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약국 -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는 언어학자의 51가지 처방전
박현주 지음, 노석미 그림 / 마음산책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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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약국을 읽었다. 그런데 좀 미안한 얘기지만 생각보다 그다지 재미있거나 신선하지는 않아 보인다. 왜 그럴까? 이 나이 먹어서 로맨스는 뭐...하는 시큰둥함일까? 아님 저자가 말하려 하는 게 그다지 가슴까지 안 와닿아서일까? 여하튼 난 좀 지루했다.

하지만 이 나이 먹어서 로맨스 어쩌구 하는 게 우습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불륜만 아니라면) 로맨스는 어느 나이대를 막론하고 다 있을 수 있으며 다만 그 나이대마다 양상을 달리하는 것뿐이이지 않는가? 인생 어느 때고 사랑이 중요하지 않은 때가 어디있단 말인가. 

이 책을 읽고나니, 어느 노래가 생각이 난다. 사랑은 원한다고 해서 오는 것이 아니며, 잡는다고 해서 떠나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조금은 처량맞은  가사의 노래가.

확실히 이 책은 현재 사랑하고 있는 연인들을 위한 책은 아니고, 사랑을 잃은 사람을 위한 책인 것 같다. 사랑하고 있을 땐 몰랐는데, 사랑이 지나고나니 이런 것이었어 하며 자조도 하고 스스로 위로하기 위함은 아닐까?

근데 책은 51가지 처방전을 제시한다고는 하지만, 진단은 있으나 왠지 처방전까지는 말하고 있는 것 같아보이진 않는다. 그냥 이거는 이런 거야, 라는 식의 진단과 약간의 조언 정도? 하지만 51가지나 된다니, 왠지 사랑이 더 이상 신비스럽지 않아 보인다.

몇가지로든 얘기되어 질 수 있는 있다고는 하지만, 사건마다 양상마다 사랑을 전부 다 아는 것이 아닐텐데 그렇게 다 알 것만 같으면 사랑도 흥미없을 것 같아보인다. 사랑은 언제나 하면 할수록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그러므로 몇가지로 얘기되어질 수 있다고 해도 그 체험은 무궁무진 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인간의 언어로 얘기하려고 한다는 게 좀 우습지 않나? 단지 우습지 않으려면, 51개든 몇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 것을 자신이 일일이 체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웃을 수 없는 거겠지. 그렇다고 그것을 체험해 보려고 51번 사랑을 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래도 이 책 어느 부분은 상당히 공감이 가고 일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도 있기는 하다. 사람은 누구나 거절에 대한 두려움은 다 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고 있는데, 그대가 나를 싫어한다고 하면 어쩌나? 그래서 "우리 사귈래?"라고 말하기는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가? 그런데 책은 제일 첫번에 이 얘기를 하라고 권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에 지나친 의미와 신비감을 부여하려 한다. 진정한 사랑은 인간의 좁은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거야라며 비장미까지 더 하려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러다보면 '자폐'가 되버리지는 않을까? 그리고 짝사랑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사랑은 말해져야 한다. 그리고 표현되어져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랑은 풍성해지고 메아리가 되어 나에게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사랑의 순간은 있었다. 하지만 말 못하고 흘려보낸 사랑이 또 얼마랴? 그리고 안타까운 사랑만 되네이고 있는 건 또 얼마나 미련스러운 것인가.

그러고 보니 스무살을 갓 넘겼을 그 시절에 나를 사귀어 보겠다고 초콜릿까지 준비했던 어떤 사내가 생각이 난다. 그땐 난 솔직히 당혹스러웠고, 초콜릿까지 준비할 줄 아는 센스라면 많이 해 본 솜씨라고 생각해 외면했었다. 결국 나는 그의 초콜릿을 받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난, 그가 참 용기 있었다고 생각한다.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은 끝낼 수 있으며,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보기가 좋다. 그래서 "우리 사귈까?"하는 자기 선언이 필요한 것이겠지.

하지만 시작도 모호한 사람은 끝도 모호하며,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또한 모른다. 첫사랑은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나이 들어서도 그러면 미숙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지 않은가? 먼저 말하라. 상대가 말해주길 기다리지 말고. 자발적인 사람이 긍정적인 사랑을 할 수 있으며, 비록 헤어지게 되더라도 미련이 훨씬 덜남는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좀 독특하긴 하다. 그냥 연애를 잘 하기위한 전략지침서는 아닌 것 같고, 언어를 통한 연애진단서쯤 될 것 같긴한데 그런데 뭔가 모를 모호함이 있다. 작가가 좀 더 깊이있게 풀어주면 좋겠는데 아직은 필력이 좀 아쉽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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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8-31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

야클 2006-09-01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가끔 초콜렛 그 남자가 생각나나요? ^^

stella.K 2006-09-01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뽀뽀님/내가 한다고 불륜이 어디가겠습니까? 아예 꿈도 꾸지 마시쇼!^^

야클님/생각 안 났었는데 이 책 읽다보니 생각났어요. 제 타입 아니었죠. 흐흐.
 
흑설공주 이야기 흑설공주
바바라 G. 워커 지음, 박혜란 옮김 / 뜨인돌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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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다루는데 있어서 '각색'이란 작업과정이 있다. 이를테면 소설을 희곡이나 시나리오로 바꾸는 작업. 또는 시나리오를 소설로 바꾸는 작업을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각색을 맡은 이는 필히 '윤색'이란 과정도 함께 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그 작업자의 스타일과 독특한 해석 등이 가미가 될 때 필히 따라오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어줍잖은 실력으로 그런 작업을 시도해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 따라오는 작업동기란 기존의 작품을 패러디 한다든지 짜깁기를 하겠다는 발상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그러다가 재수없으면 원작자에게 명예훼손으로 고발 당할 수도 있다. 물론 난 아직 그 정도의 실력은 갖추지 못했기에 그런 일은 당해보지 않았다.ㅋ.

이 작업을 하려면, 적어도 한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을 때 그 이야기에 대해 '의심'을 가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과연 이게 다인가? 이 이야기에 문제점은 없는가? 뭔가 다르게 보고, 다르게 쓸 수는 없을까를 생각하는 것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나라면 이 이야기를 어떻게 써 보겠는가? 하는 물음이다.

어치피 해 아래 새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한다. 물론 원작자는 기분 나쁠지도 모른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새롭게 요리 해 먹는다는 건, 원작자의 작품에 대한 기본 정신을 반대해 침해 당하는 것 같아 용납하기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더구나 원작자가 보수적인 사람이면 더 더욱 그렇겠지.

하지만 달리보면 더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사라지는데, 그 원작의 혼령들이 살아 남아서 몇 세기가 지나도록 사람들의 입에 끊임없이 회자되고 변신을 시도한단 말인가. 나에게 그런 원작 하나쯤 있어 내 후대의 사람들이 울거 먹어 준다면 가문의 영광이 아니겠는가.

솔직히 난 이 책이 궁금했다. 내가 무슨 페미니스트 신봉자여서 연구 텍스트로 삼으려고 이 책을 읽으려 했던 것이 아니다. 위에서 밝혔다시피 기존의 이야기를 누군가 다른 시각과 각도에서 썼다는 그 발상의 전환이 궁금했던 것이다.

내가 페미니스트냐 아니냐를 떠나서, 나도 기존의 이야기나 영화가 거북하고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왜 이야기들은 하나 같이, 잘 생기고 예쁜 사람은 끝까지 살아남고, 못 생기고 약한 것들은 일찍 죽어나가는가. 또는 잘 생기거나 똑똑한 사람 또는 부자는 면죄부를 받아 그들만의 우생학적으로 강자를 만들고 그들만의 제국을 만들기를 바라는가? 이런 건 이야기의 형평성을 고려할 때 얼마나 비평등적이고 속된 것인가. 그럼에도 그런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윤색되어져서 인간의 기억의 칩에 저장되길 서슴치 않는다. 만일 원작자(또는 제작자)가 상업적인 목적에서 이런 죄를 범하길 서슴치 않았다면 반성해야 한다.      

인류가 발전하려면 反을 잘할 줄 알아야 한다. 오래 전 영화관에서 <슈렉>을 보고 나온 그 감동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 이야기가 어떤 내용인지는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이 책도 그렇고, <슈렉>을 비롯한 같은 성질의 것들을 추구하는 일련의 작품들을 떠올린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답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마음씨 착하고 예쁜 공주는 멋진 왕자님을 만나 왕궁에서 행복하게 잘 살았데요."로 끝맺는 이야기를 읽고 자란 왕자와 공주들이 오늘 날 심각한 병이 들어 헤어나올 생각을 못하고 있고, 온갖 신드룸이란 신드룸은 그 옛날 우리가 재미있게 읽었던 이야기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모두 19세기 이전의 이야기들인데 그 망령은 끊이지 않고 21세기에도 떠돌고 있다. 우린 그저 재미있게 읽었을 뿐인데.

이야기가 우리의 무의식에 미치는 영향은 가히 엄청난 것이다. 그게 뭐 별건가 싶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하나의 신화가 되기도 한다. 그 신화가 인간의 무의식을 일깨우기도 하고 인간의 재해석에 불을 지피기도 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끊임없이 자기 변신을 시도해 내성에 인이 박힌 인간을 끊임없이 새롭게 해야한다. 

나는 그같은 작업에 수고를 아끼지 않은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저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화, 민담, 신화들을 수집해 새롭게 재해석하고 다시 썼다. 물론 저자는 페미니스트적 시각에서 글을 썼기 때문에 한정적이란 느낌도 없지는 않지만, 이렇게 다른 각도에서 다르게 풀어내는 작가의 역량은 높이 살만 하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도 어색하지가 않다.

단,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것은 나의 게으름이라고 해야 하는건지 아니면 작가의 작업적 과잉이라고 해야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모르는 이야기들이 2권에 주로 많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원작과 작가의 작품이 얼마나 다르게 표현되어 있는지 몰라서 그 흐름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작가가 이야기 시작 전에 해설을 따로 해 놓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왠지 충분해 보이지가 않았다. 내가 그닥 동화를 접해보지 않아서일까? 그래도 전반적으로 꽤 괜찮은 독서체험인 것마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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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6-08-24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흑설공주> 2권도 나왔어요? 몰랐네요.
맞아요. text를 모르면 패러디가 재미없죠. 그래서...2권은 안 읽을래요.ㅎㅎㅎ

stella.K 2006-08-24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생각하셨습니다. 하하.
 
마약 - 사용설명서 4
마이크 해스킨스 지음, 이민아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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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평소 나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도 않다가 갑자기 알고 싶은 생각이 났다.  거, 반가운 일이군. 사실 외로웠었거든. 왜 사람들은 나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는걸까? 내가 얼마나 너희들 가까이 살고 있는데. 해마다 나를 근절시키기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가지, 그래도 난 없어지지 않아. 끄덕없지. 왠줄 알아? 난 너희들 가까이 살고 있으면서,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지. 그것이 오늘날까지 나의 생명이 끊이지 않고 이어올 수 있는 비결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왜 그런 거 있잖아.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인간의 심리를, 나 역시 교묘히 이용해 온 거지. 그래서 난 죽지 않고 오늘 날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거야.

그런데 너희 인간들은 이상해. 왜 나에 대해 애증을 갖는 거지? 사랑을 하려면 사랑만 하던가, 미워하려면 미워만 하던가 할 수는 없겠니? 생각해 봐, 무엇보다 난 너희들의 아플 때 고통을 덜어줬어. 알잖아. 모르핀이나 헤로인 같은 애들 때문에 너희들의 끔찍한 육체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마취제에 내가 안 들어가고 베기는 줄 알아? 마취제 없이 수술할 때 생살을 도려내는 고통을 너희 인간들이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니? 그게 다 나의 덕분이란 걸 왜 모르는 거야?

아, 그래. 인정해. 그렇게 치료 목적으로만 나를 쓴다면 얼마나 좋겠어. 하지만 알지? 인간들도 나 못지 않게 영악하다는 거. 그러니 나만 나쁘다고 몰아 세우지 좀 말아. 사실 공히 밝히겠는데, 사람들은 뇌의 작용으로 자연스럽게 자체적으로 나와 같은 성분을 만들어 낼 수 있지. 하지만 인간은 또한 뭔가에 의존하려고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외부의 작용을 원하고 있지.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데야 난들 어쩌겠나? 원하는데로 해줘야지.

나의 보존 경로에 대해 알고 싶나? 난 어디든지 숨을 수가 있지. 난 인간들의 수사나 법망을 다 뚫을 수가 있어. 인류 역사상 알만한 유명인사들은 다 나를 비호해줬어. 주로 음악가들이나, 예술하는 사람들이 나를 유명하게 만들어 줬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얘기니 입 아프게 새삼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 아는가? 찰스 디킨즈나, 링컨 같은 사람들도 나를 비호해줬다는 사실을. 그중에서 특히 프로이트는 사랑하는 여자를 아내로 맞기 위해 나를 이용했다는 거 몰랐겠지. 흐흐.

나를 밀반입 시키기 위한 방법은 여러가지야. 난 심지어 동물의 몸속에 숨어 있기도 하고, 죽은 아기의 시체 속에도 숨어있기도 해. 가끔은 인간의 몸속에 고히 숨겨졌다 다시 나오기도 하지. 물론 나도 이론 방법은 좀 쓰지 않았으면 해.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그리 좋다는데.

난, 이 책이 아주 마음에 들어. 이 책은 고리타분하게 나로인해 인간을 개도하기 위해 쓰지 않았거든. 그냥 나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전달해 주기 위해 썼더군. 제목도 근사하게 <사용설명서>라고 하지 않는가. 소제목도 마음에 들어, 경고: 건강을 해치는 '마약, 그러나 읽는 것은 괜찮습니다!' 어때 좀 익살스럽지 않나? 이 책은 다시한번 강조하건데, 나에게서 떨어트려 놓으려고 '선도' 또는 '퇴치'하기 위해 쓴 책이 아니란 말일세. 물론 나에 대해 너무 적나라하게 까발려놔서 나 역시 옷을 홀딱 벗겨진 것 같아 기분은 상했지만, 그 다음 너희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알아서 판단하고 선택할 일이지. 난 선택을 강요하지 않아. 내가 언제 인간의 이성에 먹히는 존재던가? 난 그저 인간의 운명과 같이할 뿐이라구.

사람들은 말하지. 내가 너희들을 죽인다고. 하지만 난 너희들을 결코 죽인적이 없어. 너희들의 선택이 너희들을 죽게 만들었지. 인간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나 역시 계속 존재할 거라구. 너희들이 날 뭐라고 부르고 생각해도 좋아. 너희들과의 동침은 계속될테니까. 또 보자구.

P.S: 솔직히 나는 이 책이 좀 지루했다. 마약이 얼마나 인간의 삶 가까이 맞닿아 있는지 알고는 있지만, 뭔기 모를 괴리감 때문일까? 분명 흥미거리로 읽어 볼만 한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역시 마약과 난 친하지 않은가 보다. 하지만 인간이 마약을 얼마나 교묘하게 다루어왔는가를 생각할 때, 마약의 입장에서 리뷰를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렇게 써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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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7-27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리즈 보고픈데. 죽음, 섹스, 마약, 술이었던가요. 네가지.

stella.K 2006-07-27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흥미롭긴 해요!^^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안건모 지음 / 보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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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처음에 이 책을 그냥 지나칠려고 했었다. 저자가 낮선 이름인데다가, 듣도 보도 못한 <작은책>이라고 하는 잡지에 실린 저자의 글을 모은거라고 하니 그렇고 그런 글모음은 아닐까 해서였다.

막말로 얘기해서 세상에 떠도는 게 글이요, 개나 소나 책을 낸다고 한다. 그러니 잘 고르지 않으면 낭패 보기 쉽다. 더구나 잘 만들어지지 않은 다음에야 누가 거들 떠나 보겠는가? 책 다자인이 좋다고 해서 그책의 내용이 다 좋은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역시 겉포장에 약한 법이다.  

작은 고추가 맵다고, 보기엔 허술해 뵈도 제값 그 이상을 해 내는 책들이 있다. 그런 책 만나면 횡재하다 못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이렇게 괜찮은 책이 재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이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지나칠려다 마음을 고쳐먹길 잘한 것 같다. 평소에 우리나라 버스에 불만이 많은 내가 아니던가?  이 다소 촌티나는 책을 그냥 지나친다면 뭔가 후회할 것만 같았다.

우리나라 버스에 대한 나의 불만은 좀 오래되었다. 과속에, 기사의 거치른 언행, 손님들이 미쳐 다 타기도 전 출발하려고 하는 것, 특히나 노약자나 어린아이를 동반하고 타는 경우 그들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또는 자신들이 서야하는 위치에서 안전하게 손잡이 잡을 때까지 기다렸다 출발해 줬으면 하는데, 그런 배려가 없을 땐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온다. 왜 내가 내돈 내고 버스 타는데 이런 최소한의 서비스도 못 받는 것인가? 

무엇보다 버스비 올릴려면 시민들을 볼모로 파업하는 것. 그리고 극적타결이 이루어지면 좀 더 나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노라는 말은 잊지 않지만, 지난 2년 동안(우리나라 버스비는 평균 2년마다 한번씩 올렸던 것 같다) 무엇이 더 나아진 것인지, 그들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시민들이 시내버스를 욕을 하면 회사를 상대로 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버스 기사한테 한다.그러면 버스기사는 대신 욕을 먹어주는 것이지.  그 기사아저씨라고 배차시간 늦고 싶어서 늦고, 사고는 내고 싶어서 내겠는가? 밥 먹을 시간 없고, 화장실 갈 시간도 줄이는데 늦는다. 그럼 뒤에서 궁시렁대는 승객도 있지만 대놓고 욕지거라 팍팍하면서 니네 회사에 고발할거라고 엄포까지 놓는다. 버스기사가 뭔 죄란 말인가?  

버스기사 그들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버스기사가 무슨 동네 북도 아니고, 회사 가면 업주한테 당하고, 길 밖으로 나가면 시민들에게 채인다. 느는이 거칠어지는 입이요, 하는니 더러워 못해 먹겠다는 한탄뿐이다.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는 바로 이런 자잘하고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버스기사의 애환과 삶을 쫄깃쫄깃한 글발에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난 또, 버스기사 쳐놓고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처음 본다. 버스기사면 블루칼라에 속하는데 그들은 하나 같이 공부도 못하고, 책 읽기는 귀찮아하고, 오직 기름 때만 쭐쭐이 묻히고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우린 그들을 잘못뵈도 한참 잘못 보는 것일 것이다. 

그들 속엔 비록 가방 끈은 짧아도 뜨거운 가슴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 나는 솔직히 이 한 권의 책에 린치를 당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 버스에 대한 불만을 기사아저씨한테 싸잡아서 욕을 하는 건 확실히 잘못한 일이었다. 욕을 한다면 그들(버스기사)을 가지고 놀려고 한 악덕업주들이고, 무능한 정부다!

솔직히 매일 버스승객들의 소중한 목숨을 실어나르는 버스라고 한다면 안전이 우선이 아니겠는가? 매일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그나마 적어도 운전기사라도 복리후생은 고사하고,컨디션을 보장해줘야 하는데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면서 업주들은 이윤만을 생각하고, 그들의 생명줄을 쥐락 펴락한다. 세기는 21세기인데, 업주들의 경영방식은 20세기를 넘지 못하고 있다.  21세기 기업을 생존방식은 윤리경영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버스회사들이 알까 싶다.

직업이 귀천이 없다고는 하지만 역시 이상적인 말처럼 들린다. 어떤 직업이든 제대로된 대우를 못 받으면 열등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저자처럼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자신의 일의 부당함을 외부에 알리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기 일에 대한 가치를 높이는 일이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다. 물론 그 일이 때로 힘들고 외로운 길이 되겠지만 말이다.

읽으면서 저자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말미에 자신에 대해 피력한 글을 읽으면서 역시 그는 반항아적 기질이 다분해 보였다. 하지만 반항아적 기질만으론 인정 받을 수 없고 세상을 온전히 살아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기질로 '저항'하지 않으면 안된다.

세상 어디를 가나 거짓과 탐욕은 존재한다.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건 '저항정신'일 것이다. 저자가 읽어 온 독서편력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남다른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는지를 알 수가 있다. 업주에게 찍혀서 "이 회사의 주인이 누구야?"라고 시비를 걸어 올 때, 그는 당당하게 "우리 노둥잡니다!"라고 외칠 수 있는 그가 멋지다!   

글이 사람의 영혼을 밝혀준다. 아무리 개나 소나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그 가운데 정말 빛과 소금 같은 글들이 있다. 나는 오늘 이 책을 그러한 범주에 넣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이제 버스운전하던 손을 놓고 <작은책> 편집장으로 눌러 앉았다고 한다. 사람의 손이 참 멋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저자에게서 본다. 그 손 가지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 가정을 지켜내고, 사람들의 생명을 책임지며, 영혼을 밝히려 하고 있다. 부디 편집장으로서의 역량과 <작은 책>의 무한한 발전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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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7-02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쓴 안건모입니다. 리뷰를 쓴 분들에게 뒤늦게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제 책을 좋게 평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버스 기사들의 실태가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죠.
월간 <작은책>이라는 진보 월간지를 발행하는 것까지 알고 계시는 걸 보면 깜짝 놀랐습니다. 혹시 작은책 독자님은 아닌지요. 작은책은 평범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부터 시사 문제까지 우리말로 쉽게 풀어 쓴 책입니다. 저희 작은책 사이트에도 들어 오셔서 어떤 책인지 구경하시고 작은책도 널리 퍼뜨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달에 한번 글쓰기 모임도 하고 강연도 있고 <역사와산> 이라는 모임에서 다달이 산도 갑니다. 혹시 가까우면 참석하셔서 같이 활동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www.sbook.co.kr
02-323-5391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 Philosophy + Film
이왕주 지음 / 효형출판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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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대했을 때 저자에 대한 소개가 흥미로웠다. 미국에는 영화철학 관련 세미나가 있는가 보다. 저자는 이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영화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영화철학이라...! 뭐 없으라는 법 없겠지. 법에도 철학이 있고, 과학에도 철학이 있으며, 미술 작품에도 철학이 있는데 영화라고 철학이 없을라고.

언젠가 후배와 그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야, 대학에 철학 강의를 신청하는 사람이 없어 패쇄하는 대학이 점점 늘어 난다더라. 이래가지고서야 철학이란 학문이 재대로 버텨내기야 하겠니?" 그러자 그 후배는, "철학이 철학 자체로 살아남을 수 없다면 다른 분야와 합쳐져서 계속 발전해 갈거야." 그러면서 철학의 위기론에 그다지 걱정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나는 그 후배의 말을 들으면서, 그렇겠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웬지 서글퍼 지기도 한다. 철학이란 그 어려움 때문에 나는 선듯 좋아할 마음이 내키지 않지만 그래도 인문학의 꽃이요 한때는 강의실이 꽉찰 정도로 그 명성을 구가 했는데, 지금은 여러 실용학문에 밀려 그 명맥만을 유지한다고 하니 안타까울 노릇이다.

그래도 80년대 초 들어서면서 소위 철학에세이류가 서서히 나오기 시작하면서 철학이 어떻게 하면 대중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가를 모색하기 시작했고, 나 역시 그에 대한 수해를 입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철학에세이류는 다소는 애매모호 했다. 철학책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볍고, 에세이라고 하긴엔 또 좀 어색하다. 그냥 철학 개론서를 쉽게 풀어 놓은 것이라고나 할까? 그러니 철학 개론서류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밖에.

그후 내가 이런 류의 책을 즐겨읽은 건 아니지만, 그동안 철학을 쉽게  풀이한 책들은 진화의 진화를 거듭해서 선택의 폭도 다양해지고 개중엔 꽤 괜찮은 책도 나온 것 같다. 

이 책 역시도 영화라고 하는 매개를 통해 철학은 이런 거라고 소개하고 있다. 얼핏보면 철학책이 하도 인기가 없으니까 요즘 영화 안 보는 사람 거의 없겠다, 접목시켜 또 하나의 칵테일을 시도한 듯도 싶다. 하지만 저자의 세련된 문체와 깊은 사유가 돋보인다. 저자는 어떻게 영화를 통해 철학을 깊이있게 설명해 놓을 수 있었을까?

읽다보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영화를 만들면서 니체의 이론을 녹여내고, 헤겔의 변증법을 이렇게 끼워 맞추고, 최신 철학 개념을 이렇게 섞어 넣고...기타 등등. 뭐 이러면서 영화를 만들었을까? 그건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어느 영화 제작자나 감독은 철학 지식이 해박해 그렇게 종횡으로 끼워 맞출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이런 스토리를 이렇게 비주얼 하게 보여주면 될 것인가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을 것이다.

그것을 어떠한 스펙트럼을 들이대느냐에 따라 의미는 달라져 보인다. 저자 이왕주  씨는 철학자답게 아주 노련하고도 세련된 문체로 자신이 본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철학을 잘도 설명해 내고 있었다. 덕분에 자꾸만 좁아지려고 하는 나의 시야와 사고가 조금은 넓어진 듯도 하다.

뭐 다 아는 얘기겠지만, 철학은 세계와 사물을 바라보는 사고체계를 구체화시켜 준다. 예전 고대철학은 이것이 진리가 아니겠는가라고 제시해 준다면, 현대로 진입할수록 진리를 말하기 보다는 현상을 직시하고 해석하려고 하는 의미가 더 강해 보인다.

특히 저자는 <슈렉>이라고 하는 에니매이션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을 너무나 잘 설명해 내고 있는데, 나 역시 이 에니메이션을 보는 내내 깔깔거리며 잘 만들었다고 생각만 했지 이런 철학이론이 내재되어 있는 줄은 잘 몰랐다. 이를테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우리 사회에 작동되고 있는 합리적인 원리, 규칙, 질서, 코드 등에 간하게 반발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나의 욕망과도 일치한다.

왜 세상은 뭐든 정해진 대로만 돌아가는 것인가? 잘 생긴 사람이 출세할 확률도 많고, 잘 생긴 사람과 사랑에 성공할 확률도 많고, 부자는 부자끼리만 결혼을 해 부의 세습만을 노린다. 왕자와 공주는 만나서 행복하게 오래 오래 잘 살았다고 하지 않는가? 이 얼마나 재미없는 세상인가? 이런 가치 체계를 패러디를 통해 유쾌한 반란을 꾸면던 작품이 <슈렉>이다. 그때 내가 얼마나 통쾌해 했었던가?

저자가 말하는 <와호장룡>이란 영화는 어떠한가?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긴다고 하는 장자의 '무위'를 인용해 세상의 이치와 섭리를 잘도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면서 개인은 고려하지 않은채 학벌과 재산 늘리기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요즘의 세태를 고집는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선 선택의 기로에서 잠시 흔들렸던 나를 다시한번 추스르게 되는 계기가 되서 저자에게 감사하고 싶을 지경이다.

이렇게 보면 철학은 지혜의 학문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가끔은 가치관이 혼란스럽고 생각을 어디다 둬야할지 모를 때 이런 책 한번쯤 읽어 주면 생각이 정리된 느낌을 받는다. 그러니 아무리 인문학의 쇄퇴를 걱정한다고 해도 우리가 인문학의 세례를 받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단 말인가? 더구나 영화라고 하는 친숙한 매체를 가지고 이렇게 친절하게 철학을 풀이해 주니 읽으면서 흐뭇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철학에세이류에만 매달릴 것인가 회의도 하게 된다. 언제부턴가 철학이 내게로 가까이 왔다면 언젠가는 내가 철학에 가까이 가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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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8-06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작년에 구입해서 재미있게 읽었는데 수요일에 문예진흥원 주최 강연회에서 이왕주 교수님에게 강연듣고 사인도 받았죠. 열정적인 분이시데요.

stella.K 2006-08-07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지런하심다. 담뽀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