렬한 사랑을 하지만 사랑을 하면서 정말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누구나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서 중간에 멈추고 포기하려고 하지만, 담을 샇고 살아가지만 그것이 사랑의 상처를 결코 치유해 줄 수 없다. 오히려 포기하면 할수록 더 상처를 받게 될 뿐이다. 다시 사랑하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며,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사랑 때문에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해 주고 싶다. 그리고 딷 이 한마디만 건네주고 싶다. 

"사랑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거야. 잘 모르겠지만 너는 정말로 괜찮은 사람이야.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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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교양강의>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손자병법 교양강의 돌베개 동양고전강의 2
마쥔 지음, 임홍빈 옮김 / 돌베개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한비자(韓非子) 난일(難一)에는 진(晉)나라 문공이 초나라와 전쟁을 하고자 구범에게 견해를 묻는 대목이 있다. "초나라는 수가 많고 우리는 적으니, 이 일을 성취하려면 어지해야 하는가?"라는 진문공의 물음에 구범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제가 듣건대 번다한 예의를 지키는 군자는 충성과 신의를 꺼리지 않지만, 전쟁에 임해서는 속임수를 꺼리지 않는다고 합니다.(戰陳之間 不厭詐僞) 그러니 적을 속이는 술책을 써야 할 것입니다." 진문공은 구범의 계책을 따라 초나라의 가장 약한 우익(右翼)을 공격하였다. 우세한 병력을 집중하여 신속하게 그곳을 공격함과 동시에 주력부대는 후퇴하는 것으로 위장하여 초나라 군대의 좌익(左翼)을 유인해냈다. 진 문공은 곧 좌우에서 협공하여 초나라 군대를 쳐부술 수 있었다.  군대를 동원하여 나라와 나라간의 전쟁은 나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상대방을 제압한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서라면 그 어던 속임수를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전쟁의 비정한 속성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이와 비슷한 말로 병불염사(兵不厭詐)라는 말이 있다. 군사 작전에는 적을 속이는 기만술을 꺼리지 않는다는 말로 조조가 사용했던 말이며, 적벽 대전에서 채중과 채화를 제거하는 주유의 모습을 보면서 제갈량이 뱉은 말이다.  

  언뜻 보면 상당히 비겁한 말 같다. 그러나 전쟁에 있어서만큼은 병불염사라는 말은 영원한 진리이다. 동네 축구에서조차 상대방을 이기기 위하여 전략과 전술을 숨기고 바로 직전까지 출전 선수 명단을 극비로 다루는데 하물며 국가간의 명운을 걸고 하는 전쟁이라면 당연한 것이다. 페어플레이한다고 상대방에게 내 카드와 밑천을 다 보여주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다. 승리와 패배가 명확하게 갈리고 상대방을 누르고 올라서야 내가 살아남는 비정함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상대방을 속이는 것은 충분히 용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만술이 용납되는 상황은 한시적이며 임시방편으로 융통되는 것이지 만약 병불염사라는 말이 우리 일상의 가치기준이 되어버린다면 그곳이 바로 지옥이 아니겠는가? 

 이 책의 318페이지에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손자 병법을 일상생활에 활용할 수 없을까요?" 당시 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이탈리아의 저명한 정치가 마키아벨리의 말 한마디로 자네 물음에 답하겠네. 병법을 일상생활에 끌어들인다면, 그것은 일상생활을 지옥에 끌어들이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에." 내가 그에게 이런 식으로 대답한 이유는 바로 병법에서 추구하는 속임수, 기만술 때문이었습니다. 전쟁에서는 기만술이나 속임수를 잘 쓸수록 이길 가망성이 높아집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친구나 일가 친척, 동료 그리고 모든 선량한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병불염사'라는 속임수를 써서는 안되지요! 

  병불염사라는 말이 일상생활에서 추구되던 춘추전국시대를 우리는 태평성대라고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전란의 시대, 지옥의 시대라고 부른다. 일상생활에서 엄정하게 지켜져야 하는 가치는 병불염사가 아니라 신뢰가 아닌가? 법 질서, 가족, 상행위, 사회 생활이라는 것이 모두 나와 너, 사회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신뢰가 무너지고 병불염사를 최고의 가치 기준으로 삼는 사회가 얼마나 치열한 생존경쟁의 구도로 내몰리고 있는지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돌아본다. 과연 우리 사회는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가 되는가, 아니면 병불염사를 바탕으로 유지가 되는가? 안타깝지만 전자보다는 후자가 아니겠는가?  목숨걸고 남을 속이고, 기만해서라도 남보다 높은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서 아둥바둥하는 경쟁 사회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현주소가 아닌가? 인간으로서 잃지말아야 하는 최소한의 신뢰마저 잃어버렸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을 전쟁터라고 부르는 것은 아닌지? 

  이 책을 열심히 읽어가면서 병불염사라는 말이 정치권에 꼭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해본다. 대전(大戰)과 대선(大選)! "상대방을 찍어누르고 당선되기 위해서라면 어떤 속임수와 협잡과 헐뜯기를 사용해도 상관없다. 당선되면 장땡이다."라는 말이 정치권의 금언이 된 것이 어제 오늘이 일이 아닐 것이다. 지난 대선과 총선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당선되기 위해서라면 어떤 기만술과 사기도 통용되기 대문에 747공략을 내세우고 발뺌하지 않았는가? 걸림돌이 되고 방해가 되었던 사람들의 명단을 적어가면서 나중에 두고보자고 마음 속으로 칼을 갈면서도 아닌척, 국민을 생각하는 군자인척 하지 않았는가? 뉴타운 공략(空約)을 앞세우며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그렇게 내뱉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것이 족쇄가 되어 돌아왔지만 자기들은 그 말 한적 없다고 발뺌을 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래도 대선에 사용하는 자금을 실탄으로 비유하고, 두 후보가 접전을 벌이는 곳을 격전지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렇게 대전(大戰)과 대선(大選)이 병불염사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공통점 때문이 아닌가 한다. 

ps.340p 맨 밑줄 손병은 손명의 오탈자이다. 한자로 孫明이라 적고 손병으로 표기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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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 90세 '나치 전범' 혐의 밝혀-獨, 前나치 친위대원 기소(한국일보) 

유대인 강제노역자 58명 집단학살에 가담했던 나치 친위대원이 홀로코스트를 연구하는 한 대학생의 끈질긴 추적으로 나치 패망 54년 만에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18일 AP 등 외신에 따르면 독일 철도역의 책임자로 일하다 은퇴한 아돌프 슈토름스(90)는 나치 패망 한 달 전인 1945년 3월28일 친위대 하사로 히틀러 유겐트(나치 청소년조직) 대원들과 함께 유대인 강제노역자 57명을 대량 학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슈토름스 등은 헝가리출신 유대인 노역자들을 오스트리아 도이취 쉬첸 마을 인근 숲에서 총으로 학살했으며 유대인 노역자들을 이동시키는 과정에서도 한 명을 살해했다. 패전 직전 나치는 강제수용소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수감자들을 다른 곳으로 강제 이동시키거나 집단적으로 살해했다. 쉬첸 지역 대량학살 희생자들의 유해는 1995년 발견됐다. 슈토름스의 범죄는 오스트리아 빈 대학 학생인 안드레아스 포스터(28)에 의해 우연히 밝혀졌다. 포스터는 도이취 쉬첸 마을에서 일어난 유대인 학살사건을 연구하던 중 핵심인물인 슈토름스를 발견하고 베를린 연방문서보관소에서 관련 파일들을 입수, 범죄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이어 독일 뒤스부르그에 거주하던 슈토름스를 찾아내 지난 7월 독일 검찰에 그의 범죄사실을 알렸다. 검찰은 지난 17일 슈토름스를 전쟁범죄 혐의로 기소했다. 슈토름스는 종전 후 미군 포로수용소에 수용됐지만 이듬해 풀려난 뒤 이름을 바꾸는 등 신분을 세탁했다. 포스터와 그의 지도교수가 시도한 수 차례 인터뷰에서 슈토름스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범죄 사실을 부인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정진황기자 jhchung@hk.co.kr 

 11월 8일 효창공원 김구 주석 묘역에서 민족문제 연구소와 친일 인명 사전 편찬 위원회가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 대회가 열렸다. 해방후 64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친일인명 사전이 드디어 발간된 것이다. 2004년에는 국회에서 예산이 전액 삭감되어 어렵게 작업을 지속하다가 드디어 빛을 본 것이다. 지속적으로 딴지를 걸어오던 보수 단체에서 민족문제 연구소에 난입하여 현판을 박살내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하였지만 그 누구도 처벌받지 않는 웃기는 일도 있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만주 군관 출신인 것을 모두가 아는데도 친일파가 아니라 오히려 민족의 구국의 영웅이라고 우기는 이들은 순진한 것인지, 아니면 무식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남자들은 거의 모두 군대에 갔다 왔을텐데 군대에서 지속적으로 군인들의 머릿 속에 심어주는 것이 무엇인지 잊어버린 것인가?(참고로 나도 아직 국가와 국민에 충성을 다하는 대한민국 육군이라는 의식을 심어주던 복무신조를 기억하고 있다.) 

  친일문제만 나오면 새로운 연좌제라고 입에 거품을 무는 보수 우익들, 독립 유공자들의 자손의 딱한 처지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친일파들을 모두 숙청하고 그들의 재산을 다 환수해야 한다고 외치는 순진한 좌익들. 나는 그 어느 쪽의 입장에도 100퍼센트 동의하지 않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신하고 있다. 과거를 청산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친일이라는 케케묵은 논쟁은 우리 자식들의 대에까지 물려지게 될 것이며, 그 때에는 더 심각한 문제로 발전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당시에 친일이 되지 않았으면 살아남지 못했다고, 온 민족이 다 친일이라고. 일견 일리가 있어보이는 말이지만 왠지 혼자 죽지 않겠다는 물귀신 작전으로 논점을 흐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해방된지 너무 오래되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웃기는 소리다. 위의 기사에서 보지 않았는가? 문제는 의지의 문제이다. 이상하게도 대한민국에서는 용공분자를 색출하려는 의지는 넘쳐도 친일을 색출하려는 데에는 무신경하다. 제발 후손들에게 쪽팔린 역사를 물려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친일 행위를 했다고 해서 오늘날 그들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해 친일 인명 사전을 편찬하는 것은 아니다. 친일을 통해 불법적으로 강탈해간 재산에 대해서는 환수할 수 있다고 해도 그 범위도 엄격하게 제한해서 공정하게 행해야할 것이지 정치적인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또한 향후 국가 발전에 큰 공로가 있다고 해서 친일 행위가 덮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은 공이고 과는 과다. 그런데 왜 자꾸 공으로 과를 덮으려고 하는지. 내가 원하는 것은(아마 대다수의 상식인들이 원하는 것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속시원히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 내가 친일을 했다. 미안하다. 사과한다. 앞으로 그 과를 기억하면서 사회 발전을 위해서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라는 쿨한 자세가 아닐까? 

  위의 기사 때문일까? 친일 역사 청산에 대해서만큼은 찌질이들이 많은 대한민국이 너무 한심스럽다. 그리고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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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목에서 가래가 끓더니 화요일 밤에 드디어 40도를 넘나드는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 수요일 아침에 비몽사몽간에 병원에 가서 야글 처방받고 출근도 안하고 이틀을 쉬었다. 다행히 신종플루가 아니었는지 열이 떨어져 오늘은 출근하게 되었다. 이틀을 꼼짝안고 누워서 잠을 자고 텔레비전을 보는데 할짓이 못되더라. 아이들은 아빠가 집에 누워 있으니까 좋아하지만서도. 여하튼 이게 핵심은 아니고 이틀을 누워 있으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가 무엇인고 하니 세종시이다. 

  도대체 세종시가 무엇이길래 그렇게 시끄럽단 말인가? 도대체 저걸 왜 그네누님에게 물어봐야 한단말인가? 도무지 알 수도 없고, 이해도 안가고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왠지 그냥 놔두면 안될 것 같아서 몸이 나아지기 시작하면서 찾아보았다. 그런데 청화대 측근들이 말하는 가운데 한가지 의구심이 드는 것이 있었다. 예전에는 찬성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찬성했다? 그런데 지금은 수정해야 한다? 그러면 청와대에서 잘못했다는 것인데, 사과는 했나? 그래서 찾아봤다. 온갖 신문에 차곡차곡 정리가 되어 있지만 귀찮은 관계로 다음 지식에서 드래그 해온다. 다음에서 "이명박 후보의 세종시 발언"이라고 치면 가장 위에 나온다. 

대선 후보 선출 후 MB발언
“(세종시는) 훌륭한 계획이다. 서울시장 시절엔 반대했지만 기왕 시작된 것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더 빨리 더 크게 해 놓겠다. 행복도시는 계획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2007.09.12)

“제가 대통령이 되면 행복도시가 안 될 거라고 하지만, 저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라 언급.(2007년 11월27일 대전 유세)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을 방문, “행복도시 건설은 정책 일관성 측면에서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약속.(2007.11.28)
 

대통령 시절 MB발언
충남도청 업무보고에서 “행정도시를 누가 축소할 것이라고 하던가.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장담.(2008.03.20)

청와대에서 이완구 충남지사에게 “부처 통·폐합 때문에 몇 개 부처가 줄어들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변함이 없다”고 원안 추진 방침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2008.05.02)

지역발전정책추진 전략회의에서 “기존 추진한 여러 지방 균형발전에 대한 계획은 원칙적으로 지켜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2008.07.21)

이명박 대통령은 선진당 이회창 총재와의 청와대 회동을 갖고 세종시와 관련, “당초 계획대로 현재 진행 중”이라며 “나도 정부 마음대로 취소하고 변경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2009.06.20)

자료 참조 (일부)
http://www.polinews.co.kr/viewnews.html?PageKey=0101&num=94333&p=3&Sword=세종시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충남의 표를 의식해서 세종시를 반대한다고 하지 않고 찬성한다고 말하고, 문제가 불거지기 전까지만 해도 국가 맘대로 취소할 수 없다고,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말했다가 몇달이 지난 지금에 와서 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무슨 의도인가? 말이 수정이지 실제 속마음은 안했으면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지지도 때문에 나서서 하지 못하고 밑에 애들 시켜서 나는 안그런데 얘네들이 그런다고 하네라는 식의 조삼모사가 아닌가?  

  이런 저런 말로 살살 달래다가 싫으면 걍 굶던가 한마디 하면 그거라도 주세요라면서 감지덕지하는 것이 어리석은 국민이라는 구시대적인 발상을 아직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상은 첨단을 향해 달려가는데 왜 정치 행태는 박물관에서나 볼법한 고리타분한 것들뿐일까? 왜 샤프한 사람들도 그 판에만 들어가면 국민을 원숭이로 보고 사기치기에 급급한 것인지 모르겠다. 세종시라는 도토리를 가지고 이리저리 돌리면서 원숭이를 구슬르면 감지덕지하고 받아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큰 코 다칠 날이 올 것이다.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조삼모사가 위와 같은 것이라면 요즘 조삼모사의 모습은 여기에 더 가까울테니 말이다. 

 


  국민을 원숭이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국민은 오히려 여의도에서 집단 패싸움을 하는 당신들을 원숭이로 보고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속시원히 한마디 하고 싶어서 글을 써본다. 

"이게 썅..누굴 원숭이로 아나?"

ps. 위에 인용된 그림은 인터넷에서 퍼온 것이다. 출처 싸이트도 그래도 있으니 따로 출처를 표기하지는 않는다. 사실은 몸이 아직도 회복이 안되서 귀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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