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견
손아람 지음 / 들녘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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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법정 드라마나 영화는 심심찮게 보긴 했지만 소설로 읽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물론 난 동명의 작품을 오래전 영화로 봤다. (본 지가 오래돼서 내용이 기억에 거의 없다.) 이번에 소설로 읽으니 작가에게 감탄하며 읽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취재력도 좋고 문장도 좋아서 만족하면서 읽었다. 매 챕터 들어갈 때마다 법에 관련된 명언들 써 놓기도 했는데 역시 돋보였다. 특히 배심원들 앞에서 펼치는 팽팽한 법정 장면은 가히 압권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딱히 2009년에 있었던 용산 참사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 사건을 모티프로 했다. 이 책을 읽으니 그동안 까맣게 잊고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워낙 오래된 일이기도 하지만 이 나라가 어디 그 사건만을 기억해도 좋으리만치 한가하고 좋은 나라던가. 그래도 이만큼 나라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기적이라면 기적이다.

그런데 한편 이 책을 출간 당시에 읽지 않고 지금 읽은 게 오히려 잘 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지금 읽으니 조금은 올드 한 느낌이 없지 않다. 문득 그때 내몰렸던 철거민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철거민들의 농성도 잦아들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들의 주거가 보장되었기 때문에 그런 걸까? 잘 모르겠다. 더 이상 강제로 철거하는 일은 없는지는 몰라도 대신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는 남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을 출간 당시에 읽었다면 이런 감상적인 내용으로 리뷰를 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내가 이 책에서 본 건 법의 진화와 발전? 뭐 그런 것이다. 물론 나는 법에 거의 문외한이다. 작가 역시 법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하지만 법에 관해서 꽤 자세히 색인까지 써 가면서 꼼꼼하게 썼다. 그걸 보면서 작가가 이 작품을 썼을 당시 법이 이 정도였다면 지금은 또 얼마나 많이 바뀌었을까? 궁금하게 만든다.

물론 여전히 우리나라의 법은 가진 자, 범법자를 두둔하는 경향이 강하다. 얼마 전에도 어느 여자의 집을 무단 침입해 성폭행을 하려다 여자는 물론이고 애인까지 크게 다쳐 회생불능의 상태에 빠졌다. 이에 대해 범인에게 징역 50년을 판결해 달라는 원심을 깨고 거의 절반에 가까운 27년을 구형했다는 보도를 들은 적이 있다. 그뿐인가? 2년 전 급발진 사고로 아들을 잃은 젊은 아버지가 급발진 사고를 규명하기 위해 자신의 사비를 털어 넣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외국 같은 경우 급발진 사고가 나면 오히려 회사가 책임 소재를 소명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일명 원식이 법을 발의를 하려고 했지만 공교롭게도 21대 국회가 임기가 끝나 폐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발 국회는 정쟁을 멈추고 민생을 챙겨라!) 다음 회기 때 또 발의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걸 보면 우리나라 법이 어디로 가는지, 아직도 무르다는 비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에도 법은 진화하고 발전한다고 믿는다. 비록 우리가 원하는 속도로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씩 느린 속도로나마 변화하고 발전해 간다는 걸 이 책을 보며 새삼 깨닫게 된다. 아직도 우리나라 법정은 배심원의 의견이 판결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법 감정에는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작품도 화자 겸 주인공이 많은 우여곡절 겪고(원래 주인공은 다 그렇지만) 마지막이 좀 쓸쓸하긴 하지만 그런대로 희망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런 걸 보면 법이 여전히 가진 자의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희망은 포기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는 얻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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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훔친 소설가 - 문학이 공감을 주는 과학적 이유
석영중 지음 / 예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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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책 제목에 '작가' 또는 '소설가'란 단어가 들어가 있으면 덮어놓고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이 책도 앞의 글자 보다 '소설가'란 글자 때문에 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저자의 명성도 한몫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사자마자 읽어야 했는데 머뭇거렸던 건 게을러서가 주된 이유이기도 하지만 저 '뇌를 훔친'이란 글자 때문이기도 하다. 실은 내가 과포자라서. 더구나 뇌과학이다. 무슨 소설을 읽는데 뇌과학이 필요하단 말인가.


석영중 교수에 대해선 명성만 들어오다 작년인가 재작년에 운 좋게 EBS에서 연속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작은 체구에 조근조근 러시아 문학에 대해 들려주는데 참 좋았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알았는데 저자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유명했다. 우리나라의 유수한 출판번역상을 받은 건 차치하고라도 지난 2000년 러시아 정부로부터 푸시킨 메달을 받았다고 한다. 대단하지 않은가.


그런 저자가 이런 시도를 할 땐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나더러 이런 연구를 하라고 한다면 멀리 도망갈 것 같다. 나이 들수록 새로운 것에 대한 관심과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데 난 자꾸만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고만 한다. (얼마 전만 해도 키오스크는 선택이었는데 지금 웬만한 식당이나 카페에선 필수가 되었다. 이제 기계치란 말은 더 이상 통할 수 없게 되었다.ㅠ) 이게 뇌의 측면에서 보면 활동성이 둔화되고 작아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 뇌를 생각하면 싫어도 자꾸 새로운 것에 도전해서 그것을 막아야 한다.


과거에 뇌는 주로 정신과나 신경과에서 다뤘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오늘날은 인지심리학이나 신경생리학 등 광범위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심리학이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나도 한때는 심리학에 미처 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결국 돌아섰던 건 앞서 말한 대로 과학 포기자여서인지도 모른다. (심리학은 문과지만 이과적 학문이기도 하다).


처음엔 인간의 마음이나 정신을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예측한다는 게 신기하고 좋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세분화하고 분석한다는 게 점점 거부감이 느껴졌다. 물론 어떤 이는 인간을 더 깊이 알아가겠지만 나는 좀 그렇지 않았다. 뭐 그런 게 아니더라도 그 알량한 지식 가지고 감히 인간을 분석하려고 하는 게 왠지 주제넘게 느껴졌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은 어땠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신세계를 보는 듯했다. 내가 심리학이란 학문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난 과포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니 적어도 저자가 뇌과학을 통해 문학을 좀 더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해준 건 정말 경의를 표할만하다고 생각했다.


책 초반에 나오는 푸시킨의 <에브게니 오네긴>에 나오는 주인공 오네긴과 그를 사랑한 타티아나의 이야기를 빗대어 저자는 뇌과학의 '거울 뉴런'을 설명한다. 특히 타티아나는 소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신을 소설 속 인물과 동일시했다. 그걸 흔히 아는 말로 모방성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이 바로 거울 뉴런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소설 좀 읽었다고 무슨 거울 뉴런이고 모방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실제로 괴테의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자살이 유행처럼 번졌다고 하지 않는가. 놀라운 건 실연 당한 사람만이 아니라 실연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솔로도 자살을 했다고 하니 책이 주는 위력이 실로 대단하다 싶다. 지금은 책 보다 영상으로 옮겨간듯하지만. 오래전에 '600만 불의 사나이'가 방영됐을 때 높은 곳에서 어린아이들이 떨어져 죽는 일이 있었다. 주인공처럼 자신에게도 초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바람에. 그게 아니더라도 영화를 보고 모방 범죄나 폭력이 늘어났다고 하니 보는 것 거울 뉴런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또한 이 책엔 톨스토이에 대한 일화도 나온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는 상당한 도덕 주의자며 나이 들어서도 열심히 공부한 학구파이기도 하다. 특히 인생 후기엔 종교에 심취해 신앙 서적을 많이 보았고 설교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나중엔 신학에 관한 책도 썼다.) 그 덕분에 그는 80 넘어서까지 비교적 건강하게 장수하며 살았다. 물론 그의 최후는 객사이긴 했지만 그건 가출로 인해 체력이 고갈되었기 때문이지 어떤 질병이 그를 잠식한 건 아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오래 장수하고 싶으면 공부하기를 멈추지 말고, 특히 외국어 공부를 하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정작 이 책에서 인상 깊게 본 건 따로 있다. 그건 프루스트다. 이 책은 주로 러시아 문학을 다루긴 했지만 이 책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안다면 프루스트의 불멸의 저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빠지면 안 될 것이다. (알다시피 프루스트는 프랑스 작가다.) 뇌과학에서 '기억'을 서사로 푸는데 이만한 작품이 또 있을까. 그래서 그 유명한 '프루스트 효과'란 이론도 나오지 않았는가.


프루스트는 병약했고 일생 기억하고 쓰는 일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꼭 그가 아니더라도 세상의 거의 모든 작가들이 자신의 경험을 녹여 작품을 쓴다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낯선 말이 아니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자전을 쓴다. 경험을 말한다는 건 기억하는 작업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어찌 보면 세상 편한 직업이면서 (펜과 종이 또는 노트북만 있으면 되니까) 동시에 불가사의한 존재들이다. 세상에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글로 쓰는가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여 글을 쓰지만 한쪽에선 기억이란 정확한 것이 아니란다. 사람이 불완전한 존재인 만큼 기억도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자서전은 다 가짜라고 비판한다.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 말만이 유일한 진실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프루스트의 책은 한낱 개고생의 끝판을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독자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발견하게 되는 건 기억이 아니라 현실과 환상을 떠도는 오기억 혹은 인출 뒤 다시금 변형되어 새로운 고착을 기다리는 '기억의 재고착'을 발견하는 거라고 했다(184p). 말이 좀 어렵다. 즉 하나의 서사로 재구성될 수 있는 상상력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가 프루스트의 작품을 대할 때 그가 얼마나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를 보려고 읽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가 불멸의 작품을 썼다는 것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오기억일지 모르지만 (뇌과학에 의한다면 이제 기억이나 추억을 말할 때 꼭 이 말을 붙여야 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온 기억을 전부 글로 쓴다면 그 양은 책 몇백 권 분량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즉 평생을 써도 다 못 쓴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건 여전히 그의 기억의 일부를 쓴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단지 우리가 그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는 건 그는 썼고 우리는 쓰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작가와 독자가 나뉘는 지점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그랬다. 작가는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본 죄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써야 하는 형벌을 받는 거라고. 그렇다면 작가는 관찰과 기억을 과다하게 쓰는 사람들임에 틀림없다. 또 그런 걸 생각하면 작가를 마냥 동경해도 좋을지 알 수가 없다.


기억이 작가의 것이라면 망각은 독자의 것이다. 저자는 알렉산드르 루리야란 러시아 심리학자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란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이 책은 번역된 적은 있지만 절판됐다.) 그가 단순히 기억력이 좋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그 기억이란 것 때문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피폐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망각은 확실히 축복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자가 작가의 작품을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기억하고 있다는 건 좋은 것이 아닐 수 있다. 빨리 잊어줘야 다른 작품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만일 잊지 못한다면 자신도 괴롭지만 작가는 다음 작품을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작가는 독자가 자신의 작품을 잊었다고 서운해하거나 분노하지 말아야 한다. 독자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 작품이 좋았다면 다음 작품을 기다릴 것이고, 만약 나쁘다면 한 달 뒤 자신이 무슨 책을 가지고 이를 갈았는지 기억도 못 할 것이다. 그러니 망각은 작가에게나 독자에게나 다 좋은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흥미로운 책을 나는 왜 지금껏 읽지 않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읽으면서 저자가 소개한 책들을 검색해 보느라 좀 바빴다. (사실 이건 언제부턴가 나의 습관으로 고착되어버렸다.) 특히 조나 레러의 '프루스트는 신경과 학자였다'란 책이 눈에 띄었다. (이 책 역시 아쉽게도 절판됐다. ㅠ) 하지만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의 찾아서'만큼 읽고 싶은 생각은 아직 없다.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조만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준 저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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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5-04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뇌‘라는 글자가 들어간 책엔 무조건 흥미가 생겨요. 유튜브 볼 때도 그런 걸 선호합니다.
최근에 <운동화 신은 뇌>라는 책을 읽었는데 운동을 하면 뇌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알 수 있는 책이에요. 어느 학교에서 0교시에 체육 수업을 시켰더니 학생들의 성적이 올랐다는 건 유명화 사례죠. 우울증은 뇌와 깊은 관련이 있어 운동이 우울증 예방도 되고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 많은 연구와 사례가 담겨 있어요. 뇌과학은 앞으로도 공부하고 싶은 분야예요.^^

stella.K 2024-05-04 12:38   좋아요 1 | URL
와~ 그러고 보면 언니가 읽지않은 분야가 뭐가 있을까 싶어요. 뇌과학 분야는 대중적으로도 활발하게 알려져서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요.
첫 댓글 고맙습니다.ㅋ
 
세계 문학 필독서 50 - 셰익스피어에서 하루키까지 세계 문학 명저 50권을 한 권에 필독서 시리즈 14
박균호 지음 / 센시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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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제목을 이리 써 놓으면 안 그래도 고전을 잘 안 읽는 사람은 더 안 읽을지도 모르겠다. 함부로 읽지 말라는데 어떻게 읽느냐며 내심 회심의 미소를 띨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그런 뜻에서 쓴 말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고전문학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무턱대고 읽겠다고 덤비지 말라는 얘기다. 그러다가 (어떤 책은) 큰코 다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그냥 있는 말이 아니다. 고전을 읽을 때도 이 말은 어김없이 적용된다.

무슨 책을 읽어도 저자의 들어가는 말이나 프롤로그를 읽게 된다. 하물며 우리는 고전을 읽을 때 그 나라와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다. 그럴 때 먼저 이런 좋은 해설서를 읽고 읽으면 실패하지 않는 독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고전을 읽으려고 하면 먼저 학창 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학교 때 고전을 열심히 읽으라고 선생님들이 그렇게 외치기만 했지 왜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따로 가르쳐 주시지 않았다.

이 책을 읽으니 새삼 두 가지 정도로 현타가 왔다. 그건 그렇게 선생님이 고전을 읽어라, 읽어라 할 때 청개구리처럼 안 읽었던 것 같은데 또 돌아면 아주 안 읽지만은 않았다는 것. 반복 효과 때문이었을까? 또 좀 놀라웠던 건, 옛날 같으면 감히 알지도 못했을 작가들의 작품이 다수 포함이 되었다는 거다. 당연한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고전의 범위는 넓어지는구나를 새삼 깨닫게 된다. 더구나 지금은 21세기다. 앞으로 어떤 책이 고전의 반열에 오르며 다음 세기를 맞이하게 될지 궁금하다. 모르긴 해도 저자가 50권을 선정하는데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장점은 우선 정리를 잘 했다는 것이다. 작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왜 이 작품을 썼는지가 잘 정리되어 있어 읽으면서도 감탄했다. 또 그런 만큼 내가 몰랐던 지식을 전해주고 있어 읽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과연 저자는 언제 이런 것들을 다 알아내어 썼을까 놀랍기도 하고.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단점도 없지 않다. 그건 아는 척하기 딱 좋다는 것. 고전문학 한 번 읽으려면 큰 숨 한번 내쉬고 읽어야 하는데 이건 날로 먹기 딱 좋다 싶다. 물론 고생스럽게 고전을 읽는 사람이 보면 얄미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해설서만이라도 읽는다는 게 어딘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도 있다는데 읽은 척하는 것도 능력이다. 아무리 천하에 없는 독서광이라도 세상에 모든 책을 다 읽을 수는 없다. 그러니 누가 읽은 척하더라도 너그럽게 봐줘라. 그게 읽은 사람의 겸양이고 덕목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장점이 더 많다. 오히려 반대로 이 책을 읽다 고뤠? 하며 그동안 한 번도 읽어 볼 생각이 없는 원본을 펼쳐 볼 확률이 더 많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 작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교정해 준다. 사실 난 나보코프의 <<롤리타>>에 대한 인상이 굉장히 안 좋았다. (공교롭게도 난 아직 책으로 읽지 못하고 영화로 봤다.) 특히 난 주인공 험버트가 작가인 나보코프의 페르소나는 아닐까 그런 의심을 했더랬다. 그러면서 어떻게 이런 작품이 세계 명작이 될 수 있는지 한때 금서가 되기도 했다는데 영원히 햇빛을 보지 못하게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벼라별 생각을 다했다. 이 책에서도 나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문학은 작가 자신의 경험을 반영하는 게 대부분이니 의심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것에 대해 저자는 이런 말을 한다.

이 소설은 소아성애자를 옹호하는 소설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자신을 합리화하는 소아성애자를 비판하는 소설로 읽을 수 있다고. 험버트가 자신의 소아성애적 행각을 나름대로 합리화하지만, 이 변명을 곧이곧대로 믿는 독자는 거의 없을 거라고도 했다. 더 나아가 나보코프는 소설로 도덕이나 철학 따위를 주장하는 작가를 혐오했으며 자신의 소설이 단순히 소설 그 자체로 읽히기를 원했고, 작품으로 교훈을 주기보다는 문학적 실험과 탐색에 집중하는 작가라고 했다. 내가 좀 팔랑귀이긴 하지만 저자가 이렇게 쓰고 있으니 내가 좀 예민했나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문학을 이렇게도 읽을 수 있겠구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다. 아마도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여전히 나보코프를 잘못 알고 있었을 것이다. 조만간 진짜 나보코프를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이례적(?)인 건 저자가 하루키를 50의 명단에 넣었다는 것이다. 물론 거의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고,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니 오히려 제외하는 게 이상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꼭 모든 독자에게 다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나도 마냥 좋아라 하는 작가는 아니다. 본국에서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고 한다. 이를테면 대중적으로 인기는 많지만 순수문학 분야의 최고봉인 아쿠타가와상을 아직 받지 못한 것과 일본이 당면한 현실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는 점 등.

사실 하루키는 이제 '하루키 월드'라는 하나의 문화를 구축했지만 그렇게 하루키를 즐기려 할 뿐 그에 대한 변변한 평론은 아직 보지 못한 것 같다. 물론 하루키 성격에 누가 자기 작품을 가지고 평론을 쓰던 뭘 하든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지는 않지만, 나 같이 초기에 약간의 관심을 가졌다 지금은 거의 냉담으로 돌아선 독자로선 그를 좀 객관적으로 알아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나도 내 취향이 아니란 이유만으로 너무 무관심한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문학은 취미로 읽을 수 있지만 종국적으론 취향의 문제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늘 내가 뽑아든 책이 문학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작품을 문학사적으로 조망하는데 어느 만큼의 시야를 확보해 주기도 한다.

또한 이 책은 고전 읽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내려놓게 만든다. 예를 들면 '돈키호테'나 '모비 딕'같은 작품은 너무 두꺼워 읽기가 꺼려진다. 게다가 언젠가 누가 썼는지도 모를 리뷰에 부정적인 말 한마디 발견했다고 아예 접어둔다. 그러다 이 책을 읽고 당장 읽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 완독까지 이어진다면 뿌듯하겠지.

한 가지 발견한 팁 아닌 팁이 있다면 고전문학도 거의 대부분 작가의 경험이나 본 것을 가지고 썼다는 것. 당연하지만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것을 읽으면 독자가 되고, 쓰면 작가가 된다.

책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갈수록 편견과 편독이 심해지고 있다. 그건 하루에도 몇십 권씩 쏟아지는 책의 바다와 그에 비해 나이 들수록 읽을 수 있는 책은 점점 한정되어 갈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어느 때가 되면 자기만의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목록을 만들게 되는 것 같다. 난 아직도 읽지 못한 고전들이 너무 많다. 정말 내가 죽기 전에 이 책들을 얼마나 읽을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도 이 책이 더 고맙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게 뭔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책을 읽는다는 거 아닌가? 짐승은 책을 읽지 않는다. 어차피 죽을 건데 책은 읽어 뭐하나 하는 건 짐승같이 살다 죽겠다는 말과 같은지도 모르겠다. 그보단 한 권, 아니 한 페이지라도 더 읽기 위해 작은 몸부림이라도 치는 게 더 인간답지 않을까. 그래서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러저러 한 이유로 그 책 목록에서 일찌감치 제외했던 책들을 슬그머니 끌어와 목록 속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다 읽고 나면 그동안 먹고 싶었던 음식을 뷔페로 즐긴 듯 포만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고전 명작이 50권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저자의 다음 50권엔 어떤 책을 포함시킬지 궁금하다. 기대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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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20: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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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21: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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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21: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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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21: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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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 22: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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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3-26 0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흘러서 지금은 고전이다 하지만, 그 소설이 나왔을 때는 대중소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때를 잘 나타내고 어떤 건 재미있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작품을 읽을 배경지식이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런 거 모르고 봐도 괜찮은 것도 있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지만, 저도 고전은 별로 안 보는군요 어쩌다 보니... 이 책을 보면 읽고 싶은 고전이 생길 것도 같네요


희선

stella.K 2024-03-26 14:47   좋아요 1 | URL
저도 전엔 뭐 읽겠나싶은 책들 이 책 보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이책 좋습니다.^^

페크pek0501 2024-03-27 16: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을 이렇게 많이 내시다니... 박균호 님은 능 력 자, 이십니다.
노력이 중요하지만 타고난 능력이란 게 있지 싶습니다. 아무래도...^^

stella.K 2024-03-27 16:36   좋아요 2 | URL
그러니까요. 부럽기도 합니다. ㅋ

transient-guest 2024-04-05 07: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박선생님이 또 책을 내셨네요. 저도 구해서 읽어보겠습니다. 깊이있는 독서에는 많이 못 미치지만 그래도 책을 꽤 많이 읽는 저도 이런 책을 읽을때마다 듣도보도 못한 책이 많음에 새삼 놀라곤 합니다. 이렇게 잘 쓴 정리를 보면 원전에 대한 흥미가 생겨 더 찾아보게 됩니다.

박균호 2024-04-05 08:2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이번엔 괜찮은 책이어야 할텐데요 ㅎ

stella.K 2024-04-05 19:45   좋아요 2 | URL
맞아요. 그래서 이런 해설서가 필요하더라구요. 박 작가님 정말 부지런 하시죠?^^
 
버지니아 울프와 밤을 새다 - 인생의 계단을 오를 때마다 힘이 되어 준 열 명의 그녀들
이화경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 전에 사 놓고 잊고 있다 최근 읽었다. 꽤 괜찮은 책이다. 

우리가 알만한 여성 작가들의 삶과 작품들을 저자의 탄탄한 문장이 담았다. 

이런 류의 책이라면 <다락방의 미친 여자>나 <여전히 미쳐 있는>을 떠올릴 것이다. 또한 이 절판된 책에 얼마나 관심을 가질까 싶기도 하지만 위의 두 책은 두껍다. 여성 작가를 다룬 좀 두껍지 않은 책을 원한다면 이 책에 관심을 가질만 하다.  

읽고나서 좋은 음식을 먹은 것처럼 그득한 느낌을 받았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저자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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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2-23 0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개정판으로 나왔군요 《사랑하고 쓰고 파괴하다》로 제목이 바뀌었는데, 이것도 품절이에요 예전에 읽고 쓰기도 했어요 찾아보니 안 보여요 여기엔 안 썼나 봅니다 나중에 쓴 거 올려보고 싶기도 하네요 못 썼지만...


희선

stella.K 2024-02-23 09:50   좋아요 0 | URL
아, 희선님도 이 책을 읽었군요.
그러게요. 두 책 다 절판이라 아쉬운데 중고샵엔 아직 있는 거 같더군요.^^

페크pek0501 2024-02-23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바뀌어서 큰글씨책으로 나와 있는 게 있네요. 그런데 큰글씨책은 비싸요.ㅋㅋ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갑니다.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오래전 읽었어요. 여성으로서 당당하게 살고 싶다면 이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 좋을 듯합니다.^^

stella.K 2024-02-24 18:13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그래서 더 이상 눈이 나쁘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ㅋ
이 책 읽으면서 뿌듯했어요. 다락방의 미친 여자 읽어 보고 싶었는데 넘 두껍기도 하고 넘 비싸서 중고샵에 나오길 바라고 있는데 기회가 없네요. 😂
 
작가를 짓다 - 문호와 명작을 만들어 낸 보이지 않는 손
최동민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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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한번 읽어 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읽게 됐다. 판형은 좀 작은 편인데 빈티지한 느낌이 좋다. 작가의 어원이 짓다라고 하던데 제목도 잘 지은 것 같다. 


이 책은 당대 유명 작가와 그를 있게 한 보이지 않은 조력자에 관한 이야기다. 그 조력자는 편집자일 수도 있고, 연인이나 배우자일 수도 있으며 자매나 형제일 수도 있다. 또 아주 드물게는 경쟁자일 수도 있고. 어떤 식으로든 글을 쓰도록 자극을 주고 도움을 줬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어쩌면 2등이라고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조명했다. 더구나 문학사에서 그런 사람들이 뭐 그리 중요했겠는가. 작가로 주목받기에도 힘든데. 그래도 저자가 이렇게 다뤄줬다는 게 새삼 기특하고 고마운 생각도 일견 든다.


하루키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작가는 링은 오르기는 쉽지만 오래 버티기는 어렵다고. 그것에 대해 저자는 말하기를 작가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 특별히 싸울 상대도 없고, 그저 링에 올라 멀뚱히 앉아 백지를 바라보는 것 그게 전부다. 이런 규칙뿐이기에 승리나 패배가 기록되질 않는다고. 하루키가 이런 말을 하니 작가는 뭔가의 천형이 있는 것 같아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왜 그처럼 많은 작가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데뷔작 내지는 초기작을 내고 조용히 사라지는지 알 것도 같다.


사실 우린 몇몇 작가들이 계속 오래도록 작품을 내니까 그 일도 할만 한가보다 싶지만 알고 보면 그런 작가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고, 전업작가도 그리 많은 편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지. 어느 직업 세계에서나 별이 된다는 건 너무 힘이 든다. 그래도 그걸 해 내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볼 때 그 사람에게 박수를 쳐주기 보다 세상에 못할 일은 없겠구나란 생각이 먼저 든다. 단지 다른 건, 저 사람은 해냈다는 것이고 나는 아직 안 했거나 못했다는 것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읽다 보면 나는 운명론자(?)는 아닌데, 사람은 평생 한 번 정도는(그보다 몇 번은 더 할 수도 있고) 은인을 만난다고 하던데 과연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작가에게도 통하는 말인가 싶기도 하다. 사실 작가는 혼자 쓰는 고독한 작업자들 아닌가. 근데 그렇지 않다는 걸 이 책은 증명해 보이고 있다.


특히 이 책의 첫 번째로 나오는 <<자기 앞의 생>>으로 유명한 로맹 가리의 보이지 않은 조력자이자 그의 어머니인 니나 카체프의 조력은 그야말로 인상적이기도 하고 눈물겹기도 하다. 저자가 왜 이 두 사람을 가장 먼저 조명했는지는 알 것도 같고.


하지만 내 개인적으론 (좀 조심스럽지만) 니나는 자신의 아들을 조력했다기 아들이 엄마에게 작가가 되도록 가스라이팅 당했다는 느낌이 든다. 또 어찌 보면 그렇게 가스라이팅 당할 것 같으면 좀 더 근사하고 강력한 뭔가에 당할 일이지 작가가 뭐 볼 일 있다고 그럴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그는 엄마가 하자는 대로 쫓아서 다 했다. 그나마 엄마의 바람대로 나중에 정계에 입문해서 장관이 됐으니 여한은 없겠지만.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니나의 희생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 모자 사이엔 뭔가의 간극이 있어 보이긴 한다.


어쨌든 이 책은 흥미롭긴 하다. 작가가 저 혼자되는 것 같아도 절대 그렇지 않다. 여기엔 다루지 않았지만 하루키도 그처럼 세계적인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건 아내와 좋은 편집자가 있기에 가능했다. 이렇게 누군가 조력자가 있다는 건 상당히 중요하다. 작가는 혼자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 나의 글을 기다려 주고 냉정하게 조언해 줄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없다면 만들어야 한다. 특히 요즘 젊은 작가들이나 아마추어 작가들은 혼자 쓰지 않고 그룹을 만들어 서로 도와 가며 활동하기도 한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책을 좋아하긴 한다. 이를테면 작가의 이면을 다룬 책들 말이다. 유려한 문체도 좋고, 무엇보다 저자의 시도가 참신해서 읽어 볼 만하다. 하지만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뒤로 가면 갈수록 뭔가 뒷심이 약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조력자를 다루기보단 작가에 대해 다루고 대충 마무리하는. 뭐 대체로 책들이 그렇긴 하다. 끝까지 뒷심 좋은 책은 별로 많지 않다. 그런 것을 감안할 때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공들인 흔적은 느껴져 이 정도라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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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4-01-15 2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 역시 되어가는 존재인가 봅니다. ‘전업-’이라는 접두어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 선망의 접두어기 아닌가 싶네요. 전문성을 보다 강조하여 ‘전업백수’였으면 좋겠습니다.^^ 이정도면 그냥 혼자 살아야겠죠? ㅋ

stella.K 2024-01-16 19:55   좋아요 1 | URL
ㅎㅎ 지금 초란공님이 하시는 일도 전업 아닌가요?
제가 전업 백수입니다. 전업 백수도 쉽진 않죠. ㅋㅋ

초란공 2024-01-16 21:50   좋아요 1 | URL
뒷심 있는 전업 백수가 되는 일은 더욱 쉽지않을 듯 합니다. 특히 ‘과로’하지 말아야 하고요. ^^ 건강 잘 챙기세요~!

stella.K 2024-01-17 10:29   좋아요 0 | URL
제가 무슨 뒷심이...ㅎㅎ 암튼 감사합니다. 초란공님도 건강하시길.^^

페크pek0501 2024-01-17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력은 필수, 그리고 버티기, 가 중요한 것 같아요. 버티다 보면 좋은 운이 찾아와 좋은 일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러므로 작가는 능력을 키우며 기다리는 자. 인내하는 자, 인 것 같습니다.^^

stella.K 2024-01-17 17:06   좋아요 0 | URL
아, 그 말씀도 맞네요.^^

hnine 2024-02-11 1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최동민이라는 이름이 낯익다 했더니 제가 한때 즐겨듣던 팟캐스트 <작가를 짓다> 진행하시던 분이네요. 거의 매일 들었었는데.

stella.K 2024-02-11 19:53   좋아요 0 | URL
아, 그래요? 이 사람 글은 잘 쓰더군요.
브런치에서 무슨 상 받고 책으로 낸 줄 알고 있는데
팟캐스트도 한다고 듣긴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