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나는 이제 다르게 읽는다 - 도스토옙스키부터 하루키까지, 우리가 몰랐던 소설 속 인문학 이야기
박균호 지음 / 갈매나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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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몇 번째 책인지 모르겠다. 모든 작가들이 다 그렇겠지만 저자 역시 빠지지 않는 장서가 겸 독서가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첫 책을 낸 이후 매년 한 권 내지 두 권의 책을 꾸준히 내고 있다. 다루는 주제도 다양해 가히 전방위적이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다음번엔 무슨 책을 낼까 항상 궁금해진다.


그래도 저자가 다루는 주제 중 가장 기대하게 만드는 건 역시 책에 관한 주제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은 한 권의 소설과 그와 관련된 인문학 책을 하나로 엮은 리뷰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받고 좀 놀랐던 건 저자가 언제 소설을 그렇게 많이 읽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물론 저자는 전방위적 독서가인 만큼 소설이라고 안 읽었겠는가만 남자들은 보통 소설은 잘 안 읽지 않나? 나만 하더라도 독서의 시작은 소설이었지만 어찌어찌하다 보니 지금은 소설보단 에세이나 대중을 겨냥한 인문학서를 읽게 되는 것 같다.


저자는 소설 한 권을 읽는다는 건 뛰어난 인문학 서적 여러 권을 읽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 이 경험을 '소설 인문학'이라고 했다. 나는 저자 말에 기본적으로 동의는 하지만, 나이 들면 총기가 떨어지는지 소설 읽기가 좀 자신없어 진다. 내가 지금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 자꾸 의심하게 되고, 읽었던 걸 다시 뒤적이고, 확인하고 싶어진다. 그러니 자꾸 선택에서 뒤처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소설에 더 매달려야 한다는 걸 안다.


멋모르던 시절엔 소설 읽기에 대해 회의를 한 적도 있다. 한 번 읽고 말 걸 뭐하러 읽는가 싶은 것이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인문학을 알면 소설 읽기도 깊어진다. 그런 점에서 소설과 인문학은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소설에서 잘 몰랐던 것을 인문학에서 해답을 얻거나 새롭게 알게 되는 것도 많으니 말이다. 그래서 난 이 책을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다. 더구나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저자의 책들은 간결하고 깔끔하게 핵심을 전달해 지적 욕구를 채워준다.


개인적으론 '개는 언제부터 인간과 함께했을까'란 글이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 저자는 먼저 아키야마 마쓰코의 <이별의 순간 개가 전해준 따뜻한 갓>란 작품을 소개했는데(이 책은 내가 얼마 전에 읽은 <소울 메이트>와 비슷해 보인다), 우린 흔히 개가 죽으면 무지개다리를 건넌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 누구에 의해서 이런 말이 전해졌는지 그 출처를 알지 못했는데 여기서 비로소 의문이 풀렸다. '무지개다리'라고 하는 작자 미상의 시에서 전해졌다는 것이다. 앞부분만 잠시 살펴보면,


천국 바로 앞에 걸린 '무지개다리'

이 땅에 있는 누군가와 특별한 사이였던 동물들은,

멀리 여행을 떠난 뒤, 이 다리로 향합니다.

다리 건너에는 초원과 언덕이 펼쳐져 있어,

누군가에게 있어 특별한 '파트너'였던 동물들은,

같이 뛰고 장난도 치며 놀고 있습니다.

먹을 것도 마실 물도 듬뿍, 햇살이 내리쬐면,

모두가 모여 따뜻하게 누워 쉽니다. (207p~ )


내가 유독 이 챕터를 기억하는 건, 아무래도 개를 오래도록 키웠었고 다롱이를 무지개다리로 보낸지 이제 1년이 되어오는 시점(정확히는 이달 15일이다)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도 녀석만 생각하면 코끝이 아리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녀석은 정말 무지개다리 건너 잘 지내고 있을까. 그런데 이런 시를 지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미상의 시인이 있었다니 새삼 위로받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다 책은 인간이 언제부터 개와 친해졌는가를 묻는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렇게 오랜 세월 개를 키워왔으면서 한 번도 이것에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저 아는 건 늑대가 조상이란 정도? 지면상 길게 쓸 수는 없고, 저자는 콘라트 로렌츠가 쓴 <인간은 어떻게 개와 친구가 되었는가>란 책을 소개하면서, 개의 조상은 자칼이라고 밝히고 있다. 읭? 그건 전혀 새로운 사실이다. 인터넷 지식백과 나무위키를 보니, 자칼은 여우와 늑대를 섞어놓은 승냥이과 동물이란다. 그렇다면 이 개라는 동물은 그 조상이 한 가지로만 특정할 수 없는 소위 말하는 '잡종'이겠다 싶다.


이 책에 의하면, 개와 사람이 친해지는 데는 생각 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 옛날 (거의 선사시대를 의미하지 않나) 인간이 고기 한 점 먹기도 어려웠던 시절 어느 날 멧돼지 고기를 구워 먹는데 누군가 정신이 나갔는지 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 개에게 무의식적으로 한 점을 던져줬단다. 그것은 인간이 개에게 고기를 줄 줄 몰라서가 아니다. 한 놈에게 그걸 던져주면 더 많은 녀석을 불러들여 어떠한 통제 불능의 사고가 일어날지 알 수 없어서다. 또한 사람 먹기도 부족한 것을 짐승에게까지 주냐며 공분을 살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 일 이후 사람은 고기를 넉넉히 먹을 수 있게 되었고, 먹다 남은 고기나 뼈를 개에게 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녀석들은 그것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사람을 보호해 줬고, 공생관계가 가능했다고 한다. 놀랍잖나? 


그런데 개인적으론, 뭔가 책 제목이 좀 불만스럽다. 무엇보다 제목이 좀 얄밉지 않나? (저자에겐 좀 미안하지만 웃자고 하는 말이다. 용서하시길.ㅠ) 솔직히 나이 4, 50이 되어도 책을 못 읽거나 안 읽는 사람도 많을 텐데 뭔가 모를 괴리감 같은 게 느껴질 것 같다. (이런 경우 저자의 의도보단 출판사의 입김이 더 강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언제부턴가 독서 세대론을 부각시킨 책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마흔에 읽는 동양 철학 시리즈 같은 거 말이다. 그건 정말 양날의 검이란 생각이 든다. 왠지 마흔둥이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긴 한데 그렇다면 마흔이 아직 안 됐거나 50줄 타기 시작한 사람은 별로 손이 안 갈 것 같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일부를 제외하곤 책을 잘 안 읽는 민족으로 유명하다. 40줄 타기 시작하면 노안이 오기 시작한다. 40대 인구가 타인구에 비해 그렇게 많을 것 같지도 않고. 물론 불혹이라고 해서 나이에 대한 자각이 책으로 이끌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가 얼마나 될까.


아무튼 그래서 또 쉰둥이들을 위한 책이 나오기도 하지만. 40에도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50에 읽을 리 없지 않는가. 더구나 이 책은 오십에 책을 읽기로 하고 그 나이를 두 번 그러니까 100세가 돼야 한 번 읽을 것 같다. 더구나 제목이 그래서 나는 저자가 독서 노하우나 독서론에 관한 책인 줄 알았다. 다른 제목이었다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살짝 아쉬움이 든다. (살짝 치곤 너무 적나라했나? >.<;;)


아무리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고, 늦은 때가 가장 이른 때라고 하지만 유독 독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독서 습관은 한 해라도 젊었을 때 들이고, 책은 조금이라도 눈이 좋을 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구력이나 집중력도 예전만 같지 않다. 오십은 오히려 독서를 잘 해왔던 사람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책에서 멀어지기 쉬운 때이기도 하다.


실제로 난 얼마 전 한 달 정도 책을 안 읽은 적이 있다. 전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안 읽으면 머리가 텅 빈 것 같고 내가 나한테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았는데 얼마나 편하던지. 내가 이럴 수도 있구나 새삼 놀랐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 전, 알고 지내는 번역가 한 분이 자신은 요즘 책도 안 읽고 리뷰도 안 쓰는데 그게 너무 편하고 좋다는 것이다. 나는 그냥 그럴 수도 있으려니 했는데 정말 이해가 갔다. 지지난 달에 오랜만에 만났는데 역시 다시 예전처럼 책을 읽고 있다는 걸 알았고, 나도 다시 붙들긴 했지만 한때 있을 수 있는 독서 사춘(추)기 쯤으로 해두자. 그리고 다시 붙드는 데는 이 책의 공이 컸다.


10대 초반부터 책을 읽어 왔고 여전히 좋아하지만 갈수록 독서보단 책이란 물성을 더 좋아하게 된다. 그리고 그 빈틈을 다른 것이 메운다. 이를테면 영화나 드라마, 교양이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으로 대체되고 있다. 갈수록 눈도 나빠지고 버팀력도 떨어지는데 무엇으로 나의 독서를 세워 갈까 가끔 고민 아닌 고민을 할 때가 있다. 책을 선택하는 시야도 갈수록 좁아지는 것 같고. 그때 누군가는 이러 이러한 이유 때문에 독서는 계속해야 한다고 틈만 나면 느슨해지는 나의 그 알량한 독서에 도끼질이든 채찍질이든 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이는 현재를 즐길 줄 모른다. 50이면 금방 60 된다고 발을 동동 구르게 할 뿐이다. 그러면서 여전히 독서는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책은 오래전에 읽었는데 리뷰는 이제야 쓴다. 그동안 계속 붙들고만 있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덥기도 하고, 제목이 자꾸 뭔가를 생각하게 만들고, 위에서 말한 딴짓도 해야 하고 해서 쉬 쓰질 못했다. 그러던 중 문득 10대 시절 우리 옆집에 살던 노부부가 생각이 났다. 얼핏 보기에도 60대 중반은 넘어 보였는데 꽤 교양 있어 보였더랬다. 그렇지 않아도 할아버지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무슨 식자층으로 은퇴를 했다고 들은 것 같다. 난 그 노부부가 참 좋아 보였다. 막연히 지식인이어서가 아니라 할머니와 함께 끊임없이 책을 읽으며 부지런히 사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던 것이다. 말 한 번 제대로 섞어보지 못했고, 그때 난 늙을 때를 생각하기엔 너무 젊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늙는 것도 좋겠단 생각이 든다. 나 어렸을 땐 책 읽는 중년, 노년이 흔치 않았다. 하지만 내가 늙을 땐 많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노년이 되었으면 한다. 또 그렇게 같이 늙어 갈 책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그들과는 무슨 얘기를 하게 될까. 그러기 위해 앞서한 푸념은 푸념으로 남기고 어제처럼 오늘도 책을 읽어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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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0 1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8-11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2-08-10 22: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책 재밌게 읽었어요. 문학과 인문학의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행복한 독서였달까요? 조만간 저도 리뷰를 쓰야 하는데 지금 도서관 반납해야 하는 책이 너무 재밌어서 리뷰를 미루고 있네요. ㅎㅎ 제목은 저도 좀 불만이네요. 인문학과 문학을 잇는 뭔가 좀 더 근사한 제목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말입니다. 굳이 오십이란 나이를 강조할 필요하 전혀 없는 내용이었어요.

stella.K 2022-08-11 15:24   좋아요 1 | URL
이책의 저자님께서 점점 인기작가가 되가시나 봅니다.
리뷰나 제법 많이 쌓였더라구요.
바람돌이님 리뷰 쓰시면 엄청 나겠는데요? ㅎ
제목과 내용이 잘 어울리기란 참 쉽지 않은가 봅니다.
출판사의 고민도 참 크겠어요. 제목이 반인데…

기억의집 2022-08-10 2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들어도 책을 읽을 수 있는 건 천운이죠. 저는 아직 눈이 괜찮아서 종이책 전자책 다 읽을 수 있는데 남편이나 언니가 잘 안 보여 안경을 만지작 거리며 눈을 위로 뜨면서 글자 볼 때마다 아 나도 이제 얼마 안 난았겠구나 싶어요. 저는 일했을 때도 꾸준히 읽었는데.. 일주일 이상 책을 안 읽은 적은 없었던 것 같어요. 로렌츠의 인간은 어떻게 개와 친구가 되었는다 라는 책에서 친구자 빠졌어요. 저는 로렌츠의 책 재밌게 읽은 기억이 나요. 개의 조상이 늑대가 아니고 자칼이었던가요!!!

stella.K 2022-08-11 15:16   좋아요 0 | URL
부럽습니다. 저도 비교적 노안이 늦게 온 편인데 안경 쓰기 시작하니까
정말 불편하더군요. 누워서 책을 보는 건 상상할 수도 없어요.
물론 정 불편하면 그렇게도 하지만 한 두 페이지나 읽을까요?ㅠ
눈을 잘 지켜주세요. 그래야 천운도 잘 지켜질수 있습니당~^^

희선 2022-08-11 0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지개다리라는 말 누군가 쓴 시에 나왔군요 그 시가 있어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고 하네요 무지개다리, 말은 예쁜데 슬프기도 하네요 곧 15일이네요 다롱이와 오랫동안 함께 살아서 지금도 생각나겠습니다 앞으로도 떠오르겠네요

요즘은 책 제목에 나이를 붙일 때가 많군요 예전부터 나왔군요 그렇게 하면 책이 잘 팔릴지도 모르죠 정말 이 책 제목은 출판사에서 그렇게 하자고 했을 것 같네요 소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를 알 텐데, 그렇게 못 볼 때가 더 많습니다 여전히 이야기를 보는... 역사나 예술을 잘 알면 재미있는 소설도 있지요 그런 거 몰라도 소설은 재미있지만...


희선

stella.K 2022-08-16 13:42   좋아요 1 | URL
사람이 죽은 것만 같겠습니까만 사랑을 줬던 미물이라 쉽게
잊혀지지 않네요.

소설은 쉽게 읽히는 것도 많지만 어려운 것도 많더라고요.
인문학적 지식을 요하는 것도 많고.
희선님도 기회되시면 읽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프레이야 2022-08-16 1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롱이가 떠난 지 일 년 되었군요 어제.
생각이 많이 나겠어요 아직은. 더 많이 시간이 흐르면 좀 잊혀지려나요. ㅠ 요새 울집 냥이가 저한테 딱 붙어서 잠을 자요. 새벽에 깨서 한참 쳐다보았습니다. 생명이 짠해서.

stella.K 2022-08-16 13:51   좋아요 0 | URL
아, 프레이야님. 고맙습니다. 그래도 뭐 처음 보다는 낫습니다. 작년 이맘 땐 정말 많이 슬프더라구요. 냥이 많이 사랑해 주세요. 그래야 나중에 조금이라도 덜 섭섭하답니다.
근데 다시 키우라고 그러면 못 키울 것 같아요.😆 그래서 일본 노인은 로봇 강아지 키우고 그러나 봐요.ㅋ

프레이야 2022-08-16 14:54   좋아요 0 | URL
ㅎㅎ 털은 안 날리겠네요
감촉이 어떨지…

stella.K 2022-08-16 15:00   좋아요 0 | URL
그도 그렇지만 개집사 노릇 안 해도 되잖아요. 얼마나 손이 가는지. 그걸 좋다고 20년 가까이 했으니. 이젠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버거운 나이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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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쓰기를 꿈꾸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몰라 <기억 수집가>란 카테고리를 만들어 놓고 무조건 옛 기억들을 모았던 적이 있다. 이 책은 한창 그것들을 수집하고 있을 때 샀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을 샀을 때 난 그 작업을 (잠정) 멈추었을 것이다. 나란 인간이란 뭐든 처음 시작만 반짝하고 마무리가 없으니 그 작업도 언제 다시 시작하게 될지, 언제 마무리가 될지 알 수가 없다. 



왜 자서전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는 없다. 그저 사람이 어느 정도 삶을 살았다면 갈무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쓰다 보면 별의별 기억들이 다 떠오른다. 아주 개인적이고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그 시절 사회 문화적인 현상과 사건까지 굴비 엮듯 잘도 엮어진다. 난 그 모든 것들로부터 별 상관없이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별 수없는 그 시대의 산물이었구나 싶다. 



저자가 책에서 적시했던 시절을 바탕으로 보자면, 난 그 시절 가수 정훈희와 김추자를 흉내 내길 좋아하고, 월트 디즈니의 만화를 좋아했으며, 평일 날 6시만 되면 시작하는 어린이 프로를  눈이 빠져라 기다렸던 평범한 어린이였다. (김추자는 당대의 인기에 비해 너무 일찍 잊힌 가수가 아닐까 생각한다.) 



대낮에 영부인이 한 저격범이 쏜 총탄에 죽을 수 있다는걸, 그로부터 5년 뒤 대통령 역시 하룻밤에 비슷한 운명일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의 죽음이 있기 1년 전이었던가? 그가 대의원 선거에 의해 대통령을 연임하게 되었다고 했을 때 나는 우리나라에 대통령은 그 한 사람밖엔 없는 줄 알고 그의 천하무적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마침 그때 학교에선 반공 포스터 그리기가 한창이었고, 난(지금 생각해도 오글거리다 못해 유치한) '북한이여, 물러가라'란 표어가 들어간 포스터를 그려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연임과 죽음은 어린 나에게도 한 나라의 정치와 권력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에 대해 새로운 시야에 눈을 뜨게 만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정치는 내 전공이 아니지만.) 이렇게 쓰니 난 그 시절 대단히 불행한 나라에 대단히 불행한 어린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 같을까. 그 시절엔 어린아이가 성적을 비관하여 학교나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날렸다는 소식은 좀처럼 듣지 못했으니.       



폐일언하고,  저자는 부모님의 자서전을 쓰기 위해 이 글을 썼다고 했다.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자서전은 나의 이야기를 쓰는 거지 그 누구의 삶도 대신 쓸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렇다면 그건 전기가 되겠지. 물론 쓰기에 따라선 자신의 자서전에 부모님의 이야기를 많이 할애를 할 수도 있다. 아마도 저자는 아직 자신의 자서전을 쓸 마음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야기는 부모님의 전기가 반, 자신의 자전이 반이다. 그것은 또 독특한 사회학 텍스트기 되기도 한다. 나는 이 책이 무척 신선했고 좋았다. 또한 침착하다 못해 침울한 분위기도 좋았고.



독특한 사회학 텍스트가 될 수밖에 없었던, 양친의 삶을 쓰려니 한계를 느껴 당시 유행했던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양친의 족적을 투영해 보는 시도를 했다고 한다. 굉장히 흥미로운 시도라고 생각한다. 영상물만큼 그 시대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게 또 있을까.   



저자는 비슷한 시기에 양친이 돌아가시는 슬픔을 겪었다. 난 아직 모친이 살아계시긴 하지만 읽다 보면 저자의 부모나 나의 부모나 참으로 비슷한 신산한 삶을 사셨구나 싶다. 하다못해 가정 분위기조차 흡사하다. 그 시절 중매를 통해 사랑 없는 결혼을 하고, 별로 애정도 우애도 없는 가정의 일원으로 살았다. 그나마 저자의 어머니는 부모님을 일찍 여읜 관계로 의지가 될까 싶어 나이 많은 남편에게 시집을 왔다지만, 나의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25살이면 당시로는 상당히 늦은 결혼을 했는데 엄마는 할 수만 있으면 결혼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억척스러운 외할머니 등쌀에 결국 결혼을 했고, 출산과 시월드에서 여전히 신산한 삶을 살았다. 신산한 유년 시절을 보내고, 국민학교도 온전히 마치지 못했지만 엄마는 어느덧 가정의 보탬이 되는 성인이 되었으니 뭔가의 꿈이 있지 않았을까. 아니 적어도 당신의 앞가림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시절 첫딸은 살림 밑천이라면서 왜 그토록 어머니에게 구박을 받고 살아야 했는지 엄마는 알지 못했지만, 그렇게 자신을 구박했던 어머니도 딸이 더 이상 함부로 구박할 수 없는 어른으로 성장했으니 본격적인 자유를 구가하며 살 수도 있건만 그렇게 결혼으로 자신을 속박시켜야 했으니 아버지가 온전히 눈에 들어왔을 리 없을 것이다. 솔직히 아버지가 나에겐 첫 번째 남자이기도 한 셈인데 그 정도라면 미남은 아니어도 나름 빠지지 않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항상 아버지가 못생겼다고 했다. 특히 그 코는 늘 생기다 말았다고 흉을 보곤 했다.



그 시절은 정말 먹고사는 일이 너무 힘든 시절이었다. 먹고사는 일이 그렇게 힘든데도 아이는 여덟, 아홉을 낳았으니 어찌 보면 모순 같다. 우리 집은 비교적 안정적인 집안에서 4남매를 밖엔 안 됐지만 우리 역시도 먹고 사느라 아주 힘들었다. 방금 먹고 뒤돌아서면 배가 고픈데, 또 뒤돌아서면 내 몫의 군것질이 누군가의 입에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럼 우린 (서로) 바로 응징에 들어간다. 위아래도 없이 목소리 크고, 힘센 놈이 이기는 법이다. 그러자 부모님은 평화를 위해 뭐든 4등분 하셨다. 그러자 휴전이 찾아왔다. 그래도 우린 뭔가 모르게 서로에 대해 불만이 많아 툭탁거리고 많이 싸웠다. 물론 그것도 너무 힘들고 귀찮아 사춘기가 되면서부터는 서로에 대한 관심을 차단했다. 가족끼리 싸워봤자 피곤하고 아무런 소득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처럼 애틋하지도 않으면서 무덤덤한 게  한국의 중산층 가정의 전형적 분위기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특히 부부지간은 어쩌면 그리도 판박이인지. 새삼 그 시대는 그런 시대였구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특히 3부 <꿈꾸는 순간>의 '3장 여자 그리고 어머니, 아니 엄마'(332p)는 얼마나 공감하며 읽었는지 씁쓸한 느낌마저 든다.  


자애로운 어머니란 옆에서 남편을 보조하는 역할을 의미한다. 결코 남편의 뜻을 거스르거나 독립적인 자기 의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집 안에서 어머니는 자기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다. 아버지는 아내 이외의 사람에게는 화통하고 친절했지만, 정작 아내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남자들이 알게 모르게 몸에 익힌 안과 밖의 희한한 구별법에서 아버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339p     


사업을 하셨던 아버지는 사람을 좋아해 툭하면 오밤중에 지인들을 데리고 집에 들어오시곤 했다. 당시는 야간 통행금지도 있었고 9시만 얼추 넘으면 한밤중인 줄 알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런 사정도 안 봐주고 엄마는 잠자다 말고 술상을 차려내야 했으니 그 고충은 당해 본 사람만 안다. 오죽했으면 자고 있는 어린 언니를 보며 절대로 사업하는 남자에게 딸을 주지 않겠다고 했다. 



그뿐인가,  엄마는 누구의 아내라기보다는 일당 2천 원을 받는 가정부 같은 존재였다. 나도 기억하는 건, 아버지는 항상 아침이면 2천 원을 화장대에 무심하게 던져놓고 출근을 하곤 했다. 지금이야 2천 원의 가치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70년대 초중반엔 먹성 좋은 우리 4남매 하루 군것질과 반찬값에 해당하는 돈이다. 그것도 주일은 제외다. 



엄마는 그것에 꽤 자존심 상해했다. 당시 아버지는 자동차 정비업으로 벌이가 꽤 쏠쏠했는데, 남자는 돈 있으면 외도 아니면 노름을 한다는 '남자의 공식'에 따라 아버지는 노름은 하지 않았지만 외도는 했다. 아버지가 엄마에게 그렇게 일당을 줬던 건 자수성가를 한 탓도 있지만 할머니의 세뇌도 한몫했다. 여자에게 돈을 맡기면 친정으로 빼돌린다는 것이다. 막상 당신이 그런 삶을 사셨으면서 며느리가 그러는 건 용납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할머니는  그 시대 여자들이 그렇듯 당신의 아버지의 노름빚을 갚기 위해 누군가에 팔려 가듯 어느 홀아비의 재취가 되었다. 부친의 가업을 이어 받아 목재소 일을 했던 (나는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할아버지는 제법 유지 소리를 들으며 살았던 모양이다. 할머니는 부자인 할아버지 덕에 돈을 친정으로 빼돌릴 수가 있었다. 그게 왜 당신은 되면서 당신의 며느리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엄마가 진짜 그런 비행을 할지 안 할지도 모르면서. 모르긴 해도 그 시대 '여자의 공식'은 그런 거였나 보다.



엄마는 할머니에겐 맏며느리였다. 우리는 맏며느리에 덧씌워진 이미지를 알고 있 다. 엄마는 그것을 훌륭히 감당해 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엄마에게 온갖 패악을 저질러도 어디 가서는 살림 잘하고, 아이들 잘 키우는 며느리임을 공공연히 자랑하고 다니셨던 것이다. 그건 엄마에게 또 하나의 족쇄였을 것이다. 엄마는 말했다. "난 너희들만 아니면 아버지와 진작에 이혼했어. " 



한때는 엄마의 이런 말을 듣기 싫어했던 때가 있었다. 이혼하려면 하는 거지 누구 때문에 못했다는 말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시대 이혼한 여자가 겪어야 할 수치와 모멸보다 억울해도 꾸역꾸역 누구누구의 아내, 누구누구의 엄마로 사는 것이 그나마 나으니까. 내가 엄마의 입장이라면 난 셋 중 하나가 되었을 것 같다. 우울증에 걸리거나, 누군가를 죽이거나, 자살을 하거나. 내가 엄마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건 얼마나 다행인가. 물론 우리 시대도 녹녹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엄마의 시대보단 낫지 않은가.  



그나마 다행인 건 노화에 따라 남자와 여자의 호르몬의 변화인 건지 모르겠지만 여자가 좀 당당해질 수 있었다는 건 저자의 어머니나 나의 엄마가 비슷한 것 같다. 그렇게 군림할 줄만 알았던 저자의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야단 아닌 야단도 쳤다고 한다. 나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8, 9년 전쯤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시고 회심한 후 엄마에게 나름 잘했다. 사실 아버지가 의리는 좀 있으셨던 분이었다. 그러니 엄마를 한 여인으로 사랑했다기보단 그냥 의리로 잘 했다는 게 맞을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그건 그야말로 엄마에겐 구원이고 복음이었을 것이다. 동시에 아버지의 외도도 끊어버린 게 그 무렵이었다. 당시 비슷한 입장이었던 구역 성경공부 리더는 그런 엄마를 꽤 부러워했다. 게다가 호랑이 같던 시어머니의 위세도 한풀 꺾인 때이기도 했으니 엄마는 나름 꿈만 같은 시절이었을 것이다. 



재밌는 건, 그 시대의 교육열이다. 대부분의 부모님은 무학이거나 학력이 낮지만, 부모가 못 배웠으면 자식이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표준 감정을 공유했다는 것. 그래서 학교를 찾아가는 부모는 거의 없지만 선생님껜 "전적으로 선생님만 믿겠습니다."라는 말을 되풀이했다는 저자의 지적(367p)이 그렇다. 그때는 정말 학교의 위세라는 건 대단해서 거의 국가 권력의 축소판은 아니었을까.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가? 어느 날, 같은 반 남자 아이 어머니가 담임 선생님을 만나러 왔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이 생면부지의 담임 선생님께 무슨 말을 하겠는가. 시종 어색한 웃음을 띠며 몇 번이고, "말을 안 듣거든 그저 때려 주세요. 때려 주세요."를 반복하고 있었다. 10살도 되지 않는 아이가 잘못하면 얼마나 잘못한다고 선생님의 매를 맞아야 하는 것일까.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게 정말 때려 달라는 간청이었겠는가. 잘 가르쳐 달라는 부탁이었겠지. 그런데 담임 선생님은 좀 달랐다.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는지 가끔씩 아이들을 공포로 몰아가곤 했다. 그 공포 효과에 그 아이도 동원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르긴 해도 그걸 그 아이 부모가 알았다면 배신감이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의 어머니는 2학년이 마치기 전까지 다시 선생님을 만나러 온 적이 없는걸 보면 그때만 해도 아이는 나름 어른스러웠던 것 같다. 게다가 그 시절 촌지 남발이란.           



나는 저자를 존중하지만 책 제목을 '가족극장'이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당시는 가부장 아래 가정의 평화와 질서가 유지되기도 했다. 그래서 저자가 말한, 여자는 자애로운 어머니란 옆에서 남편을 보조하는 역할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꼭 다 그런 건마는 아니다. 가정의 모순을 자애로움으로 감추고 있을 뿐이지. 



엄마는 어느 때부턴가 우리 집에 대해 좋은 말을 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아버지와 할머니를 비롯한 친가 쪽 사람들에 대해 좋게 얘기하지 않았다. 그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평화로웠는데 엄마는 한 가정의 비밀을 폭로하듯 말하곤 했다. 그때마다 난 좀 혼란스러웠다. 그건 어쩌면 여자만큼 가족 문제를 냉정하게 잘 아는 사람도 없다는 말도 될 것이다. 그러니 저자가 지적했던 '자애로운 어머니'는 반은 맞고 반은 여러 다른 의미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가족극장'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는 것이고.  



 톨스토이가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우리 한국의 가정은 불행도 비슷하게 닮아있지 않나 싶다. 그건 또 후진국으로 갈수록 더더욱 그럴 것이다.  



나를 포함한 저자의 시대는 결코 자신의 자서전에 여성과 가정의 행복에 대해 얘기하지 못할 것이다. 어느 시대가 되면 이것이 가능해질까. 저자는 이 책에서 이런 말로 마무리한다. 


"과거는 미래를 보기 위한 연습이다. 과거에서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만이 고아가 되어도 서럽지 않다. 과거에 대한 미래에 대한 상상으로 종결되어야 한다. 기억의 정확한 시제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자서전은 한 번도 나 자신으로 살지 못한 사람을 위한 거울이고 치료제다. 언젠가 다시 자서전을 붙들게 되면 좀 더 엄마와 아버지를 객관적으로 쓰고 싶다. 


저자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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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7-18 15: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얼마전 강의를 듣는데 강사님이 예시로 들었던 책이 바로, 노명우 교수의 [인생극장]

더더욱 반가워요.

˝때려 주세요. 때려 주세요.˝는....듣기만 해도 무서운데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신 선생님이 계셔거 더 충격입니다....

stella. K님께서 쓰실 부모님 인터뷰록도 기대해봅니다!

stella.K 2022-07-18 18:24   좋아요 1 | URL
아, 지금 생각해 보면 <인생극장>이 맞는 것도 같아요.
사실 ‘가족극장‘은 흔한 제목이죠.
이 책이 유명하긴 한가보군요. 저자의 책이 몇권 더 있던데
읽어보고 싶더군요.

예전엔 정말 그랬어요. 베이붐 세대라 그런지 한 반에 아이가
7,80명이었으니 일일이 돌보기가 쉽지 않았죠.
더구나 담임 선생님이 남자분이셨으니. 잘할 땐 잘하셨는데
한 번 화가 나시면 공포 그 자체였죠.

저의 자서전은 제가 혹시 유명한 사람이 되면...ㅎㅎㅎ
아시다시피 자서전은 유명한 사람이 아니면 출판사에서 안 내주거던요.ㅋㅋ

조선인 2022-07-18 15: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 어머니 이야기와 너무 닮은 꼴 인생이라 마음이 스산해지네요...

stella.K 2022-07-18 18:26   좋아요 1 | URL
오랜만이어요 조선인님.^^
그렇죠? 우리네 어머니들은 왜 그러신지 모르겠어요.
좀 행복하면 좋을텐데...ㅠ

yamoo 2022-07-18 16: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집중해서 심각하게 읽어가다가....‘북한이여 물러가라‘에서 빵터졌네요...ㅎㅎㅎ
우수상 받은 포스터 그림이 북한이여 물러가라...ㅋㅋ
그럼 그림은 어떠했을까 궁금하네요..ㅎㅎ

아, 계속 웃음이...ㅋㅋㅋㅋ

stella.K 2022-07-18 18:32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 야무님 빵터지셨다니 왜 제가 웃음이...ㅋㅋㅋ
그 포스터 내용이 참 별거 아니었어요.
도화지 중앙에 우리나라 지도 하나 그려 넣은 것뿐인데
선생님이 뭔가 영적으로 끌리셨던 것 같아요.
그림도 별건데 끌리는 그림있잖아요.ㅋㅋ
당시는 반공의 시대였잖아요. 지금 같으면 있지도 않거니와
뽑아 주지도 않았을겁니다.ㅋ

페넬로페 2022-07-18 17: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시절의, 우리 부모님의 얘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시대가 주는 힘듦이 많았는데, 그래도 그 세월 견디며 열심히 잘 살아오신 부모님의 자서전을 쓰지는 않겠지만 한 번 생각해보고 싶어요.
영화 ‘헤어질 결심‘에 계속 정훈희의 안개가 나오고 그 노래듣고 어린 시절이 떠올랐어요.
송창식과 함께 부르는 버전도 좋더라고요.
요즘 아이들은 그 노래 모르겠죠^^

stella.K 2022-07-18 18:47   좋아요 2 | URL
어멋, 정훈희의 ‘안개‘가 나옵니까?
이 노래가 시대별로 영화에서 리메이크가 되는가 보군요.
이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는 영화 주제가로 나왔던 것 같습니다.
신성일하고 윤정희 주연의 <무진기행>인가에 흘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송창식은 또 어떻게 불렀을까요?
아, 그 영화 아무래도 봐야겠습니다.ㅠ

희선 2022-07-19 0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부모님이 쓰지 못하니 자신이 대신 쓰고 부모님뿐 아니라 자신도 돌아봤군요 이 책 인세로 책방을 냈다고 합니다 인세가 책방을 낼 만큼 될지 모르겠지만... 니은서점... 거기엔 부모님 사진도 있다고 하더군요 부모님을 이렇게 기억하다니, 누구나 그걸 하지는 못하기도 하죠 stella.K 님은 이 책을 보고 stella.K 님 부모님을 떠올리셨군요


희선

stella.K 2022-07-19 18:45   좋아요 2 | URL
니은서점이 있는 건 아는데 이 책 인세로 낸건 몰랐습니다.
그럼 이책 대단한 책이네요.
인세라는 게 참 그래요. 처음 책을 내는 사람은 좀 그런데
떳다하면 굉장한가 보더라구요.ㅋ

mini74 2022-07-19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때려잡자 김일성도 인기표어였죠. ㅎㅎㅎ 그 시대 어머니들의 삶은 고난의 끝판왕같단 생각들어요. 저희 엄마 이야기같기도 하네요.. 다들 장편소설 하나쯤은 가슴에 품고 사시죠. 그 장편소설에 미운놈 나쁜놈 억울함 그런게 없었음 좋겠어요. 하..그럼 너무 재미없을려나요. ㅎㅎㅎ

stella.K 2022-07-19 18:51   좋아요 1 | URL
ㅎㅎ 무찌르자 공산당이란 고무줄 놀이 할 때 부르는 노래도 있었죠.
그거 부르며 한창 놀때는 이런 때가 올까 싶었는데 과거를 돌이켜보게 만드니
그 세월이 어디로 다 가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ㅠ

미운놈 나쁜놈 억울함 없는 사람이 어딨겠습니까?
소설에 그거 없으면 재미없을 걸요?^^

그레이스 2022-08-10 16: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노명우님 제가 좋아하는 작가신데, 이 리뷰는 제가 놓쳤네요.
이렇게 읽게 되서 정말 다행입니다.

stella.K 2022-08-10 18:09   좋아요 2 | URL
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강나루 2022-08-12 07: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이달의 당선작 되신거 축하드려요^^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stella.K 2022-08-12 10:45   좋아요 1 | URL
아, 강나루님도 축하드립니다.
날씨가 오늘부터 다시 더워지려나 봅니다.
건강 유의하시고, 님도 즐거운 연휴보내십시오.^^

mini74 2022-08-12 0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저도 축하드려요 *^^*

stella.K 2022-08-12 10:46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미니님도 축하해요.^^

thkang1001 2022-08-12 09: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tellar.K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stella.K 2022-08-12 10:47   좋아요 1 | URL
네. 고맙습니다. 님도 행복한 하루되십시오.^^

thkang1001 2022-08-12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tellar.K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초란공 2022-08-14 21: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tella.K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오전 8시부터 밤 12시까지 조그만 가게를 오랫동안 운영하셨던 부모님 생각이 나네요. 저는 아이들을 위해서 그렇게 못할 것 같거든요. ㅜㅜ 노명우 교수의 부모님에서도 그런 부모님 세대의 모습을 또 봅니다.

stella.K 2022-08-15 09:48   좋아요 2 | URL
아고, 별것 아닌데ᆢ고맙습니다. 초란공님 부모님께서도 힘든 삶을 사셨군요.
그렇죠. 당연히 그렇게 못하죠. 그래도 시대가 좋아져서 그렇게 안 해도 좋은 세상이 됐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우리네 부모님들은 다행이다 하실거예요.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한 주 되십시오.^^
 
가운을 벗은 의사들 - 우리가 모르는 곳까지 날아갔던 새들이 있었다
박종호 지음 / 풍월당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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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지만, 저자의 전직은 의사다.


그야말로 어느 날 가운을 벗고 클래식 전문가가 되어 '풍월당'이란 클래식 전문 음반숍의 주인장이 되었다. 그것은 확실히 놀라운 행보고, 한때 인구에 회자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고민 많은 의학도들로부터 심심찮게 상담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내가 TV를 봐도 너무 많이 봤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의학 드라마나 영화들을 보면 의사들은 하나같이 잘 생기고 진지하지 않는가. 그래서 은연중에 의학도들은 그 어려운 공부를 선택한 만큼 선택에 후회가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의대 청춘들이 자신의 선택을 고민하고 있었다. 하긴 그게 온전한 자신의 선택이겠는가. 대부분 부모의 권유나 강요가 더 많지 않을까. 어쨌거나 그들은 청춘이다. 흔들리니까 청춘이다.



저자도 고민이긴 할 것이다. 본인은 과감하게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자신이 원하는 일 하지만 남에게까지 그렇게 하라고 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한다고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래도 후회는 남지 않겠지.) 안 그래도 저자는 오래전부터 의학도를 자녀로 둔 학부모들로부터 공공의 적이 되어왔는지도 모른다. 괜히 어렵게 의대 들어가서 공부 잘하고 있는 아이에게 쓸데없는 바람만 넣는다고 하지 않을까.



그런데 저자는 정말 그런 것에 아랑곳 않는 걸까? 그냥 저자가 선택한 길도 만만치 않다며 하던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해도 부족할 판에, 오히려 역사적 인물 중 의사 가운을 벗고 자신의 길을 간 사람을 찾아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물론 저자가 그러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좋게 말하면 대범하고, 어찌보면 다소 선동적이란 느낌도 든다.



아쉽다면, 의학의 길에서 잠시 방황하다 뭔가의 경험이 오히려 그 길로 더욱 정진해 나간 사람 한두 사람쯤은 다뤄준다면 형평에 맞지 않을까. 마치 의사는 전혀 할 일이 못된다는 듯 하나같이 그 길에 등을 돌린 사람만을 다뤘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런 사람이 전혀 없진 않다. 저자가 다룬 슈바이처는 평생 가운을 벗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의사 말고도 여러 일을 함께 해서 솔직히 지구인 같아 보이진 않는다. 존경은 할 수 있지만 저자의 카테고리에선 참고가 될만한 사람은 아닌 성싶다.



게다가 인물들이 너무 행적 위주로만 다루고 그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떠나온 의사의 길을 훗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다루고 있지 않다. 한마디로 이 책은 의학도면서 진로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썼다기보단, 오히려 자녀에게 의사만이 길이라고 하는 부모가 읽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단점은 있다. 그렇다면 여기 나온 사람만큼이나 성공할 자신 있다면 그렇게 하라고 강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 중요한 건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가 되는 것 아닌가.



아니면 나 같이 의학은 쥐뿔도 모르는 일반인들이 읽으면 좋을 듯하다. 솔직히 나는 읽으면서 새롭게 알거나 막연히 알았던 걸 구체적으로 알게 된 이야기도 많았으니까.



이 책을 보면, 의사 가운을 벗고 가장 많이 선택한 직업은 작가였다. 안톤 체호프를 비롯해 서머싯 몸, 모리 오가이, 미하일 불가코프, 아서 코난 도일은 소설가로, 정신과 의사였던 슈니츨러와 신경과 의사인 올리버 색스나 조너선 밀러는 저술가가 됐다.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그건 그 어떤 직업과도 겸해서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밖에 대통령 되거나 혁명가의 길을 간 사람이 있고, 음악이나 교육자가 된 사람도 있다. 이렇게 저자가 다룬 사람들은 우리가 알만한 위인들이다. 한국인으로 딱 한 사람 서재필을 다룬 건 이례적이란 느낌마저 든다. 글이 너무나 평이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은 아닐까 싶다. (결코 폄하할 생각은 없는데) 위인 전기를 읽는 느낌이고, 조금은 단조롭다는 느낌이다. 저자의 책을 많이 읽어 본 건 아니지만 이제까지의 문체나 결이 좀 다르다는 느낌도 든다. 



읽으면서 내내 든 생각은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일 나에게도 어느 의학도가 진로를 상담해 온다면 뭐라고 했을까를 생각했다. 더구나 나는 의학적 지식도 없는 사람 아닌가. 앞서도 말했지만, 차마 적성에 안 맞으면 그만두란 말을 하지 못할 것 같다. 사실 마음으론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란 말을 굴뚝같이 하고 싶지만 말이다. 괜히 그랬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인생이란 게 그렇게 모 아니면 도로 두부 자르듯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냥 적당히 두루뭉술하게 요즘 흔히 하는 말로 본캐니 부캐니 하면서, 요즘은 옛날과 달리 자기 전공도 살리면서 다른 일도 취미 삼아 하는 경우도 많으니 정 원하면 그렇게 하라고 하는 정도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면, 결국 무엇을 선택해도 네가 하는 거고 그에 대한 책임도 네가 지는 거라며 적당히 마무리하겠지.



그래도 그 사람이 태어나 처음으로 진지한 고민과 선택을 하는 것이라면 난 당연 응원해 주고 싶다. 의사가 되는 것만이 길은 아니니까. 그런데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나는 이 책과 함께 A. J 크로닌이나 이국종 교수의 책도 읽어 보라고 권할 것 같다. 의사가 되는 것만이 길은 아니지만 의사도 분명 길은 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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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6-25 2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별3개를 주셨지만
(제 경우 3개는 비추, 조금 나쁜책ㅋ)흥미롭게 써주셔서
읽어보고 싶네요. 작가가 된
경우가 많다는것도 재밌고요.
누구나 겸할 수 있는 직업이긴 하지만 누구나 이렇게 책에서 언급될 정도까진 아니지 않나 싶네요. 누구나 스텔라님처럼
쓰지도 못할테고요*^^*

stella.K 2022-06-25 20:21   좋아요 2 | URL
맞아요. 적어도 별4개 이상은 돼야 마음이 동하긴 하죠.
저 같은 경우엔 3개면 그냥 읽으려면 읽고입니다.
사실 박종호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예요.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글을 잘 쓰거든요.
이 책도 나쁘진 않은데 뭔가 기획을 잘못한 건 아닌가 싶어서요.
조금 더 신중해야 하는 건 아닌가 싶어요.
마음에 안 들면 때려 쳐라는 식으로 선동적이 될 수 있거든요.
그점 땜에. 본의 아니게 평점이 짰습니다.ㅋㅋ

전 이제 리뷰는 자신 없어졌어요.
좀 더 꼼꼼하게 써야하는데 그게 웬지 안 되고 있어요. 흐흑~
예쁘게 봐주셔서 고마워요.^^

2022-06-25 2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2-06-25 20:25   좋아요 2 | URL
그렇구나. 제가 느끼고 있는 게 아주 근거가 없는 게 아니었군요.ㅎㅎ
보기에도 부티나 보이잖아요. 사진 보면...
근데 글은 참 잘 쓰는 것 같아요.^^

2022-06-25 2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2-06-26 13: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의학 드라마 보면 의사들은 출혈 보는 수술 끝내고 밥맛이 좋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들 중 대학교수를 겸하고 있는 이들도 많아요. 주로 국문과나 문창과.
논문 쓰는 일과 작가로서 작품을 쓰는 일은 많이 다를 것 같네요. 하나는 학문적, 하나는 예술적.
저는 요즘 춤꾼이 멋져 보이더군요. 제대로 시간을 즐기는 걸로 보여요. 실제로 제가 발레 배우다가 현대무용도 배워 봤는데 확실히 매력 있는 장르예요. 다재다능한 사람 보면 부럽죠.
아니 한 가지라도 뛰어나게 잘해도 부럽 부럽.^^.

stella.K 2022-06-26 20:26   좋아요 1 | URL
언니는 활동적인게 맞나봐요.
저는 그림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생각만.ㅋ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도 그림을 배경으로 하고 있죠.
주인공이 화가고 주변 인물도 그렇거든요.
이제 이 나이 먹어서 책보며 골머리 썩혀가며 공부하는 건
그렇고 미술이나 악기 하나쯤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yamoo 2022-06-27 16: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별3개...주례사 리뷰보다 아쉬우면 아쉬운 책이라고 솔직히 밝히는 리뷰가 좋은 리뷰인거 같아요. 박종호는 몰루는 저자라 제가 뭐라 할 수는없고 스텔라님이 좋아하는 작가라니 괜찮은 글을 쓰는 작가인듯 합니다..그래도 별3개라 저는 찾아 읽지 않을 듯해요....그나저나 근 한달만레 글 오리셨네요~!!ㅎ

stella.K 2022-06-27 18:09   좋아요 1 | URL
야무님이 저한테 괸심이 많으신 줄 몰랐습니다.ㅎㅎ
그러게요. 점점 리뷰 쓰는 게 귀찮네요.
예전엔 책 읽으면 2, 3일 안에 쓰고 어떻게 쓸 것인가
고민도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리뷰 잘 쓰시는 분도 많고
공들여 써도 이달의 거시기도 안 되고 그러니 의욕이 바닥을 치네요.
뭐 다른 일도 해야하기도 하고.ㅋ

이 책은 약간의 호불호가 있을 것 같아요.
전 좀 아쉬웠습니다. 기대를 많이해서 그런가 봐요.^^

희선 2022-06-28 01: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반대도 많을 것 같아요 다른 거 하다가 의사가 된 사람... 그건 더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의사였다 작가가 된 사람 여럿이죠 의사가 적성에 맞는 사람이 있고 맞지 않아도 하는 사람 있겠습니다 지금은 의사면서 작가기도 한 사람도 있군요 하나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데 여러 가지 잘하는 사람 부럽습니다 저는 그런 거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네요


희선

stella.K 2022-06-28 17:58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저는 적성에 안 맞으면 잘 못하죠.
그래서 학교 성적도 들쑥날쑥이었습니다.
그런데 싫어도 해내는 사람들 보면 존경스럽기까지 하더군요.
비싼 공부하는데 적성에 안 맞으면 정말 난감할 것 같긴합니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자기 좋아하는 일에 올인해 봐야할 것도 같고.
역시 인생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ㅠ
 
일터의 문장들 - 업의 최고들이 전하는 현장의 인사이트
김지수 지음 / 해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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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큼 자신의 존재를 공고히 하는 게 또 있을까.

예전, 적어도 새마을 운동에서 민주화 운동 세대까지는 일에 목숨 걸었던 세대다. 그래서 그 인력들이 독일도 가고, 중동도 갔다. 열사의 기후를 이겨내고 일하는 민족은 우리나라 사람들 밖엔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뭐든지 빨리빨리도 우리나라에만 있는 일에 대한 태도다. 하지만 우린 어느새 그 세대의 일하는 방식을 경멸하거나 비아냥 거리게 되었다. 누가 들으면 섭섭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이제 일은 삶에 전부가 되거나 제일의 수단이 아니라는 말도 될 것이다. 또한 그것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즉 하나의 사고와 철학 체계로 보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솔직히 철학이란 게 배고파서는 절대로 잘 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지 않는가.


사람은 배가 어느 정도 채워지면 딴짓하는 존재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그래가지고 딴짓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단계에선 철학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 나온 18인의 인터뷰이들은 근면 하나만큼은 인정해 줘야 할 사람은 아닐까 한다. 즉 자신이 이룬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부단히 연마하는 존재들이다. 인간이 짐승과 다른 건 바로 이런 점일 것이다. 길거리에서 호떡을 팔아도 자신만의 노하우와 경영 철학을 가지고 있다면 달라 보인다. 사람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것에 있지 않았을까.


개미가 열심히 일만 하는 것 같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고 한다. 개미 집단을 보면 70%만 일을 하고 나머지 30은 빈둥거린다고 한다. 또 그것에 대해 70의 일개미들은 별 불만이 없다고 한다. 그건 하나의 질서로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어려움에 처하면 그 빈둥거리는 개미들이 대신 해결해 준다나 뭐라나. 즉 게으른 개미는 그 상황에 맞게 존재하는 것이다. 게으름을 악덕이라고 보는 건 인간밖에 없다는 말도 있다. 그러므로 누구는 절대로 100%의 힘을 발휘해서 일하려고 하지 말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매 순간 그렇게 힘들게 일하면 아프거나 번아웃이 됐을 때 구재 받을 수 없다고. 나를 구할 사람은 나 밖엔 없기 때문이다. 새삼 일에 대한 사고가 이렇게까지 진화했나 놀랍기도 하다.


난 이 말에 동의한다. 난 원래 그렇게 애써 공부하고, 힘써 일하는 타입이 못된다. 물론 한때는 열심히 일한 적도 있다. 그런데 웬걸 열심히 일했더니 일종의 신경쇠약 같은 것에 걸려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그 후로 나는 절대로 그렇게 일하지 않는다. 난 무조건 피곤하거나 힘들면 쉰다.


'짧고 굵게'란 인생 모토도 건강하고 멋모를 때나 가져 봄직한 거지 나이 들면 이 모토도 바뀐다.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지니 '가늘고 길게'가 된다. 까짓 거 죽기 밖에 더하겠어란 말도 그다지 만만한 말은 아니다. 죽으면 누구 손해인데. 그래서 누구는 근근이 살라 고도 한다. 그렇다고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예전보다 인프라가 좋은 시대다. 맨땅에 헤딩이란 말도 옛말이 된지 오래다. 사람들은 이제 맨땅에 헤딩하지 않는다. 물론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지금은 있는 것을 가지고 변형시키고 발전시키는 시대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이다.


늘 우리나라 교육은 주입식이 문제인데 가장 많은 것을 경험해야 할 고등학교에선 일의 기능이나 방법은 가르쳐 줄지는 몰라 일의 철학 같은 건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건 역시 그 분야의 멘토를 만나야 (조금이나마)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니 할 수 있으면 멘토를 만나라고 권하고 싶다. 일에서든, 삶에서든 멘토를 만나 자기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첫 번째로 실린 김미경 대표의 말은 울림이 있다. 그녀는 울고 있는 나를 도울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내가 나를 돕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공부라고 했다. 맞는 말 아닌가. 그래서 이런 책도 읽는 것이고.


또한 내 상처에 내가 답하는 것이 철학이라고도 했다. 상처받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 있을까. AI는 가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상처도 받는다. 그래야 성숙할 수 있다. AI는 모든 것을 프로그래밍화하기 때문에 상처받지 않는다. 일을 지시하고 해결해야 하는 고용인의 입장에선 사람보단 AI가 훨씬 좋고 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기계는 성능이 좋아질 수는 있어도 결코 성숙하지는 않는다. 성능이 좋아지는 것을 가지고 성숙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람이 사람을 믿어 줬으면, 기다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일하는 기계를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일을 통해 자기 성취를 이루어야 하는 인간을 위해 썼기 때문이다. 그걸 자꾸 일 못한다고 구박하거나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기계로 대치한다면 인간은 어디서 자아를 실현하며 성숙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아무리 AI가 발달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사람의 숨결이 미처야 가능한 분야는 여전히 존재한다.


이 책은 멋진 책이다. 인터뷰 전문 기자가 발로 뛰어가면서 쓴 글이다. 가끔 어떤 글은 자신의 말을 조금 줄이고 인터뷰이의 말을 더 많이 쓰면 좋지 않을까 싶은 곳도 간혹 보이긴 했다. 하지만 뭐 크게 흠이 될 건 아니고 일에 관해 즐겁게 보고 사색할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내가 관심 있어 하는 사람 백현진이나 장기하 등의 이야기도 읽을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그들은 열심히 최선을 다하라고만 하지 않는다. 난 그렇게 말하는 게 정말 좋았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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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2-05-26 07: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요즘 사람들은 일에 미쳐 있지 않죠. 저같은 사람도 피부로 와 닿아요. 이제 주 사일 근무 시대라니깐… 씨제이는 금요일 두시면 퇴근하는 기업도 있다 하던데요. 동생이 말해주더라구요. 이제 개인의 시간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어요!!!

stella.K 2022-05-26 19:49   좋아요 1 | URL
왓, 주 4일 근무 추진한다더리 벌써 그렇게 시행하는 곳이 있군요.
금요일도 두 시 퇴근이면 완전 일할 맛 나겠어요.
예전엔 학교나 기업체도 토요일만 기다리며 다녔는데
정말 격세지감입니다.
하지만 또 그에 못지않게 아직도 열심히 일해야 돌아가는 기업체도 많겠죠?
기업 환경이 일하는 사람을 차별하지 말아야 하는데...

페크pek0501 2022-05-30 22: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난 무조건 피곤하거나 힘들면 쉰다.˝ - 현명하십니다. 저도 그렇게 해요. 이젠 체력이 바닥 나면 몸살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바닥 나기 전에 스톱 합니다. 건강을 우선으로 챙기기, 입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 멘토가 없었다는 게 아쉽게 느껴졌었어요. 멘토가 있었다면 많이 성장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독서 지도 같은 거요. 선배로서 후배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고 추천해 주는 그런 멘토가 있었다면 나의 삶이 지금과 많이 다를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땐 놀기 바빴죠. 그때 독서 동아리 같은 것에 소속되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지금 생각해도 젊은 시절을 알차게 보내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

stella.K 2022-05-31 10:41   좋아요 2 | URL
젊었을 때 한때 열심히 살아왔으며 됐잖아요.ㅎㅎ
그래도 제 나이 또래 사람들 여전히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그들 생각하면 존경스럽기도하고, 안쓰럽거든 하고.
그들을.생각하면서 너무 게을러지진 말자 생각해요.ㅋ

우리 땐 아예 멘토란 개념이 없었잖아요.
그래도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해요. 그죠?^^

희선 2022-06-14 0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다려야줘야 한다는 말씀 맞네요 누구나 처음엔 실수하기도 하는데, 잘 하는 사람은 그때를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실수하면 안 되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잘 하는 사람이 도와주면 되겠지요 기계는 실수하지 않고 일을 잘 하겠지만, 사람 같은 마음은 없어서 안 좋을 듯도 합니다 사람을 믿으면 좋을 텐데...


희선

stella.K 2022-06-14 10:13   좋아요 1 | URL
저는. 키오스크도 사실 마땅찮아 않더군요.
물론 기계치이기도 하지만 직원과 고객이 서로
돈 주고 받으면서 인사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는데
서로 대면을 잘 안하려고 하니 이러다
자발적인 대인기피증이 걸릴 것 같아요.😂

2022-06-21 0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21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21 12: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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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22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22 17: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22 1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식물의 방식 - 서로 기여하고 번영하는 삶에 관하여
베론다 L. 몽고메리 지음, 정서진 옮김 / 이상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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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땐 식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중학생일 때 부모님은 한때 화초를 거의 공격적으로 사들인 적이 있다. 부모님이 40대 중후반쯤 되셨을까. 그 화초들을 봄이면 마당에 내놓고 찬바람이 불면 안으로 들여놓아야 하는 게 번거롭지는 않을까 싶은데도 두 분은 그 일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셨다. 그걸 보면서 사람은 나이가 들면 식물을 좋아하게 되는 걸까 싶기도 했다. 그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식물을 좋아하는데 따로 정해진 나이가 있는 건 아니겠지만 나도 나이가 들수록 나무와 꽃이 좋아진다.

올봄 울진에 큰 산불이 났다. 이글거리는 불에 타들어 가는 나무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저것들이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얼마나 뜨거울까, 발 달린 짐승이면 피하기라도 해 볼 텐데 그 뜨거움을 온몸으로 맡고 있으니 보는 나도 타들어 가는 심정이었다. 놀라운 건 그렇게 새까맣게 화마가 지나간 자리에도 새싹이 돋고 나무가 자란다는 것이다. 숲의 복원력이 놀랍다. 그만큼 식물의 생명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하긴 동네 공원에 볼 품 없이 서 있는 나무도 나보다 나이가 많을지 모른다. 600년 이상을 사는 소나무도 있다니 않았는가. 어디 그뿐인가. 시멘트 바른 담벼락에서도 풀꽃이 자란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자라고 싹을 틔우는가 궁금하고 관심이 갈 만도 하다.

이 책은 이런 막연한 식물의 생장 방식에 대해 보다 정밀한 정보를 알려주고 있다. 식물은 환경에 맞추어 자신을 조율하고 조절한다. 또한 경쟁하고 협력하며 친족 범위를 넓힌다. 적극적으로 참여해 환경을 변화시키고, 다양성의 호혜적 이익을 인식하고, 서로를 돌보기도 한다. 그냥 어느 곳엔가 심어져 땅으로는 뿌리를 단단히 하고 위로는 가지를 뻗칠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식물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뭔가를 끊임없이 작동시키고 있었다. 참으로 은밀하고 긴밀하지 않은가.

식물이든 동물이든 생명이 사는 방식은 경이롭고 놀랍다. 어쩌면 그래서 우린 앎의 경지가 넓어지는지도 모르겠다. 참, 그래서 그렇게 시작된 나의 부모님의 화초 가꾸기가 나름 오래갈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사이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고 한동안 엄마 홀로 화초를 돌보다 이사하면서 자연스럽게 키우지 않게 되었다. 글쎄 아버지가 좀 더 오래 살아 계셨다면 화초 키우기가 좀 더 오래갔을까. 두 분이 함께 화초를 애지중지 돌보는 모습도 좋았는데 지금 엄마는 연로해서 돌볼 여력이 없다. 성격상 긴밀하고 은밀한 것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엄마는 여전히 꽃과 나무를 좋아한다. 나 역시 그렇다. 그런 걸 보면 사람은 동물보단 식물을 더 좋아하고 반응하는 존재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책이 작고 가볍지만 내용은 간결하면서도 알차다. 식물에 관심 있는 사람은 한 번쯤 읽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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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2-05-19 23: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식물도 경쟁이 심할 거예요 서로 돕는 것도 있겠지만... 소리가 나지 않아도 식물은 나름대로 힘을 다해 사는군요 나무는 사람보다 오래 살고... 식물, 나무는 산불이 나도 피하지도 못하네요 세상에 사람만 있으면 안 좋겠지요 식물이 사람보다 더 빨리 세상에 나탔겠습니다 함께 살아야 할 텐데,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네요


희선

stella.K 2022-05-20 15:15   좋아요 2 | URL
그렇겠죠? 지구에서 일생을 산다는 건 다 쉽지 않은 일 같아요.
경쟁도 해야하지만 서로 협력해야 공존한다는 걸 식물도 알고 있다는 게
참 신비로운 것 같아요.

mini74 2022-05-20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해바라기를 심었는데 아직 아기해바라기라서 햇빛 따라 움직이더라고요. 아침 위치랑 저녁 위치가 다른 ㅎㅎ 넘 신기했어요. 전 식물연쇄살인마라 ㅠㅠ 파나 심어놓고 먹을까 했는데 언니가 해바라기씨 하나를 주더라고요. 또 보고있으니 좋긴 합니다 *^^*

stella.K 2022-05-21 2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식물연쇄살인마! 저도 그런데ᆢㅋㅋ 지금 한창 예쁘겠어요. 아기 해바라기. 예쁘게 잘 키우세요.🤗

페크pek0501 2022-05-24 16: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식물도 서로 경쟁하며 자란다는 걸 어느 책에서 읽고 놀란 적이 있어요. 많은 나무가 함께 있을 경우에 힘이 있는 나무가 더 좋은 자리를 확보하여 줄기를 뻗으며 자라겠지요.
제가 화초에 물을 줄 때 처져 있던 잎이 갑자기 확 올라올 때가 있어요. 이때 놀라운 생명력을 느끼죠.

stella.K 2022-05-24 16:43   좋아요 1 | URL
언니도 화초를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언니와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종들은 다 경쟁을하면서
사 나봐요. 또 그러면서도 경쟁만하며 살 수 없다는 걸
깨닫게도 되고.^^

프레이야 2022-05-28 1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식물은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내니 어찌보면 훨씬 강한 것 같아요 동물보다. 제가 식물 가꾸기에 능력이 부족한데 그게 정성과도 연관있겠죠. 이 책 마음 가네요 찜!

2022-05-28 12: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5-28 1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