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 Chicago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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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롭 마셜
주연 : 르네 젤위거, 캐서린 제타 존스

 

그러고 보니 내가 이 영화를 두 번 보았다.  

다시봐도 이 영화는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리도 영화의 실제 장면과 뮤지컬을 잘도 조합했는지? 

뮤지컬 장면에서 보면 인간 마리오네트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은 정말 그로테스크 하면서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물론 마지막 저 엔딩 장면도 좋긴하지만. 

배우들이 정말 혼신의 노력을 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캐서린 제타존스야 더 말할 필요가 없지만 저 르네 젤위거는 묘한 매력이 있다. 

어찌보면 백치미면서, 약간은 촌스러운 듯 하면서도 자기 개성을 뚜렷히 가지고 배우.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녀의 연기력은 정말 인정 받을만 하다.  

재즈풍이라 그럴까? 약간은 어두운 이미지면서 자유분망하면서 화려하다. 매력적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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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헨 2010-01-12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개봉한 <나인>은 보셨나요?
궁금하긴 한데 주변 평이 그냥 그래서요.^^
시카고는 저도 잼나게 봤어요.

stella.K 2010-01-12 13:5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평이 좀 그래서 저도 볼 생각은 없네요.
포스터 봐서는 꽤 괜찮을 것 같은데 말이죠.
지금 공연하는 동명 뮤지컬은 어떨지 궁금해요.^^

Tomek 2010-01-12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뮤지컬을 보고 영화를 봐서 그랬는지 '영화'라는 매체에 그다지 적합한 영화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영화에서 표현한 뮤지컬 장면은 뮤지컬에서 '그대로' 가져왔거든요. 시공간의 제약을 벗어날 수 있는 영화가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뮤지컬을 그대로 따라한 것은 원작을 정말로 존중하거나, 아니면 재능이 없어서라 생각합니다.
물론 캐스팅과 계속 흥얼거리게 하는 넘버는 뛰어났지요. ^.^

stella.K 2010-01-12 16:31   좋아요 0 | URL
흠...그렇군요. 뮤지컬을 봐야하는데...
그래도 정말 음악 하나는 끝내줘요. 그죠?^^

hnine 2010-01-12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것 10년 쯤 전에 뮤지컬로 봤는데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의상과 무대와 노래가 화려하고 말씀대로 자유분망한 분위기였다는 것, 흠, 이 기억을 되살리기위해서라도 영화라도 다시 봐야할까봐요.

stella.K 2010-01-13 11:52   좋아요 0 | URL
영화로 보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네요.
영화만 본 저로선 나름 좋았는데.^^

카스피 2010-01-13 0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노래 부르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 영화를 뮤지컬 영화라고 하나요.이 작품도 재미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론 오드리 헵번의 마이페어 레이디가 무척 재밌더군요^^

stella.K 2010-01-13 11:51   좋아요 0 | URL
흠, 저도 그 영화 오래전에 본 것 같긴한데 잘 기억이 안 나네요.
암튼 전 뮤지컬 영화는 다 좋습니다.^^

비로그인 2010-01-13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것 찍을 당시 존스는 임신중이었다죠. 그래서 무척 통통하게 나왔다고 살짝 불만이었다는데 전 르네 젤위거보다 존스가 훨씬 더 좋아요(개인적인 호불호의 감정이죠)
그런데 카메라 앵글은 1층 오른쪽 귀퉁이에서 찍은 듯한 앵글이 자주 나와서 참...

stella.K 2010-01-13 13:09   좋아요 0 | URL
예리하시군요, 주드님.^^
 

감독: 데니스 간젤   

출연:위르겐 포겔 (라이너 벵어 역), 프레데릭 로 (팀 역)제니퍼 울리히 (카로 역)  

별점: ★★★★
 

오늘은, 알라딘 영화DB가 없는 영화를 소개해 볼까 한다. 바로 독일 영화 <더 웨이브>란 영화다.(알라딘에 DB가 있었다면 난 이 글을 당연 리뷰로 썼을 것이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우리나라 개봉관에서 상영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분류도 제3세계의 음악을 월드 뮤직이라고 따로 분류하는 것처럼 이 영화도 세계 영화로 분류하는 것 같다. 약간 갸웃할 일이지만 암튼).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파시즘은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이다. 

고교 교사 벵어는(정확히 무엇을 가르치는 교산지는 알 수가 없다. 사회나 역사를 가르치지 않았을까?) 우연한 기회에 전체주의 수업을 맡아 가르치게 된다. 우리나라 같으면 역시나 주입식으로 일갈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벵어 교사 무슨 열심인지 이것을 머리가 아닌 직접 느끼게 살아있는 교육을 실시한다. 즉 그의 시간 만큼은 벵어 선생님이라 부르지 못하게 하고, '벵어님'이라고 부르게 하며, 태어나서 여간해서 입어보지 않았을 교복의 의미로 그 시간만큼은 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등교하도록 했으며, 그들만의 표식도 만들고, 독특한 인사법을 개발해서 서로 인사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고유명사가 부여됐다. 그것은 바로 '디 벨레'다.

이것은 아이들에겐 너무 자유롭다 못해 다소 나른한 학교생활에 활력을 주기에 충분했고 적지 않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 나는 여기서 다소 놀라웠다. 한없이 자유를 추구하고, 구속당하기 싫어할 것 같은 아이들이 오히려 이런데서 오는 구속감을 더 좋아하더라는 점이다.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이것은 아이들에게 이전엔 없는 새로운 경험이며, 뭔가 구별되기를 좋아하는 그래서 그 안에 일원이 된다는 점이 매우 끌리는 점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이 수업을 찬성하는 아이들에겐 더 없는 결속력을 요구하는 것이며, 수업에 반대하는 학생들에겐 굉장한 반감을 갖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당연히 아이들의 전체주의는 그것을 반대하는 같은 반 아이 카로를 표적을 삼기도 하고, 또한 그것을 반대하는 세력들과 마찰을 빚기도 한다. 이것은 어찌보면 내가 2년전쯤 다시 보았던 해리 훅 감독이 만든 <파리대왕>을 연상시키는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카로와 뜻을 같이해 반전체주의 운동을 했던 아이들은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을 연상케도 한다.  

그런데 아이들의 벵어님은 어떤가? 그는 아이들의 숨통을 트여주고,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저<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을 연상케도 한다. 하지만 그의 수업은 이미 통제불능의 상태가 되어버렸다. 수업은 교실을 넘어 학교 전체를 공포로 몰아간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전체주의를 추종했던 아이들 사이에서도 균열과 갈등이 일어난다. 뭔가 이것은 잘못됐다는 자각을 하는 아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벵어는 사태를 바로잡아 보고자 자신의 전체주의 수업을 듣는 아이들을 강당으로 몰아넣고 그들의 꿈과 환상에서 깨어나게 하고자 노력한다. 물론 그의 지혜로 일은 잘 수습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건은 바로 그 순간 일어났다. 그동안 학교의 왕따였고, 또라이였던 팀이 이 수업을 들은 뒤로 처음으로 인간대접을 받았던 것이다. 그는 '디 벨레'의 이름으로 그것을 거부하는 세력으로부터 보복을 받을 때 보호를 받았던 것이다. 그건 그에게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벵어 선생님은 낮잠 한번 잘 자다 깬 것처럼 모든 것을 없었던 것으로 하려고 하니 얼마나 기가막혔을까? 그는 안된다고 절규했고, 그때까지 장난감 총이라고 속였던 총을 친구에게 난사하고 스스로 총을 물고 자살을 한다. 이것은 보기에도 충격스럽기도 하지만, 지난 몇 년 간 그리고 지금도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미국의  총기난사 사건 그것도 특별히 지난 2007년 버지니아 공대의 조승희 사건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부분이기도 하다. 

물론 벵어는 전체주의를 신봉했던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난 200년 동안 전체주의가 인류에게 씼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는 것을 히틀러와 파시즘이 너무도 잘 증명 해주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전체주의의 망령은 오늘도 곳곳에 남아있다. 그것은 사람을 특별하게도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매력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체주의의 위험성은 말하기는 좋아 하지만 그것을 반대했다고 해서 민주화된 사회를 행복해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소외와 계층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영화의 도입 부분에서 보면 흰셔츠에 청바지 착용이 우스웠던 카로가 평상시처럼 옷을 입고 등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는 그것으로 인해 반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발표에서도 제외되기도 한다. 벵어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손을 든 카로를 무시했던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전체주의의 전형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전체를 위해 소수가 희생당해야 하는 현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정신을 그렇지 않다. 아무리 다수의 힘이 클지언정 소수를 희생시키지 않아야 한다. 이런 민주화된 나라에서 과연 그것이 온전히 지켜지고 있는가는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마다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결국 이 수업에 참여한 한 영혼이 죽어갔다. 감독은 단순히 전체주의의 망령과 폐해를 말해주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거라고 본다. 오히려 우리가 그렇게도 경계해 마지않는 파시즘 즉 독재주의가 판치지 않기위해 민주화를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인가 묻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영화는 상당히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어느 부분은 마치 뮤직 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감각적으로 잘 만들었고, 전체적으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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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10-01-10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게가 느껴지는 영화였군요. ^*^

stella.K 2010-01-11 13:07   좋아요 0 | URL
그런데 나름 좋았어요. 전호인님도 기회되시면 한번 보세요.^^

soojoungkg 2015-05-05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어디서 보셨어요?

stella.K 2015-05-05 10:21   좋아요 0 | URL
아마 IP TV에서 봤던 것 같아요.
 
안경 - Megan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오기가미 나오코
주연 : 코바야시 사토미, 모타이 마사코

이 영화는 기존의 허리우드식 영화문법을 완전히 무시한다. 마치 유럽의 영화를 보는듯 하다. 어떠한 전개도 없고, 갈등도 없으며, 문제해결을 위한 주인공의 멋진 액션도 없다. 그냥 영화가 보여주는대로 보고, 느끼면 그만이다. 그러니 어쩌면 이런 쪽의 영화에 익숙치 않은 관객들은 다소 지루하고 심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가 나름 좋았다. 하긴  '카모메 식당'을 만들었던 오기가미 나오코가 만들었단다. 이 감독은 이런 영화 만들기로 정평이 나 있나 보다. '카모메 식당'을 처음 봤을 때 그 졸린듯한 나른한 감동이란 참...! 


영화의 특이한 점은 등장인물 모두가 서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긴 쉬러와서 서로에 대해 알아 무엇하겠는가? 그래도 우리가 흔히 범하는 실수중 하나는 휴양지에 놀러와서 거기서 알게된 사람들과 현실 세계에서는 뭘했는지 알려고 하고, 그러면서 끝임없이 현실에서의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설정은 그런 것을 일체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내내 상상이 되는 건 천국이 저러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다. 끊임없는 파스텔톤의 맑은 바다가 있고, 욕심없이 사는 한가한 사람들이 있고, 먹고 마시는 것에도 탐심이 없다. 단지 아침에 일어나 규칙적인 체조만 있을 뿐이다. 좋을 것 같지만 과연 인간은 이런 상황을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하다. 원래 인간이란 존재는 전투적인 데가 있어서 뭔가를 성취해야 하고, 필요에 피터지게 싸워야 하는 존재들이 아닌가? 이런 것을 싫어한다고는 하지만 사람은 어느틈엔가 이런 것에 길들여져 나도 모르게 그렇게 사는 것이다. 그러다 한번씩 저런 곳에 가서 마음의 때를 벗겨내고, 반성도 하며, 원래 사색하는 동물인 양 고상하게 있다 또 다시 현실로의 복귀가 가능한 존재들이 아닌가? 그래서 배부른 돼지 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고 싶다느니, 천국에서 나른하게 사는 것 보다 지옥에서 전투적으로 사는 것이 낫다느니 개똥철학을 읊어대는 것도 또한 인간이다. 나도 저런 곳은 몇주 또는 몇 개월은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영원히 산다면 그건 고려해 봐야할 것도 같다. 아니면 저런 곳에 살아 갈수있도록 내가 새롭게 프로그래밍화 되어야겠지.  


 

저런 핸드폰이 터지지도 않는 곳에 가면 사람들은 뭘하고 싶어질까? 이 영화의 타에코(고바야시 사토미)는 저렇게 뜨개질을 한다. 무엇을 짜느냐고 생물 선생님 하루나(이치카와 미카코)가 묻자 그냥 짠다고만 대답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되묻자, 왜 그러면 안되는 것이냐고 대답한다. 현대인은 목적추구형 인간이니 타에코의 대답도 일견 이해 못할 말은 아닌 것 같다. 나라면 뭘하고 싶어질까? 노트북 하나 달랑 가져가서 글을 쓸 것도 같다.  

무엇보다 부러운건 끼니 걱정 안해도 된다는 것! 아침 먹으면 점심 해 먹을 것 생각해야 하고, 점심 설거지 하면 저녁 만들어 먹을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저곳에서는 끼니를 책임져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민박집 주인 유지와 수수께끼 빙수 아줌마 사쿠라(모타이 마사코)가 그들이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식단도 정갈하니 한끼 식단으로 손색이 없다. 여자들 또는 싱글들의 로망 중 하나가 그런 거 아닌가? 저런데는 하루 민박이 얼마나 드는지 모르겠다.  

이 영화는 수필 같기도 하고, 배경이 있는 정물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몇개의 사물들이 코드처럼 등장한다. 예를 들면, 하루의 부적이라는 매실짱아찌, 사쿠라의 빙수. 연녹색의 파스텔 바다에 드리워진 낚시. 평소엔 잘 보이지도 않던 열댓 명의 마을 사람들이 사쿠라의 체조 시간만되면 나와서 체조를 하는 것 등등. 그렇다고 해서 영화를 이해하는데 어떤 매개물이 되는 건 아니다. 영화를 위한 소도구 정도일뿐.  하지만 이중 돈 안 받고 파는 사쿠라의 빙수는 영화 전체에 어떤 의미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 영화를 가리켜 일명 슬로우 라이프 무비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 것도 같다. 빙수에 넣을 팥을 졸이는데도 사쿠라는 정성을 다하기도 하니까. 아, 위의 스틸컷에서 보듯 저 빨간 목도리도 나중에 근사하게 이 영화의 엔딩을 장식하기도 한다. 

제목도 '안경'이긴 하지만 크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어찌하다 보니 주요하게 등장하는 인물이 하나 같이 안경을 쓰고 있다는 것뿐. 그나마 안경이 제일 잘 어울리는 사람이 저 타에코와 빙수 아줌마 사쿠라 정도일까? 나중에 타에코가 마을을 떠나면서 차창 밖을 내다보다 안경을 실수로 떨어 뜨린다. 순간 당황하지만  이내 포기하고 그녀의 안경은 민박집 주인이 바다 낚시를 할 때 낚싯대에 걸려 극적으로 구출을 받는다. 그것은 정말 위트있는 설정인 것 같다. 그런 것으로 봐 타에코는 다음에 다시 돌아 올 모양이다. 안경을 찾으러. 

영화는 봄이라고는 하는데 여름에 가까운 봄 같다. 요 며칠 추웠고 앞으로 다시 추워진다고 한다. 영화를 가득히 채우는 햇볕이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다. 지금도 춥다고 느껴지거든 이 영화를 한 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추천이라고 생각한다. 나른한 봄볕의 휴식을 영화로나마 대신해 보는 것도 좋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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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0-01-0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시노 이발관 만든 감독 작품 맞죠?
우리가 헐리우드 영화에 너무나 길들여져 있는 것 같기는 해요.
나른하고도 졸린듯 한 영화...제가 영화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이 감독의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와는 분명히 다르고 유럽권의 영화와도 다른 묘한 분위기의 영화인 것 같아요.
수필같고 정물화 같다는 비유가 참 좋네요 ^^

stella.K 2010-01-03 17:43   좋아요 0 | URL
유럽권과 다르다면 거기에 일본적 정서가 나름 포함이 됐겠죠.
맞아요. 요시노 일반관도 만들었다는 것 같은데 그건 아직 못 봤네요.
다들 카모메 식당 좋다고하고 저도 이 작품 보단 카모메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안 보셨다면 함 보세요. 아, 그리고 새해 복도 많이 받으시구요.^^

하늘바람 2010-01-03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런 영화 보고프네요. 제가 좋아하는 스탈같아요

stella.K 2010-01-03 17:44   좋아요 0 | URL
언제고 시간 나실 때 느긋한 맘으로 함 보세요.
잘 쉬었다는 느낌 받으실 거예요.^^

프레이야 2010-01-06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첫 리뷰 당선! 스텔라님 축하드려요.^^
안경, 저도 본 영화인데 참 신선하고 편안하단 생각을 했었지요.
저런 곳에서 며칠 조용히 쉬고 싶다는 생각도.

stella.K 2010-01-06 20:24   좋아요 0 | URL
어므낫! 지금 봤어요. 제가 또 리뷰 당선이라니...!
올해는 제가 좋은 일이 많이 있으려나 봅니다.
고맙습니다. 프레이야님.^^
 
휴먼 스테인 - The Human Stai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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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그러니까, 생각해 보자. 나는, 태어난 운명과 환경속에 그렇고 그렇게 살아야할 운명이라면 정해진 운명에 따라 살아야하는 것인가? 그것도 인간의 삶의 모습이긴 하겠지만, 인간은 운명을 거부하고 살 유전자도 얼마간은 있기도 하다. 그것은 대체로 타고난 여러 가지 속성과 그 사람의 의지가 그것을 가능하게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회적인 규범에 맞든지 안 맞든지 간에 말이다. 

인간에겐, 나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그랬을 것이라고 하는 몇몇 가지 상황들이 있을 것이다. 더구나 그것이 자신의 태생과 연관이 되어 있다면 그것을 이용해 사회에서 좀 더 유리하게 살아보고자 하는 것은 선택이전에 본능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  

원래 태어나기는 흑인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몇백만 분의 일로 백색의 피부로 태어났다면 흑인으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노예는 해방되었으나 대신 인종차별이 극심한 시대를 살았다면 더 더욱. 그 시절 사회 모든 부분에서 흑인은 불리한 차별을 받고 있다. 백인의 외모로 태어나기도 쉽지 않은데 흑인으로 살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 것일까? 사회는 백인의 응집을 원하고 있고 그런 와중에 실제로 흑인인 것을 밝혔다가 실연의 아픔을 당한다. 훗날 또 한번의 사랑을 맞고 결혼을 하려할 때 가족에게 등을 돌렸다. 그가 가족에게 등을 돌리니 가족이 절연을 선언을 했다. 가족을 버리니 가족이 나를 버리는 상황이 됐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콜먼 실크의 젊었을 적 이야기다.    

그런데 이것은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그러나 타인의 삶을 보고 수긍하는 것과 한 개인의 개인사를 아는 것은 명백히 다른 차원이다. 그 개인이 때론 그 사회를 말해주기도 하니까.  

이 이야기는 젊은 시절의 콜먼과 노년의 콜먼을 교차해서 보여주고 있다. 현재의 콜먼은 빌 클린턴이 모니카 르윈 스키와 섹스 스캔들이 일어나던 즈음이다. 그 즈음 노년의 콜먼이 대학교수가 되어서 수업시간에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교수회의에서 징계를 받는다. 말하자면 한 나라의 대통령이 섹스 스캔들이 일으킨 것에 비하면 자신의 별 악의없는 발언이 인종차별적이라고 하는 건 콜먼으로선 너무 억울한 처사라고 항의하고 싶은 것이다.  말하자면 콜먼이 젊었을 때와는 사회는 다른 양상이다. 인종차별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고 말 실수하다가 이렇게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아내를 잃는 아픔도 겪는다. 하지만 콜먼은 자신이 이러한 일을 겪는데는 뭔가 보이지 않는 세력이 있고 믿고, 어느 날 작가인 레스에게 이것을 파헤쳐 달라고 부탁을 한다. 또한 그즈음 상처속에 살아가는 퍼니아와 불안하고도 욕정 깊은 사랑을 하기도 한다. 콜먼에게 있어서 퍼니아는 젊은 시절 그의 사랑하는 연인을 투영하고 있기도 하다.

이 영화는 약간의 스릴러 형식을 띠고 있다. 이 영화에서 인상 깊은 장면은 눈덮인 설원일 것이다.  


계절 배경이 겨울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유독 이런 장면을 즐겨 사용한 것엔 나름 감독의 의도가 숨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은 많은 성공과 부를 낳은 나라다. 지금도 부동의 세계 1위의 강대국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저 눈이 걷히고 나면 맨땅이 드러나듯 미국은 여전히 인종차별로 몸살을 앓고 있고 많은 위선과 음모로 불안에 떨고 있다.  

보는 장면처럼 저런 단단히 언 강에 톱으로 구멍을 뚫고 낚시 바늘을 드리우고 낚시를 할 수도 있지만, 그 가운데 어떤 사람은 사람의 오점을 들추어 손가락질하고 음모에 이용하기도 한다. 

사실 콜먼은 미국 사회가 낳은 사생아다. 그리고 미국은 그런 콜먼을 이용하기도 하고 버리기도 한다. 그러니 콜먼의 입장에선 모욕당하고 수치를 당한 희생양이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콜먼은 사회적으로 볼 때 국가에 대해선 피해자이지만 그의 가족들에겐 가해자가 아니던가?   

그뿐인가? 평생 불타는 집에서 자신의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괴로워 하는 퍼니아는 미국의 불안한 신경증을 상징하는 것도 같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문제 많고 불안한 미국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레스는 작가이긴 하지만 처음엔 콜먼의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글로 써달라는 것을 거절 했었다. 그러나 콜먼의 지난 삶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 그가 갑자기 불의의 교통사고로 퍼니아와 함께 죽자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저 장면은 불타는 집에서 아이를 구하지 못한 퍼니아를 끊임없이 원망하는 그녀의 남편과 작가 레스가 만나 이야기하는 엔딩장면이다. 한때 콜먼과 퍼니아의 교통사고에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기도 했지만, 그에 대한 증거가 없어 풀려나고 저렇게 한가하게 얼음낚시를 즐기는 것이다.  

대화 내용은 인간의 오점에 대해서 쓸 것이며 책이 출판이 되면 한 권 보내주겠노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온 책은 '휴먼 스테인'일 것이다.  

영화의 분위기는 시종 음울하고 동시에 육감적이다.  퍼니아 역의 니콜 키드먼은 이 역에서 상당히 노력을 많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또한 젊은 콜먼 역의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프리즌브레이크>의 히로인 웬트워스 밀러가 배역을 맡았다. 그에 비해 노년의 콜먼은 명배우 안소니 홉킨스가 맡았는데 그도 참 많이 노쇄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배역이 좀 달려 보인다고나 할까? 보는 내내 서글펐다. 

모르긴 해도 원작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러닝타임도 비교적 짧은 것 같고. 아쉬운대로 볼만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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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 Love Is a Crazy Thing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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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영화 전편에 흐르는 분위기는, 어느 쓸쓸하고 외로운 여자의 생에 대한 본능을 관조적으로 보여 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사실 이혼도 했겠다. 쓸쓸하고 외롭기도 하겠지. 하지만 마음은 마음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이혼 후 어진에게 남겨진 두 아이와 먹고 살기위해 윤정이란 이름으로 노래방 도우미로 나서고 어느 날, 그렇고 그런 수컷들 가운데 매너 좋고, 진지한대다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 주는 남자에게 마음을 연다. 게다가 그 남자가 친구하자고 까지 한다. 이처럼 매력적인 제안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것은 확실히 외로운 어진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아킬레스건이다.  

정말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사실 이것은 해 묵은 질문이긴 하다. 아니 이젠 이것을 묻는 것 자체가 얼마나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을 드러내주는 것인가를 반증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묻지 않는다. 그냥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맞는 얘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감독은 왜 이 영화를 통해서 새삼 이 질문을 하는 것일까? 그것도 노래방과 노래방 도우미란 공간과 신분을 통해서 말이다. 



사실 나는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남자는 두 종류가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하나는 수컷. 또 하나는 신사. 수컷은 여자를 마구 탐하지만, 신사는 함부로 여자를 탐하지 않으며 노래방같은 그런 음습한 곳은 찾지도 않으며 설령 찾는다 해도 아무 여자나 관계를 하지 않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환상을 여지없이 깬다. 그렇게 매너 좋고, 진지하고, 먼저 친구하자고 손 내미는 신사도 결국 수컷의 다른 이름이란 걸 보여준다. 그러면서 한마디로 여자가 생각하는 그런 남자는 없다고 못 밖는지도 모르겠다.  

더 나아가 어진을 노래방 도우미로 이끈 김마담을 보라. 그녀에겐 교도소에 수감 중인 남편이 있는데 이제 형이 만기가 돼 출소를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가 출소하면 제주도 어딘가로 숨어버릴 거라고 하지만 말만 그렇게 할뿐, 결국 남편에게 걸려 죽지 않을만큼 맞는다. 남편은 무엇 때문에 김마담을 때리며 그녀는 왜 피하거나 저항하지 않는 것인지 관객은 알 길이없다. 그냥 사디즘과 메저키즘의 극치를 보여주려 했던 것일까?  

김마담이 그렇게 맞고 실종 됐다는 것을 알았을 때 한편 어진의 민수에 대한 불안한 그리움은 더 해간다. 민수만큼은 세상 여느 남자와 다를 것이다라는 믿음을 간직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 생각해 보라. 그렇게 진지하고 신사적인 사람과 비록 노래방 도우미란 신분으로 섹스를 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친구 관계만으로 가능할까? 그토록 진지하게 섹스를 한다면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것 조차도 여자가 자칫 갖는 환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진정한 사랑은 없는 것일까? 

감독은 이 영화를 몰아가 돼 끝까지 몰아 붙인다. 즉 민수와 어떻게 되는 선배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선배는 민수가 어진과 함께 있는 것을 보게 되고 거기서 어진에게 군침을 삼킨다. 선배가 찍으면 민수는 꼼짝도 하지 못하는 관계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김마담의 경우처럼 관객이 알 수가 없다.  그냥 야성의 수컷들의 세계에서 보면 서열이 있지 않은가? 뭐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곧바로 민수는 어진에게 선배를 상대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물론 어진은 처음엔 거절을 하지만 나중엔 민수의 부탁을 들어준다.  사실 이쯤되면 감독의 악취미가 절정에 다다랐다고 봐도 될 것이다. 솔직히 거의 말미에 다다르면 좀 충격적인 장면이 나오기도 하니까. 나는 보면서 '이 정도까지?'하며 놀라기도 했다.  

감독이 악취미는 악취미다.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는 사디즘이요 여자는 메저키즘으로 설정하고 나오니까. 여자에 대해 아픈 추억이 있나 의심이 가기도 한다. 여자와 남자를 이렇게 보여주면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를 유쾌하게 다룬 영화는 당연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 때'가 될 것이다. 그런 영화가 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다. 

이 영화에서 독특한 구성을 보여주는 것이 있다면 어진의 전직은 전화방 도우미였다. 거기에서도 남자들은 다 그렇고 그렇게 나오지만 딱 한 사람 건실하게 전화 통화를 하는 남자가 있다. 엔딩에서 윤정으로 노래방 도우미를 했던 그녀에게 진짜 본명이 무엇이냐는 남자의 질문에 어진이라고 가르쳐 준다. 그것은 뭘 의미하는 걸까? 여자가 남자를 대할 때는 진짜 자신은 감추고 포장된 여자로 만나라는 암시하는 것 같다.   

스토리는 다소 칙칙하고 거시기하지만 맡은 배역들은 정말 호연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딱 그만큼의 안정된 연기를 보여준 전미선을 다시보게 만들었던 작품이 아닌가 싶다. 이 배우 참 오랫동안 안 드러났던 배우였는데 웬지 모르게 신뢰가 간다. 하지만 나 개인적 바람이 있다면 이런 류의 영화엔 더 이상 출연 안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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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0-02-10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미선이 참 연기를 잘 하죠. 얼굴도 아주 이쁘구요.
이 영화 결말에서 깜딱 놀랐던 기억이 나요. 확~ 깨더군요.
새삼, 영어제목이 눈에 들어오네요. 정말 그럴까요?

stella.K 2010-02-10 20:59   좋아요 0 | URL
전 여기서 전미선이 정말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는 걸 알았죠.
저도 끝에 가서 정말 놀랐어요.
프레이야님 참 부지런하시고 정말 영화 매니아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