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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합창단 - 세상을 바꾸는 불만쟁이들의 유쾌한 반란
김이혜연, 곽현지 지음 / 시대의창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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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색 표지에 불만 합창단이라는 상당히 불량스러운 제목! 

  이건 안봐도 불온도서라는 표시다. 과거라면 불온도서가 거의 삐라와 맞먹는 터부의 대상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깜찍한 국방부의 불온서적 이벤트 이후로 필독의 대상이다. 왠지 내 마음을 확 잡아 끄는 탐심에 넘어가지 않기 위하여 애를 쓰던 중 알라딘 서평 도서로 선정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이제나 저제나 책이 올까 기다리다가 받아든 뒤, 지금까지 읽던 "SERI 전망 2010"을 뒤로 물려두고는 정신없이 읽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과하지 않은 두께, 중간에 실린 불만합창 페스티벌 사진, 부록으로 붙어있는 내용들, 게다가 상당히 읽기 편한 문체는 내가 단 몇 시간만에 이 책을 다 읽도록 만들어 준 일등 공신이었다. 그런데 오해는 하지 마시라. 읽기 쉽다고 내용도 가벼운 것은 아니니 말이다. 

  불만합창단이라는 프로젝트는 동생을 통해서 들어보았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동생이 사회복지 공무원이 되라는 나의 현실적인 제안을 뿌리치고 들어간 곳이 희망 제작소이다. 자기가 즐거워하는 일을 하는 것이 좋아 보이기는 하지만 경제적인 면에서 어려울 것이 뻔하고, 일도 많아 피곤해할 것 같아서 말렸지만 막내인 녀석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관심 갖고 지켜볼 수밖에. 물론 가끔 내가 생각하는 아이템도 제공하지만. 1달전에는 종이 이력제에 대해서 제안했는데 이녀석이 바쁜지 갈아뭉개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불만합창단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고, 나도 외국에 그런 합창단이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던지라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갔는데 그게 이렇게 책으로 나오니 왠지 더 감격스럽다.  

  솔직히 이 책을 받아들고 제일 처음에 한 일은 동생의 얼굴을 찾아 보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동생에게 전화해서 이런 책이 나왔다고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위의 사진 제일 좌측에 기타를 들고 있는 녀석이 막내 동생이다. 이렇게 책으로 보니 감회가 새로운 것은 어릴 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사춘기를 혼자 겪어온 동생을 걱정하는 형의 노파심 때문인가? 이런 의미에서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 책은 나에게 뜻 깊은 책이 되는 것이다. 

  어젠가? 윤도현의 러브레터 마지막회를 유투브에서 검색해 보고 축제를 잃어버린 대한민국에 대해서 두서없이 적었다. 워낙 두서없이 적었던 글인지라 자세하게 생각은 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의미이다.  

  "대한민국은 수없이 많은 인간 군상들이 모여서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고 몸으로 부딪힐 수 있는 축제의 장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상대방을 용납하지 못하고 제거해야 하는 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론을 분열시킨 가장 큰 원인은 축제의 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놀줄 모르기 때문이다. 썩 괜찮은 축제의 장인 윤도현의 러브레터가 그립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계속 머릿 속을 떠나지 않은 생각이 바로 이것이다. 불만을 합창으로 표현해보는 것은 하나의 축제이다. 희망제작소에서도 페스티벌이라 명명하지 않았는가? 일의 성공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 자체만으로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할 수 있다면, 그래서 상대방을 적이 아니라 공존해야 할 너로 이해한다면 그것 자체가 희망이고, 축제의 순기능이 아니겠는가?  

  불만합창단은 모두가 함께 자유스럽고자 했던 프로젝트였다. 불만합창 페스티벌을 마치고 나니 여러 곳에서 질문이 쏟아졌다. 공통된 질문 가운데 하나는 그 행사의 성과에 대한 것이었다. '세속적' 의미에서 불만합창 페스티벌이 성공했는지 여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 때문에 충분히 즐거웠고 유쾌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우리 안에 있는 불만을 함께 소리쳐 노래하는 동안 우리는 자유로웠기 때문이다.(P.184 ~ 185)  

  페스티벌의 의미와 성과 여부를 따지기 전에 그것 자체가 하나의 의미있는 시도요, 실험이 아니겠는가? 불만을 토로하면서 인터넷에 글만 올려도 잡혀가는 이상한 시대에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의 불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도록 해준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행복하고 숨통 트이는 일이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저자의 다음 지적은 상당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개인이 좀 더 많은 발언을 할 기회가 필요하고 감정을 호소하고 인정받는 장소가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개인의 불만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무시하는 사회가 파쇼다. 어쩌면 우리는로 깨닫지 못한 사이에 꽉 막힌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불만을 듣고 공감한다는 것은 개인의 의견과 감정을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의 시작이다. 불만을 노래하는 것은 결국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었다.(P.153)  

  소통의 부재, 국론의 분열은 결국 각자가 가진 불만을 토로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가 열려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열려있지 않으니 상대방을 존중할리는 더더욱 없다. 촛불집회 때 왜 많은 사람들이 헌법 1조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노래를 그렇게 목이 터져라 불렀는지 납득이 된다. 국익을 위하여라는 거대한 슬로건 하에 개인들의 불만과 상대방이 불만을 무시하는 것이 파쇼라고 한다면 대한민국이 파쇼로 가고 있는 것을 걱정하고 우려하는 국민들의 간절한 외침이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선거철만 되면, 무슨 일만 있으면 국익을 위하여,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하여라고 외치는 정신빠진 수구꼴통(절대로 보수가 아닌)에게 그리고 국민의 실생활과는 동떨어져 자유, 평등, 해방이라는 거대 담론만 외치는 시대착오적이고 비현실적인 책상물림들에게 이 말만은 꼭 전해주고 싶다. 특히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국회를 거수기 정도로 하는 모 당과, 권력을 다시 잡기 위하여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도 대의에 입각하여 희생할 줄 모르는 모 당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다.

  영국에서 민주주의가 시작되고 발전된 것은 맞으나 그것은 거대한 민주주의였을 뿐, 시민의 쳥범한 삶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 거대 담론이었단다. 지금 데모스가 정의하는 민주주의란 일상과 직장, 가정, 이웃에서 경험하는 삶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더 나은 민주주의, 더 가까운 민주주의,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민주주의가' 데모스가 추구하는 이상이었다.(P.70)  

  현대적인 의미의 민주주의가 시작되고 발전한 영국에서조차 거대담론으로만 가득한 민주주의의 폐해를 깨닫고 일상에 기반을 둔 "더 나은 민주주의, 너 가가운 민주주의"를 고민하고 있는 이 때에 왜 그렇게도 한국에서는 좌우와 상관없이 거대 담론에만 목숨을 거는지 모르겠다. 삶의 소소한 부분들이 모여서 전체가 되는 것인데 우리는 전체에만 올인하지 그 전체를 이루고 있는 소소한 일상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니 민주주의를 하면 할수록 국민들이 더 피곤해지고, 갈등히 해소되지 않고 더 깊어져만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가능하다면 불만 합창단을 삼청동과 여의도에서도 해보는 것이 어떨까하는 발칙한 상상을 해본다. 국회에 불만이 있다면 국회 의사당 앞에 가서 게릴라 콘서트를 갖고, 정부에 불만이 있다면 청와대 앞마당에서 게릴라 콘서트를 갖는다면 얼마나 유쾌하겠는가? 물론 그 뒷 수습은 빨갱이로 몰려 CJD일보에대서특필 되겠지만 말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목청을 높여 당당하게 요청하는 바이다. 

  "불만을 許하라." 

사족) 

 1. 종이가 재생 용지 같다. 앞으로 책을 내면서 희망 제작소에서 내는 책이라면 처녀림을 보호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재생지를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 

2. Left님이 올린 어플을 가지고 요즘 책을 읽으면서 메모하고 있다. 이 서평에 인용된 부분도 그렇게 메모된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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