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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안건모 지음 / 보리 / 2006년 6월
평점 :
나는 처음에 이 책을 그냥 지나칠려고 했었다. 저자가 낮선 이름인데다가, 듣도 보도 못한 <작은책>이라고 하는 잡지에 실린 저자의 글을 모은거라고 하니 그렇고 그런 글모음은 아닐까 해서였다.
막말로 얘기해서 세상에 떠도는 게 글이요, 개나 소나 책을 낸다고 한다. 그러니 잘 고르지 않으면 낭패 보기 쉽다. 더구나 잘 만들어지지 않은 다음에야 누가 거들 떠나 보겠는가? 책 다자인이 좋다고 해서 그책의 내용이 다 좋은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역시 겉포장에 약한 법이다.
작은 고추가 맵다고, 보기엔 허술해 뵈도 제값 그 이상을 해 내는 책들이 있다. 그런 책 만나면 횡재하다 못해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이렇게 괜찮은 책이 재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이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지나칠려다 마음을 고쳐먹길 잘한 것 같다. 평소에 우리나라 버스에 불만이 많은 내가 아니던가? 이 다소 촌티나는 책을 그냥 지나친다면 뭔가 후회할 것만 같았다.
우리나라 버스에 대한 나의 불만은 좀 오래되었다. 과속에, 기사의 거치른 언행, 손님들이 미쳐 다 타기도 전 출발하려고 하는 것, 특히나 노약자나 어린아이를 동반하고 타는 경우 그들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또는 자신들이 서야하는 위치에서 안전하게 손잡이 잡을 때까지 기다렸다 출발해 줬으면 하는데, 그런 배려가 없을 땐 나도 모르게 욕이 나온다. 왜 내가 내돈 내고 버스 타는데 이런 최소한의 서비스도 못 받는 것인가?
무엇보다 버스비 올릴려면 시민들을 볼모로 파업하는 것. 그리고 극적타결이 이루어지면 좀 더 나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노라는 말은 잊지 않지만, 지난 2년 동안(우리나라 버스비는 평균 2년마다 한번씩 올렸던 것 같다) 무엇이 더 나아진 것인지, 그들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시민들이 시내버스를 욕을 하면 회사를 상대로 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버스 기사한테 한다.그러면 버스기사는 대신 욕을 먹어주는 것이지. 그 기사아저씨라고 배차시간 늦고 싶어서 늦고, 사고는 내고 싶어서 내겠는가? 밥 먹을 시간 없고, 화장실 갈 시간도 줄이는데 늦는다. 그럼 뒤에서 궁시렁대는 승객도 있지만 대놓고 욕지거라 팍팍하면서 니네 회사에 고발할거라고 엄포까지 놓는다. 버스기사가 뭔 죄란 말인가?
버스기사 그들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버스기사가 무슨 동네 북도 아니고, 회사 가면 업주한테 당하고, 길 밖으로 나가면 시민들에게 채인다. 느는이 거칠어지는 입이요, 하는니 더러워 못해 먹겠다는 한탄뿐이다.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는 바로 이런 자잘하고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버스기사의 애환과 삶을 쫄깃쫄깃한 글발에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난 또, 버스기사 쳐놓고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처음 본다. 버스기사면 블루칼라에 속하는데 그들은 하나 같이 공부도 못하고, 책 읽기는 귀찮아하고, 오직 기름 때만 쭐쭐이 묻히고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우린 그들을 잘못뵈도 한참 잘못 보는 것일 것이다.
그들 속엔 비록 가방 끈은 짧아도 뜨거운 가슴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 나는 솔직히 이 한 권의 책에 린치를 당하는 것 같았다. 그동안 버스에 대한 불만을 기사아저씨한테 싸잡아서 욕을 하는 건 확실히 잘못한 일이었다. 욕을 한다면 그들(버스기사)을 가지고 놀려고 한 악덕업주들이고, 무능한 정부다!
솔직히 매일 버스승객들의 소중한 목숨을 실어나르는 버스라고 한다면 안전이 우선이 아니겠는가? 매일 언제 사고가 날지 모르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그나마 적어도 운전기사라도 복리후생은 고사하고,컨디션을 보장해줘야 하는데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면서 업주들은 이윤만을 생각하고, 그들의 생명줄을 쥐락 펴락한다. 세기는 21세기인데, 업주들의 경영방식은 20세기를 넘지 못하고 있다. 21세기 기업을 생존방식은 윤리경영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버스회사들이 알까 싶다.
직업이 귀천이 없다고는 하지만 역시 이상적인 말처럼 들린다. 어떤 직업이든 제대로된 대우를 못 받으면 열등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저자처럼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자신의 일의 부당함을 외부에 알리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기 일에 대한 가치를 높이는 일이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다. 물론 그 일이 때로 힘들고 외로운 길이 되겠지만 말이다.
읽으면서 저자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말미에 자신에 대해 피력한 글을 읽으면서 역시 그는 반항아적 기질이 다분해 보였다. 하지만 반항아적 기질만으론 인정 받을 수 없고 세상을 온전히 살아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기질로 '저항'하지 않으면 안된다.
세상 어디를 가나 거짓과 탐욕은 존재한다.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건 '저항정신'일 것이다. 저자가 읽어 온 독서편력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남다른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는지를 알 수가 있다. 업주에게 찍혀서 "이 회사의 주인이 누구야?"라고 시비를 걸어 올 때, 그는 당당하게 "우리 노둥잡니다!"라고 외칠 수 있는 그가 멋지다!
글이 사람의 영혼을 밝혀준다. 아무리 개나 소나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그 가운데 정말 빛과 소금 같은 글들이 있다. 나는 오늘 이 책을 그러한 범주에 넣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이제 버스운전하던 손을 놓고 <작은책> 편집장으로 눌러 앉았다고 한다. 사람의 손이 참 멋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저자에게서 본다. 그 손 가지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 가정을 지켜내고, 사람들의 생명을 책임지며, 영혼을 밝히려 하고 있다. 부디 편집장으로서의 역량과 <작은 책>의 무한한 발전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