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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
윤성현 감독, 서준영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친구는 청소년 때까지나 사귀는거지 대학 가고, 사회 나가면 친구는 없다고. 그러니까 순수한 우정은 사춘기 때까지며, 그 이후엔 다 필요에 의해서 만나고 사귀는 거라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정말 그러한가를 이 영화는 묻고 있는 것 같다.
일단 이 영화는 우정을 너무 아름답게만 포장하려고 하는 여느 영화와 같지 않아서 좋았다. 사실 영상 자체는 그다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기승전결을 파괴하는 진행 방식이야 그렇다 손치더라도 현재를 보여주는가 싶으면 불쑥 과거를 보여주고, 과거를 보여주는가 싶으면 현재를 보여주는 건 그다지 세련됐다고는 볼 수 없으며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다. 물론 그런 거친 방식이 또 어찌보면 아마추어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도 같고 나름의 사실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덕목은 아무래도 사춘기 청소년들의 친구들의 세계란 이런 것이라는 걸 가감없이 보여준 것에 있지 않나 싶다.
친구지간이라고 해도 친밀감이 다르고, 우정의 깊이가 다르며, 힘의 논리가 다르다. 어떤 친구는 왠지 내가 눌리는 느낌을 갖게 만들고, 어떤 친구는 만만하게 느껴지며, 어떤 친구는 형식적인 관계만 유지하게 만드는 친구가 있다. 그런데 묘한 건 그 나이 또래엔 둘 보다는 셋으로 뭉쳐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야 서로를 견제하며,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안에도 힘의 역학은 존재한다.
이 영화에서도 보라. 기태와 희준, 동윤이 친할 것만 같지만 실상 기태는 희준을 만만하게 보며, 동윤은 기태와도 친하지만 희준을 더 챙기고 싶어한다. 그런 가운데 기태는 동윤과 계속 좋은 관계이고 싶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질 않는다. 그래서 순간 순간 동윤을 내리누르며 힘으로 조종하고 싶어하는 자아를 드러내기도 한다. 결국 희준은 기태의 등쌀에 전학을 가고, 기태에게 조롱 당했다고 생각한 동윤은 등을 돌리고 만다. 그리고 어느 날 기태가 자실을 한다.
기태가 어떻게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는 확실하게 보여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는 있다. 실상 사춘기는 인생의 발달 과업 중 친구가 가족 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때 이기도 하다. 친구가 온통 자신의 세계를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친구가 정말로 좋아서일수도 있겠지만 자기 과시욕 때문일수도 있다. 그러니 그 세계는 얼마나 불완전한 세계일까? 자기 하나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으며, 친구들로부터 인정 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극대화된 시기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우스운 건, 인간의 선하고 긍정적이며, 바른 것 가지고는 친구들에게서 인정 받을 수 없다. 그러면 재수 없다고 따를 당한다. 추하고 쌍스러운 것을 누가 누가 잘하는가가 오히려 힘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 빈번하게 나오는 말이 무엇인 줄 아는가? 말할 것도 없이 "존나"와 "씨발"이다. 이것은 실제 상황이어서 언젠가 두 마디 건너 존나와 씨발을 규칙적으로 사용해 주는 아이를 보고 식겁한 적이 있다. 그런 걸 보면 우리 땐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혀를 끌끌차게 되며, 이 아이의 부모는 어떤 사람일까? 또는 어느 학교를 다니고 있을까 궁금해 진다.
부모가 아이들을 가르칠 수 없다면 학교에서라도 바른 훈육과 인성을 가르쳐야 하는데 우리도 아다시피 학교는 학원 보다 못한 곳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무엇보다 학교가 우정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데 아이들이 어디 가서 제대로된 친구 관계를 맺을 것인가? 부모 역시 공부 잘하는 아이 아니면 사귀지도 말라고 가르치고 학교를 보내는데 진정 따뜻한 가슴에서 친구를 사귄다는 개념 자체는 상실하고 퇴화된지 오래다.
사실 영화에서 기태는 까칠하고 자존심도 쎄서 그렇게 쉽게 죽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죽는다면 희준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희준이는 기태에게 매번 괴롭힘을 당하는 입장이니 그렇지 않은가. 그에 따라 아버지는 기태의 아버지가 아니라 희준의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기태다. 그러니까 기태도 알고 보면 강한 것 같아도 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또 그에 따라 희준이와 동윤의 관계도 거기서 멈추게 된다. 헤어지게 되는 것이다. 남자들의 관계가 또 다 그렇지. 의리로 뭉친 것 같아도 어느 날 헤어지면 덤덤해지는. 여자는 서로 죽고 못 사는 것 같아도 어느 순간 얄미운 고양이가 되어버리는 것이고. 인간관계 알고 보면 얄팍하다.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물론 아니지만 그 나름에 시사하는 바는 있다. 그러나 역시 기태나 기태의 아버지의 동기가 생각 보다 약해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기태 역을 맡은 이제훈의 연기가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야구공 하나에 나 죽는다는 표현을 담기엔 좀 역부족이다. 이제훈의 연기는 더도 덜도 아닌 고딩 그 자체로 보인다. 나머지 동윤 역의 서준영이나 희준의 박정민의 연기도 나쁘지 않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