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구의 삶, 사랑의 말 -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하여
양효실 지음 / 현실문화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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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불온하다. 이런 책을 읽기는 또 얼마 만인가? 아니 어쩌면 처음인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내가 읽어 온 책들은 얼마나 지적이고, 정치적으로 올바르며, 합리적인 이상을 꿈꾸는 책들이었던가. 그야말로 승자의 언어로 장식된 메이저급 책인지도 모른다.

러나 이 책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소외되고, 삐딱하며, 외면당하는 사람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옹호까지 하는 흔치 않은 책이다. 그래서 마이너적이기도 하다.

나는 새삼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이 책이 일반인들에게 읽힐 수 있을까를 회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상은 세상이 원하는 언어가 있다. 일반적으로 성공지향적이며, 나의 욕망을 자극하며 업그레이드해줄 만한 언어들을 찾고 공유하길 원한다. 그래서 자기 계발서나 성공한 사람의 회고록이 그토록이나 인기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것과 전혀 반대 선상에 놓여있다. 그러니 이런 책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그런데 나는 이 책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좋았고, 인정할만하다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이 책은 사람의 틀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말하려 하는 책이다. 그러므로 세상을 이분법이 아닌 다양성에 주목하고자 했다. 옳고 그름만을 얘기하려고 하면 세상은 그만큼 좁게 보인다. 하지만 다양함을 인정하고 보면 세상은 그만큼 넓게 볼 수가 있다.

책 제목도 제목이지만 부제가 더 인상적이었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이들을 위하여'다. 어른이 되기를 거부했다던 귄터 그라스의 소설 <양철북>의 주인공이 생각이 났다. 우리의 사회가 아이들로 하여금 빨리 어른이 되라고 하지만 그런 사회 속에서 어린아이 이길 포기하지 않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가.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 빨리 어른이 돼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늘 미래의 어른의 삶에 저당잡혀 있다. 그들의 외모는 어른의 그것을 좇아 하면서 행동은 여전히 어린아이다. 그러면서 정신은 늘 어른이길 강요받고 있으니 그 아이는 정말 아이인가 괴물인가.
 
본문 1장의 '사라지는 아이들을 위하여'를 읽고 있으니 새삼 나도 반항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고, 지금은 그 어린 시절로부터 너무 많이 떨어져 나왔구나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그럼으로 얼마나 빨리 기성세대의 사고방식과 행동에 편입되어 갔는지 알 수가 없다. 아니 나에게 어린 시절은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의문스럽기까지 하다. 그 시절 나는 허무주의자가 되어 세상은 살아 뭐하나 시큰둥 했을 뿐이지 세상을 거부하거나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지 못했다. 그저 그 시절 내가 한 거라곤 학교를 지독히도 싫어했던 것과 방구석에 틀어박혀 책이나 읽는 것이 고작이었다.

책은 1세대 펑크록 밴드 라몬스의 <I Don't Wanna Grow Up>를 소개하고 있다. 성장을 거부하는 노래다. 가사에 보면 '살아갈 유일한 목적은 오늘이잖아'란 말이 나온다. 이 말이 상당히 의미심장해 보이기는 하다. 사람의 나이가 몇이든 그 나이다워져야 하는데 그러지가 못하다. 그것은 부모 탓인 경우가 많은데 혹시라도 내 아이가 같은 또래 아이들에 비해 늦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나은 행동 패턴이기도 하다. 그러니 그것을 알았을 때의 억울함, 분노가 왜 없겠는가?

하지만 록이 대부분 다 그렇듯 분노와 반항을 표현하기만 할 뿐 새로운 이상향은 제시하지 못한다. 살아갈 유일한 목적은 오늘이라면서 어른에 반항하고 순간의 쾌락만을 강조한다. 그것은 또 허무주의를 낳았고 사람들을 같은 길로 몰아갔다. 발상은 좋으나 그 모습은 기성세대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 책에서 주목해서 본 건 영국의 여성 아티스트 사라 루카스다. 그녀는 네 살 때 처음 담배를 피우기 시작해서 아홉 살부터 하루 두 갑 정도의 담배를 피웠던 헤비 스모커였다고 한다. 그녀는 그야말로 불우한 환경 속에서 온갖 비행을 일삼고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인생이 이대로 끝장 나버리는 건 아닐까 두려움에 LP 판을 모두 팔아 히치하이킹으로 유럽을 여행하고, 우연히 미술학교에 들러본 것이 계기가 되어 그 길로 아티스트가 된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그녀가 들어간 골드스미스 칼리지란 곳은 당대 유명한 예술인을 많이 배출한 곳으로서 '잘 그리기 보다 제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예술가라고 가르치는 곳'이라고 한다. 그녀는 무엇보다 과일, 야채, 계란 프라이를 가지고 성기를 암시하는 표현을 하기로 유명한데, 평생 애증 했을 담배를 가지고도 독창적인 예술작품을 만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 보았다. 역시 독특하기도 하고 익살스럽기도 하다.


역시 사람은 그냥 죽으라는 법은 없으며, 개천에서도 용 나고,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말을 몸소 증명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우린 담배가 백해무익한 것으로서 사람을 죽인다고 생각하는데 사라 루카스에겐 구원의 매개물이 되었으니 놀랍기도 하다. 이렇게 저자는 사라 루카스를 소개하면서 아이들이 담배를 피우려 하거든 피우지 말라고 훈계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 주면서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라고 조언한다. 오히려 그것이 그 아이로 하여금 담배를 피우지 않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아이들이 담배 피우는 것에 결코 동의하지 않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실비아 플라스는 그 이름만 들어도 짠하다. 당대 촉망받던 시인이었지만 불행한 결혼생활로 인해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가스 오븐에 머리를 박고 죽어갔다. 그녀는 아버지를 개새끼라며 남자를 증오했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들에게로부터 보호받기 원했던 여자들의 울분을 과감하게 떨쳐버렸다. 저자는 실비아 플라스의 죽음을 해석하면서 그녀가 단순히 힘없고 쓸쓸하게 죽어간 사람이 아님을 증명해 냈다.

또한 아방가르드 한 김언희의 시는 실비아 플라스가 아버지를 개새끼라고 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게 폭발하듯 분출하기도 한다. 그녀의 시는 확실히 파격적이며 전복적이기도 하다. 그녀의 시를 읽고 있으면 이것도 예술인가 싶게 아름답지도 않고 오히려 불편하다. 하지만 그것을 통해 의식을 일깨우고 오히려 분노해 주길 바란다. 

이 책은 여러 면에서 우리의 길들여진 의식을 깨우는 책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다소 읽기에는 좀 쉽지 않은 느낌이다. 조금 더 정제된 언어로 독자들에게 다가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요즘 같은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다른 것을 주장하며, 다른 식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걸 비교적 성실하며 진실하게 전달하고 있다.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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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25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속 작품 모두 사라 루카스라는 아티스트가 만든 거죠? 첫 번째 사진의 작품이 성적 관계로 만나는 남성과 여성을 상징하는군요.

stella.K 2017-05-26 12:03   좋아요 0 | URL
책에 의하면 사라 루카스의 작품 경향이 그렇긴 하지만
외설스럽거나 추잡하지 않다는 거야.
상상력이 좋은 것 같아.
그녀도 그녀지만 그녀가 나왔다던 학교가 더 궁금해지더군.
그런대라면 나도 우등생이 되지 않았을까?ㅋㅋ

페크pek0501 2017-05-25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웬일인지 제 장바구니에 있어요.
저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냥 어른인 척하며 살다가 죽을 것 같다는... ㅋ

stella.K 2017-05-26 12:05   좋아요 0 | URL
ㅎㅎ 다들 그렇지 않나요?
저도 그래요.
그런데 남이 어른답지 못하면 그건 또 분개한다는 거죠.ㅠ
이 책 좀 어렵긴 하지만 나름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 같아
괜찮은 것 같아요.
제가 아웃사이더에 관심이 많거든요.
언니도 그쪽 취향이시라면...!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