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시대 - 출판인 한기호의 열정 인생
한기호 지음 / 교양인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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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 남자 팔자 한번 되게 부럽네!

이 책 어디엔가 보면 저자 자신의 사주 이야기가 나온다. 글을 아주 많이 써야할 팔자고, 남 돈 벌어다 주는데는 운이 있는데, 자신을 위해 돈을 벌려고 하면 안 벌린다나 뭐라나. 그런데 솔직히 이거 내가 갖고 싶은 팔자다. 흔히 팔자 좋다는 말이, 돈 많이 벌어 편하게 떵떵거리며 살면 장땡인줄 알지만 그것만이 좋은 팔자겠는가? 내가 원하는 일을하고, 나 보다는 남을 성공시키는 운명이라면 평생 직장에서 짤릴 걱정 안해도 되고 어딜가든 환영 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가끔 자기 사업 또는 자기 일을 갖지 못해 안달 난 사람도 있지만, 좋기로는 이런 한기호 같은 사람이다. 게다가 이 남자 처복도 있다. 자기 같은 월급쟁이가 어떻게 내집을 꿈이나 꾸겠냐, 다 아내가 알뜰살뜰 살림해 준 덕분에 내집도 갖게 됐다고 자랑이다. 거기까지면 또 말도 안한다. 토끼 같은 딸래미 둘이 영특하기가 이를 때 없다고 칭찬이다. 이 사람 팔불출 아냐?

애틋했던 80년 대.

저자가 58년 생이니 개띠일테고, 80년 초에 대학을 다녔을 것이다. 다 알겠지만 80년 대 가방끈 긴 사람들 시국사범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대열에 저자도 있었다. 나 개인적으로 나의 삶을 돌아 보건데, 나는 한번도 데모에 가담해 본적이 없다. 최루탄 가스 피하느라 코 막고 거리를 뛰어다닌 적은 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난 왜 그리 인생을 소극적으로 살았는지 모르겠다. 대학 때 잠시 알았던 친구 하나 역시도 한때 잠시운동에 가담했다고 하는데, 세월이 흐르고 보니 짜식이 영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우리 부모님이 내가 운동 한다고 하면 가만두지 않으셨을 거다. 그래도 80년 대, 그 시절은 암울했고, 치열했으며, 낭만이 있었고, 애틋했다. 그런데 지금은 조국에 대해 그런 것이 느껴지질 않으니, 내가 무뎌진 걸까? 아니면 시대가 그런 걸까? 아참, 그래도 하나 있다. 작년 월드컵 때 우리나라 응원석에서 집채만한 태극기 올라갔을 때 말이다. 그때 도대체 조국이 뭐길래 이토록...! 하며 가슴이 벅찼다. 비록 기대 이하의 저조한 성적이었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나도 80년 대를 사랑한다. 저자만큼은 아닐지라도.   

베스트셀러는 한때 베스트셀러인가?

이 책의 저자 한기호는 출판에 마케팅의 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온 책이, <소설 동의보감>, <창비 시선집>,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등등. 그 시절, 우리가 신문 책광고란만 들쳐도 눈에 훤히 띄는 것 거의 대부분이 그에 의에 나온 책들이었다. 근데 저자가 입에 올렸던 책들 중에 나는 <소설 동의보감>외엔 뾰족하게 읽어낸 책이 없다. 에고, 어쩌자고 난 그렇게 책을 안 읽었을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다. 그래도 <소설 동의보감> 은 진짜 재밌게 읽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한기호의 열정시대 때 그에 의해 나온 책들을 지금 읽으라고 그러면 안 읽을 것 같다. 물론 못 읽을 것도 없는데 마음이 가질 않는다. 정말 베스트셀러는 한때 베스트셀러인가 보다. 그렇다면 우린 지금 대한출판협회 같은데서 집계한 우리나라 베스트셀러 목록을 알고 있는가? 알고 있다면 그 책들 중 몇권이나 완독했지? 아님 몇권이나 완독할 것인가? 그런데 난 극히 몇권을 제외하고, 아직 그것들을 완독할 계획이 현재없다. 그렇다고 아쉬워 하진 않는다.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오늘 읽는 나의 책이 앞으로 베스트셀러 목록에 끼게 될런지. 그러니 베스트셀러 읽어내지 못했다고 너무 자책하진 말자.

백세주 좀 사 줘요!

아주 오래 전, 김정환 시인이 하는 문학학교를 다닌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임헌영 선생님과 심산 선생님께 창작을 배웠는데 그게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물론 그땐 선생과 제자 자격이었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는 저자와 독자의 만남일수도 있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야 창작을 배우겠다는 사람은 늘 있어 왔으니까 상관없을지 모르나,  나는 일개 학생이요 독자의 입장에서 사석에서 듣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술 없이 그분들의 입에서 맹숭맹숭 그냥 나올리 없다. 그때 나도 그나마 없는 주량 억지로 늘려놓긴 했다만, 그래도 못 마시는 거 티 안 낼려고 지금까지도 걸핏하면 아무한테나 개기듯, "백세주 좀 사 줘요!"하고 꼬리치고 다닌다. 왜냐구? 그나마 내가 유일하게 좀 마실 줄 아는 게 백세주거든.  솔직히 난 술 먹는 사람 안 좋아한다. 술 안 마시는 사람들은, 주당들이 취중에 하는 말 그거 믿어도 되는 말이냐?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나 하는 걸까? 그런 생각들 때 많다.  하지만 이 책 보면 한기호는 자신을 상당한 주당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을 때야 비로소 문인들 중에 왜 그처럼 주당들이 많은지 새삼 알 것 같다. 그것이 사람 사귀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문학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꼭 술이 있어야 들을 수 있는 거라면 나도 이제부터 주량 좀 키워야 하지 않을까? 호연지기를 배우는 마음으로 말이다. 

최영미의 <서른 살, 잔치는 끝났다>가 원래 제목이 그것이 아니었다며?      

책은 저자에서 시작해서 독자로 마치는 물건이다. 그런데 나는 몰랐다. 내가 <소설 동의보감>을 읽었을 때 그것이 베스트셀러가 되기까지 한기호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걸. 난 그냥 좋은 책은 독자가 알아보고 그것이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 회자가 되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책제목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서 책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납득이 간다. 나도 그 허접한 글에 제목 뽑아 내느라고 고민하는 경우가 많은데,  책제목 다는데야 오죽 고민과 갈등이 많겠는가? 그래서 말인데, 최영미의 <서른 살, 잔치는 끝났다>가 원래 제목이 그것이 아니었다며?

그렇다면 일주일이면 수백 권의 책이 나온다고 한다. 그중 내용은 좋은데 제목 하나 잘못 달아서 재대로 피워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책은 또 얼마나 될까? 그런 책 있으면 독자들이 살려내면 안 될까? 지금도 가끔 영화는 너무 좋은데 홍보가 안되서 간판 내린 영화들 관객들의 노력으로 다시 상영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 얘기들으면 기분이 좋다. 비록 영화 관계자는 아니지만 사장되어 묻혀버릴 수도 있는 것이 햇빛을 본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닌가. 그래서 말인데, 우리나라엔 정말 좋은 책인데 절판된 경우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수효가 없으면 사장되는 거야 당연한 거라고는 하지만,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쓰나? 나도 정말 좋은 책인데 절판된 책을 알고 있다. 그리고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책 한 두권쯤 알고 있을 것이다. "이거 출판 해줘요!" 1인 시위라도 하면 어느 출판사가 좀 해 주려나? 요즘엔 출판이 너무 쉬워져 오죽하면, 개나 소나 책 낸다고 할까? 막상 해 보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알지만, 어쨌거나 그런 세상에서 절판된 책이 있다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고, 독자들의 노력으로 작은 불씨 하나 살려내는 뭐 이런 가상한 사례가 좀 나왔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책에도 잠시 다뤘지만, 우리나라는 책을 안 읽는다고들 한다.  과연 그게 정말 그럴까? 외국에선 저자가 몇백 또는 몇천 부만 팔려도 대박 났다고 좋아라 한단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몇십만 부 혹은 그 이상 팔려야 대박났다고 하지, 1만 부만 팔려도 성공했다고 보질 않는다. 그건 왜 그럴까? 내가 모르는 뭔가의 출판구조가 있는 걸까? 어디 출판만 그러겠는가? 영화도 보면, 몇만은 고사하고 몇십 만 관객 가지고는 아예 숫자에 넣지도 않는다. 세자리 수는  되야 매스컴에서 조금 띄워준다. 그러니까 이런 숫자 놀음에 거품이 많은 거 아닌가? 오늘 신문에도 "책값"에 대해 다룬 쪽지 기사를 보았다. 책 값이 그렇게 싼데 안 사 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더구나 끼워팔기까지 한다지 않는가? 그래서 실제로 판매 순위 1위에 올랐다. 그것이 책 자체가 좋아서인지 끼워서 싸게 팔아서 그런 건지 나중에 따져 볼 일이지만, 어쨌든 이러저러한 것을 볼 때 우리나라 사람들 책 안 읽는다는 거 거짓말 아닌가 그런 의혹도 든다. 하지만 심리적인 것도 있는 것 같다. 하도 안 된다, 안된다 하니 정말 다 안 되는  그런 패배주의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는 좋은 것도 1위고, 나쁜 것도 1위라지 않는가? 그렇다면 책을 뽑아내는 기술도 탑클래스일 것도 같은데 책이 안된다고 하는 건  뭐란 말인가?  

 정열의 사람 한기호.

예전에 신문에 이 사람이 쓴 일종의 책의 이면에 관한 글을 연재한 것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읽으면서 내가 모르는 책에 대해 신기해 한 적도 많았다. 기왕 책을 만드는 것 같으면 작가나 출판사 편집인 아니 차리리 사장님이 되실 일이지 웬 마케팅인가? 누가 알아 준다고. 솔직히 책이 잘 팔리면 일반독자의 입장에서 그책의 저자만 기억하지 시시콜콜하게 그 사이의 사람을 기억하는가? 그래도 그렇게 보이지 않게 일하는 사람이 있어서 세상은 좋고 신비스러운 것이 아닐까? 그래도 이 사람 출판사 사장님만 안했지, 해 볼 건 다해 본 사람이다. 그런 그의 정열이 가히 부러웠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거의 대부분은 자기 분야에서 아직 실력발휘를 재대로 안 한 거지, 못한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우리 옛 가요, "감격시대"만큼이나 경쾌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자서전이나 회고록이 그렇듯, 저자의 인간적인 내면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읽는 거지만, 저자와 교분을 가졌던 당대 지식인들의 이야기도 간간히 읽을 수가 있어서 흥미로웠다. 하지만 저자는 막상 이 책을 쓰면서 많이 울었다고 한다. 특히 죽은 친구 생각이 많이나서 울었다고 썼다. 왜 안 그렇겠는가? 자신의 지난 세월을 더듬어 울지 않을 사람이 어딨겠는가? 열심히 살아 온 사람은 더 하겠지. 그래서 그런 사람은 박수 받기에 충분하다.

인생 뭐 별거 있나? 짧고 굵게 살면 좋은 거지. 길고 굵게 사는 것도 나쁘진 않을거다. 그런데 나는 점점 가늘고 오래 살 궁리만 한다.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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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insusun 2007-03-06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님, 이 책 읽고 무지 "필" 받으셨나 보다....그죠?^^
stella님 글에서도 "열정"이 느껴지네요.
오늘 아침 이상하게 쳐졌었는데 stella님 서재에서 에너지를 얻고 갑니당.^^

stella.K 2007-03-06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수선님! 수선님 밖에 없어요! 넘 고마워요. 정말 열심히 썼는데 아무도 댓글 남겨주는 분이 없어서 내심 기운이 빠졌었어요. 저는 수선님 땜에 에너지를 얻어요.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산티아고 가는 길 에세이 작가총서 96
정민호 지음 / 에세이퍼블리싱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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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정민호 씨가 그런 말을 했다. "책을 읽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이 책은 일종의 여행기이다. 그것도 왕초보 여행자를 위한 여행기. 부제에도 달려있지 않은가? '보디랭귀지만 믿고 떠난 고행 800km'라고. 그런데 이 책을 선물로 받아 들고나서, 문득 내가 과연 이런 여행기를 한번이라도 제대로 읽은 적이 있는가  묻게 되었다. 대답은 "아니"다. 왜냐구? 평소 여행을 거의 안하는 내가 그런 여행기를 읽으면 이건 확실히 염장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종의 편견 같은 것이 있다. 이를테면 가끔 TV를 통해 여행 다큐멘터리를 보면 자꾸 답답해 지는 것이 느껴졌다. 분명 저 카메라 바깥에 더 넓은 세상이 존재할텐데 나는 이렇게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보여 주는 것만 볼 수 있구나, 회의가 드는 것이다. 내가 저길 가 보지 않고 이렇게 앉아서 저 세상이 넓으면 얼마나 넓은지, 좋으면 얼마나 좋은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래서 일부러 보질 않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일본소설은 일본스러워서 싫고, 추리소설은 살인이 나오고, 인간의 이상심리가 묘사가 되서 싫다. 이렇게 이 책은 이래서 싫고, 저책은 저래서 싫으면 내가  정말 책을 좋아하긴 하 것인가?

정민호 씨가 알라딘에서 한창 <정군>으로 서평활동을 하고 있었던 작년 가을무렵, 갑자기 스페인 여행을 하고 오겠다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는 훌쩍 떠나고 말았다. 아, 이런, 여행이라니... 그리고 금세 내 속의 나와 마주친 것이 있으니 그것의 이름은 질투! 였다.  쳇~! 누가 질투의 화신이 아니랄까봐... 그래. 돈 좀 있나 보지? 영어나 스페인 좀 되나 보지? 누구는 떠나는데 너는 뭐니? 그래도 내가 누군가? 떠나는 사람에게 그래도 작별인사는 해야 예의 아냐? "잘 갔다와요! 정군님!" 모르긴 해도 우아하게 이런 인사 남겼을 거다. 그리고 10월. 아직도 더위가 가시지 않는 이상 기온 속에 나는 그의 여행기록을 야금야금 읽었다. 그런데 읽다 포기했다. 그건 앞에서 밝힌 여행기에 대한 편견 때문마는 아니었다. 눈이 아파 읽을 수가 없는 거다. 확실히 웹상에서 글을 읽는다든지 쓰는 건 눈에 좋지 않은 것 같다. 그때 생각하면 정군님한테 좀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책으로 나왔으니 좋긴 좋다. 정군님께 덜 미안하다고 해야할까? 확실히 전자책이 나오더라도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확실히 아는 사람의 글이나 책을 읽는 건 남다르다. 여행서에 관한 나의 안 좋은 편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정말 재밌게 술술 잘 읽힌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 웃음보가 터져 "까르르" 웃었던 때가 얼마나 많은지? 그런데 이거 너무 웃는 거 아냐? 내가 정군님을 몰랐다면 이렇게까지 웃음이 나올까?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그런데 놀라운 건 읽으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머리 아플 때는 여행서를 읽으라고 했는데 그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유익했던 건, 정군님이 여행고수 였다면 나는 아마도 꽤나 부러워하고, 역시 고수라 뭐가 달라도 다르군. 하며 그냥 읽고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해외여행 초짜였고 읽으면서도 "어, 정말?" 하게 만드는 게 있었다. 그것은 크게 두가지 였는데, 하나는 언어가 되지 않아도 통하는 게 있었다는 것. 이를테면 보디랭귀지 + 국적불명의 언어를 사용해도 궁하면 통한다고 상대가 알아 듣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린 영어를 잘하든 못하든 지간에 떠나 보기도 전에 "언어"란 부분에서 막혀 망설이는 것일까? 또 하나, 여자가 혼자 여행을 하기엔 불리하다라는 선입견이 있는데 이 책에선 그것을 불식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 정말?"이란 말이 나올 수 밖에. 정군님은 말한다. 산티아고에서의 여행은 안전하다고.

이 책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정군님이,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을 '여행자' 또는 '여행객'으로 부르지 않고, "순례자"로 통칭했다는 것이다. 나는 처음에 정군님이 그냥 아무 생각없이 그게 좋아서 썼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읽으면서 "순례자"가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이란 그저 좋은 경치나 보고, 맛있는 것이나 먹는 것이 여행이 아니다. 그런데 우린 그렇게 생각한다. 한국 사람이 여행을 간다면 "보신 여행" 간다고 하지 않는가? 몸에 좋은 거라면 나라 밖 여행도마다치 않는 근성이란. 그리고 어디를 가든지 콘도나 펜션이 그곳에 있느냐를 따진다. 하지만 여행의 백미는 역시 배낭여행인 듯 싶다. 모든 것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자연을 느끼고 나와 다른 인간들에서 하나됨을 느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누구인가를 재인식하고. 그렇다면 그건 정말 단순한 여행자가 아닌 "순례자"가 맞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후 얼마 안 있다 그의 취직소식을 들었다. 평소 원하던 직장을 들어간 것이다. 귀한 여행 후 원하던 일을 한다.  확실히 근사한 그림이다. 그는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는 사람 같았다. 행복도 행운도 준비하는 사람에게 온다고 하지 않는가? 이 책 어디에선가 정군님은 자신에 대해서 말하길, 그 여행 후 허둥대는 것이 없어졌고 무엇을 하든지 즐겁고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여행은 바로 사람에게 이런 것을 선물하는가 보다. 나도 떠나고 싶어졌다. 어떻게 떠날까? 나는 언듯 드는 생각이, 사이판에 친구 하나 있는데  이 친구에게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번 안 오겠냐고 묻는 친구다. "어, 갈게. 무슨 날 비행기 뜬다! 기다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건 여행이 아니구나 싶었다. 떠나면 있을 생각부터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여행에서 돌아 온 그 안온함이 느끼고 싶었다. 아무리 여행을 안 간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과거에 몇 번 안되는 여행을 했었다. 그때마다 난 무사히 도착해서 늘어지게 자는 잠을 얼마나 좋아했던지.그런데 이것도 순례자가 되기엔 결격사유가 있어 보인다. 정군님은 맨마지막 부분에서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다란 말고 끝맺지 않고 있었다. 그의 글의 맺은 여행의 현재진행형이었던 것이다. 그의 그런 맺음이 좋다!  별 다섯개가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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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31 18: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1-31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7-02-01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무슨 말씀이시온지...??

2007-02-02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2-02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7-02-02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런데 그게 뭐 문제가 되나요? 이런 건 할 수도 있는건데...나나 님 같아도 하지 않겠어요? 떡돌이도 하는데...그럴수록 더 떠들어 줘야한다고 생각해요. 보란 듯이 말입니다. 안 그런가요?^^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 여자, 돈, 행복의 삼각관계
리즈 펄 지음, 부희령 옮김 / 여름언덕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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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솔직히 말하면,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은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패러디 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가 얼마나 좋은 작품인데 이것을 거기에 비하랴?  그리고 톨스토이는 인간의 가치를 그 책에서 설파했다. 그런데 이 책은 여자의 존재를 돈에 국한시켜 바라봤다는 것인데 거기에 굳이 이만한 제목이 필요했을까? 어설픈 제목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자는 무엇으로 사냐니...(심하게 말해서) 사육에 필요한 그 무엇을 연상시킨다.  차라리 그냥 직역했더라도 낫지 않았을까? 하기야 이만한 제목을 가져야 사람들이 좀 보지 않을까란 마케팅 전략이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요즘엔 웬만한 제목 가지고는 꿈쩍도 않하니까. 그래도 전략이 너무 드러나 보인다. 그리고 또 하나 무시할 수 없는 사실 한가지. 나 역시 돈으로부터 자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또 한번 차갑게 마주했다는 것.

이 책은 여자가 돈이나 경제에 관해 얼마나 취약한 존재냐라는 것을 동어반복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끝에가서 돈이 인간의 행복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라고 맺고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이 정말 말하고자 했던 건 뭐였을까? 좀 더 총체적인 고찰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정말 돈이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돈 없이는 살 수 없다. 우린 이것에 너무 많이 갈등하고, 상처 받아왔으며, 시달림을 받았다. 도대체 그 놈의 돈이 뭐길래...솔직히 경제 관념이 여자가 남자 보다 떨어진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아직도 우리나라 여자들 중엔 계는 알아도 펀드는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 하니까. 경제관념이 없는 것엔 아마도 여자와 남자의 성역할이 오래전부터 굳어져 온 관습 때문인지도 모른다. 남자는 수렵생활을 해 왔고, 여자는 집안을 돌봐야 했던 그렇고 그런 것 말이다. 하지만 오늘 날엔 이 성역할을 특별히 규정짓지 않으려 한다. 여자도 바깥에 나가 돈을 벌 수 있으며, 남자도 가사 일을 전담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여자들도 경제관념이 생겨지기 시작했다. 돈을 버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 이혼도 당당하게 요구할 수도 있게 되었다. 서로 마음에 안 드는 상대랑 한 지붕에서 사는 것도 고역이겠지만, 이혼 하는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이 책엔 다소의 헛점도 있어 보인다. 이 책이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은 저자가 이혼을 서두로 꺼냈는데, 왜 이혼하게 되었는지를 의도적으로 배제 하면서 이혼이 결정되자 그때부터 자신이 얼마나 돈에 대해 개념없이 살아왔는가를 자각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난 오히려 저자가 왜 이혼을 했을까가 궁금했다. 그리고 이혼했을 때 경제적인 측면을 어떻게 현실적으로 따져 나갔다는 말은 언급되어 있지 않고 그냥 여자와 돈에 대해서만 서술해 갔다. 그점을 고려했더라면 이 책은 미덥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돈이란 건 인간의 삶 전반에 미치는 것인데, 왜 결혼 하면서 이 사람과 결혼하면 경제적으로 어떻게 될까를 고려하면서, 이혼하면 어떻게 될까를 고려하면 안되는 것인가. 물론 그렇다고 돈 때문에 이혼을 못하는 것도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결혼은 신중하게 하되 이혼 역시 신중해야 한다는 점에선 중요한 것이고, 전통적으로 이 부분이 잘 다뤄지지 않는 것만큼 이 책 또한 그것을 벗어나고 있지 않아 아쉽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여자도 돈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것일까? 회의가 들었다. 물론 모르면 안 되겠지. 그러나 모르는 사람에 대해 좌시하거나 동물 보듯하지는 말아 줬으면 한다. 솔직히 나도 펀드란 말을 들은지는 불과 얼마되지 않는다. 그러자 그것을 가르쳐 주었던 후배는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냐고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보는 바람에 좀 무안해 졌다. 자본주의 사회인만큼 그 패러다임으로 보면 난 정말 영 이상한 사람인게지. 하지만 인간을 돈으로만은 규정할 수 없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하지 않는가. 그 친구는 펀드는 잘 알런지 모르겠지만 다른 것은 잘 모를 수 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모르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좀 이렇게 넓게 보면 안되는 걸까?

여자의 가사노동을 돈으로 환산할 때 93만 원이라는 말을 몇 년 전에 들었다. 그것을 어디가서 보상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결국 같이 사는 사람이 인정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같이 사는 사람이 그 여자에게 어디 나가서 돈도 못 번다고 타박하면, 타박하는 그 사람도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 뜨리는 행위라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그 사람은 단순히 여자가 돈을 못 번다는 것 하나만을 보겠지만, 여자는 돈 못 버는 것 자체가 불만스러운 것이 아니다. 돈을 벌겠다고 하면 아마도 남자 보다 더 잘 벌 것이다. 그러면 남자들은 그런 여자에게 독종이라고 하며 자신의 열등감을 그런 식으로 분풀이 하겠지. 여자의 불만은 하나다. 인정 받지 못할 때 화가 나는 법이다. 남자가 잘 할 수 있는 것과 여자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융합해서 서로 상부상조하고 평화공존 하고 싶다는데 그런 식으로 한가지만 보고 무시하면 화나지.

여자는 모성본능이란 게 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여자는 무엇으로 사냐구?" 묻는다면 그건 필시 돈으로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의 노동으로 가정이 화목하고 건강하다면 그것으로 사는 거 아닌가? 결국 사랑으로 사는 것이겠지. 그러므로 남자들 여자 고를 때 그녀가 현재 돈을 잘 버느냐 못 버느냐 가지고 내조의 잣대를 들이대지 말며, 여자가 피치못할 사정에 의해서 이혼했을 경우 그 여자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때까지 국가는 이혼수당을 지급해야 할 것이다. 여자의 인정 받지 못한 가사노동 93만 원을 위하여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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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4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07-01-15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문제죠. 이혼의 경제학 같은 거 쓰는 사람 없나요? 가급적 돈 때문에 이혼하진 말자. 뭐 그런 내용의...
아, 저도 늦었네요.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07-01-15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남자아이 여자아이 - 유치원생에서 고등학생까지
레너드 삭스 지음, 이소영 옮김 / 아침이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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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교육서를 읽었다. 저자의 교육심리학적인 접근이 흥미롭고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밑줄을 쫙쫙 쳐 가면서 읽었다.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는 것을 누가 모르는가? 새삼스럽다 싶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개념 정리가 안 되있고 그저 막연하고 뭉뚱그려서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책 한번 읽어주면 아, 맞아. 그렇지! 하며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랄까?

90년대를 지나는 동안 한때 주일학교 교사로 고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친 것이 있었는데 그 이후 아이들을 더 이상 상대해 본적이 없는 나에게 새삼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난 90년 대 독서계를 풍미했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나온 이후 남자와 여자가 어떻게 다른가에 관심이 많았다. 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결혼과 연애의 관점에서 남녀가 어떻게 다른가를 고찰했다면, 같은 주제이되 이 책은 그것을 교육적 관점에서 다뤘다는 것에 관심이 갔다. 이 책의 전제는 남자와 여자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그 차이점을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교육의 길을 모색해 보자는 취지가 담겨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간단치 않았던 사춘기 시절의 학교생활을 떠올렸고, 그다지 학교를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 스스로를 아웃 사이더로 규정하고 다녔던 내 지난 날이 새삼 쑥스러워 졌다. 그때 학교가 나를 조금만 보듬어 줬더라면, 지나치리만치 주눅들어 나 자신을 과소평과하며 학교를 다닐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학교는 이러이러한 구조와 울타리를 쳐놓고 이것에서 조금만 빗겨서 있거나 떨어져 있으면 열등생이라고 규정짓기를 좋아한다. 그것이 학생에겐 얼마만한 스트레스가 될 것인지에 관해서는 학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뇌의 구조가 다르고, 사고체계가 다르고, 행동반경이 다른데 어떻게 그것을 똑같은 잣대로 학생들을 보고 다룰 것인가? 같은 학생이라도 남자 선생이 바라보는 것이 다르고, 여자 선생님이 바라보는 것이 다른데 학생을 대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나마 문제는 학교에서 남선생의 비율보다 여선생의 비율이 훨씬 높다는 것도 교육이 개선해야할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 책은 남자는 남자답게 가르치고, 여자는 여자답게 가르치라는 것인데 이러면 페미니스트들의 반감을 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반페미니즘을 말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것에 맞는 교육을 시키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은 어떠한가? 지난 2,30년전만해도 남학교와 여학교의 구분은 확실했다. 하지만 오늘날 남녀공학을 실시하는 학교가 그렇치 않은 학교에 비해 높아지고 있다. 그것의 취지는 남녀가 함께 경쟁하며 조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을 교육시키자는 것이었는데, 결과는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물론 그 장점이 없진 않겠지만, 저자가 여러 많은 학자와 조사해 본 결과 성정체성 때문에 고민하는 학생의 수가 점점 어려져 가고 있고, 너무나 쉽게 어린 나이에 성경험을 하고 혼란스러워 한다는 것이다.

부모의 자녀 양육태도도 저자는 문제 삼는다. 부모가 자녀의 행동을 제제하지 못하고 권위가 없어진 관계로 아이들은 점점 부모를 대하는 태도가 갈수록 버릇이 없어짐은 물론, 비만의 속도와 우울증약을 먹는 아이가 갈수록 늘어 났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는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일까? 나의 변변치 않은 주일학교 교사생활이 떠올랐다. 선생이 워낙에 출중(?)해서인지, 아님 시원치 않아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만났던 아이들은 대체로 좋은 아이들이 많았다. 그런데 아이들과 함깨 하다보면 뜻이 안 맞는 경우도 아주 가끔은 발생 하는데 그때 한 아이가 나에게, "선생님은 너무 권위적이세요."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 학생은 그것이 아주 안 좋은 뜻으로 사용했겠지만, 나는 이 말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 날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쓰는 언어는 아주 많이 신사적이고 부드러워졌다. 그것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이 달달하고 부드러운 것 때문에 얼마나 아이들을 잘못된 관념을 갖게 만들었는가를 나는 알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엄해서도 안될 것이다. 적어도 우리의 아이들이 선생님은 친구라고 생각하고, 우리의 부모들을 친구라고 생각하는 그 잘못된 망상을 갖게 했다면 그것은 아이들 자신의 문제라기 보단 그런 착각을 심어준 그 사람의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교사는 교사이고, 부모는 부모이다. 오늘 날 잘못된 '평등'이란 개념하에 우리의 지난 가치들이 얼마나 많이 무너지고 있는지 객관적인 눈을 가져야 한다.

책은 연구서로나 대중서로서 결코 손색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보수적인 성향이 다분하다. 우린 지난 세기동안 구세대적 교육가치를 폄하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 날 그것이 과연 나쁘기만 했는가에 대한 반성과 자성의 움직임이 또한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교육개혁을 부르짖었지만 실패만을 거듭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책이 미국 사람에 의해 씌여진만큼 미국의 교육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인데, 오늘 날 글로벌리즘을 감안할 때 이 책이 꼭 미국의 현실만을 보여준 것은 아니고 우리나라도 무서운 속도로 그것을 따라잡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의 여지는 충분해 보인다.

나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은, 이렇게 남녀의 성차를 인정하고 그것에 맞는 교육을 해야한다면, 21세기 여성화된 리더십이란 것도 재고의 여지는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남성적 리더십과 여성적 리더십은 함께 공존해야 할 것이지 어떤 리더십이 어떤 리더십 보다 더 우위를 점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너무 편향적이고 지나친 이분법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또한 요즘들어 독신의 인구가 많아지고, 결혼을 하더라도 아기는 안 갖겠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 또한 시급히 시정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기만을 아는 사람이 이 사회를 점령하게 된다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자기분열을 초래할 것이다. 더불어 같이 희생하며 사는 것은 결코 혼자 방안에서 깨달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말이 있다. 아이를 많이 나아 본 사람은 정신병에 걸릴 확률이 거의 없다고 한다. 끊임없이 돌봐야하고 희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를 돌보지 못한 사람은 자기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정신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한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할 수만 있으면 성차를 인정한 연애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성차를 알고 교육을 하는 훌륭한 교사와 부모가 많이 나와야 할 것 같다. 그저 무장적 대학만 보내 놓으면 자기 할 일 다했다고 생각하는 교사와 부모에게 이 책이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고의 전환의 기폭제가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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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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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패자를 기억하지 않는다. 오직 승자만을 기억할 뿐이다." 뭐 나름대로 멋있는 말 한마디 구사하려다 보니 툭 튀어 나온 게 이 말이고, 그 때문에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이라면 역사는 얼마나 슬픈 것이 될 것인가? 그것은 솔직히 정치사나 리더십의 역사에서나 먹힐만한 얘기고, 역사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지 못한 무지의 소치가 아닐까?

역사는 다양하다. 정치사만 있는 것이 아니고, 경제사도 있고, 미시사나 일상사도 있다. 요즘엔 그나마 역사의 다양한 면모를 과시하는 책들이 쏟아져나와, 꼭 역사학도가 아니더라도 일반독자들에게도 흥미를 가질 법해 반갑고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솔직히 역사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더랬다. 주로 80년대 저 박제된 시절에 학교를 다니다 보니 역사는 암기과목이라고만 생각해 시험 때면 줄창 외우기에만 급급했지, 역사적 사건을 봐도 이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못했다. TV 역사 드라마를 봐도 신봉승의 '조선왕조 500년'의 아류작들만 쏟아져 나오고 그것은 조선 정치사에만 국한되어 있으며 뭔가 이데올로기적 틀속에 갖혀있어 여러 많은 극적 구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보질 않았다.  

그래도 시대가 좋아지긴 했다. 예전 같으면 조선시대만을 다뤘을 역사 드라마가 지금은 고려나 고구려 더 나아가 발해의 역사도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예전 같으면, 소론과 노론, 동인과 서인 패로 나뉘어져서 싸움박질 하는 것만 보여주면 채널을 돌리곤 했는데 이젠 제법 긴박성을 가지고 보게 만든다. 그러니 한마디로 내가 역사에 흥미를 갖게 만드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건 확실히 TV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TV라고 한계성을 드러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역사 드라마는 주인공만을 부각시켜 보여주지마는 않는다. 그 인물이 살았을 사화적 배경에 촛점을 맞추지 않으면 안 되는데, 영상물이다 보니 당대 현실적 복원보단 미적 감각에 더 많은 무게를 둘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주인공이 입은 의상이나 소품 하나, 장소 하나는 화려하고 그럴 듯하기만 하다. 그러다 보니 정말 저게 원래 저 모양이었을까? 나는 우리 조상들의 일상을 자꾸만 알고 싶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의 저자는 조선시대 주막은 후기 때 상거래가 발달이 되면서 생겨난 것이 아닌가 추론하고 있다. 그러니 드라마에서 아무 때나 아무 시대나 주막이 보여지는 것은 좀 무리한 시도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얼마 전 방영했던 드라마 <신돈>에서 보여졌던 주막과 술집과 작부들은 상당히 고급한 형태로 설정되어 있는 듯 하다. 또한 빠지지 않고 나오는 기방에 차려져 나오는 온갖 산해진미들은 너무 화려하다. 조선시대는 그렇게 못 먹고 못 살아서 죽어 나가는 양민들이 그렇게 많았다고 하는데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누구라도 기생이 되어서 화려하게 차려입고 배풀리 먹고 거드름이나 피우지 뭐 때문에 저렇게 굶어 죽어 가겠는가? 그렇게도 그 시대는 정조가 그리도 중요하였더란 말이냐? 그리고 기방에 차려 나오는 떡벌어진 술상은 결코 다 먹는 법이 없다. 주연급 배우들이 그 앞에서 주저리 주저리 몇마디 대사을 읊어주고 그 술상을 뒤로하고 나온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렇게 먹을 것이 귀했다던 그 시절에? 이런 모든 것들이 당대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 보다 시대의 일상사가 궁금해진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고...        

이런 궁금증을 채워주는 게 또한 요즘 역사학자들의 소임이라면 소임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당위성엔 과거를 되새기며 보다 나은 미래를 이루어 보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다고 한다. 그래서 그럴까? 조선시대 과거제도를 통해 입신양명을 이루어 보고자 하는거나, 오늘 날 판검사되 보겠다고 고시촌에 사람이 넘쳐나는거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컨닝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닌데, 그 옛날 조선시대 때 거벽이라고 하는 컨닝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하니, 이렇게 역사는 아무리 돌고 도는 거라고는 하나, 과거와 현재의 닮은 꼴을 찾는 거라면 재미없는 것이 될 것이다. 단지 이 책에서 흥미로운 건 그 시대의 풍습이고 생활 모습이다. "어머나, 그 시대에 그런 일이 있었단 말야!" 그러면서 허벅지를 냅다 내려칠 수도 있고, 키득키득 웃어버릴 수도 있는 일이다.

나는 가끔 역사를 생각하면 현대를 사는 모습이 서글프기도 하고 섬짓할 때가 있다. 우리 역사는 5천 년이라고 하는데 현대화는 불과 100년 안팎에 다 이루어졌다. 아니 적어도 100년 전에 서울의 공기는 이렇게 탁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은 공해와 온갖 스트레스와 그것을 이겨 보려고 하는 갖가지 행태들로 넘쳐난다. 여유란 도무지 없어 보인다. 이렇게 역사를 반추해 내면서 오늘의 우리네 삶을 조명하는 것은 의미있어 보인다. 더구나 역사의 큰 소용돌이의 사건이 아닌 소소한 것에서 의미찾기란 제법 쏠쏠하지 않은가? 언젠가 우리네 삶도 역사의 한 귀퉁이로 밀려날텐데 우리 후대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조명해 줄까?

덧붙이자면, 역사적 사료의 인용과 제법 많은 도판의 이용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좀 건조하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읽기엔 그다지 녹녹해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지난 봄에 읽었던 <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 전 한국을 걷다>란 책은 제법 읽는 재미가 쏠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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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6-12-15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조선의 미시사에 관한 것인가요? 저도 영웅이 아닌 일반 평민들의 그 당시 삶이 궁금한데 이 책도 그런 종류인 것 같네요.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도 그런 기획의도가 있었던 것 같은데...암튼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현대문명의 이기들이 5000년, 아니 100년 역사에 비해서도 극히 최근에야 가능해졌다는 것을 평소에는 너무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stella.K 2006-12-16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고 봐야겠죠? 한번 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