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 Megan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감독 : 오기가미 나오코
주연 : 코바야시 사토미, 모타이 마사코

이 영화는 기존의 허리우드식 영화문법을 완전히 무시한다. 마치 유럽의 영화를 보는듯 하다. 어떠한 전개도 없고, 갈등도 없으며, 문제해결을 위한 주인공의 멋진 액션도 없다. 그냥 영화가 보여주는대로 보고, 느끼면 그만이다. 그러니 어쩌면 이런 쪽의 영화에 익숙치 않은 관객들은 다소 지루하고 심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 영화가 나름 좋았다. 하긴  '카모메 식당'을 만들었던 오기가미 나오코가 만들었단다. 이 감독은 이런 영화 만들기로 정평이 나 있나 보다. '카모메 식당'을 처음 봤을 때 그 졸린듯한 나른한 감동이란 참...! 


영화의 특이한 점은 등장인물 모두가 서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긴 쉬러와서 서로에 대해 알아 무엇하겠는가? 그래도 우리가 흔히 범하는 실수중 하나는 휴양지에 놀러와서 거기서 알게된 사람들과 현실 세계에서는 뭘했는지 알려고 하고, 그러면서 끝임없이 현실에서의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설정은 그런 것을 일체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내내 상상이 되는 건 천국이 저러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다. 끊임없는 파스텔톤의 맑은 바다가 있고, 욕심없이 사는 한가한 사람들이 있고, 먹고 마시는 것에도 탐심이 없다. 단지 아침에 일어나 규칙적인 체조만 있을 뿐이다. 좋을 것 같지만 과연 인간은 이런 상황을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하다. 원래 인간이란 존재는 전투적인 데가 있어서 뭔가를 성취해야 하고, 필요에 피터지게 싸워야 하는 존재들이 아닌가? 이런 것을 싫어한다고는 하지만 사람은 어느틈엔가 이런 것에 길들여져 나도 모르게 그렇게 사는 것이다. 그러다 한번씩 저런 곳에 가서 마음의 때를 벗겨내고, 반성도 하며, 원래 사색하는 동물인 양 고상하게 있다 또 다시 현실로의 복귀가 가능한 존재들이 아닌가? 그래서 배부른 돼지 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고 싶다느니, 천국에서 나른하게 사는 것 보다 지옥에서 전투적으로 사는 것이 낫다느니 개똥철학을 읊어대는 것도 또한 인간이다. 나도 저런 곳은 몇주 또는 몇 개월은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영원히 산다면 그건 고려해 봐야할 것도 같다. 아니면 저런 곳에 살아 갈수있도록 내가 새롭게 프로그래밍화 되어야겠지.  


 

저런 핸드폰이 터지지도 않는 곳에 가면 사람들은 뭘하고 싶어질까? 이 영화의 타에코(고바야시 사토미)는 저렇게 뜨개질을 한다. 무엇을 짜느냐고 생물 선생님 하루나(이치카와 미카코)가 묻자 그냥 짠다고만 대답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되묻자, 왜 그러면 안되는 것이냐고 대답한다. 현대인은 목적추구형 인간이니 타에코의 대답도 일견 이해 못할 말은 아닌 것 같다. 나라면 뭘하고 싶어질까? 노트북 하나 달랑 가져가서 글을 쓸 것도 같다.  

무엇보다 부러운건 끼니 걱정 안해도 된다는 것! 아침 먹으면 점심 해 먹을 것 생각해야 하고, 점심 설거지 하면 저녁 만들어 먹을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저곳에서는 끼니를 책임져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민박집 주인 유지와 수수께끼 빙수 아줌마 사쿠라(모타이 마사코)가 그들이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식단도 정갈하니 한끼 식단으로 손색이 없다. 여자들 또는 싱글들의 로망 중 하나가 그런 거 아닌가? 저런데는 하루 민박이 얼마나 드는지 모르겠다.  

이 영화는 수필 같기도 하고, 배경이 있는 정물화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몇개의 사물들이 코드처럼 등장한다. 예를 들면, 하루의 부적이라는 매실짱아찌, 사쿠라의 빙수. 연녹색의 파스텔 바다에 드리워진 낚시. 평소엔 잘 보이지도 않던 열댓 명의 마을 사람들이 사쿠라의 체조 시간만되면 나와서 체조를 하는 것 등등. 그렇다고 해서 영화를 이해하는데 어떤 매개물이 되는 건 아니다. 영화를 위한 소도구 정도일뿐.  하지만 이중 돈 안 받고 파는 사쿠라의 빙수는 영화 전체에 어떤 의미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 영화를 가리켜 일명 슬로우 라이프 무비라고 하는데 정말 그런 것도 같다. 빙수에 넣을 팥을 졸이는데도 사쿠라는 정성을 다하기도 하니까. 아, 위의 스틸컷에서 보듯 저 빨간 목도리도 나중에 근사하게 이 영화의 엔딩을 장식하기도 한다. 

제목도 '안경'이긴 하지만 크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어찌하다 보니 주요하게 등장하는 인물이 하나 같이 안경을 쓰고 있다는 것뿐. 그나마 안경이 제일 잘 어울리는 사람이 저 타에코와 빙수 아줌마 사쿠라 정도일까? 나중에 타에코가 마을을 떠나면서 차창 밖을 내다보다 안경을 실수로 떨어 뜨린다. 순간 당황하지만  이내 포기하고 그녀의 안경은 민박집 주인이 바다 낚시를 할 때 낚싯대에 걸려 극적으로 구출을 받는다. 그것은 정말 위트있는 설정인 것 같다. 그런 것으로 봐 타에코는 다음에 다시 돌아 올 모양이다. 안경을 찾으러. 

영화는 봄이라고는 하는데 여름에 가까운 봄 같다. 요 며칠 추웠고 앞으로 다시 추워진다고 한다. 영화를 가득히 채우는 햇볕이 빨리 봄이 왔으면 좋겠다. 지금도 춥다고 느껴지거든 이 영화를 한 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추천이라고 생각한다. 나른한 봄볕의 휴식을 영화로나마 대신해 보는 것도 좋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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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0-01-0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시노 이발관 만든 감독 작품 맞죠?
우리가 헐리우드 영화에 너무나 길들여져 있는 것 같기는 해요.
나른하고도 졸린듯 한 영화...제가 영화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이 감독의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와는 분명히 다르고 유럽권의 영화와도 다른 묘한 분위기의 영화인 것 같아요.
수필같고 정물화 같다는 비유가 참 좋네요 ^^

stella.K 2010-01-03 17:43   좋아요 0 | URL
유럽권과 다르다면 거기에 일본적 정서가 나름 포함이 됐겠죠.
맞아요. 요시노 일반관도 만들었다는 것 같은데 그건 아직 못 봤네요.
다들 카모메 식당 좋다고하고 저도 이 작품 보단 카모메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안 보셨다면 함 보세요. 아, 그리고 새해 복도 많이 받으시구요.^^

하늘바람 2010-01-03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런 영화 보고프네요. 제가 좋아하는 스탈같아요

stella.K 2010-01-03 17:44   좋아요 0 | URL
언제고 시간 나실 때 느긋한 맘으로 함 보세요.
잘 쉬었다는 느낌 받으실 거예요.^^

프레이야 2010-01-06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첫 리뷰 당선! 스텔라님 축하드려요.^^
안경, 저도 본 영화인데 참 신선하고 편안하단 생각을 했었지요.
저런 곳에서 며칠 조용히 쉬고 싶다는 생각도.

stella.K 2010-01-06 20:24   좋아요 0 | URL
어므낫! 지금 봤어요. 제가 또 리뷰 당선이라니...!
올해는 제가 좋은 일이 많이 있으려나 봅니다.
고맙습니다. 프레이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