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꽂혀 거의 매일 한 편씩 보고 있다. 이건 순전히 알라딘 때문인데, 알라딘 이벤트 페이지에 가보면 '김주원의 서재'란 코너가 따로 있다. 도대체 <시크릿 가든>이 뭔데 이러나 싶어 결국 보기 시작했다. 하긴, 꼭 알라딘이 아니어도 여기 저기서 이 드라마 얘기니 안 봐 줄 수가 없다. 현빈이 싫진 않지만 난 지금까지 작가의 작품이 그다지 좋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그렇지 않아도 드라마 잘 안 보는 성격에 그냥 패스하고 넘어가 주려고 했다.
그런데 작가의 다른 작품과 달리,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뭔가가 있다. 특히 판타지를 적절히 배합해 영혼이 바뀐다는 설정. 이전에 그런 영화가 몇있었는데 영리하게도 드라마에 써 먹었다. 안개 영상도 끝내주고. 안개가 건강엔 좋은 것이 아니라는데. 멋 내는데는 이것만한 게 없는 것 같다. 아스라하잖아.
간과할 수 없는 건, 작가가 정말 이태리 장인이 한땀 한땀 옷을 짜듯이 정성스레 쓴 대사와 심금을 웃겨 주는 배우들의 연기다. 특히 라임과 영혼이 바뀌어서 라임 흉내를 내는 현빈의 연기는 단연 압권이었고, 오스카의 고독과 코믹이 적절히 배합된 연기가 진짜 웃긴다.(그래도 역시 윤상현은 세월은 비껴갈수 없는 것 같다.)
여전히 재밌긴 재밌지만, 그래도 역시 매일 한편씩 보는 건 9회쯤 넘어가니까 좀 질리는 것도 같다. 이래서 본방사수가 재일 좋은데 말했지만 난 작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애초부터 본방사수는 과유불급이었다.
어제 10회를 보니 라임이 주원의 서재에서 봤다던 책 몇 권을 자기 책꽂이에 끼워넣은다. 택배 상자에서 꺼내는데 알라딘 상자에서 꺼내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섭섭했다. 어디 상잘까?
이걸 또 출판사와 서점이 간과할리 없지. 어제 서핑을 해 보니 '김주원과 라임의 도서 세트'가 패키지로 나왔다. 총 6권으로 되어있는데 다 민음사거다. 작가가 참 똑똑하다는 생각을 했고, 역시 요즘은 책 하나로 판로를 개척한다는 건 쉽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드라마나 영화에서 띄워줘야 된다. 그러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선택되는 책은 또 얼마나 한정적인가? 그런데 이렇게 뭉터기로 보여주니 작가가 고마울 밖에. 근데 왜 내가 고마워해야 하는 건데?
이렇게 패키지로 묵인 걸 보면 상술이란 느낌이 들지만, 그래서 안 그래도 읽을 책 많은데 이걸 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러면서 주원이처럼, "배 수완무 거북이와 두루미..."하며 이미 본 걸 잊어보려고 노력해 보지만 확실히 라임의 책꽂이에 꽂힌 책을 보니 눈이 보배라고 마음이 몹시 흔들린다. 특히 김경욱의 <동화처럼>은 하얗고 도톰한게 딱 내 스타일이다.
김도언의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은 그 제목에서 그렇고.
그런데 앨리스 증후군이란 게 있다는 건 이 드라마를 보며 처음 알았다. ‘이상한 앨리스 증후군’은 실제로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1955년 영국의 정신과 의사 토드(J. Todd)가 자신의 논문에서 소개한 증상으로, 매우 드물지만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기이한 증상들을 겪는것을 말한다.
그는 이 증상을 소설의 제목을 인용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AIWS, Alice In Wonderland Syndrome)’이라 이름 붙였다. 정신의학계에서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진 것이 없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가설은 측두엽의 이상으로 인해 시각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이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앨리스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시각적 환영(Optical Illusion)이 보인다. 또한 대체로 편두통의 병력이 있다. 물체가 작아 보이거나(micropsia) 커 보이거나(macropsia) 왜곡되어(metamorhopsia) 보이거나 마치 망원경을 거꾸로 해서 무엇인가를 보았을 때 멀어 보이는(teleopsia) 등의 증상을 호소하면 앨리스 증후군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저자인 루이스 캐럴 또한 편두통 환자였는데 그가 어렸을 때 직접 경험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소설이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다.
그러고 보면 주원은 병도 많다. 폐쇄공포증에, 불면증도 있던가? 게다가 앨리스 증후군까지.이것을 현빈 같은 멋진 배우가 앓고 있다니 용서가 되고 멋져보이기까지 하다. 쳇, 이래서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현빈이 작품 선택 하나는 잘 하는 배우 같지만 이렇게 매 출현하는 드라마마다 왕자 이미지로만 나오면 나중에 나이 먹어서는 어떻게 나올지 쓸데없는 걱정이 든다. 그런 거 보면 세상은 공평한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작가는 저 6권을 다 읽었을까? 저 여섯 권의 책을 읽으면 저런 드라마 쓸 수 있는 건가? 나도 드라마나 써 볼까? 좀 웃기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드라마 작가들은 어떻게 작품을 쓸까? 그런 뜬금없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특히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앨리스 증후군은 어찌 알고 작품에 써 먹을 생각을 했을까? 그 저의가 궁금해진다. <드라라를 쓰다>는 뭐 이런 책을 읽는다고 진짜 쓰는 건 아니겠지만 재밌게는 읽을 수 있는 책 같다.
작가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요즘은 신예 작가들이 너무 일찍 등단한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는 10대 초반의 아이가 등단하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모든 분야가 다 그렇지만 문학작품에서도 대박을 터뜨려야 한다는 묘한 강박관념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라디오를 들으니 로자문드 필처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사실 로자문드 필처는 워낙 등단도 늦었지만 처음부터 그리 주목 받았던 작가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녀가 <조개줍는 아이들>을 쓴 것은 60이 되어서야 쓴 것이고, 그것이 그녀에게 비로서 세계적 작가라는 영광을 줬다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얼마 전 타계한 박완서 작가는 40에 등단했다. 그래서 우린 한 때나마 작가의 농익은 작품으로 위로를 받기도 하지 않았던가?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만 봐도 우리가 알만한 명작들은 처음부터 명성을 얻었던 것은 아니다. 나름의 고난의 시간을 이긴 고난의 산물 이기도 하다. 너무 일찍 튈려고 하고, 천재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조급증은 작가의 세계에서도 예외는 아닌가 본데, 작가는 고독한 직업이다. 사람들 뒤에 숨어서 그와 함께 오랜 시간 동안 밥 먹고, 숨쉬고 동고동락해야 하는 직업. 유명한 작가가 아니라고, 알아줄만한 작품 하나 없다고 무시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작가의 생래적 특징이 그런 걸 어떡하랴? 그런 사람이 들 그늘에만 있으라는 법도 없고.
아, 그나저나 저 주원과 라임의 도서 셋트 사? 말아? 값도 싸 더만. 드라마 보면서 좀 더 고민 좀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