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나는 어쩌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신카이 마코도를 알게 되었고, 그것은 실은 이'뷰즈'라는 잡지 때문이었다.     


 이곳 임원되시는 분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데, 그분으로부터 지난 가을 <신카이 마코토 전>을 소개받았고, 나는 가을병이 도지는 것을 최대한 연장해 보고자(그런다고 안 올리 만무했지만) 혼자 그곳을 갔다왔었다. 그분은 내친김에 취재글을 부탁했는데 거절하기가 뭐해 A4 용지 두 장 분량의 글을 써서 보내드렸다. 



그리고 이렇게 자유기고가란 명패를 달고 멋지게 편집이 되어 오늘 내 손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 잡지 알고 보면 꽤 괜찮은 잡지 같다. 아직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디자인도 감각적이고 고급스럽다. 

여기서 잠깐 주요 컨텐츠를 살펴볼까?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특별전의 역동적 사령탑 국립중앙박물관 최광식 관장

i Design으로 구현되는 디자이노 믹스의 축제를 이끌다 서울 디자인올림픽 총감독 천의영

미래의 행복한 휴먼도시를 디자인하는 행복설계사 팀장정두용 인천도시디자인 팀장 

푸른 강은 흘러라 감독 강미자& 배우 김예리  

불황을 걷을 기다림과 조절- KIAF의 부담과 기대 

현대 무용의 별이 지다 머스 커닝엄 Merce cunningham 

상실의 시대를 건너 구원으로 향하는 여정 <1Q84>와 하루키 

등이다. 내 글은 166p쯤에 자리하고 있다.   

궁금하신 분은 직접 사 보시길...(그럴리야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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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11-30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궁금한데요. 잡지가 참 멋지네요

stella.K 2009-11-30 14:37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도 받아보고 놀랐습니다. 이렇게 멋있는 줄은...!^^

카스피 2009-11-30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카이 마코토라면 혼자서 30분짜리 단편 에니메이션 별의 ○○(아이고 갑자기 기억이 안나네요)을 만든 그 감독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stella.K 2009-11-30 19:56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별의 목소리요.^^
 

  책을 읽다보면  오독을 피할 수 없는 없는가 보다.  

내가 이 책을 언제 읽었던가?  

한동안 나도 하루키를 좋아했던 적이 있었다. 소싯적 이야기지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의 장편이라곤 <노르웨이 숲을 걷다>가 유일하고, 나는 거의 그의 단편을 주로 좋아했던 것 같다. 이러고도 내가 과연 하루키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라면, 그는 일본 사람이지만 일본풍의 소설을 쓰지 않고 미국적 소설을 쓴다는 것이었고 등장인물의 자유분방함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난 어느 틈엔가 하루키를 잊었다. 그러다 우연히 <하루키와 노루웨이 숲을 걷다>가 눈에 띄었고 그래서 오랜만에 읽어줬다. 이 책은 어느 하루키 매니아가 그를 입체적으로 취채해 한 권의 책으로 만든 것으로서 가볍게 읽어줄만 하다. (물론 나 개인적으로는 책의 가벼움이 좀 불만이긴 하다. 아마 모르긴 해도 하루키는 사후에라도 평전이 나옴직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작가가 누가 됐든 좀 더 심도있게 다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런데 이 책 16p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레이먼드 챈들러 소설의 주인공인 탐정 필립 말로우는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한 마리의
'고독한 늑대'였다." 
 

나는 이 말을 필립 말로우는 하루키를 가리켜, 그는 한마리 외로운 늑대라고 말한 줄 알고 리뷰 제목에 써 먹기까지 했다. 그때 제목이 아마도, "하루키, 그대는 한마리 외로운 늑대"라고 하고 필립 말로우는 그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고 인용하기까지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여름 아는 이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은 적이 있다. 요는 필립 말로우가 하루키를 가리켜 그런 말을 했을리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레이먼드 챈들러 소설의 인물이기 때문에. 

 

그 메일을 읽는 순간 완전히 한 방 먹은 느낌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메일 전달자가 아직 레이먼드 챈들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다행이라고나 할까. 그 분도 누군가가 그렇게 지적해 줬기 때문에 전하는 것이라는 말까지 남겼다. 그러니 더 화끈거리는 수 밖에. 비록 지적해 준 사람이 누군지 알지는 못 하지만 잘못 안 것을 가지고 아는 체를 했으니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책 정리를 하면서 그 점을 확인할 겸 그 책을 빼놓았었다. 솔직히 내방은 책상이 아니면 책 한 권 온전히 세워놓을 공간이 없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 옆으로 누워있는 상태. 이 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결국 확인해 본 바에 따르면 정말 필립 말로우는 가상의 인물이었으며 오히려 하루키가 너무 좋아해 '한마리 외로운 늑대'란 표현을 했던 것이 드러난 것이다. 즉 자유분방한 모험을 즐길 줄 아는 사람에게 이런 은유적 표현을 한다는 것도 새삼 알았다. 

 

그러니 이 책에서 이런 오독을 했는데 다른 책에선 얼마나 많은 오독을 해왔을까를 생각하니 헛독서를 해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책은 거듭해서 읽으라고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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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11-16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마로우 시리즈를 읽으셨으면 이런 오독을 피하실수 있으셨을 텐데요^^
한번 읽어보세요.무척 재미있읍니다.

stella.K 2009-11-16 12:18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그 부분을 새삼 재인식했을 때야 비로소
하루키의 작품 거의 대부분이 레이먼드 챈들러에게서 왔겠구나 싶어
급호감입니다. 한번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책은 좋은 것이다. 그리고 독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독 청소년 시절에 독서를 많이 할 것으로 권장 받고 있다. 사춘기 시절 나는 이것이 늘 불만이었다.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해 놓고 어디 책을 읽을 틈을 줘야 많이 읽을 것이 아닌가? 이것에 대해 볼멘소리를 하면 누구는 또 그런다. 원래 독서란 시간이 많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없는 시간을 쪼개서 하는 것이라고. 터진 입으로 누군들 그런 말을 못할까? 그런데 그건 일견 맞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은 청소년 시절만큼 공부도 않하고 시간이 그때 보단 훨씬 많아 보이지만 그때만큼 열심히 독서하지 않는다. 결국 중요한 건 열정의 문제겠지. 또한 언제든지 독서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중요하고.

그런데  모순이 하나가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청소년 시절에 무조건 많은 책을 읽으라고 해놓고 그 시절만큼 검열이 심한 때가 또 있을까? 하긴 그것을 이해 못할 것은 없다. 사춘기가 되면 유년기와 달리 모든 것에 호기심이 왕성해진다. 따라서 많은 정보를 흡수하게 된다. 그 정보 중엔 좋은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일게다. 

또한 그 많은 정보를 받아들임과 동시에 의심도 더불어 많이 생기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어렸을 땐 부모님이 알아서 해줬고 그것에 추호의 의심이란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의심이라는 게 자기가 관심있어하는 것에 대한 의심이 아니다. 애석하게도 부모에 대한 의심인 것이다. 그래서 '이거 좋은 거 맞아?'하며 나도 충분이 좋은 것을 고를 수 있는 증명해 보이고 싶은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자율성을 부모님께 증명해 보이고 싶은 것이다.  

비근한 예로 나는 불과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께  뜬금없이 <만딩고>를 읽겠다고 한적이 있다. 그것의 정확한 내용은 잘 모르겠는데 그와 엇비슷한 시기에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라는 책이 영화화 되고 후에 책으로도 나와 관심을 끈적이 있다.  영화 <뿌리>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흑인 노예 시대를 배경으로한 스케일이 큰 작품이다. 내가 알기론 <만딩고>도 이게 필적한 작품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내깐엔 <뿌리>는 이미 영화로 봤으니 같은 계열의 다른 책을 읽는다면 동명소설을 읽는 것 보다 좋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만딩고>란 소설이 당시 19금으로 분류된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나는 19금 때문에 보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뿌리>와 필적할만한 다른 책을 보겠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아버지께로부터 한 달 용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말씀 드리고 타 쓰곤 했는데 아버지는 딸이 책을 사겠다면 비교적 아무 말씀 안하시고 돈을 주시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때따라 무엇을 아시고 그러시는 것인지 무슨 책을 살거냐고 물으시는 것이다. 나는 순간 거짓말을 할까 하다가 솔직하게 말씀 드렸다. <만딩고>를 살거라고. 나는 아버지가 설마 19금으로 분류된 이 책을 아실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설혹 안다고 해도 나는 19금에 관심있어 읽은 것이 아니라 그저 명작이기 때문에 읽고 싶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웬걸 난 아버지를 제대로 설득해 보지도 못하고 초전에 박살이 나고 말았다. 아버지는 일언지하에 안 된다고 하신 것이다. 도대체 그 책이 뭐 어디가 어떻다고. 하긴 물주가 아버지이고 보면 당신이 돈을 안 주시겠다는데 버텨낼 제간은 없다. 그런데 책은 정말 읽고 싶을 때 읽어야 하는 것 같다. 아무리 읽고 싶은 책도 다른 군침 흘린 책에 밀려 흐지부지 자취를 감추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설득은 내가 아버지께 해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나에게 해 주셔야 할 것인지도 모른다. 왜 책은 좋은 거고 많이 읽으라고 해놓고 유독 그런 책은 못 읽는 것인가? 읽지 말아야 한다면 왜 읽지 말아야 하는지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저 단순히 19금이기 때문에 읽지 말라면 그것을 두 말 않고 순종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설혹 순종한다해도 그것을 믿는 어른은 또 몇이나 될까? 내 아이는 그런 책 안 읽는다고?  

그런데 책이 좋은 줄은 알지만 정말 악서와 양서로 구분하는 것이 맞는 일일까? 과연 양서와 악서를 두부모판처럼 나눌 수 있느냐는 말이다. 이것이 다소 위험하기도 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해도 어떤 책은 누구에겐 유익이 되지만 어떤 사람에겐 전혀 도움이 안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악서와 양서의 기준은 뭐란 말인가?  

사실 사람은 금지된 것의 유혹을 자제하기 어려운 동물이다. 10가지 중 9가지 유혹을 통과했어도 꼭 한 가지를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더구나 인간에겐 하지 말라는 것은 더 하게 되어있다.  

그 시절 아버지에게 <만딩고>읽기를 제지 당한 나는 다른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하이틴 로맨스 읽기와 본격 예술 소설 읽기였다. 물론 그렇다고 그쪽 분야의 책을 전문으로 읽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호기심에 몇 권 읽어본 것 뿐이다. 그런데 사춘기가 혼란한 시기는 시기인가 보다. 나는 책 읽기에서 조차 그것을 경험해야 했으니 말이다. 

같은 시기 어느 날 나의 담임 선생님은 불시에 소지품 검사를 하셨다. 지금은 제목이 뭔지 기억도 안 나지만 한 손에 잡히는 포켓판 하이틴 로맨스를 순식간에 앞에 앉은 아이에게 빼앗겨 버리고 만 것이다. 평소 나에게 관심도 없던 아이가 그러고 있으니 난 순간 이 아이가 책 가지고 장난을 치려고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작은 목소리로 "야, 그거 왜 가져 가?"했다. 그런데 순간 담임 선생님이 나의 입모양을 본 것이다. 그리고는 신경질적이면서도 경멸조로 "왜 가져 가긴 왜 가져 가!"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 모든 것이 굳고 말았다. 그제야 나는 사태 파악이 된 것이다. 나는 그 책이 하이틴 로맨스이기에 앞서 문제의 19금 장면은 나오지 않았으므로 그것이 압수당할 책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것을 알고 압수를 한 것이 아니다. 그저 단순히 하이틴 로맨스란 이유만으로 압수를 하신 것이다. 나는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어른들이 자기네들은 독서를 안하면서 아이들에겐 독서할 것을 권하면서 또 한쪽에서는 이런 식으로 독서하는 학생을 탄압한다는 사실을. 그것은 나로선 적지 않은 충격이었고 상처였다.     

그때 난 아직 완독을 하지 못한 상태였는데 아마도 4분의 1쯤 남겨뒀을 것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지금까지 4분의 3을 읽어 본 바에 의하면 우려하는 19금 장면은 나오지 않았고 그 지점까지도 안 나온다면 끝까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건 자명하다고 봐야했다. 고작 그책은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사랑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마음만 졸이다 끝내 어떤 결말에 이를 것이다. 그러니 그런 책을 빼앗겼으니 얼마나 황당한가. 공히 말하건데 그 책은 내가 읽은 책중에 가장 건전한 책이었다.  

 그런데 또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예술 문학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읽고 있었다. 전에 책을 압수 당한 경험이 있으니 조심해야겠지만 나는 그때 무슨 배짱이었는지 그 책을 당당히 가방속에 넣고 다녔다.  그때 기억하기론 출판사가 동서문화사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공히 말하건데 난 모범생이었으므로 애초에 그 책이 그렇게 야한 책인 줄 알았으면 학교에 들고 다니지도 않았을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한 소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난 그저 표지 그림이 예뻐서 읽어 볼 생각을 했을 뿐이다. 

아마 내용도 상당히 파격적이긴 하지만문체가 상당히 싯적이고 아름다워 읽기를 포기하지 못했던 책이었다. 지금은 워낙에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 내용은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있기는 한데 지금도 잊지 않고 있는 여자 주인공의 대사 한마디가 있다. 그것은 자기 집 정원사와 통정을 하고 절정에 올랐을 때 했던 "아아, 좋아요."라는 말이었다. 그때 나는 그 부분을 읽고 온 몸에 난 털 즉 하다못해 복숭아털까지 쭈뼛서는 느낌이었다. 이런 대사가 있을 수 있다니! 그래서 주위의 아이들에게 그 부분을 들이밀며 "야야, 읽어 봐."하고 권했다. 과연 그것을 읽은 아이들마다 거의 뒤집어질 정도였다.  

그런데 이게 또 웬일인가? 내가 그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해서 국어 선생님에게 들킨 것이다. 나는 전에 담임 선생님께 책을 압수당한 경험이 있어 또 뺐기겠구나 했다. 그런데 또 놀라운 건 선생님은 그 책을 뺐지 않으셨다는 거다. 오히려 관심을 보이면서 나의 독서 수준을 높이 평가하시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뭐란 말인가? 그 보다 훨씬 건전한 하이틴 로맨스는 빼앗기면서 우리의 눈엔19금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오히려 칭찬을 받다니. 결국 그 19금이라는 것도 아이들을 위한 19금인 것 같지만 그냥 어른이 임의로 만든 19금은 아닐까?

과연 책을 읽는 사람에게 있어서 악서는 무엇이고 양서는 무엇인가? 그것의 기준은 무엇이고, 그것을 가늠할 수 있는 주체는 누구이어야 하는가? 그때 두 분의 선생님께서 보여준 그 행동의 기준에 대해서 지금은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는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하이틴 로맨스류는 내용이 얄팍하다. 적어도 나의 청소년 시절에 유행했던 그런 책들은 그다지 수준이 높지 않았다. 그냥 성인이 흔히 보는 '선데이 서울' 같은 잡지와 비슷한 수준으로 본다. 그래서 읽으면 별로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하지만 <채털리 부인의 사랑> 같은 책은 당시로는 얼굴이 화끈거리기는 했지만 그 문체의 아름다움이나 깊이에 있어서 가히 고전의 반열에 낄만하고 언제고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도서목록에  포함이 된다. 그래서 아마도 선생님들은 고전을 읽으라고 하셨는지도 모른다. 고전을 읽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뭐 때문에 쓸데없는 책을 읽느라 시간을 낭비할 것인가.  

하지만 그래도 하이틴 로맨스를 금하는 건 너무 심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 어른들 당신들도 늘 합리적인 선택만하고 시간 낭비 안하고 사는 것 아니지 않는가? 그렇게 고전만 읽으라고 강요하는 것도 어떤 면에서 주입식 교육의 잔재는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금은 학교에서의 독서 교육의 어느 정도까지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학창시절엔 거의 사각 지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고전만 읽으라는 것은 또 다른 면에서의 독서 편식을 조장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해놓고 왜 독서에선 실패를 하면 안되는 것인가? 사람은 실패에서도 참된 지혜를 얻고 성공을 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실패를 해 보지 않고 어떻게 양서와 악서를 구분해 내겠는가?  

독서에서 실패하는 것은 다른 실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책이 마음에 안 들면 안 읽으면 그만이니까. 하이틴 로맨스가 정서를 혼란시키며 탈선을 조장한다고? 그건 책에 대한 지나친 강박인지도 모른다. 청소년들이 영상에서 지나친 폭력물이나 어른을 모방하는 것이 더 심각하지 않은가? 아니할 말로 어른이 되어도 제대로된 연애를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고 그에 따라 그것을 가르쳐 주는 책도 있고 그것을 전문으로하는 상담가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된 것이 청소년 때 한때 하이틴 로맨스를 읽었기 때문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요컨대 독서 교육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며 그렇게 강압적이거나 흑백으로 나누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난 엄밀한 의미에서 양서니 악서니를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그렇게 만만하고 호락한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어느 정도 습관이 들이면 어떤 책이 좋은 책이고 어떤 책이 안 좋은지를 안다고 생각한다. 아니 이 세상에 정말로 나쁜 책이 있다면 좋은 책이 그 나쁜 책을 압도해 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책 읽기를 권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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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11-02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스텔라님 글을 보니 저도 갑자기 옛 생각이 나네요.정말 추억의 19금 소설에 대한 글입니다.하이틴 로맨스 소설의 경우 뭐 야동이랄것 까지는 없지만 예전에 선생님들이 많이 압수한 책이지요.근데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에로틱 소설의 기준이 무척 엄한것 같습니다.아마 위 하이틴 소설도 미국등에서는 청 소년소설로 읽힌 것으로 아는데 말이죠.뭐 만화 짱구시리즈도 짱구가 고추를 내놓는 바람에 국내에서도 한때 19금 만화로 분류되어 국제적 망신을 당한적이 있으니 말 다했죠.
스텔라님 글을 보니 저도 예전에 읽었던 에로틱 소설을 한번 정리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stella.K 2009-11-02 12:11   좋아요 0 | URL
ㅎㅎ 고맙습니다. 이 긴 글을 읽어주시다니...!
그런데 그렇지요? 우린 검열이 너무 심해요.
지금도 선생님들이 애들이 그런 책 읽는다고 뺏는지 모르겠어요.
한간엔 아직도 그런다는 말이 있던데...
그래요. 카스피님도 한번 정리해 보세요.
님은 어떤 일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난 주 화요일이 내 생일이었다. 

그즈음해서 내가 내게 주는 선물로 책을 사 볼까 생각했었다.   

누가 챙겨주지 않으니 나라도 자축하는 수 밖에. 그렇다고 일부러 챙겨달라고 하기도 뭐하고. 

나름 내가 생각해도 내가 기특하지 않은가? 이 나이 먹도록 해 놓은 건 별로 없지만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겐 희망일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만만한게 책이라고 남에게나 나에게나 해 줄 수 있는 게 이게 최고인 것 같다.  

그런데 그것도 막상 귀찮아져 날짜를 넘기고 말았다.  젠장, 무슨 내가 나한테 주는 선물이냐?  

그러고 있는데 며칠 지나고 나서 모처럼 괜찮은 책이 반값에 판다고 떴다. 이름하여 <욕망하는 식물>. 지난 수요일에 떠서 낼름 샀다. 아직 생일 달이 지나지 않았으니 이때쯤 나에게 주는 선물로 늦지는 않은듯 싶다.  

그런데 이 책 하나로는 만족할 수 없다. 만원이 안되면 배송료도 내야하고.  

사실 내가 더 좋아하고 기다렸던 책은 송봉모 교수의 책이다.  

이 책을 더불어 샀다. 

송봉모 교수는 신부이면서 현재 서강대학교에서 신약학을 가르친다고 한다. 

그의 책은 올해 들어서 두 권을 읽었는데 둘 다 성서인물에 관한 것으로 요셉과 야곱을 읽고 이제 세번째로 아브라함을 읽으려고 한다.  

사실 올해 나는 참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육적으로 보단 심적으로. 그것을 어떻게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가 없다.

그리고 가을이 되니 더 더욱 힘이 든다. 이쯤되니 여태 어떻게 살아왔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송봉모 교수의 책이 있어 참 많이 위로가 됐다. 책이 이토록이나 위로와 힘이 되는 줄은 새삼 처음 깨닫는다 싶을 정도다. 별로 두껍지 않은 책을 아주 조금 조금씩 읽으면서 완독했었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책들은 그다지 두껍지도 않지만 너무 아까워 빨리 읽는 것이 싫고 또한 빨리 읽어서도 안될 책이기도 하다. 그만큼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고나 할까? 

어제 도착한다고는 했는데 늦게까지 기다려도 오지 않아 오늘은 안 오려나 보다 했다. 그런데 어제 저녁 내가 외출한 사이 책이 도착해 있었다. 반가웠다. 

앞으로 저 책을 조금 조금씩 읽으며 남은 올 한해를 보내야 할 것 같다. 이 남은 한해를 이렇게 보내고나면 내년엔 좀 나아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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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6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얼마전 발간된 <책 읽는 뇌> 의 저자는, 인류는 책을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으며, 독서는 뇌가 새로운 것을 배워 스스로를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인류의 기적적인 발명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아직 이 책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 말에 공감한다.  

초등학교를 막 진학해서 첫 방학을 맞았을 때 나는 '생활통지표'라는 걸 처음 받아봤다. 그때 나의 체육이란 과목에 '가'를 맞은 걸 보고 충격을 먹었다. 최하점수를 맞은 것도 맞은거지만 이제부터 나의 학교생활이 이런 식으로 점수가 매겨지는구나라는 사실이 좀 더 충격적이었다고나 할까?

그때 담임 선생님은 나의 학교생활 전반을 기록하는란에 책 읽기를 싫어하는 아이로 기록했고 나는 그것으로인해 언니로부터 조롱을 받았다.  

뭐 체육이야 워낙에 운동신경이 없으니 가를 받아도 할 말은 없다고 쳐도 도대체 담임 선생님은 나의 무엇을 보고 그렇게 쓰셨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의 본격적인 독서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였다.    

그때 내가 얼마나 열심히 책을 읽었느냐면, 쉬는 시간 10분 동안에도 화장실 갈 일 없으면 그 막간을 이용해 읽기도 했고, 점심 시간에도 책을 읽었다. 중학교 올라와서는 보통 4교시 끝나고 먹는 점심을 3교시 끝나고 후딱 먹어치운 후 점심 시간을 온통 책 읽는 시간에 투자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가 책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책을 너무 늦게 읽었기 때문에 나는 그 시간이 온전히 필요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내가 그토록 열심히 책을 읽는 아인줄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아셨더라면 그 셍활통지표에 결코 그렇게 쓰시진 못했을 것이다. 물론 대신 책을 늦게 읽는 아이라고 쓰셨다면 말이되지만. 그래도 나의 언니는 여전히 킥킥대고 웃었을까? 하지만 책을 늦게 읽는다고 학습 부진아는 아니지 않는가? 그 정도 가지고 조롱의 대상이 된다면 이 세상은 너무 가혹할 것이다.  

그 시절 내가 즐겨봤던 책은 계림문고라는 아동용 세계문학 전집이었다. 이 책은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았는데 아버지께 그 도톰하고 묵직한 문학전집을 사 달라는 말을 차마 못해 낱권으로 이 책들을 사 모았다. 한 권당 350원인가 했는데 3권을 한꺼번에 사면 그 문방구 주인 부부가 천원에 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기억나는 건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난 내 앞에 앉은 남자 아이를 좀 좋아했는데, 마침 그때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 추리소설 읽기가 유행이었다. 그때 어떤 출판산지 모르겠는데 어린이 문고용으로 홈즈나 루팡 시리즈를 150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얇게 만들어 나온 책이 유행이었다. 난 호기심에 그 책을 몇 권 사서 읽긴 했는데 추리물은 그다지 나에겐 좋아하는 분야는 아니었다. 그래도 그 남자 아이의 관심을 끌어 보겠다고 책을 책상 바닥에 놓고 읽지 않고 일부러 코높이 가까이 들고 읽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얼마만에 그 아이는 나의 이마를 검지 손가락으로 살짝 치더니 그 책을 빌려줄 수 있겠느냐고 하는 것이다. 속으로는 '아싸!'하며 기회가 온 것을 내심 기뻐했지만 나는 짐짓 무관심한 척, "그래? 알았어. 다 읽으면 빌려줄게."했다. 일단 관심을 끄는데 성공을 한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이 녀석 마음이 나한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아이한테 있었음이 들어나 단칼에 내 마음에서 녀석을 도려내버리고 말았다. '난 너 같은 바랑둥이는 싫어!'하며 말이다. 그후 나는 다시는 책으로 사람의 마음을 후리는 그런 짓은 하지 않았다.   

그 무렵 스티븐 킹의 <캐리>란 동명 영화가 나왔고 연이어 책도 출간이 되었다.  

요즘엔 마케팅을 잘해선지 영화나 드라마가 뜨면 덩달아 그 작품의 원작 소설도 뜨지만, 당시는 그런 것들의 기반이 워낙에 약해 영화는 나름 성공했던 것 같은데 책은 그다지 재미를 못 봤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경우는 비단 <캐리>의 경우는 아닌 것 같다.  

영화가 뜨면 책이 재미가 없다거나, 책이 재미있으면 영화는 재미가 없다는 속설이 공공연히 나돌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격세지감이요 감히 상상도 할 수가 없는 일이다. 어떻게 영화로 뜬 작품이 책으로는 안 뜰 수가 있단 말인가?  

좀 웃긴 건, 나는 <캐리>란 영화는 보지 않았으면서 책은 몰래 가방 속에 넣고 다녔다. 당시 나는 어려서 그 책이 명목상 금서 목록이긴 했지만, 그 책을 그렇게 들고 다니면 아이들 사이에서 나름 주목을 받기도 했다. 물론 공포물이어서 이기도 하지만 이유는 따로있었다. 즉 거기서 보면 주인공 캐리가 동급생 여자 아이들 보다 초경을 늦게 시작해 당황해 하는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이 같은 반 남자 아이들의 묘한 호기심을 발동시켰고, 동시에여자 아이들은 불편했던 까닭이다. 여자 아이들은 그런 책을 태연하게 보고 있는 나에게 눈짓을 보내는 것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감추긴 했지만 요즘 시쳇말로 그까이 꺼 가지고 뭘 그러나 아이들이 좀 유치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난 곧 그 책을 결국 다 읽지 못하고 엎어버리고 말았다. 왜냐구? 당연 재미없었으니까다.  

번역이 잘 안된 건지 아니면 내가 그때만해도 아직 그런 걸 소화해낼 그릇이 못되었는지 암튼 완독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도 영화의 한장면에서 따옴직한 돼지피를 뒤집어 쓴 캐리의 모습을 앞표지에 실은 그 책은 그렇게 아이들에겐 나름 신비한 끌림을 줬던 것만은 틀림없었던 것 같다. 그후 나는 여전히 다른 책을 수시로 바꿔가면서 들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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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아마 저 오른쪽의 컷을 책표지로 썼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저주 받을 세로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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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시절 읽었던 책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나 라즈니쉬의 <자기로부터의 혁명>같은 어려운 책에 도전해 보기도했는데 그것은 지금 생각해도확실히 지적 허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절 나는 동네 단골 주인 아저씨한테 그때까지 듣도 보도 못한 저술가의 이름을 들먹이며 그 사람이 쓴 책이 있냐고 물어 아저씨를 당황하게도 했고,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모르겠다고 하면 속으로 왜 이런 책도 번역되지 않았냐며 우리나라 출판의 낙후성을 비난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우습다는 생각 밖엔 들지 않는다.   

사실 그런 책들은 지금 읽는다고 해도 아찔하게 어려운 책들이다. 오죽했으면 니체의 책 가지고 농짓거리가 다 생겼을까? "자라! 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고. 이 책은 정말 그 말이 딱 어울리는 책이 아니던가? 

그래도 그 시절 난 까만 건 글자요 하얀건 종이인 이 두 권의 책을 과감하게 첫 페이지 첫 글자로부터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글자까지 꾸역꾸역 읽어냈다. 왜 덮을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 재밌다던 스티븐 킹의 '캐리'도 덮은 내가 그때는 책 읽기의 괴로움을 몸소 감내하며 꾸역꾸역 읽었던 것이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책을 샀을 당시엔 울적해서 샀는데 집에와 막상 읽으려고하니 도저히 못 읽겠는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우연한 기회에 그책을 다시 손에 들었는데 그때야 비로소 그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공교롭게도 쿠센버그란 독일작가의 <바보는 웃지 않는다2>였다. 그야말로 정말 좋은 책을 알아보지 못했으니 바보일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웃을 수도 없었다. 그 후 나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그 책을 샀던 서점으로 갔지만 이미 너무 많은 세월이 흘러 그 책은 절판이되고 그책을 출판했던 출판사조차 없어지고난 후였다.     

그러고 보니 과연 지금까지의 나의 독서 이력을 볼 때 내가 정말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물론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 비하면 새발의 피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까지 책을 좋아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라고 자부해왔다. 하지만 알고보면 이 책은 이래서 못 읽고, 저 책은 저래서 못 읽었다. 또한 책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안 읽고 못 읽는 책 역시 많아진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시기를 놓쳐서 못 읽게 되는 경우도 읽다. 그러니 나는 정말로 책 읽기를 좋아하는가? 고려해 봐야할 일이다.  

또 책 중엔 남들은 좋다는데 나는 맞지 않는 책도 있다. 사람도 자기에게 맞는 사람이 따로 있듯이 책도 사람이 쓰는 것만큼 궁합이 맞는 책이 따로 있게 마련인 것 같다. 그럴 때 갖는 마음은 여러 갈래다. 어떤 경우 어떻게 이렇게 말도 안되는 책을 좋다고할 수 있단 말인가? 분개할 때도 있고, 어떤 땐 남들은 능히 읽는 책을 왜 나는 못 읽을까 자책을 하게되는 책도 있다.  

결국 그러다 보니 좀 어렵거나 나한테 맞지 않는다 싶은 책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배짱이 생겼다. 그런 책은 읽어봐야 기억에도 남지 않을뿐만 아니라 시간도 낭비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읽을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맞지도 이해도 못할 책 가지고 씨름을 한단 말인가? 그래서 결국 편독하는 버릇이 생기고 말았다.   

어디 그뿐인가? 사람은 어느 하나에 길이 들면 그것에 대한 동물적인 감각이 생기게 마련이다. 물론 내가 못 읽고 안 읽는 책도 있지만 출판된 책들을 보다보면 이건 좀 아니다 싶은 책도 종종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책은 이건 좀 아닌데 싶은데도 속아서 읽게 되는 책도 있다. 그러면 좀 억울한 생각도 하지만 인간관계에서도 보면 알면서 속아주는 관계도 있지 않은가? 그런 것에 비하면 책에 속아 주는 것쯤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게도 된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책에 대한 집중도 떨어졌으며 그렇게 10분 15분의 막간을 이용해 책을 읽는 열정도 없어졌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보면, 책이 예전에 비하면 훨씬 많아져서일까? 홍수 중 가뭄이랬다고 그렇게 많은 책들 중 만족된 독서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예를들어 5권을 읽었다면 그중 만족된 독서를 했다고 생각되는 책은 한 권 정도나 될까?  

이렇게 책을 읽는 일은 나에게 있어서 여전히 즐거운 일인 동시에 괴로운 일이 되어버렸다. 다른 이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모두 시지프의 후예들일 거라는 것이다. 나는 방금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그리고 몇 시간 내지 하루가 지나서 금방 또 다른 책을 펼쳐들거란 점에서.  

그 똑같이 되풀이되는 행위속에 무엇이 남을런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책을 좀 더 사랑하자. 나를 좀 더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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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라딘이 나를 버렸다.
    from stella09님의 서재 2009-09-05 13:29 
    http://blog.aladdin.co.kr/trackback/stella09/3063747  알라딘이 나를 버렸다. 이 페이퍼 정말 열심히 썼는데 어떻게 외면할 수가 있단 말인가?ㅠ.ㅠ   
 
 
hnine 2009-08-31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글 중에 나오는 책들이 저도 대부분 아는 책이어서 반가왔어요.
연노란 색 표지의 계림문고, 낱권으로 팔던 책이었지요. 저도 기억해요.
그 추리소설 시리즈를 내던 출판사 이름은 저도 가물가물하네요. 저도 무척 좋아했는데.
혹시 그것도 계림 출판사 아니었던가요? 까만 색 표지의.

stella.K 2009-08-31 11:1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저도 그 추리소설 계림출판사에서 나온 것 같긴한데
확실할까 싶어 밝히지 못했답니다.
나이가 들으니 옛날 생각 참 많이나요. 그죠?^^

헌책방IC 2009-08-30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술을 많이 마시면 그 다음날 많이 괴롭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시지 않으려니, 또 마시고 싶은 게 술이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또 마시면 그 다음날 또 괴롭고. 그래도 또 마시고. 왜. 좋으니까.ㅎㅎ
글 곳곳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실례 좀 했습니다.^^

stella.K 2009-08-31 11:15   좋아요 0 | URL
ㅎㅎ 앞으론 술 드지 마시고 책 읽으세요.^^

하늘바람 2009-08-31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많이 공감이 가 웃으면서 읽었어요. 왜 나이들면 집중도가 떨어질까요 제가 요즘 그러네요

stella.K 2009-08-31 11:25   좋아요 0 | URL
앞으로 가면 갈수록 더 심할걸요?ㅎ 그래도 그것을 조금이라도 지연시켜 주는게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읽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