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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바이 : Good&Bye - Good&By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타키타 요지로 |
주연 : 모토키 마사히로, 히로스에 료코(2009년) |
참 좋은 영화란 생각이 든다. 또 어찌보면 인간의 다양한 직업을 소재로 이렇게 따뜻한 휴머니즘을 구사하는 영화를 만드는 일본의 영화 환경이 부럽기도 하고, 셈도 난다. 솔직히 우리나라는 드라마나 영화를 다룰 때 굉장히 한정된 직업을 가진 사람만을 다루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인물이 다소 정형화되고 캐릭터가 주는 맛이 반감이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일본을 배울 필요가 있어 보인다.
될 수 있으면 좋은 직업을 갖게되고자 하는 마음은 인간의 한결 같은 마음일 것이다. 여기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 분) 역시 그런 점에서 여느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특히 그는 오케스트라 첼로주자다. 괜찮은 아니 멋져 보이기까지 하지 않는가? 첼로 주자로서 그의 꿈이 컸을지 작은지 큰지는 알 수 없다. 컸다면 이제 막 입단한 오케스트라에서 시쳇말로 잔뼈를 굵혀 더 큰 무대로 나가기를 바랄 수도 있고, 작았다면 그냥 오케스트라가 망하지 않고 이대로 현상유지만 잘해서 1억8천만원이나 하는 빚을지고 산 첼로 값을 청산하고 사랑하는 아내와 앞으로 자식 낳고 잘 살기를 바라는 것일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비이락이라고, 오케스트라는 해체를 맞는다. 그래도 그에게 착하고 이해심 많은 아내가 있다는 건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첼로를 팔아버리고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낙향한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우연히 신문에서 여행 도우미를 구한다는 구인광고를 보고 적성에도 잘 맞겠다 싶어 무작정 회사를 찾아간다. 그런데 웬걸, 그 여행 도우미는 우리가 생각하고 다이고도 상상하는 그런 여행 도우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쇄가 잘못되서 탈자가 있는 여행도우미였다. 망자의 저승에로의 여행을 도와주는 일이라고나 할까? 더 정확히는 납관 즉 죽은이에게 염습을하고 관에 넣은 어찌보면 장례식의 가장 첫 절차를 담당하는 그런 일을 하는 것이었다. 돈은 많이 준다기에 순간 혹했지만 그런 일은 왠지 직업으로 하기는 선듯 내키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일을 천직으로 아는 다이고의 고용인 이쿠에이에게 차출되다시피 일에 매이게 되고 헤어나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빠져들고 만다.
흔히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오늘 날 자본주의화된 사회에서 이말에 동의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확실히 그 사람의 가진 직업이 그 사람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훌륭한 직업을 가졌다고 해서 훌륭한 인격을 가진 것이 아니며, 천한 직업을 가졌다고 해서 그 사람의 영혼까지 천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도 자신을 고용한 이쿠에이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결국 다이고를 이 일에 무릎꿇게 만든 건 다시 이쿠에이에게 붙들려 찾아간 어느 아내를 잃은 남자의 집을 찾았을 때다. 이쿠에이가 너무도 엄숙하게 한치의 흩트러짐 없이 염습을 하는 모습을 보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매료당한다. 그리고 이쿠에이의 염습하는 모습을 보고 다이고가 하는 고백이 제법 의미심장하다.
"차갑게 식은 사람을 치장하여,
영원한 아름다움을 주는 행위
그것은 냉정하면서도 정확하고,
동시에 따스한 애정이 넘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며
고인을 배웅한다.
고요와 평온함속에 이루어지는
모든 손놀림이 매우 아름답게 보였다."
아마도 이런 고백을 할 정도라면 이쿠에이의 염습은 달인의 경지였을 것이고, 그것은 남아 있는 자들에게 적지않은 위로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찾아간 집의 주인장은 아내를 수십 년 봐왔지만 오늘이 제일 예뻤다고 말했을 정도니 이쿠에이는 확실히 장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영화가 진행되면서 두 사람의 염하는 모습은 너무나 진지하고 완벽해 보이기까지해 보는 나도 빠져들 것만 같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20년 전 세상을 떠나간 나의 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장례식장에서 아버지를 마지막 만나러 갔을 때, 아버지는 베옷을 입고 계셨다. 지금은 망자에게도 화장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때 아버지는 화장기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 하긴, 살아계셨을 때도 사시사철 스킨과 로션 외에는 아무 것도 바르시지 않으셨는데 망자가 되셨다고 새삼 화장을 좋아하셨을리 없다. 그때 슬픔에 한없이 울고 있던 중에도 과연 누가 아버지께 저런 옷을 입혀드렸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아마도 영화에서처럼 가족도 염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적잖은 위로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것은 유적들에겐 공개되지 않았고, 괜히 애꿎은(?) 문상 온 사람들과 조화에서 위로를 받으려 했던 것 같다. 나는 지금도 아버지에게 염습을 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알지도 못했다.
사실 인간이 가장 성숙해지는 때는 꿈을 이루었을 때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겪어봤거나 죽음을 목도했을 때다. 그런 의미에서 늘 남의 죽음을 목도해야 하는 직업적 속성상 두 사람의 삶은 겸허할 수밖에 없고 깊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일을 하면서 다이고는 여러 가지 인간의 죽음의 군상을 보게 된다. 물론 죽음 자체는 살아있는 자에겐 많은 슬픔과 회한을 남기는 것도 사실이다. 죽은 이유도 제 각각이어서 어떤 사람은 가스로 질식해 자실을 하고, 어떤 사람은 병으로 죽기도 하고, 또 누구는 가족의 사랑과 축복속에 세상을 마감하기도 한다. 거기서 깨닫은 것은 죽음이 그렇게 마냥 고통스럽고, 슬픈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군가를 슬프게 하지 않고 떠날 수 있는 삶과 죽음이라면 정말 참 좋겠다. 그렇게 남의 죽음을 목도하고 염습을 하다보면 살려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게 얼마나 허망한 것이며, 미워하다가도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죽으면 그만인 것을 인간의 애증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다이고가 이 일을 하므로해서 얻은 가장 큰 이득은 평생 용서하지 못할 것 같은 아버지를 용서하게 되는 과정일 것이다. 영화는 그게 정말 잘 표현 되어있다.
그러나 역시 다이고는 아직 산 사람이다. 그렇게 죽음에 예를 갖추는 일을 하고 마음을 비우며 겸허한 태도로 살려고 해도 순간 순간 위기는 다가온다. 아내에게만은 한없이 멋진 남편이고 싶은 다이고. 그러나 언제까지고 자신의 일을 숨길수만은 없었던 그도 결국 기로에 선다. 아내냐, 일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그러나 일을 그만 둘 수 없었던 다이고는 아내가 집을 나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그가 그런 일을 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가까운 친구마져 등을 돌린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를 떠났던 아내가 얼마 안 있어 다시 돌아온다. 이젠 모든 것이 잘될 줄만 알았는데 더 큰 복병을 만난다. 그것은 아내가 임신을 한 것. 모든 것을 이해해 주고 묵묵히 지켜봐주는 아내는 고맙지만, 장차 태어날 아이에게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따돌림을 당할 것을 생각하면 그는 당장 그 일을 그만 두어야 한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역시 직업은 사명이며 그 일을 할 수 밖에 운명지어졌다면 그건 또한 천명이란 생각을 들게 만든다. 그렇게 다이고의 몇번의 위기와 몇번의 갈등이 또 너무나 당연한 귀결처럼 풀려서 다시 한번 그 일이 자신의 천직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만큼 시나리오는 흠잡을 때없이 완벽해 보인다.
세상에 의미없이 존재하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런 것처럼 세상엔 나를 잡아끄는 일. 또는 그 일을 아무리 안하려고 해도 결국 다시 붙들게 되는 일이 있다. 가끔은 그 일이 뭔지 나 또한 알고 싶다. 나는 아는데 안하는 것인지,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건지 헷갈릴 때가 너무 많다. 어떤 사람은, 하다보면 그게 내 일이지 운명 같은 일은 없다고도 말하기도 한다. 정말 그럴까? 될 수 있으면 좋은 직업과 좋은 경력 쌓겠다고 이 줄에서고 저 줄에서고, 심지어는 세상에 평생 직업이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영리하게도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느껴진다. 그래서 스펙이야 넓어질지 모르지만 그 일에 다이고나 이쿠에이처럼 자신의 전 생애와 영혼을 걸게는 안 될 것 같다. 돈을 쫓지말고 (남을 유익하게 만드는) 일을 쫓으라는 말은 아직도 유효하다고 믿고 싶다.
직업의 귀천이 없다는 말을 했지만, 모든 사람이 천히 여기는 직업이라고 해서 그 직업이 정말 천한 건 아니다. 누군가는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다. 예를들면 환경미화원들이 하는 일이다. 그들이 없으면 우리의 환경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런데도 그 직업은 예나 지금이나 그다지 대접 받는 일이 아니다. 또한 각광 받는 직업이라고 해도 소위 말하는 3D 분야는 있게 마련이다. 그래도 그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이름도 없고 빛도 없지만 자신의 전 생애와 인격과 영혼을 바친 일이기에 나중에 누군가는 알아주고, 누군가는 그에게 머리를 조아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직업엔 귀천이 없다.
지금 자신의 하는 일이 마음에 안 들고, 부끄럽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영화는 그런 사람들에게 강추다. 그렇지만 이렇게 인간의 삶과 죽음에 통찰을 주는 영화는 흔치 않으며 일부러라도 창겨서 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이 영화는 너무 착한 영화다. 누구도 모나고 악한 사람이 없다. 더구나 다이고는 착하다 못해 약간은 멍청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진지하다. 첼로 켜는 염습하는 사람.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지만 이 영화에선 나름 멋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다이고의 스승격인 이쿠에이가 가장 볼만하다. 어쩌면 한결 같이 정중동의 연기를 펼칠 수 있는지 역시 빛바래지 않는 노장의 연기가 멋지다. 미장센도 뛰어나고. 특히 죽은 사람의 사체가 사실감이 느껴진다. 영화의 흐름은 마치 소설을 보는 것 같다. 보면서 소설 '애도하는 사람'이 생각나기도 했는데 그 소설의 주인공이 애도하느라 그 고생하지 말고 염습하는 사람이 됐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2009년 몬트리올 영화제 대상을 받았다는데 과연 받을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