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사교육 - 내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싶지 않은 학부모를 위한 교육 필독서
이범 외 지음 / 시사IN북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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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난 교육감 선거 때 곽노현 후보를 찍었다. 그라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망만 더 할 뿐이었다. 온갖 진보적인 정책들을 내세우고 실행하겠다고 하던 그였지만 결국 자녀 문제에서만큼은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그의 아들도 외고에 입학했던 것이다. 교육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하는 교육감도, 그것도 거의 빨갱이로 몰아가는 진보진영의 후보라고 불리는 곽 교육감마저도 자녀 교육에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한민국이 처한 가장 큰 위기를 꼽자면 사교육 문제,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주거 비용, 인구 감소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 인구 감소가 가장 커다란 쿤제로 꼽힌다.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서 강남구는 3째인가 5째인가를 낳으면 몇천만원을 준다는 소리까지 들리던데, 진실이 어떻든 간에 각 자치단체에서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서 당근을 제공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인구 감소 추세를 둔화시키거나 증가로 돌이켜 세우지 못한다. 약간의 당근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구 감소의 근본적인 원인은 사교육과 턱 없이 높은 주거비용이다. 이 두가지를 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당근만 제공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언 발에 오줌누기식 처방이다. 정부는 왜 이것을 잡지 못하는가? 직접적인든 간접적이든 기득권층들이 교육과 부동산에 이익의 줄을 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리 현실적이고 좋은 정책을 제시한다고 할지라도 곽 교육감과 같은 웃기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사교육과 부동산 문제에서만큼은 전국민이 이해당사자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어떤 구체적인 답을 선뜻 제시할 수 없다. 그렇다고 무작정 손만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지금 이 상황이 지속되어 마지막에 이르게 되면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무한 경쟁 사회에서 존재의 위협을 받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이라도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한다.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 책은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진지한 답변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많은 대답을 내 놓았지만 그것들은 한가지로 귀결된다. 교육의 문제는 신뢰의 문제라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교육받지 못한 이들(중졸 혹은 고졸, 넓게는 전문대 졸까지)도 사회 안에서 적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자기실현을 할 수 있다는 믿음, 아이들의 생각을 듣고 믿어 주는 부모, 우리 사회는 비교적 정의로운 곳이라는 사회 구성원 전체의 보편적인 믿음 등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세운다고 할지라도 교육 문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법을 지키고 정직하게 행한다면 손해본다면 누가 법을 지킬 것인가?  

  어제 저녁의 일이다. 교회에서 성경공부 모임 시간에 한 여자분의 고민을 듣게 되었다. 자식이 고2인데 학원을 다니고 싶지 않다고 하기에 걱정이 된다는 말로 고민을 털어 놓으시기 시작하는데 내용은 이렇다. 아들이 단과 학원을 다니는데 하루에 3시간씩 영어 수학을 격일로 공부하는데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른 공부를 할 수 없어서 답답하기에 그만 다니고 자기가 부족한 공부를 스스로 해보겠다는 것이다. 아들이 그렇게 결정을 내린 것이 대견하긴 하지만 다른 아이들 다 학원 다니는데 자기 아들만 학원을 안다니면 성적이 떨어질까 불안하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앉아 계셨던 모든 분들이 이구 동성으로 한 말이 무엇인줄 아는가? 믿어주라는 것이다. 자식이 결정했으면 한시적으로 기한을 정하고(예를 들어 중간 고사라든지) 믿어주라는 것이다.  

  이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교육문제는 결국 신뢰의 문제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부모의 불안감을 최대한 조장하는 것이, 그리고 자기 자식은 특별하다라는 환상감을 지속적으로 심어주는 것이 사교육 시장의 시스템이 아닐까? 이 불안감에 휩싸여서 소모적인 군비경쟁을 치르고 있다. 쓸데없이 자주 정책을 바꾸거나, 말로만 하는 탁상공론이나, 경쟁을 가속시키는 무의미한 일들을 젖혀두고 어떻게 하면 교육에서 신뢰를 회복할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교실에 에어컨 하나 더 놓는 문제로 학부모 모임을 소집하지말고 교육의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지역 사회 모임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책이 사교육 없는 세상을 향해 진지하게 모일 수 있는, 더 나아가 진정한 교육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움직임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작은 조약돌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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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1-03-18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예전에 알라디너 바람구님께 교육문제는 사회문제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바람구두님은 (제 이야기가 맞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바라보면 문제가 너무 커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saint236 2011-03-19 12:02   좋아요 0 | URL
문제가 커져도 그게 현실이지요. 괜히 덮어두면 수습불가능하지 않을까요?

마녀고양이 2011-03-18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인트님, 절대 공감합니다.
마립간님의 말씀처럼 교육은 사회 문제와 따로 바라보면 안 된다는 점 역시 공감합니다.

중졸, 고졸이어도, 3D 업종이어도, 일한 만큼 제대로 받고
너무 큰 임금 격차가 나지 않는다면..... 왜 머리 쥐어싸는 대기업에 들어가려 하겠습니까.
저는 임금 평등화 및 고용의 촉진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교육을 덜 시킬겁니다. 솔직히 학원에서 외우는 교육을 교육이라 할 수 있을까요.. ㅠ

saint236 2011-03-19 12:03   좋아요 0 | URL
월급뿐 아니라 일하는 기업의 크기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가 매겨지는 것도 문제겠지요.
 
아프니까 청춘이다 - 인생 앞에 홀로 선 젊은 그대에게
김난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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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달인가 교회 청년을 데리고 반디에 갔다. 조만간 군대에 가야하는 21살짜리 머슴아인지라 무엇인가 해 주고 싶었다.

  "돈이 없어서 여러권 사줄 수는 없고 원하는 것 하나만 골라라." 

  머뭇거리면서 책을 고르는 그 녀석을 보면서 오랫만에 트윗을 했다. 이매지님에게 어느 책이 좋을지 추천해달라는 긴급 트윗을 했더니 한참 뒤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도 좋다는 답변이 왔다. 이미 그 녀석은 다른 책을 고른 이후였다. 그 후 2주가 지났을까? 이번에는 22살짜리 여자 청년으로부터 이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편입에 실패하고 다시 한 해를 힘들게 보내야 하는 그 녀석이 이야기 끝에 잠시 꺼낸 책이 이 책이다. 혹 나에게 이 책을 가지고 있냐고, 있으면 빌려달라는 것이다.(요 몇년 교회에서 사서 노릇을 하고 있다.) 아쉽게도 그 책은 없다고 돌아서는데 마음 한켠이 아리더라. 힘들어서 찾아왔고, 올해도 힘들어할 녀석인데 그까짓 책이 뭐라고. 결국 이렇게 저렇게 둘러쳐서 한권 구입했다. 순전히 그녀석 때문에 구입한 거다. 그런데 내가 읽어보지 않았으니 권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그 녀석을 주기 전에 먼저 읽었다.(내가 보지도 않고 주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인 것 같아서...) 책을 다 읽고 나서 여러가지 밑줄 그을만한 부분들도 발견했고, 왠지 힘을 얻은 것 같다. 올해 접하게 된 의외의 책 가운데 아마 이 책은 당당하게 이름을 올릴 것이다. 

  청춘! 20대! 스무살!  

  뭐라고 딱히 규정할 수가 없는 나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지독히도 아픈시기라는 것이다. 지난 내 삶을 돌아봐도 그렇다. 정말 질풍노도의 시기였고, 고민도 많이 했고, 아파하기도 많이 했다. 어머님께 떠밀려 원하지 않는 학교에 들어갔고, 공부대신 다른 곳에 한눈을 팔았다. 세상이 너무 부조리 해 보여서 뒤엎어 보고 싶어서 학생운동에 참여했으나 프락치 사건에서 보여준 비윤리적인 행동에 실망해 탈퇴하였다. 기독교 신앙마저 김홍도 목사 사건과 옷로비 사건으로 인하여 밑뿌리부터 흔들렸다. 사랑의 열정과 아픔 앞에서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고, 불확실한 미래의 문제 앞에서 정말로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아파했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지금에 와서 같은 문제들을 가지고 고민을 한다고 해도 그렇게 깊이, 아프게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게 아파할 수 있고, 불안해 할 수 있고, 고민할 수 있었던 것도, 열정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고, 실연 때문에 아파할 수 있는 것도 스무살의 청춘이기에 가능한 것이며, 축복이다. 

  스무살 아파할 나이다. 아니 아파해야 하는 나이다. 그때는 죽을 만큼, 토할 만큼 힘들고 아프지만, 그것이 삶을 진지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식상한 말이지만 성장통이다. 나는 다만 조금만 덜 아프라고, 조금만 더 버티라고 옆에서 이야기 들어주고, 책 한권 사주고, 커피 한 잔 사주고, 위해서 기도해 주는 사람이고 싶은 것이다. 내가 때론 짜증도 나고, 힘들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면서 교회안에서 여전히 스무살 청년들 곁을 맴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이 책을 이런 책으로 본다. 어떤 사람들은 이 책을 자기 계발서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그저 그런 책, 팔아먹기 위해 꼼수를 부린 책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만약 그런 의도로만 만들어진 책이라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위안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파하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아프지마, 힘내라."하지 않고 "아파해라. 당연한 거야. 다만 조금만 덜 아파해. 너도 살아야 하잖아."라고 공감해 주는 것이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위로와 위안을 주는 까닭이 아니겠는가? 아마 앞으로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청년들에게 나도 같은 말을 건넬 것이며, 이 책을 선물로 줄지도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1~3장까지 이어온 감동과 위로가 4장을  인하여 반감되었다는 것이다. 1~3장까지의 내용만 보면 에세이인데, 4장으로 인해 갑자기 자기 계발서로 방향을 틀어버린 것 같다. 마지막으로 딴지를 하나 걸자면 굳이 책의 표지에 "서울 대학교 학생들이 뽑은 최고의 강의"라는 타이틀을 붙일 필요가 있었나 한다. 김난도 교수가 서울대 교수라서가 아니라 출판사의 판매 전략이라고 보는 것은 너무 삐딱하게 바라보는 것일까? 그 한 줄의 카피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책인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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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강의
랜디 포시.제프리 재슬로 지음, 심은우 옮김 / 살림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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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강의!  

  어찌보면 참 하찮고, 어찌보면 매우 중요하고, 또 어찌보면 그저그런 말이 아닐까 싶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으로 술렁술렁 교단을 지켜온 사람에게도 마지막 강의는 있고, 목숨 걸고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도 마지막 강의는 있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도 아닌 이 책이 왜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끌었을까? 이 책 밑에 달린 수많은 서평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열광한 것일까? 나는 왜 그렇게 많은 서평 중에 또 하나의 서평을 덧붙이고 있는 것일까? 솔직하게 말해서 이 책이 내게 준 느낌은 그저 그렇다. 그럼에도 나는 왜 서평을 쓰는 것일까? 자기만족? 그렇수도 있다. 추천을 바라는 얇팍한 생각? 전혀 그렇지 않다고 부정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내가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는 이유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냥 랜디 포시의 삶이 행복하지 않았나 하는 부러움때문이다. 

  시간은 당신이 가진 전부다. 그리고 당신은 언젠가, 생각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p152) 

  포시의 말대로 시간은 우리가 가진 전부이다. 그런데 그 시간이란 것이 참 묘해서 많이 남아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르다가 끝이 보이고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하면서부터 아까워서 어쩔줄 모르게 된다. 이렇게 안달할 것이면 많이 남았을 때 했으면 좋았을 것을, 왜 그때 그렇게 허송세월했는지 후회가 된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그 순간에도 여전히 허송세월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내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를 자학하거나 후회로 남은 시간을 탕진한다. 그러나 포시는 대신 가족들과 더 가까이 지낼 수 있는 시간을, 그리고 남겨진 삶에 충실할 수 있는 태도를 택한다. 거스름돈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되돌아가서 그것을 항의하고 돌려 받아오는 것보다는 남겨진 시간이 더 소중하기에 그것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삶의 태도!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다. 만약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나도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포시의 인생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불행한 삶이기 쉽다. 어린 자녀들과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떠나는 중년 남성의 삶이 얼마나 슬프겠는가? 이제 막 행복이 시작되는데 그것들을 뒤로 하고 떠나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겁겠는가? 그렇지만 그는 그 모든 무거움들을 뒤로하고 인생을 정리해보게 된다. 많은 사진들을 추려내면서 강의를 준비하듯이 인생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추려내고 꼭 필요한 것들만 남기는 작업을 언제 이렇게 충실하게 해볼 수 있겠는가? 내가 포시에게 부러운 것이 이것이요, 그의 인생이 행복한 인생이라 평가하는 이유도 이것이다.  

  가끔은 멈추어 서서 우리 인생이 어떻게 지내왔는지, 어디쯤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점검해 보고 방향을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비록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이러한 과정을 충실히 거친 포시의 삶이 한없이 부러운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ps.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말이 왠지 생각나게 만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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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메시지다
김기석 지음 / 포이에마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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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책이란 읽는 이를 불편하게 만드는 책이다. 

  고 권정생 선생님의 말씀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은 한없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왜 불편한가? 지식과 삶 사이의, 신앙과 실제 사이의 괴리가 큰 까닭이다. 아니다. 원래 괴리는 컸지만 애써 외면했던 그 사실을 나에게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삶으로 번역되지 않은 신앙은 말짱 헛수고라는 말!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그 당연함만큼 신앙인들의 마음을 찌르는 말도 없을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팔복의 말씀을 가지고 여러번 벼리어 내어 김기석 목사님은 아주 날카로운 칼을 만드셨다. 그 칼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한장 한장 넘길수록 양심에 생채기가 하나씩 늘어난다. 심령이 가난하지도, 그렇다고 남을 긍휼히 여기지도,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살아가지도 못하는 필부로서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산상수훈의 말씀이 버겁기조차 하다. 그럼에도 필부의 만용이라도 부려보는 것이 신앙인이라면 가져봐야할 용기이기 때문에 애써 한발 떼어본다. 한발 한발의 무게가 천근만근 무겁기는 하지만, 한없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그래도 욕심을 내어 보련다. 

  그것이 무리가 아닌 예수의 제자로서의 삶이기 때문이다. 반경환 시인의 <때1>이라는 시가 책 가운데 인용되어 있는데 마음에 가장 깊이 남았던 그 시인지라 여기에서 인용해 보고자 한다. 

  무릎이 구부러지는 건
  세상의 아름다운 걸 보았을 때
  굽히며 경배하라는 것이고,
  세상의 올곧지 못함을 보았을 때
  솟구쳐 일어나라는 뜻이다.
  때를 가리지 못함이 무릇 몇 번이던가 

  솟구쳐 일어나지도 못하고 굽혀 경배하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삶이지만 신앙을 내 삶으로 번역해 보려고 한다. 그래야 사람들 앞에서,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면목이라도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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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 이야기 3 - 남방의 웅략가 초 장왕 춘추전국이야기 (역사의아침) 3
공원국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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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대학원을 다닐 때의 이야기이다. 

  채플시간이었다. 한 교수님이 한참 설교를 하시는데 그 분이 정말 괴짜다. 동양 철학을 가르치시는 목사님이신데 마침 그날의 주제는 진정한 신앙 생활이란 무엇인가였다. 알다시피 교수님들의 설교는 정말 재미가 없이 딱딱해서 졸기 딱 좋다. 그날도 열심히 졸고 있는데 이분이 신앙을 노장 사상을 가지고 설명 하시기 시작했다. 

  "여러분 신앙은 도를 닦는 것과 같습니다. 학문도 도를 닦는 것과 같습니다. 열심히 채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비워내야 하는 것입니다."  

  너무 뻔한 소리인지라 그러려니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 교수님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시더니 나즈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젠장 든게 있어야 비우지..." 

  참고로 강당의 마이크는 싸구려 마이크가 아니라 성능이 좋은 고가의 마이크였다. 당연히 그분의 혼잣말은 마이크를 타고 스피커를 통하여 학생들의 귀에 전달되었다. 졸던 학생들마저 다 깨어 일어나 낄낄대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분 때문인지 비운다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고, 잊지 않게 되었다. 

  정점에 이르렀을 때 더 채우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한계를 알고 비워낼 수 있는 것, 멈출 수 있는 절제의 미덕을 소유하는 것,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초 장왕의 가장 큰 장점이다. 로마인 이야기에 비견하여 춘추 전국 시대의 이야기를 쓰겠다는 저자의 의욕이 빛나는 책이다. 1~3권까지 다 봤으나 가장 먼저 3권을 리뷰로 올리는 것은 오늘 읽은 따끈따끈한 책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춘추 전국 시대에 관련한 책들이라면 중국의 책들을 그대로 번역하거나 혹은 고사를 이야기처럼 엮은 것들이 전부인데 이 책은 그러한 고정 관념을 깬다. 춘추와 국어, 좌전, 사기 등 여러가지 고전들을 비교하고 분석하여 가장 사실에 들어맞을 법한 것들을 취사 선택하여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그것도 착실하게 각주까지 달고, 지도까지 곁들이면서 말이다. 내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은 이유도, 그리고 책을 읽는 속도가 스피디 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너무 착실하게 학자의 양심을 가지고 글을 쓴 나머지 로마인 이야기와 같은 재미는 없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1권은 제 환공과 관중을, 2권은 진 문공을, 3권은 초 장왕을 다루고 있다. 1권과 2권의 리뷰는 조만간 쓸 것이고 여기에서는 장왕에게만 집중하고자 한다. 

  항우로 유명한 초나라이지만 춘추시대에는 오랑캐로 분류되던 변방의 나라이다. 다른 나라들이 형식적으로나마 주 왕실을 섬기고 있기 때문에 "공"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지만 초나라 만큼은 왕이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주 왕실의 인정을 받으려다가 거절당한 분노 때문인지 초나라는 스스로 왕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변방의 촌놈이 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큰 힘을 가지고 있으니 중원의 여러 나라들에게 초는 꽤 괴씸한 존재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 환공이 초의 북상을 막았고, 진 문공이 초와 성복에서 전투를 벌였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3권 초 장왕의 시대를 거치면서 초나라를 오랑캐라 부르면서 자존심을 내세우는 모습이 희미해진다. 여전히 명분을 전면에 내세우기는 하지만 진 문공의 시대를 지나면서 천하는 각국의 실리를 추구하는 입장으로 굳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진을 제어하기 위하여 제와 초가, 서방의 진과 초가 손을 잡고 초를 제어하기 위하여 초보다 더 변방에 있는 오와 진이 손을 잡는다. 그 안에서 온갖 전란이 끊이지 않고, 국제 정세는 복잡해 지기만 한다. 이 모두가 초장왕의 패업이 이루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바야흐로 초는 장왕을 통하여 중국 역사에 메이저로 등장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초 장왕은 제 환공이나 진 문공이 그러했듯이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현명한 신하들을 발탁한 왕이다. 그가 신하들을 발탁하는 기준은 오로지 실력에 있지 신분에 있지 않다. 이러한 그의 대범함이 그를 춘추시대의 패자가 되게 만들었다. 그러나 장왕의 대단함은 패자가 되어서도 절제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정점을 찍었을 때 스스로를 비우고, 경계하는 것이 권력을 오래 유지하는 비결임을 알았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전투에 승리하고도 그 전공을 과시하지 않았고, 나라를 빼앗고도 돌려줄 수 있었던 것이며, 결코 명분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그의 무를 창을 그치는 무(止戈之武)라고 하는 것이며, 저자가 노자와 쌍둥이와 같은 존재라고 조심스레 평가하는 것이다.

   말은 쉽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실천할 수 있을까? 한참 올라갈 때 내려올 준비를 하지 않아서 그대로 추락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성공만 꿈꾸는 이 시대 미련한 사람들에게 좋은 본이 된다. 저자는 관중을 현실적인 정치인으로 평가했는데, 나는 장왕도 관중에 못지 않는 현실적인 정치인으로 평가하고 싶다. 

ps.148p 밑에서 2번째 줄 재방을=>제방을, 244p 무후와 문후가 동시에 사용되고 있는데 문맥상 문후가 맞는 것으로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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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2-09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패자가 되어서도 절제한다.... 이 문구가 딱 맘에 걸리는군요. ^^
그러게요,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올라갈거라고만 생각하죠.
달리 생각하면 그걸 희망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만, 지나치면 욕심이 되는거네요.

즐거운 하루되세요, 세인트님~

saint236 2011-02-09 11:09   좋아요 0 | URL
그러다 떨어지면 다시 일어나기 힘든걸 모르는거죠. 마녀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L.SHIN 2011-02-09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세인트님의 일화 이야기였습니다.(웃음)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

saint236 2011-02-10 10:21   좋아요 0 | URL
그럭저럭이요. 엘신님도 잘 지내시죠.

2011-02-15 1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15 1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25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28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이작 2011-03-03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뛰어난 논리력, 빛이 납니다. 시작하는 글도 좋은데요.
평안하세요

saint236 2011-03-04 10:38   좋아요 0 | URL
오랫만에 뵙네요. 건강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