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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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병이 있다 

작가 김애란이 80년 생이란다. 나 보다 한참 어리긴 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그녀는 결코 어린 나이가 아니다. 그맘도 30세를 훌쩍 넘긴 나이니. 글쎄, 이 30대란 나잇대를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 앞에서 세자면 적지 않은 나인데, 뒤에서 세보면 그 나이도 어리다. 사춘기를 어린이도 아닌 것이 어른도 아닌 것이 어찌보면 괴물 같기도 하다고 했다. 30대가 또 좀 그렇지 않나 싶기도 하다.  내 나이 스물 다섯도 많다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되면 어떻게 하나 막막한 느낌이었는데, 내 나이 30이 되었을 때 뭔가의 강 하나를 건너 온 느낌이었다. 하지만 난 그저 강 하나를 건넜을 뿐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확실히 그때도 젊었고, 어른이 되기엔 아직도 어린 나이란 생각을 한다.  

나에겐 병이 있다. 젊은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는 병. 특히 다른 분야는 몰라도 문학에서 어떤 젊은 작가가 나름 문단계에서 주목을 받고, 그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해도 난 여간해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젊은 패기 하나는 인정해 줄지 몰라도(가능성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의 실험적인 문장, 뭔지도 모를 현학적인 미사여구에, 안 그래도 느림보 독서인 나는 그런 것들을 붙들고 있을 시간적 여력이 없다.  그리고 어떤 책이든 독서를 꾸준히 해 온 타입이라면, 이책은 내가 읽을 수 있는 책. 이건 좀 나랑 안 맞을 것 같은 책을  구분하게 된다. 물론 개중엔 파악이 어려운 책도 있다. 그런 책들은 읽어보기 전엔 뭐라고 평가하기 어려운 책이다. 그런 내가 김애란만큼은 정말 넘어가기 힘든 난맥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작가의 명성을 몇 년 전부터 익히 들어왔고, 작가의 첫 장편에 워낙에 반응이 뜨거웠던터라, 그냥 넘기기엔 뭔가 아쉬움이 남을 것만 같았다.  

작가가 극작을 전공해서일까? 대사의 감칠맛이 있고, 모든 소설가는 처음엔 다 시인이었다는 속설이있듯, 작가 역시도 시 꽤나 읽은 양, 싯적 문장도 나름 돋보인다.  게다가 주인공 아름이 서하와 이메일로 주고 받은 편지는 오래 전에 읽었던 <소피의 세계>를 연상케도 했다. 그런 것으로 봐 작가가 얼마나 가능성이 많은 사람인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육체의 물음         

이책을 읽으려니 최근 난 본의 아니게 인간의 육체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하게 만드는 책을 읽었던 것이 기억이 났다. 그것은 다름 아닌, 스콧 피츠제럴드의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와 박범신 작가의 <은교>였다. 읽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스콧 피츠제럴드의 작품은 인간의 육체를 거꾸로 되돌리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과연 무엇인가를 압축된 문장속에 진지하게 묻고 있다. 또한 박범신의 작품은 육체의 소멸의 과정을 통해 인간의 오욕칠정을 과감하면서도 강렬한 문체로 보여준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조로증을 앓고 있는 한 소년을 통해, 너무 일찍 노쇄 해버린 인간의 육체가 정신의 발달을 뛰어넘는 한계 상황을 담담하게 표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다면 주인공 한아름이 아직 겪지 않아도 되는 노화 과정에서 걸릴 수 있는 병을 몸소 겪으면서, '육체는 철저하게 독자적이다'라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건강할 땐 몰랐던 육체의 고통이 도대체 내 몸 어디에 숨어서 나를 이토록 처절하게 아프게 만드는가? 그런데 비해 우린 건강할 땐 너무나 그것을 잊고 몸을 함부로 대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작품에 없는 것.  

얼마 전, 조경란 작가를 만났던 자리에서 그녀는, 요즘 젊은 작가들의 글쓰기 태도에 대해 부럽다는 말을 남긴 것을 기억한다. 자신은 너무나 힘들고, 때론 고통스럽게 쓸 때가 많은데 요즘 젊은 작가들은 정말 즐기면서 작업을 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만일 실제로 그런 작가가 있다면 그건 정말 문학을 너무 쉽게 보고 하는 것이고, 그들도 글이란 쓰면 쓸수록, 문학은 알면 알수록 어려운 대상임을 시마다, 때마다 알게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또 조경란 작가만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박범신 작가는 그의 한 산문집에서, 요즘 젊은 작가는 모든지 다 잘한다고 했다. 그들의 주특기인 글쓰기는 물론이고, 연애도 잘 하고, 공부도 잘하고, 취미 활동도 잘하고 한마디로 만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매력은 없다고 했다. 그들은 (아직) 진정한 결핍이란 게 뭔지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나도 그 말에 동감한다. 이 작품을 보라.  어디에 결핍이 나타나는가? 어디에 생에 대한 갈망과 처절함이 베어 있나? 놀라웠던 건, 문체의 미학은 어느만치 구축한 것 같지만, 작품 전반은 너무 착함이 흐른다. 17세. 한창 혈기가 방자할 때 죽음을 맞이하게 된 한아름이 과연 소년다운 데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몸이 조로라고 해서 영혼도 애늙은이 일수는 없다. 마치 자신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살다가 죽을 사람처럼 모든 것에 초탈하다. 그것도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은 자신이 죽을 때가 되면 안하던 짓도 하고, 인생의 모험을 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자신을 태워버리기도 한다는데, 그래도 꼭 한번은 자기 생의 모험을 감행하는 뭔가가 있어줘야 하지 않는가? 육체가 그렇다고 해서 정신까지 그렇게 그려버리는 작가가 나는 아쉬웠다. 모르긴 해도 작가는 주인공에 대한 천착이 부족한 듯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 뭘 하고 싶냐는 물음에 계속 모호한 대답으로 일갈하지 않는가?

 그나마 서하와 뭔가의 섬씽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또 알고 봤더니 사이버 가상 인물로 밝혀져, 아름은 고사하고 읽는 나도 뭔가 사기당한 느낌이었다. 후에 장씨 할아버지와 뭔가의 모험이 있을 줄 알았는데, 고작 한다는 것이 미라를 설득해 아름과 함께 외출을 해 소주팩에 빨대를 꽂아 빨아 먹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왜 그리도 진지한 걸까? 아름이 생애 마지막 외출인데 휘날레 치곤 너무 노회한 행동이란 생각이 들었다.  같이 늙었지만 장씨 할아버지는 아름에게 나름 젊은이라면 할 수 있는 뭔가의 미션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줬어야 한다. 그래야 아름이 죽었을 때 섭섭치 않게 이승을 떠날 수 있지 않은가? 그런 가능성이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꼭 있어야만 했던 것  

그건 뭐 남의 작품이나 말할 자격이 없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명백히 없는 것이 있다. 그건, 인간의 '오욕칠정'이 없다. 이것을 얼마나 잘 구사하느냐에 따라 작가의 역량이 인정을 받기도 하고, 못 받기도 한다. 앞에서 예로 들었던, 같은 육체를 그려도 <은교>나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보라. 이것을 얼마나 능숙하게 구사를 하고 있는가? 특히 '은교' 같은 경우는 이것을 끝까지 밀고나가 독자들까지도 벼랑 끝에 서게 만든다.  물론 여기서, 그들은 연륜이 쌓인 대작가가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물론 작가의 연륜 무시 못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무마하기엔 김애란 작가는 충분히 재능있는 작가다. 젊다면 젊은 패기가 보여져야 하는데, 그녀의 세계는 결핍, 간절함을 알기엔 너무 충만한 세계속에서 유유자적 해 보인다.  

또 이렇게 말하면, 문학이 이렇게까지 엄숙할 필요가 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냥 가볍게 읽고 넘기는 소설도 소설은 소설이 아니냐고. 물론 취향의 문제일텐데, 물론 난 거기에 반론을 재기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유사이래로 문학은 이 인간의 오욕칠정의 문제를 가지고 다양한 변주를 하며 두터운 층위를 구축해 왔다.  취향 가지고 말하는 건 너무 문학을 쉽게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느 순간이 되면, 문학은 무엇이냐, 문학은 어때야 하는가 하는 진지한 물음에 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참고로, 고 장영희 교수는 자신의 산문집에서 자신을 문학의 길로 이끈 한 은사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정의했다. 문학은 삶의 '교통순경'. 교통순경이 차들이 남의 차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자기 차선을 따라 반칙없이 잘 가고 있는가를 지키듯이, 문학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진정 사람답게, 제대로 살아가도록 우리를 지킨다......"('문학의 숲을 거닐다' 39p)  또한, 박범신 작가는 자본주의 물결속에서 인간 본질이 무엇이고, 그것으 지켜나가는 것. 그것이 문학의 길이라고 말한 바있다. 그러므로 문학은 절대로 적당히 취급되거나 만만히 보아야할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문체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여기서 내가 아직도 젊은 작가들을 신뢰하지 않는 건, 그들은 문체만 좋으면 다 좋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의심을 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체는 그 작가의 고유의 색깔을 결정짓는 나름 중요한 분야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기능적인 측면이지 전체로 확대해석 해서 보는 건 좋지 않다. 나는 본 작품에서, 아름과 서하가 나는 이메일 편지를 주고 받는 것이 좀 지루했는데, 이것은 자칫 신파로 나갈 우려가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 작품이 이토록이나 들끊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읽어 본 사람들은 하나 같이 문체가 좋다고 하는가 본데, 문체에 가려 결국 문학의 본질은 체 건드리지도 못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아 보인다.  조로는 아름이가 아니다. 자본주의를 경계하지 못한 인간의 성과주의가 조로다. 마케팅에 힘 입은 작품이 독자의 입소문을 타고 번져갔다. 덕분에 나도 낚시에 걸렸지만, 그래서 작가에게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도록 만든 꼴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요즘, 4,50대 빠르면 30대에 자서전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출판사도 먹고는 살아야겠지. 하지만 귀한 자식일수록 엄하게 다루랬다고, 가능성 있는 작가가 너무 일찍 조로를 경험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그것과 관련해서 조금 다른 얘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위대한 탄생' 그렇게도 지탄해 마지 않는 건, 이런 이유와 같은 맥락이다. 이제 스물 갓 넘은 친구들이 노래 하나 잘 부른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성공한 양 해 버리면 그들이 겪을 정체성의 혼란과 자본주의 물결을 거슬러 진정한 가수로 설 수 있을지, 겉포장의 화려함이 번데기의 과정을 겪지 않은 나비로 착각하지는 않는지 한심해 보였다.  요는 그만큼 자본주의는 생각보다 치명적일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성숙의 문제 

그래. 조경란 작가의 말대로 요즘 젊은 작가가 글을 즐기며 쓴다면, 그들은 절대로 혼자 외롭게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충분히 즐길거 다 즐겨가면서 작업할 것이다. 과연 그래서 좋은 작품이 나오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내가 볼 때 주목 받은 작가의 첫 장편이란 호들갑은 맞지 않아 보인다. 이건 중편 이상 나올 것이 없으며, 필요하면 단편으로도 충분히 쓸 수 있는 작품이었다. 에필로그 이후 더 나올 이야기는 없어 보이는데 뭔지 모를 에필로그가 또 붙는다. 어쩌란 말인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적어도 난 30대 말이 되고, 40이 넘어보니 비로소 사람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친구와 만나 1시간만 그 얘기를 들으면 그걸 글로 옮겨보고 싶어진다. 아, 이 친구의 얘기를 글로 옮길 수만 있다면...! 그는 그냥 수다를 떤 것이겠지만, 그 안에 인생의 역경과 희노애락과 얼마나 자기 본위적인가가 들려 그것을 글로 써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런 것처럼, 그 이전엔 사람말이 잘 안 들렸다. 내 아집이 강하고, 생각이 많아서. 지금이라면 쓸수 있을 것도 같다. 그만큼 글을 쓴다는 건 마라톤인 것 같다. 

작가들에겐 30대의 문학이 다르고, 40대 문학이 다르고, 50, 60대 문학이 다르다고 한다. 난, 김애란 작가가 세상 평가에 휘둘리지 말로 오롯이 자신의 길을 갔으면 좋겠다. 나로선 처음 대하는 그녀의 작품이지만, 난 이 정도의 느낌 밖에는 가질 수 없었다. 나에겐 좀 더 지켜봤으면 하는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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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7-05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이런 시각으로 보여질 수도 있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꼭 같은 의견일 필요 없잖아요 ^^

stella.K 2011-07-05 17:04   좋아요 0 | URL
저에겐 완전 낚시였어요.ㅠ

2011-07-05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6 1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06 2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1-07-05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스텔라님의 생각 중 젊은 작가들의 글에 대한 부분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제가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 때마다 더 어렸을 때 전부라고 생각했던 세계가 얼마나 빈약했는지를 알아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구요.

stella.K 2011-07-06 11:50   좋아요 0 | URL
사실 이글 쓰면서 참 만감이 많이 교차하더군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 역시 칭찬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래서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우리나라 문학이
도대체 뭘 할 수 있지? 묻지 않을 수 없더군요.
지금 다시 읽어보니 이음새가 투박하군요.
그래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브랑카님.^^

cyrus 2011-07-06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 책에 대한 블로거들의 관심이 많더군요. 사실 작가 이름도
처음 들어봤어요,, ^^;;

stella.K 2011-07-06 11:52   좋아요 0 | URL
ㅎㅎ 나름 문단계에선 유명한 아이돌인데.
하긴 아이돌이란 말이 좀 어색하지만
문학계 아이돌과 가요계 아이돌을 같이 보면 클나죠.^^

무해한모리군 2011-07-06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느낀 밍숭한 느낌의 실체가 오욕칠정이었군요.
사실 매일매일 오그라드는 일만 남은 삶일지라도 그걸 놓는게 쿨해질리가 없는데 이 소설은 참 쿨하죠.. 어떤 일말의 불편함도 독자가 느낄 필요없는 매끈함. 제겐 잘읽고 다시 들쳐볼 일이 없는 무수한 책중 하나였어요 ㅎㅎㅎ

stella.K 2011-07-06 13:09   좋아요 0 | URL
처음 읽을 땐 문체가 좋아서 나중에 소리내서
재독해야지 하다가 그냥 안하기로 했어요.
저도 휘모리님과 같은 생각이라.^^

프레이야 2011-07-07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여기저기 평이 좋은 편이라 관심을 두고 있는데
스텔라님의 조금은 다른 방향의 리뷰 잘 읽었어요.
전 김애란의 작품음 하나도 안 읽어봤구요. '은교'는 정말 강했어요.
연륜에서 묻어나오는 적지 않은 것들,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노인의 눈은 그래서 젊음의 눈과는 다른 깊이가 있을 거라는 믿음, 저도 있답니다.
우리 나이엔 더더욱 그러고 싶어지는 단계에 있지않나싶구요.
아, 그런 글 한 줄 쓰고 죽으려나요.

stella.K 2011-07-07 11:49   좋아요 0 | URL
이책 읽고 뭔지 모를 분노가 옹송거리고 있었어요.
뭔가를 속이고 있다는 느낌.
김애란은 그냥 내비둬도 알아서 잘 클 사람인데,
오히려 매스컴의 지나친 스폿라이트가 가만 놔두질 않는구나.
이 싸구려 상업주의의 천박함을 마주 하는 것 같아서
정말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제가 너무 지니친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프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또 한번 발동걸리면...아시잖습니까?ㅋ
맞아요. 이 마음 가라앉힐려면 최근 나온 박범신의 소설을
읽어줘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ㅠ

보물선 2011-07-12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무척 기대하며 읽었는데
읽고 나니 허전한 느낌이었어요. 뭔가 약하구나~
스텔라님이 그걸 조목조목 적어준것 같다니깐요^^*

근데 <물속골리앗>이라는 단편은 달랐어요.
이 작가, 잘 크겠구나.. 응원해줘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작품마다 편차가 있을 수는 있다. 대작가도 그렇다... 하는 생각두요~

이런 솔직한 리뷰, 꼭 필요한것 같아요.
같은 느낌을 가진 저같은 사람에게 위로가 된다고나 할까요?




stella.K 2011-07-12 15:44   좋아요 0 | URL
보물선님, 반가워요.
한사람님 서재에서 뵜는데...ㅎ
이 작품 하도 화가나서 글 한 편 또 썼어요.
이제 좀 풀어질 때도 됐는데 말이어요.
저의 부족한 글이 위로가 된다니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암튼 감사해요.^^

2022-12-17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기 수 결혼하다 - Peggy Sue Got Marrie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주연 : 니콜라스 케이지, 캐서린 터너

언제 나온 영화인지가 분명치가 않다.  일단, 감독이 영화 <대부>의 프란시스 코폴라라는 것만으로도 이 충분히 보게 만든는 것 같다. 그런데 좀 놀라운 건, 감독이 <대부>에서 워낙에 강한 마초로 각인된 인상 때문에, 어떻게 이렇게 달달한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을까, 약간은 믿기지 않는다.  

  

이 영화엔 우리가 알만한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보다시피 니콜라스 케이지를 비롯해 짐 캐리, 헬렌 헌트, 캐서린 터너 등이 등장한다. 이들이 저런 젊은 모습이었다면 글쎄, 못해도 20년 전 필름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이들이 영화에서 나오는 건 60년대를 배경으로 한 10대 말과 40대 초반을 연기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실제 나이는 어림잡아 30대 초중반은 되지 않았을까?  

영화는 시간여행을 배경으로 한다.  결혼생활에 염증이난 페기 수(캐서린 터너)가 남편 찰리(니콜라스 케이지)와  이혼 수속을 밟고 있는 중, 고등학교 동창 파티에 갔다가 실신하고, 그 와중에 페기가 시간여행을 하게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이 된다.  

그동안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작품속에서, 자신은 가까운 미래에서 왔다며 유행했던 문화상품을 과거로 끌고 들어와 대단한 것인 양 호들갑 떠는 게 구태의연 해 보인다. 이 영화도 그런 감이 없지는 않은데, 예를들면 페기 수가 속옷 가게에 들어가 팬티 스타킹이 있냐고 묻자 주인은 없다고 했다. 물건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 자체가 만들어지기 이전이란 걸 암시한다. 그래서 그녀는 팬티 스타킹을 만들어 대박을 노리고 있다. 그런 것들이 구태의연해 보인다는 것이다. 그다마 다행인 건 그건 아주 잠깐 살짝 보여주고 지나가는 정도. 영화가 관객을 자연스럽게 끌어 들여야지 강제로 설득하면 그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프란시스 코폴라는 알았을까? 아무튼 다행이다 싶었다. 

만일 나도 시간여행을 한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 나 역시 20대로 돌아가고 싶다. 그러고 보면 모든 영화들이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면 약속이나 한듯 20대로 되돌려 놓는다. 물론 이 영화는 그보다 조금 앞서 있기는 한다. 그래도  아무리 분장술이 발달을 했다고 해도 이미 나이들은 배우를 10대로 복원하기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아무리 잘 봐줘도 20대 말 정도로 밖엔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어쨌든 그건 아무래도 젊음이 만발한 시절이라 그럴 것이다. 그리고 어찌보면 인간의 노화에 대한 보상심리 같은 것인지도 모르고.  

영화가 달달하긴 하지만 나름 던져주는 메시지도 있다. 이를테면, 결혼도 때로는 추억을 먹고 자라야 한다는 교훈쯤 될까? 많은 사람이 결혼은 외로움 끝, 행복 시작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그래놓고 실제로는 인생의 무덤으로 만들기도 한다. 영화의 주인공 페기와 찰리도 처음엔 그랬을 것이다. 행복에의 부푼 꿈으로 시작했다 서로의 증오와 혐오만을 간직한 채 막을 내리려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왕 시간여행을 시작하게 된 페기.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찰리만을 사랑하다 결혼한 게 억울했을까? 같은 학교의 괴짜 문학소년과 바람을 피운다. 그래도 역시 운명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역시 결론은 찰리를 사랑해서 결혼을 하게 되는 것 끝을 맺고 있으니. 이렇게나 저렇게나 결론은 한 가지다.  

결혼한 많은 부부가 다음 생에도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하겠냐는 질문은 이미 우문이 된지 오래다.  당장 다음 생까지 갈 필요도 없다. 이생에서 한 배우자와 몇 십년씩 산다는 것도 너무 자루할 것도 같다. 그래도 그렇게 배우자와 사는 걸 보면 사랑 때문이라기 보단 습관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왜 이혼을 하게되는 것일까? 이유야 많겠지만, 그것이 배우자에 대해 더 이상의 희망을 기대할 수 없어 하는 것이라면, 또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면,  이 영화를 보며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것도 이혼을 막는 길이 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상대를 사랑하게된 순간. 사랑해서 하게된 여러 가지 일들 또는 함께 나눈 물건들 등을 떠올리고 그것을 함께 이야기 해 보는 것이다. 즉 이 영화는 결국 이혼하기 전 잊고 있었던 사랑를 떠올려 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결국 상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가가 확인이 되면 역전은 가능할 수 있다. 페기가 어떻게 과거에서 찰리를 선택하고, 현재에서는 이혼을 그만 두게 되는가는  영화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라. 

이 영화에서 볼만한 건, 스틸 컷에서 보는 것처럼,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열린 피티에서 니콜라스 케이지가 얼마나 느끼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는가다. 정말 가관이란 감탄이 절로 나오는데, 그게 또 보면 그럴듯 해서 오히려 인상적으로 남는 장면이기도 하다. 복고풍의 의상이나 소품들도 볼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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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11-07-04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억, 명심하겠습니다.

stella.K 2011-07-04 13:16   좋아요 0 | URL
결혼 벌써 하셨다매요? 이럴수가...ㅋㅋ
옆지기분과 재밌고 좋은 일 많이 만드셔서 추억은행에 잘 저축해
두시기 바랍니다.^^

마립간 2011-07-04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색을 해 보니 1986년 작이네요. 어떻게 보셨어요? EBS?

stella.K 2011-07-04 12:38   좋아요 0 | URL
찾으셨네요. 전 아무리해도 못찾겠던데...ㅜ
와, 20년도 훨씬 더 된 작품이로군요.
아뇨. 저의 집 IP TV에서요. 내용은 그다지 신선한 건 아닌데
출연진만으로도 그냥 볼만했어요.^^

cyrus 2011-07-04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속 케이지,, 무성한 머리숱을 보니 젋은 시절의 모습이군요.
그런데 케이지가 한국 여성과의 결혼해서 ' 한국 사랑 ' 이니 하면서
화제가 되었는데,, 결국에는 이혼했다죠,, ^^;;

stella.K 2011-07-05 11:29   좋아요 0 | URL
헉, 이혼했어요? 저런...
아내를 폭행했다더니 결국 이혼했군요.
어느 정도 예상은 했는데. 쩝
 
홀가분 - 마음주치의 정혜신의 나를 응원하는 심리처방전
정혜신.이명수 지음, 전용성 그림 / 해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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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친구야, 
그날 내가 이책을 너에게 보여줬을 때, 너는 참 많이 읽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읽고 있는 중이라 당장 빌려줄 수도 없고, 다음 날이라도 책 배송이라도 시켜줄까 하다가 이내 마음을 놓아 버린다. 넌 이미 책을 너무 많이 읽고 때론 일부러 책을 멀리하는 중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내가 좋다고 남도 좋으라는 법은 없으니, 난 꼭 내가 필요할 때 필요한 것을 선물하는 그런 친구가 되고 싶어. 하지만 그러면 너무 얄미운 친구가 되는 걸까? 

네가 보다시피 이 글의 제목은 내가 이책에서 발견한 나희덕 시인이 쓴 '절창'이란 시에 나오는 말을 그대로 써 보았다. 너는 그날 그랬지, 나는 아주 미치도록 몰입해서 하는 일을 하던가, 아니면 법정 스님처럼 내려놓는 연습을 끊임없이 하면서 인생을 통찰하고, 혜안을 얻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고. 그러자 너의 남편이 어떤 것이든 둘 중 하나만 하랬다고 해서 우린 웃었다. 그래. 그렇게 우린 양극단을 꿈꾼다. 우린 어느 새 나이를 먹어 이제 좋든 싫든 인생 2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는데, 가끔 까이 꺼, 인생 한 번 살지 두 번 살아? 하며 영혼을 불사르고 싶을 때도 있다. 특히 시댁시구들하고의 갈등, 아이들이 너의 마음대로 따라와 주지 않을 때 열 받아 하고, 실망하는 너의 모습을 보면 그러고 사느니 이제라도 네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난 너에게 후자의 일을 하라고 권해주고 싶다. 물론 영혼을 불사르는 일을 하는 것도 좋긴 하다만, 그래서 나를 혹사시키고 닦달하기엔 우리가 이미 젊은 나이는 아니지 않니? 결국 이즈음 나희덕 시인의 말처럼 점점 더 깊이 들어가는 연습을 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보나, 주위 여러 사람을 보나 다 좋을거란 생각이 들어. 내가 건강하지 않으면 주위의 단 사람도 건강할 수 없거든. 

이책을 보면, '전략적 낮잠이 필요하다'란 제목의 글이 참 공감이 많이가. 비행기에서 비상시 산소호흡기를 사용할 때 어린 아이와 동승할 경우 보호자가 먼저 산소호흡기를 한 다음 아이에게 채우라는 거야. 그게 비행기 안에서의 상식이라네. 얼핏 보면 참 이상하지? 아이를 먼저 채워줘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런데 그러는 이유는, 본능적으로 아이를 먼저 챙기다 보면 어른에게 호흡 곤란이 올 경우 아이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군. 그러고 보니 맞는 말 같지 않니? 그러면서 이책의 저자는, 때로 '나부터 챙겨야 모두가 평안해지는 경우가 있다'는 거야(94p).  

가끔 말 안 듣는 너의 아들내미 얘기를 친구로서 듣고 있노라면, 넌 참 아들을 사랑하는구나 느껴질 때가 있어. 얼마 전, 지난 봄 우리가 함께 간 부암동을 아들과 갔다왔다며? 그런데 넌 기껏 아들 건강 걱정해서 그런데 다녀오면 좋겠다 싶어 같이 간 건데 아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다고 투덜거렸다. 또한 요즘 신경 써서 이것저것 맛있는 것을 해줬더니 녀석이 너무 버릇없이 굴어 오늘은 도시락도 안 챙겨보냈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사랑은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사랑을 해도 같은 길에서 만나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는 것 말이다. 너는 분명 아들이 원하기만 하면 모든 걸 다 쏟아 부어 줄 준비가 되어 있는데, 아들은 그걸 한사코 거부하며 참견이라고 생각하니, 너의 마음이 얼마나 외롭겠니.  

더구나 너는 맏이이기도 하고, 엄마이기도 하다. 맏이든, 엄마든 그 역할로서 덧씌워지는 이상형이 있다. 그것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옥죄지는 않아 왔는지 묻고 싶다. 솔직히 그날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만일 너의 아들이었다면 굉장히 답답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몰래 했다. 다른 할 일도 많고, 갈 때도 많은데 무슨 이런데(부암동)을 오자 하는 건가? 짜증도 나고, 멋쩍기도 했을 것이다. 친구야, 너도 알겠지만 사람은 원죄가 있는 존재라 사랑 그 순수함만으로는 상대에게 가지 않는다. 사랑엔 반드시 그 이름으로 상대를 조정하려고 하는 힘이 작용하지. 그래서 때론 상대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거부하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한다. 이제까지 너희 모자관계는 그렇게 이어져 온 것 같기도 하다. 그건 또 이미 너도 인정했던 부분이기도 하고.  

아, 물론 그렇다고 앞으로 아들과는 어딜 가는 건 생각도 말아야겠다고 지레 접지는 말아라. 또 언젠가 한번은 너의 아들이 바로 그날을 생각해서 "거기를 다시 한 번 어머니와 함께 걷고 싶어요." 할 때가 혹시 있을지 누가 아니? 그때가 되거든 말없이 따라 나서줘라. 사람은 미련해서 그때 당시에 깨닫지 못한 것을 한참 후에야 깨닫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의 고마움에 대해선 네가 땅에 묻혀도 네 아들내미가 모를수도 있고, 그때야 비로소 깨닫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건 아이의 몫이니 걔가 너를 몰라준다고 너무 섭섭해 하지는 말아라.  걔의 생각, 느낌을 네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니? 그래서 나는 너의 자식 사랑에 쏟는 에너지를 이젠 너 자신에게 쏟으라는 것이다. 그만하면 되지 않았니? 너의 사랑이 인정되지 않아 힘들어하고, 쓸쓸해하는 네가 이젠 측은해지려고 한다. 또 어쩌면 너의 아들도, 너의 남편도 너의 사랑을 모르는 바는 아닐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너의 사랑을 몰라준다는 그것이 오히려 너를 힘들 게 하는 것은 아닐까?  

사람은 이기적이다. 사람은 누군가의 사랑을 필요로 하지만 때론 피투성이가 되리만치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은 나로인해 행복했으면, 아침햇살 가득 머금은 탐스러운 장미같고, 해바라기 같았으면 한다. 근데 그건 사실 내가 그렇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거든. 상대가 그만큼 꾸미지 않으면 안 되는 거거든. 그런데 자신은 착각을 하지. 내가 예쁘게 만들어줬다고 말야. ㅋ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란 예수님 말씀은 언제 들어도 진리고, 명언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부터 챙겨야 모두가 평안해진다는 말은 대단히 맞는 말 같고. 

아, 그런데 우리 그날 칠성급 호텔의 그 주방장 얘기했었잖아. 공교롭게도 이책에도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더라('강해야만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146p). 그가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받고 셰프가 됐는지 얘기를 하는데, 그날 내가 너에게 얘기는 안 했다만, 나 역시도 저자가 말했던 것처럼 그렇게 혹독한 훈련을 받고 강해야 살아 남는다고 생각하진 않아. 사람들은 가끔 자기와 같아지라고 요구할 때가 많아. 이를테면 내가 이런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 남았으니, 너도 살아 남아라는 식. 그래서 자신의 사수보다 더 못 되게 자기 밑의 사람을 괴롭히는 거, 그것처럼 사람을 기만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 더구나 사람이 먹을 음식을 만들면서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음식. 보기엔 화려하고 맛있을지 모르지만, 그거 먹었다고 살로 갈 것 같지는 않아. 오히려 해가 되면 해가 됐지. 극도의 스트레스에서 잡은 소로 만든 스테이크가 결국 사람에게 보복을 한다는데, 그 요리를 만드는 셰프라고 다르겠니? 그런 의미에서 네가 사랑으로 아들에게 해 준 음식이 최고의 보약일 텐데, 사실 집밥은 너무 소박해서 때론 먹고 싶지 않을 때도 있어. 그지? 그 뒤에 감추인 사랑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사랑의 문제 정말 쉽지 않아. 인간의 문제가 알고보면 사랑하는 문제와 사랑 받는 문제이고 보면 이책은 가히 인간의 마음 그 타당성을 구하는 연애편지쯤으로 말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참, 이책의 제목이 왜 홀가분인 줄 아니? 이책에 의하면, 인간이 감정을 표현할 때 자주 쓰는 말이 430개쯤 된데. 그것을 불쾌와 쾌로 나누면 7대3 정도의 비율이 되는데, 쾌를 표현할 때 '홀가분'이란 단어처럼 최고로 좋은 말이 없다는 거야. 얼핏 생각하면 의미 있는 성취나, 짜릿힘을 느낄 때 죽인다, 황홀해, 앗싸! 뭐 이런 단어도 있는데, 그건 사실 알고보면 무엇이 보태진 단어잖아. 그런데 홀가분은 '거추장스럽지 않고 가뿐한 상태'일 때 쓰는 말이잖아. 그걸 인간이 가장 좋아한다는 거야. 미처 그 사실을 알지 못해 자꾸 무언가를 추구하면서 심리적 헛발질을 하고 있는(79p), 너나 나를 볼 때 역시 우린 이 나이에 무엇을 새롭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 침잠해 들어가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의 혜안을 얻는 것이 좋겠다는 나의 작은 소망을 너의 바램인 양 담아 이 편지를 띄워 본다. 너도 이제 홀가분 해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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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 팻, 비만과 집착의 문화인류학
돈 쿨릭.앤 메넬리 엮음, 김명희 옮김 / 소동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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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책을 읽고 있으려니, 옛일이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교복을 맞추기 위해 종로 어디쯤에 위치한 M 교복점을 부모님과 함께 간적이 있다. 그 교복점이 좀 유명한 곳이라 언니에 이어 나도 그 교복점에서 만든 교복을 입게 되었다는데 은근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당시엔 있는 집 자식들이나 교복을 맞춰 입기도 했는데, 자수성가 하신 우리 아버지 나를 교복점에 데리고 가는 동안 마음이 바뀌어서 그냥 기성복으로 사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셨다. 난 순간 마음이 좀 섭섭했지만, 물주는 아버지였던만큼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뿔사! 막상 그 교복점을 갔더니 나에게 맞는 교복 완제품은 없었다. 주인인지, 종업원인지는 알 수 없지만 꼭 식당 주인처럼 생긴 아줌마가 줄자로 내 몸 여기저기를 재더니, "아유, 이 학생이 너무 뚱뚱해서 맞는 교복이 없어. 천상 맞춰야겠는 걸." 아, 그때 정말 어찌나 창피하던지. 그런데 더 싫었던 건, 그 말을 들어보라는 식으로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게 뭐 자랑거리라고 큰 소리로 떠든단 말인가? 오히려 손님의 치수에 맞는 교복을 구비해 놓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해 해야하는 거 아닌가?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내 몸이 날씬한 것마는 아니라는 건 인정하겠다. 그래도 비정상적이리만치 뚱뚱했던 것도 아닌데, 무슨 돼지 비계를 대하는 양 내몸을 아래 위로 훑는데 어찌나 기분이 나쁘건지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었다. 그럴 땐 우리 부모님이라도 나서서 나를 좀 옹호해 주고, 보호해 줘야할텐데 부모라고 인생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긴, 우리 부모님 그 상황에서 나를 변호해줘 봤자, 가재는 게 편, 고슴도치 부모란 소리 밖에 더 듣겠는가? 이렇게 뚱뚱하면 부모도 구재를 못해 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그 아주머니의 장사수완이란 생각도 든다. 기성 보다 맞춤이 언제나 비쌌으니까 일정 치수 이상은 기성으로 만들지 않는 거지.  

폐일언하고, 그렇다면 심하게 뚱뚱하지도 않은 나를 뚱뚱녀로 만들었다면 뚱뚱한 것과 뚱뚱하지 않는 것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내 친구는 결혼 후 살이 엄청나게 많이 쪘다. 본래 결혼 전 나 보다 날씬했던 친군데, 살이 쪘으면 우울하거나 고민스러워 할 법도 한데 성격이 워낙 낙천적이어서 그런지 그다지 고민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친구의 딸이었다.  누가 자기 엄마더러 살쪘다고하면 그렇게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엄마 살 안 쪘다며 오히려 마구 화를 내더라는 것이다. 거기엔 미묘한 심리 기제가 깔려 있다. 뚱뚱한 건 자기도 싫은데 그렇다고 뚱뚱한 자기 엄마를 나무랄 수도 없고. 그러니 차라리 부정해 버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매스컴, 의학계에서는 비만인 사람을 너무도 쉽게 단죄한다. 그리고 비만이 될 수 밖에 없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잘도 찾아내 굉장히 그럴듯하게 설명한다. 물론 그들의 말이 틀리지마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그것을 확대 재생산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전세계적으로 다이어트 산업만 해도 족히 조 단위의 가치를 육박한다. 그래도 길거리엔 살찐 사람으로 넘쳐난다. 거기엔 뭔가의 커넥션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한번쯤 의심해 볼만도 하다. 

그런데 다이어트만 성공하면 만사 다 좋을 것 같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나는 다이어트에서 꼭 짚고 넘어가게 되는 요요현상만을 부작용으로 얘기하고 싶지 않다. 문제는 그것의 반대급부인 거식증이나 뼈만 앙상하게 남은 말라깽이를 말하고 싶다. 다이어트가 주로 강조하는 것이 건강과 날씬한 몸매일진데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고, 이것이 낳은 현상은 극단적인 비만 아니면 과도한 다이어트 또는 거식증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한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고 해서 다 좋아진 것은 아닐 텐데도 매스컴은 성공에만 지나치게 집착해서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그럴수록, 살, 지방, 비만이란 단어는 점점 더 혐오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된다. 

본서는 바로 이 '비만'을 우리가 언제까지 혐오만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라고 할 수 있을 같다. 책을보면, 내가 앞에서 제기한 '비만'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또한 모든 나라, 모든 사람이 다 비만을 혐오하거나 적대시하는 것만은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문화적 차이이기도 한데, 인식이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닌 것처럼, 다른 것을 인정하면 그것을 보는 잣대가 새로워진다. 비만 역시 이 지구상 어디에서는 오히려 좋은 것으로 인정하는 곳이 있다. 그러고 보면 비만은 더 이상 혐오의 대상이 아니다.   

특히 이 책은 내가 정말 비만을 좁은 시각에서만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우치쳐 주기도 했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5장에서 다룬 '뚱보 포르노'와 13장에서 다룬 '살찐 게이 애호가'를 보면서 이기도 하다.  좀 충격적인 것도 사실이지만, 사실 '살찐'이라든지, '포르노'나 '게이'란 말이 그다지 긍정적인 이미지로 와 닿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만이 과연 심미안의 대상으로 다루어질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책에서는 나의 인식이 깨진 것이다.  또한, 11장에선 '지방이영양증'이란 희귀병에 걸린 사람에 대한 예를 보여주는데, 그토록 혐오하는 지방이 없거나 이상이 생겼을 때 어떤 증상이 일어나는가를 보여줌으로 해서 지방이 우리 몸에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를 보여 주기도 한다. 그러니 지방을 너무 구박할 일도 아니다. 세상에 필요없이 존재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너무 부족하거나 과도한 것이 문제지. 

이책은 비만을 정의하기 위해 씌여진 책 같지는 않아 보인다. 오히려 비교의 대상으로 비만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서술해 나간 것으로 보인다. 사실 '비만'에 대한 우리의 편견은 상상을 초월한다. 뚱뚱한 사람은 미련하고, 답답하며, 매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다. 심하면 '돼지(비계)'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도 인격이 있고, 인권이 있다. 실제로 그런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단체가 생기기도 했다. 일명 비만인권선언을 하고 '매우 뚱뚱하고 짜증난'이란 단체가 그것이다. 물론 우리나라가 아니고 미국이다. 우리나라에도 찾아보면 이와 비슷한 단체가 있지 않을까? 

고백컨대 나 자신 그다지 날씬한 것도 아니면서 비만에 대해 그다지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본 것도 사실이다(나의 이런 생각에도 다분히 이중성은 있어 보인다). 이 책에서 보여진 것들이 사실이라면 더 이상 억울하게 비만에게 덧 씌워진 부정적인 인상을 거둬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물론 이책 한 권이 비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하다.  솔직히 난 이책을 보면서 나 자신 자유로워졌다거나 상쾌해진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이책이 당장에 긍정적인 시각을 요구하기 보다 이런 시각도 있다고 완곡하면서도 객관적인 시도를 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이책은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여진다. 

이책을 읽을 때 전제가 되는 말이 있다. 비록 미국의 예이기는 하지만 서문에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방 소비와 함께 라이트' 또는 '저지방'식품의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들은 지방을 더 많이 섭취하면서 한편으로는 기름진 음식을 먹는데 대한 죄책감을 줄이려고 저지방 식품을 사 먹는다.(12p)'  이다. 이책은 무수히도 많이 쏟아져 나오는 무엇이 건강하게 먹는 것이냐, 무엇이 건강한 삶이냐를 말하고 있지 않다. 이책을 읽고나면 건강한 삶에 대한 정답은 없어 보인다. 그냥 나에게 맡는 가치관과 라이프 스타일만 존재해 보인다. 그래도 이책을 보면, 이제까지의 내 생각이 반드시 옳은 것마는 아니라는 걸 증명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런 점에서 수 십년 전 나에게 교복을 맞추게 만들었던 그 교복점 아줌마에게 할 수만 있으면 지금이라도 반성을 촉구하고 싶다. 교복점 아줌마는 반성하라, 반성하라, 반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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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7-01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교복점 아줌마는 반성하라,반성하라,반성하라!

키스 앤 크라이를 보면서 박정금이 스케이트를 정말 멋지게 지치는걸 엄마랑 같이 봤습니다~
잘한다 멋지다~~ 칭찬해주셔놓고도 결국엔 한말씀 하시더군요~ 날씬해도 다 소용없어, 노처녀잖어! 넌 뚱뚱한 노처녀잖어!!! 이러면서 째려보시더군요-.ㅡ; 전 대충 기냥 살만한데..뚱뚱해도요~노처녀도요~ ^^;

stella.K 2011-07-02 12:54   좋아요 0 | URL
ㅎㅎ 아마 모르긴 해도 그 교복점 없어졌을 거예요.
그때 그 아줌마도 지금은 할머니되서 은퇴했을지 모르구요.
그러게 말입니다. 뚱뚱해도 급수가 있는데 지나치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ㅜ
이책 나름 재밌게 읽어서 성의있게 리뷰 쓸려고 했는데
추천이 저조하군요. 하긴, 제가 요즘 컨디션이 안 좋아 써놓고도
만족스럽진 않네요. 전 리뷰를 그렇게 써도 어떻게 쓰면 추천이
많이 붙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ㅠ
 
4교시 추리영역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이상용
주연 : 유승호, 강소라

개봉 당시 이 영화에 대해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던 것 같긴하다. 그래서 특별히 기대는 하지 않고 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볼 생각을 했다면 그건 유승호 때문이었겠지. 그런데 기대를 하지 않고 보니 의외로 볼만했다. 중간중간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도 있고.  

사실 말이 되는가? 어느 고등학교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4교시가 끝나기 전에 살인의 전모를 파헤친다는 게. 더구나 시체를 발견하고 흠칫 놀라는 정도라면 요즘 아이들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었다. 뭐 간이 부은 게 학생뿐이던가? 이 영화에 나온 선생들도 그다지 놀라지도 않는다. 하긴, 굳이 갖다붙이자면, 요즘 아이들 각종 컴퓨터 게임이며, 자극적인 영상물에 좀 많이 노출되어 있는가? 그런 것을 감안할 때 실제로 시체 한번 보았다고 그렇게 호들갑 떨필요는 없다고 우기고도 싶을 것이다.   

더구나 요즘 아이들이 좀 영악한가? 천재적인 힘을 발휘한다면 이런 문제쯤 거뜬히 풀 수도 있을 거라는 전재 아닌 전재가 붙었는지도 모르겠다. 리얼 타임 추리물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그래도 나는 이 영화는 한 쾌에 다 봤다. 나에게 있어 근래에 이렇게 앉은 자리에서 다 본 영화는 그다지 많지 않다.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두 번, 세 번에 끊어서 본다. 습관이겠지만 고칠 생각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예외로 두는 것은 그날 컨디션이 좋아서도 아니고, 승호군이 나와서도 아니며, 추리극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그나마 강도가 약해서만도 아니다.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어쨌든 이 영화는 영화적 기법에 꽤 충실해 보인다. 그것이 내가 이 영화를 한 쾌에 보게 만드는 힘이었을 것이다. 미스터리가 그렇듯 이건 것 같아 마무리가 되는 듯 싶은데, 다른 것이 등장하고 또 다시 그 문제를 풀고 마무리 짓는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지가 얼마 안 된 것 같긴하다. 하지만 나름 그것에 충실하려고 했던 의도는 충분히 보인다.  

내가 거기에 한 가지를 더 얹자면, 어찌보면 이 영화는 오늘 날의 교육 현실을 비판해 보고자 만든 영화일 것이라는 점이다. 교육열 세기로야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교육 강국 대한민국. 하지만 그것에 한참 못 미치는 인성교육의 문제. 그렇게 교육, 교육 하면서도 보여주는 교육만큼 강한 교육이 또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 기성 세대들은 아이들에게 본이 되지 못한 채 점점 괴리돼 가고 있다. 학교 선생 조차 지식 전달 수단으로 전락했을 뿐 하나도 본 받을 대상이 되지 못한다. 슬픈 현실이다. 그것을 감독은 말하려 하지 않았을까? 거기에 또 하나, 왕따의 문제를 언급하는데, 이 왕따의 문제는 꼭 아이들의 문제마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어른에게도 보여지고 있다. 학창시절 때 왕따를 당했던 아이가 기성세대가 돼서도 여전히 이어오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 왕따도 미운 오리 새끼는 아니었을까? 나중에 백조가 되는. 그래서 다정이(강소라)를 엔딩 부분에서 그토록 백조로 만들고 싶어했었나 보다. 나는 그게 좀 오버 같아서 껄끄럽긴 했지만.  

다정이 다친 정훈(유승호)을 문병하는데, 너 공부하는 게 재밌냐고 묻자, 정훈이 사실은 재미없다고 말한다. 그러자 다정이 정훈의 책을 창밖으로 던져 버리는 씬에서 감독은 어지간히 우리나라의 교육이 못 마땅했나 보다.  

그런데 이런 모든 것은 이해가 가긴 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우리의 학교가 측은하다는 느낌은 지워버릴 수 없다. 그토록이나 문제인걸까? 분명 왕따의 문제, 학원 폭력의 문제는 있지만 매스컴에서 다루면 크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일부의 문제고, 여전히 우리의 아이들은 자기에게 맞는 친구들과 사귀며 그럭저럭 학교를 잘 다니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꼭 우리나라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 교육을 실시하는 나라들 역시 문제가 없을 리 없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여타의 다른 나라에 비해 학습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나름 문제를 보완하려고 노력하는 학교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문제를 문제로만 보지 말고 그것을 확대해석하는 것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같은 학원물이어도 오래 전 '얄개 시대' 같은 풋풋하고 낭만스러운 이런 것이 다시 리메이크돼서 나올 법도 한데 그러질 못하고 있어 아쉽다.  

아무튼 이 영화 이래저래 아쉬운 것이 많긴하다. 하지만 난 어디까지나 아쉽다고 말하지 형편없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감독의 좀 더 나은 차기작을 기대해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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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1-06-29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를 책 읽듯이 나눠 보시는 스텔라님.
그거 상당히 대단한 재주인 것 같아요.
저는 한번 보다가 중단한 영화는 다시 안보게 되더라구요.

stella.K 2011-06-29 14:23   좋아요 0 | URL
ㅎㅎ 제가 주로 밤에 자기 전에 불꺼놓고 보거든요.
그러면 어쩔 수가 없어요. 보다 졸리면 자야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는 안 그랬단 말이죠.^^

노이에자이트 2011-06-29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는 방송에서도 여러번 해서 몇 번 봤습니다.조윤희 씨,박철민 씨가 교사로 나오고...그런데 저 스틸사진,유승호 씨와 강소라 씨가 교복 입은 모습이 정말 아름답군요.이쁜 교복에 멋진 몸매가 더 돋보입니다.

stella.K 2011-06-29 17:50   좋아요 0 | URL
그런데 영화에선 교복이 그다지 많이 드러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이 영화 나름 볼만하지 않던가요? 저는 그렇던데...^^

노이에자이트 2011-06-30 17:07   좋아요 0 | URL
짧은 시간에 살인자가 누군지를 알아보려는 긴박감이 돋보였습니다.이 영화는 흥행에 실패하지만 2년 후인 올해 강소라는 '써니'에 출연하여 한을 풀게 되지요.요즘엔 일일연속극에도 나오고...여하튼 연예인은 젊어서 부지런히 돈벌어야 합니다.

stella.K 2011-06-30 18:11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렇죠. 돈 벌어야죠.
그렇구나. '써니'에 나오는군요.
써니에 대한 평가가 좋아 저도 보고 싶어져요.
나중에 볼 날 있겠죠?^^

자하(紫霞) 2011-06-30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영화가 있었군요.
아쉽지만 형편없지는 않은 영화였다...
흠, 공포영화라면 스텔라님의 리뷰를 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stella.K 2011-06-30 11:10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이해 못하시겠다는 건가요?
그럼 어쩔 수 없구요.
이 영화 진짜 많이 아쉬워요. 잘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ㅜ

cyrus 2011-06-30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처음에 봤을 땐 별 기대 안했는데 재미있더라구요,
그리고 강소라라는 배우를 처음 봤는데,, 나름 매력이 있었구요ㅎㅎ
작품성은 약간 부족한거 같은데,, 우선 여배우가 마음에 들었어요 ^^;;

stella.K 2011-06-30 18:08   좋아요 0 | URL
아하! 시루스님도 영화 보시는구나!ㅎㅎ
항상 영화 리뷰 쓰면 코멘트가 없어 영화는 관심이 없나보다 했어요.ㅋ
그렇죠? 이 영화에선 유승호보다 오히려 강소라가 빛났어요.
디테일이 살았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