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을 잃은 반려인을 위한 안내서
켄 돌란-델 베치오.낸시 색스턴-로페즈 지음, 이지애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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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했던 건지는 모르겠는데, 책이 작고 얇기도 해서 귀여운 애완견을 연상하게 만든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반려동물을 잃으면 어떻게 하라고 조언해 주는 책인데 나름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어 참고해 볼만하다.

 

미국엔 펫로스 상담사가 있는가 보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에도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다. 얼마 전 반려견을 산책을 시켜주는 트레이너가 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말이다. 애견 미용실은 물론이고, 카페나 호텔, 유치원이 있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이렇게 반려동물 산업은 나날이 증가 추세라고 하는데 정작 그것을 키웠던 사람을 위한 일은 얼마나 이루어져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글쎄, 우리나라는 보수적인 사고방식이 있어서일까? 반려동물 천만 시대라고는 하지만 위에서 말한 시설을 얼마나 이용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반려동물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진정한 의미에서 반려로 생각하고 동물들을 키우고 있는 걸까 의문스럽기도 하다. 미국처럼 개에게도 재산을 상속해 줄 수 있는 정도가 돼야 진정한 반려가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거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는 반려라기 보단 그냥 재산 가치 목록 중 하나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펫로스 증후군이 있다고 한다. 단어가 주는 의미가 어렵지 않게 파악되듯 반려동물을 잃고 상심한 마음을 일컫는 말이다. 물론 그것은 육체의 반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것은 가족이나 친구를 잃고 겪는 애도 반응과 같아 우울감, 불면, 식욕부진 같은 증상이 2주 이상 지속되면 의사나 전문 상담사의 도움을 받으라고 권한다.

 

실제로 사람과의 사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상담을 받는 경우는 있을 수 있으나 동물을 잃었다고 상담이 필요하다면 이것에 얼마나 수긍할 수 싶기도 하다. 예전에 집에서 키우던 개는 마당에서만 키우고, 유사시 잡아먹을 수도 있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것에 비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펫로스 증후군을 쉽게 무시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모르긴 해도 펫로스 증후군은 반려동물 산업이 증가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사안이 될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동물에 대한 보수적인 사고방식이 팽배해 있는 것만큼이나 동물에 (때로 과도하게) 집착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는 이유에 대해 정확히 따져봐야겠지만, 그런 사람의 적지 않은 수가 사람에 대한 상처나 사귀는데 어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반려동물(이 경우 주로 개나 고양이가 되겠지만)은 상처를 주지 않으며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세상에 대해 마음에 문을 닫은 사람이 마지막 출구로 그런 양태를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에게도 어느 날 반려견 또는 반려묘와의 마지막이 올 것이라는 것이다. 그랬을 때 그들의 겪어야 할 마음의 상심이 어떨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뿐인가? 그들을 여러 목적으로 사용했을 경우 예를 들면, 자폐나 치매 등 치료 목적이나 소방이나 경찰업무 등에 가담시켰다 사고사 내지는 자연사 하는 것을 지켜봐야 할 때 사람은 펫로스 증후군을 겪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들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경우 부모의 돌봄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니 어떻게 펫로스 상담을 무시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들은 또 어디로 가야하는 것일까? 위에서 열거한 정신적이며 육체적 증상 때문에 병원을 가야겠지만 우리나라는 역시 보수적이어서 가기를 꺼려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설혹 간다고 해도 펫로스 전문 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고.

 

그런데 이 책을 보며 한 가지 더 느꼈던 건, 반려동물 산업이 확산되는 것만큼 과연 우리가 진정한 의미에서 반려동물을 사랑했을까를 되돌아보게도 된다. 우리가 죽음을 목도한다는 건 그 당장은 슬픈 일이긴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삶을 한층 더 깊고 성숙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무조건 죽음을 거부한다고 해서 죽음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비롯해 살아 있는 모든 생물은 다 끝이 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동안 열심히 사랑해야 한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하지만 우린 그것에 훨씬 못 미치는 사랑을 한다해도 말이다.

 

어떤 유명한 명사가 그런 말을 했다. 우리는 반려견의 건강을 위해 하루에 얼마 정도의 산책을 시킨다. 그런데 그 시간이 반려견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주인이 정한 시간일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반려견의 입장에서 볼 때 어느 날은 20분이 걸릴 수도 있고, 어느 날은 40분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개가 원하는 만큼의 산책을 시켜줘야 하는데 우리는 20분이 좋다고 해서 무조건 20분만 산책을 시키려고 한다면 그건 반려견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고. 이 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우리 인간은 뭐든지 지배하고 다스리려고 한다. 좀 격하게 말해서 펫로스 상담 이게 과연 필요한 것인가 싶기도 하다.

 

가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 슬픔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버티는 사람이 있다. 그게 진정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인가 의문을 가져 보게 된다. 그것은 엄밀히 말해 미성숙한 것이며,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죽은 망자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다. 물론 그를 추억하는 거야 나쁜 일이 아니겠지만 언제까지고 슬픔에 빠져 있다면 좋은 일이 아니다. 망자에게도 잊힐 권리라는 게 있다. 그런 것처럼 동물도 마찬가지다. 동물에게도 삶이 있는 것처럼 죽음이 있다.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못해 언제까지나 슬퍼한다면 그건 또 얼마나 민망한 일이 되겠는가.

 

사랑한다면 상대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상대의 눈높이가 돼서 바라봐 줘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상대를 내 눈높이에 맞추려고 한다. 동물조차도 말이다.

 

펫로스에 관해서라면 나 역시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15년 키운 말티즈 제니가 드디어 마지막을 고하려 하고 있었다. 그동안은 언제 죽을까 병색이 완연했는데 그날은 옛날 건강했을 때의 모습을 거의 회복한 듯 했다. 눈도 초롱초롱하고 발에도 힘이 생겨 실내를 뛰어다닐 정도였다. 한동안 내 방에 와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다. 바로 그때 난 녀석의 죽음을 직감했었다. 넌 사는 것이 아니라 죽는구나. 그리고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구나.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런지 하룬가 이틀 만에 녀석은 아무도 지켜보지 않던 새벽에 홀연히 생을 마감했다. 아마도 주인에게 자신의 마지막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한 마리 개도 사람을 위할 줄 아는데 하물며 사람이 죽은 반려동물을 놔줄 수 없다면 부끄러운 일 아닐까? 죽음이란 자연에서 왔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거라지 않은가?

 

책에 보면 이제 막 펫로스가 된 사람에게 금기 사항이 있다. 이를테면 반려견은 또 데리고 오면 되는 것 아니냐 하며 섣불리 슬픔을 위로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다. 생명은 소중한 것이고 존재는 유일한 거니까. 하지만 반려동물은 우리가 돌봐줘야 할 작고 연약한 존재들이다. 기왕 돌봐왔다면 또 돌보게 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도 자식을 잃으면 다신 안 낳을 것 같지만 또 낳아 키우면서 슬픔을 잊기도 하지 않는가?

 

정말로 금기사항이 있다면 이것이다. 이미 죽은 반려동물을 박제로 만드는 것. 우리가 정말 사랑했다면 그 짓마는 하지 않기로 하자. 말했지만 사람에게도 잊힐 권리가 있는 것처럼 동물도 잊힐 권리가 있다. 또 하나 금기사항이 있다면 그건 학대하는 것, 키우다 버리는 것 아니겠는가.

 

책은 아픔을 나누는 방법을 적극 활용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슬픔을 나누고 정신적인 지지를 받으라고 한다. 또 그러다 보면 어느새 위로자가 되기도 한다.

 

책은 이 분야에 대한 소개 정도여서 좀 아쉽긴 한데 한번쯤 읽어 볼만하다. 우리가 반려동물을 정말 성숙한 태도로 키운다면 펫로스 상담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로선 이것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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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16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만 보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을 위한 실용서 같아요. ^^
죽은 반려동물을 박제화하는 건, 진짜 심각하고 잘못된 일이에요.

stella.K 2017-06-16 13:29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게 말야. 하지만 뭐 흔한 일도 아니겠지.
아무튼 반려동물 좋아만 하지 말고 그것을 키우는 사람들의
의식부터 성숙해졌으면 해.

yamoo 2017-06-17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르던 개와 고양이 버리는 넘들은 무슨 생각으로 키우는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버려지는 개를 본 적이 꽤 있는데요. 참으로 인간으로 못할짓이라 생각합니다. 덜덜 떨면서 울부짓는 개들...그런 개들을 버린 넘들은 참으로 개보다 못한넘들이라 생각했습니다.

근데 놀라운 게 상당히 많이 버려진다네요...유기동물 관리하는 곳에서 그러더라구요..그래서 저런 책이 필요한 거겠죠..

stella.K 2017-06-18 18:10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반려 반려 하지만 반려의 의미도
모르고 있는 거죠. 끝까지 책임진다, 함께한다 이런 생각이
가능해야 비로소 반려동물인 거 아니겠습니까?
돈 주고 살 땐 언제고.
문제인 대통령 공약중에 반려동물 복지에 관한 공약도 있는 것 같던데
앞으론 반려동물 키유려면 일정 시간 교육을 이수하고
자격 심사도 하고 좀 이래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반려동물 보육원도 좀 세우고.ㅋ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 미술에 대한 오래된 편견과 신화 뒤집기, 개정판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지음, 박이소 옮김 / 현실문화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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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도발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이미 세계적인 미술품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이를테면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아담의 창조>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모나리자> 같은 작품이 저자는 미술작품이 아니라고 선언한다. 그렇다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단지 로마 교황의 권위와 성스런 의식을 위한 시각적인 은유였다라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로서 이 프레스코화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미술은 아니라는 것이다.

 

갑자기 화가난다. 우리는 지금껏 그게 아름다운 예술품이라고 쇄뇌 당하다시피 배우고 살아왔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의문을 갖지 않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런 작품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다. 하지만 이걸 차마 입 밖으로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런 작품들은 솔직히 기독교 신앙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만들어진 것 아닌가? 더구나 그런 그림의 작자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미켈란젤로나 다빈치의 작품이다. 당시는 기독교가 융성했을 때였을 것이고, 그 작품에 뭐라고 토를 달았다간 반역까지는 아니지만 무식한 사람이라고 했을 것도 같다. 그러니 더불어 작가의 이름도 권위가 있어지는 것은  아닐까? 워낙 유명해 작가의 작품을 뭐라고 하는 건 거의 불경에 가까운 일이고.

그러니 나 같은 사람은 더 말해 뭐하겠는가. 더 이상 이게 왜 예술이냐고 묻지도 따지지도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냥 예술이니까 예술인가 보다며 느끼기 보단 그렇게 알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와 예술이 아니라니? 그럴 줄 알았으면 내가 먼저 말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럴 것 같으면 진작에 말할 일이지 이제 와 뭐하는 건가 싶기도 한 것이다.

 

물론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은 저자와 독자인 나의 입장이 너무나 다르게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작가는 그렇게 선언해 버리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한 권의 책을 냈지만,  나는 그렇게 느끼기만 했을 뿐 뭐라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

 

예술은 강요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자유로운 상상력을 가지고 보고 직접 창작도 해 봐야한다. 저자는 아마도 뭔가에 갇히는 걸 거부하기 위해 이 책을 썼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상상력, 자유로움을 위해 오늘 날 현대미술의 거장들 이를테면 몬드리안이나 뒤샹, 폴록과 피카소 등을 호명했는지도 모르겠다.

 

아, 그런데 이를 어쩌면 좋은가. 이 책은 나에게 스펀지 같은 책이었다. 보면 글자도 많지도 않고, 앉아서 후루룩 금방 다 읽어버릴 책이었다. 그런데 다 읽고나면, 그래서 뭐? 하고 묻게 만든다. 별로 곱씹을 게 없단 말이다. 리뷰 쓸 것이 아니라면 그냥 편하게 읽고 말 책인데 그렇지 않으니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미술작품 특별히 현대미술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고. 오늘은 이 정도에서 리뷰를 대신 해야할 것 같다. 나는 이 책에 대해 호불호를 불허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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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2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6-02 17:32   좋아요 1 | URL
오, 명가명 비상명아라. 멋진 말이군요.
고맙습니다.^^

cyrus 2017-06-02 1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현대미술도 소개되어 있어요? 최근에 제가 눈여겨 보고 있는 책 중의 한 권입니다.

stella.K 2017-06-03 12:59   좋아요 0 | URL
응. 뒤로 갈수록 현대미술이 많이 나오긴 하지.
평점도 놓고. 하지만 내가 미술에 대해 그리 아는 게
없어서 그런지 그저 그렇더군.
그냥 스펀지 같았어.ㅋ

yamoo 2017-06-08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책이네요. 제가 아는 것만 이 책의 표지가 4차례 바뀌었습니다. 표지 바꾸어 값 올리고...아~ 고약하네요..

stella.K 2017-06-09 14:07   좋아요 0 | URL
4차례씩이나요...?
그렇군요. 책값 너무 비싸요.
물론 전 출판사로부터 지원 받아 읽긴했지만.
근데 출판사가 나름 책은 좋은 것 같더라구요.
나름 의식있어요.ㅋ
 
불구의 삶, 사랑의 말 -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하여
양효실 지음 / 현실문화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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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불온하다. 이런 책을 읽기는 또 얼마 만인가? 아니 어쩌면 처음인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내가 읽어 온 책들은 얼마나 지적이고, 정치적으로 올바르며, 합리적인 이상을 꿈꾸는 책들이었던가. 그야말로 승자의 언어로 장식된 메이저급 책인지도 모른다.

러나 이 책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소외되고, 삐딱하며, 외면당하는 사람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옹호까지 하는 흔치 않은 책이다. 그래서 마이너적이기도 하다.

나는 새삼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이 책이 일반인들에게 읽힐 수 있을까를 회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상은 세상이 원하는 언어가 있다. 일반적으로 성공지향적이며, 나의 욕망을 자극하며 업그레이드해줄 만한 언어들을 찾고 공유하길 원한다. 그래서 자기 계발서나 성공한 사람의 회고록이 그토록이나 인기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것과 전혀 반대 선상에 놓여있다. 그러니 이런 책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런데 나는 이 책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좋았고, 인정할만하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사람의 틀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말하려 하는 책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이분법이 아닌 다양성에 주목하고자 했다. 옳고 그름만을 얘기하려고 하면 세상은 그만큼 좁게 보인다. 하지만 다양함을 인정하고 보면 세상은 그만큼 넓게 볼 수가 있다.

책 제목도 제목이지만 부제가 더 인상적이었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하여'다. 어른이 되기를 거부했다던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의 주인공이 생각이 났다. 우리의 사회가 아이들로 하여금 빨리 어른이 되라고 하지만 그런 사회 속에서 어린아이 이길 포기하지 않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가.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 빨리 어른이 돼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늘 미래의 어른의 삶에 저당잡혀 있다. 그들의 외모는 어른의 그것을 좇아 하면서 행동은 여전히 어린아이다. 그러면서 정신은 늘 어른이길 강요받고 있으니 그 아이는 정말 아이인가 괴물인가.
 
본문 1장의 '사라지는 아이들을 위하여'를 읽고 있으니 새삼 나도 반항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고, 지금은 그 어린 시절로부터 너무 많이 떨어져 나왔구나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그럼으로 얼마나 빨리 기성세대의 사고방식과 행동에 편입되어 갔는지 알 수가 없다. 아니 나에게 어린 시절은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그 시절 나는 허무주의자가 되어 세상은 살아 뭐하나 시큰둥 했을 뿐이지 세상을 거부하거나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지 못했다. 그저 그 시절 내가 한 거라곤 학교를 지독히도 싫어했던 것과 방구석에 틀어박혀 책이나 읽는 것이 고작이었다.

책은 1세대 펑크록 밴드 라몬스의 <I Don't Wanna Grow Up>를 소개하고 있다. 성장을 거부하는 노래다. 가사에 보면 '살아갈 유일한 목적은 오늘이잖아'란 말이 나온다. 이 말이 상당히 의미심장해 보이기는 하다. 사람의 나이가 몇이든 그 나이다워져야 하는데 그러지가 못하다. 그것은 부모 탓인 경우가 많은데 혹시라도 내 아이가 같은 또래 아이들에 비해 늦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나은 행동 패턴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것을 알았을 때의 억울함, 분노가 왜 없겠는가?

하지만 록이 대부분 다 그렇듯 분노와 반항을 표현하기만 할 뿐 새로운 이상향은 제시하지 못한다. 살아갈 유일한 목적은 오늘이라면서 어른에 반항하고 순간의 쾌락만을 강조한다. 그것은 또 허무주의를 낳았고 사람들을 같은 길로 몰아갔다. 발상은 좋으나 그 모습은 기성세대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 책에서 주목해서 본 건 영국의 여성 아티스트 사라 루카스다. 그녀는 네 살 때 처음 담배를 피우기 시작해서 아홉 살부터 하루 두 갑 정도의 담배를 피웠던 헤비 스모커였다고 한다. 그녀는 그야말로 불우한 환경 속에서 온갖 비행을 일삼고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인생이 이대로 끝장 나버리는 건 아닐까 두려움에 LP 판을 모두 팔아 히치하이킹으로 유럽을 여행하고, 우연히 미술학교에 들러본 것이 계기가 되어 그 길로 아티스트가 된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그녀가 들어간 골드스미스 칼리지란 곳은 당대 유명한 예술인을 많이 배출한 곳으로서 '잘 그리기 보다 제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예술가라고 가르치는 곳'이라고 한다. 그녀는 무엇보다 과일, 야채, 계란 프라이를 가지고 성기를 암시하는 표현을 하기로 유명한데, 평생 애증 했을 담배를 가지고도 독창적인 예술작품을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 보았다. 역시 독특하기도 하고 익살스럽기도 하다.


역시 사람은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으며, 개천에서도 용 나고,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말을 몸소 증명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우린 담배가 백해무익한 것으로서 사람을 죽인다고 생각하는데 사라 루카스에겐 구원의 매개물이 되었으니 놀랍기도 하다. 이렇게 저자는 사라 루카스를 소개하면서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려 하거든 피우지 말라고 훈계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 주면서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라고 조언한다. 오히려 그것이 그 아이로 하여금 담배를 피우지 않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아이들이 담배 피우는 것에 결코 동의하지 않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실비아 플라스는 그 이름만 들어도 짠하다. 당대 촉망받던 시인이었지만 불행한 결혼생활로 인해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가스 오븐에 머리를 박고 죽어갔다. 그녀는 아버지를 개새끼라며 남자를 증오했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들에게로부터 보호받기 원했던 여자들의 울분을 과감하게 떨쳐버렸다. 저자는 실비아 플라스의 죽음을 해석하면서 그녀가 단순히 힘없고 쓸쓸하게 죽어간 사람이 아님을 증명해 냈다.

또한 아방가르드 한 김언희의 시는 실비아 플라스가 아버지를 개새끼라고 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게 폭발하듯 분출하기도 한다. 그녀의 시는 확실히 파격적이며 전복적이기도 하다. 그녀의 시를 읽고 있으면 이것도 예술인가 싶게 아름답지도 않고 오히려 불편하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의식을 일깨우고 오히려 분노해 주길 바란다. 

이 책은 여러 면에서 우리의 길들여진 의식을 깨우는 책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다소 읽기에는 좀 쉽지 않은 느낌이다. 조금 더 정제된 언어로 독자들에게 다가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요즘 같은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다른 것을 주장하며, 다른 식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걸 비교적 성실하며 진실하게 전달하고 있다.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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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25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속 작품 모두 사라 루카스라는 아티스트가 만든 거죠? 첫 번째 사진의 작품이 성적 관계로 만나는 남성과 여성을 상징하는군요.

stella.K 2017-05-26 12:03   좋아요 0 | URL
책에 의하면 사라 루카스의 작품 경향이 그렇긴 하지만
외설스럽거나 추잡하지 않다는 거야.
상상력이 좋은 것 같아.
그녀도 그녀지만 그녀가 나왔다던 학교가 더 궁금해지더군.
그런대라면 나도 우등생이 되지 않았을까?ㅋㅋ

페크pek0501 2017-05-25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웬일인지 제 장바구니에 있어요.
저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냥 어른인 척하며 살다가 죽을 것 같다는... ㅋ

stella.K 2017-05-26 12:05   좋아요 0 | URL
ㅎㅎ 다들 그렇지 않나요?
저도 그래요.
그런데 남이 어른답지 못하면 그건 또 분개한다는 거죠.ㅠ
이 책 좀 어렵긴 하지만 나름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 같아
괜찮은 것 같아요.
제가 아웃사이더에 관심이 많거든요.
언니도 그쪽 취향이시라면...!ㅋ
 
대한민국의 대통령들 - 누구나 대통령을 알지만 누구도 대통령을 모른다
강준식 지음 / 김영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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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에 대한 총평을 하라면 이 책은 정말로 잘 쓰인 책이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일종의 역대 대통령들로 본 현대 정치사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책의 장점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다. 장면 총리를 포함 12명의 대통령의 공과를 가감 없이 잘 구분해 써 놓고 있다. 덕분에 내가 모르고 있거나 막연히 알고 있는 대통령들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개기가 돼서 나름 이 책에 대한 신뢰가 간다.

 

나 같은 경우 태어난 연대가 그래서 솔직히 박정희 대통령 이전의 대통령에 대해선 별로 아는 바도 없고 관심도 없었다. 얼마나 관심이 없냐면 나 이전의 대통령은 이승만과 윤보선외엔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책에선 다루지 않았지만 과도정부 때 허정 총리가 있었고, 윤보선 이전에 장면 총리가 있었다. 책은 장면 총리가 상당한 젠틀맨으로 묘사가 되고 있는데 그렇게 말하자면 윤보선이나 이승만도 같은 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최규하 대통령까지도. 하지만 정치란 게 그렇게 젠틀해서만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나라 정치사가 몸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그들은 명예롭게 퇴위하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사람은 시야가 깊지 못하면 그저 하나의 이미지로 단순화시키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박정희와 최규하의 대비다. 그 둘은 대통령과 국무총리였다. 날렵한 박정희에 비해 뚱뚱하고 굼떠 보이기까지 한 최규하를 보면서 어린 시절 최돼지란 별명으로 그를 놀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는 결코 무능력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당대 고급진 영어를 구사할 줄 알았던 몇 안 되는 공직자였고, 그로인해 뛰어난 외교를 펼쳤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니 그런 별명이 가당키나 한가? 하지만 그가 굼떴던 것도 일견 사실이기도 했다. 너무 시간을 지연시켜 국정을 그르친 사안도 있었다고 보고되고 있으니까. 어쨌든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 되며 그 사람이 그만한 자리에 있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란 걸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깨닫는다.

 

솔직히 그렇게 따지자면 가장 이해 못할 사람은 전두환 대통령은 아닐까? 그만 생각하면 나도 대한민국의 국민이지만 정말로 이해 못할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은 아닐까?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쿠데타를 일으키고 광주 민주화 항쟁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는가? 그로인해 그는 찬탈하다시피 대통령의 자리를 꿰찼다. 아무리 쿠데타가 그렇다고는 하나 어떻게 민족의 살인마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는 것일까? 민주주의 국가라면서 이건 역사의 수치는 아닐까? 특히 대통령의 자리를 두고도 최규하 대통령과 얼마나 설왕설래가 많았던가?

 

재밌는 건 이 두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양분된 시선이다. 전두환의 입장에서 보면 찬탈이고, 최규하의 입장에서 보면 뺏긴 것이다. 전자의 시각으로 보면 천하의 나쁜 놈이고, 후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리숙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박수도 손뼉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지 않은가? 책을 보면 대통령의 자리 하나로만 봤을 때 전두환이 빼앗은 것 보단 최규하가 내준 것이 타당해 보인다. 무엇보다 최규하가 대통령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만 아니었어도 그는 조용히 국무총리로서의 임기를 마쳤을 것이다. 그런데 박정희가 서거하자 그는 한 순간 의지가 꺾였다고 책은 전하고 있다. 총리라는 게 대통령 유고시 지도력을 발휘해야할 막중한 자리임에도 그는 그러지 못했고 박정희가 사라지자 한낱 뒷방 노인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의 대통령으로서 재임 기간은 8개월이었다. 누가 봐도 고 박정희 대통령 이후 제대로 된 대통령을 세우기 위한 일종의 다리 역할이란 건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세월이 지날수록 자꾸만 전두환이 대통령의 자리를 찬탈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건 얼마 전에 나온 그의 자서전에도 나온 말인데 자신은 대통령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 말을 가지고 엄마와 대화를 나눴을 때도 엄마는 무슨 말을 하냐며 발끈하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빗대어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다고 설명하자 또 금방 수긍했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건 그만큼 한 번 나쁘게 인식되어 버리면 역사를 인식하는 것도 왜곡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엄밀히 말해 우리가 전두환 대통령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쉽게 떼어 내버릴 수 없는 건 그가 경제를 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정치를 나라를 지키는 것과 백성을 먹여 살리는 일이라고 정의한 바 있는데 전두환만큼 이것에 성실하게 부합했던 인물이 또 있을까? 그것은 또 박정희 대통령과 닮아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점에서 퇴임 후엔 어땠을지라도 재임 기간 동안 훌륭한 통치술을 발휘했던 대통령으로 또한 전두환과 박정희를 드는 것에 이의를 재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저자는 그럴 수 있는 것엔 그들이 군 장성 출신으로 훌륭한 용인술에 기인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정치인 출신의 대통령에게서도, 사업가 출신의 대통령에게서도 없는 군의 생리를 가장 잘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감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가 있는데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도 두 대통령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전두환 대통령의 경제 부흥은 단순히 용인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그는 경제에 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독선생을 데려다가 매일 하루 세 시간씩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것이 그의 시대에 경제 부흥이란 걸작을 남기게 되었으니 역시 모든 건 그냥 되는 것은 없으며 대통령도 할 만한 이유가 있겠구나 싶다.

 

하지만 우리가 마지막까지 기억하는 대통령은 전두환이 아니다. 그 점은 또 외신도 불가사의한 것으로 여기는 부분이기도 한데, 세계 어떤 대통령 치고 재임기간 동안 성장, 물가, 국제수지 이 세 마리 토끼를 다 잡기는 대단히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전두환만큼은 이 세 마리의 토끼를 다 잡았으니 대단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국민들에게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지막까지 기억하고 싶은 대통령은 누구일까? 박정희와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한다. 나 역시 그것엔 이의를 달지 않겠지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만큼은 좀 더 객관적일 필요는 있어야 할 것 같다. 물론 그는 한마디로 개천에서 용 난 인물로서 행동하는 양심이었고, 서민의 표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부엉이바위에서 자신의 몸을 던지지만 않았어도 우리가 그렇게까지 그를 애틋하게 생각할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통치술은 대부분의 대통령이 다 그러하듯 신통치가 않았다.

 

이 책의 특징은 약간의 동양적 사관을 담고 있는데 관상으로도 대통령의 됨됨이를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상이 시라소니상이라는 것이다. 시라소니가 어떠한가? 무리지어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홀로 다니는 습성이 있다. 즉 그는 천성적으로 소통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된 후 실망스런 행보를 이어갔고, 야당이나 기업인들에게 소위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으로 낙인이 찍혔다는 것이다.

 

여기서 바로 집고 넘어가야할 것은,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말이다. 그것은 20035.18 기념식 당시 식장으로 입장하려다 한총련 학생들의 시위로 우회해서 들어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 후 5.18 기념재단 간부로부터 사과는 받았지만 이러다가 대통령직을 못해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란 말이 와전 돼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보도가 되면서 탄핵의 밀미가 되기도 했다고 하니 역시 정계라는 게 살벌하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다. 이 비슷한 말을 나중에 박근혜 대통령도 썼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통령의 자리가 역시 쉬운 자리는 아님에 틀림없는가 보다.

 

이왕 박근혜 대통령 말이 나와서 말인데, 그녀는 또 어떠했나? 저자는 박근혜 편을 다루기 전에 시대는 다시 왕조시대로 돌아간 것이 아니냐고 지적한다. 이런 징조는 아버지 부시에 이어 아들 부시가 미국 대통령을 할 때부터 감지했는데, 일본에선 기시 노부스케 총리의 외손자인 아베 신조가, 중국에선 공산당의 원로의 자식들 모임인 태자당에서 시진핑이, 또한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역시 아버지에 이어 아들이나 딸이 총리 또는 대통령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 징조에 우리나라도 편승했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박정희 대통령이 그리웠던 것이다. 그의 카리스마를 그의 딸에게서 보고 싶었던 것이다. 보고 배운 것이 있을 테니 나라를 잘 일끌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1세와 2세대는 반드시 같으리란 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도 그렇게 간단치 않은 삶을 살았겠더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4년 간격으로 양친을 여의고, 하루아침에 내 집 같았던 청와대를 나오고, 믿거라 했던 아버지의 측근들이 자신 한 몸 살겠다고 등을 돌렸으니 그 마음이 어땠겠는가. 그런 와중에 그녀를 거둬줬던 건 최태민이라고 한다. 그것도 그의 꿈속에 육영수 여사가 나타나 도와달라고 부탁을 받아서. 그리고 음지가 양지된다고 IMF는 그녀에겐 기회였다. 갈 곳 몰라 방황하고 있을 때 입당을 권유 받고 그때부터 정치가로서 탄탄대로를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선거의 여왕이란 별명도 얻었다.

 

박근혜가 대통령 선거 때 캠프의 좌장을 맡았던 김무성은 어느 날 기자들에게 그녀가 잘 쓰는 말을 공개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하극상, 색출, 근절이라고 한다. 그녀는 누구든 자신을 비판하면 나이가 많던 적던 하극상이냐고 했고,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나가면 누가 그랬는지 색출하고 이를 근절하려고 하는 영애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그 모든 것이 오늘 날의 불행한 사태를 빚은 것 아니겠는가? 생각하면 화도 나고 안타깝기도 하다.

 

문득 이쯤 되면 대통령 탓만 하고 있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대통령을 생각하는 국민의 의식수준도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우리가 지금까지 어떤 후보에게 투표했는지,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되돌아 봐야 하지 않을까?

 

오늘 우연히 TV를 보니 매 선거 때마다 후보로 나왔던 허경영을 다룬 것 보았다. 물론 그는 허위사실 유포죄 때문에 이번엔 후보로 나오지 못했다. 뭐 워낙에 독특한 사람이라 방송도 그를 가십거리로 밖에 다루지 않았는데, 놀라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라는 것이다.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 중엔 그가 독특하다는 걸 인정도 한다. 즉 맹목적이지마는 않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그를 추종하게 만드는 건 지금까지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가들이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한 반작용이 아니겠냐고 진단한다. 역사적으로 그렇게 해서 나라를 도탄에 빠트린 대표적 인물이 히틀러와 무솔리니라고 한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 둘 다는 투표에 의해 선출됐다는 것. 이건 정말 우리가 생각해 볼만한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글쎄, 청와대의 터가 안 좋은 걸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청와대를 제 집 삼은 대통령마다 나름 시작은 좋았지만 그 끝은 안 좋았다. 물론 그것이 터만의 문제겠는가? 저자는 그것을 대통령의 자리를 개인의 입신영달의 정점으로 간주한 권력자가 너무 많았다고 지적한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그러나 그들은 후보 때부터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대통령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은 있는지 묻고 싶다. 그저 그 자리에 앉고 싶어 하기만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저자는 말미에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첫째, 당신은 왜 대통령이 되고 싶은가? 둘째, 당신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 책은 18대 대통령까지 만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앞으로 1920대 대통령을 뭐라고 쓸지 궁금하다. 새 대통령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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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3 2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05-14 20:34   좋아요 2 | URL
아유, 제 서재가 요즘 왜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리뷰 엄청 열심히 썼는데 좋아요가 이렇게 저조하다니.ㅠ
출력하면 A4 6장 분량인데...
제가 요즘 개인적으로 누군가를 엄청 미워해 씹고 있었는데
벌을 받나 봅니다.
아니면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고 건방졌나요?흐흑~

이 책 기회되면 읽어 보세요.
제가 분량 때문에 다 리뷰 못한 것도 많은데
이 책 정말 좋아요.^^

서니데이 2017-05-13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오늘 여긴 갑자기 비가 많이 와서 조금 쌀쌀하지만 공기가 좋은 밤입니다.
stella.k 님 따뜻하고 좋은밤되세요.^^

stella.K 2017-05-14 20:03   좋아요 1 | URL
읽어주셔서 고맙슴다.
계신 곳이 어딘지...?
여긴 별로 많이 오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바람이 장난 아니게 불었어요.
바람은 4월에 많이 부는데 말입니다.
서니데이님도 오늘 밤 좋은 밤 되십시오.^^

2017-05-14 2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4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5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5-15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대통령에 관한 책은 잘 안 읽어요. 그 이유가 어떻게 보면 제 주관적인 편견이기도 해요. 책 속에서 말하는 ‘훌륭한 대통령의 조건’이 문장으로 보면 수긍하지만, 막상 현실에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봐요. 독자들이 이 조건에 따라 지도자를 고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실패한 지도자가 나오지 않기 위해선 지도자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지도자뿐만 아니라 지도자와 함께 일했던 정치인들이 스스로 반성해야 합니다. 물론, 제가 밝힌 생각도 이상에 가까워요.. ^^;;

stella.K 2017-05-15 18:36   좋아요 1 | URL
그건 그럴 거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그것에 도전해야지 않을까?

사실 이런 책은 저자 자신의 사견이 많이 들어갈 수 있있는 것도 사실이야.
얼마 전 읽은 황상민의 책은 자기 전공인 심리학적 관점
대통령을 분석했다기 보단 그냥 저자 자신이 평소 느꼈던 걸
쏟아낸 것 같아서 좀 아쉬웠지.
그런데 이 책은 그 두께에도 불구하고 난 꽤 재밌게 읽었어.
몰랐던 정치사도 알 수 있었고.
저자가 식견이 대단한 사람 같아.^^

2017-05-15 1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5 1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5 1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좋은 대통령이 나쁜 대통령 된다
황상민 지음 / 푸른숲 / 2017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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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적이 또 있을까? 정부 수립 이후 대통령이 재임 중 탄핵되는 초유의 사태는 확실히 충격적이다. 그러면서 정치에 거의 관심이 없었던 나도 기회 있을 때마다 대통령 후보들의 TV 토론을 챙겨보곤 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그 어느 때 보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선거가 될 것이고, 그 어느 때 보다 투표 참여율이 높을 거라고. 왜 안 그러겠는가? 이전까지 사람들은 후보들을 보고 대충 마음 끌리는 대로 한 사람에게 투표를 하였을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던 대충 알아서 잘 해 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런 줄만 알았던 대통령들이 대를 거듭할수록 점입가경이다. 이래서야 쓰겠는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위기감, 문제의식은 가져야하는 걸 알겠는데 대통령에게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를. 그냥 싸잡아서 비난하고, 무슨 문제만 있으면 광화문에 나가 촛불시위나 하면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다하는 걸까?

 

선거 때만 되면 각 후보들마다 앞 다퉈 자서전 내지는 자전에세이들을 출간한다. 그러면서 그것을 통해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고 자신이 얼마나 진실한지를 선전한다. 물론 이 방법이 아니면 자신을 알릴 방법이 없어서 하는 줄은 이해 못할 것도 없다 치자. 그래서 나라꼴이 어찌됐단 말인가? 그런 애국지사가 어디 그 사람 한 사람이겠는가? 그러면 좀 나아져야 할 텐데 갈수록 혼란스럽기만 하다. 물론 아직도 그런 책을 좋아하고 추종하는 사람이 있긴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책 보다는 이 국가적 위기를 타고 우리는 나라에 대하여 또는 대통령에 대하여 무엇을 요구해야 할 것인가를 얘기하는 책들이 눈에 띄게 많이 나왔다. 이 책도 그런 책중의 하나다.

 

사람들은 대통령 선거 때만 되면 들 끊다가 당선인이 확정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간다. 어떤 이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돼서 좋기도 하겠지만 어떤 사람은 비록 원하는 사람이 된 건 아니지만 그가 잘 해 줄 줄 믿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임기 2, 3년차만 되면 여기저기서 못마땅한 비판의 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말이 틀리지 않는다. 그런 말도 있지 않는가? 우리나라 국민은 모두가 정치 평론가라고. 정치를 비판할 줄 모르면 대화에 끼지도 못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누가 대통령이 되던 지간에 항상 대통령을 저격한다. 그런데 저자가 책에도 언급했지만, 그렇다면 어떤 대통령, 어떤 정부가 되길 바라냐고 물으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이다.

 

지난 20년간을 보더라도 대통령의 하나같은 공통점은 처음엔 정말 나라를 구할 영웅이 되어 청와대에 입성하지만 초라한 모습으로 임기를 마치고 나온다. 이걸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한간엔 그런 말도 있었다. 국민들이 정치 평론가가 돼서 하도 욕을 들어먹는 바람에 기가 쪼그라져 나오는 거라고. 그 말도 틀리지는 않겠지만 다 맞는 말도 아니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국민의 공통분모는 어디서 찾으면 좋을까?

 

저자가 그런 말을 한다. 정치는 결혼과 같은 거라고. 결혼할 때 상대에 대해 콩깍지가 씌는 것처럼 대통령도 그렇단다. 거의 맹목적으로 사람을 좋아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얘기도 한다. 결혼할 때 무작정 이유 없이 좋아서 결혼하지 말라고. 사랑하는데 무슨 이유가 있겠냐고 말하는 쪽은 주로 낭만주의자나 사랑의 순수함을 믿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좀 합리적일 필요가 있긴 하다. 우리나라가 유교문화권이 되놔서 그런지 자기 욕망을 웬만해서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상대는 잘 모를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라는 게 있단다. 자기 욕망을 확실히 드러내면 나중에 그 욕망이 바뀌더라도 최소한 자신이 무엇에 만족했는지 분명히 알기에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대통령도 그러지 않을까? 그저 막연하게 이미지가 대통령을 잘 할 것 같아서 그런 걸로 투표하지 말고 원하는 바를 확실히 드러내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에 뽑히는 대통령은 전 대통령의 전적이 있어서 그 어느 때 보다 대통령하기가 어려울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일견 맞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우린 전직 대통령의 국정농단을 보면서 그 어느 때보다 정치와 대통령을 바라보는 눈이 높아졌다. 그러니 앞으로의 대통령은 얼마나 잘 할 것인지 일거수일투족이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맞는 말일까? 국민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면 의외로 간단할 수도 있다. 적어도 국정을 농단하지 않을 것. 소통할 것. 민의가 무엇인지를 무시로 살필 줄만 안다면 그것만으로도 5년 후 퇴임 때 수고하였노라고 박수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저자가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한다. 먹고사는 데 열심히 신경 쓸 수 있다면, 적어도 내가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거기에만 초점을 두고 잘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그건 정치인이 정치를 아주 잘한다는 뜻이란다. 그건 맞는 얘기다. 추운 날 열일을 제쳐두고, 쉬어야 할 때 쉬지 못하고 지방에서 버스와 기차 타고 광화문 촛불 집회에 참여하는 게 좋은 나라일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다른 잘 사는 나라의 국민은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한다. 뭐 여야가 서로 싸울 거 싸우고, 시정할 거 시정하고 국민을 위해 대신 일해 주는데 무슨 정치 걱정을 하겠는가. 우리도 좀 그래봤으면 좋겠다. 물론 그렇게 되면 나라에 대한 공이 정치인들에게만 돌아가는 것 같아 좀 그런가?

 

지도자의 리더십이 문제다. 지도자의 리더십에 문제가 생기면 나라가 붕괴의 위기를 겪을 수 있다. 가끔은 대통령이 이렇게 문제니 대통령은 꼭 있어야 하는 건가 회의가 들 때가 있다. 그러나 대통령 없는 나라도 있단 말인가? 이번에도 후보들은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새 공략 쏟아내더만 어떤 후보가 대통령이 되건 과연 대통령되면 다 지킬 건가 의문이다. 그리고 설혹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고 해도 자신이 한 말을 지켜 행하는 정치가가 있다면 그건 복 받은 나라일 것이다. 저자 말마따나 나라를 하나의 큰 기업으로 보자면 국민은 주주다. 어느 기업이든 주주가 갑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대통령이 슈퍼 을이다. 이거 문제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한다. 근데 정말 그 말이 맞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제왕이 들으면 억울하지 않을까? 제왕이라면 제왕이 되는 공부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르치는 학문과 덕망을 갖춘 제상이 있었을 것이고. 그런데 박근혜에게 그것을 가르친 스승이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말인데, 대통령학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나는 새로운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하기 전에 아니 입성한 후에도 이것을 공부했으면 좋겠다. 어느 대통령이건 자기 전공과 업적 가지고 권좌를 차지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대통령이 돼서는 끝내 무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더 이상 보고 싶지가 않다.

 

미국은 우리나라 보다 역사도 짧은데 긍지로 여기는 대통령은 몇이나 배출했는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뭔가? 추억삼아 얘기할 대통령은 있어도 정신적 사표가 될 만한 위대한 대통령은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 언제쯤이면 그런 대통령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용두사미의 대통령 보단 처음은 미약하나 후일엔 창대한 대통령이 더 보기 좋은 거 아닌가? 이번에 기대해도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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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03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근혜가 드라마 보느라 공부를 했겠어요. ㅎㅎㅎ

예전에 서울국제도서전 때 박근혜가 책을 산 적이 있었잖아요. 과연 박근혜는 그 책들을 읽었을까요? 알라딘이 ‘대통령이 읽는 책‘이라고 홍보했던 게 기억이 납니다.

stella.K 2017-05-03 13:50   좋아요 0 | URL
헉, 그런 일이 있었니? 근데 왜 난 몰랐지?ㅋㅋ
알라딘도 참...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대통령들 공부 잘 안하나 봐.
김대중 대통령은 늘 책을 가까이 했다는데 말야.
암튼 박근혜에게 제왕적 어쩌구 하는 거 언어 선택을
잘못 하는 거라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