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밖 아이들 책으로 만나다 - 스물여덟 명의 아이들과 함께 쓴 희망교육에세이
고정원 지음 / 리더스가이드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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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펼치기 전까지 만해도, 과연 책이 사람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 별반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나야 어렸을 때부터(또는 태어날 때부터) 극단적인 부자이거나 극단적인 불우한 형편은 아니었고, 딱 중간치의 삶을 살아왔던바 중간치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 늘 그렇듯 평범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삶도 아닌 삶을 유지하며 산다. 늘 책을 가까이 하려고 했고, 실제로 내 방 어디든 손만 뻗으면 책이 닿는 구조다. 그런 나의 삶이 모자라지도 부족하지도 않을진대 책이 좋으면 얼마나 좋고, 책이 나를 변화시켰다면 얼마나 변화시켰겠는가? 상처도 받아 본 사람만이 그 치유 방법을 안다고 했다. 물론 상처 안 받고 살아 온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만, 그렇게 책을 읽고 살아 온 나에게 과연 책이 얼마나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엔 주목해 보지 못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다시 기억 나는 건,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가 본 사람들이 다시 그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과정 중 하나 같이 책을 읽는 것이었다는 한 말이 기억이 났다. 즉 건강을 잃고, 집이 쫄딱 망하고 책을 읽고 재기에 성공했단 말이다. 그만큼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책의 효용성과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것은 아마도 책이 지식과 지혜를 얻게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글쓴이의 공력과 영혼이 녹아져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러니 책을 읽지 않는다는 건 마음의 양식 더 나아가 보약을 싫다고 거부하는 것과 같은 거란 생각이 든다.

 소위 '문제아'라 지칭되는 아이들은 유년기와 청소년들에게서 이르는 말로 이들은 책도 안 읽을 것만 같다. 물론 실제로 그렇긴 하다. 하지만 이렇게 문제아는 책도 안 읽을 것이라고 지레 판단해 버리는 선입견은 아닐지? 생각해 보면, 그들만큼 책을 필요로하는 영혼이 또 있을까? 그런 아이들에게 우린 얼마나 책을 읽을 환경을 만들어주었으며, 한 번이라도 책을 읽어보라고 권한 적이 있던가? 부모와 교사들은 내신 관리와 대입에만 온통 집중이 되어있고, 혹시라도 내 아이가 문제아(들)과 함께 어울려 물들까봐 그들 곁엔 가지도 못하게 만든다. 내집 아이건, 남의 집 아이건 그 아이가 잘못된 길로 가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어른이 모범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그러니 우리의 '문제아들'은 두 번 버림을 받는 것이다.

이제 책은 마음의 양식이니 영혼의 보약이니 하는 다소 고루하고 보수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치료와 교육의 현장에서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독서 치료'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일 것이다. 이 책은 소위 말하는 '문제아'(솔직히 이 단어가 그다지 써먹기엔 좋은 단어는 아닌성 싶다. 그맘 때 문제아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도 겉으로만 들어나지 않고 선 밖으로 벗어나지만 않았다뿐이지 알고 보면 나도 문제아는 문제아다. 쉽게말해 '경계성 문제아'쯤 되지 않을까?)를 저자가 책과 만나게 해 줬을 때 아이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어났는가를 쓴 일종의 보고서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문제아의 유형은 몇 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 자살 미수, 결손 가정에서 자란 이이, 부모님으로부터의 마음의 상처를 받은 아이, 성적 수치심에 사로잡힌 아이,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등등. 그때마다 저자는 그에 맞는 책들을 선정 해 아이들과 함께 읽으며 토론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노력을 한다. 그 과정들을 읽으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감탄이 절로 나지 않을 수가 없고, 정말 머리를 숙여 고맙다고 인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저자는 말한다. 학교를 떠난 아이들에게 섣불리 책을 권하면 반발을 사기 쉽다. 일단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야 한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신뢰감이 생길 때, 책 읽기도 즐거운 만남의 일부라는 것을 서서히 일깨워 줘야 한다. 책을 활용한 여러 가지를 만들어 흥미를 유발하고, 어느 정도 관계가 형성된 후 책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좋다.(22p)

책의 구성은, 각 아이들의 문제를 사례별로 나열하고 각 쳅터가 끝나는 마지막장에 사용된(?) 책들의 간단한 소개를 싣고 있다. 읽다보면 과연 저자가 이 책을 다 읽었을까?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아이들을 치료하고 그 문제에서 나오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단 말인가? 

마침, 기회가 좋아서 나는 작년 12월에 저자 강연회도 다녀왔었다. 강연회는 상당히 편하고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진행이 됐는데, 주로 저자의 이제까지의 활동 상황을 듣는 방식이었다. 그것을 들으면서 한 가지 주목할만한 것은 저자는 학교에서 지역사회 전문가로 일 하면서 아이들을 어느 한 시기만 잠깐 만나고 만 것이 아니라, 1년에서 2년, 많게는 몇년을 두고(그 아이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것을 보기까지 계속적으로)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볼 때 교육이란 결국 지속적인 관심이고 가슴으로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우리가 아는대로 우리나라 교육은 너무 주입식이며, 획일화 되어 있다. (대학을 제외하고라도) 정규 학교만 9년을 배우지만 인격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지식인 또는 어느 정도 교양을 갖춘 사람으로도 졸업하지 못하고 학교를 나온다. 대학을 졸업해도 자신이 뭘해야 하나 막연해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교육은 원래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한 영혼을 올바로 키워내는 일인데, 그것이 나무 모판 찍어내듯 획일화된 교육을 받게 한다고 해서 될 일인가? 누군가는 말한다. 교육은 콩나물에 물주기와 같은 거라고. 잊어버릴만하면 또 가르쳐주고 또 가르쳐주고 그렇게 해서 키워내는 거라고. 맞는 얘기이긴 하다. 하지만 콩나물은 그렇게 해서 자란다. 하지만 사람은 별로 자라는 것 같지가 않다. 적어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 정말로 학교가 나를 이만큼 키워줬다고 고마워 하며 학교를 떠나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지겨운 학교 졸업하게 됐다고 오히려 쾌재를 부르는 아이가 더 많지 않을까? 

얼마 전, 인문고전을 읽을 필요성을 역설한 한 저자의 강연회를 다녀온 적이 있다. 원래 옛날 유럽식 교육은 가정 교사가 상주해있고 아이가 교과 내용을 이해할 때까지 가르쳤다고 한다. 물론 있는 집 자식들의 경우다. 하지만 그 아이가 이해할 때까지 가르쳤다는 점에선 상당히 고급한 형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이 맞는 교육의 형태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원래 사람의 영혼이란 고귀하고 섬세한 것이 아니던가? 그것을 무조건 획일화된 학교 교육의 틀에 맞춰 두부모판에 찍어나온 두부마냥 가르칠려고하니 적응 못하는 사람은 '문제아'라고 치부될 수 밖엔 없다. 그들의 외침은 오히려 당연해 보이기도 하다. 결국 그들은, 나 좀 봐달라고, 나를 도와 달라고, 더 나아가 나에게 맞는 교육 좀 받게 해 달라고 온몸을 다해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저자의 강연회 때 나는 아주 우문 같은 질문을 했다. 내가 아는 어떤 교사는, 드물게는 매를 들어야 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방법이 아닌 정말 저자 같은 방법으로도 아이들은 변활 수 있다고 보는가? 그때 저자는 아주 조심스럽게(어찌보면 겸손하게) 그렇다고 보는 거라고 대답했다. 하긴, 물론 저자의 방법이 교육의 모든 것도 치료의 모든 것도 대변해 준다고는 할 수 없다지만, 어느 일정 부분 아이들이 제 길로 돌아서는 것을 보고 있지 않은가? 교육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인데 매로 아이들을 다스려보겠다는 것은 또 어찌보면 단기간내에 승부수를 보거나 그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교사를 대변해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실제로 저자는 학교에서 일하면서 교사가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지 안타깝게 생각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렇게 아이들이 변화되는 것을 보면 놀랍잖은가? 그렇지 않아도 저자는 정말 자신이 즐거워서 그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뉘라서 남의 집 아이를 그렇게 돌 볼 수 있을까 싶다. 

확실히 아이들을 학교 공부만 가지고는 안되는 부분들이 있다. 이렇게 저자 같이 지역사회전문가가 학교 곳곳에 배치가 되어서 아이들을 좀 더 세심하게 배려해 주는 뭔가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에 비해 이런 저자 같은 사람이 받는 대우는 터무니 없이 미약한 것이 또한 교육현실이기도 하다.

아울러 말하고 싶은 건, 책에 소개된 여러 사례의 아이들의 유형이 지금도 어디선가 외롭게 소외되어 있을 것이다. 그들을 혼자 두거나 그들끼리만의 집단을 형성해서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들도 어느 때가 되면 다른 건강하고 평범한 아이들과 섞여서 건강한 사회인으로 자라갔으면 좋겠다. 

저자에게 진정으로 가슴으로 울어난 박수를 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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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1-21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제가 찜해놓고 있는 책이라서 리뷰도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과연 교육이 지향해야할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근본적인 물음이 생깁니다. 변변한 지식없이 이런 근본적인 물음이 생기기 시작하면 참 대책없습니다만.

stella.K 2011-01-21 13:12   좋아요 0 | URL
작년에 몇 분의 작가 강연회를 다니면서 그분들 하나 같이
책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하는데 좀 실망스럽더라구요.
심지어 작가 김훈 선생까지도.
뭐 나름 겸손하시느라 그러셨을지 모르겠지만 책도 사람의
목소리와 영혼이 묻어나는 건데 그게 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겠어요?
그러고 보면 자신들이 이 책을 세상에 내놓음으로서 져야할 어떠한 책이도
지고 싶지 않다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교육을 담당해야 하는 사람들은 할 수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재료로 하려고 하잖아요. 하물며 책이야...! 정말 책 만드는 사람들
잘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글치 않아도 h님은 관심 있어하실 줄 알았어요.^^

책가방 2011-01-21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대 초반에 <10대들의 쪽지>로 상담편지를 보내오는 아이들에게 답장을 보내는 봉사를 한 적이 있었답니다. 그때 갓 10대를 넘긴 제가 그들의 고민을, 그들의 문제를 읽고 상담해 줬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그지 없네요.ㅋ
유일하게 해 줄 수 있는 게 책 추천을 해주거나 책의 내용을 인용해서 들려주었는 것 이었던 것 같네요.
그 아이들이 지금은 30대초중반을 살고 있을텐데... 과연 그때 나의 편지들이 도움이 되었을까 싶은 궁금증이 생긴답니다.
물론 지금은 같이 나이들어 가는 처지이긴 합니다만..ㅎㅎ

stella.K 2011-01-22 10:33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예전에 주일학교 교사를 한적이 있는데
지금은 걔네들이 아줌마, 아저씨들이 됐더라구요.
처음 만났을 땐 정말 앳됐는데 사람이 나이들면 다 비슷해지는 것
같더라구요.^^

cyrus 2011-01-21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육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지만 문제아를 위한 독서치료,
참 좋은 방법인거 같아요. 그리고 학생들에게 세밀하면서 따뜻한 관심. 역시
중요한거 같습니다.

stella.K 2011-01-22 10:36   좋아요 0 | URL
이 책 읽으면서 내가 참 교사들에 대해 잘 몰랐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런 선생님도 있구나 싶은게 다시 보게 되더라구요.
저자는 정말 좋아서 그 일을 하는 것 같더라구요.
저도 사춘기 아이들과 함께 있어 봤지만 솔직히 걔네들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거든요. 물론 선입견이었지만.^^

양철나무꾼 2011-01-23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년,2년 아니면 몇년 정도 되면 삶의 한부분을 같이 사는 거라고 할 수 있죠~
아직까지도 이런 분들이 계셔서 참 다행이예요~^^

stella.K 2011-01-23 19:30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