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 한국 여성의 인권 투쟁사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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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성학 강의를 처음 들은 건 90년대가 막 시작 되고나서였다.

이 여성학이란 학문이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한 때가 언제부터였을까? 멋대로 말해보자면 70년대 말 80년 대 초쯤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따지자면 난 10년 후에 강의를 처음 들었다는 말이다. 그때 무슨 강의를 들었는지 기억나는 건 없고, 딱 하나 기억나는 건 여성학은 양성이 평등해지면 없어질 학문이기 때문에 영어로 표기하면 이론을 뜻하는 logy란 단어를 붙이지 않는다고 했다. 즉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우리나라 언어 표기상 그렇게 부르는 것이라고 했다.

 

그때 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듣는 여성학 섭섭하게 여성학은 학문이 아니라니. 그렇지 않아도 여성이 뭐하나 제대로 대접 받는 것도 없으면서 이런 것조차도 차별을 받는구나 싶기도 하고, 먼 미래의 일이긴 하겠지만 양성 평등이 이루어지면이란 전제가 있으니 희망을 가져 봄직도 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도 얼핏 했던 것도 같다. 그로부터 30년 정도가 흘렀다. 격세지감이다. 그땐 교양 정도로만 생각했던 페미니즘이 30년이 흐른 지금 이렇게 뜨거울 거라곤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이 책을 들었을 때 정말 근질근질했다. 읽고 싶어서. 제목이 확 끌리지 않는가? 더구나 저자가 그 유명한 강준만이다. 사실 난 그렇게 저자가 유명해도 그의 책을 읽어 본 기억이 없다. 이 책으로 그의 필력을 접하게 되었으니 차라리 근질근질이 아니라 두근두근해야 맞지 않을까?

 

얼핏 제목만 읽으면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남성들의 이야기인가 싶어 내심 반가울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건 가부장제가 허락한 페미니즘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과격한 방식의 페미니즘은 오빠들이 허락해 줄 수 없다.’는 식으로 독재가 허락한 민주주의’, ‘회장님이 허락한 노동운동’, ‘백인이 허락한 흑인운동뭐 이런 것과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정한 의미에서의 페미니즘은 아니란 소리다.

 

나 역시도 주위에 가끔 페미니즘에 관심을 보이는 남자들을 본다. 남자가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다. 여성으로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과 갑자기 본의 아니게 언쟁이라도 해 보라. (물론 다 그런 건 아닐 테지만)이 인간은 별 수 없는 마초라는 걸 알게 되는 때가 있다. 그러면 여자는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남자라고 해서 다 여자들에게 우호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필터링에 들어간다. 그러니까 남자들 중엔 진정으로 여성의 문제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을 교묘히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써 먹는 사람도 있더라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분노하기도 하지만 또 어찌 보면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차피 인간 세계는 그런 거니까. 아무리 순수한 마음에서 페미니즘이나 여성 문제를 이해한다고 해도 어차피 남자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뼛속까지 여자로 거듭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기특한 일 아닌가.

 

이 책은 제목은 그렇긴 하지만(나 개인적으론 이 제목이 왠지 마음에 든다) 지난 1990년대로부터 최근까지 여성 문제의 쟁점을 연대순으로 짚어 본 책이다. 매번 저자에게 놀라긴 하지만, 저자는 또 언제 우리나라의 여성문제를 이렇게 시대별로 꿰었을까? 저자의 근면함에 다시 한 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문득, 페미니스트는 타고나는 것일까?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한국인인 것처럼, 페미니즘의 시대에 여자로 태어났다고 해서 다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물론 그 아이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온갖 문제가 결국 페미니스트가 되도록 만들겠지만, 결국 여성의 권리를 주장해야 비로소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남자지만 나 보다 더 많이 페미니즘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내가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결국 페미니즘은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공부하고 분발해야 되는 것이다.

 

궁금하다. 이렇게 페미니즘이 뜨거운 건 우리나라만의 현상인건지, 아니면 미국이나 유럽 같은 나라에선 이미 지나간 것을 우리나라는 이제야 맞이한 건지. 이렇게 페미니즘 열풍이 불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민주화 운동 때 함께 일어났어야 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 본다. 그랬다면 우리나라는 지금쯤 완전한 선진국 대열에 올라있지 않을까? 다 아는 사실이지만 선진국이란 나라치고 여성이 사회에서 소외되는 일은 없다.

 

읽다보면 이토록 치열하고 맹렬했었나 싶기도 하다. 그것은 해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더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왜 이제와 이토록 치열하고 맹렬해야만 하는 것인가를 생각하면 유시민의 말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장관 재임시절 해일이 몰려오고 있는데 조개나 줍고 있느냐며 여성의 문제를 별 것 아닌 양 취급했었다. 물론 유시민뿐이었겠는가? 보수든 진보든 거의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최근 김어준을 비롯한 3인방이나 탁현민 같은 사람이 보여준 언행들을 보면 여자에 대해 이토록이나 무지할 수가 있을까?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유시민의 말이 이해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앞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사람이 정치하도록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메갈리아나 워마드와 일베 같은 극우 단체들의 미러링을 내세운 격렬한 싸움 그리고 최근의 미투 운동과 이를 저지하거나 역미투 운동들을 보면 이제 남자와 여자는 뭔가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게 과연 페미니즘 운동인가 싶기도 하고.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존중하며 공존하지 못한다면 이 상황이 언제까지 갈지 누구도 장담 못하겠다 싶다.

 

특히 <82년생 김지영> 나오자 그에 대한 대안(?)으로 <82년생 김지영과 72년생 유시민>이 나왔다는 걸 알고 비록 읽지는 못했지만 여자와 남자는 이런 식으로 밖에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걸까?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해일이 올지라도 조개를 주워야 할 때 줍지 못했던 과도기적 현상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게 얼마나 갈는지 모르겠다. 좋은 세상이 오면 서로를 이해할 날도 오지 않을까? 그날이 올 때까지 막연히 견디는 수밖에 없겠다 싶다. 남북관계도 봐라. (물론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이런 날이 올 거라고 누가 감히 생각했나. 남녀관계는 남북관계보다 가깝다. 갈 때까지 가 보고 그게 아니다 싶으면 다시 돌아와 길을 찾으면 된다고 했다. 물론 남자와 여자가 한번 틀어지면 고비사막만큼이나 먼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는 창세전부터 이 지구에 있게 하기로한 하나님의 작품이다. 이 지구가 존재하는 한 남자와 여자는 공존해야만 한다. 그것도 아주 잘.

 

그렇지만 지금으로선 페미니즘의 전망이 어디까지인지 잘 모르겠다. 이 책은 여성 현대사를 정리한 것이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구체적인 전망까지는 나와 있지 않다. 적어도 지금의 전투적 페미니즘까지가 페미니즘의 끝은 아닐 것이다. 내가 그 옛날 들었던, 양성평등이 이루어지면 없어질 학문이 맞는다면 우린 전투적 페미니즘을 넘어 기필코 양성평등까지 가야한다. 그것은 남자가 아무리 거부해도 할 수 없는 페미니즘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페미니즘이 이렇게 힘들 게 가야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페미니즘을 잘 알지 못하고 하는 소린지도 모른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고 배려한다면 그런 곳에 굳이 페미니즘을 들이댈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남자와 여자가 치열하게 싸우는 것만 같아도 또 어디에선가는 남자와 여자가 그럭저럭 잘 지내는 곳도 있지 않을까? 단지 아쉽다면 그런 연대가 제도나 정치로까지 확장되면 좋은 일이겠지. 중요한 건 그런 평화롭고 평등한 인류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 다리를 놓으려고 페미니즘이 가는 거라면 할 말은 없다. 아니 잘 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학문이 아니라지만 페미니즘은(사회운동이지 않을까?) 지금까지 여러 가지 이론을 빌어 여자가 얼마나 많이 소외되고 고통 받아왔는지를 증명하려고 했다. 남성이, 이 사회가 알아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해 온 것이다. 과연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데 얼마만한 학문적 이론이 필요한 것일까? 학문이 사랑을 대신할 수 없는데 우린 사랑을 종종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하거나 잊고 그 자리에 온갖 이론과 법과 제도로 덕질을 하며 살아 온 것은 아닐까?

 

물론 페미니즘을 아는 남자가 그것은 전혀 모르거나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 보다 훨씬 희망적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 사는데 무슨 이론이나 법이나 제도가 꼭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지구 반대쪽 어느 오지의 이름 모를 부족은 페미니즘의 페 자도 모르고 살아도 서로를 위하며 잘 사는 부족도 많다. 그런 것처럼 남자들 중엔 페미니즘의 알고 모르고를 떠나 천성적으로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여자들은 이런 남자에 호의적이다.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바로 이런 공통분모를 넓혀 나가는 것도 페미니즘이 감당해야할 부분이라면 부분이지 않을까?

 

지금은 페미니즘이 너무 힘들게 간다 싶기도 한다. 그래서 안쓰럽기도 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힘들어도 가야할 길이라면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때가 되면 좀 유연해지고, 확장적이며 인간 회복의 희망을 보여주길 바란다.

페미니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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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8-31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90년대 시작될 때면 제가 초등학생도 되기 전인데 그때 스텔라님은 벌써 페미니즘 강연을 듣고 계셨군요. 선구자시다.....

stella.K 2018-09-01 13:58   좋아요 0 | URL
ㅎㅎ 선구자는 나혜석 같은 양반이 선구자죠.
초등학교 땐 저도 페미니즘 똑같이 몰랐을 겁니다.ㅋ
솔직히 그 강의를 들었을 땐 조금 듣다 말려고 그랬어요.
그냥 교양 정도로 초큼 아는 거지 요즘처럼 이렇게
뜨거울 줄 알았겠슴니까?
암튼 페미니즘 홧팅입니다.ㅎㅎ

cyrus 2018-09-01 1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좀 읽는다는 남자들도 여성학을 학문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여성학이 인류학, 사회학, 철학, 정신분석학 같은 다양한 학문을 동원하면서 여성문제를 분석할 수 있는데, 이걸 가지고 여성학이 문제 있다고 생각한 남자를 실제로 만나봤어요. 놀랍게도 그 남자는 저랑 같이 페미니즘 독서모임에 참여했어요.

stella.K 2018-09-01 14:0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그 사람은 여성학이 잘못 됐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여성학을 공부한 거네. 쉽지 않을 걸?!
막 빨려들어가지 않니?ㅋㅋ

나 배울 때만해도 여성학은 그냥 일종의 사회운동
그런 인식이 많았어. 지금도 그렇지 않나?
그땐 그저 이론 정도만 공부하는 거라면
지금은 실천의 시대를 맞은 거겠지.
그때 해일이 일어도 조개는 주워야 했다고 봐.

cyrus 2018-09-01 14:08   좋아요 1 | URL
아마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사람은 마르크스주의에 관심이 많았어요. 마르크스주의가 페미니즘보다 낫다는 말까지 했는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