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즐거움>을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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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즐거움 - 은퇴 후 30년… 그 가슴 뛰는 삶의 시작!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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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어릴 적에 시골에 살았다. 아버지의 고향도 시골이었고, 아버지께서 이사다니신 곳도 시골이었다. 학교가 폐교될 정도로 깡촌이었으며, 그곳은 여전히 발전이 비켜간 곳이다. 그 덕택일까? 내 나이에 경험하기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내가 30대 초반인데 연날리기와 자치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등을 하고 놀았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일 것이다. 할머니의 집은 그야 말로 보물 창고였다. 뒤주도 있었고, 병풍도 있었으며, 다락에는 나를 위해 준비된 온갖 군것질 거리가 있었다. 문은 우리가 생각하는 유리문이 아니라 격자무늬로 짜여진 나무에 창호지를 바른 전통식 문이었다. 1년에서 2년 정도 사요하여 찢어진 문에는 풀을 먹여 창호지를 바르고 창호지가 팽팽하게 달라붙도록 입으로 물을 머금고 뿌린다. 그렇게 하고 햇볕에 말리면 어느새 창호지를 새로 바른 깨끗한 문이 된다. 그런데 그 문을 바라보면서 개운함을 느끼기 보다는 아쉬움을 느끼기 일쑤였다. 어린 내 생각에도 창초지의 색은 새하얀 것이 아니라 누리끼리한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아직짜기도 내 머릿 속에 창호지는 새하얀 빛으로 생각되기 보다는 누리끼리한 빛으로 생각이 된다.
왜 창호지를 생각하면서 새하얀 빛이 아니라 누리끼리한 빛이 생각이 날까? 고운 샛노란 빛도 아니고 얼룩이 묻어 지저분해 보이기까지 하는 누리끼리한 빛이 떠오르는 것일까? 그 종이가 창호지이기 때문이 아닐까? 창호지는 세월의 연륜이 묻어 있는 고풍스러움이 멋이다. 몇 년동안 비바람을 이겨내고 사람의 손때가 뭍어 있어서 누리끼리하고 어느 부분은 꾀죄죄하기까지 하며, 중간 중간 찢어진 부분을 창호지를 고게 잘라붙여 덧대어 붙인 것, 나는 이것이 창호지의 멋이라고 생각한다. 창호지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깨끗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 친근함으로 다가갈 수 있는, 그렇다고 그 고마움을 무시해 버릴 수도 없는 그런 존재이다.
노년이 꼭 이렇다. 노년은 세월의 얼룩이 뭍어 있고, 그 안에 연륜이 깊이 숨어 있어서 치근하면서도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이다. 그런데 요즘 이 노년이 위기를 맞고 있다. 노인들은 쓸모없는 삼류인생 취급을 당하고 있으며, 노인들 스스로도 늙으면 죽어야지를 입버릇처럼 달고 산다. 그러다보니 나이를 먹는 것이 두려워 진다. 세상에 태어나서 한살 한살 나이를 먹는 것은 생의 당연한 이치임에도 어떻게 해서든 나이를 먹지 않기 위해서 애를 쓴다. 어떻게 해서든 한살을 깎아보려고 만으로 나이를 계산하기도 하며, 주민등록상의 나이를 앞세우기도 한다. 그러다 이것마저 여의치 않으면 몸에 투자하기 시작한다. 동안, 웰빙, 주름살 제거, 보톡스 등등 주름살을 제거하고 어떻게 해서든 세월을 비켜가기 위해서 목숨을 건다.
그렇지만 이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행동이다. 노년의 경쟁력이 무엇일까? 바로 그 노숙함이 아니던가? 아무리 애를 써도 젊은이들을 따라해서는 방법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를 쓰고 젊은이들을 따라가려는 것은 늙음에 대한 우리 사회의 그릇된 시각 때문이 아니던가? 늙음은 재앙이 아니다. 피할 대상이 아니다. 자연스러움이다. 그 안에 성숙함과 지혜를 갈무리하고 있는 선망의 대상이다.
세월의 연륜이 뭍어 있는 창호지처럼 그렇게 멋있게 늙어가고 싶다. 쫓기다 쫓기다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맞이하면서 그렇게 숙성되고 싶다. 그래서 소로가 되고 중로가 되고 대로가 되었을 때, 내 얼굴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내가 아는 분 중에 꼭 이렇게 살고 계신 목사님이 계시다. 70으로 정년 퇴임을 하신지 몇 년이 지나셨는데도 여전히 정정하시다. 활동적이시고, 컴푸터 사용법을 배우셔서 당신이 찍은 사진과 놓은 글들을 메일로 보내주신다. 그분이 보내 주신 글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덕에 65세때 당당한 은퇴를 할 수 있었죠. 그런 내가 30년 후인 95살 생일 때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 그런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습니다. 30년의 시간은 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나긴 시간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 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나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살이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10년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 날, 95살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동아일보의 오피니언란에 실렸던 어느 95세 노인의 수필인데 늙어감에 대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던 글이다. 멋있게 늙어간다는 것, 생각만해도 즐겁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