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이면 이보다는 젊어있었지.

모처에서 연극 대본을 쓰고 있었다. 물론 극단처럼 전문적으로 했던 건 아니지만 나름 필요했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했다. 형식적이긴 했지만 원고료도 받았다. 작가냐 아니냐를 가늠하는 건 무슨무슨 문학상을 받았냐 아니냐도 필요하겠지만, 그 잣대는 내가 원고를 쓰고 원고료라는 것을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가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자본주의 사회니까. 그렇다면 작가고, 그냥 썼다면 그건 작가지망생에 불과할 것이다. 나는 그때 그런 생각이라도 가지고 있었어야 했다. 그래야 버틸 수 있었을 테니까.

작가. 나름 얼마나 동경하고 바래왔던 일이던가. 처음 짧은 대본, 아마도 A4 용지 3매 정도를 쓰고 받았던 나의 원고료는 5만원이었던가 했을 것이다. 그맘도 17,8년 전 일이다. 그 대본은 굳이 말하자면, 고등학생 학습을 위한 대본이라고 해두자. 이로써 나는 작가가 된 거야. 나름 뿌듯했다. 그러다 성인들과 함께하는 본격 연극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썼던 건 크리스마스용 뮤지컬 대본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장을 여는 시발이었다. 나름 시작이 좋았으니 정말 내가 뭐라도 된 듯했다.

하지만 뭐든 어려운 시기가 온다. 글을 쓰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인간관계가 가장 많이 어렵고, 나의 발목을 잡는 일이다. 사람이 싫으면 싫어서 어렵고, 좋으면 좋아서 어려웠던 것 같다.

그 일은 새로운 밀레니엄과 함께 시작이 되어서 2006년 초 공식 해단에 이르렀는데, 우리의 공식 활동은 2005년 말까지였다. 그러니까 무려 6년을 꽉 채웠다. 해단을 하고 보니 당장은 섭섭한 마음 보단 시원하단 생각 밖엔 들지 않았다. 그만큼  마음 고생이 심했다.

 

그런 조사도 있단다. 스트레스로 인해 단명하는 직업군에 언론인, 작가 등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알만하다. 역사적으로도 문명을 떨쳤던 작가들은 거의 단명하지 않았나. 물론 그렇지 않는 문인도 많이 있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었던 건, 그 6년의 기간 어느 한 해는 일종의 신경쇠약으로 병원에 잠시 입원했던 적도 있다. 물론 지금도 모를 일이다. 병원에 입원할 운명이어서 그렇게 된 것인지, 정말 글쓰는 스트레스가 심해 병원에 입원했는지는. 그때 내 작품을 연출한 연출가가 엄청 나를 쪼아댔으니까.

그런데 지금 세월이 지나 생각해 보면, 작품으로 인해 스트레스 받는 것은 견딜 수 있는 스트레스란 생각이 든다. 난 오히려 그 외의 부수적인 일에 괜히 핏대를 세우고, 필요 이상의 과도한 오해를 하고 그래서 관계를 더 안 좋게 만들고, 나 자신에게 상처내는 일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그게 아니더라도 오래 해왔으니 지칠 때도 됐다. 해단에 미련 같은 건 없었다. 만일 내가 글을 다시 쓴다면 연극 대본 같은 건 안 쓰고 혼자서도 잘할 수 있는 소설이나 써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이렇게도 적용될 수 있을까?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사람들과 부딪혔던 기억 보단, 웃고 떠들고 서로의 꿈과 비전을 나눴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일에 대한 그리고 나의 태도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에 대한 시야가 확보가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때를 돌이키면서, 그때가 그토록 어렵고 힘들었다면, 나는  야마모토 겐이치의 <리큐에게 물어라>는 책을 뽑아 들었을 것이다. 재미도 재미지만 묵직한 울림이 좋았다. 그리고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구성이 놀라울 정도다. 그것을 통해 인생을 관조하는 주인공의 시선이 마치 무사가 한점 흩트러짐 없이 난을 치던 그 자세가 연상이 되면서 깔끔하고, 정갈하다.  

물론 리큐는 나중에 활복자살을 하는 것으로 끝마치지만(아무래도 그것은 그 시대 그 나라만이 갖는 독특한 문화라면 문화 같다) 유독히 갈팡질팡 갈피를 잡지 못했던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책은 아니었나 생각한다.   

사실 인생에 코치나 멘토가 있으면 좋을 것이다. 당시도 상의할 상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특별히 멘토해도 좋을만치 의지할 상대는 아니었기에 그 시절 나의 삶은 더 미숙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이 책이 멘토링이 될만한 책은 아니다. 그런 것을 원한다면 자기계발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난 그저 리큐의 영혼.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 뿐이다. 

 

사실 10년 전 그 시절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게 한 가지 더 있었다면 앞서 말한 연출가를 좋아했던 이유도 있었다. 마음으로는 좋아했지만 작가와 연출가란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그와 했던 첫번째 작품을 빼놓고 거의 매번 의견의 차이 때문에 싸웠다. 그리고 급기야는 결별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얼마 후에는 아예 팀을 떠났는데, 그나마 다행인 건 그가 떠나는 결정적인 이유가 나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 정도. 그래도 그는 나 때문에도 힘들어 했었던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내가 그 시절 그와 악바리 같이 싸웠던 건 꼭 내가 작가고 그는 연출가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우린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다. 사랑 아니 적어도 좋아하는 마음은 계산되어지는 것이 아니라지만, 나이도 나 보다 어렸고, 나는 그저 평범한 중산층이지만 그는 상류층이다. 무엇보다 자기 세계가 확고해서 남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런 그를 내가 좋아하는 건 의미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도 안 좋은 사이가 되어버렸는데, 내 마음 깊숙한 곳에선 진짜 좋아해 보기도 전에 지레 겁먹고 거절 당하는 것이 두려워 싸워서라도 나의 마음을 경계하려는 것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은교>의 박범신 작가는 그런 인간의 감춰진 심리를 묘파하는데 탁월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늙은 육체에 자신의 영혼을 가둬두고 나중엔 육체를 태우고 한줌의 재로 남는 이적요 노인이 나와 같아서일까? 난 마지막 장을 읽고 이내 울어버렸다. 

사랑은 원래 양쪽 눈을 뜨고 있는 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 육체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노쇄해 진다. 이것이 또한 인간의 딜레마다. 나이가 먹으면 시야는 깊어질지 모르지만 활동 반경이 좁아진다. 스스로를 제한 시키지 말고 도전하고 후회를 될 수 있으면 적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거절당할 것이 두려워 사랑을 못하는 것 보다 실연 당할 때 당하더라도 사랑하는 영혼이 더 아름답다. 

 

내가 작가가 되길 소망해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서 그것은 반쯤은 이루었지만 당시엔 사람들은 나를 괴롭힌다고만 생각해서 반쯤 이룬 것 보단 반쯤 안 이룬 것에 더 많이 침잠해 들어갔을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사람이 뭔가에 뜻을 품었으면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것에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습관적으로 작가들의 글쓰기에 관한 책에 집착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글쓰기 비법을 알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작가는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실제적인 조언 내지는 작가적 태도를 알고 싶어 집착하게 되는 것 같다. 

작가의 꿈만 꿨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작가가 되겠는가도 중요하다.

 

올여름의 끝자락에서 김영하의 <검은 꽃>을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작가는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사람이겠구나 하는 통찰이었다. 작품에 보면 박광수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그는 원래는 신부가 되려다 신내림을 받고 박수가 된다. 우린 무당하면 무조건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데 무당에 대한 작가의 새로운 해석에 고개를 끄덕였고, 그가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 한다는 점에선 작가도 이래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의 확대까지 가능해 졌다. 그때 나는 너무 안일했다.

 

사실 해단이 이루어졌을 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나에게 있어서 한 시대가 갔다는 것이다. 한 시대가 가면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한 시절을 자꾸 그리워하고 추억한다는 것은 그 시절을 두고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도망치듯. 그렇다. 그것에 미련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도망친 것에 불과했음을 시간이 흘러 깨달았다. 내가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을 읽고 리뷰에 결핍이란 단어를 썼다. 무슨 맥락에서 썼냐면, 미완성에서 완성으로 가는 맥락에서 그렇게 썼다. 나는 한 시대를 충분히 누렸다고 자부할만큼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늘 뭔가에 목말랐지만 그것이 꽉 채워져야 글을 쓰게 될 줄 알았다. 충만해서 글을 쓰길 바랬던 것이다. 뭐든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죄짜내는 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즈음 생각해 보면 충만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근육이든 생각이든 자꾸 쓰는데서 발달이 되는 것처럼 모자라고, 부족한 가운데 쓰는 것이 또한 글 같다. 

그런데 난 그동안 뭔가를 끄적여왔던 것 같긴 하지만 자신감은 10년 전보다 훨씬 더 없어져 심지어는 내가 뭘 해왔는지 조차 까먹고 있었다. 그래서 모 작가가 나에게 작가 포스가 느껴져요 했을 때도 나는 한사코 부인만 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이책을 읽었을 때, 난 자기가 하는 일에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쓴적이 있다. 은희경 작가가 그랬다. 이책은 거의 자신의 일과 관련해서 느끼는 바들을 솔직하고 간결하게 재잘거리듯 쓴 책이다.

나는 스스로를 작가라고 생각하면서도 이것을 밝히기가 은근 쑥스러웠다. 더구나 최근엔 글써서 원고료라는 것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밝힐 입장이 못 된다. 예전에 글 좀 썼어요. 하는 것이 뭐 그리 대수겠는가.

그런데 좀 우스운 건 다시는 연극 대본은 쓰지 않겠다는 내가 얼마 전부터 다시 붙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오랜 잠을 자다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 느낌이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그전보다는 훨씬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왜 일까? 아마도 밝힌 이 다섯 권의 책을 읽었기 때문은 아닐까.ㅋ

아무튼 나의 새로운 출발에 축복해 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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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2-18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복해드리고 싶군요. 건필하시길..^^

stella.K 2011-12-19 13:5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킹피셔님.
영화 <피셔킹>이 생각납니다.
그 영화 정말 재밌게 봤는데.ㅎ

조선인 2011-12-19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다시 시작하는 모습이 참 부럽습니다. 건강한 연말연시 되시길.

stella.K 2011-12-19 13:55   좋아요 0 | URL
에고 뭘요. 할 줄 아는 게 그것뿐인데 이것도
주변머리가 없어 열심히도 못한답니다.
암튼 고마워요.
조선인님도 좋은 연말연시 되시길.^^

blanca 2011-12-21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를 읽으니 스텔라님...저는 감동받았어요. 스텔라님이 희곡을 쓰고 또 어떤 남자는 연출을 하고. 스텔라님의 그 시대가 눈 앞에 떠오르기도 하면서. 스텔라님 작가 맞아요.

stella.K 2011-12-22 14:38   좋아요 0 | URL
아, 브랑카님. 님은 항상 저에게 조용히 응원을 해 주시는 분이군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이거 약간의 목적이 있는 페이퍼에요.
모처에서 입상하면 돈 준다기에.ㅎㅎ
이것 밖에는 글을 쓸게 없더라구요. 써놓고도 좀 강한 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했는데 까짓 거 지난 얘긴데 뭐 어떠랴 싶더군요.
근데 저 거기서 가장 낮은 등수의 입상도 못했더라구요. 얼마나 화끈거리던지. 기운도 빠지고. 아, 글쓰기가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조용히 와서 응원해 주시는 브랑카님 같으신 분 계셔서 고마워요.
작가는 누가 불러줘서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고, 나 스스로 그 정체성을 만들어 가야 하는 것 같더라구요.
누가 너 작가 아냐. 해도 저는 작가라고 우기며 살랍니다.
내가 원고료로 단 돈 10원을 받아도.ㅋㅋ

문지원 2011-12-22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와 넘 해박하셔서 근접이 어려울듯----

도움이 필요합니다 재닛말콤 저널리스트와 살인자 란 책이 너무 읽고 싶은데 도무지 검색이 안되는군요...혹시 제가 구입할 수 있게 길잡이가 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