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좋은 것이다. 그리고 독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독 청소년 시절에 독서를 많이 할 것으로 권장 받고 있다. 사춘기 시절 나는 이것이 늘 불만이었다.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해 놓고 어디 책을 읽을 틈을 줘야 많이 읽을 것이 아닌가? 이것에 대해 볼멘소리를 하면 누구는 또 그런다. 원래 독서란 시간이 많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없는 시간을 쪼개서 하는 것이라고. 터진 입으로 누군들 그런 말을 못할까? 그런데 그건 일견 맞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은 청소년 시절만큼 공부도 않하고 시간이 그때 보단 훨씬 많아 보이지만 그때만큼 열심히 독서하지 않는다. 결국 중요한 건 열정의 문제겠지. 또한 언제든지 독서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중요하고.

그런데  모순이 하나가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청소년 시절에 무조건 많은 책을 읽으라고 해놓고 그 시절만큼 검열이 심한 때가 또 있을까? 하긴 그것을 이해 못할 것은 없다. 사춘기가 되면 유년기와 달리 모든 것에 호기심이 왕성해진다. 따라서 많은 정보를 흡수하게 된다. 그 정보 중엔 좋은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일게다. 

또한 그 많은 정보를 받아들임과 동시에 의심도 더불어 많이 생기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어렸을 땐 부모님이 알아서 해줬고 그것에 추호의 의심이란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의심이라는 게 자기가 관심있어하는 것에 대한 의심이 아니다. 애석하게도 부모에 대한 의심인 것이다. 그래서 '이거 좋은 거 맞아?'하며 나도 충분이 좋은 것을 고를 수 있는 증명해 보이고 싶은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자율성을 부모님께 증명해 보이고 싶은 것이다.  

비근한 예로 나는 불과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께  뜬금없이 <만딩고>를 읽겠다고 한적이 있다. 그것의 정확한 내용은 잘 모르겠는데 그와 엇비슷한 시기에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라는 책이 영화화 되고 후에 책으로도 나와 관심을 끈적이 있다.  영화 <뿌리>는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흑인 노예 시대를 배경으로한 스케일이 큰 작품이다. 내가 알기론 <만딩고>도 이게 필적한 작품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내깐엔 <뿌리>는 이미 영화로 봤으니 같은 계열의 다른 책을 읽는다면 동명소설을 읽는 것 보다 좋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만딩고>란 소설이 당시 19금으로 분류된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다. 나는 19금 때문에 보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뿌리>와 필적할만한 다른 책을 보겠다는 것이다.   

 당시 나는 아버지께로부터 한 달 용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말씀 드리고 타 쓰곤 했는데 아버지는 딸이 책을 사겠다면 비교적 아무 말씀 안하시고 돈을 주시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때따라 무엇을 아시고 그러시는 것인지 무슨 책을 살거냐고 물으시는 것이다. 나는 순간 거짓말을 할까 하다가 솔직하게 말씀 드렸다. <만딩고>를 살거라고. 나는 아버지가 설마 19금으로 분류된 이 책을 아실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설혹 안다고 해도 나는 19금에 관심있어 읽은 것이 아니라 그저 명작이기 때문에 읽고 싶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웬걸 난 아버지를 제대로 설득해 보지도 못하고 초전에 박살이 나고 말았다. 아버지는 일언지하에 안 된다고 하신 것이다. 도대체 그 책이 뭐 어디가 어떻다고. 하긴 물주가 아버지이고 보면 당신이 돈을 안 주시겠다는데 버텨낼 제간은 없다. 그런데 책은 정말 읽고 싶을 때 읽어야 하는 것 같다. 아무리 읽고 싶은 책도 다른 군침 흘린 책에 밀려 흐지부지 자취를 감추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설득은 내가 아버지께 해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나에게 해 주셔야 할 것인지도 모른다. 왜 책은 좋은 거고 많이 읽으라고 해놓고 유독 그런 책은 못 읽는 것인가? 읽지 말아야 한다면 왜 읽지 말아야 하는지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저 단순히 19금이기 때문에 읽지 말라면 그것을 두 말 않고 순종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설혹 순종한다해도 그것을 믿는 어른은 또 몇이나 될까? 내 아이는 그런 책 안 읽는다고?  

그런데 책이 좋은 줄은 알지만 정말 악서와 양서로 구분하는 것이 맞는 일일까? 과연 양서와 악서를 두부모판처럼 나눌 수 있느냐는 말이다. 이것이 다소 위험하기도 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해도 어떤 책은 누구에겐 유익이 되지만 어떤 사람에겐 전혀 도움이 안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악서와 양서의 기준은 뭐란 말인가?  

사실 사람은 금지된 것의 유혹을 자제하기 어려운 동물이다. 10가지 중 9가지 유혹을 통과했어도 꼭 한 가지를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더구나 인간에겐 하지 말라는 것은 더 하게 되어있다.  

그 시절 아버지에게 <만딩고>읽기를 제지 당한 나는 다른 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하이틴 로맨스 읽기와 본격 예술 소설 읽기였다. 물론 그렇다고 그쪽 분야의 책을 전문으로 읽었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호기심에 몇 권 읽어본 것 뿐이다. 그런데 사춘기가 혼란한 시기는 시기인가 보다. 나는 책 읽기에서 조차 그것을 경험해야 했으니 말이다. 

같은 시기 어느 날 나의 담임 선생님은 불시에 소지품 검사를 하셨다. 지금은 제목이 뭔지 기억도 안 나지만 한 손에 잡히는 포켓판 하이틴 로맨스를 순식간에 앞에 앉은 아이에게 빼앗겨 버리고 만 것이다. 평소 나에게 관심도 없던 아이가 그러고 있으니 난 순간 이 아이가 책 가지고 장난을 치려고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작은 목소리로 "야, 그거 왜 가져 가?"했다. 그런데 순간 담임 선생님이 나의 입모양을 본 것이다. 그리고는 신경질적이면서도 경멸조로 "왜 가져 가긴 왜 가져 가!"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 모든 것이 굳고 말았다. 그제야 나는 사태 파악이 된 것이다. 나는 그 책이 하이틴 로맨스이기에 앞서 문제의 19금 장면은 나오지 않았으므로 그것이 압수당할 책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것을 알고 압수를 한 것이 아니다. 그저 단순히 하이틴 로맨스란 이유만으로 압수를 하신 것이다. 나는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어른들이 자기네들은 독서를 안하면서 아이들에겐 독서할 것을 권하면서 또 한쪽에서는 이런 식으로 독서하는 학생을 탄압한다는 사실을. 그것은 나로선 적지 않은 충격이었고 상처였다.     

그때 난 아직 완독을 하지 못한 상태였는데 아마도 4분의 1쯤 남겨뒀을 것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지금까지 4분의 3을 읽어 본 바에 의하면 우려하는 19금 장면은 나오지 않았고 그 지점까지도 안 나온다면 끝까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건 자명하다고 봐야했다. 고작 그책은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사랑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마음만 졸이다 끝내 어떤 결말에 이를 것이다. 그러니 그런 책을 빼앗겼으니 얼마나 황당한가. 공히 말하건데 그 책은 내가 읽은 책중에 가장 건전한 책이었다.  

 그런데 또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예술 문학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읽고 있었다. 전에 책을 압수 당한 경험이 있으니 조심해야겠지만 나는 그때 무슨 배짱이었는지 그 책을 당당히 가방속에 넣고 다녔다.  그때 기억하기론 출판사가 동서문화사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공히 말하건데 난 모범생이었으므로 애초에 그 책이 그렇게 야한 책인 줄 알았으면 학교에 들고 다니지도 않았을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한 소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난 그저 표지 그림이 예뻐서 읽어 볼 생각을 했을 뿐이다. 

아마 내용도 상당히 파격적이긴 하지만문체가 상당히 싯적이고 아름다워 읽기를 포기하지 못했던 책이었다. 지금은 워낙에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 내용은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있기는 한데 지금도 잊지 않고 있는 여자 주인공의 대사 한마디가 있다. 그것은 자기 집 정원사와 통정을 하고 절정에 올랐을 때 했던 "아아, 좋아요."라는 말이었다. 그때 나는 그 부분을 읽고 온 몸에 난 털 즉 하다못해 복숭아털까지 쭈뼛서는 느낌이었다. 이런 대사가 있을 수 있다니! 그래서 주위의 아이들에게 그 부분을 들이밀며 "야야, 읽어 봐."하고 권했다. 과연 그것을 읽은 아이들마다 거의 뒤집어질 정도였다.  

그런데 이게 또 웬일인가? 내가 그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해서 국어 선생님에게 들킨 것이다. 나는 전에 담임 선생님께 책을 압수당한 경험이 있어 또 뺐기겠구나 했다. 그런데 또 놀라운 건 선생님은 그 책을 뺐지 않으셨다는 거다. 오히려 관심을 보이면서 나의 독서 수준을 높이 평가하시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뭐란 말인가? 그 보다 훨씬 건전한 하이틴 로맨스는 빼앗기면서 우리의 눈엔19금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오히려 칭찬을 받다니. 결국 그 19금이라는 것도 아이들을 위한 19금인 것 같지만 그냥 어른이 임의로 만든 19금은 아닐까?

과연 책을 읽는 사람에게 있어서 악서는 무엇이고 양서는 무엇인가? 그것의 기준은 무엇이고, 그것을 가늠할 수 있는 주체는 누구이어야 하는가? 그때 두 분의 선생님께서 보여준 그 행동의 기준에 대해서 지금은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는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하이틴 로맨스류는 내용이 얄팍하다. 적어도 나의 청소년 시절에 유행했던 그런 책들은 그다지 수준이 높지 않았다. 그냥 성인이 흔히 보는 '선데이 서울' 같은 잡지와 비슷한 수준으로 본다. 그래서 읽으면 별로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하지만 <채털리 부인의 사랑> 같은 책은 당시로는 얼굴이 화끈거리기는 했지만 그 문체의 아름다움이나 깊이에 있어서 가히 고전의 반열에 낄만하고 언제고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도서목록에  포함이 된다. 그래서 아마도 선생님들은 고전을 읽으라고 하셨는지도 모른다. 고전을 읽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뭐 때문에 쓸데없는 책을 읽느라 시간을 낭비할 것인가.  

하지만 그래도 하이틴 로맨스를 금하는 건 너무 심한 처사가 아닌가 싶다. 어른들 당신들도 늘 합리적인 선택만하고 시간 낭비 안하고 사는 것 아니지 않는가? 그렇게 고전만 읽으라고 강요하는 것도 어떤 면에서 주입식 교육의 잔재는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지금은 학교에서의 독서 교육의 어느 정도까지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학창시절엔 거의 사각 지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고전만 읽으라는 것은 또 다른 면에서의 독서 편식을 조장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해놓고 왜 독서에선 실패를 하면 안되는 것인가? 사람은 실패에서도 참된 지혜를 얻고 성공을 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실패를 해 보지 않고 어떻게 양서와 악서를 구분해 내겠는가?  

독서에서 실패하는 것은 다른 실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책이 마음에 안 들면 안 읽으면 그만이니까. 하이틴 로맨스가 정서를 혼란시키며 탈선을 조장한다고? 그건 책에 대한 지나친 강박인지도 모른다. 청소년들이 영상에서 지나친 폭력물이나 어른을 모방하는 것이 더 심각하지 않은가? 아니할 말로 어른이 되어도 제대로된 연애를 못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고 그에 따라 그것을 가르쳐 주는 책도 있고 그것을 전문으로하는 상담가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된 것이 청소년 때 한때 하이틴 로맨스를 읽었기 때문일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요컨대 독서 교육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며 그렇게 강압적이거나 흑백으로 나누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난 엄밀한 의미에서 양서니 악서니를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그렇게 만만하고 호락한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어느 정도 습관이 들이면 어떤 책이 좋은 책이고 어떤 책이 안 좋은지를 안다고 생각한다. 아니 이 세상에 정말로 나쁜 책이 있다면 좋은 책이 그 나쁜 책을 압도해 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책 읽기를 권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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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11-02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스텔라님 글을 보니 저도 갑자기 옛 생각이 나네요.정말 추억의 19금 소설에 대한 글입니다.하이틴 로맨스 소설의 경우 뭐 야동이랄것 까지는 없지만 예전에 선생님들이 많이 압수한 책이지요.근데 우리나라의 경우 이런 에로틱 소설의 기준이 무척 엄한것 같습니다.아마 위 하이틴 소설도 미국등에서는 청 소년소설로 읽힌 것으로 아는데 말이죠.뭐 만화 짱구시리즈도 짱구가 고추를 내놓는 바람에 국내에서도 한때 19금 만화로 분류되어 국제적 망신을 당한적이 있으니 말 다했죠.
스텔라님 글을 보니 저도 예전에 읽었던 에로틱 소설을 한번 정리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stella.K 2009-11-02 12:11   좋아요 0 | URL
ㅎㅎ 고맙습니다. 이 긴 글을 읽어주시다니...!
그런데 그렇지요? 우린 검열이 너무 심해요.
지금도 선생님들이 애들이 그런 책 읽는다고 뺏는지 모르겠어요.
한간엔 아직도 그런다는 말이 있던데...
그래요. 카스피님도 한번 정리해 보세요.
님은 어떤 일이 있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