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가분 - 마음주치의 정혜신의 나를 응원하는 심리처방전
정혜신.이명수 지음, 전용성 그림 / 해냄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친구야, 
그날 내가 이책을 너에게 보여줬을 때, 너는 참 많이 읽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읽고 있는 중이라 당장 빌려줄 수도 없고, 다음 날이라도 책 배송이라도 시켜줄까 하다가 이내 마음을 놓아 버린다. 넌 이미 책을 너무 많이 읽고 때론 일부러 책을 멀리하는 중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내가 좋다고 남도 좋으라는 법은 없으니, 난 꼭 내가 필요할 때 필요한 것을 선물하는 그런 친구가 되고 싶어. 하지만 그러면 너무 얄미운 친구가 되는 걸까? 

네가 보다시피 이 글의 제목은 내가 이책에서 발견한 나희덕 시인이 쓴 '절창'이란 시에 나오는 말을 그대로 써 보았다. 너는 그날 그랬지, 나는 아주 미치도록 몰입해서 하는 일을 하던가, 아니면 법정 스님처럼 내려놓는 연습을 끊임없이 하면서 인생을 통찰하고, 혜안을 얻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고. 그러자 너의 남편이 어떤 것이든 둘 중 하나만 하랬다고 해서 우린 웃었다. 그래. 그렇게 우린 양극단을 꿈꾼다. 우린 어느 새 나이를 먹어 이제 좋든 싫든 인생 2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는데, 가끔 까이 꺼, 인생 한 번 살지 두 번 살아? 하며 영혼을 불사르고 싶을 때도 있다. 특히 시댁시구들하고의 갈등, 아이들이 너의 마음대로 따라와 주지 않을 때 열 받아 하고, 실망하는 너의 모습을 보면 그러고 사느니 이제라도 네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난 너에게 후자의 일을 하라고 권해주고 싶다. 물론 영혼을 불사르는 일을 하는 것도 좋긴 하다만, 그래서 나를 혹사시키고 닦달하기엔 우리가 이미 젊은 나이는 아니지 않니? 결국 이즈음 나희덕 시인의 말처럼 점점 더 깊이 들어가는 연습을 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보나, 주위 여러 사람을 보나 다 좋을거란 생각이 들어. 내가 건강하지 않으면 주위의 단 사람도 건강할 수 없거든. 

이책을 보면, '전략적 낮잠이 필요하다'란 제목의 글이 참 공감이 많이가. 비행기에서 비상시 산소호흡기를 사용할 때 어린 아이와 동승할 경우 보호자가 먼저 산소호흡기를 한 다음 아이에게 채우라는 거야. 그게 비행기 안에서의 상식이라네. 얼핏 보면 참 이상하지? 아이를 먼저 채워줘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런데 그러는 이유는, 본능적으로 아이를 먼저 챙기다 보면 어른에게 호흡 곤란이 올 경우 아이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군. 그러고 보니 맞는 말 같지 않니? 그러면서 이책의 저자는, 때로 '나부터 챙겨야 모두가 평안해지는 경우가 있다'는 거야(94p).  

가끔 말 안 듣는 너의 아들내미 얘기를 친구로서 듣고 있노라면, 넌 참 아들을 사랑하는구나 느껴질 때가 있어. 얼마 전, 지난 봄 우리가 함께 간 부암동을 아들과 갔다왔다며? 그런데 넌 기껏 아들 건강 걱정해서 그런데 다녀오면 좋겠다 싶어 같이 간 건데 아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다고 투덜거렸다. 또한 요즘 신경 써서 이것저것 맛있는 것을 해줬더니 녀석이 너무 버릇없이 굴어 오늘은 도시락도 안 챙겨보냈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사랑은 그런 것 같다. 아무리 사랑을 해도 같은 길에서 만나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는 것 말이다. 너는 분명 아들이 원하기만 하면 모든 걸 다 쏟아 부어 줄 준비가 되어 있는데, 아들은 그걸 한사코 거부하며 참견이라고 생각하니, 너의 마음이 얼마나 외롭겠니.  

더구나 너는 맏이이기도 하고, 엄마이기도 하다. 맏이든, 엄마든 그 역할로서 덧씌워지는 이상형이 있다. 그것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옥죄지는 않아 왔는지 묻고 싶다. 솔직히 그날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만일 너의 아들이었다면 굉장히 답답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몰래 했다. 다른 할 일도 많고, 갈 때도 많은데 무슨 이런데(부암동)을 오자 하는 건가? 짜증도 나고, 멋쩍기도 했을 것이다. 친구야, 너도 알겠지만 사람은 원죄가 있는 존재라 사랑 그 순수함만으로는 상대에게 가지 않는다. 사랑엔 반드시 그 이름으로 상대를 조정하려고 하는 힘이 작용하지. 그래서 때론 상대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거부하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한다. 이제까지 너희 모자관계는 그렇게 이어져 온 것 같기도 하다. 그건 또 이미 너도 인정했던 부분이기도 하고.  

아, 물론 그렇다고 앞으로 아들과는 어딜 가는 건 생각도 말아야겠다고 지레 접지는 말아라. 또 언젠가 한번은 너의 아들이 바로 그날을 생각해서 "거기를 다시 한 번 어머니와 함께 걷고 싶어요." 할 때가 혹시 있을지 누가 아니? 그때가 되거든 말없이 따라 나서줘라. 사람은 미련해서 그때 당시에 깨닫지 못한 것을 한참 후에야 깨닫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의 고마움에 대해선 네가 땅에 묻혀도 네 아들내미가 모를수도 있고, 그때야 비로소 깨닫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건 아이의 몫이니 걔가 너를 몰라준다고 너무 섭섭해 하지는 말아라.  걔의 생각, 느낌을 네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니? 그래서 나는 너의 자식 사랑에 쏟는 에너지를 이젠 너 자신에게 쏟으라는 것이다. 그만하면 되지 않았니? 너의 사랑이 인정되지 않아 힘들어하고, 쓸쓸해하는 네가 이젠 측은해지려고 한다. 또 어쩌면 너의 아들도, 너의 남편도 너의 사랑을 모르는 바는 아닐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너의 사랑을 몰라준다는 그것이 오히려 너를 힘들 게 하는 것은 아닐까?  

사람은 이기적이다. 사람은 누군가의 사랑을 필요로 하지만 때론 피투성이가 되리만치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은 나로인해 행복했으면, 아침햇살 가득 머금은 탐스러운 장미같고, 해바라기 같았으면 한다. 근데 그건 사실 내가 그렇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거든. 상대가 그만큼 꾸미지 않으면 안 되는 거거든. 그런데 자신은 착각을 하지. 내가 예쁘게 만들어줬다고 말야. ㅋ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란 예수님 말씀은 언제 들어도 진리고, 명언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나부터 챙겨야 모두가 평안해진다는 말은 대단히 맞는 말 같고. 

아, 그런데 우리 그날 칠성급 호텔의 그 주방장 얘기했었잖아. 공교롭게도 이책에도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더라('강해야만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146p). 그가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받고 셰프가 됐는지 얘기를 하는데, 그날 내가 너에게 얘기는 안 했다만, 나 역시도 저자가 말했던 것처럼 그렇게 혹독한 훈련을 받고 강해야 살아 남는다고 생각하진 않아. 사람들은 가끔 자기와 같아지라고 요구할 때가 많아. 이를테면 내가 이런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 남았으니, 너도 살아 남아라는 식. 그래서 자신의 사수보다 더 못 되게 자기 밑의 사람을 괴롭히는 거, 그것처럼 사람을 기만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 더구나 사람이 먹을 음식을 만들면서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음식. 보기엔 화려하고 맛있을지 모르지만, 그거 먹었다고 살로 갈 것 같지는 않아. 오히려 해가 되면 해가 됐지. 극도의 스트레스에서 잡은 소로 만든 스테이크가 결국 사람에게 보복을 한다는데, 그 요리를 만드는 셰프라고 다르겠니? 그런 의미에서 네가 사랑으로 아들에게 해 준 음식이 최고의 보약일 텐데, 사실 집밥은 너무 소박해서 때론 먹고 싶지 않을 때도 있어. 그지? 그 뒤에 감추인 사랑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사랑의 문제 정말 쉽지 않아. 인간의 문제가 알고보면 사랑하는 문제와 사랑 받는 문제이고 보면 이책은 가히 인간의 마음 그 타당성을 구하는 연애편지쯤으로 말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참, 이책의 제목이 왜 홀가분인 줄 아니? 이책에 의하면, 인간이 감정을 표현할 때 자주 쓰는 말이 430개쯤 된데. 그것을 불쾌와 쾌로 나누면 7대3 정도의 비율이 되는데, 쾌를 표현할 때 '홀가분'이란 단어처럼 최고로 좋은 말이 없다는 거야. 얼핏 생각하면 의미 있는 성취나, 짜릿힘을 느낄 때 죽인다, 황홀해, 앗싸! 뭐 이런 단어도 있는데, 그건 사실 알고보면 무엇이 보태진 단어잖아. 그런데 홀가분은 '거추장스럽지 않고 가뿐한 상태'일 때 쓰는 말이잖아. 그걸 인간이 가장 좋아한다는 거야. 미처 그 사실을 알지 못해 자꾸 무언가를 추구하면서 심리적 헛발질을 하고 있는(79p), 너나 나를 볼 때 역시 우린 이 나이에 무엇을 새롭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 침잠해 들어가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의 혜안을 얻는 것이 좋겠다는 나의 작은 소망을 너의 바램인 양 담아 이 편지를 띄워 본다. 너도 이제 홀가분 해지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