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합창단>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불만합창단 - 세상을 바꾸는 불만쟁이들의 유쾌한 반란
김이혜연, 곽현지 지음 / 시대의창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빨간색 표지에 불만 합창단이라는 상당히 불량스러운 제목! 

  이건 안봐도 불온도서라는 표시다. 과거라면 불온도서가 거의 삐라와 맞먹는 터부의 대상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깜찍한 국방부의 불온서적 이벤트 이후로 필독의 대상이다. 왠지 내 마음을 확 잡아 끄는 탐심에 넘어가지 않기 위하여 애를 쓰던 중 알라딘 서평 도서로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이제나 저제나 책이 올까 기다리다가 받아든 뒤, 지금까지 읽던 "SERI 전망 2010"을 뒤로 물려두고는 정신없이 읽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과하지 않은 두께, 중간에 실린 불만합창 페스티벌 사진, 부록으로 붙어있는 내용들, 게다가 상당히 읽기 편한 문체는 내가 단 몇 시간만에 이 책을 다 읽도록 만들어 준 일등 공신이었다. 그런데 오해는 하지 마시라. 읽기 쉽다고 내용도 가벼운 것은 아니니 말이다. 

  불만합창단이라는 프로젝트는 동생을 통해서 들어보았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동생이 사회복지 공무원이 되라는 나의 현실적인 제안을 뿌리치고 들어간 곳이 희망 제작소이다. 자기가 즐거워하는 일을 하는 것이 좋아 보이기는 하지만 경제적인 면에서 어려울 것이 뻔하고, 일도 많아 피곤해할 것 같아서 말렸지만 막내인 녀석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관심 갖고 지켜볼 수밖에. 물론 가끔 내가 생각하는 아이템도 제공하지만. 1달전에는 종이 이력제에 대해서 제안했는데 이녀석이 바쁜지 갈아뭉개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불만합창단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고, 나도 외국에 그런 합창단이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던지라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갔는데 그게 이렇게 책으로 나오니 왠지 더 감격스럽다.  

  솔직히 이 책을 받아들고 제일 처음에 한 일은 동생의 얼굴을 찾아 보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동생에게 전화해서 이런 책이 나왔다고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위의 사진 제일 좌측에 기타를 들고 있는 녀석이 막내 동생이다. 이렇게 책으로 보니 감회가 새로운 것은 어릴 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사춘기를 혼자 겪어온 동생을 걱정하는 형의 노파심 때문인가? 이런 의미에서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 책은 나에게 뜻 깊은 책이 되는 것이다. 

  어젠가? 윤도현의 러브레터 마지막회를 유투브에서 검색해 보고 축제를 잃어버린 대한민국에 대해서 두서없이 적었다. 워낙 두서없이 적었던 글인지라 자세하게 생각은 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의미이다.  

  "대한민국은 수없이 많은 인간 군상들이 모여서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고 몸으로 부딪힐 수 있는 축제의 장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상대방을 용납하지 못하고 제거해야 하는 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론을 분열시킨 가장 큰 원인은 축제의 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놀줄 모르기 때문이다. 썩 괜찮은 축제의 장인 윤도현의 러브레터가 그립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계속 머릿 속을 떠나지 않은 생각이 바로 이것이다. 불만을 합창으로 표현해보는 것은 하나의 축제이다. 희망제작소에서도 페스티벌이라 명명하지 않았는가? 일의 성공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할 수 있다면, 그래서 상대방을 적이 아니라 공존해야 할 너로 이해한다면 그것 자체가 희망이고, 축제의 순기능이 아니겠는가?  

  불만합창단은 모두가 함께 자유스럽고자 했던 프로젝트였다. 불만합창 페스티벌을 마치고 나니 여러 곳에서 질문이 쏟아졌다. 공통된 질문 가운데 하나는 그 행사의 성과에 대한 것이었다. '세속적' 의미에서 불만합창 페스티벌이 성공했는지 여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 때문에 충분히 즐거웠고 유쾌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우리 안에 있는 불만을 함께 소리쳐 노래하는 동안 우리는 자유로웠기 때문이다.(P.184 ~ 185)  

  페스티벌의 의미와 성과 여부를 따지기 전에 그것 자체가 하나의 의미있는 시도요, 실험이 아니겠는가? 불만을 토로하면서 인터넷에 글만 올려도 잡혀가는 이상한 시대에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의 불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도록 해준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행복하고 숨통 트이는 일이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저자의 다음 지적은 상당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개인이 좀 더 많은 발언을 할 기회가 필요하고 감정을 호소하고 인정받는 장소가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개인의 불만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무시하는 사회가 파쇼다. 어쩌면 우리는로 깨닫지 못한 사이에 꽉 막힌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불만을 듣고 공감한다는 것은 개인의 의견과 감정을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의 시작이다. 불만을 노래하는 것은 결국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었다.(P.153)  

  소통의 부재, 국론의 분열은 결국 각자가 가진 불만을 토로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가 열려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열려있지 않으니 상대방을 존중할리는 더더욱 없다. 촛불집회 때 왜 많은 사람들이 헌법 1조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를 그렇게 목이 터져라 불렀는지 납득이 된다. 국익을 위하여라는 거대한 슬로건 하에 개인들의 불만과 상대방이 불만을 무시하는 것이 파쇼라고 한다면 대한민국이 파쇼로 가고 있는 것을 걱정하고 우려하는 국민들의 간절한 외침이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선거철만 되면, 무슨 일만 있으면 국익을 위하여,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하여라고 외치는 정신빠진 수구꼴통(절대로 보수가 아닌)에게 그리고 국민의 실생활과는 동떨어져 자유, 평등, 해방이라는 거대 담론만 외치는 시대착오적이고 비현실적인 책상물림들에게 이 말만은 꼭 전해주고 싶다. 특히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국회를 거수기 정도로 하는 모 당과, 권력을 다시 잡기 위하여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도 대의에 입각하여 희생할 줄 모르는 모 당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다.

  영국에서 민주주의가 시작되고 발전된 것은 맞으나 그것은 거대한 민주주의였을 뿐, 시민의 쳥범한 삶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 거대 담론이었단다. 지금 데모스가 정의하는 민주주의란 일상과 직장, 가정, 이웃에서 경험하는 삶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더 나은 민주주의, 더 가까운 민주주의,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민주주의가' 데모스가 추구하는 이상이었다.(P.70)  

  현대적인 의미의 민주주의가 시작되고 발전한 영국에서조차 거대담론으로만 가득한 민주주의의 폐해를 깨닫고 일상에 기반을 둔 "더 나은 민주주의, 너 가가운 민주주의"를 고민하고 있는 이 때에 왜 그렇게도 한국에서는 좌우와 상관없이 거대 담론에만 목숨을 거는지 모르겠다. 삶의 소소한 부분들이 모여서 전체가 되는 것인데 우리는 전체에만 올인하지 그 전체를 이루고 있는 소소한 일상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니 민주주의를 하면 할수록 국민들이 더 피곤해지고, 갈등히 해소되지 않고 더 깊어져만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가능하다면 불만 합창단을 삼청동과 여의도에서도 해보는 것이 어떨까하는 발칙한 상상을 해본다. 국회에 불만이 있다면 국회 의사당 앞에 가서 게릴라 콘서트를 갖고, 정부에 불만이 있다면 청와대 앞마당에서 게릴라 콘서트를 갖는다면 얼마나 유쾌하겠는가? 물론 그 뒷 수습은 빨갱이로 몰려 CJD일보에대서특필 되겠지만 말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목청을 높여 당당하게 요청하는 바이다. 

  "불만을 許하라." 

사족) 

 1. 종이가 재생 용지 같다. 앞으로 책을 내면서 희망 제작소에서 내는 책이라면 처녀림을 보호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재생지를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 

2. Left님이 올린 어플을 가지고 요즘 책을 읽으면서 메모하고 있다. 이 서평에 인용된 부분도 그렇게 메모된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냥 갑자기 바이브의 "미워도 다시 한번만"이라는 노래가 생각이 나서 유투브를 검색했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노래이다. 얼마나 좋아하면 어울리지 않게 자전거를 타면서도(절대 산책같은 것이 아니다.) 흥얼거리고, 런닝 머신에 올라서 헉헉거리면서도 부르는 노래다. 바이브의 착착 감기는 목소리가 좋아서이다. 바이브의 미워도 다시 한번만으로부터 시작한 검색은 윤도현의 러브레터로 이어지고 필연적으로 김제동에게까지 나아갔다. 윤도현의 러브레터 마지막회에 김제동이 참석해서 윤도현과의 일화를 이야기하고 일어나를 열창한 부분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꽤 좋았던 프로그램이고, 마지막회 익산에서 올라온 대학생의 말마따나 대학오면 꼭 가고 싶어하는 그런 프로그램인데, 그것도 6년 7개월이나 진행되었던 프로그램인데 왜 마무리가 되었을까? 물론 방송국 사정이다, 끝나지 않는 축제는 없다고 말한다면야 할말이 없다지만. 왠지 석연치 않다고 느끼는 것은 나뿐 만이 아닐 것이다. 꼭꼭 챙겨보지는 않았지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기회가 되면 인터넷으로 보곤 했었는데. 

  윤도현의 러브레터 마지막회를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은 "축제의 장을 잃어버린 대한민국"이다. 축제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벌이던 난장이고 카타르시스를 체험하던 장소이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생각을 가지고 모이지만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너와 내가 만나던 장소 그곳이 바로 축제의 장이 아니던가? 그런데 과연 요즘 그런 축제가 이 땅에 존재하는가? 

  도처에 축제는 많다. 산천어 축제, 빙어 축제 등등. 각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축제를 열기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소모적인 것들이다. 사람들을 모으지도 못하고, 그 사람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지도 못하고 그저 돈만 쓰는 전시행정의 전형이 되었을 뿐이다. 축제가 없으니, 사람들이 놀줄 모른다. 엄격하게 규율잡혀 있고, 통제되어 있는 것이 최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나와 생각이 다른 타인을 도무지 용납하지 못한다. 나와는 생각이 다른 사람이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만나는 것이 아니라 통제를 벗어난 에러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오른 손과 왼손은 박수를 칠수 있지만 좌와 우는 도무지 만날 줄을 모르는 것이 아닌가?

  그나마 존재했던 멋진 축제의 장이 사라져 버린 것이 그저 아쉬울 뿐이다. 김정은의 초콜렛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웃고 뛰고 소리지르던 윤도현의 러브레터가 그립다. 텔레비전 음악 프로그램 중에 그나마 난장판이라고, 축제라고 부를만한 것이었는데. 온갖 인간 군상들이 뒤섞여서 맨몸과 생각으로 부딪히고 상대방을 알아가는, 그래서 하나가 되고 상생하는 진정한 축제의 장이 그립다.  

 

그나마 괜찮았던 축제의 장 윤도현의 러브레터.  

  두 사람 모두 좌파로 찍혀서 귀양살이 아닌 귀양살이를 하고 있다. 특히 MC 김제동씨의 상황은 가수 윤도현보다 더 안좋다. 가수는 노래로 승부하지만 MC는 말로 승부하는데 말을 할 공간조차 없어졌으니 말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호인 2010-01-21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력이라는 벽!
그들 스스로 즐거움을 포기한 인간들 같아요.
안타깝습니다.
막장 저질 코미디의 주인공을 그들에게서 보는 듯 하여 가슴 한켠이 씁쓸해요.
웃음을 주는 코메디언과 내용이었으면 좋으련만 해학을 해학으로 이해못하는 인간들이 국민들의 웃을 수 있는 권리까지 빼앗아 버린 대한민국이 한심스럽습니다. 두 사람을 마음 편하게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saint236 2010-01-21 11:46   좋아요 0 | URL
글쎄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노무현 대통령 추모 콘서트보다는 러브레터에서 보는 모습이 훨씬 활기차고 좋아보였는데요. 윤도현의 러브레터가 다시 부활하고 그 첫 회에 이 두 사람이 함께 출연한다면 꼭 챙겨보려고요. 다시 유투브 들어가서 마지막 회 방송 분량분 보면서 마음 달래려고 합니다.
 

   

  참 많이도 샀다. 지금까지 산 것이 62만원. 앞으로 사고 싶어서 보관함에 넣어 놓은 책도 30만원 정도. 그런데 이걸 사야하나 고민 중이다. 서재글을 보면서 시작하다가 하이드님의 분노에 찬 글을 보았다. "에이, 자기들도 양심이 있지 설마 그러겠어? 하이드님이 뽑기 운이 없나봐. 저렇게까지 분노해야할까?" 중얼거리면 내 계정을 확인했다. 확인하는 순간 내 입에서 된장 고추장, 새우적, 개나리, 신발끈이 튀어나왔다.(순전히 기독교인이라는 생각 때문에 욕을 안했을 뿐이지, 이미 신발끈과 개나리를 비롯한 말의 의미는 욕설이다.) 1월 19일 상품 수령이라는 말과 함께 "예상보다 빨리 도착하였습니다."라는 말풍선이 떠있다. 어제 글을 올리면서도 말했지만 내가 기분이 나쁜 것은 밑에 있는 말풍선이다. 나는 이만큼 친절하다는 식으로 글을 올려 놓으면서 그닥 친절하지 않달까? 

  아직 책은 받지 못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조회를 해보았다. 

 

  배달준비로 되어 있는데, 그래서 아직 나는 받지 못했는데 이미 상품 수령으로 처리를 해버리면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말인지.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약에 도중에 상품이 분실되어버린다면 우체국하고 나하고 알아서 하라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상품 수령하고 거짓말한다고 우길 것인지. 여하튼 상품수령이라는 말이 송파 우체국까지 도착한 것을 의미하는 줄 오늘 처음 알았다. 보관함에 넣어둔 책들을 또 주문해야 하는지 살짝 갈등된다. 

  내가 하이드님의 글을 보고 같은 맥락의 글을 올리는 이유는 그분이 겪은 일이 그분만의 일이 아니라, 특별 케이스가 아니라 알라딘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의 다른 이야기가 더 올라온다면 알라딘도 정신차리지 않을까?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하이드 2010-01-19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랑 같은 동네 ^^; 저 집배원 아저씨 알아요- ㅎ

saint236 2010-01-19 12:14   좋아요 0 | URL
음 그렇군요...이렇게 반가울데가. 그런데 송파에서만 알라딘이 사기를 치는건가요?^^;

2010-01-19 1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int236 2010-01-19 14: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jjc878 2010-01-19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왜 저는 12일에 주문했는데 아직도 집하처리일까요?

saint236 2010-01-20 10:54   좋아요 0 | URL
쿨럭...요즘 알라딘이 너무 불성실하게 일을 하네요. 어제 우체국 등기로 받은 책 박스는 습기를 잔뜩 먹어서..다행히 책은 이상이 없어서 받았지만 기분이 조금 그렇네요. 어제 저녁 6시 넘어서 받았고, 상품수령 완료는 아침부터 떠 있었고. 이게 뭡니까?
 
<공정무역,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공정무역,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 - 공정무역 따라 돌아본 13개 나라 공정한 사람들과의 4년간의 기록
박창순 외 지음 / 시대의창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 

  제목을 보기만 해도 마음 한구석이 따듯해 지는 것 같다.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 싶기도 하다. 어떤 거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일까? 이 책은 대안무역으로서의 공정무역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아름다운 거래"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시작했던 자료들과 공정무역을 소개하고 여기에 빠져들면서 저자가 수집한 자료들과 경험을 바탕으로 기록된 책이다. 지금까지 공정무역을 이야기하면 주로 외국저자들의 책을 접하게 되었었는데, 한국인 저자가 한국에서 공정무역을 뿌리내리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는 장면들, 그리고 한국에서 공정무역을 뿌리내리기 위하여 어던 모델을 택할 것이며, 어떤 어려움들을 당하게 되었는가를 있는 그대로 전해주는 책이기 때문에 더 공감이 가지 않았나 싶다. 

  공정무역(Fair Trade) 혹은 대안무역(alter trade)! 

  한국에서 이 말의 의미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90%의 사람들이 공정무역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으며, 공정무역 물건은 비싸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저자의 말에 십분 공감한다. 아직까지 한국은 공정무역의 불모지이다. 자본주의의 역사가 짧아서 그런지 여전히 우리에게 더 익숙한 개념은 자본주의는 절대선이요, 경제 발전은 오직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가야 하는 길이며, 여기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모두 치워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들의 머릿 속 깊숙이 박혀있다. 무한 경쟁 체제 속에서 오직 자본주의를 찬양하며 신자본주의 체제에 어덯게든 편입되고 싶어하는 한국의 엘리트들과 지도층들에게 대안무역은 따먹는 순간 죽을 수밖에 없는 백설공주의 독사과 내지는 우리를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게 만드는 선악과일뿐이다.  

  일반 국민에게 공정무역의 의미는 어떤 것인가? 공정무역을 그저 웰빙의 트렌드로 혹은 유기농으로 혹은 자선사업 정도로 치부해 버리지 않는가? 실제로 얼마전 27살짜리 남자 청년과 만나서 이야기를 하던 가운데 공정무역은 "돈가진 사람들이 돈쓸데가 없어서 돈지랄하는 것이 아닌가요?"라는 어처구니 없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그 청년이 무식해서도 아니고, 심성이 고약해서도 아니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공정무역을 바라보는 시선이, 환경 친화적인 농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딱 그정도이다.  

  굳이 공정한 거래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다지 불편함이 없는데 왜 공정무역을 의식하고 생활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그리고 왜 유럽인들은 공정무역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는가?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소비에도 윤리적인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하여 이얼게 설명한다. 

  카탈로그는 '당신이 수공예품 구매에 100를 쓴다면 그 돈은 어디로 갈까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질문에 대한 답도 친절하게 해놓았는데 공정무역의 분배구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자료를 보니 일반상점에서 사면 판매상과 중개상에게 40루피, 운영비 20루피, 마케팅비 10루피, 재료비와 생산비 20루피를 제외한 나머지 10루피가 생산자에게 돌아간다. 그러나 큐트 마힐라 비카스 상가탄과 같은 생산자단체에서 바로 사면 재료비와 생산비 30루피, 마케팅과 운영비 10루피, 여성 공예가 단체에 30루피, 그리고 시골 생산자에게는 30루피가 돌아간다. 여성공예가 단체에 들어가는 30루피는 공정무역의 초과이윤으로 공예작업에 재투자되고 사회적 요구에 따르는 데 쓰이고 있다 (P.82)  

수익을 창출하는 것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니짆아요. 문제는 누가 이익을 얻는가 입니다. ... 그러나 제품 생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생산자에게도 '공정한 몫'이 돌아가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고 그것이 바로 공정무역의 핵심요소다.(P.282 ~ 283)  

  생산자에게 생산품으로 인한 이익이 일정부분 돌아가야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그게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아닌가? 그런데 자본주이가 발달하면서 초심을 잃어버렸달까? 최소한의 노력과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데에 급급하다 보니 정당하게 치러야할 값도 치르지 않는 것이 자본주의의 가장 큰 폐해가 아닌가? 결국 오늘날 자본주의의가 스스로를 망가뜨리기 위하여 무한질주하는 모습을 우리는 매일 접하고 있지 않는가? 제로섬 게임에 몰두하면 할수록 우리의 미래는 잿빛이 짙어질뿐이다. 스스로를 파괴하는 자본주의를 멈춰 세울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나는 공정무역이라 생각한다. 아직은 시작단계이지만 우리가 공정무역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이 당에 정착시켜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무한경쟁이 아닌 상생의 경제학, 이것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아니겠는가?   

  코끼리 똥 종이에 발견한 가치는 큰 수확이다. 나는 공정무역 활동의 자세를 코끼리 똥에서 본받으면 좋다고 생각했다. 대립되어 있던 농민과 코끼리들을 화해시키는 정신, 그리고 수익금 일부르 사회에 환원하는 정신은 공정무역의 정신과도 일치한다. 공정무역으 단순히 착한 소비가 아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정신이다. 많이 가진 자가 덜 가진 자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 소비가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거래다. 코끼리 똥이 지역에 평화를 가져온 것처럼 공정무역이람 아름다운 거래가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한 것 같아 힘이 솟는다.(P.422)  

  상분지를 통하여 농민과 야생코끼리가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았듯이, 적당한 선에서 적당한 가격을 치르고,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법을 배우는 경제학이 앞으로 우리가 몸에 익혀야 하는 경제학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런 경제학으로 공정무역을 생각한다. 내가 지금 구매하는 물건 하나하나가 지구 반대편의 어느 한 사람에게는 생존을 위한, 그리고 미래를 꿈꾸기에 충분하지는 않지만 희망을 품게 해 줄 수 있는 귀한 재물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살아간다면 소비자로서의 욕구충족에 더하여서 윤리적인 책임감까지도 감안한 소비습관을 길러야 하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공정무역에 대해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공정무역은 적선이나 동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정무역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도 공정무역을 적선이나 원조로 오해하는데, 분명 잘못된 것이다. 공정무역 상품도 분명 시장에서 팔리는 물건이다. 품질에 따라 시장에서 자연 도태될 수 있는 물걸이라는 뜻이다. 물건을 생산하는 사람도 원조를 받거나 구걸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이 아니다. 공적무역이 초기 단계인 우리가 가장 조심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공정무역은 어느 일반에 유리하도록 조건없이 팔아주는 것이 아니므로 소비자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좋은 품질을 갖추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따라서 공정무역 단체들은 소비자의구매성향에 대한 연구와 생산자 지원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P.101)

  그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기보다는 기술을 배우게 하여 자립의 기반을 마련하고 지속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든 것이다.(P.137) 

  제 3세계의 사람들을, 저개발 국가의 사람들을 나와 동등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자립을 돕는 것, 그들에게 공정한 노동의 댓가를 지불하는 것, 그래서 세상을 좀 더 아름다운 곳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공정무역의 매력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비록 작지만 저자와 같은 사람을 통해서 이 나라에 졸부정신이 아니라, 물질만능주의가 아니라 상생의 정신, 책임있는 소비자 의식이 싹트길 소망해 본다.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이는 말이 아닌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라딘 배송이 지연된다는, 도대체 일처리를 이렇게 하냐는 하이드님의 글을 읽었다. 

  그리고 바로 내 계정에 들어가 확인을 해봤다. 지난 13일에 주문했던 책이다. 5권을 시켰으나 2권밖에 재고가 없어서 다시 주문한 듯 하다. 그래서 배송이 좀 늦어질 수 있다고 하기에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급한 책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주 늦게 줘도 되겠지 생각하면서 주문을 했다. 알라딘 도서 주문 금액은 어느덧 50만원에 육박하고 있다. 이번 주문으로 아마 50만원이 넘었을 것이다. 이것도 충분히 조절해서 사는 것이니 일년에 못해고 거진 200만원은 책값으로 쏟아 붓는 것 같다. 선물도 책으로 하고, 동생이 생일 선물을 줘도 책으로 받으니 당연할 수밖에... 

  책을 많이 사는 것을 자랑하자는 것이 아니라, 하이드님의 글을 보고 뭔가 깨닫는 점이 있어서 알라딘에 유감을 표시하고 싶어졌다.   


  위에도 보듯이 분명히 13일에 주문이 들어갔다. 이때만해도 20일에 책이 온다는 것을 알고 주문을 했기 때문에 마음을 비웠다. 그런데 16일에 발송이 된 것이다. 예상보다 빨리 처리되었어요라는 말풍성과 함께 "봐라,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가?"라는 알라딘의 자신감이 느겨지고 그 투철한 서비스 정신에 눈물까지 흘리며 감사했다. 그런데 배송조회를 눌러보니 이렇게 안내가 나온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지? 순간 한글이 외계어로 보이고 도무지 이해 불가능한 언어로 느껴졌다. 알라딘에서는 배송했는데 왜 입력되지 않았단 말인가? 알라딘에서 우체국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처리가 지연되고 있나? 순진한 마음에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젠장 그 이유를 오늘 하이드님의 글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다. 알라딘에서 아직 우체국으로 물건이 넘어가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도 버젓이 등기 번호는 입력이 되어 있다. 이건 기만이고 사기가 아닌가? 차라리 늦어지면 늦어진다 말하지 괜히 토욜에 "예산 시간보다 빨리 처리되었습니다."라는 말로 기대감을 심어 줘 놓고, 여전히 넘기지 않았다니 말이다. 물론 20일까지 배송된다는 알라딘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따지고 든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아직 우체국에 넘기지도 않은 것을 등기번호까지 넣어서 처리해 버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작년말까지만 해도 부담스러울정도로 빨리 배송해 주더니 올해는 폭설 이후로 회복이 안되나보다. 알라딘 쪽에서만 눈을 안치운 것인지? 책을 택배로만 받아왔던 나로서는 우편등기를 사용하는 분들의 불편함과 고충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솔직하게 이건 좀 아니다.  

  알라딘 여러분 이건 아니잖아요? 제대로 합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