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설공주 이야기 흑설공주
바바라 G. 워커 지음, 박혜란 옮김 / 뜨인돌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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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다루는데 있어서 '각색'이란 작업과정이 있다. 이를테면 소설을 희곡이나 시나리오로 바꾸는 작업. 또는 시나리오를 소설로 바꾸는 작업을 그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각색을 맡은 이는 필히 '윤색'이란 과정도 함께 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그 작업자의 스타일과 독특한 해석 등이 가미가 될 때 필히 따라오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어줍잖은 실력으로 그런 작업을 시도해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 따라오는 작업동기란 기존의 작품을 패러디 한다든지 짜깁기를 하겠다는 발상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그러다가 재수없으면 원작자에게 명예훼손으로 고발 당할 수도 있다. 물론 난 아직 그 정도의 실력은 갖추지 못했기에 그런 일은 당해보지 않았다.ㅋ.

이 작업을 하려면, 적어도 한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을 때 그 이야기에 대해 '의심'을 가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과연 이게 다인가? 이 이야기에 문제점은 없는가? 뭔가 다르게 보고, 다르게 쓸 수는 없을까를 생각하는 것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나라면 이 이야기를 어떻게 써 보겠는가? 하는 물음이다.

어치피 해 아래 새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한다. 물론 원작자는 기분 나쁠지도 모른다. 누군가 내 이야기를 새롭게 요리 해 먹는다는 건, 원작자의 작품에 대한 기본 정신을 반대해 침해 당하는 것 같아 용납하기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더구나 원작자가 보수적인 사람이면 더 더욱 그렇겠지.

하지만 달리보면 더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사라지는데, 그 원작의 혼령들이 살아 남아서 몇 세기가 지나도록 사람들의 입에 끊임없이 회자되고 변신을 시도한단 말인가. 나에게 그런 원작 하나쯤 있어 내 후대의 사람들이 울거 먹어 준다면 가문의 영광이 아니겠는가.

솔직히 난 이 책이 궁금했다. 내가 무슨 페미니스트 신봉자여서 연구 텍스트로 삼으려고 이 책을 읽으려 했던 것이 아니다. 위에서 밝혔다시피 기존의 이야기를 누군가 다른 시각과 각도에서 썼다는 그 발상의 전환이 궁금했던 것이다.

내가 페미니스트냐 아니냐를 떠나서, 나도 기존의 이야기나 영화가 거북하고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왜 이야기들은 하나 같이, 잘 생기고 예쁜 사람은 끝까지 살아남고, 못 생기고 약한 것들은 일찍 죽어나가는가. 또는 잘 생기거나 똑똑한 사람 또는 부자는 면죄부를 받아 그들만의 우생학적으로 강자를 만들고 그들만의 제국을 만들기를 바라는가? 이런 건 이야기의 형평성을 고려할 때 얼마나 비평등적이고 속된 것인가. 그럼에도 그런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윤색되어져서 인간의 기억의 칩에 저장되길 서슴치 않는다. 만일 원작자(또는 제작자)가 상업적인 목적에서 이런 죄를 범하길 서슴치 않았다면 반성해야 한다.      

인류가 발전하려면 反을 잘할 줄 알아야 한다. 오래 전 영화관에서 <슈렉>을 보고 나온 그 감동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 이야기가 어떤 내용인지는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이 책도 그렇고, <슈렉>을 비롯한 같은 성질의 것들을 추구하는 일련의 작품들을 떠올린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답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마음씨 착하고 예쁜 공주는 멋진 왕자님을 만나 왕궁에서 행복하게 잘 살았데요."로 끝맺는 이야기를 읽고 자란 왕자와 공주들이 오늘 날 심각한 병이 들어 헤어나올 생각을 못하고 있고, 온갖 신드룸이란 신드룸은 그 옛날 우리가 재미있게 읽었던 이야기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모두 19세기 이전의 이야기들인데 그 망령은 끊이지 않고 21세기에도 떠돌고 있다. 우린 그저 재미있게 읽었을 뿐인데.

이야기가 우리의 무의식에 미치는 영향은 가히 엄청난 것이다. 그게 뭐 별건가 싶기도 하겠지만, 그것은 하나의 신화가 되기도 한다. 그 신화가 인간의 무의식을 일깨우기도 하고 인간의 재해석에 불을 지피기도 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끊임없이 자기 변신을 시도해 내성에 인이 박힌 인간을 끊임없이 새롭게 해야한다. 

나는 그같은 작업에 수고를 아끼지 않은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저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화, 민담, 신화들을 수집해 새롭게 재해석하고 다시 썼다. 물론 저자는 페미니스트적 시각에서 글을 썼기 때문에 한정적이란 느낌도 없지는 않지만, 이렇게 다른 각도에서 다르게 풀어내는 작가의 역량은 높이 살만 하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도 어색하지가 않다.

단,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것은 나의 게으름이라고 해야 하는건지 아니면 작가의 작업적 과잉이라고 해야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모르는 이야기들이 2권에 주로 많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원작과 작가의 작품이 얼마나 다르게 표현되어 있는지 몰라서 그 흐름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작가가 이야기 시작 전에 해설을 따로 해 놓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왠지 충분해 보이지가 않았다. 내가 그닥 동화를 접해보지 않아서일까? 그래도 전반적으로 꽤 괜찮은 독서체험인 것마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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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6-08-24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흑설공주> 2권도 나왔어요? 몰랐네요.
맞아요. text를 모르면 패러디가 재미없죠. 그래서...2권은 안 읽을래요.ㅎㅎㅎ

stella.K 2006-08-24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생각하셨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