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와 코퍼 - Tod & Copp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디비를 보니, 무려 30년 전에 제작된 에니메이션이다. 1981년 작. 

지금 봐도 전혀 손색이 없다. 워낙에 그림이 좋아 거의 빠져들면서 봤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어느 날 사냥꾼에 의해 어미를 잃은 새끼 여우가 마음씨 착한 호호 아줌마(원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아 임의로 부쳤다)에게 입양이 되고, 토드란 이름을 얻는다.

이웃에 사는 비슷한 또래의 사냥꾼의 개 코퍼와도 더 없이 친하게 지냈는데, 어느 날 사냥꾼을 따라 사냥을 나가 성견이 되서 돌아온다. 물론 그동안 새끼 여우 토드도 다 자랐다.  

오랜만에 만난 토드는 코퍼와의 옛 우정을 생각하며 변함없이 자신과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결과는 달랐다. 코퍼는 예전의 그 코퍼가 아니다. 그는 주인에게 철저하게 복종하는 사냥개로 거듭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평소 여우 사냥을 해왔던 주인과 코퍼에겐 토드는 더 없이 좋은 사냥감. 

 

그렇지 않아도 토드는 자신의 주인인 호호 아줌마에겐 더 없이 사랑스러운 존재지만 이웃해 사는 사냥꾼에겐 눈엣가시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지금까지 자신을 키워준 호호 아줌마는, 비록 잘 못 지내는 이웃이지만 더 이상 이웃간의 평화를 깨뜨리고 싶지 않고, 여우의 야생성을 잃기전에 숲속에 토드를 두기로 결심을 한다.

이것은 또, 할 수만 있으면 주인이 토드를 죽이려는 사냥꾼에겐 더 없이 좋은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주인의 뚯이 그러하니 코퍼 역시 사냥꾼 기질을 발휘하여 주인을 도움와야 한다. 하지만 코퍼는 어릴 적 친하게 지낸 정이 있어서 그런지 토드가 있는 곳을 지나쳐 주인을 따돌린다.

 

그러던 어느 날 코퍼의 동료 늙은 개가 사고로 다리를 다쳤는데 그것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이 토드다. 그렇게까지 자기를 살려줬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는가 오해한 코퍼는 더는 봐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주인이 토드를 사냥하는데 적극 도와주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뜻밖에 숲속에서 큰곰을 만난 이들은 속수무책이다. 사냥꾼은 다쳤으며 그리도 날렵한 코퍼도 당해낼 제간이 없어 내동댕이쳐지고 만다. 그러자 토드는 마지막 힘을 다해 큰곰과 맞서 싸우고 간신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토드로부터 도움을 받은 사냥꾼과 코퍼는 이웃간의 평화를 되찾고, 잊혀졌던 옛 우정도 회복하며 해피엔딩이다.

 

물론 이건 '이웃끼리 서로 도우며 평화롭게 잘 살자.' 뭐 이런 교훈 정도겠지만, 나는 이걸 보면서 새삼 인간은 어떻게 사회화를 이루는가를 생각하게 됐다.

어차피 이런 만화영화는 동물을 의인화한 영화로 재미는 있지만, 결국은 사람의 이야기일수 밖에 없다.

어렸을 땐 세상 모든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특히 다인종 국가라는 미국의 경우도 어렸을 땐 친구가 안될 세계인이 없을 것만 같다. 그런데 자라면서 피부색이 다르고, 그들의 조상이 다르고, 이념이 다르고, 실력이나 소득 격차로 인해 알게 모르게 담이 쌓여진다.

이것은 꼭 미국의 경우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도 이제 다문화 가정으로 인해 점점 혼혈인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또한 빈부격차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 개가 자라 사냥꾼 기질을 갖게 되고, 여우가 자라 야생 기질을 발휘한다. 그들은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없는 존재들처럼 보인다.

그런 것처럼, 사람을 꼭 그런 사회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더라도 어렸을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커서도 친하게 지내지지도 않는다. 사는 정도, 자녀들이 어느 학교를 진학했느냐에 따라 레벨로 나눠지고 어느새 사는데 바빠 서로 연락도 멀어진다. 이런 인간관계의 공동화를 무엇으로 메울 것인가?

의외로 즐겁게 봤다가 생각하면 할수록 심각해졌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보니 뜬금없이 뭔가의 정치 풍자적 요소도 있는 것 같아 묘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이를테면 토드와 코퍼의 싸움이 정치인들 서로 비등해서 싸우는 모습 같기도 하다. 그들은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혹은 개인으로는 더 없이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에선 여야로 나눠지고, 같은 당 내에서도 파가 나눠져 서로 싸운다.

또 어찌보면 그들은 같이 넘어야할 산이 없어서 저토록 서로 기싸움만 하는가 싶기도 하다.토드와 코퍼 사이에 큰곰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들은 하나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정치인들이 저렇게 기싸움만 하는 걸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직 같이 넘어야할 큰 산이 아직 없으니 싸움 구경 만한 구경이 없으니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심정으로 지켜 본다?

아니면, 같이 넘어야할 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끼자루만 썩이는 그들이 위험하다?

아니면, 그들은 서로가 같이 넘어야할 산을 공동으로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가 먼저 굽히고 들어올 것인가를 지켜보느라 날만 새고 있다? 이 셋 중 어떤 것이 이 나라와 국정을 바로 보는 시각일까?

 

큰곰을 상대한 토드는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했던 걸까?

후에 코퍼와의 우정을 되살려 보려고? 뭐 그럴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은 어떻게 되어도 위기에 빠진 친구를 살려보려는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못 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것처럼, 당장 그 존재가 나를 괴롭힌다고 해서 언제나 쓸모없는 존재인 것은 아니다. 긴 안목으로 봤을 때 토드가 숲속으로 와서 야생성을 회복하지 않았더라면 큰곰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코퍼는 아무리 사냥기질이 있고 날렵해도 사람의 손에 길들여진 몸이니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야생성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멀리는 호호 아줌마와 사냥꾼 간에도 관계회복도 이루었다. 그 아수라장에서 사냥꾼도 무사할리 없고, 호호 아줌마의 치료도 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중간중간 숲속의 새들의 감초연기도 정말 맛깔스럽고, 사랑스럽다.

당연 어린 아이를 위해 만들어졌겠지만 어른이 봐도 좋고, 특히 우리나라 여야 정치인들이 같이 보고 토론해도 좋을 것도 같다. 비록 일개의 국민이 이것을 정치인들에게 권해야 하는 이 나라의 현실이 구차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진 2011-12-28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하, 디즈니입니까?
역시 저희세대랑은 안맞는 그림체인 것 같아요...
우리는 블리치나 원피스 같은 일본 그림체에 눈이 익어버려서..

stella.K 2011-12-29 12:04   좋아요 0 | URL
그래도 30년 전 저 기술이었으면 대단한 거지.
난 역시 디즈니가 좋아.
블리치나 원피스는 그림은 훨씬 좋은데 끌리지 않는 것을 보면
난 확실히 구세대다.ㅋㅋ

cyrus 2011-12-28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 이 만화, 어렸을 때 디즈니 동화책으로 봤어요,
정말 오랜만에 보네요.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는데 그 때 제가 본 동화책은
확실하게 영어 이름은 아니었어요. 그리고 만화 속에 등장하는
새들도 기억이 나요. 디즈니 만화들은 대개 미국인 관점에다가
원전 동화를 왜곡한 부분이 있어서 무조건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만화인만큼은 내용은 재미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거 같아요ㅎㅎ

사실 저는 일요일 아침 8시만 되면 KBS 2TV에 하던 디즈니 만화동산을
애청했던 디즈니 키드(?)에요ㅋㅋㅋ 90년대 후반에 태어난 아이들 중에
디즈니 만화동산을 아는 사람이 없을걸요 ^^

stella.K 2011-12-29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진이랑 시루스랑 어쩌면 그렇게 세대차이가 나냐?
댓글 쓴게 확 차이난다.ㅎㅎ
그런데 또 이렇게 보니까 시루스가 나랑 더 가까운 것 같아.
그러고 보면 일욜날 디즈니가 꽤 오랫동안 했던 것 같아.
물론 난 그 시간에 보지는 않았지만 말야.
그렇지. 미국적 관점과 왜곡이 있긴 하지만 오랜만에 보니까 그도 볼만 하더라구.
물론 약간 그림의 디테일이 차이가 나긴 하지만 난 그래도 괜찮게 봤어.^^
 
안철수, 경영의 원칙 서울대학교 관악초청강연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안철수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젠가 안철수씨가 '무릎팍도사'에 나온 것을 본적이 있다(개인적으로 그 프로가 문을 닫았다는 게 아직도 아쉽다. 토크쇼를 아주 즐겨보는 것은 아니지만 이만한 토크쇼도 없다는 생각인데, 그나마 문을 닫기 전에 안철수 씨가 나왔다는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전까지는 안철수란 이름만 들었지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관해서는 잘 알지도 못했다. 그때 그를 보고 저렇게 반듯하고 신사적인 사람이 또 있을까 싶게 좋은 인상을 받아었다. 

책은 그때 4시간 정도 인터뷰를 했는데 웬만한 거 다 잘리고 재밌게 이야기 한 부분만 편집되서 나왔다고, 그의 성정이 하도 반듯하여 그럴리는 없겠지만 말하자면 안철수식 툴툴거림이 있었다. 바로 이책은 그때 무릎팍도사에서 잘린 부분을 복원한 셈이라고 한다. 

 

사실 얇은 책이라 부담이 없을 것 같지만, 어떤 책은 얇은 책의 위력을 톡톡이 보여주는 책도 있어 이책 역시 만만히 볼 것은 아니지 않을까란 우려가 약간은 있었다. 그런데 결론부터 얘기를 하자면 꽤 유익한 책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솔직히, 그가 알려지기 시작하고 좋은 인상을 받으니 그동안 그가 쓴 책을 한 두 권 사 보긴 했다. 그런데 자기계발이니 경영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일까? 나름 유익은 했지만 생각만큼 그렇게 감동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책은 그것들을 보완이라도 한듯 명쾌해서 좋았다. 

 

무엇보다 그는 남들이 잘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하는 사람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해 보이는 것에 대해 질문을 한다. 즉, '사람들이 모여서 일할 필요가 있는가?' '회사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기업의 목적이 수익 창출이라고 하는데 이상하지 않는가?'하는 질문들이다. 원래 당연하다는 것은 없다. 그저 관성 내지는 타성에 젖어 질문하지 않는 것 뿐이지 안철수 씨가 갖는 질문은 우리도 당연(!)해야할 질문들이다. 특히 난 이 세번째 질문은 가장 탁월해 보이는 질문 같다.

사실 나는 기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소비자고, 온라인에서 여기저기 회원으로 있다. 그리고 내가 회원으로 있는 곳이 어느 회사고보면 진정으로 사람을 위한다는 느낌을 갖기가 어렵다. 그저 짐짝까지는 아니어도 단위조합의 일원(?) 뭐 그런 식으로 취급 받는 것 같아 마음이 상할 때가 있다. 특히 마케팅이란 이름을 내세워 선긋기를 하고 '그들만의 리그' 내지는 '그들만의 잔치'를 만들어 열심히 활동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둠의 자식'처럼 취급 받는다는 느낌이 드는 걸 보면 마음이 씁쓸해진다. 누구나 대접 받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장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알게 모르게 위화감을 조장하고, 회원관리란 명목하에 의식, 무의식적으로라도 뭔가의 레벨을 적용하려고 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마케팅을 하려면 무조건 물량주의로 가지 말고 사람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그 소리를 듣는 거로부터 시작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하는 사람들은 이 얇은 책이라도 읽어줬으면 좋겠다. 

 

특히 내가 도전 받은 건, 그가 인용한 스톡데일 패러독스다. 무조건 긍정의 힘 또는 긍정의 과신에 이끌려서 낙관주의자로 살기보다 똑똑한 현실주의자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낙관주의자는 막연히 잘 될거라는 믿음을 갖다 좌절하고 넘어지지만, 현실주의자는 자신은 좋은 운명을 타고났으며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현실을 냉정하게 보는 것이 스톡데일 패러독스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이런 것들은 자기계발이나 경영에서 취급하는 것이다. 새삼 독서를 편식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ㅋ

 

이책은 서울대학관악초청강연을 풀어쓴 책이다. 1부에서는 안철수 씨의 강연 내용이 그대로 수록되있고, 2부에서는 질의응답으로 되어있다. 질의응답도 꽤 정제되고 고급한 질의응답들이 이다. 특히 수록된 마지막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이 인상적이다. 소프트웨어를 구매해주지 않는 한국 국민의 시장 풍토의 문제에 대해 그의 정신과 의사 친구에 대한 예다.

나름 10년간 고생해서 학위도 받고 개원을 해서 환자들의 상담도 받고 했는데, 나중에 진료비를 청구하면 아까워한단다. 별것도 아닌 것에 진료비가 왜 이렇게 비싸냐고 궁시렁거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방법을 바꿔 상담이 끝나고 영양주사 한대씩 놓아주었더니 기분좋게 돈을 내더라는 것이다. 그런 것을 보면 한국 사람은 지적재산권 즉 소프트웨어, 영화, 전문가의 조선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그것을, 우리나라는 뿌리 깊은 선비문화가 있어서, 어떻게 양반이 천민처럼 지식에 대해서 돈을 청구해서 받느냐는 생각이 있다(115p)는 것이다. 그러면서 지식정보산업과 전문가들의 조언에 대해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연 생각해 볼만한 말이란 생각이 든다. 

 

사견이지만, 요즘 일부에선 안철수를 대통령에 앉히자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것에 관해 본인은 정말 어떤 생각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난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개인적으로 그를 좋아하기 때문마는 아니다. 그가 질의응답시간에 그런 말을 했다. 전쟁은 적을 믿으면 안 되는 반면, 정치는 적을 믿어야 정치가 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나라에는 정치가 없다(97p)고 말한 것은 참으로 적절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가 경영을 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국가경영이란 말이 있다. 이제 국가는 정치로 다스려지는 것이 아니라 경영을 해야할 때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정치를 하는 시대는 문민정부 이전에나 가능한 말이다. 문민정부 이후 대통령은 허울좋은 자릴 뿐 정치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는 세대가 아니다. 지금의 가카도 그의 시작은 경영에서부터 시작을 했지만 대통령의 권좌를 위해 경영을 버리 정치를 한다고 했다가 별 재미를 못 보고 임기 만료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미국은 벌써 오래 전에 영화배우도 대통령이 되는 상황인데, 기존의 정치인에게 나라를 맡겨 잘된 예가 없다면 경영인에게 나라를 맡겨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점쳐 보는 것이다. 물론 정책이 확실하고 그것을 끝까지 지켜낼수 있다면. 그런데 그를 견제해선지 하나의 신드롬으로 해석해서 띄우는 지금의 사화회적 풍토도 그닥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어떠한 사람이 뜨면 그것을 지나치게 우상화하거나 견제하는 극단을 보인다. 사람을 보는 관점이 좀 유연해질 수는 없는 것인지? 성숙사회.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담이지만, 이책은 내용은 좋은데 만듦새는 좀 허술해 보인다. 뒤에 낱장이 헐거워 떨어지게 생겼다. 책이 얇은 것에 비하면 가격은 그닥 싼 편은 아닌 것 같은데 꼼꼼할 수는 없는 것인지 아쉬움이 남는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1-12-23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들만의 리그` 내지는 `그들만의 잔치`를 만들어 열심히 활동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둠의 자식`처럼 취급 받는다는 느낌 - 아, 표현 좋고요 좋고...

저도 그들만의 리그에 끼지 못해 아웃사이더처럼 느껴질 때가 많은지라, 이 문장이 와 닿았는지도...모르겠어요.

저도 안철수님의 책 하나 몇 년 전에 읽었는데, 좋았어요.

stella.K 2011-12-23 15:46   좋아요 0 | URL
아, 페크 언니!(오늘 만큼은 그렇게 불러드리고 싶어요.ㅋ)
저 사실은 그제 좀 말했던 상황을 당했거든요.
거기가 마케팅으로는 엄청난댄데 송년모임 오늘 한다고 해서
좋은 마음으로 참석하려고 했는데 바로 이틀 넘겨두고 정말 실망스런
모습을 보이더군요. 그래서 당장 참석을 취소하려다 마음 가라앉히고
어제 완곡한 어조로 내 의견을 전달하고,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자기들만 좋자고 하는 잔치에 병풍처럼 앉아있는 내 모습 생각하니까
정말 김새겠더라구요. 아쉬워요. 내가 왜 그런 완곡어법을 썼는지 그쪽이
알까요? 잉잉~


페크pek0501 2011-12-27 19:21   좋아요 0 | URL
우리 스텔라님이 뭔가 단단히 서운한 게 있었던 모양이네요. ㅋ
누구나 종종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죠.
전 그럴 때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나에게 서운하게 한 당신도 언젠가는 누군가가 서운하게 해서 나와 똑같은 기분을 가질 것이다. 그때쯤 내 이 기분을 당신이 알리라...ㅋ

곧 한 해가 저물어요. 이 해를 잘 마무리하시고 좋은 연말 보내세요.:)

stella.K 2011-12-28 10:28   좋아요 0 | URL
오, 언니는 구도자 같으세요.
생각하시는 것에 덕이 철철 묻어나시네요.
언니를 알게되서 저는 너무 행복해요.
고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겠습니다.
언니도 얼마 남지 않은 한해 마무리 잘하세요.^^

마녀고양이 2011-12-24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무릎팍도사에 나온 안철수 교수님 편 정말 좋았는데,
프로가 사라져서 아쉽다는 문구에... 절대 동감 한표염!

음, 페이퍼랑 댓글을 보니, 기분 상하는 일이 있으셨나봐요,, 에고.
연말인데, 즐거운 일만 가득하면 좋을텐데. 내년 액땜 미리 하셨나봐요...
내년에는 즐거운 일만 한보따리 가득하시기를~ 메리 크리스마스!

stella.K 2011-12-24 10:51   좋아요 0 | URL
사실 올해 저는 그닥 좋은 한 해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돌이켜 보면 불행했던 것도 아니지만.
안 좋을 때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되는 것 같습니다.
올핸 저한텐 정말 그랬거든요.
그런데 막판 뒤집기라도 할 요량으로 성탄절인데 집에 있으면
뭐하나 모임이나 나가보자 했던 것이 막판 뒤짚기가 안 되네요. 흑~!
난 이대로 어깨를 낫추고 한해를 보내야 하려나 보다 싶어요.
그래도 마녀님 이렇게 와 주셔서 격려해 주시니 고마울 다름입니다.
마녀님도 행복한 성탄 되세요.^^

이진 2011-12-24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분 상하신 일이 있으셨다니요 ㅠㅠ
제가 기분 풀어드릴게요 ㅎㅎ 언제가 큰다면~

저도 무릎팍도사 참 좋은 프로그램이라 생각했어요.
`한비야`라는 사람을 그 프로로 만나 나의 최정상 롤모델로 삼아버렸고,
또 강호동이 더욱 더 좋아져버린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지요...

안철수는 제가 정치에는 정말~ 저~엉말 무지한터라ㅋㅋ

stella.K 2011-12-24 14:33   좋아요 0 | URL
ㅎㅎ 충분히 웃겼어!

한비야 나오는 거 나도 봤었어.
그렇지 않아도 한비야를 롤모델로 삼는 청소년들 많다고 하더라.
너도 그중 한 사람이었구나.
난 한비야도 대단하지만 그 사람을 롤모델로 삼는 아이들이 참 기특하더라구.

나도 정치는 모르는데, 대통령은 정치 잘한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안철수가 꼭 대안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가 정계에 나온다면 그도 나쁘지 않겠다는 정도지.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는 워낙 진창이고 바닥이라 그런 분이 발 담그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런데 박원순 시장이 잘해 준다면 안철수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둘 다 비정치계잖아.
뭐 나도 알고하는 소리는 아니고.ㅋ

2011-12-25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6 15: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칼과황홀]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칼과 황홀 - 성석제의 음식 이야기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사람들은 작가 성석제의 작품들이 재미가 있다고 하는데, 사람 저마다 느낌이 다르고, 코드가 달라서일까?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의 책을 몇 권을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특별히 재밌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대신 늘 조금은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재밌게 읽히는 것과 편하게 읽히는 건 다른 것이긴 한가 보다.  

 

사실 이책도 약간의 그런 편견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역시 쉽게 읽혀지는 책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물론 나의 독서 습관상 어렵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은 제껴두기 마련인데, 이책은 묘하게도 끝까지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는 이런 음식 관련책을 마다할 사람이 없으며, 읽다보면 먹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겠만 나는 좀 둔해서일까? 이 정도 가지고 군침을 흘릴 정도는 아니었다. 단지 이책을 끝까지 읽을 생각을 했던 건, 작가의 끊이지 않는 글발과 인문학적 식견 때문이다. 매 새로운 쳅터를 읽을 때마다 어쩌면 그리도 주저리 주저리 끊이지 않는지 과연 작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참 부지런하게 발품을 팔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작가가 정말 언젠가 음식 에세이를 써야지 하는 맘으로 그렇게 많은 곳을 온전히 취재에 공을 들였을지, 아니면 여러 가지 다른 일을 하다가 음식이란 게 끼어들어서 그것을 정리할 겸 썼는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작가라면 한번쯤 음식과 관련된 글을 써봄직도 할 것 같다. 

 

사실 작가는 매일 정해진 시간 동안 혼자 외로움을 견디며 좀비 같이 글을 써야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일 것 같지만, 나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생각이다. 뭐 이름없는 무명작가는 그럴지 몰라도 알려진 작가들은 자기 글쓸 시간을 확보해 놓는 것은 분명하겠지만, 끊임없이 왕성한 탐구력으로 여기 저기를 쑤시고 돌아다니고, 사람들과 만나 교재하는 가운데 글감을 뽑아내는 족속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글을 써 댈 수 없을 테니까.

아무튼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고, 과연 나도 이렇게 쓸 수 있을까에 의문이 생겼다. 나는 아마도 이렇게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읽다보면 나의 지난 날의 기억들이 자극을 받는다.

20대 때, 멋모르고 교회 친구들이랑 노동절을 맞아 춘천 삼악산(거긴 정말 악산이다. 적어도 산을 탈 줄 모르는 나는 그렇다.ㅋ)을 간적이 있다. 그곳을 오르기 전 배를 든든히 채우겠다고 어느 조그맣고 허름한 식당에 들렸다. 조그맣고 허름하니 음식 맛이 뭐 있겠나 기대도 하지 않고 먹기 시작했는데 와,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이 기가 막혔다. 그냥 가정식 백반을 먹었는데, 나는 평소 습관이 어디 나가서는 가정식 백반은 거의 시켜 먹지 않는다. 집에서도 먹는 게 가정식인데 뭐 나와서까지 그걸 시켜먹겠는가 했다. 그런데 시킬만한 게 그것뿐이 없었는데 그 생각을 완전히 뒤짚어 논 게 그집 가정식이었다. 강원도니 여러 가지 산나물이 많이도 나왔겠지. 나물을 그렇게 좋아하는 식성도 아니었는데, 그집 나물은 정말 맛있었다. 초로의 주인이 손끝은 감각만으로 무쳐 냈을 것이겠지만 너무 맛있어 우리는 몇 접시를 더 달라고 했는지 모른다.

 

그뿐인가, 10년 전쯤 지인 두 명과 오랜만에 만나 점심을 먹자고 경복궁역에서 만났는데 어떻게 입이 맞아 삼청동이 여기서 얼마 멀지 않으니 거기 가서 칼국수를 먹자고 했다. 인도하는 사람이 전에 이집에서 칼국수를 먹었는데 맛있다며 들어간 곳 역시 낡고 허름한 식당이었다. 우린 빈대떡과 함께 그것을 시켜 먹었는데 정말 너무 맛있었다. 그후 1년인가, 2년만에 거길 다시 한 번 가자고 모였는데 길을 찾지 못해 결국 엉뚱한데서 점심을 먹었던 적이있다.

그러니까, 앞서 삼악산을 오르기 전에 들렸던 춘천 어느 이름 모를 식당과 삼청동의 그 칼국수집은 나에게 있어서 맛의 무릉도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또, 이렇게 사람들 저마다 맛있어서 먹고 다시 찾아가면 못 찾을 그런 맛집이 적어도 하나 이상은 있지 않을까? 그런 맛집은 정말 숨어 있으며 여간해서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야말로 아는 사람만 안다. 

그런데 요즘엔 자본주의 세상이고, 방송 장비가 발달이 되고 보니 소개되지 않는 맛집이 없을 정도다. 모르긴 해도 하루에 적어도 2,3 곳은 맛집을 TV 앞에 앉아서 소개를 받는 것 같다. 그뿐인가? 성석제 같은 작가가 아니어도 저마다 미슐렝 가이드를 자처하는 맛칼럼니스트가 소개하는 맛집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그렇게  1년이면 몇집이란 말인가? 사람도 바글바글 하고, 손님은 하나 같이 맛있다고 엄지 손가락을 높이 치켜 들기를 서슴치 않는다. 그 맛집이 쓰는 식재료들 보면 예사롭지 않아 시청자들도 과연 그렇겠다 싶게 고개를 끄덕이게도 만든다. 먹어봐야 맛을 안다고, 정말 맛있을지는 먹어보지 않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음식 에세이를 쓴다면 난 이렇게 알려지지 않는 조그맣고 허름한 식당에 관해 썼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내가 이책에서 가장 부러워 하는 대목은 저자가 업무차 해외를 돌아다니면서 먹었던 음식에 관해 쓴 것이다. 사람이 한 번 작가의 꿈을 품었다면(그것도 소설로) 해외는 다녀와야 하는 것 아닌가. 특히 독일의 도서축제. 그것을 자랑하려고 해서 했던 건 아니겠지만 은근 나의 부러움을 자극한다. 독일하면 맥주의 나라. 성석제 작가도 기네스라는 맥주를 마셨던 모양이다. 

나는 기네스라는 맥주를 3년 전 시나리오 공부를 했을 때 학원 동기들과 마셔 본 기억이 있다. 

괜찮은 연극 한편을 보고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워 밥을 먹고 가까운 맥주바에 들렸다. 기거서 그날의 연극 관람 모임을 이끌었던 아이가 묻지도 않고 머리 숫자대로 기네스 맥주를 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맛있나? 나야 술하고는 친하지도 않아 뭘 시켜도 한 잔 이상은 먹지 않을테니 그런가 보다 하겠는데, 그 맥주는 일반 맥주 보다 2,3배는 비쌌던 거 같다. 속이 좀 쓰린 것도 사실이었지만, 이렇게 묻지도 않고 시킬 정도라면 미친 척하고 마셔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유난히 자잘한 맥주 거품이 정말 매혹적이고, 목넘김이 정말 부드러웠다. 한 잔을 다 마실즈음 취기가 올라왔는데 그게 또 꼭 취기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웬지 모르게 기네스 맥주를 시켰던 그 '기네스'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아니면 내가 그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렇게 경계가 모호한채 나는 그때부터 한동안 그를 마음 속으로 연모했다. 

지금도 가끔, 어느 때고 술에 취해 본적이 없는 사람은 사랑에도 취할 수 없는 거였을까? 못내 기네스를 그렇게 떠나 보냈던 것이 아쉬웠다. 사랑에 대해서 만큼은 쿨하다고 생각했는데, 난 쿨한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해봤다. 모든 늦되는 나는 이거야 말로 정말 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나는 기네스 맥주 같은 건 그렇게 전문바에서만 파는 줄 알았다. 그러다 작년인가? 아는 지인으로부터 그것도 편의점에서 판다는 것을 알았다. 아, 왜 나는 그런 생각을 못했던 걸까? 그것을 안 후 나는 편의점으로 가 정말 기네스 맥주가 있는지 확인헤 보았지만 찾을 길이 없어 오죽하면 카운터의 알바생에게 다 물어보았을라고. 그랬더니 찾는 사람이 없어 취급을 하지 않는다는 말만 들었다. 아니 그렇게 좋은 맥주를 찾는 사람이 없어 취급을 안 하다니! 도대체 술 마시는 사람들은 뭘 마시는지 모르겠다. 그때 모처럼 그것을 사서 마시며 옛 추억을 더듬어 볼까도 생각했는데, 다른 편의점을 갔으면 살 수 있었을까? 그것까지는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고, 그와의 기억은 거기까지였구나 생각하며 다른 잡다한 것만 사 가지고 나온 적이 있다.

 

이렇게 음식이란 사람을 기억하게 만들고 예 추억을 더듬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는 작가의 말은 확실히 맞는 말 같다. 한 번쯤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1-12-22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석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읽은 뒤로 그의 책을 안 읽은 것 같아요. 그 책, 제목에 끌려서, 또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괜찮을 것 같아 구입해 읽었는데, 별로 였어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요즘 드는 생각인데요, 일단 작가 자체가 재밌는 사람이라야 책도 재미가 있어요. 또 작가가 매력이 있는 사람이라야 책도 매력이 있어요. 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래서 글쓰기가 두렵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난, 댓글 쓰는 것도 어려워요.)ㅋㅋ

님이 읽어 보라고 권하시니, 이 책은 최소한 무미건조하지 않겠죠?

stella.K 2011-12-23 11:07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코드의 문제인 것 같아요.
작가가 법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문체가 좀 하드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황만근은 나름 재밌게 읽었던 것 같아요.
당시 제 후배는 킥킥대면서 읽었다고 하는데 저는 그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이책은 조심스럽긴 한데 읽을만 하다고 생각해요.^^

이진 2011-12-22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드디어 쓰셨군요.
저는 오늘에야 다 읽어간답니다 ㅋㅋ
그런데 꽤나 괜찮은것 같아요.
정말 신기해요 저도,
어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지 정말 신기하단말이지요

2011-12-23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3 2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24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1-12-22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성석제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진 못했지만 이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은, 수위 조절을 잘 하고 있다는 것이요. 개인적인 얘기를 하면서도 지나치게 털어놓지 않고, 지나치게 과장하지 않는, 그런 조절을 참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 내용보다 제목이 좀 더 멋진 것 같아요. 의미도 그럴듯 하고요.

stella.K 2011-12-23 11:20   좋아요 0 | URL
저도, 제목이 왜 칼과 황홀일까 생각했는데 잘 썼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에 평가단에서 보내 준 책 대체로 만족스러웠어요.
오늘쯤 새로운 책이 발표가 날 것 같은데 어떤 책이 될지 궁금해요.^^

아이리시스 2011-12-23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황만근 읽었었는데 당시 토론과제라서, 늘 소재나 주제가 약간 토속적인 면이 없지않아 제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익살과 유머가 있던 걸로 기억나요. <칼과 황홀>은 에세이인거죠? 먹는 것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들은 언제나 감동을 주지요. 먹는 것 싫어하는 사람 없으니까요. 어디에서 무얼 먹었느냐로 그날 나눈 이야기와 만난 시간들을 기억하기도 하고, 저는 영화를 함께 본 사람은 탁월할 정도로 오래 기억하는데, 음식도 그런 지점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아.. 맛있는 거 먹고 싶다,ㅎㅎㅎ

stella.K 2011-12-23 15:13   좋아요 0 | URL
아..최근 방문 숫자도 늘고, 즐찾도 늘었는데
이놈의 추천은 늘 생각을 안해요. 저 좀 과외 좀 시켜줘요.ㅜㅜㅋ

그래요. 익살과 유머. 이게 느껴지지 않으니 어쩌면 좋아요.
이책은 물론이고. 하지만 나름 재밌게는 읽었어요.
그렇구나. 영화를 함께 본 사람.
그러고 보면 저는 누구랑 어디서 뭘 먹었는지를 잘 기억하는 사람인가...?
확실히 성석제는 잘 기억하는 사람 같아요. 거침이 없구.^^

아이리시스 2011-12-23 19:04   좋아요 0 | URL
과외를 어떻게.. 제가 감히 작가님한테 시켜줍니까ㅋㅋㅋ 호불호가 명확한 스텔라님이 어려워서 놀러는 오지만 살짜기 들렀다 가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거랑 상관이 있을까요?

stella.K 2011-12-23 19:2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저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여잔데....쳇!ㅠㅠ
그런데 오늘 평가단 도서발표를 안할 모양입니다.
보통 이맘 때 했었는데...ㅜ
 

10년 전이면 이보다는 젊어있었지.

모처에서 연극 대본을 쓰고 있었다. 물론 극단처럼 전문적으로 했던 건 아니지만 나름 필요했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했다. 형식적이긴 했지만 원고료도 받았다. 작가냐 아니냐를 가늠하는 건 무슨무슨 문학상을 받았냐 아니냐도 필요하겠지만, 그 잣대는 내가 원고를 쓰고 원고료라는 것을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가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자본주의 사회니까. 그렇다면 작가고, 그냥 썼다면 그건 작가지망생에 불과할 것이다. 나는 그때 그런 생각이라도 가지고 있었어야 했다. 그래야 버틸 수 있었을 테니까.

작가. 나름 얼마나 동경하고 바래왔던 일이던가. 처음 짧은 대본, 아마도 A4 용지 3매 정도를 쓰고 받았던 나의 원고료는 5만원이었던가 했을 것이다. 그맘도 17,8년 전 일이다. 그 대본은 굳이 말하자면, 고등학생 학습을 위한 대본이라고 해두자. 이로써 나는 작가가 된 거야. 나름 뿌듯했다. 그러다 성인들과 함께하는 본격 연극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썼던 건 크리스마스용 뮤지컬 대본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장을 여는 시발이었다. 나름 시작이 좋았으니 정말 내가 뭐라도 된 듯했다.

하지만 뭐든 어려운 시기가 온다. 글을 쓰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인간관계가 가장 많이 어렵고, 나의 발목을 잡는 일이다. 사람이 싫으면 싫어서 어렵고, 좋으면 좋아서 어려웠던 것 같다.

그 일은 새로운 밀레니엄과 함께 시작이 되어서 2006년 초 공식 해단에 이르렀는데, 우리의 공식 활동은 2005년 말까지였다. 그러니까 무려 6년을 꽉 채웠다. 해단을 하고 보니 당장은 섭섭한 마음 보단 시원하단 생각 밖엔 들지 않았다. 그만큼  마음 고생이 심했다.

 

그런 조사도 있단다. 스트레스로 인해 단명하는 직업군에 언론인, 작가 등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알만하다. 역사적으로도 문명을 떨쳤던 작가들은 거의 단명하지 않았나. 물론 그렇지 않는 문인도 많이 있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었던 건, 그 6년의 기간 어느 한 해는 일종의 신경쇠약으로 병원에 잠시 입원했던 적도 있다. 물론 지금도 모를 일이다. 병원에 입원할 운명이어서 그렇게 된 것인지, 정말 글쓰는 스트레스가 심해 병원에 입원했는지는. 그때 내 작품을 연출한 연출가가 엄청 나를 쪼아댔으니까.

그런데 지금 세월이 지나 생각해 보면, 작품으로 인해 스트레스 받는 것은 견딜 수 있는 스트레스란 생각이 든다. 난 오히려 그 외의 부수적인 일에 괜히 핏대를 세우고, 필요 이상의 과도한 오해를 하고 그래서 관계를 더 안 좋게 만들고, 나 자신에게 상처내는 일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그게 아니더라도 오래 해왔으니 지칠 때도 됐다. 해단에 미련 같은 건 없었다. 만일 내가 글을 다시 쓴다면 연극 대본 같은 건 안 쓰고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 소설이나 써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이렇게도 적용될 수 있을까?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사람들과 부딪혔던 기억 보단, 웃고 떠들고 서로의 꿈과 비전을 나눴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일에 대한 그리고 나의 태도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에 대한 시야가 확보가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때를 돌이키면서, 그때가 그토록 어렵고 힘들었다면, 나는  야마모토 겐이치의 <리큐에게 물어라>는 책을 뽑아 들었을 것이다. 재미도 재미지만 묵직한 울림이 좋았다. 그리고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구성이 놀라울 정도다. 그것을 통해 인생을 관조하는 주인공의 시선이 마치 무사가 한점 흩트러짐 없이 난을 치던 그 자세가 연상이 되면서 깔끔하고, 정갈하다.  

물론 리큐는 나중에 활복자살을 하는 것으로 끝마치지만(아무래도 그것은 그 시대 그 나라만이 갖는 독특한 문화라면 문화 같다) 유독히 갈팡질팡 갈피를 잡지 못했던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책은 아니었나 생각한다.   

사실 인생에 코치나 멘토가 있으면 좋을 것이다. 당시도 상의할 상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특별히 멘토해도 좋을만치 의지할 상대는 아니었기에 그 시절 나의 삶은 더 미숙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이 책이 멘토링이 될만한 책은 아니다. 그런 것을 원한다면 자기계발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난 그저 리큐의 영혼.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 뿐이다. 

 

사실 10년 전 그 시절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게 한 가지 더 있었다면 앞서 말한 연출가를 좋아했던 이유도 있었다. 마음으로는 좋아했지만 작가와 연출가란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그와 했던 첫번째 작품을 빼놓고 거의 매번 의견의 차이 때문에 싸웠다. 그리고 급기야는 결별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얼마 후에는 아예 팀을 떠났는데, 그나마 다행인 건 그가 떠나는 결정적인 이유가 나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 정도. 그래도 그는 나 때문에도 힘들어 했었던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내가 그 시절 그와 악바리 같이 싸웠던 건 꼭 내가 작가고 그는 연출가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우린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다. 사랑 아니 적어도 좋아하는 마음은 계산되어지는 것이 아니라지만, 나이도 나 보다 어렸고, 나는 그저 평범한 중산층이지만 그는 상류층이다. 무엇보다 자기 세계가 확고해서 남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런 그를 내가 좋아하는 건 의미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도 안 좋은 사이가 되어버렸는데,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선 진짜 좋아해 보기도 전에 지레 겁먹고 거절 당하는 것이 두려워 싸워서라도 나의 마음을 경계하려는 것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은교>의 박범신 작가는 그런 인간의 감춰진 심리를 묘파하는데 탁월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늙은 육체에 자신의 영혼을 가둬두고 나중엔 육체를 태우고 한줌의 재로 남는 이적요 노인이 나와 같아서일까? 난 마지막 장을 읽고 이내 울어버렸다. 

사랑은 원래 양쪽 눈을 뜨고 있는 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 육체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노쇄해 진다. 이것이 또한 인간의 딜레마다. 나이가 먹으면 시야는 깊어질지 모르지만 활동 반경이 좁아진다. 스스로를 제한 시키지 말고 도전하고 후회를 될 수 있으면 적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거절당할 것이 두려워 사랑을 못하는 것 보다 실연 당할 때 당하더라도 사랑하는 영혼이 더 아름답다. 

 

내가 작가가 되길 소망해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서 그것은 반쯤은 이루었지만 당시엔 사람들은 나를 괴롭힌다고만 생각해서 반쯤 이룬 것 보단 반쯤 안 이룬 것에 더 많이 침잠해 들어갔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사람이 뭔가에 뜻을 품었으면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것에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습관적으로 작가들의 글쓰기에 관한 책에 집착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글쓰기 비법을 알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작가는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실제적인 조언 내지는 작가적 태도를 알고 싶어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작가의 꿈만 꿨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작가가 되겠는가도 중요하다.

 

올여름의 끝자락에서 김영하의 <검은 꽃>을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작가는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사람이겠구나 하는 통찰이었다. 작품에 보면 박광수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그는 원래는 신부가 되려다 신내림을 받고 박수가 된다. 우린 무당하면 무조건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데 무당에 대한 작가의 새로운 해석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가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 한다는 점에선 작가도 이래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의 확대까지 가능해 졌다. 그때 나는 너무 안일했다.

 

사실 해단이 이루어졌을 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나에게 있어서 한 시대가 갔다는 것이다. 한 시대가 가면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한 시절을 자꾸 그리워하고 추억한다는 것은 그 시절을 두고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도망치듯. 그렇다. 그것에 미련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도망친 것에 불과했음을 시간이 흘러 깨달았다. 내가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을 읽고 리뷰에 결핍이란 단어를 썼다. 무슨 맥락에서 썼냐면, 미완성에서 완성으로 가는 맥락에서 그렇게 썼다. 나는 한 시대를 충분히 누렸다고 자부할만큼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늘 뭔가에 목말랐지만 그것이 꽉 채워져야 글을 쓰게 될 줄 알았다. 충만해서 글을 쓰길 바랬던 것이다. 뭐든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죄짜내는 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즈음 생각해 보면 충만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근육이든 생각이든 자꾸 쓰는데서 발달이 되는 것처럼 모자라고, 부족한 가운데 쓰는 것이 또한 글 같다. 

그런데 난 그동안 뭔가를 끄적여왔던 것 같긴 하지만 자신감은 10년 전보다 훨씬 더 없어져 심지어는 내가 뭘 해왔는지 조차 까먹고 있었다. 그래서 모 작가가 나에게 작가 포스가 느껴져요 했을 때도 나는 한사코 부인만 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이책을 읽었을 때, 난 자기가 하는 일에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쓴적이 있다. 은희경 작가가 그랬다. 이책은 거의 자신의 일과 관련해서 느끼는 바들을 솔직하고 간결하게 재잘거리듯 쓴 책이다.

나는 스스로를 작가라고 생각하면서도 이것을 밝히기가 은근 쑥스러웠다. 더구나 최근엔 글써서 원고료라는 것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밝힐 입장이 못 된다. 예전에 글 좀 썼어요. 하는 것이 뭐 그리 대수겠는가.

그런데 좀 우스운 건 다시는 연극 대본은 쓰지 않겠다는 내가 얼마 전부터 다시 붙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오랜 잠을 자다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 느낌이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그전보다는 훨씬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왜 일까? 아마도 밝힌 이 다섯 권의 책을 읽었기 때문은 아닐까.ㅋ

아무튼 나의 새로운 출발에 축복해 주시라.^^ 

             


댓글(7)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1-12-18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복해드리고 싶군요. 건필하시길..^^

stella.K 2011-12-19 13:5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킹피셔님.
영화 <피셔킹>이 생각납니다.
그 영화 정말 재밌게 봤는데.ㅎ

조선인 2011-12-19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다시 시작하는 모습이 참 부럽습니다. 건강한 연말연시 되시길.

stella.K 2011-12-19 13:55   좋아요 0 | URL
에고 뭘요. 할 줄 아는 게 그것뿐인데 이것도
주변머리가 없어 열심히도 못한답니다.
암튼 고마워요.
조선인님도 좋은 연말연시 되시길.^^

blanca 2011-12-21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를 읽으니 스텔라님...저는 감동받았어요. 스텔라님이 희곡을 쓰고 또 어떤 남자는 연출을 하고. 스텔라님의 그 시대가 눈 앞에 떠오르기도 하면서. 스텔라님 작가 맞아요.

stella.K 2011-12-22 14:38   좋아요 0 | URL
아, 브랑카님. 님은 항상 저에게 조용히 응원을 해 주시는 분이군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이거 약간의 목적이 있는 페이퍼에요.
모처에서 입상하면 돈 준다기에.ㅎㅎ
이것 밖에는 글을 쓸게 없더라구요. 써놓고도 좀 강한 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했는데 까짓 거 지난 얘긴데 뭐 어떠랴 싶더군요.
근데 저 거기서 가장 낮은 등수의 입상도 못했더라구요. 얼마나 화끈거리던지. 기운도 빠지고. 아, 글쓰기가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조용히 와서 응원해 주시는 브랑카님 같으신 분 계셔서 고마워요.
작가는 누가 불러줘서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고, 나 스스로 그 정체성을 만들어 가야 하는 것 같더라구요.
누가 너 작가 아냐. 해도 저는 작가라고 우기며 살랍니다.
내가 원고료로 단 돈 10원을 받아도.ㅋㅋ

문지원 2011-12-22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와 넘 해박하셔서 근접이 어려울듯----

도움이 필요합니다 재닛말콤 저널리스트와 살인자 란 책이 너무 읽고 싶은데 도무지 검색이 안되는군요...혹시 제가 구입할 수 있게 길잡이가 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소울푸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소울푸드 - 삶의 허기를 채우는 영혼의 레시피 소울 시리즈 Soul Series 1
성석제 외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소울푸드란 무엇인가?

 

소울뮤직도 있고, 소울메이트도 있으니 소울푸드라고 왜 없겠는가.

그래도 소울푸드. 그리 낮설지 않은 단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는 못한 것 같다. 이책을 손에 들고서야 과연 그렇겠군.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소울푸드란 말하자면 유난히 집착하게 되는 음식. 그것이 불량식품이든, 양영식품이든 나에게 힘을 주는 음식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책은 나름 읽을만하다. 21인의 각계 명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과 그에 얽힌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 그냥 편하게 잠자기 전, 서너편씩 읽다가 자기에 좋은 책이다.

그런데 솔직히 다소 삐딱한 성격인 나는, 누구만 입인가? 이런 책을 굳이 명사들만 소개하고 있게. 뭐 그런 상대적인 불만 같은 것이 없지 않았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더니 이 말을 생각하기에 딱이다. 

그런데 또 이런 생각은 뭘 잘못 먹어서 드는 생각인지 모르겠다. 성격이 그래서라기 보다 먹는 음식에 살짝 돌리고 싶어진다. 왜 좀 마음이 그득하고 넉넉해서 모든 것을 예쁘게, 너그럽게 봐줄 수는 없는 걸까? 뭔가 기가 약한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영혼과 육체는 밀접해서 기는 마음이나 생각을 다스린다고 해서 생겨지는 것은 아니고, 음식을 통해서도 그것을 보호하고 보충해 줘야만 할 때도 있다. 그러니 살기위해 먹는가, 먹기 위해 사는가 하는 질문은 그 자체가 필요가 없는 질문일 것이다. 

 

책소개에서도 잠시 언급을 했지만, TV 드라마 같은데서도 종종 클리셰처럼 차용하는, 동대문에서 뺨 맞고 남대문에서 화풀이 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 와서 양푼에 밥 두 공기쯤 넣고 있는 반찬, 없는 반찬 다 넣고 고추장에 비벼 우걱우걱 씹어 먹는 비빔밥은 그 먹는 모습만 봐도 뭔가 풍만한 마음을 갖게 한다. 왜 그렇게 동대문에서 뺨 맞으면 꼭 집에 들어와 비빔밥을 먹을까? 이건 아무래도 우리나라에만 있는 장면일듯 싶기도 하다. 다른 미드나 일드를 보라. 누구가 뺨 맞았다고 집에 와 비빔밥을 먹나. 비벼 먹는 것 자체도 없거니와 설혹 있다고 해도 우리나라 나물류가 없으니 뭘 넣고 비빌텐가? 스테이크에 감자, 옥수수, 스프 등을 양푼에 넣고 비빌 것인가? 그럼 개밥 되겠지. 그런 의미에서 나물 넣고 비비는 비빔밥은 역시 우리나라 최고의 음식임에 틀림없고, 그것 다 먹고 트림 한 번 하고, 커피로 입가심하면 속상한 건 잠시라도 잊을 수 있다. 그러니 이 또한 소울푸드로 손색이 없다.

 

밥성애란...?

 

하지만 난 밥성애가 나의 소울푸드라고 말하고 싶다.

밥성애가 뭐냐구? 밥과 모성애를 합친 말하자면 (리뷰를 쓰느라 급조한) 내가 만들어낸 신조어다. 

 

살면서 위기의 순간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오래된 이야기지만, 역병과 같은 IMF를 우리집이라고 피해가지 않았다. 그 무렵 무슨 정신이었을까? 오빠가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사업을 늘렸다 쫄딱 망해 먹었다. 그것을 가장 늦게 안 건 나였다. 무슨 얘긴가가 오빠와 엄마, 동생하고만 오고 갈뿐 나를 따돌리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뭔가 덜미가 잡혔고 그제서야 내막을 알게 되었다. 속이 상해 죽을 것만 같았다. 그때까지 시간을 엄수하는 나의 배꼽시계는 울리지 않았고, 밥이고 뭐고 먹을 생각이 도무지 나지 않았다. 이대로 굶어죽어도 모양새는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는데, 마침 집엔 아무도 없었다. 엄마도 속이 상하니 이모네를 가셨던 것 같고, 그렇게 혼자 얼마를 울었을까? 울고나니 기운이 빠졌고, 조금 더 있자니 허기가 몰려왔다. 나는 할 수 없이 주방으로 나와 밥을 차려 먹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때 먹은 음식이 먹다 남은 음식 쓸어넣은 비빔밥은 아니었다. 그냥 늘상 먹던 밥상 그대로다.

엄마는 필시 내가 어느만치 울고나면 밥을 차려 먹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전날까지 보지 못했던 반찬 한 두 가지가 더 추가가 되어 있었다. 그나마 밥을 먹고났더니 속이 한결 편해졌다. 배가 든든해지니 마음도 편해졌다. 이대로 굶어 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아플 때도 먹고 앓는 체질이라, 흔히 속상할 때 곡기를 끊는 사람을 보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그들도 굶어 죽기까지는 하지 않겠지. 그저 밥을 안 먹고 있는 시간이 나는 짧은데 비해 어떤 사람은 긴 사람이 있다는 차이 정도겠지.

물론 그때 밥을 먹고 속이 든든해졌다고 해서 당장 오빠나 엄마를 용서할 마음이 생겼다는 것은 아니다(그렇게 된데는 엄마의 책임도 일부 있었다. 자식이 많으면 어느 한 자식만을 위해 줄 수 없는 것이 부모된 마음의 고충일 것이다). 속이 든든해졌다고 해서 선한 마음만 갖게되는 것도 아니고, 미워하는 것도 기운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음식은 착한 마음도 갖게하지만, 미워하는 마음에 유용한 땔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그래도 나의 육신을 낳고, 평생 때 굶지 않게 해 준 엄마는 차마 미워할 수 없더라. 가끔 짜증은 낼 지언정.  

 

밥이란 참 묘한 구석이 있다. 

매일 먹으니 질린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가끔은 지루하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하루 세 번 먹는 때거리 중 점심은 밥을 먹지 않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하루 삼식을 다 밥으로 채우면 웬지 모르게 부담스러워 점심 정도는 다른 것을 먹게 된다. 이를테면 빵이나 떡, 고구마, 국수나 라면 같은 포만감을 줄 수 있는 간식으로. 

어쩌다 생각지도 않게 점심을 그런 간식거리로 채우고 저녁을 바깥에서 먹게 됐는데 그것이 공교롭게도 밥이 아니고 다른 먹거리였다면, 그 다음 날 아침 밥상을 받았을 때 밥의 목넘김은 마치 추울 때 따뜻한 이불을 덮는 것만큼이나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이다. 그제야 밥이 이렇게 좋은 거구나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다 체해서 내내 밥을 못 먹고 있다 막힌 것이 뚫려 식욕이 동할 때 먹는 밥도 같은 것이다. 

 

밥은 또한 나의 엄마다.

맛을 깨닫는 것은 내가 미맹임을 깨닫는데서 부터 시작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까지 늘상 엄마가 해 주는 밥과 반찬만을 먹었던 어린 나는, 아랫방에 세들어 사는 아줌마의 반찬이 정말 맛있다는 걸 알았다. 어느 날은 아주머니가 앞서 말했던대로 양푼에 밥을 비벼 먹는데 나도 모르게 그 앞게 가 앉아 언제쯤 한 숟깔 퍼서 나의 입에 넣어줄까 침이 나올 정도로 기다렸다. 그 아주머니가 푼 밥숟깔은 탐스럽기도 하거니와 윤기가 자르르 한 것이 과연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했다. 그렇게 보고 있는 내가 불쌍했던지 드디어 아줌마는 한숟깔 잔뜩 퍼서 나의 입에 넣어 주었다. 그때 느끼던 맛은 천국을 다녀 온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미처 채 느껴볼 새도 없이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당장 안방으로 건너 오라는 것이다. 그리고 혼이 났다. 엄마가 해 주는 밥도 있는데 거지 같이 그 방에 가서 턱쳐들고 있다고. 난 그저 본능이 시켜서 했을 뿐인데 거지라니. 엄마는 평소 거지를 3대 악인 중 한 사람으로 취급할 정도로 쇄뇌 교육을 시켜왔다. 오죽했으면 문지방에도 못 서게 했을라고. 거지된다고. 

그런 말을 들은 내가 또 아랫방을 갔을리 만무했지만, 그건 지금 생각해도 잔인한 처사인 것 같긴 하다. 같은 음식이라도 집집마다 하는 방법이 다르고 맛이 다른데 자꾸 이집 저집 먹어봐야 미맹을 깨치고 우리집 음식이 좋으면 얼마나 좋은지, 남의 집 음식이 다르면 얼마나 다른지 알 것이 아니겠는가. 당시 엄마는 문중에 음식 솜씨 좋기로 정평이 나 있긴 했지만, 의인이 자기 고향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엄마의 음식 솜씨는 우리집에선 그다지 환영을 받지 못하는 편이었다. 남들이 손가락을 쪽쪽 빨며 먹는 엄마표 음식은 우린 그저 덤덤하게 먹을 뿐이니까. 그러다 어쩌다 남의 음식을 맛볼 기회가 있으면 그때야 비로소 겨우 인정해 줄 정도였다.

 

다른 집도 마찬가지겠지만, 밥은 엄마와 뗄레야 뗄 수 없가 없다.

학교 다니는 자녀가 있는 경우 지금은 급식들을 하겠지만 나 때는 그것이 흔한 것이 아니었다. 엄마는 해도 뜨기 전에 일어나 밥을 해서 네 사람 분의 도시락을 싸야만 했다. 그것만도 황송할진데 엄마는 도시락 반찬에 꽤 공을 들여야 했다. 어쩌다 남들은 없어서 못 먹을 김치가 도시락 반찬의 전부면 차라리 밥을 굶었으면 굶었지 가져가지를 않았으니까. 우리가 없는 집 아이라면 그도 이해하고 가져가겠지만, 없는 집도 아닌데 창피하게 그걸 어떻게 가져가냐는 것이 우리의 한결 같은 주장이었다. 그땐 그게 엄마를 얼마나 힘들게 만드는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어떤 땐 엄마도 짜증이 나는지, 다른 집 자식들은 도시락 반찬으로 김치만 싸 가져가도 공부만 잘 하더라. 늬들은 뭐냐? 푸념을 할 때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에 대해 누구도 해당사항에서 예외인 사람은 없었으니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엄마를 힘들게 만들고 장성했으면 남들만치 번듯하게 사는 모습도 보여 드려야 하는 건데, 가끔 이렇게 살 줄 알았으면 그때 싸주는대로 가져 갈 일이지 무슨 앙탈을 그렇게도 부렸을까 후회가 되기도 한다.

 

그래도 우린 엄마 덕에 잔병치레도 없이 건강하게 잘 자란 편이다.

거기엔 철마다 제철에 맞는 음식을 먹도록 해 주셨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그중 벌써 20년 가까이 해마다 겨울이면 먹는 음식이 호박죽이다. 호박죽엔 호박이 주원료가 되겠지만 이것 역시 밥이 되는 쌀이 들어가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도 정확히는 쌀가루다. 그리고 세알은 짭쌀가루로 만들고. 동지에 먹는 팥죽 보다 우린 이것을 더 좋아한다. 한때는 이것이 너무 맛있어 겨울 한철을 나는 동안 큰솥으로 두 번을 해 먹은 적도 있다. 그러면 사나흘을 밥도 먹지 않고 그것으로 배를 채우는 것이다. 그것도 지금은 한 해에 한번 밖에는 먹지 않는데 아무튼 우린 그것을 먹어야 겨울을 낫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 호박죽을 좋아한다.  

이렇게 소울푸드는 허기를 달래줄뿐만 아니라 영혼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한 해 크게 아프지 말고 잘 넘기라는 엄마의 간절한 바람도 함께.

 

나의 고민

 

책 간간이 보여주는 아우일의 그림이 좋다. 

그의 그림은 익살스러운 것도 있지만 약간 도회적이면서도 쓸쓸함이 베어있어 묘한 매력을 풍긴다.

무엇보다 한 쳅터가 끝나면 글쓴이의 소개가 나오는데 평범하게 쓴 것도 있지만, 어떤 이의 소개는 정말 재밌다. 예를 들면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쓴 이화정 씨 같은 경우, 오늘 놓친 나의 한끼는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라는 모토로 언제나 즐거운 식사가 삶의 에너지가 된다고 주장하는 맛의 원더우먼......(56p)는 정말 재밌다. 이런 식의 자기 소개를 재밌게 한 필자가 몇은 더 있다. 그렇게 쓸 수 있는 사람 보면 글쓰기 고수일 텐데 정말 부럽기도 하거니와, 난 아직 그 경지는 아닌 것인지 도무지 나 자신을 소개하는 일은 젬병이다. 왜 비싼 밥 먹고 그런 것도 못하는 것일까? 밥을 얼마나 더 먹으면 이렇게 재밌게 쓸 수 있을까? 안타깝기도 하고, 질투도 난다. 지금부터라도 고민을 해 봐야 할 것 같다.

 

또한 아직도 배를 곪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소울푸드냐고 역정 같은 역설로 풀어낸 한창훈 씨의 유려한 글솜씨도 해산물의 신선함 만큼이나 알싸하다. 강추할 것 까지는 못되지만 혹시라도 읽을 기회가 온다면 그냥 흘려 보내지 말고 붙들어 보라고는 말하고 싶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진 2011-12-17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저는 아직 어려서 그런가 깊은 감명을 받지는 않았어요..

그나저나 밥성애가 뭔가 생각했었는데
밥과 모성애를 믹스한 것이로군요 ㅎㅎㅎ


하도 스텔라님과 다른 분들이 그림이 좋다고 칭찬하셔서
기대감을 가지고 본 탓인지 그닥 제 맘에는 들지 않았어요 ㅋㅋ
그런데 싸인은 멋있더라구요~

stella.K 2011-12-17 20:06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저도 소이진님 정도였으면 뭐가 좋다는 건가...?
했을지도 몰라요. 나이가 들면 예전에 미처 깨닫지 못한 것들이
새롭게 와 닿는 경우가 있어요. 심미안이라고나 할까? 음하하하~
암튼 그래요. 밥도 좋은 줄 모르겠죠?
하지만 더 나이들어 봐요. 밥이 좋아지고, 밥심으로 산다는 게
뭔지 알게될 거예요.ㅋㅋ

이진 2011-12-17 21:39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저희집은 밥은 넘쳐나는데 반찬이 없어서 밥이 영 별로라지요~
근데 지금 이 비대한 덩치로는 역시 저도 밥심 ㅋㅋ
밥을 안먹으면 영 속도 더부룩하고...

stella.K 2011-12-18 21:34   좋아요 0 | URL
헛, 소이진님 뚱뚱해요?
전 꼭 소이진님이 손홍민처럼 생겼을 거라고 착각하고 있는데.
거위는 알에서 깨어나는 첫 상대를 자기 어미로 아는 것처럼
서재 이미지를 어떤 것으로 하느냐에 따라 서재인과 동일시하게 되죠.
나는 초기에 오드리 헵번이란 미국 여배우를 썼는데
모든 사람이 나를 그런 줄 알아요. 사실은 아닌데...ㅋㅋ

비로그인 2011-12-18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제가 읽어봐야 하는 책이로군요. 요즘에 뭘 먹어야하나..식욕이 막 생기는데..ㅎㅎ 잘 봤습니다.

stella.K 2011-12-19 13:56   좋아요 0 | URL
식용이 당길 때 이 책 보면 더 당기지 않을까요?ㅎㅎ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