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시민>보며 드는 생각은, 이제 허리우드 영화엔 희망이 없겠구나 하는 것이다. 그래도 고전 영화는 휴머니즘이 있었다. 그리고 복수극을 그릴 때에도 인간의 심리와 상식에서 그것을 풀어냈다. 하지만 이제 영화는 상식을 얘기하지 않는다. 상상을 얘기할 뿐이다. 그것은 영화가 너무 볼거리에 치우친 까닭이다. 아무리 리모컨과 버튼 하나로 모든 것을 움직이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교도소 감방에 앉아서 교도소 바깥의 사람을 죽여 나간다는 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가?  

뭐 그것까지는 좋다고 치자. 같은 방을 쓰는 동료 죄수와 맛있는 식사를 나누고 그 먹은 음식이 채 목구멍에 다 넘어가기도 전에 칼로 죽여 피가 낭자하게 만들어 놓고 태연하게 푹신한 침대 매트리스에 팔을 깎지 끼고 누워, 나 목욕 좀 해야겠다고 말하는 건 제 정신이란 말인가? 그러고도 모범 시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난 그걸 보는 순간 오싹한 것이 주인공이 무슨 악귀가 씌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상은 얼마나 착하고 선하게 생겼는가? 오직 비명에 간 아내와 딸을 위해 그리고 범인 때문에 사람이 그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다.  

물론 영화는, 인간의 존엄성과 개인을 지켜줄 수 없는 법의 무기력함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하지만 그러기엔 영화는 과유불급이다. 영화의 상업성을 위해 어떻게 하면 자극적일 수 있는가에만 몰두한 것 같다. 앞으로 영화는 점점 이런 쪽으로 흐를 것이다. 앞으로 (허리우드)영화가 휴머니즘을 얼마나 담아낼 수 있을지 예측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런데도 영화를 못 만들어 안달이 나는 것은 영화의 예술성을 위하기 때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일확천금을 노리는 발정난 암코양이는 아니고?  

아무튼 이 영화는 그야말로 황당하다. 물론 별점을 매긴다면, 별 두개 반이나 세 개쯤을 줄 수도 있다. 어쨌든 계속 보게 만들었으니까. 물론 보고나서 또 속았구나! 나의 어리석음을 탓할 수 밖에 없지만 말이다. 언제나 이런 영화엔 자뻑이 들어가 있다. 그것도 엄청 많이. 그들은 대놓고 "너희들은 이렇게 못 만들지?"라는 조롱하는 것 같다. 됐네, 이 사람들아. 요즘 어느 개그우먼의 말마따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미국 유학 중인 알라디너 한 분이 나의 서재 방명록에 글을 남기시면서, 미국은 후졌다고 했다. 도대체 미국이 왜 선진국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에 비하면 울나라가 훨씬 깨끗하고 좋다고 도 했다. 8,90년대, 팍스 로마나를 재현이라도 하듯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미국은 정말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못했다. 뭐든지 영광은 한때 떳다가 지는 해와 같은 것이다. 지금 미국은 어떤가? 몸통만 비대해신 늙은 늑대의 나라 이닌가?  

아, 난 역시 미국 영화를 보지 말았어야 했다. 그 놈의 미국 영화만 보면 그 나라를 욕하지 못해 안달이 나고 만다. 이게 나의 병이다. 

그에 비하면 오늘 낮에 TV에서 본 <해운대>가 훨씬 낫다. 물론 관객도 많이 든 영화이지만 블록버스터라고 해서 소문난 잔치 먹을 것이 없다는 욕은 듣지 않아도 되는 영화다. 영화엔 따뜻한 휴머니즘이 베어있다. 한국 영화 이렇게만 만들어라. 물론 CG가 여전히 티가 많이 난다만.  

하지원이 <시크릿 가든> 보면서 좋아졌다. 그런데 이 영화에선 머리를 길게하고 나와서 좀 나이들어 뵈고 답답해 보인다. 송재호 노장의 연기 투혼도 좋고. 요즘엔 송재호나 이순재 옹 외엔 노장들을 볼 수 없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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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2-05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설 연휴는 특선영화가 꽝인거 같아요. <해운대>는 작년 추석 때 봤거든요.
<육혈포 강도단>도 추석 때 봤었는데 이번에는 중요 장면을 싹둑 잘라서
방영하더군요. 그나마 케이블 영화채널은 볼만한게 많더군요. ^^;;

stella.K 2011-02-05 15:29   좋아요 0 | URL
어디 다녀오셨나요? 오랜만인 것 같아요.ㅋ
그렇죠? 뭐 해마다 그래왔으니 기대도 별로 안했어요.
어제 <전우치>도 보다가 말았어요. 전 그 영화가 뭐가 재밌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기대는 많았는데 그러니까 더 실망스럽더라구요.
비주얼은 좋은데 스토리는 영...
저는 IPTV 보는데 정말 설 특집 많이했거든요.
그거나 보는 건데...ㅠ

cyrus 2011-02-05 23:30   좋아요 0 | URL
저는 이번 연휴 집에서 지냈어요. 요즘 구제역 통제 때문에 할머니댁에
들리지 못했거든요. 집에서 푹 쉬면서 심심하면 알라디너분들
서재 들리면서 글 읽고 그랬어요.
요 며칠동안 컴퓨터를 멀리하고 그동안 미뤄왔던 책을 읽으니
좋았어요. 여전히 제 눈 앞에 떡하니 있는 TV의 유혹은 결국
뿌리치지 못했지만요,,^^;;
 

뒤늦게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꽂혀 거의 매일 한 편씩 보고 있다. 이건 순전히 알라딘 때문인데, 알라딘 이벤트 페이지에 가보면 '김주원의 서재'란 코너가 따로 있다. 도대체 <시크릿 가든>이 뭔데 이러나 싶어 결국 보기 시작했다. 하긴, 꼭 알라딘이 아니어도 여기 저기서 이 드라마 얘기니 안 봐 줄 수가 없다. 현빈이 싫진 않지만 난 지금까지 작가의 작품이 그다지 좋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그렇지 않아도 드라마 잘 안 보는 성격에 그냥 패스하고 넘어가 주려고 했다. 

그런데 작가의 다른 작품과 달리,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뭔가가 있다. 특히 판타지를 적절히 배합해 영혼이 바뀐다는 설정. 이전에 그런 영화가 몇있었는데 영리하게도 드라마에 써 먹었다. 안개 영상도 끝내주고. 안개가 건강엔 좋은 것이 아니라는데. 멋 내는데는 이것만한 게 없는 것 같다. 아스라하잖아.  

간과할 수 없는 건,  작가가 정말 이태리 장인이 한땀 한땀 옷을 짜듯이 정성스레 쓴 대사와 심금을 웃겨 주는 배우들의 연기다. 특히 라임과 영혼이 바뀌어서 라임 흉내를 내는 현빈의 연기는 단연 압권이었고, 오스카의 고독과 코믹이 적절히 배합된 연기가 진짜 웃긴다.(그래도 역시 윤상현은 세월은 비껴갈수 없는 것 같다.)  

여전히 재밌긴 재밌지만, 그래도 역시 매일 한편씩 보는 건 9회쯤 넘어가니까 좀 질리는 것도 같다. 이래서 본방사수가 재일 좋은데 말했지만 난 작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애초부터 본방사수는 과유불급이었다.   

어제 10회를 보니 라임이 주원의 서재에서 봤다던 책 몇 권을 자기 책꽂이에 끼워넣은다. 택배 상자에서 꺼내는데 알라딘 상자에서 꺼내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섭섭했다. 어디 상잘까? 

이걸 또 출판사와 서점이 간과할리 없지. 어제 서핑을 해 보니 '김주원과 라임의 도서 세트'가 패키지로 나왔다. 총 6권으로 되어있는데 다 민음사거다. 작가가 참 똑똑하다는 생각을 했고, 역시 요즘은 책 하나로 판로를 개척한다는 건 쉽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드라마나 영화에서 띄워줘야 된다.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선택되는 책은 또 얼마나 한정적인가? 그런데 이렇게 뭉터기로 보여주니 작가가 고마울 밖에. 근데 왜 내가 고마워해야 하는 건데?   

이렇게 패키지로 묵인 걸 보면 상술이란 느낌이 들지만, 그래서 안 그래도 읽을 책 많은데 이걸 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러면서 주원이처럼, "배 수완무 거북이와 두루미..."하며 이미 본 걸 잊어보려고 노력해 보지만 확실히  라임의 책꽂이에 꽂힌 책을 보니 눈이 보배라고 마음이 몹시 흔들린다. 특히 김경욱의 <동화처럼>은 하얗고 도톰한게 딱 내 스타일이다. 

김도언의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은 그 제목에서 그렇고.  

그런데 앨리스 증후군이란 게 있다는 건 이 드라마를 보며 처음 알았다.  ‘이상한 앨리스 증후군’은 실제로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1955년 영국의 정신과 의사 토드(J. Todd)가 자신의 논문에서 소개한 증상으로, 매우 드물지만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기이한 증상들을 겪는것을 말한다.

그는 이 증상을 소설의 제목을 인용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AIWS, Alice In Wonderland Syndrome)’이라 이름 붙였다. 정신의학계에서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진 것이 없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은 측두엽의 이상으로 인해 시각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이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앨리스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시각적 환영(Optical Illusion)이 보인다. 또한 대체로 편두통의 병력이 있다. 물체가 작아 보이거나(micropsia) 커 보이거나(macropsia) 왜곡되어(metamorhopsia) 보이거나 마치 망원경을 거꾸로 해서 무엇인가를 보았을 때 멀어 보이는(teleopsia) 등의 증상을 호소하면 앨리스 증후군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저자인 루이스 캐럴 또한 편두통 환자였는데 그가 어렸을 때 직접 경험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소설이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다.

그러고 보면 주원은 병도 많다. 폐쇄공포증에, 불면증도 있던가? 게다가 앨리스 증후군까지.이것을 현빈 같은 멋진 배우가 앓고 있다니 용서가 되고 멋져보이기까지 하다. 쳇, 이래서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현빈이 작품 선택 하나는 잘 하는 배우 같지만 이렇게 매 출현하는 드라마마다 왕자 이미지로만 나오면 나중에 나이 먹어서는 어떻게 나올지 쓸데없는 걱정이 든다. 그런 거 보면 세상은 공평한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작가는 저 6권을 다 읽었을까? 저 여섯 권의 책을 읽으면 저런 드라마 쓸 수 있는 건가? 나도 드라마나 써 볼까? 좀 웃기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드라마 작가들은 어떻게 작품을 쓸까? 그런 뜬금없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특히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앨리스 증후군은 어찌 알고 작품에 써 먹을 생각을 했을까? 그 저의가 궁금해진다. <드라라를 쓰다>는 뭐 이런 책을 읽는다고 진짜 쓰는 건 아니겠지만 재밌게는 읽을 수 있는 책 같다. 

작가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요즘은 신예 작가들이 너무 일찍 등단한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는 10대 초반의 아이가 등단하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모든 분야가 다 그렇지만 문학작품에서도 대박을 터뜨려야 한다는 묘한 강박관념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라디오를 들으니 로자문드 필처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사실 로자문드 필처는 워낙 등단도 늦었지만 처음부터 그리 주목 받았던 작가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녀가 <조개줍는 아이들>을 쓴 것은 60이 되어서야 쓴 것이고, 그것이 그녀에게 비로서 세계적 작가라는 영광을 줬다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얼마 전 타계한 박완서 작가는 40에 등단했다. 그래서 우린 한 때나마 작가의 농익은 작품으로 위로를 받기도 하지 않았던가?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만 봐도 우리가 알만한 명작들은 처음부터 명성을 얻었던 것은 아니다. 나름의 고난의 시간을 이긴 고난의 산물 이기도 하다. 너무 일찍 튈려고 하고,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조급증은 작가의 세계에서도 예외는 아닌가 본데, 작가는 고독한 직업이다. 사람들 뒤에 숨어서 그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밥 먹고, 숨쉬고 동고동락해야 하는 직업. 유명한 작가가 아니라고, 알아줄만한 작품 하나 없다고 무시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작가의 생래적 특징이 그런 걸 어떡하랴? 그런 사람이 들 그늘에만 있으라는 법도 없고. 

아, 그나저나 저 주원과 라임의 도서 셋트 사? 말아? 값도 싸 더만. 드라마 보면서 좀 더 고민 좀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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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1-28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원과 라임도서세트라니...상술이 놀라워요.
저도 요즘 본방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재방을 또 보네요. 참 재밌죠?
처음엔 어색했던 오스카도 적응되니 매력있네요.

stella.K 2011-01-28 13:13   좋아요 0 | URL
오스카가 좀 그렇긴 하죠? 근데 재밌어요.
정말 상술이 놀랍죠? 원래 작가가 특정상품 노출하기로
유명하잖아요.^^

2011-01-28 1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28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스탕 2011-01-28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현빈의 연기중 제일 좋았던 부분이 병원에서 길라임의 영혼으로 깨어나서 우는 장면이었어요. 남자배우가 여자를 연기하기도 어려운데 게다가 우는 연기까지 해야하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더라구요.
저도 드라마 잘 안보는데 이번 겨울에 재미있는 드라마를 만나서 기분 좋아요 ^^

stella.K 2011-01-28 13:16   좋아요 0 | URL
그렇죠? 좋은 드라마나 책을 만나면 막 기운이나고
사는 게 조금은 즐거워져요. 이맛에 사는 거죠 뭐.흐흐

cyrus 2011-01-28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 저도 주원의 서재가 화제가 된 이후부터 저도 모르게
드라마를 본거 같아요.. 사실 저도 이 드라마 맨 처음부터 본거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 후로부터 드라마를 보게 되면 현빈이 읽고 있는 책 한 권까지
유심히 보려고 했었는데,, 마침 장 지글러가 쓴 빈곤에 관련된 책을 읽더군요.
워낙에 유명한 책이고 제목이 길어서 패스할께요,,^^;; 스텔라님도 대충
짐작하실거라고 믿어요 ㅎㅎ

어쨌든, 남자로서 책 읽는 현빈이 멋있더군요. ^^ 그리고 이왕에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장 지글러의 책도 다시 한 번 주목받았으면 했는데,,
오히려 앨리스가 더 주목받게 되어서 살짝 아쉬웠어요.
원래 오래전부터 유명했던 책인데 말이죠.
게다가 국내에 <앨리스> 를 출판한 출판사들이 서로 앞다투어
주원의 서재에 있는 책이라고 광고하는 모습이 씁쓸했어요.

stella.K 2011-01-28 15:22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그 책 알아요. 읽기도 했구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알기 위한 주원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이해되는데 말이죠.
그래도 책 광고가 가장 이상적이지 않아요? 다른 상품 광고하는 거 보다.
근데 출판사, 서점들 안 된다는 거 믿어야 할지 그걸 잘 모르겠어요.
물론 부익부 빈익빈이겠지만.



울보 2011-01-28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만 안봤나 보군요, 저 드라마, 전 현빈을 너무 좋아하는데 왜?이번 드라마는 안봤을까요? ㅎㅎ 그래도 좋아하는 배우가 인기가 좋으니 좋네요,내용은 뭐 하도 인터넷에 여기저기 이야기가 되어서다 알고 있는것 같지만, 역시 저렇게 유명드라마에 한번등장하면 그 광고효과는 무시 못하는군요,대단해요,

stella.K 2011-01-29 10:34   좋아요 0 | URL
현빈 좋아시신다면 꼭 보셔야죠.
턱을 깎아 얼굴이 다소 길고 날카로워 보여서
오히려 안쓰러워 보여요.
예전의 얼굴도 좋았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얼마나 아팠을까요?ㅜㅜ

꿈꾸는섬 2011-01-29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테라님의 예리한 분석이 참 좋네요.^^
시크릿가든 본방 사수했어요. 주원이 서재 보면서 부러워했고, 거기에 어떤 책 꽂혔나 유심히 보기도 했었어요.ㅎㅎ 주원이 읽던 시집들도 생각이 나는군요.ㅎㅎ

stella.K 2011-01-29 11:02   좋아요 0 | URL
ㅎㅎ 고맙습니다. 저도 요즘 열심히 보고 있어요.
어제도 봤다는 거 아닙니까?
우리나라 작가들, 연출가들 정말 드라마 잘 만드는 것 같아요.
부자와 가난하고 소외된자 너무 극과극을 달려서 좀 부담스럽긴 하지만.
항상 어느 집을 가나 그게 궁금하잖아요. 그집엔 무슨 책이 꽂혀있을까 하는.
그것도 알고 보면 관음증 비슷한 건데 그것을 이 드라마에선 채워주고 있다고 보여져요.
꿈섬님 좋은 주말 보내고 계신 거죠?^^

카스피 2011-01-29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런식으로라도 책 선전이 되었으면 좋겠군요.그런데 어차피 간접 광고니 광고비가 들것이고 몇몇 대형 출판사외에는 저런 식의 선전도 힘들겠지요^^;;;

stella.K 2011-01-30 12:07   좋아요 0 | URL
그게 다 자본주의의 거미줄이라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저 책을 어느 조그만 서점에서 사 보게 된다면 그나마 건질만한 게
있을텐데, 사람들은 이제 책은 큰 서점이나 가야 있다고 생각할걸요.
대형 출판사와 대형 서점은 악어와 악어새일까요?ㅋㅋ

전호인 2011-01-31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옆지기와 해람양이 느무느무 즐기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옆지기는 처음부터 다시보기로 보고 있더라구요. 가끔 곁눈질을 해서 보다가 언제가 부터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습니다. "문자왔쑝, 문자왔쑝" ㅋㅋ.
벤치키스와 거품키스. ㅋㅋ로맨스있는 부분도 부럽고요. 실천해 볼 날이 올까 모르겠어요. 이 나이에 주책이죠. ㅋㅋ

stella.K 2011-01-31 18:03   좋아요 0 | URL
아뇨, 아뇨. 있을 때 잘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더 나이 드시면 못하십니다. 꼭 하세요.ㅋㅋ
정말 이 드라마 빠져 들어요. 김은숙 작가 새롭게 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녀가 쓴 드라마 찾아서 다시 볼까 생각중이어요.^^

2011-02-01 0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1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염소의 축제 2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2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우선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역사상 독재로 악명을 떨쳤던 사람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쉽게는 히틀러를 비롯해, 필리핀의 마르코스,  비참한 처형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줬던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그는 죽을 때 눈도 재대로 감지 못했었다), 가까이는 박정희와 전두환, 김일성이나 김정일까지. 물론 지구상에 독재자가 이들 뿐이겠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느 곳에서 독재자들이 판을 치고 살고 있는지 우린 다 알 수가 없다. 공교롭게도 김정일은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독재자로 현재 위키백과에 등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방금 전에 알았다.  

여기 우리가 기억할만한 또 다른 이름이 있으니 도미니카 공화국의 '라파엘 레오니다스 트루히요'다.  그리고 그 인물은 2010년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에 의해 재탄생했다.  그는 왜  이미 죽은 지 오래된 라파엘 레오니다스 트루히요를 자신의 소설에 되살리려 했을까? 

왜 '염소들의 축제La Fiesta del Chivo'인가? 

스페인어 염소에 해당하는 단어 Chivo의 첫 글자를 대문자로 한 것은 음모자들 사이에선 트루히요를 '염소'라 지칭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염소는 그냥 동물을 지칭하는 명사였을텐데 트루히요에게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이는 트루히요의 과도한 성욕과 뛰어난 남성적 능력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리고 Fiesta  축제란 말로써 트루히요가 죽는 날 도미니카에 독재는 종식되고 커라란 축제가 벌어질 거라는 암시를 내포하며, 그것은 동시에 유혈 축제를 내포하기도 한다.  즉 말하자면 트루히요 음모자들끼라만 통하는 일종의 작전명이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비슷한 역사적 사건이 있는데,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두고 그 작전명을 '여우 사냥'으로 지었다지 않는가? 이렇게 사람들은 상징성을 같는 이름내지는 스토리텔링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소설은 다분히 독재자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음모자의 관점에서의 이야기로 보여지기도 한다. 

이야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트루히요의 인간적 면모를 지켜볼 수 있는 시선 하나. 그리고 이를 지켜봐야하는 친트루히요파와 음모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또 하나는 여성의 시각을 대표하는  우라니아 카브랄의 이야기. 무엇보다 작가는 소설을 쓰기 위해 트루히요를 많이 연구했다고 하는데, 우라니아는 실제로 있는 인물이 아닌 가장의 인물이라고 한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아무래도 어느 나라나 독재 치하에서는 여성들의 성적 압제로인한 상처를 간과할 수 없기에 그것을 기억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개인적으로 우라니아의 부분을 가장 관심있게 읽기도 했는데,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그다지 크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어서 아쉬움이 컸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작가적인 한계는 아닐까 하는 의혹까지 가졌더랬다. 하지만 역시 작가가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트루히요의 시대 역시 페미니즘의 시대는 아니었고, 더구나 당시의 도미니카 같은 저개발 국가에서 여성이 주체적인 성의식을 갖는다는 건 어려웠을 것이다. 아버지가 딸의 처녀성을 독재자에게 바치는 시대였다면 그건 정말 비극의 시대다. 아버지조차 이성을 잃어버린 시대를 산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시대는 도미니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그런 상황에서 14살 어린 소녀가 무엇을 해 볼 수 있을까? 그나마 트루히요의 그늘에서 미국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고 35년만에 고국에 돌아와 불구가 된 아버지께 자신을 증오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반전이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작가는 독재 체제에서 탄압받는 여성과 치욕스런 국민의 삶을 대변하기 위해 우라니아를 설정했다고 했다고 했다. 그러니 우리의 관점에서 우라니아를 해석하고 평가하려고 하는 것은 그다지 옳은 태도는 아닌 것 같다.  

우리도 바로 한 세기 전 우라니아로 살아야했던 치욕스런 시대가 있었고, 지금도 우라니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사는 사람이 이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마도 우리가 우라니아에 대해 아쉬움을 갖는다면, 그건 신화적이며 영웅적인 뭔가의 아우라를 우라니아에게서 끝끝내 발견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은 아닐까 싶다. 역시 우리는 허리우드식 스토리텔링에 너무 많이 익숙해져 버렸다.  

그들의 축제는 어디로 갔나?         

이 소설은 그다지 쉽게 읽혀지는 건 아닌 것 같다. 이야기가 길기도 하지만, 시간의 병렬을 해체시키고 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으면 저 이야기를 하고 다소 혼란스럽게 이야기가 진행이 되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을 점잖게 플래시백이니, 회상과 다양한 화자의 등장이니 목소리의 중첩이니, 한마디로 다양한 방법을 구사했다고 말하겠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 읽기는 쉽지 않더라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익숙한 방법으로 읽히진 않는다는 소리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가 갖는 독특한 점은, 이야기가 사실적이지 않으며 우화적으로 읽힌다는 것이다. 그것은 특이하게도 각 등장인물의 특징과 심리상태와 대화에 주로 촛점을 맞추었기 때문인 것도 같다. 사실 독재자의 최후를 다룬 소설은 많다. 그런데 이걸 여느 작가가 썼다면 어땠을까? 감히 상상을 해 보건데, 아마도 이야기의 사실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독재자를 죽이기 위해 사용된 무기는 무엇이며, 어떤 동선을 짜며, 살상자의 심리상태는 어떤 것이며, 암살이 성공했을 때와 실패했을 때의 시나리오. 그리고 독재자가 어떻게 쓰러졌는지 등을  굉장히 꼼꼼하고 장엄하게 썼을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그런 예상되어지는 연출된 상황을 배체한 채 자신만의 스타일로 이야기를 채워 나간다. 어쩌면 그것이 작가가 갖는 필력일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독재자의 암살과 그 이후에 대해 상당히 충실하게 그렸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니고 독재자를 죽이는 것이다. 사실 누구 보다 죽일만한 정당한 이유를 가진 존재다. 하지만 암살자는 무슨 테러 집단도 아니고, 자실 특공대는 더더욱 아니다. 꼭 죽이고야 말리라는 그 강한 의지 뒤엔 그에 못지 않은 강한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독재자의 암살엔 반드시 종교가 함께 간다. 종교인의 양심으로 살상만은 안된다고 해야 옳을 가톨릭 신부들 조차 독재자의 암살에 가담한다. 이것은 비단 이 이야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도 정의의 이름 또는 신의 이름으로 독재자는 처단되어 왔다. 그렇다면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 것이며, 신의 왕국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뭔가의 생각이 깊어졌다. 하지만 나의 생각을 더 깊게 만들었던 건 투루히요를 처단한 로만 장군을 비롯한 가담자의 이후의 행동이다. 그들은 일단 독재자를 죽이는데는 성공했지만 그 이후는 성공하지 못했다. 어찌보면 나라에 더 혼란만을 가중시켰고 , 영웅이 되기는 커녕 더 많은 적들을 만들었다. 역시 한 사람의 피를 손에 묻힌다는 건 그리 자랑스러운 일은 못되는 것 같다. 투루히요의 죽음에서 기쁨을 누리는 군중이 있는가 하면, 슬퍼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이 이야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어느 나라의 독재 체제가 무너졌을 때에도 똑같이 겪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축제는 어디로 간 것일까?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작품에 대한 인터뷰에서 암살자들은 암살에 성공하고도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보고 두려워 했다고 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나라의 상황을 생각해 보다 

사실 이 책이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끝까지 읽었던 건, 어찌보면 이 책이 우리나라의 역사적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의 기시감 때문이었다. 어릴 적, 나 역시 우리나라엔 대통령이 원래 단 한 분만 존재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신앙 같은 것이 되어서 앞으로도 이 분은 죽지도 않고 나라를 계속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 분이 어이없이 죽고 나서야 나는 꿈에서 깨어났고 그것이 독재 때문이며 더 많은 혼란과 이전의 독재자 못지 않은 독재자가 나타나 민주화의 꿈은 좌절되는 줄만 알았다. 누구는 또 그랬다. 우리 나라는 민주주의가 가능하지 않으니 이전의 독재자의 재림이 필요하다고. 또 누구는 그 독재자의 암살자가 사실은 처형되지 않았으며 지구 반대편 어느 섬에서 살고 있다고도 했다. 과연 괴담 아닌 괴담이고, 그만큼 사람은 자율적이지도 못하고 민주적이지도 못하며 뭔가에 기생해서 살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다. 또한 그것은 이 소설에 그대로 녹아져 있다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궁금한 것 하나가 떠올랐다. 우리나라 독재자를 암살했을 때 작전명은 뭐였을까? 독재자가 있는 나라의 역사는 확실히 슬프다. 그래서도 난 이 책을 포기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현재의 북한의 상황 때문에도 이 책을 포기하지 못했다. 한 나라에 독재자가 있다는 건 불행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자기 세대를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뭐란 말인가? 3대 세습 체제가 이루어졌다. 이제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일한 분단 국가이며 유일한 3대 독재 세습란 오명을 안게 되었다. 지금 북한은 그 어느 때보다 이 체제에 시달림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과연 북한은 자생 능력을 상실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하게 만들었다. 이 악습을 보고도 암살을 꿈꾸는 사람이 없더란 말인가? 새삼 가슴을 쓸어 내렸다. 물론 독재가 있으면 반드시 암살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암살을 심판하기 전에 그것을 나쁘게만 볼 수 없는 것은 그만큼 혁명에의 의지가 있기 때문이며라고 생각한다. 그것의 끝이 어떤 결과를 낳던지간에 말이다. 그런데 북한은 자기네 나라의 독재를 청산할 의지도 없이 삼대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이 죽었을 때 집단 패닉 상태에 들어가기도 했다는 말을 적이 있다. 그런 걸 보면 사람의 의식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것이 언제까지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언젠가는 그 독재도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것도 아주 어이없는 그 하나 때문에.  

이야기를 무시하면 안 된다. 이야기가 갖는 신화적 상상력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영화 <제이콥의 거짓말>은  진실을 은폐한 거짓말 하나가 어떻게 나치즘을 붕괴시켰는가를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수작이다. 그런 것처럼 이 소설이 갖는 신화적 상상력이 어느 나라의 독재를 어떻게 무너 뜨리게 될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도 작가는 사실주의를 배제하고 우화적이며 상징적인 분위기로 이야기를 이끌어 갔을지 모른다. 이 소설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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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1-27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트루히요와 그의 아들에 대한 묘사를 보면서 북한의 김정일, 김정은 부자가
떠올랐어요. 소설을 읽으면서 유신정권 시절의 우리나라랑 오늘날의 북한 정권이
동시에 연상되는,, 어쨌든 참 대단한 소설인거 같아요 ^^

stella.K 2011-01-28 13:18   좋아요 0 | URL
어쨌든 독재의 모습은 똑같은 것 같아요.
그런데 북한이 여타의 그것과 다른 건 그들 자체적으로 독재를 청산하지 못한채
독재자를 우상화하고 있다는 거죠. 어쩌면 좋을까 한숨만 깊어졌어요.ㅠ

근데 시루스님 밖에 없어요.뭐냐구요?
그냥 시루스님 조타구요!히히
 
교실 밖 아이들 책으로 만나다 - 스물여덟 명의 아이들과 함께 쓴 희망교육에세이
고정원 지음 / 리더스가이드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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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펼치기 전까지 만해도, 과연 책이 사람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 별반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나야 어렸을 때부터(또는 태어날 때부터) 극단적인 부자이거나 극단적인 불우한 형편은 아니었고, 딱 중간치의 삶을 살아왔던바 중간치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 늘 그렇듯 평범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삶도 아닌 삶을 유지하며 산다. 늘 책을 가까이 하려고 했고, 실제로 내 방 어디든 손만 뻗으면 책이 닿는 구조다. 그런 나의 삶이 모자라지도 부족하지도 않을진대 책이 좋으면 얼마나 좋고, 책이 나를 변화시켰다면 얼마나 변화시켰겠는가? 상처도 받아 본 사람만이 그 치유 방법을 안다고 했다. 물론 상처 안 받고 살아 온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만, 그렇게 책을 읽고 살아 온 나에게 과연 책이 얼마나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엔 주목해 보지 못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다시 기억 나는 건,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본 사람들이 다시 그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과정 중 하나 같이 책을 읽는 것이었다는 한 말이 기억이 났다. 즉 건강을 잃고, 집이 쫄딱 망하고 책을 읽고 재기에 성공했단 말이다. 그만큼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책의 효용성과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것은 아마도 책이 지식과 지혜를 얻게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글쓴이의 공력과 영혼이 녹아져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러니 책을 읽지 않는다는 건 마음의 양식 더 나아가 보약을 싫다고 거부하는 것과 같은 거란 생각이 든다.

 소위 '문제아'라 지칭되는 아이들은 유년기와 청소년들에게서 이르는 말로 이들은 책도 안 읽을 것만 같다. 물론 실제로 그렇긴 하다. 하지만 이렇게 문제아는 책도 안 읽을 것이라고 지레 판단해 버리는 선입견은 아닐지? 생각해 보면, 그들만큼 책을 필요로하는 영혼이 또 있을까? 그런 아이들에게 우린 얼마나 책을 읽을 환경을 만들어주었으며, 한 번이라도 책을 읽어보라고 권한 적이 있던가? 부모와 교사들은 내신 관리와 대입에만 온통 집중이 되어있고, 혹시라도 내 아이가 문제아(들)과 함께 어울려 물들까봐 그들 곁엔 가지도 못하게 만든다. 내집 아이건, 남의 집 아이건 그 아이가 잘못된 길로 가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어른이 모범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그러니 우리의 '문제아들'은 두 번 버림을 받는 것이다.

이제 책은 마음의 양식이니 영혼의 보약이니 하는 다소 고루하고 보수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치료와 교육의 현장에서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독서 치료'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일 것이다. 이 책은 소위 말하는 '문제아'(솔직히 이 단어가 그다지 써먹기엔 좋은 단어는 아닌성 싶다. 그맘 때 문제아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도 겉으로만 들어나지 않고 선 밖으로 벗어나지만 않았다뿐이지 알고 보면 나도 문제아는 문제아다. 쉽게말해 '경계성 문제아'쯤 되지 않을까?)를 저자가 책과 만나게 해 줬을 때 아이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어났는가를 쓴 일종의 보고서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문제아의 유형은 몇 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 자살 미수, 결손 가정에서 자란 이이, 부모님으로부터의 마음의 상처를 받은 아이, 성적 수치심에 사로잡힌 아이,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등등. 그때마다 저자는 그에 맞는 책들을 선정 해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토론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노력을 한다. 그 과정들을 읽으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감탄이 절로 나지 않을 수가 없고, 정말 머리를 숙여 고맙다고 인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학교를 떠난 아이들에게 섣불리 책을 권하면 반발을 사기 쉽다. 일단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야 한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신뢰감이 생길 때, 책 읽기도 즐거운 만남의 일부라는 것을 서서히 일깨워 줘야 한다. 책을 활용한 여러 가지를 만들어 흥미를 유발하고, 어느 정도 관계가 형성된 후 책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좋다.(22p)

책의 구성은, 각 아이들의 문제를 사례별로 나열하고 각 쳅터가 끝나는 마지막장에 사용된(?) 책들의 간단한 소개를 싣고 있다. 읽다보면 과연 저자가 이 책을 다 읽었을까?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아이들을 치료하고 그 문제에서 나오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단 말인가? 

마침, 기회가 좋아서 나는 작년 12월에 저자 강연회도 다녀왔었다. 강연회는 상당히 편하고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진행이 됐는데, 주로 저자의 이제까지의 활동 상황을 듣는 방식이었다. 그것을 들으면서 한 가지 주목할만한 것은 저자는 학교에서 지역사회 전문가로 일 하면서 아이들을 어느 한 시기만 잠깐 만나고 만 것이 아니라, 1년에서 2년, 많게는 몇년을 두고(그 아이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것을 보기까지 계속적으로)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볼 때 교육이란 결국 지속적인 관심이고 가슴으로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우리가 아는대로 우리나라 교육은 너무 주입식이며, 획일화 되어 있다. (대학을 제외하고라도) 정규 학교만 9년을 배우지만 인격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지식인 또는 어느 정도 교양을 갖춘 사람으로도 졸업하지 못하고 학교를 나온다. 대학을 졸업해도 자신이 뭘해야 하나 막연해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교육은 원래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한 영혼을 올바로 키워내는 일인데, 그것이 나무 모판 찍어내듯 획일화된 교육을 받게 한다고 해서 될 일인가? 누군가는 말한다. 교육은 콩나물에 물주기와 같은 거라고. 잊어버릴만하면 또 가르쳐주고 또 가르쳐주고 그렇게 해서 키워내는 거라고. 맞는 얘기이긴 하다. 하지만 콩나물은 그렇게 해서 자란다. 하지만 사람은 별로 자라는 것 같지가 않다. 적어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정말로 학교가 나를 이만큼 키워줬다고 고마워 하며 학교를 떠나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지겨운 학교 졸업하게 됐다고 오히려 쾌재를 부르는 아이가 더 많지 않을까? 

얼마 전, 인문고전을 읽을 필요성을 역설한 한 저자의 강연회를 다녀온 적이 있다. 원래 옛날 유럽식 교육은 가정 교사가 상주해있고 아이가 교과 내용을 이해할 때까지 가르쳤다고 한다. 물론 있는 집 자식들의 경우다. 하지만 그 아이가 이해할 때까지 가르쳤다는 점에선 상당히 고급한 형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맞는 교육의 형태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원래 사람의 영혼이란 고귀하고 섬세한 것이 아니던가? 그것을 무조건 획일화된 학교 교육의 틀에 맞춰 두부모판에 찍어나온 두부마냥 가르칠려고하니 적응 못하는 사람은 '문제아'라고 치부될 수 밖엔 없다. 그들의 외침은 오히려 당연해 보이기도 하다. 결국 그들은, 나 좀 봐달라고, 나를 도와 달라고, 더 나아가 나에게 맞는 교육 좀 받게 해 달라고 온몸을 다해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저자의 강연회 때 나는 아주 우문 같은 질문을 했다. 내가 아는 어떤 교사는, 드물게는 매를 들어야 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방법이 아닌 정말 저자 같은 방법으로도 아이들은 변활 수 있다고 보는가? 그때 저자는 아주 조심스럽게(어찌보면 겸손하게) 그렇다고 보는 거라고 대답했다. 하긴, 물론 저자의 방법이 교육의 모든 것도 치료의 모든 것도 대변해 준다고는 할 수 없다지만, 어느 일정 부분 아이들이 제 길로 돌아서는 것을 보고 있지 않은가? 교육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인데 매로 아이들을 다스려보겠다는 것은 또 어찌보면 단기간내에 승부수를 보거나 그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교사를 대변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실제로 저자는 학교에서 일하면서 교사가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안타깝게 생각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렇게 아이들이 변화되는 것을 보면 놀랍잖은가? 그렇지 않아도 저자는 정말 자신이 즐거워서 그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뉘라서 남의 집 아이를 그렇게 돌 볼 수 있을까 싶다. 

확실히 아이들을 학교 공부만 가지고는 안되는 부분들이 있다. 이렇게 저자 같이 지역사회전문가가 학교 곳곳에 배치가 되어서 아이들을 좀 더 세심하게 배려해 주는 뭔가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에 비해 이런 저자 같은 사람이 받는 대우는 터무니 없이 미약한 것이 또한 교육현실이기도 하다.

아울러 말하고 싶은 건, 책에 소개된 여러 사례의 아이들의 유형이 지금도 어디선가 외롭게 소외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을 혼자 두거나 그들끼리만의 집단을 형성해서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들도 어느 때가 되면 다른 건강하고 평범한 아이들과 섞여서 건강한 사회인으로 자라갔으면 좋겠다. 

저자에게 진정으로 가슴으로 울어난 박수를 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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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1-21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제가 찜해놓고 있는 책이라서 리뷰도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과연 교육이 지향해야할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근본적인 물음이 생깁니다. 변변한 지식없이 이런 근본적인 물음이 생기기 시작하면 참 대책없습니다만.

stella.K 2011-01-21 13:12   좋아요 0 | URL
작년에 몇 분의 작가 강연회를 다니면서 그분들 하나 같이
책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하는데 좀 실망스럽더라구요.
심지어 작가 김훈 선생까지도.
뭐 나름 겸손하시느라 그러셨을지 모르겠지만 책도 사람의
목소리와 영혼이 묻어나는 건데 그게 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겠어요?
그러고 보면 자신들이 이 책을 세상에 내놓음으로서 져야할 어떠한 책이도
지고 싶지 않다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교육을 담당해야 하는 사람들은 할 수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재료로 하려고 하잖아요. 하물며 책이야...! 정말 책 만드는 사람들
잘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글치 않아도 h님은 관심 있어하실 줄 알았어요.^^

책가방 2011-01-21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대 초반에 <10대들의 쪽지>로 상담편지를 보내오는 아이들에게 답장을 보내는 봉사를 한 적이 있었답니다. 그때 갓 10대를 넘긴 제가 그들의 고민을, 그들의 문제를 읽고 상담해 줬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그지 없네요.ㅋ
유일하게 해 줄 수 있는 게 책 추천을 해주거나 책의 내용을 인용해서 들려주었는 것 이었던 것 같네요.
그 아이들이 지금은 30대초중반을 살고 있을텐데... 과연 그때 나의 편지들이 도움이 되었을까 싶은 궁금증이 생긴답니다.
물론 지금은 같이 나이들어 가는 처지이긴 합니다만..ㅎㅎ

stella.K 2011-01-22 10:33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예전에 주일학교 교사를 한적이 있는데
지금은 걔네들이 아줌마, 아저씨들이 됐더라구요.
처음 만났을 땐 정말 앳됐는데 사람이 나이들면 다 비슷해지는 것
같더라구요.^^

cyrus 2011-01-21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육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지만 문제아를 위한 독서치료,
참 좋은 방법인거 같아요. 그리고 학생들에게 세밀하면서 따뜻한 관심. 역시
중요한거 같습니다.

stella.K 2011-01-22 10:36   좋아요 0 | URL
이 책 읽으면서 내가 참 교사들에 대해 잘 몰랐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런 선생님도 있구나 싶은게 다시 보게 되더라구요.
저자는 정말 좋아서 그 일을 하는 것 같더라구요.
저도 사춘기 아이들과 함께 있어 봤지만 솔직히 걔네들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거든요. 물론 선입견이었지만.^^

sslmo 2011-01-23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년,2년 아니면 몇년 정도 되면 삶의 한부분을 같이 사는 거라고 할 수 있죠~
아직까지도 이런 분들이 계셔서 참 다행이예요~^^

stella.K 2011-01-23 19:30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여요.^^
 
굿’ 바이 : Good&Bye - Good&By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타키타 요지로
주연 : 모토키 마사히로, 히로스에 료코(2009년)

참 좋은 영화란 생각이 든다. 또 어찌보면 인간의 다양한 직업을 소재로 이렇게 따뜻한 휴머니즘을 구사하는 영화를 만드는 일본의 영화 환경이 부럽기도 하고, 셈도 난다. 솔직히 우리나라는 드라마나 영화를 다룰 때 굉장히 한정된 직업을 가진 사람만을 다루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인물이 다소 정형화되고 캐릭터가 주는 맛이 반감이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일본을 배울 필요가 있어 보인다. 

될 수 있으면 좋은 직업을 갖게되고자 하는 마음은 인간의 한결 같은 마음일 것이다. 여기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 분) 역시 그런 점에서 여느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특히 그는 오케스트라 첼로주자다. 괜찮은 아니 멋져 보이기까지 하지 않는가? 첼로 주자로서 그의 꿈이 컸을지 작은지 큰지는 알 수 없다. 컸다면 이제 막 입단한 오케스트라에서 시쳇말로 잔뼈를 굵혀 더 큰 무대로 나가기를 바랄 수도 있고, 작았다면 그냥 오케스트라가 망하지 않고 이대로 현상유지만 잘해서 1억8천만원이나 하는 빚을지고 산 첼로 값을 청산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앞으로 자식 낳고 잘 살기를 바라는 것일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비이락이라고, 오케스트라는 해체를 맞는다. 그래도 그에게 착하고 이해심 많은 아내가 있다는 건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첼로를 팔아버리고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낙향한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우연히 신문에서 여행 도우미를 구한다는 구인광고를 보고  적성에도 잘 맞겠다 싶어 무작정 회사를 찾아간다. 그런데 웬걸, 그 여행 도우미는 우리가 생각하고 다이고도 상상하는 그런 여행 도우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쇄가 잘못되서 탈자가 있는 여행도우미였다. 망자의 저승에로의 여행을 도와주는 일이라고나 할까?  더 정확히는 납관 즉 죽은이에게 염습을하고 관에 넣은 어찌보면 장례식의 가장 첫 절차를 담당하는 그런 일을 하는 것이었다.  돈은 많이 준다기에 순간 혹했지만 그런 일은 왠지 직업으로 하기는 선듯 내키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일을 천직으로 아는 다이고의 고용인 이쿠에이에게 차출되다시피 일에 매이게 되고 헤어나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빠져들고 만다. 

             

 흔히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오늘 날 자본주의화된 사회에서 이말에 동의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확실히 그 사람의 가진 직업이 그 사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훌륭한 직업을 가졌다고 해서 훌륭한 인격을 가진 것이 아니며, 천한 직업을 가졌다고 해서 그 사람의 영혼까지 천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도 자신을 고용한  이쿠에이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결국 다이고를 이 일에 무릎꿇게 만든 건 다시 이쿠에이에게 붙들려 찾아간 어느 아내를 잃은 남자의 집을 찾았을 때다. 이쿠에이가 너무도 엄숙하게 한치의 흩트러짐 없이 염습을 하는 모습을 보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매료당한다. 그리고  이쿠에이의 염습하는 모습을 보고 다이고가 하는 고백이 제법 의미심장하다.                        

                             "차갑게 식은 사람을 치장하여,
                         영원한 아름다움을 주는 행위
                         그것은 냉정하면서도 정확하고, 
                         동시에 따스한 애정이 넘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며
                         고인을 배웅한다.
                         고요와 평온함속에 이루어지는 
                         모든 손놀림이 매우 아름답게 보였다."  

아마도 이런 고백을 할 정도라면 이쿠에이의 염습은 달인의 경지였을 것이고, 그것은 남아 있는 자들에게 적지않은 위로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찾아간 집의 주인장은 아내를 수십 년 봐왔지만 오늘이 제일 예뻤다고 말했을 정도니 이쿠에이는 확실히 장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영화가 진행되면서  두 사람의 염하는 모습은 너무나 진지하고 완벽해 보이기까지해 보는 나도 빠져들 것만 같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20년 전 세상을 떠나간 나의 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장례식장에서 아버지를 마지막 만나러 갔을 때, 아버지는 베옷을 입고 계셨다. 지금은 망자에게도 화장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때 아버지는 화장기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 하긴, 살아계셨을 때도 사시사철 스킨과 로션 외에는 아무 것도 바르시지 않으셨는데 망자가 되셨다고 새삼 화장을 좋아하셨을리 없다. 그때 슬픔에 한없이 울고 있던 중에도 과연 누가 아버지께 저런 옷을 입혀드렸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아마도 영화에서처럼 가족도 염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적잖은 위로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것은 유적들에겐 공개되지 않았고, 괜히 애꿎은(?) 문상 온 사람들과 조화에서 위로를 받으려 했던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아버지에게 염습을 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알지도 못했다.    

사실 인간이 가장 성숙해지는 때는 꿈을 이루었을 때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겪어봤거나 죽음을 목도했을 때다. 그런 의미에서 늘 남의 죽음을 목도해야 하는 직업적 속성상 두 사람의 삶은 겸허할 수밖에 없고 깊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일을 하면서 다이고는 여러 가지 인간의 죽음의 군상을 보게 된다. 물론 죽음 자체는 살아있는 자에겐 많은 슬픔과 회한을 남기는 것도 사실이다. 죽은 이유도 제 각각이어서 어떤 사람은 가스로 질식해 자실을 하고, 어떤 사람은 병으로 죽기도 하고, 또 누구는 가족의 사랑과 축복속에 세상을 마감하기도 한다. 거기서 깨닫은 것은 죽음이  그렇게 마냥 고통스럽고, 슬픈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군가를 슬프게 하지 않고 떠날 수 있는 삶과 죽음이라면 정말 참 좋겠다. 그렇게 남의 죽음을 목도하고 염습을 하다보면 살려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게 얼마나 허망한 것이며, 미워하다가도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죽으면 그만인 것을 인간의 애증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다이고가 이 일을 하므로해서 얻은 가장 큰 이득은 평생 용서하지 못할 것 같은 아버지를 용서하게 되는 과정일 것이다. 영화는 그게 정말 잘 표현 되어있다.  

그러나 역시 다이고는 아직 산 사람이다. 그렇게 죽음에 예를 갖추는 일을 하고  마음을 비우며 겸허한 태도로 살려고 해도 순간 순간  위기는 다가온다. 아내에게만은 한없이 멋진 남편이고 싶은 다이고. 그러나 언제까지고 자신의 일을 숨길수만은 없었던 그도 결국 기로에 선다. 아내냐, 일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그러나 일을 그만 둘 수 없었던 다이고는 아내가 집을 나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그가 그런 일을 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가까운 친구마져 등을 돌린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를 떠났던 아내가 얼마 안 있어 다시 돌아온다. 이젠 모든 것이 잘될 줄만 알았는데 더 큰 복병을 만난다. 그것은 아내가 임신을 한 것. 모든 것을 이해해 주고 묵묵히 지켜봐주는 아내는 고맙지만, 장차 태어날 아이에게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따돌림을 당할 것을 생각하면 그는 당장 그 일을 그만 두어야 한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역시 직업은 사명이며 그 일을 할 수 밖에 운명지어졌다면 그건 또한 천명이란 생각을 들게 만든다. 그렇게 다이고의 몇번의 위기와 몇번의 갈등이 또 너무나 당연한 귀결처럼 풀려서 다시 한번 그 일이 자신의 천직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만큼 시나리오는 흠잡을 때없이 완벽해 보인다.  

   

 세상에 의미없이 존재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런 것처럼 세상엔 나를 잡아끄는 일. 또는 그 일을 아무리 안하려고 해도 결국 다시 붙들게 되는 일이 있다. 가끔은 그 일이 뭔지 나 또한 알고 싶다. 나는 아는데 안하는 것인지,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건지 헷갈릴 때가 너무 많다. 어떤 사람은, 하다보면 그게 내 일이지 운명 같은 일은 없다고도 말하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될 수 있으면 좋은 직업과 좋은 경력 쌓겠다고 이 줄에서고 저 줄에서고, 심지어는 세상에 평생 직업이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영리하게도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느껴진다.  그래서 스펙이야 넓어질지 모르지만 그 일에 다이고나 이쿠에이처럼  자신의 전 생애와 영혼을 걸게는 안 될 것 같다. 돈을 쫓지말고 (남을 유익하게 만드는) 일을 쫓으라는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믿고 싶다.   

직업의 귀천이 없다는 말을 했지만, 모든 사람이 천히 여기는 직업이라고 해서 그 직업이 정말 천한 건 아니다. 누군가는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다.  예를들면 환경미화원들이 하는 일이다.  그들이 없으면 우리의 환경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런데도 그 직업은 예나 지금이나 그다지 대접 받는 일이 아니다.  또한  각광 받는 직업이라고 해도 소위 말하는 3D 분야는 있게 마련이다. 그래도 그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이름도 없고 빛도 없지만 자신의 전 생애와 인격과 영혼을 바친 일이기에 나중에 누군가는 알아주고, 누군가는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직업엔 귀천이 없다.  

지금 자신의 하는 일이 마음에 안 들고, 부끄럽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영화는 그런 사람들에게 강추다. 그렇지만 이렇게 인간의 삶과 죽음에 통찰을 주는 영화는 흔치 않으며 일부러라도 창겨서 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이 영화는 너무 착한 영화다. 누구도 모나고 악한 사람이 없다. 더구나 다이고는 착하다 못해 약간은 멍청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진지하다. 첼로 켜는 염습하는 사람.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지만 이 영화에선 나름 멋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다이고의 스승격인 이쿠에이가 가장 볼만하다. 어쩌면 한결 같이 정중동의 연기를 펼칠 수 있는지 역시 빛바래지 않는 노장의 연기가 멋지다. 미장센도 뛰어나고. 특히 죽은 사람의 사체가 사실감이 느껴진다. 영화의 흐름은 마치 소설을 보는 것 같다. 보면서 소설 '애도하는 사람'이 생각나기도 했는데  그 소설의 주인공이 애도하느라 그 고생하지 말고 염습하는 사람이 됐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2009년 몬트리올 영화제 대상을 받았다는데 과연 받을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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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1-01-17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참 감명깊게 보았습니다. 여러 생각도 들고요. 감동으로 눈물도 흘리고...

영화만큼이나 멋지고 잘 어울리는 리뷰글 잘 봤습니다. 추천~!^^

stella.K 2011-01-17 17:03   좋아요 0 | URL
이 영화 넘 좋죠? 정말 감동이었어요. 시나리오도 좋고.
추천 고마워요.^^

hnine 2011-01-17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님이 별 다섯개 주는 일이 흔치 않은데, 이 영화가 영예의 별 다섯개를 받았군요.
20년 전이라니 아버님께서 너무 일찍 돌아가셨네요. 전 그 무렵 함께 살던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제 집에서 돌아가셨고 장례식장을 거치지 않고 제 집에서 마지막 모든 절차를 치뤘음에도 염습하는 과정은 보질 못했어요.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영화를 한번 보면서 저도 직접 느껴봐야겠어요.

stella.K 2011-01-18 10:22   좋아요 0 | URL
ㅎㅎ 저를 좀 아시는군요. 그렇죠? 제가 왠만해서 다섯개 주는 일이
거의 없는데 말이죠. 시나리오가 더 이상 더하거나 뺄게 없어요.
예전에 시나리오 배울 때 시나리오는 과학이라고 말씀하셨던
샘 말씀이 기억이 나요. 더 정확히 말하면 수학 같은 과학이라고나 할까?ㅎ

그렇죠. 보내드릴 아무런 준비도 안 되었는데 그렇게 가시더라구요.
그때까지 한번도 남의 죽음을 목도해 본 적도 없고 그냥 삶을 배반한 것이
죽음이겠구나 했는데 너무 어렸어요. 그래서도 삶을 더 적극적으로
살지 못했던 지난 세월이었구요.
이런 일 하는 사람이 참 존경스럽고, 대단하다 싶더라구요.
꼭 한 번 보세요.^^

sslmo 2011-01-18 0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영화 얘기, 여기 저기서 들었었는데...이렇게 님의 리뷰로도 만나게 되네요.
언젠가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게 될 즈음, 꼭 보고 싶어요.^^

stella.K 2011-01-18 11:14   좋아요 0 | URL
영화 보면서 담담히 받아 들이는 연습을 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ㅎ
그러고 보니 다 하지 못한 말도 있네요.
영화 보면서 참 뭉클했는데, 다 보고 나니 또 울엄마는 어떻게 보내드리나
울컥하더군요. 생각만 해도 그렇긴 하죠?ㅠㅠ
하지만 유머도 있고 너무 우울하게 볼 건 아니어요.
영화 <철도원> 같은 분위기도 나고, 좋아요.^^

진주 2011-01-18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보는 안목이 꽝인 저는 스텔라님 말씀만 듣고도 이 영화가 보고 싶어졌어요^^

stella.K 2011-01-19 12:23   좋아요 0 | URL
오, 이거 정말 강추입니다.
진주님도 좋아하실거라고 확신합니다.^^
아니면...제가 차 한 잔 사 드리죠.ㅋ

진주 2011-01-19 13:35   좋아요 0 | URL
오 그래요?
근데 저는 영화보다 차가 더 끌리는데 어쩌죠? ㅎㅎ
영화 거의 안(못)봐요. 가장 최근에 영화관 간 것이..5년은 넘었을 듯...

기억의집 2011-01-18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디비디 장바구니로 넣었다가 혹시나 싶어 토토에 갔더니 있네요. 지금 다운받고 있는 중, 다운 받는데 꽤 걸릴 것 같아요. 저는 스텔라님 말 중에서 첫 문장 절대 공감합니다. 언제부터인지 제가 한국영화나 소설을 안 읽은 게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거에요.
요즘 일본영화 한편 보고 싶었는데. 이거 봐야 겠어요.

끝문장 읽고 포복절도 했습니다.

stella.K 2011-01-19 11:52   좋아요 0 | URL
끝문장에요...? 아니 제가 뭘 어쨌다구.ㅎㅎ
지금쯤 다 보셨겠는데요. 어떠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