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영화 <화장>을 보고 왔다.
잘 아는대로 이 영화는 김훈의 <강산무진>에 나오는 단편 '화장'을 영화화 한 작품이다.
김훈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라 출간된지 얼마 안되 읽었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놈의 기억이란 게 저질이라 읽었을 당시엔 좋았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내용이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냥 죽어가는 아내를 지켜봐야 하는 중년 남자의 시선을 그렸던 것으로 안다.
책을 읽으면서도 언젠가는 영화나 단막 드라마로 만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제야 스크린에 옮겨졌다는 게 좀 늦은 감이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꼭 그렇게만도 생각할 건 아니다. 문학 작품 하나가 영화화하는 건 생각 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영화화 됐다는 게 다행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그런데 영화화됐을 땐 내용은 달라질 수 있다. 영화에 있어서 임권택 감독만큼 인간의 오욕칠정을 잘 다루는 감독이 있을까? 영화는 죽어가는 아내를 두고 젊은 그것도 직장 동료 여자를 힐끔거리는 중년 남자의 감성에 촛점을 맞추었다. 누구는 이걸 두고 도덕적 잣대를 들이댈지 모르겠지만 난 그게 너무도 이해가 간다. 이 오욕칠정을 삶의 관점이 아닌 죽음의 관점에서 보면 얼마나 잘 드러나겠는가? 죽는 그 순간까지 인간의 오욕칠정은 죽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허허로운 욕망 덩어리인지도 모른다.

타인의 죽음을 목도할 때 마음이 비워지고 온전히 그 사람에게 올인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내 안에선 살고자 하는 욕망과 자아가 충돌하는 것이다. 영화는 중년남자의 젊은 여자를 향한 욕망이지만 그건 죽어가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그 모양을 달리하기도 한다.
하다못해 죽는 당사자 조차도 자기에 대한 욕망을 감추지 않는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죽을 텐데도 육감적으로 남편을 의심하지 않는가? 그런데 꼭 그게 육감의 작용만은 아닌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자신이 곧 잊혀질 것에 대한 아쉬움, 두려움을 그렇게 단말마의 비명으로 질러버리는 건 아니었을까?
죽어가는 아내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섹스를 하면서 또 밤새 간호를 하면서도 젊은 여자를 욕망하고 상상한다. 더구나 남자가 전립선비대증 앓고 있다는 설정은 정말 최악이다.
게다가 임권택 감독의 영화가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몇몇 작품에서 나타나는 과감한 날 것 그대로의 장면은 조금은 충격적이기도 하고, 거장의 시선이라고 이해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화장실에서 아내의 아랫도리 부분을 씻겨주는 남편을 표현할 때 영화는 구태여 그 부분을 대충 넘어가거나 가릴려고 하지 않는다. 보여주더라도 보통은 안개처리 하는데 그만큼 리얼리즘을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또 그러니만큼 병든 아내 역을 거의 완벽하게 보여준 김호정의 연기는 호평할만 하다.
영화는 영리하기도 하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유품 정리차 별장 온 남편. 드디어 젊은 여자를 품에 안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줄도 모르는데 그것을 의도적으로 애써 피한다. 그게 도덕적여 보이긴 한다. 하긴, 아내 죽은 지 얼마나 됐다고 그새 다른 여자를 품에 안겠는가? 하지만 그 보단 자신의 도덕적이고도 사회적 위치, 이 여자는 안될 거란 마음의 굳은 의지 뭐 그런 것들이 더 많이 작용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일반적으로 영화는 디테일을 강조하다 보니 이야기를 위해 작은 것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지만(지나치면 작위적일 수 있다) 일상에서는 드러나는 것 보단 스쳐지나 가는 것들이 더 많다. 욕망도 그냥 흘려 보낼 수 있으면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집착하도록 만드는 건 훗날에라도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서 돌아 올지도 모를 일이니.
아내가 죽고 간단히 화장해 버리는 오늘 날의 장례 문화에 대해 꼬집는 처제의 푸념도 일견 이해는 간다. 옛날엔 꽃상여를 매지 않았던가? 하얀 꽃 상여에 검은 베옷으로 만든 상복를 입고 장지로 가는 일가족 속에 검붉은 옷에 귀걸이를 한 젊은 여자(김규리)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영화는 무슨 프랑스풍의 영화를 연상시키며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 한다. 안성기 특유의 흐느적한 스타일이 소시민적 가장의 이미지를 배가시켜 인상적이다. 뭐 빠져들만큼의 영화는 아니지만 나름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별점은 세개 반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