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 교양강의>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손자병법 교양강의 돌베개 동양고전강의 2
마쥔 지음, 임홍빈 옮김 / 돌베개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한비자(韓非子) 난일(難一)에는 진(晉)나라 문공이 초나라와 전쟁을 하고자 구범에게 견해를 묻는 대목이 있다. "초나라는 수가 많고 우리는 적으니, 이 일을 성취하려면 어지해야 하는가?"라는 진문공의 물음에 구범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제가 듣건대 번다한 예의를 지키는 군자는 충성과 신의를 꺼리지 않지만, 전쟁에 임해서는 속임수를 꺼리지 않는다고 합니다.(戰陳之間 不厭詐僞) 그러니 적을 속이는 술책을 써야 할 것입니다." 진문공은 구범의 계책을 따라 초나라의 가장 약한 우익(右翼)을 공격하였다. 우세한 병력을 집중하여 신속하게 그곳을 공격함과 동시에 주력부대는 후퇴하는 것으로 위장하여 초나라 군대의 좌익(左翼)을 유인해냈다. 진 문공은 곧 좌우에서 협공하여 초나라 군대를 쳐부술 수 있었다.  군대를 동원하여 나라와 나라간의 전쟁은 나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상대방을 제압한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서라면 그 어던 속임수를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전쟁의 비정한 속성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이와 비슷한 말로 병불염사(兵不厭詐)라는 말이 있다. 군사 작전에는 적을 속이는 기만술을 꺼리지 않는다는 말로 조조가 사용했던 말이며, 적벽 대전에서 채중과 채화를 제거하는 주유의 모습을 보면서 제갈량이 뱉은 말이다.  

  언뜻 보면 상당히 비겁한 말 같다. 그러나 전쟁에 있어서만큼은 병불염사라는 말은 영원한 진리이다. 동네 축구에서조차 상대방을 이기기 위하여 전략과 전술을 숨기고 바로 직전까지 출전 선수 명단을 극비로 다루는데 하물며 국가간의 명운을 걸고 하는 전쟁이라면 당연한 것이다. 페어플레이한다고 상대방에게 내 카드와 밑천을 다 보여주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다. 승리와 패배가 명확하게 갈리고 상대방을 누르고 올라서야 내가 살아남는 비정함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상대방을 속이는 것은 충분히 용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만술이 용납되는 상황은 한시적이며 임시방편으로 융통되는 것이지 만약 병불염사라는 말이 우리 일상의 가치기준이 되어버린다면 그곳이 바로 지옥이 아니겠는가? 

 이 책의 318페이지에 이런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손자 병법을 일상생활에 활용할 수 없을까요?" 당시 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이탈리아의 저명한 정치가 마키아벨리의 말 한마디로 자네 물음에 답하겠네. 병법을 일상생활에 끌어들인다면, 그것은 일상생활을 지옥에 끌어들이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에." 내가 그에게 이런 식으로 대답한 이유는 바로 병법에서 추구하는 속임수, 기만술 때문이었습니다. 전쟁에서는 기만술이나 속임수를 잘 쓸수록 이길 가망성이 높아집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친구나 일가 친척, 동료 그리고 모든 선량한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병불염사'라는 속임수를 써서는 안되지요! 

  병불염사라는 말이 일상생활에서 추구되던 춘추전국시대를 우리는 태평성대라고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전란의 시대, 지옥의 시대라고 부른다. 일상생활에서 엄정하게 지켜져야 하는 가치는 병불염사가 아니라 신뢰가 아닌가? 법 질서, 가족, 상행위, 사회 생활이라는 것이 모두 나와 너, 사회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신뢰가 무너지고 병불염사를 최고의 가치 기준으로 삼는 사회가 얼마나 치열한 생존경쟁의 구도로 내몰리고 있는지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돌아본다. 과연 우리 사회는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가 되는가, 아니면 병불염사를 바탕으로 유지가 되는가? 안타깝지만 전자보다는 후자가 아니겠는가?  목숨걸고 남을 속이고, 기만해서라도 남보다 높은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서 아둥바둥하는 경쟁 사회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의 현주소가 아닌가? 인간으로서 잃지말아야 하는 최소한의 신뢰마저 잃어버렸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을 전쟁터라고 부르는 것은 아닌지? 

  이 책을 열심히 읽어가면서 병불염사라는 말이 정치권에 꼭 들어맞는다는 생각을 해본다. 대전(大戰)과 대선(大選)! "상대방을 찍어누르고 당선되기 위해서라면 어떤 속임수와 협잡과 헐뜯기를 사용해도 상관없다. 당선되면 장땡이다."라는 말이 정치권의 금언이 된 것이 어제 오늘이 일이 아닐 것이다. 지난 대선과 총선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당선되기 위해서라면 어떤 기만술과 사기도 통용되기 대문에 747공략을 내세우고 발뺌하지 않았는가? 걸림돌이 되고 방해가 되었던 사람들의 명단을 적어가면서 나중에 두고보자고 마음 속으로 칼을 갈면서도 아닌척, 국민을 생각하는 군자인척 하지 않았는가? 뉴타운 공략(空約)을 앞세우며 책임지지도 못할 말을 그렇게 내뱉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것이 족쇄가 되어 돌아왔지만 자기들은 그 말 한적 없다고 발뺌을 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래도 대선에 사용하는 자금을 실탄으로 비유하고, 두 후보가 접전을 벌이는 곳을 격전지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렇게 대전(大戰)과 대선(大選)이 병불염사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공통점 때문이 아닌가 한다. 

ps.340p 맨 밑줄 손병은 손명의 오탈자이다. 한자로 孫明이라 적고 손병으로 표기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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