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도 많이 찍어봐야 늘겠지만 난 기계치라 보는 건 좋아도 찍는 건 영 그렇다.

그래도 오늘은 간만에 용기를 낸 건 9일, 10일 연달아 만료되는 적립금 있다고 알라딘에서 매일같이 오는 문자 때문이다. 전엔 그냥 알라딘 메인 알림에서만 알려줬던 것 같은데 계속 문자가 오니 마지막 날까지 기다리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무조건 지르는 수 밖에.

 

그런데 어제 무슨 마음에설까? 알라딘 굿즈를 뒤져보게 되었다. 그랬더니 연필깎이기 눈에 띈다. 그렇지 않아도 작년 올해 초 본의 아니게 연필 아니면 깎아 쓰는 색연필이 생겼다. 원래 그런 걸 쓸 리가 없는데 막상 생기고 보니 옛날 초등학교 시절도 생각나고, 바늘 가는데 실 간다고 연필깎이가 아쉬웠다. 근데 그게 눈에 띈 것이다.

 

만원이 채 안 되긴 하지만 연필깎이를 안 사 본 나로선 싼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냥 추억과 맞바꿔 보기로 했다. 나야 연필을 써 봤자 글씨기용이 아닌 책 밑줄 긋기용으로 밖에 쓰지 않는데 그것치고는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기계치인 나로선 비싼 기계는 잘 고장이 안 나는데 이런 자잘한 게 의외로 잘 고장 나더라. 오래 오래 잘 써야할 텐데...  

 

그리고 그 밑에 있는 게 스티키 북마크다. 솔직히 이런 것도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나중에 책 팔려고 중고샵 나갈려면 이것부터 수거해야 한다. 그런데 우습지. 안 쓰면 모르겠는데 써 버릇하니까 밑줄 긋고도 붙이고 싶더라. 욕심이 나는 것이다.

 

시야가 좁아서일까? 전엔 책을 산다면 주로 일라딘 중고샵 직배송에 올라와 있는 책들을 샀다. 그러다보니 정가인하는 거의 보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목록을 보게 됐는데 의외로 군침 흘릴만한 책들이 많이 있었다. 내가 왜 지금까지 이걸 외면했던 걸까?

 

디트리히 본회퍼 평전이다. 이걸 보는 순간 급땡김이었다. 예전 같으면 비싸서도 안 샀겠지만 내가 요 근래에 좀 바뀌는 것 같다. 여전히 문학 편식이 심하긴 하지만 그런 중에도 기독교 서적에 관심이 간다.    

 

작년에 아는 지인으로부터 그의 책을 선물 받기도 했는데 아직도 못 읽었다. 그의 생애를 알고 그 책을 보면 잘 읽혀질지도 모르겠다.

 

아, 근데 800페이지가 넘는 책이다. 가독성이 좋다고 하긴 하더만 언제 다 읽을런지 모르겠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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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8-09-05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각진 연필 때문입니다.. 오늘 책이 온다네요.. 알라딘 너무 합니다ㅜㅜㅜㅜ 만년필도 탐나구요ㅜㅜ

stella.K 2018-09-05 16:33   좋아요 0 | URL
ㅎㅎ 그래서 전 굿즈 웬만해서 안 보려구요.
보면 자꾸 사고 싶어질 것 같아서리...

연필깎이도 샀으니 한동안 연필을 써 볼까 합니다.
샤프는 편하긴한데 샤프심이 다 쓰면 다른 걸로
교체해야 하는데 마지막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데
바꿔줘야 하더라구요. 끝까지 쓸 수 있는 샤프가 나와줘야 하는데...ㅠ

니르바나 2018-09-05 22:10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책 한권을 위한 메신저백도 좋아요.
저는 <노트르담의 꼽추>로 하나 샀어요. <셜록>은 품절이었구요.
그런데 지금보니 메신저백 모두 예약 상태로 바뀌었네요. ㅎㅎ

stella.K 2018-09-06 14:16   좋아요 0 | URL
아, 니르바나님, 메신저백 사셨군요.
저도 가방이 탐나긴 합니다만
제가 책을 잘 안 들고다니는지라...
이미 들고다니는 가방도 있고
욕심내면 안 될 것 같더라구요.
그래도 나중에 중고샵 나가면 한 번 보긴해야겠어요.^^

카알벨루치 2018-09-05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회퍼~좋아요! 난 만편필 굿즈 땜시 질렀는데 넘 촉감 좋아요! 이거 인증샷 올려야되나! ㅋㅋ

stella.K 2018-09-05 16:3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본회퍼 좋다는 말을 들어서
각잡고 성경 읽듯이 읽어줘야 할 것도 같고.
평전 좋아하는데 모처럼 읽게되서 좋아요.
언제 읽을지 그게 문제지만...ㅎ

만년필 저도 쓰고 싶긴하지만 잉크 넣는 게 귀찮아
차마 그것까지 욕심내면 안 될 것 같아요.ㅠ

카알벨루치 2018-09-05 17:07   좋아요 0 | URL
리필잉크 두개랑 잉크넣는거 하나 이렇게 왔던데 만년필 좋아해서 대만족입니다 ㅎ

stella.K 2018-09-05 18:06   좋아요 0 | URL
요즘 만년필은 옛날 만년필하고 다른가 봐요.
옛날엔 잉크병에 만년필 머리를 담그고 펌프질 했었잖아요.
전 옛날 생각만 하는가 봅니다.ㅎㅎ

syo 2018-09-05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학쪽 책은 신학자 평전 포함해 정말 단 1권도 읽은 적이 없습니다만, 스텔라님의 리뷰를 기다려보겠습니다. 두둥.

stella.K 2018-09-05 16:37   좋아요 0 | URL
ㅎㅎ 이런...이거 스요님 영혼 구원을 위해서라도
저걸 반드시 읽고 리뷰를 써야겠군요.ㅋㅋㅋㅋㅋ

2018-09-05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9-05 16:42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군요. 진짜 그런 말 듣긴했어요.
연필깎는 소리가 좋아서 칼로 찍접 깎는다는...
그러고보니 저도 어렸을 때 언니가 연필깎는 거 보고
스르르 잠이 왔던 기억이 있어요.
암튼 오랜만에 연필깍이 사니까 옛 정취도 느껴지고
기대만땅입니다. 아무리 디지털, 디지털해도
아날로그는 영원할 것 같아요. 그죠?^^

하나 2018-09-05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필깍이 저도 정말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잘 되나요? ㅎㅎ

stella.K 2018-09-05 19:55   좋아요 0 | URL
아, 네. 아까 시험삼아 깎아봤는데
잘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연필깎이를 샀으니 연필도 사야겠더군요.
알라딘 굿즈에서 여섯 개들이 한 타스가
2,500원이던데 그것도 사게 생겼어요.
뭐하면 뭐 한다더니 그걸 생각 못했어요.ㅠㅋ

하나 2018-09-05 1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전에 나온거라 조금 다를지 몰라도 저는 알라딘 연필 써본적 있는데 필기감 좋아요~♡

세상틈에 2018-09-05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저도 갑자기 연필깎이가 사고 싶었던 때가 생각나네요.^^ 이제 연필 사셔야죠? ㅋㅋ

stella.K 2018-09-06 14:17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괜히 샀나 봅니다.ㅠㅋ

cyrus 2018-09-06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집에 20년 지난 연필깎이를 가지고 있어요. 유치원생 시절부터 썼어요. 금박을 입은 자동차 모형의 연필깎이인데 이것도 세월의 힘을 이길 수 없는지 조금씩 금박이 벗겨졌어요. 그래도 아직은 쓸 만해요. ^^

stella.K 2018-09-06 14:20   좋아요 0 | URL
와, 20년...?!
저걸 사 놓고 보니까 나도 초등학교 때
썼던 연필깎이가 생각나더군.
붙박이용이었는데.
그거 될 수 있으면 잘 보관해 둬.
누가 아니? 어느 방송국이나 영화사에서
소품으로 빌려 달라고 할지.ㅋㅋ

후애(厚愛) 2018-09-06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책 구매하다가 굿즈 연필깎이를 봤어요.^^
갖고싶어서 구매할까 했더니 마일리지 보고 헉~!! 했습니다.
결국에는 포기했어요.ㅋㅋ

stella.K 2018-09-06 17:11   좋아요 0 | URL
가격이 좀 그렇죠?
그래도 오래 쓰면 좋겠어요.
본전 뽑지 않을까요?^^

푸른기침 2018-09-17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필깍이라면 하이샤파(?)라는 기차 모양을 썼던 기억이 가물가물 나네요.^^
회퍼 책을 읽으시는군요.
살랑살랑 가을입니다.

stella.K 2018-09-18 13:45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가끔 알라딘에 오실 때마다
잊지 않으시고 서재에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지내시죠?

맞아요. 그러고 보니 하이샤파란 연필깍이가 있었어요.ㅎ
회퍼 책은 언제 다 읽을런지 모르겠습니다.
앞에 조금 읽었는데 이분 참 우아하고 멋진 분 같더군요.

그렇게 더워도 가을은 어김없이 오네요.
또 금방 가겠죠?
남은 가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 한국 여성의 인권 투쟁사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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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성학 강의를 처음 들은 건 90년대가 막 시작 되고나서였다.

이 여성학이란 학문이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한 때가 언제부터였을까? 멋대로 말해보자면 70년대 말 80년 대 초쯤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따지자면 난 10년 후에 강의를 처음 들었다는 말이다. 그때 무슨 강의를 들었는지 기억나는 건 없고, 딱 하나 기억나는 건 여성학은 양성이 평등해지면 없어질 학문이기 때문에 영어로 표기하면 이론을 뜻하는 logy란 단어를 붙이지 않는다고 했다. 즉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우리나라 언어 표기상 그렇게 부르는 것이라고 했다.

 

그때 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듣는 여성학 섭섭하게 여성학은 학문이 아니라니. 그렇지 않아도 여성이 뭐하나 제대로 대접 받는 것도 없으면서 이런 것조차도 차별을 받는구나 싶기도 하고, 먼 미래의 일이긴 하겠지만 양성 평등이 이루어지면이란 전제가 있으니 희망을 가져 봄직도 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도 얼핏 했던 것도 같다. 그로부터 30년 정도가 흘렀다. 격세지감이다. 그땐 교양 정도로만 생각했던 페미니즘이 30년이 흐른 지금 이렇게 뜨거울 거라곤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이 책을 들었을 때 정말 근질근질했다. 읽고 싶어서. 제목이 확 끌리지 않는가? 더구나 저자가 그 유명한 강준만이다. 사실 난 그렇게 저자가 유명해도 그의 책을 읽어 본 기억이 없다. 이 책으로 그의 필력을 접하게 되었으니 차라리 근질근질이 아니라 두근두근해야 맞지 않을까?

 

얼핏 제목만 읽으면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남성들의 이야기인가 싶어 내심 반가울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건 가부장제가 허락한 페미니즘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과격한 방식의 페미니즘은 오빠들이 허락해 줄 수 없다.’는 식으로 독재가 허락한 민주주의’, ‘회장님이 허락한 노동운동’, ‘백인이 허락한 흑인운동뭐 이런 것과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정한 의미에서의 페미니즘은 아니란 소리다.

 

나 역시도 주위에 가끔 페미니즘에 관심을 보이는 남자들을 본다. 남자가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다. 여성으로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과 갑자기 본의 아니게 언쟁이라도 해 보라. (물론 다 그런 건 아닐 테지만)이 인간은 별 수 없는 마초라는 걸 알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러면 여자는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남자라고 해서 다 여자들에게 우호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필터링에 들어간다. 그러니까 남자들 중엔 진정으로 여성의 문제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을 교묘히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써 먹는 사람도 있더라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분노하기도 하지만 또 어찌 보면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차피 인간 세계는 그런 거니까. 아무리 순수한 마음에서 페미니즘이나 여성 문제를 이해한다고 해도 어차피 남자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뼛속까지 여자로 거듭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기특한 일 아닌가.

 

이 책은 제목은 그렇긴 하지만(나 개인적으론 이 제목이 왠지 마음에 든다) 지난 1990년대로부터 최근까지 여성 문제의 쟁점을 연대순으로 짚어 본 책이다. 매번 저자에게 놀라긴 하지만, 저자는 또 언제 우리나라의 여성문제를 이렇게 시대별로 꿰었을까? 저자의 근면함에 다시 한 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문득, 페미니스트는 타고나는 것일까?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한국인인 것처럼, 페미니즘의 시대에 여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다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물론 그 아이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온갖 문제가 결국 페미니스트가 되도록 만들겠지만, 결국 여성의 권리를 주장해야 비로소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남자지만 나 보다 더 많이 페미니즘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내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결국 페미니즘은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공부하고 분발해야 되는 것이다.

 

궁금하다. 이렇게 페미니즘이 뜨거운 건 우리나라만의 현상인건지, 아니면 미국이나 유럽 같은 나라에선 이미 지나간 것을 우리나라는 이제야 맞이한 건지. 이렇게 페미니즘 열풍이 불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민주화 운동 때 함께 일어났어야 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 본다. 그랬다면 우리나라는 지금쯤 완전한 선진국 대열에 올라있지 않을까? 다 아는 사실이지만 선진국이란 나라치고 여성이 사회에서 소외되는 일은 없다.

 

읽다보면 이토록 치열하고 맹렬했었나 싶기도 하다. 그것은 해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더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왜 이제와 이토록 치열하고 맹렬해야만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면 유시민의 말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장관 재임시절 해일이 몰려오고 있는데 조개나 줍고 있느냐며 여성의 문제를 별 것 아닌 양 취급했었다. 물론 유시민뿐이었겠는가? 보수든 진보든 거의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최근 김어준을 비롯한 3인방이나 탁현민 같은 사람이 보여준 언행들을 보면 여자에 대해 이토록이나 무지할 수가 있을까?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유시민의 말이 이해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앞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사람이 정치하도록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메갈리아나 워마드와 일베 같은 극우 단체들의 미러링을 내세운 격렬한 싸움 그리고 최근의 미투 운동과 이를 저지하거나 역미투 운동들을 보면 이제 남자와 여자는 뭔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게 과연 페미니즘 운동인가 싶기도 하고.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존중하며 공존하지 못한다면 이 상황이 언제까지 갈지 누구도 장담 못하겠다 싶다.

 

특히 <82년생 김지영> 나오자 그에 대한 대안(?)으로 <82년생 김지영과 72년생 유시민>이 나왔다는 걸 알고 비록 읽지는 못했지만 여자와 남자는 이런 식으로 밖에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걸까?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해일이 올지라도 조개를 주워야 할 때 줍지 못했던 과도기적 현상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게 얼마나 갈는지 모르겠다. 좋은 세상이 오면 서로를 이해할 날도 오지 않을까? 그날이 올 때까지 막연히 견디는 수밖에 없겠다 싶다. 남북관계도 봐라. (물론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이런 날이 올 거라고 누가 감히 생각했나. 남녀관계는 남북관계보다 가깝다. 갈 때까지 가 보고 그게 아니다 싶으면 다시 돌아와 길을 찾으면 된다고 했다. 물론 남자와 여자가 한번 틀어지면 고비사막만큼이나 먼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창세전부터 이 지구에 있게 하기로한 하나님의 작품이다. 이 지구가 존재하는 한 남자와 여자는 공존해야만 한다. 그것도 아주 잘.

 

그렇지만 지금으로선 페미니즘의 전망이 어디까지인지 잘 모르겠다. 이 책은 여성 현대사를 정리한 것이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구체적인 전망까지는 나와 있지 않다. 적어도 지금의 전투적 페미니즘까지가 페미니즘의 끝은 아닐 것이다. 내가 그 옛날 들었던, 양성평등이 이루어지면 없어질 학문이 맞는다면 우린 전투적 페미니즘을 넘어 기필코 양성평등까지 가야한다. 그것은 남자가 아무리 거부해도 할 수 없는 페미니즘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페미니즘이 이렇게 힘들 게 가야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페미니즘을 잘 알지 못하고 하는 소린지도 모른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고 배려한다면 그런 곳에 굳이 페미니즘을 들이댈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남자와 여자가 치열하게 싸우는 것만 같아도 또 어디에선가는 남자와 여자가 그럭저럭 잘 지내는 곳도 있지 않을까? 단지 아쉽다면 그런 연대가 제도나 정치로까지 확장되면 좋은 일이겠지. 중요한 건 그런 평화롭고 평등한 인류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 다리를 놓으려고 페미니즘이 가는 거라면 할 말은 없다. 아니 잘 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학문이 아니라지만 페미니즘은(사회운동이지 않을까?) 지금까지 여러 가지 이론을 빌어 여자가 얼마나 많이 소외되고 고통 받아왔는지를 증명하려고 했다. 남성이, 이 사회가 알아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해 온 것이다. 과연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데 얼마만한 학문적 이론이 필요한 것일까? 학문이 사랑을 대신할 수 없는데 우린 사랑을 종종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하거나 잊고 그 자리에 온갖 이론과 법과 제도로 덕질을 하며 살아 온 것은 아닐까?

 

물론 페미니즘을 아는 남자가 그것은 전혀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 보다 훨씬 희망적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 사는데 무슨 이론이나 법이나 제도가 꼭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지구 반대쪽 어느 오지의 이름 모를 부족은 페미니즘의 페 자도 모르고 살아도 서로를 위하며 잘 사는 부족도 많다. 그런 것처럼 남자들 중엔 페미니즘의 알고 모르고를 떠나 천성적으로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여자들은 이런 남자에 호의적이다.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바로 이런 공통분모를 넓혀 나가는 것도 페미니즘이 감당해야할 부분이라면 부분이지 않을까?

 

지금은 페미니즘이 너무 힘들게 간다 싶기도 한다. 그래서 안쓰럽기도 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힘들어도 가야할 길이라면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때가 되면 좀 유연해지고, 확장적이며 인간 회복의 희망을 보여주길 바란다.

페미니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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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8-31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0년대 시작될 때면 제가 초등학생도 되기 전인데 그때 스텔라님은 벌써 페미니즘 강연을 듣고 계셨군요. 선구자시다.....

stella.K 2018-09-01 13:58   좋아요 0 | URL
ㅎㅎ 선구자는 나혜석 같은 양반이 선구자죠.
초등학교 땐 저도 페미니즘 똑같이 몰랐을 겁니다.ㅋ
솔직히 그 강의를 들었을 땐 조금 듣다 말려고 그랬어요.
그냥 교양 정도로 초큼 아는 거지 요즘처럼 이렇게
뜨거울 줄 알았겠슴니까?
암튼 페미니즘 홧팅입니다.ㅎㅎ

cyrus 2018-09-01 1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좀 읽는다는 남자들도 여성학을 학문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여성학이 인류학, 사회학, 철학, 정신분석학 같은 다양한 학문을 동원하면서 여성문제를 분석할 수 있는데, 이걸 가지고 여성학이 문제 있다고 생각한 남자를 실제로 만나봤어요. 놀랍게도 그 남자는 저랑 같이 페미니즘 독서모임에 참여했어요.

stella.K 2018-09-01 14:0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그 사람은 여성학이 잘못 됐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여성학을 공부한 거네. 쉽지 않을 걸?!
막 빨려들어가지 않니?ㅋㅋ

나 배울 때만해도 여성학은 그냥 일종의 사회운동
그런 인식이 많았어. 지금도 그렇지 않나?
그땐 그저 이론 정도만 공부하는 거라면
지금은 실천의 시대를 맞은 거겠지.
그때 해일이 일어도 조개는 주워야 했다고 봐.

cyrus 2018-09-01 14:08   좋아요 1 | URL
아마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사람은 마르크스주의에 관심이 많았어요. 마르크스주의가 페미니즘보다 낫다는 말까지 했는걸요.. ^^;;
 

 

 책을 보니, 2015년 4월에 장동민 사건이 터졌다. 즉 개그맨 장동민이 JTBC <마녀사냥>이란 프로에 나와서 한혜진에게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싫어하는 걸 다 갖췄다. 나도 혜진 씨 싫어하는 걸 다 모두 갖췄다." 그러자 MC가 물어 봤다. "한혜진의 어떤 점이 싫으냐?" 그러자 장동민은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고, 아무튼 모든 걸 갖췄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웃자고 했던 거였겠으나 이게 1주일 후 장동민의 원색적인 여성 비하 욕설 사건 파문으로 번졌다고 한다. 즉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는 여자기 싫다"는 장동민의 발언이 새로운 의미를 갖게된 것이다.

 

이것은 장동민이 그의 동료 유세윤, 유상무와 함께 하는 '옹달샘'이란 팟캐스트 방송에서 논란이 점화가 된 것이기도 한데, 2015년 3월 15일 49회 방송을 보면 코디네이터와의 이야기 도중 "진짜 죽여버리고 싶다"라거나 "창자를 꺼내 구운 다음에 그 엄마에게 택배로 보내버리고 싶다"라며 욕설을 섞어 말했고, 32회째 방송에선 '시X, '개 같은 X', '이 X', '개보X' 등 "여자들은 멍청해서 머리가 남자한테 안 된다." "창녀야", "참을 수 없는 건 처녀가 아닌 여자" 등 욕설을 일삼았다고 한다.

 

물론 이것에 대해 비난이 빗발치고 나중에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를 하긴 했지만 논란을 사그라들지 않았고, 그 사이 진중권이 여성 혐오 발언에 대해 뭐라고 중재에 나서는 모양이었지만 이것 역시 불발이 되고 말았다. 사안을 제대로 짚지 못한 것이다. 장동민의 그런 태도는 분명 페미니스트를 화나게 만들었다. 문제는 그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원색적인 욕설을 불사해 가면서 실천하는 그의 신념이었던 것. 

 

그러자 페미니스트들은 오히려 그 말에 의미를 부여했다. 사실 이 신념이야말로 남성 우월주의자들이 여성을 옥죄는 가장 근본적인 것이라고 판단하고, 장동건의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고'는  'GO WILD, SPEAK LOUD, THIK HARD' 번역되었으며 2015년 가장 뜨거운 페미니즘 슬로건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저자의 말에 의하면 이 슬로건을 온라인 도서 판매 업체 알라딘이 발 빠르게 이 문구로 키링을 제작해 사은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말인가 싶어 알라딘을 뒤져봤지만 찾을 수가 없다. 혹시 누군가 가지고 있다면 인증샷 좀 올려주길 바란다.

 

또한 이것은 '와일드블랭크 프로젝트'라는 단체에서 이 문구를 새긴 가방을 제작해 텀블벅에서 2,000만 원이 넘는 후원을 받기도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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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8 16: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8-28 19:47   좋아요 3 | URL
ㅎㅎ 맞습니다!
저도 장동민이 평소 언행이 안 좋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장동민이 장가는 안 갈 건가?
뭐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요즘 tvn에도 나오고 얼마 전엔 K 본부에도 나오던데
여자 연예인 스캔들 일으키면 TV에 잘 나오지도 못하던데
남자들은 슬금슬금 잘도 나와요.

그나저나 알라딘에 저 문구의 키링이 나왔었다는데
궁금해요. 누구 아는 사람 좀 없을까요?
 

                                     

                  

                  

스토리는 별로이긴 하다.

별로이기 보단 내가 선호하지도 않고 유쾌하게 볼 내용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란 꼭 내용이 좋아야 보게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일단 감독이 영화를 잘 만든다.

이 영화도 영화 자체로는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라기 보단 가학적인 게 더 맞는 말 같은데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진 못할 것이다.

물론 감독이 작정하고 달려든 것 같으니까 어떤 비판을 들어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스토리 보단 캐릭터가 돋보이는 영화다.

끝까지 밀고 나가는 뭔가가 있어서 솔직히 얼마간의 쾌감 같은 게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고 김주혁이 맡은 마약에 찌든 악마적 캐릭터는 정말 그가

이 인물에 모든 것을 다 쏟았구나 싶다.

선한 캐릭터든 악한 캐릭터든 연기의 열정을 다 쏟는 배우를 좋아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영화 자체가 그래서 그런지 이 영화에서 선한 캐릭터는 눈을 씻고

찾아 볼래야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나마 조진웅과 류준열이 그런 인물에서 조금 빗겨나 있긴 하지만

대신 모호하거나 고독하다.

맨 마지막 장면에서 한 발의 총성이 났는데 그게

조진웅과 류준열 둘중 누구를 향해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자살인지 타살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으로 봐 후편을 예고한 것인지 그것 또한 애매하다.

 

이 영화는 확실히 남성주의 영화이긴 한데

초반에 김성령이 짧게 나오는데 정말 강렬하다.

즉 설렁탕을 먹다 저혈당 쇼크가 와서

몇 번 기침을 하더니 뚝배기에 얼굴을 그대로 밖고 죽는 장면인데 

이게 너무 인상적이다 못해 거의 충격적이다.

요즘 그녀가 한창 물오른 연기를 하는 건 알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그런데 이 영화 감히 보라고 추천까지는 못하겠다.

옛날에 <천하장사 마돈나>처럼 아기자기한 뭔가의 재미가 있으면

얼마든지 보라고 하겠는데.

가끔 좋은 실력을 갖춘 감독이 삑사리를 내기도 하는데

이 감독도 그러는 건 아닌지 약간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이게 또 무려 15세 관람가다.

이젠 야스러운 건만 안 나오면 뭐든지 15세 관람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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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8-27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싶네요~독전!

stella.K 2018-08-27 18:06   좋아요 1 | URL
ㅎㅎ 카알님은 청개구리여요.
차라리 재밌고 교훈적인 좋은 영화라고 그러면
안 보시려나요?ㅋ
배우들이 어떻게 나오나 한번 보셔요.^^

2018-08-27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8-27 18:10   좋아요 1 | URL
맞아요. 배우의 캐릭터 연구는 끝이없죠.
악연이든 선한 역이든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근성가 좋아요.
잘 생기고 예쁜 건 연기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북프리쿠키 2018-08-27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텔라님 말씀에 동감요.
캐릭터만 반짝거리고, 스토리는 여전히
실망스러웠어요.~
돈벌기 위해 안전하게 만든 영화?
식상하고 권태로웠어요.

카알벨루치 2018-08-27 18:20   좋아요 1 | URL
스탤라님과 북프리쿠키님 두분이서 비추하시네 ㅋ영화랑 담쌓은지 오래라 ...<화차>아직도 덜 봤네요

stella.K 2018-08-27 18:48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우리나라는 배우나 환경은 좋은데
너무 소재가 한정되어 있어요.
안전주의로만 가는 것 같아 안타깝죠.
미국이나 일본만 해도 얼마나 다양한데...
<천하장사 만돈나> 같은 건 얼마나 신선해요?
감독이 돈의 맛을 안 것도 같고. 똑똑한 사람 같은데...

카알님 영화 잘 안 보시는구나.
그럼 그냥 봐도 괜찮지 않을까요?^^

세상틈에 2018-08-28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볼까 말까 아직도 고민 중인;;; 김성령씨 비중 큰 것처럼 홍보하던데 금방 퇴장하시나봐요.ㄷㄷㄷ

stella.K 2018-08-28 14:53   좋아요 0 | URL
글쎄요, 남자들은 좋아하지 않을까요?
크게 기대 안하고 보면 볼만할 것도 같은데...
저는 개인적으로 감독의 영화를 좀 좋아합니다.
이것도 딱히 추천은 못하겠는데
그냥 봐줄만은 했습니다.
김주혁 때문일수도 있고, 제가 조진웅을 좋아하기도하구요.
여배우가 아주 안 나오는 건 아닌데 비중이 별로 없죠.
감독이 이렇게 만드는 것도 처음은 아닌가 싶기도 해요.

페크pek0501 2018-08-28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 김주혁 님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볼 만한 영화인 듯하네요.
재능 있는 분이 단명하는 경우가 있어서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스텔라 님, 영화 많이 보시는 것 같아 좋아 보입니다...

stella.K 2018-08-28 15:36   좋아요 0 | URL
아유, 많이 못 봅니다.
워낙에 영화가 많으니까 뭘 골라 봐야하는지
모르겠더라구요.
일주일에 많으면 두 편?
그것도 한 편은 끝까지 보고 마음에 안 들면 보다 말죠.
점점 게을러서 리뷰 남기는 것도 잘 안하고 있어요.
이 영화는 좀 남겨야겠다 싶어 간단하게 남겼습니다.
아, 이러니까 되게 많이 보는 것 같네요.ㅎㅎ
 

이 영화를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만들었다고 했을 때 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원래 크리스찬이었나? 아니면 최근 무슨 심경에 변화가 있었나? 난 후자에 좀 더 심중을 두고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작품을 나오는 것마다 챙겨봤던 건 아니지만 그의 작품을 보면 이 사람이 별로 신앙과 관련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종교적인 작품을 만들었다면 필시 뭔가의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건 아닐까. 

 

속단할 수는 없고, 난 그가 아직도 변함없이 넌크리스찬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이 더 설득력 있어질테니까. 나중에라도 그가 크리스찬이라는 게 밝혀진다면 그때가서 사과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난 오히려 넌크리스찬 감독으로서 이런 작품을 만들었다는 게 더 믿음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나도 크리스찬이긴 하지만 만일 크리스찬 감독이 만들었다면 그의 신앙적 올바름 때문에 조금이라도 신앙적인 관점을 견지하려고 했을 수도 있다. 또한 넌크리스찬이 이런 작품을 만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더 객관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가 종교를 모독하거나 비아냥 거릴 목적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 작품은 <침묵>이란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의 일련의 작품들은 그렇게 성스럽거나 거룩하지 않다. 인간의 속되고 비열한 면을 까발기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소설의 어떤 점에 꽂혀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모르긴 해도  감독은 늘 인간을 견지하는 똑같은 방식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을 것이다. 즉 인간의 속 되고 비열한 면을 비신앙이 아닌 신앙에서 찾으려고 했던 건 아니었을까? 

 

보는 사람의 차이겠지만 한간에 떠도는 말에 의하면, 이 작품은 굉장히 종교적일 것 같지만 실상은 신앙인으로 하여금 믿음을 흐리게 만들고, 나아가 배교를 유도하는 적그리스도적 작품이라고 몰아가기도 했다는데 그건 좀 오버하는 것 같고, 그보단 신앙, 비신앙을 떠나 배교와 순교를 앞에 놓고 고뇌하는 인간을 성실하게 그린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감독은 신학자나 목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신을 대변하기 보단 인간을 대변하는 것이 더 맞는 자세인 것 같다. 더구나 그는 문제제기만 할뿐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떤 식의 답을 달든 그건 관객의 몫일 것이다. 그러므로 감독을 두고 신앙인의 믿음을 교란시키고 배교를 유도한다고 하는 건 확실히 넌센스다. 그런 점에서 감독은 처음부터 순교에 성공한(?)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배교는 순교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즉 죽음이 두려워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적어도 영화의 전제는 그렇다. 생명을 가진 인간으로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순교할 믿음이 없어서라고만 볼 수 없다) 그는 영화속 등장인물 키치지로처럼 배교 즉 순교에도 성공하지 못했을뿐만 아니라 신앙인의 무리에서도 배제된 사람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듯 하다. 즉 감독은 순교를 거부하면 배교자가 되는 것이고, 신앙에 실패한 사람이 되는 것이냐고 묻는 것이다.               

 

난 이 영화를 보면서 김훈의 <흑산>이 생각이 났다. 이 작품 역시 배교자에 관한 이야기다. 언제나 그렇듯 문학은 인간의 성공엔 관심이 없다. 늘 실패와 상처, 인간의 어두운 이면에 관심이 많고 이를 정당화 하는데 관심이 많다. 그런 점에서 배교는 신앙의 관점에서는 실패일지는 모르지만, 신 앞에서 실존을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인간 본위의 승리인지도 모르겠다. 또 그런 점에서 훨씬 설득력이 있고.

 

구주를 영접했다고 해서 모든 신앙인이 순교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신앙인이지만 누군가가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죽이려 한다면 나는 과연 순교를 할 수 있을까? 난 이 말에 자신있게 답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신을 배반한 것이 될까? 그렇게 흑백논리 보단 신 앞에 죽음으로 나의 믿음을 증명하지 못한 것을 평생 자책하며 고뇌하는 실존주의자로 살아가게 될 것 같다.      

 

또 그런 게 있을 수 있다. 나는 죽어도 좋지만 나 하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면 과연 그런 사람을 두고 순교할 수 있을까? 뒤집어서 나 하나가 배교하면 많은 사람을 살릴 수가 있다. 그리고 이 유혹은 잔인하게도 영화속 로드리게스 신부에게 향해 있다.

 

영화 <사일런스>나 김훈의 <흑산>의 대척점에 있는 작품이라면 손양원 목사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나 전기 소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책들은 확실히 또 다른 관점에서 훌륭한 책이다. 또 다른 관점이란 당연 순교적 관점에서다. 알다시피, 손양원 목사는 신앙으로 민족 자존을 높인 분이기도 하고, 자신의 두 아들뿐만 아니라 자신도 순교한 위대한 신앙인이다. 그뿐인가?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자를 양자로 들여 돌봐주기도 했다. 아무리 기독교가 사랑과 용서의 종교라고는 하나 쉽지 않은 일이고 그래서 그를 존경을 넘어 영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솔직히 이제사 고백하는 거지만 난 수년 전, 손양원 목사의 전기를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아 그것을 대본으로 써서 공연한 적이 있다. 물론 나로선 큰 기쁨이었고, 영광이었지만 마음 한켠에 부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이렇게 순전한 믿음이 있을 수 있을까? 나라면 순교할 수 있을까? 감히 할 수도 없으면서 이런 걸 대본으로 써서 공연하는 건 온당한 것일까? 혹시라도 이 공연을 본 사람이 감명을 받고 신앙의 불모지에 가서 순교한다고 그러면 어쩌나 벼라별 생각을 다 했었다. (물론 내가 이것을 공연할 생각을 했던 건 역사적인 관점에서 이 분의 생애가 생각 보다 안 알려진 것 같아 널리 알려보자는 생각에서 였다.) 

 

그런데 이야기가 너무 드라이 한 것도 사실이다. 어찌보면 손양원 목사는 너무 옳기만 해서 인간적인 느낌이 덜 느껴지기도 한다. 도무지 고민이나 고통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아니, 없다기 보단 다른 여타의 사안에 가려 상대적으로 덜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린 이 옳기만한 분을 어떻게하면 이해해 볼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기독교는 유교에 영향 받음이 크다. 실제로 손양원 목사는 기독교를 믿기 전 유교 가정에서 나고 자랐다. 그런 가풍에서 그의 믿음은 유교에서 기독교로 옮겨졌을 것이다. 유교 중에서도 대덕목이라 할 수 있는 충효 사상. 기독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섬긴다. 그런 의미에서 손양원 목사는 장자의 믿음을 가졌던 것 같다. 장자는 부모를 섬기고 돌봐야 하는 의무를 가졌다. 그런 것처럼 무엇이 아버지 하나님을 잘 섬기고 받드는 것이 될까 골똘하지 않았을까? 순교는 어느 날 갑자기 하게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또한 당시는 인간의 감성 보다는 이념과 이성이 중시했던 시대이기도 했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일제 강점기 말이었고 그것이 끝나자 공산주의가 널리 퍼지기도 했다. 그에 따라 기독교와 공산주의가 첨예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손양원 목사의 사모 정양순은 여자임에도 불고하고, 일본 순사에 의해 끌려가는 남편에게 하나님을 배반하면 내 남편이 아니며 구원을 받지 못할 거라고 했다. 아무리 부창부수라지만 그만큼 배포와 강단이 손양원 목사 못지 않다. 올망졸망 자라고 있는 자녀들이나 교회 교인을 생각하면 쉽게 외칠 수 있는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 그런 것도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백마디 말 보다 행함으로 보여주는 것을 더 중시했던 깨어있는 양반의 의식이었다면 오히려 손 목사 부부가 보여주는 결의에 찬 믿음의 행위가 교인들에게 믿음의 본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신사참배는 우상숭배라고 외치던 사람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누가 하나님을 믿고 따를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 당시의 기독교가 신사참배가 우상숭배인 줄 알고 있었으면서도 손양원 목사를 지지하고 돕기 보단 오히려 경멸하고 싫어했다. 아마도 손양원 목사는 그에 대한 반발과 책임의식이 상당했을 것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양원 목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전혀 눈물도 흘릴 줄 몰랐느냐면 그렇지 않다. 그도 아플 줄 알고,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인간이다. 그는 실재로 두 아들을 잃고 아비로서 눈물을 흘렸고, 그 아픈 마음을 추스르느라 잠시 사람을 피해있기도 했다. 그가 신사참배는 우상숭배라고 외쳤던 건 순교하겠다는 강한 믿음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고, 필요하면 교인들도 그렇게 하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아들이 실천하게 될 거라고 그는 상상했을까? 그는 어쩌면 그 때문에 교인들 앞에선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믿음이나 사랑은 이해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불어 순교 역시 그렇다. 기독교는 순교는 신비한 것이라고 했다. 교회는 이 순교의 피 위해 세워진 것이라고도 했다. 한마디로 인간 이해의 영역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손양원 목사의 전기 보단 영화 <사일런스>가 훨씬 인간적이고 이해하기가 쉬워 보인다. 

 

손양원 목사의 전기가 순교하는 인간의 전형을 보여준다면, 영화 <사일런스>는 배교하는 인간의 전형을 보여준다. 또한 이것은 영화를 보면서 생각한 것인데 애초 원작자의 사고나 서술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손양원 목사의 전기를 쓴 사람은 그의 따님인 손동희 권사다. 그분은 작가가 아니다. 그분 역시 아버지의 신앙을 이어받은 사람으로서 신앙적 올바름을 위해 전기를 쓴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고 해서 인간적 고뇌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순교에 성공(순교에 실패한 사람들이 보기에)했다고 해서 그들을 무조건 영웅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순교자는 순교자 나름으로 고통과 고뇌가 있는 것이다. 손양원 목사는 그것을 너무 드러내지 않는 것이고, 대신 그의 딸 손동희의 증언에서 드러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비해 <사일런스>의 원작자인 엔도 슈사쿠는 작가다. 그는 그 작품을 통해 박해 받는 17세기 일본의 가톨릭 신자들을 완벽히 구현해 내기를 바랐을 것이다. 거기엔 당연 신앙의 정절, 신앙적 올바름 보단 고통 당하는 인간에 초점을 맞춤은 당연하다. 요는 순교나 배교나 인간에겐 둘 다 쉬운 것이 아니며, 따라서 어떤 것이 어떤 것 보다 나쁘고 좋고를 따지는 건 의미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 속 로드리게스 신부와 키치지로는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들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치지로는 늘 로드리게스의 발목을 붙잡았으니까. 로드리게스는 순교하기를 바랐지만 기치지로 때문에 할 수 없었고, 마치 신앙인들속의 첩자인 양 그가 있는 곳을 일본 관원들에게 가르쳐 주기도 했다. 그렇게 보면 순교하려 했던 로드리게스가 더 우위를 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영화가 전반엔 로드리게스 신부의 고뇌와 갈등을 그렸다면 후반은 키치지로에 좀 더 치중해 보인다. 말했던대로 배교자는 실패자 또는 정말 배신자일까? 그것은 키치지로가 영화에서 쓰여지는 방식이다.

 

     

 

순교자가 주가 되는 이야기엔 배교자는 나오지 않는다. 나오더라도 거의 존재감이 없거나 순교자를 돋보이게 만드는데 사용되어질 뿐이다. 또한 그 순교자를 통해 신이 찬양되어지거나 신앙적 올바름에 치중되어 있다. (난 이를 비판할 생각은 전혀 없다. 순교자는 지어낸 허구의 존재가 아니라 실재로 있었던 인물이니까. 그러니 내가 무슨 수로 그것을 비판한단 말인가?) 그러나 이 영화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순교자가 신에 가까운 사람이라면 배교자는 인간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 로드리게스는 일본 관원의 끈질긴 회유와 협박 끝에 결국 배교를 하고만다. 그것은 특별히 자신의 스승 페라이라 신부(리암 니슨 분)가 배교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일본에 귀화하여 반그리스도교적 사상을 전파한다. 하지만 그건 결코 그가 원하는 삶은 아니었다. 그건 굴욕이고 신앙의 정절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패배를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좀 이해가 가지 않는 건, 로드리게스나 페라이라 신부가 일본으로부터 회유와 협박을 받았다면 왜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배교 후에 일본으로 귀화하였느냐는 것이다. 배교란 포로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우리나라만 해도 대원군의 가톨릭 박해 사건인 병인박해 때만 하더라도 외국인 선교사들을 본국으로 철수시켰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순교하거나.

 

아무튼 그랬을 때 기치지로가 로드리게스를 또 한번 자극한다.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영화의 흐름상) 지금까지는 로드리게스의 진상 역할을 했다면 이번엔 그의 정체성을 일깨운다. 당신은 그렇게 배교자로 있지만 당신 마음 속엔 한번도 그리스도를 배교한 적이 없다는 걸 안다며 그러니 나의 죄를 고백할 테니 사해달라고. 물론 처음엔 그도 그럴 권한이 이제 자신에게 없다고 강하게 반대하지만 기치지로에 의해 그의 정체가 자극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우린 이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런다고 배교했던 것이 다시 바뀌지 않는다고 냉소할 것인가? 아니면 안과 밖이 같아야지 그런 식이라면 가톨릭을 농락하는 것 아니냐며 비판할 것인가?

 

세월이 흘러 로드리게스가 죽었을 때 그는 여전히 배교자로 일본식 염을 했다. 그때 그는 조그만 십자가를 손에 품는다(물론 그건 기치지로에 의해 비밀리에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다). 그 장면은 또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워낙에 온전한 아니 평온한 신앙을 갖기가 어려운 시대였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사실과 진실은 같지 않다는 것이다. 정말 로드리게스는 겉으로 보기엔 일본에 귀화한 외국인으로 죽지만 그는 동시에 평생 그리스도를 차마 마음속에서 버리지 못한 비운의 신앙인으로 죽었다.  

 

여기서, 어찌보면 일본은 배교를 다소 쉽게 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들은 당시의 신도들이 어떤 신앙을 가졌는가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은 그저 가톨릭 신앙을 상징하는 동판을 밟고 지나갈 것인가 아닌가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그것은 또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에 동방요배를 강요했을 때의 양상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기독교인들에게 신앙의 유무와 상관없이 일본이 있는 동쪽을 향해 목례만 하라고 강요했다.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선 얼마나 뿌리치지 못할 유혹인가? 그리고 훗날 그것이 신앙의 정체성에 얼마나 많은 혼란을 가져왔던가. 또 동시에 그 정도 가지고는 일본은 신앙의 씨를 말려버리지 못했다. 교회는 순교의 피 위에 세워졌다. 그건 확실히 신앙의 승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의 반대쪽 지점의 배교란 신앙의 실패를 의미하는가?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잠시 심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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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8-24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물기 이런 거 읽는 저하고는 깊이부터 다르시군요......

저는 보통 이 정도 분량의 글을 쓰려면 짧게 잡아도 3일은 걸리는데, 스텔라님은 어떠셨나요?

stella.K 2018-08-24 18:14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그렇지 않아도 이거 쓰느라고 죽을 X 쌌습니다.
다음 달에 알라딘이 모른 척 하면 안 되는디...ㅋㅋㅋㅋㅋ

그런데 이 영화 스요님 땜에 본 거 아시죠?
신앙의 유무를 떠나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심각한 영화 안 좋아하는 사람은 신앙의 유무를 떠나
안 보겠지만. 감독이 참 노련하게 영화를 잘 만들어요.^^

2018-08-24 1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8-24 18:22   좋아요 1 | URL
ㅎㅎ 그때 보셨구나. 10년 아니구요, 5년 됐습니다.

순교와 배교에 대해서는 정말 간단명료하게 잘 쓰셨네요.
오히려 제가 중언부언했네요. 부끄러라...ㅠ

책은 사인이라고 해 드리면 좋을 텐데
일부러 사서 보시는데 뭔가 보탬이 되어드리지 못해
아쉽습니다. 모쪼록 즐거운 독서가 되시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고맙습니다.^^

2018-08-28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8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8-08-28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양원 목사와 종교에 한해서는 스텔라 님이 전문가이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입니다.
저도 전문적으로 아는 뭐가 있으면 좋겠어요. ㅋ

stella.K 2018-08-28 15:31   좋아요 0 | URL
아유, 그렇지 않습니다.
대본을 쓰려니까 좀 도드라져 보이는 거죠.
언니는 칼럼을 잘 쓰시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