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 팻, 비만과 집착의 문화인류학
돈 쿨릭.앤 메넬리 엮음, 김명희 옮김 / 소동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이책을 읽고 있으려니, 옛일이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교복을 맞추기 위해 종로 어디쯤에 위치한 M 교복점을 부모님과 함께 간적이 있다. 그 교복점이 좀 유명한 곳이라 언니에 이어 나도 그 교복점에서 만든 교복을 입게 되었다는데 은근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당시엔 있는 집 자식들이나 교복을 맞춰 입기도 했는데, 자수성가 하신 우리 아버지 나를 교복점에 데리고 가는 동안 마음이 바뀌어서 그냥 기성복으로 사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셨다. 난 순간 마음이 좀 섭섭했지만, 물주는 아버지였던만큼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뿔사! 막상 그 교복점을 갔더니 나에게 맞는 교복 완제품은 없었다. 주인인지, 종업원인지는 알 수 없지만 꼭 식당 주인처럼 생긴 아줌마가 줄자로 내 몸 여기저기를 재더니, "아유, 이 학생이 너무 뚱뚱해서 맞는 교복이 없어. 천상 맞춰야겠는 걸." 아, 그때 정말 어찌나 창피하던지. 그런데 더 싫었던 건, 그 말을 들어보라는 식으로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게 뭐 자랑거리라고 큰 소리로 떠든단 말인가? 오히려 손님의 치수에 맞는 교복을 구비해 놓지 못한 것에 대해 미안해 해야하는 거 아닌가?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내 몸이 날씬한 것마는 아니라는 건 인정하겠다. 그래도 비정상적이리만치 뚱뚱했던 것도 아닌데, 무슨 돼지 비계를 대하는 양 내몸을 아래 위로 훑는데 어찌나 기분이 나쁘건지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었다. 그럴 땐 우리 부모님이라도 나서서 나를 좀 옹호해 주고, 보호해 줘야할텐데 부모라고 인생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긴, 우리 부모님 그 상황에서 나를 변호해줘 봤자, 가재는 게 편, 고슴도치 부모란 소리 밖에 더 듣겠는가? 이렇게 뚱뚱하면 부모도 구재를 못해 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그 아주머니의 장사수완이란 생각도 든다. 기성 보다 맞춤이 언제나 비쌌으니까 일정 치수 이상은 기성으로 만들지 않는 거지.  

폐일언하고, 그렇다면 심하게 뚱뚱하지도 않은 나를 뚱뚱녀로 만들었다면 뚱뚱한 것과 뚱뚱하지 않는 것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내 친구는 결혼 후 살이 엄청나게 많이 쪘다. 본래 결혼 전 나 보다 날씬했던 친군데, 살이 쪘으면 우울하거나 고민스러워 할 법도 한데 성격이 워낙 낙천적이어서 그런지 그다지 고민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 친구의 딸이었다.  누가 자기 엄마더러 살쪘다고하면 그렇게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엄마 살 안 쪘다며 오히려 마구 화를 내더라는 것이다. 거기엔 미묘한 심리 기제가 깔려 있다. 뚱뚱한 건 자기도 싫은데 그렇다고 뚱뚱한 자기 엄마를 나무랄 수도 없고. 그러니 차라리 부정해 버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매스컴, 의학계에서는 비만인 사람을 너무도 쉽게 단죄한다. 그리고 비만이 될 수 밖에 없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잘도 찾아내 굉장히 그럴듯하게 설명한다. 물론 그들의 말이 틀리지마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그것을 확대 재생산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전세계적으로 다이어트 산업만 해도 족히 조 단위의 가치를 육박한다. 그래도 길거리엔 살찐 사람으로 넘쳐난다. 거기엔 뭔가의 커넥션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한번쯤 의심해 볼만도 하다. 

그런데 다이어트만 성공하면 만사 다 좋을 것 같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나는 다이어트에서 꼭 짚고 넘어가게 되는 요요현상만을 부작용으로 얘기하고 싶지 않다. 문제는 그것의 반대급부인 거식증이나 뼈만 앙상하게 남은 말라깽이를 말하고 싶다. 다이어트가 주로 강조하는 것이 건강과 날씬한 몸매일진데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고, 이것이 낳은 현상은 극단적인 비만 아니면 과도한 다이어트 또는 거식증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한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고 해서 다 좋아진 것은 아닐 텐데도 매스컴은 성공에만 지나치게 집착해서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그럴수록, 살, 지방, 비만이란 단어는 점점 더 혐오해야 할 대상으로 취급된다. 

본서는 바로 이 '비만'을 우리가 언제까지 혐오만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라고 할 수 있을 같다. 책을보면, 내가 앞에서 제기한 '비만'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또한 모든 나라, 모든 사람이 다 비만을 혐오하거나 적대시하는 것만은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문화적 차이이기도 한데, 인식이 우리와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닌 것처럼, 다른 것을 인정하면 그것을 보는 잣대가 새로워진다. 비만 역시 이 지구상 어디에서는 오히려 좋은 것으로 인정하는 곳이 있다. 그러고 보면 비만은 더 이상 혐오의 대상이 아니다.   

특히 이 책은 내가 정말 비만을 좁은 시각에서만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우치쳐 주기도 했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5장에서 다룬 '뚱보 포르노'와 13장에서 다룬 '살찐 게이 애호가'를 보면서 이기도 하다.  좀 충격적인 것도 사실이지만, 사실 '살찐'이라든지, '포르노'나 '게이'란 말이 그다지 긍정적인 이미지로 와 닿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만이 과연 심미안의 대상으로 다루어질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책에서는 나의 인식이 깨진 것이다.  또한, 11장에선 '지방이영양증'이란 희귀병에 걸린 사람에 대한 예를 보여주는데, 그토록 혐오하는 지방이 없거나 이상이 생겼을 때 어떤 증상이 일어나는가를 보여줌으로 해서 지방이 우리 몸에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를 보여 주기도 한다. 그러니 지방을 너무 구박할 일도 아니다. 세상에 필요없이 존재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너무 부족하거나 과도한 것이 문제지. 

이책은 비만을 정의하기 위해 씌여진 책 같지는 않아 보인다. 오히려 비교의 대상으로 비만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서술해 나간 것으로 보인다. 사실 '비만'에 대한 우리의 편견은 상상을 초월한다. 뚱뚱한 사람은 미련하고, 답답하며, 매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이다. 심하면 '돼지(비계)'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도 인격이 있고, 인권이 있다. 실제로 그런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단체가 생기기도 했다. 일명 비만인권선언을 하고 '매우 뚱뚱하고 짜증난'이란 단체가 그것이다. 물론 우리나라가 아니고 미국이다. 우리나라에도 찾아보면 이와 비슷한 단체가 있지 않을까? 

고백컨대 나 자신 그다지 날씬한 것도 아니면서 비만에 대해 그다지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본 것도 사실이다(나의 이런 생각에도 다분히 이중성은 있어 보인다). 이 책에서 보여진 것들이 사실이라면 더 이상 억울하게 비만에게 덧 씌워진 부정적인 인상을 거둬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물론 이책 한 권이 비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하다.  솔직히 난 이책을 보면서 나 자신 자유로워졌다거나 상쾌해진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이책이 당장에 긍정적인 시각을 요구하기 보다 이런 시각도 있다고 완곡하면서도 객관적인 시도를 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이책은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여진다. 

이책을 읽을 때 전제가 되는 말이 있다. 비록 미국의 예이기는 하지만 서문에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방 소비와 함께 라이트' 또는 '저지방'식품의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들은 지방을 더 많이 섭취하면서 한편으로는 기름진 음식을 먹는데 대한 죄책감을 줄이려고 저지방 식품을 사 먹는다.(12p)'  이다. 이책은 무수히도 많이 쏟아져 나오는 무엇이 건강하게 먹는 것이냐, 무엇이 건강한 삶이냐를 말하고 있지 않다. 이책을 읽고나면 건강한 삶에 대한 정답은 없어 보인다. 그냥 나에게 맡는 가치관과 라이프 스타일만 존재해 보인다. 그래도 이책을 보면, 이제까지의 내 생각이 반드시 옳은 것마는 아니라는 걸 증명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 그런 점에서 수 십년 전 나에게 교복을 맞추게 만들었던 그 교복점 아줌마에게 할 수만 있으면 지금이라도 반성을 촉구하고 싶다. 교복점 아줌마는 반성하라, 반성하라, 반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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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7-01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교복점 아줌마는 반성하라,반성하라,반성하라!

키스 앤 크라이를 보면서 박정금이 스케이트를 정말 멋지게 지치는걸 엄마랑 같이 봤습니다~
잘한다 멋지다~~ 칭찬해주셔놓고도 결국엔 한말씀 하시더군요~ 날씬해도 다 소용없어, 노처녀잖어! 넌 뚱뚱한 노처녀잖어!!! 이러면서 째려보시더군요-.ㅡ; 전 대충 기냥 살만한데..뚱뚱해도요~노처녀도요~ ^^;

stella.K 2011-07-02 12:54   좋아요 0 | URL
ㅎㅎ 아마 모르긴 해도 그 교복점 없어졌을 거예요.
그때 그 아줌마도 지금은 할머니되서 은퇴했을지 모르구요.
그러게 말입니다. 뚱뚱해도 급수가 있는데 지나치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ㅜ
이책 나름 재밌게 읽어서 성의있게 리뷰 쓸려고 했는데
추천이 저조하군요. 하긴, 제가 요즘 컨디션이 안 좋아 써놓고도
만족스럽진 않네요. 전 리뷰를 그렇게 써도 어떻게 쓰면 추천이
많이 붙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