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짓다 - 문호와 명작을 만들어 낸 보이지 않는 손
최동민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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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한번 읽어 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읽게 됐다. 판형은 좀 작은 편인데 빈티지한 느낌이 좋다. 작가의 어원이 짓다라고 하던데 제목도 잘 지은 것 같다. 


이 책은 당대 유명 작가와 그를 있게 한 보이지 않은 조력자에 관한 이야기다. 그 조력자는 편집자일 수도 있고, 연인이나 배우자일 수도 있으며 자매나 형제일 수도 있다. 또 아주 드물게는 경쟁자일 수도 있고. 어떤 식으로든 글을 쓰도록 자극을 주고 도움을 줬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어쩌면 2등이라고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조명했다. 더구나 문학사에서 그런 사람들이 뭐 그리 중요했겠는가. 작가로 주목받기에도 힘든데. 그래도 저자가 이렇게 다뤄줬다는 게 새삼 기특하고 고마운 생각도 일견 든다.


하루키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작가는 링은 오르기는 쉽지만 오래 버티기는 어렵다고. 그것에 대해 저자는 말하기를 작가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 특별히 싸울 상대도 없고, 그저 링에 올라 멀뚱히 앉아 백지를 바라보는 것 그게 전부다. 이런 규칙뿐이기에 승리나 패배가 기록되질 않는다고. 하루키가 이런 말을 하니 작가는 뭔가의 천형이 있는 것 같아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왜 그처럼 많은 작가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데뷔작 내지는 초기작을 내고 조용히 사라지는지 알 것도 같다.


사실 우린 몇몇 작가들이 계속 오래도록 작품을 내니까 그 일도 할만 한가보다 싶지만 알고 보면 그런 작가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고, 전업작가도 그리 많은 편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지. 어느 직업 세계에서나 별이 된다는 건 너무 힘이 든다. 그래도 그걸 해 내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볼 때 그 사람에게 박수를 쳐주기 보다 세상에 못할 일은 없겠구나란 생각이 먼저 든다. 단지 다른 건, 저 사람은 해냈다는 것이고 나는 아직 안 했거나 못했다는 것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읽다 보면 나는 운명론자(?)는 아닌데, 사람은 평생 한 번 정도는(그보다 몇 번은 더 할 수도 있고) 은인을 만난다고 하던데 과연 그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작가에게도 통하는 말인가 싶기도 하다. 사실 작가는 혼자 쓰는 고독한 작업자들 아닌가. 근데 그렇지 않다는 걸 이 책은 증명해 보이고 있다.


특히 이 책의 첫 번째로 나오는 <<자기 앞의 생>>으로 유명한 로맹 가리의 보이지 않은 조력자이자 그의 어머니인 니나 카체프의 조력은 그야말로 인상적이기도 하고 눈물겹기도 하다. 저자가 왜 이 두 사람을 가장 먼저 조명했는지는 알 것도 같고.


하지만 내 개인적으론 (좀 조심스럽지만) 니나는 자신의 아들을 조력했다기 아들이 엄마에게 작가가 되도록 가스라이팅 당했다는 느낌이 든다. 또 어찌 보면 그렇게 가스라이팅 당할 것 같으면 좀 더 근사하고 강력한 뭔가에 당할 일이지 작가가 뭐 볼 일 있다고 그럴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그는 엄마가 하자는 대로 쫓아서 다 했다. 그나마 엄마의 바람대로 나중에 정계에 입문해서 장관이 됐으니 여한은 없겠지만.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니나의 희생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 모자 사이엔 뭔가의 간극이 있어 보이긴 한다.


어쨌든 이 책은 흥미롭긴 하다. 작가가 저 혼자되는 것 같아도 절대 그렇지 않다. 여기엔 다루지 않았지만 하루키도 그처럼 세계적인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건 아내와 좋은 편집자가 있기에 가능했다. 이렇게 누군가 조력자가 있다는 건 상당히 중요하다. 작가는 혼자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 나의 글을 기다려 주고 냉정하게 조언해 줄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없다면 만들어야 한다. 특히 요즘 젊은 작가들이나 아마추어 작가들은 혼자 쓰지 않고 그룹을 만들어 서로 도와 가며 활동하기도 한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책을 좋아하긴 한다. 이를테면 작가의 이면을 다룬 책들 말이다. 유려한 문체도 좋고, 무엇보다 저자의 시도가 참신해서 읽어 볼 만하다. 하지만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뒤로 가면 갈수록 뭔가 뒷심이 약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조력자를 다루기보단 작가에 대해 다루고 대충 마무리하는. 뭐 대체로 책들이 그렇긴 하다. 끝까지 뒷심 좋은 책은 별로 많지 않다. 그런 것을 감안할 때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공들인 흔적은 느껴져 이 정도라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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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4-01-15 2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 역시 되어가는 존재인가 봅니다. ‘전업-’이라는 접두어는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든 선망의 접두어기 아닌가 싶네요. 전문성을 보다 강조하여 ‘전업백수’였으면 좋겠습니다.^^ 이정도면 그냥 혼자 살아야겠죠? ㅋ

stella.K 2024-01-16 19:55   좋아요 1 | URL
ㅎㅎ 지금 초란공님이 하시는 일도 전업 아닌가요?
제가 전업 백수입니다. 전업 백수도 쉽진 않죠. ㅋㅋ

초란공 2024-01-16 21:50   좋아요 1 | URL
뒷심 있는 전업 백수가 되는 일은 더욱 쉽지않을 듯 합니다. 특히 ‘과로’하지 말아야 하고요. ^^ 건강 잘 챙기세요~!

stella.K 2024-01-17 10:29   좋아요 0 | URL
제가 무슨 뒷심이...ㅎㅎ 암튼 감사합니다. 초란공님도 건강하시길.^^

페크pek0501 2024-01-17 15: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력은 필수, 그리고 버티기, 가 중요한 것 같아요. 버티다 보면 좋은 운이 찾아와 좋은 일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러므로 작가는 능력을 키우며 기다리는 자. 인내하는 자, 인 것 같습니다.^^

stella.K 2024-01-17 17:06   좋아요 0 | URL
아, 그 말씀도 맞네요.^^

hnine 2024-02-11 1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최동민이라는 이름이 낯익다 했더니 제가 한때 즐겨듣던 팟캐스트 <작가를 짓다> 진행하시던 분이네요. 거의 매일 들었었는데.

stella.K 2024-02-11 19:53   좋아요 0 | URL
아, 그래요? 이 사람 글은 잘 쓰더군요.
브런치에서 무슨 상 받고 책으로 낸 줄 알고 있는데
팟캐스트도 한다고 듣긴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