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우연히 온라인 서점의 메일을 보다가 깜짝 놀란적이 있다. 표지가 같고 제목이 다른 책을 본것이다.  요즘 출판사에서 값비싼 디자인값을 줄이기 위해 획일화된 디자인을 사는 경우가 많다는 기사가 떠오르면서, 이건 정말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다양한 개인만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물론 비슷한 얼굴형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어 '닮은꼴 찾는'  프로그램도 있지만, 비슷할뿐 모습이 똑같진 않다. 그사람의 생활 환경, 성격과 인품에 따른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얼굴에 쌓이면, 한 장의 명함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게 바로 '얼굴'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의 얼굴과 같은게 바로 책의 '표지'다.

 

제목 만큼이나, 책의 내용을 짐작해볼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인 책의 표지가, 단지 비싸다는 이유로 획일화 되어버린다면, 주차장에 들어선 50대의 똑같은 검정 승용차를 본 후 소름이 돋았다는 박웅현 저자(그의 저서 여덟단어)님의 말씀처럼 소름끼치는 일일 뿐아니라, 한 공장에서  획일화된 제품만을 찍어놓고 진열해놓는 특색없는 '상품'이 되어버리는 일이 된다.

 

책이란 무엇인가? 저자가 사색속에서 잉태한 생각의 덩어리들을 언어라는 매개체에 담아 독자와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일련의 독자와 저자의 "대화의 창"이 아니였던가! 그런 저자의 명함과도 같은 표지가 일률적으로 획일화되는 무서운 세상이 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 표지에도 퀄리티(quailty), 즉 격(格)이  있음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돼지책 / 앤서니 브라운그림/ 웅진 주니어

 

첫번째로 꼽는 책은 앤서니 브라운의 재치와 유머를 만날 수 있는 동화책이다. 남편과 자식 둘을 업고 있는 저 여자는 천하 장사일까?  왜 책 제목을  '돼지'라는 이름을 지었을까란 무궁무진한 궁금증을 갖을 수 있는 책이다. 우리가 표지를 보고 짐작할 수 있는것 처럼 이 동화책의 주제는 가정내에서 보여지는 '엄마'의 역할과 가족들의 '역할'이다. 흔히 가사는 엄마의 몫으로 생각하고 있는 아버지와 아이들과 함께 보면 좋을 동화 책이다.

 

 

 

 

 

2.소크라 테스의 변명 / 플라톤/ 문예출판사.

 

 왼쪽 첫번째 책은 개정판으로 나온것이고, 두번째 책은 개정판  전의 책이다.  나의 개인적인 안목은 두번째 사진을 더 좋아한다. 1787년 다비드가 그린 작품으로 소피스트들의 모함으로 사형을 받게된 소크라테스가 사랑하는 제자들 앞에서 독배를 마시기 직전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두번째 사진에 제일 앞 의자에 앉아 고개를 떨군 사람이 플라톤인데, 그 당시 28살의 플라톤을 지인의 권유에 따라 노인으로 그렸다고 한다. 그림의 왼쪽 계단위를 오르면서 소크라테스 쪽을 바라보는 여인이 소크라테스의 악처가 크산티베 라고 한다. 그녀는 악처가로 소문이 났는데 소크라 테스의 죽음 소식을 듣고 슬펐을까? 개정판으로 나온 표지에는 이런 전반적인 이야기들을 상상할 수 없이 독배를 마시기 직전의 소크라 테스를 중심으로 편집해버려서 좀 아쉬운 마음이 크다.

 

 

 

 

3. 빅 피처 / 더글라스케네디/ 밝은 세상

 

 

세번째로 소개하는 작품은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 피처다. 내가 읽어본 더글라스 케네디의 책 중 제일 으뜸으로 치고 있는 소설인데, 표지를 보면 손에 묻은 피, 들고 있는 사진은 섬뜩하며 글의 흐름을 짐작해볼 수 있게 한다. 양복과 캐쥬얼 모자를 쓰고 있는 사진속의 인물은 상반된 상징을 느낄 수 있게하는데 하나는 도망자의 신분을 가림을 위한 도구로 볼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양복이 "부"의 상징이라면 캐주얼 모자는 "가난"의 상징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사진작가라는 꿈을 포기하고, 변호사로 살아가던 벤이 우연히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고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이후 도망자 신분에서 사진 작가의 꿈을 이루는 과정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의 결말에 이르렀을때 법적 심판대에 오르지 않고 끝을 맺는  부분에서 사람들은 도덕성과, 이상 실현이라는 관점을 두고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4. 이방인/ 알베르 카뮈/ 민음사

 

 알베르 카뮈의 작품인 이방인의 표지는 알베르 카뮈 자신이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모르쇠'라는 인물은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도 무관심한 인물이다. 그저 기분에 따라 느끼고 행동 할뿐 다른 어떤것에 호기심이나 관심을 표현하지 않는 인물이였다.  표지에서 보여지는 날카로운 이목구비 만큼이나, 날카로운 시선 처리가 흑백사진과 잘 어울려 '이방인' 특유의  '불안감'을 안고서 외로움과 쓸쓸함, 방랑가적 기질, 빛과  섞일 수 없을듯한 모호함들을 표현한듯 했다.

 

 

 

 

 

 

5. 모던보이/ 이지민/ 문학동네

 

박해일, 김혜수 주연의 영화 <모던보이> 원작으로 알려진 이지민 작가의 소설이다. 소설 모던보이의 표지엔 주인공 조난실의 뒷 모습이 그려졌다. 아래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과, 등뒤에서 흩날리고 있는 벚꽃잎은 일본이라는 상징성을 주고 모던해보이는 여자의 쓸쓸한 뒷모습은 고독스러우면서도 아름다움을 주었다. 나는 앞 표지의 그림도 좋아하지만, 무엇보다 뒷 표지를 선호한다. 뒷표지에는 주인을 잃어버린 담뱃대에서 꺼질줄 모르고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여전히 흩날리는 벗꽃잎들은 독립을 향한 열정과, 일본의 지칠줄 모르는 억압이라는 상징성을 담고 있다고 생각 되었다. 이렇게 표지에 담긴 의미를 읽어내는 재미. 이 재미를 느낄 수 있을때 그 책의 값어치는 남달라지는게 아닐까?

 

 

 

 

 

6. 금붕어 2마리를 아빠랑 바꾼날/ 닐게이먼/ 소금창고 

 

내가 좋아하는 동화 작가 닐 게이먼은 유쾌하고 코믹한 그림으로 감동을 선사하는것 같다. '금붕어 2마리를 아빠랑 바꾼날'의 동화를 보면 친구가 가져온 금붕어 2마리때문에 정신을 빼앗긴 아이가 신문보는것말곤 할 줄 아는게 하나도 없는 '아빠' 와 바꿔버린다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동화가 끝날때까지 시종일관 신문에 코를 박고 있는 '아빠'의  얼굴은 결코 만나볼 수 없는 부분을 보며 이것은  우리네 아버지들의 자화상이자 어항의 얼굴에서  읽혀지듯이 물질 만능주의의 시대가 낳은 폐단의 모습도 함께 보여주는 듯해 씁쓸한 마음을 갖게했던 표지였다.

 

 

 

 

7.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7 / 유홍준/ 창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어떤 수식어도 필요없는 유홍준 교수님의  답사기다. 책의 표지를 보면 대표가 되는 문화유산을 선정하여 담고 있는데, 표지 뒷면을 살펴보면 "표지 사진은 경주 감은사터 삼층 석탑이며, 제목 글씨는 조선 후기에 목판본으로 간행된 언간독(諺簡牘)에서 집자된 것이다"(1권 표지 뒷면) 라는 글귀를 만날 수 있다. 이는 저자와 편집자의 각고한 상의 끝에 얻어진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우리가 평소 알지 못했던 문화재의 아름다움과, 무관심 속에서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일깨워줄 뿐 아니라, 책의 대표 유적지를 상기시켜주고 있고 옛 것의 멋스러움을 표현해주는 멋진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떤 한 권을 선택할 수 없고, 어떤 한 권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값진 책인것이다.

 

 

 

 

8. 안돼 데이빗/데이빗 새논/ 지경사

 

이 책의 표지를 본 아이들은 표지만 보고도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고 있다는듯 긴장한다. 동화라는 특성상, 책의 내용을 가장 잘 살려 표현해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모든 동화책들이 그렇게 책의 내용을 잘 살려 내는것은 아닌데, 이 데이빗 새논의 동화들을 보면 각 동화의 중심 내용중 특징적인 것을 골라내어  살려내는 맛이 있는것 같다. 익살스러운 표정의 아이와, 곧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 같은 긴장감, "안돼, 데이빗" 하고 외치는 어른의 시선을 받아내고 있는 데이빗의 장난끼어린 표정들이 이 책을 더욱 사랑스럽게 만들어 주는것 같다.

 

 

이 외에도 소개되어야 할 표지들이 많다.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표지들도 있을테고 말이다. 우리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해야 한다는 외침을 담은 책은 많으면서도 정작 그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행동을 하지 않아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저자에게 주는 다양한 문학상은 있지만, 하나의 작품의 끝을 완성하는 표지를 만든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은 없는것을 보면 말이다. 이제라도 책의 표지는 저자의 생각 덩어리를 완성하는 하나의 매개체 라는 인식을 잊지 말고, 하나의 작품으로 인식하는 노력과 더불어 그들의 노력을 보상하는 제도가 생겨나고, 더불어 값에 휘둘려 하나의 작품의 끝을 표현하는 '표지'를 획일화 시키는 출판사들의 만행이 멈춰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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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4-12-30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이른바 북 디자이너 라 하나요?
편집하시는 분들의 고생을 보니 역시 그건
정말 옳지 못하단 생각이 드네요.
아류들..이 그런거..죠.편승해 가기.
그래서 요즘은 북플에 책이 익숙해도 속까지 같은가 또 내가 읽은 책은 같은 작가의 다른 출판사 초판본인데 하고 ..이걸 읽었다 표해야하나 갈등하게되요.같이 고민하게되서 즐겁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4 - 교토의 명소, 그들에겐 내력이 있고 우리에겐 사연이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창비에서 주관하는 이벤트에 참여헤서 받은 가제본을 읽은 바탕으로 기록된 리뷰 입니다. 가제본의 특성상 기록하는 페이지가 일치 하지 않을 수 있어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어릴적 공부에 눈을 띄게된건 고교시절 국사 수업 때문이였다.  고리타분했던 암기위주의 수업에서 스토리 위주의 이야기로 바꿔주시는 선생님 덕분에 국사 시간이 기다려졌고, 처음 만점이라는 성적을 받아본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다. 그때 역사는 '암기'가 아닌 '이해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내 생각과 가장 잘 맞는 분이 계시는데 바로 '유홍준' 교수님이다.

 

유홍준 교수님의 저서들<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를 대할때면 언제나 즐겁게 우리의 역사를 이해하게 된다. "역사는 문화유산과 기억할때 구체적 이미지를 갖는다"는 표현처럼, 역사속에 숨은 문화유산을 찾아 내력에 관한 재밌는 설명을 듣고 있자면 따라 나서고픈 마음이 들기도 하고 찾아나서고픈 기분에 심장이 뛰기 때문이다.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가고 있지만 마땅한 안내서가 없는게 안타까워 답사기를 구상하셨다는 유홍준교수님의 이번 교토 명소 편을 살펴보면 정말 알뜰한 안내서가 따로없다. 답사의 노선, 일본의 엄격한 문화재 관리로 인해 필시 체크해야하는 상황등 세세히 설명해주시기 때문이다.

 

 

1. 일본학 입문서인 이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 시리즈중 마지막에 해당하는 교토의 명소 4는 13세기 가마쿠라 시대 후기 부터 에도 시대 말기인 19세기까지에 이른다. 그러니까 가마쿠라 (1185~1333),무로마치(1334~1573), 전국시대(1573~1603), 에도시대(1603~ 1867) 까지 해당되는 셈이다. 그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4권에서  다루는 내용은 일본만의 정원양식, 역사속에 피어난 건축의 탄생과, 선종사찰, 다도에서 꽃 피어나는 와비사비 까지의 다채로운 이야기들어 있고. 놓치면 아까울 교토의 현재 모습이 담겼다.

 

일본은 천황과 쇼군이 존재하는데 천황은 말 그대로 왕족을 뜻하고 쇼군은 무신의 권력중 최고를 뜻한다. 일본에서는 이 쇼군이 천황보다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어 천황의 힘이 나약하여 왕가의 귀족으로 태어나 스님이 되는 사례가 많고 그때마다 생겨난 사찰도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찰의 이야기를 시작할때면 시대의 이야기를 거치지 않을수 없다. 3대 쇼군 중 하나인 요시미쓰가 춘옥선사에게 사찰하나를 지어 참선수행의 뜻을 밝혀 세운 상국사나 요시미쓰가 아들에게 권력을 내어주고 지은 북산전, 요시미쓰가 죽고 그의 아들 요시모치가 몽창국사에게 권청하여 개산하게된 녹원사(지금의 금각사) 등을 통해 일본의 문화와 역사, 건축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는것이다.  

 

 

일본의 사찰을 거닐다보면 다양한 모습을 지닌 정원을 만나게 되는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조경 용어인 정원(庭園)은 우리나라와는 맞지 않는다고 한다. 동산의 뜰이란 뜻의 정원보다는 놀고 휴식하는 장소의 원림(園林)이라 해야 맞기 때문이다. 그 옛날 조선 선비들이 둘러 앉아 술상을 받아놓고 시를 짓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니 그 구별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일본은 '자연을 재현한 인공적인 공간으로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정원(庭園)양식을 이루고 있는것에 반해 우리나라는 자연공간안에 인공적 건물이 배치되고 나무가 심어지고 화단이 만들어져 사람이 들어가는 형식을 띄고 있어 원림(園林)이 되는것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보길도의 고산 윤선도의 원림이며 우리가 흔하게 가까이서 볼수 있는곳이 우리네  '마당'이다.

 

 

그래서 답사기에 실린 여러 일본 사찰들의 이야기엔 인공미를 가미한 정원들이 자주 소개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용안사 석정인데. 선종사찰인 이곳은 물이 없는 마른 산수 정원을 띄고 있다. 낮은 흙담으로 둘러싸고,자잘한 백사를 가득 깔아놓은 다음 15개의 돌을 파란 이끼위에 얹어 놓았는데  그 공간속엔 공(空), 불변(不變), 지(止), 관(觀), 명상(冥想)으로 읽어낼 수 있는 추상미술 내지, 설치미술로 일컬어지기도 한다고 한다. 긴 툇마루에 앉아 침묵의 석정을 바라보는 답사객들의 사진을 보니 그 고요한 마음이 전해져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정원이라는 공간이 이처럼 표현되어지는 미술임을 알게 되었다. 이젠 누구네 집의 마당 이라도 쉬이 그냥 지나칠 수 없이 마냥 들여다보게 될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사찰과 정원 이야기를 지나다보면 다도에 관한 이야기도 만나게된다. 일본의  차의 대표 서적 오카쿠라 덴신의 <차의 책> 이야기를 시작으로 일본다도의 정신적 가치인 '와비사비'라는 개념을 알게된다. '와비사비'는 쓸쓸하다, 부족하다 는 개념으로 소개되는데 사전으로 찾아보니 '평범한 사물을 감상할때 아무리 불완전하고 초라할지라도, 거기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일본의 미의식'이라 한다. 그래서 일본의 다도를 모르면 일본을 모르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일본 고유문화인 다도를 통해 일본문화, 정신, 미학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 다조(茶祖)라 칭송되는 센노 리큐의 삶과 그의 다도 문화의 정착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다회의 최고 책임자인 다두로 임명했다가 훗날 그로인해 할복을 해야했던 기구한 사연들을 만날수 있게된다. 뿐만아니라 그간 생소했던 다기에 관심이 가지고, 차 문화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나는데 특히 고려 다완의 기품을 알고 센로 리큐가 즐겨 사용했던 고려 다완들이 무려 250점이나 되었다고 하니 고려 다완을 가까이 보고 싶은 마음이 커지게 된다.

 

 

제 5부 남은 이야기 편에 보면 살아있는 교토의 거리와 답사단을 이끌고 거닐었던 길을 상세히 소개할 뿐 아니라 일본의 "시니세 문화"에 관해 전해주시는데, 오래된 점포를 말하는 시니세는 가업을 잇고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상점들의 전통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루 아침에도 상가의 모습이 변해가는 길목들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게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었다. 또한 유홍준교수님이 자주 찾아가신다는 고서점 헤이안도의 이야기를 읽을땐 뭉클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에게 옳은 역사와 문화를 알려주시고자 노력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러웠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백제 도자기를 처음본 후 그 형태에 반해 구입했다가 우리 문화재의 가치가 높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국의 미술품을 모아 미술관을 세웠다는 고려 미술관 설립자 정조문님의 이야기 또한 가슴 뭉클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쓸쓸했을 이국땅에서 우리 문화의 숨결을 찾아 간직하고픈 그 마음을 지키고, 문화재를 보존하는 차원에서라도 우리나라에서 도와줘야하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든다. 그 미술관 마져 일본의 품에 안긴다면 정말 후세에 길이길이 남는 치욕의 역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일본 사찰의 배경이 되는 시대성과 인물들, 일본이 가지고 있는 '와비사비'문화 속에 피어난 마른산수 정원, 지천회유식 정원의 양식 혹은 다도를 통해 '선'을 추구했던 전통방식등을 통해 멀고 어렵게 생각되었던 일본 문화와 역사를 쉽고 재밌게 배울수 있었기에 이 책이 "일본학 입문서"라고 생각한다. 또한 역사학자로써 문화유산을 계승하는 한 사람으로써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각과 해법들은 우리가 함께 공유해야할 가치가 있기에 일본학 입문서로써의 책의 가치는 높이 살만하다고 생각된다.

 

" 일본은 과거사 콤플렉스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은 근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일본을 무시한다"

 

" 과거사의 잘못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그로 인한 피해의 청산이 이루어진 다음에 신뢰를 바탕으로 친선관계가 이루어진 것이다"

 

"건축과 미술의 정신적,사회적 가치는 이렇게 큰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조형의 가치를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부차적이거나 주변적인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통념이 불식되지 않는 한 우리가 바라는 문화 융성의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 내가 진짜 고민스러운 것은 100년 뒤 지정될 국보나 보물이 이 시대에 생산되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 나는 건인사가 길바닥에 나앉은 절이 된 폐불회석의 광폭함을 일본인들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인식하고 있는가 의심했는데, 마찬가지로 조선왕조가 숭유억불의 폐불 정책으로 대장경을 비롯한 많은 불교 문화재를 외교적 답례품으로 일본에 주었다는 사실을 한국인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대하여 똑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시각은 공정해야 하고, 잣대는 똑같아야한다"

 

 

 

2. 그들에겐 내력이 있고 우리에겐 사연이 있다.

 

 

 

숭유억불의 폐불정책으로 우리나라는 불상, 불화, 대장경, 고려 범종등 수많은 보물들을 외국사절단에 실어 보냄으로써 우리가 간직해야할 문화유산들이 많이 사라진 상태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의 내력을 살펴보다 보면 우리의 기구한 사연들이 들춰지는 웃지못할 일들이 있는것 같다. 특히 지은원 사찰에서 국내에서 볼 수 없는 고려 불화<관무량수경변상도><미륵하생경변상도><미륵하생경변상도><오백나한도>등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나, 건인사가 팔만대장경의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들의 이야기를 접하다보면 마음이 무척 쓰라림을 느낀다.  무엇보다 우리가 우리 문화를 지키려는 노력. 그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이 안타까움은 이 시대에서 끝나지 않을것 같다. 그들의 내력속에 숨어든 우리들의 사연이 통하여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우리 문화 유산을 지금이라도 돌려줌으로써 역사가 제자리를 찾아 가는 과정이 피어나길 손꼽아 기대해본다.

 

더욱 아쉬운점은 이런 명작들은 찾아간다고 해서 쉬이 만날 수 없으며, 그들의 보존 방식에 따라 영영 보지 못하는 보물들도 있다고 하니, 답사를 위해서는 필히 체크해보고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3. 마무리하며.

 

처음 이벤트에 당첨되었을때 걱정이 들었었다. 나의 문화유산 시리즈중 일본편을 읽지 못했는데 이 권을 잘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데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내 기우(杞憂)였음을 알게 되었다. 이 책에 필요한건 단지 연필, 포스트잇 그리고 지우개 였으니 말이다.

 

 

 

연필로 그어가며 모르는 부분은 되풀이해서 보고, 시대배경을 적어놓고 대조하고 포스트잇으로 중요한 문구를 표시해놓으면서 읽으니 정말 재밌게 읽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홍준 교수님이 어릴적 살아야했던 일본 가옥과 어머님에 관한 사연, 미술학을 공부하기 까지의 과정들을 통해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 어느 시대를 타고났건, 어느 장소에 놓였건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이룰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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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색색으로 물든 나뭇잎들이 빗방울에 떨어져 거리를 덮었다. 마치 비단이불을 깔아놓은것처럼.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밟으며 걷고 있자니 성큼 다가온 11월과 12월이 실감난다. 벌써 2015년 이라니. 연말이나 연초가 다가오면 늘상 그랬던거처럼, 처음 세웠던 계획들을 돌이켜본다. 내게 있어 책은 무엇이었나.

 

 내게 있어 책은 호기심이였다. 책을 읽는 모든 행위의 답은 호기심을 찾는 과정이였다.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어떤 식으로 알려줄까. 과연 알게될까 같은 무궁무진한 호기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는 행위. 이 달은 나에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책을 선정해보았다.

 

 

 

 

1. 금난새와 떠나는 클래식 여행. 11월 1일~11월 6일 304킬로미터    

        http://blog.aladin.co.kr/757848145/7196434

 

 

우연찮게 쇼스타코비치의 왈츠2번 동영상을 본 순간

가슴뛰는 벅찬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연주자들의 연주 만큼이나 아름다운 미소들속에 왈츠를 추는 사람들의 행복한 미소가 동영상이 끝나도록 긴 여운을 남겼다. 너무나 감동적이였다. 그날이후 클래식이 궁금해 찾아보던 중 금난새 선생님의 책을 찾게 되었다.  클래식은 무엇일까?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감동과 슬픔을 느끼게 하고, 물이 되어 흐리고 폭풍이 되어 몰아치는것일까란 호기심에 구입했던 책. 이 책을 보게된다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까? 기대되는 책이다. 

 

 

2.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11월 1일~ 11월 6일 276킬로미터

 

http://blog.aladin.co.kr/757848145/7195952

 

" 우리는 결국 태어난 시대와 장소에 의해 결정된다"

라고 말했던 노벨문학상 수상자 파티리크 모디아노.

세계2차 대전이 끝날무렵 태어났던 그의 아버지는 유대교라는 신분을 숨기기위해 가짜 신분으로 살아가며 힘겨웠던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소설속에 녹아진 그의 내면을 읽게 된다면 2014년이 선택한 노벨문학상의 의미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선택한 책.

 

 

 

 

 

 

3.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여행. 11월 7일~ 11월15일 229킬로미터

 

http://blog.aladin.co.kr/757848145/7205549

 

나는 걷는다의 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 30년의 기자 생활후 은퇴. 찾아온 무기력함으로 극단적인 자살이라는 선택도 하지만, 이후 자신의 삶을 배낭에 꾸려넣고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1만 2천킬로미터의 실크로드 순례길을 걸으며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나는 걷는다 였다면 이 책은 그 이야기의후속편이다. 전작 나는 걷는다에서는 여행서적이지만, 사진 한 장 싣지 않고 오롯이 사실과 객관성 그리고 자신의 느낌으로 버무린 책이였다면 '여행'은 수채화가와 함께 다시 실크로드 답사길을 자동차로 여행하며 만났던 사람, 풍경을 수채화로 담아낸 책이다. 이 책은 현재 품절상태라 알라딘 품절센터에 반신반의하며 의로했는데 의외로 빨리 화답을 주셔서 감사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걷는다에서 글로만 보았던 풍경을 수채화로 담아낸 풍경은 어떨까 호기심이 절로 생기는 책. 빨리 읽고픈 마음이 샘솟는 책이다.

 

 

 

 

4.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1월6일~ 11월 12일 507킬로미터

 

http://blog.aladin.co.kr/757848145/7201960

 

밀란 쿤데라.'책은 도끼다'의 박웅현님도, 'tv 책을 보다'에서도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 후보에서도 듣고 또 들었던 그와 그의 작품들. 개혁을 원했지만, 끝내 실행하지 못하고 자신의 책이 광장에서 모두 불타야 했던 아픔과, 조국이였던 체코를 끝내 떠나 프랑스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의 아픔. 이런 수식어만으로도 무한한 호기심이 샘솟는다. 과연 어떤 분일까. 소설속에 녹여놓은 이야기가 무엇일까. 궁금하면서도 덜컥 겁이나는 책이다. 많은 이들이 (문학평론가들까지) 읽기 쉽지 않았다 토로하는 책이니 만큼 큰~ 용기와 인내를 가지고 읽고 싶은 책이다. 비록 동생이 책을 읽다가 덮어버리고 다른 책으로 바꿔왔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라도.

 

 

 

 

5.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 남도일번지  11월 21일 .435킬로미터

 

http://blog.aladin.co.kr/757848145/7215198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여행기를 읽으며 우리나라의 역사유적과 관련된 답사기가 떠올랐다. 바로 '유홍준'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비록 읽었지만, 읽었다 이야기할 수 없을정도로 오래전에 생각없이 읽었던 책이라 다시 꺼내들고 책에 살포시 앉았던 먼지를 털어냈다. 몇일 전 읽었던 교토4편이 너무 재밌고 인상적이였는데 그 기분으로 다시 시작해보고 픈 마음에 이 달에 선정해봤다. 우리 문화유산 7권과 일본 문화유산 4권까지 완주하게 된다면 나도 베르나르 올리비에 만큼이나 역사에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되는것일까?  열심히 재밌게 읽으며 그 해답을 찾아봐야겠다.

 

 

 

 

6.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1월 21일 318 킬로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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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난쏘공'으로 일컬어지는 이 책은 작가 신경숙님이 고교시절 너무 좋아 여러번 필사했다던 책으로 기억된다. 간결한 문체때문에 글쓰기 책에서 많이 소개되는 책이기도 하며, 1970년대의 자화상이라고 표현되어지니  무척 궁금한 소설이다. 어떤 문장들을 만나게될까. 신경숙 작가님을 반하게 했다던 문장들은 어떤 것일까.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문장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래보는 책.

 

 

 

 

 

 

 

7. 세계 역사 이야기 1- 교양있는 우리 아이를 위한. 11월 29일 428 킬로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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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서적을 좋아하다보면 꼭 거쳐야하는 그 나라의 역사 이야기들이 있다. 유머로써 혹은 꼭 알아두면 좋은 상식이야기들을 접할때 마다 좀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이해되지 못할때면 그 부분은 그저 이해되지 못한채 넘어가는 일들이 수두룩했다. 그럴때마다 내게 기초적인 역사 지식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찾다가 알게된 책이다. 물론. 아동도서이지만, 부모와 함께 보기 좋을정도의 이야기라 세계의 역사를 무턱대고 만나기 힘든 분들에게 입문용으로 좋을 책이다. 원래는 자왈 네루의 '세계사 편력'만 보려고 했는데 어떤 분의 글귀에 마음을 정했다. ' 자활네루는 자신의 딸이 13살이라고 했지만, 그아이는 분명 기초 지식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책을 읽기 힘들다' 라는 표현에 덜컥 겁이 생겨서 이 책을 시작으로 5권 완독하고 나면 자활네루의 '세계사 편력'을 시작할까 한다.

 

 

이렇게 선정해본 7권의 도서들. 10월에 읽을 책을 5권 선정했다가 우연찮게 창비의 이벤트에 당첨되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교토편 4' 가제본 까지 더해 6권을 무리 없이 읽게 되어서 이번 달엔 한 권 더 늘려서 읽어볼 계획이다. 생각만해도 어마무시한 거리가 될거 같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고 이번 달도 잘 해낼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8. 소설가의 일 . 11월 28일 264킬로미터

 

http://blog.aladin.co.kr/757848145/7232596

 

예정에 없던 책을 읽는다는건 설레는 일이였다. 그것도 처음

만나는 김연수 라는 저자의 산문집은 더더욱. 형식없이 씌여진 글이라는 점과, 소설가의 일이란게 우리네 인생과도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어 참 좋은 책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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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세계문학 전집의 작품을 만날때 마다 나는 마치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 기분이다. 소설이라는 허구 속에 감춰놓은 은밀한 내면을 찾아내는 놀이 말이다. 때론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 처럼 '현실과 이상'이라는 주제를 쉽게 찾아내기도 하지만,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처럼 모호함을 띄는 소설이 적지 않아 많은 생각을 들게하고, 결국 도중 하차라는 쓰라린 경험을 하기도 한다.

 

이 소설은 다행스럽게 136페이지라는 결코 길지 않은 분량이라 쓰라린 경험은 넘겼다. 그러나 그 피할수 없는 은밀한 내면속의 모호함에 빠져 몇날 몇일 책을 덮어놓고 고민해야했다.  왜 이 책의 제목이 '이방인'이여야 했을까. 알베르 카뮈가 말하고자 했던 "이방인"이 무엇이었을까.

 

소설의 내용을 구성해보면  간략하다. 연로하셨던 어머니의 죽음으로 부터 장례식 진행과, 다음날 마리라는 여자를 만나 함께 지내는 일, 레몽이라는 친구를 알게되고 그와 함께 그의 바람핀 여자를 혼내주고, 해변가로 놀러간일, 그곳에서 우연찮게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재판이 진행되어 가는 과정과 사형에 구형되기 까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세세히 살펴보니 두가지 관점에서 '이방인'을 바라볼 수 있었다.

 

1. 엄마의 죽음으로 부터 바라보는 이방인.

 

주인공이자 화자인 모르쇠는 엄마의 죽음을 알게된날 양로원에 찾아간다. 찾아가는 버스에서 피곤때문에 줄곧 잠에 빠져들었다가 양로원에 도착한다. 도착한 양로원에서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보겠냐는 질문에 보지 않겠다고 대답한다. 굳게 닫혀진 관앞에 앉아 또다시 몰려오는 잠때문에 졸고 있자니, 엄마의 양로원 친구들이 들어와 가만히 모르쇠를 바라보고 있는 장면에 이르렀을때  빛, 침묵, 심판 이라는 글자를 만나게 된다.

 

 

'무언가 스치는 소리에 잠이 깼다. 눈을 감고 있었던 탓인지 방 안의 흰이 눈부셔 보였다. 내 앞에 그림자 하나 없었고, 물체 하나하나, 모서리 하나하나, 모든 곡선들이 눈이 아플정도로 뚜렷이 드러나 보였다'p16

 

' 그들은 의자 삐걱거리는 소리 하나 내지 않으며 앉았다. 나는 지금까지 사람이라고는 본적이 없는 것처럼 그들을 자세히 보았는데 그들의 얼굴이나 옷차림의 사소한 모습 하나에 이르기까지 나의 눈에 띄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도 말이 없어서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p16

 

'나는 한 순간, 그들이 나를 심판하기 위해서 거기에 와 앉아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인상을 받았다........................ 이제 내게 고통스러운 것은 바로 이 모든 사람들의 침묵이었다'p17

 

흔히 선과 악을 구분할때 어둠과 빛을 거론한다. 이런 관점에서 살펴보자면 빛 앞에 놓여진 모르쇠는 어둠속에 있는 악이된다. 엄마의 죽음에 전혀 슬퍼하지 않고 피곤하다는 핑계에 기대어 졸고 있으며, 엄마의 나이를 모르고,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행위들은 평범하기 까지 하다. 가족을 잃은 상실감이란 지구상에 혼자 놓여진 고독감과 낯선환경들 속에서 찾아오는 불안감을  수반하지만, 모르쇠에겐 그저 우연히 엄마가 돌아가신, 돌아가시지 않았으면 좋았을 하루에 지나지 않는 그런 날들중 하루일 뿐이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이질적인 모습에서 보여지는 부분들이 그가 '이방인'인일수 밖에 없는 사유를 설명하는 듯했다.

 

2. 재판 과정으로 바라보는 이방인.

 

우연히 친구 레몽으로 부터 레몽의 여자친구가 바람이 난 사실을 전해듣고 함께 혼내주기로 한다.  혼내준 여자친구의 오빠로 부터 나타난 아랍인들과 긴장감이 감도는 시선을 주고 받은 후 알수 없는 강렬한 태양 빛 때문에 아랍인을 총으로 쏴주인 모르쇠는 재판을 받게된다. 재판 과정에서 모르쇠는 엄마의 장래식이 있던 그날의 일들로 부터 살인 사건을 결부 시키는 재판관들의 진행과정을 지켜보면서도, 어떠한 변명도 하지 못하고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다. 엄마의 장래식에서 무감각해보이는 그의 행동들과 그 다음날 우연히 옛직장 동료였던 '마리'를 만나 수영을 하고 영화를 보고 사랑을 나눈 이야기들이 그가 추잡한 인간의 하나일 뿐이라고 낙인한다.

 

여기서 지켜봐야할 부분은 우연의 연속성이였다. 엄마의 죽음, 마리의 만남, 레몽과의 만남과 레몽의 계획에 참여하는 일,  그리고 해변가에서 아랍인의 살인까지 어느하나 계획되지 않은 우연의 연속성에 놓여졌다. 재판에서 참작되어야할 '우연'이라는 필요성에 대해 검사는 말한다.' 이 사건에 있어서 우연은 이미 양심에 많은 폐해를 가져왔다고'p106 또한 엄마의 죽음이 이 사건과 전혀 무관함에도 계속해서 그 사건에 초점을 맞추는 이유에 대해 '범죄자의 마음으로 자기 어머니를 매장했으므로, 나는 이 사람의 유죄를 주장하는것'p108이라 말한다.

 

 

모르쇠는 살인을 저지른 가해자의 입장에서 재판이 진행될 수록 재판에 참여할 수 없는 낯선 풍경들속에 놓여져 자신을 바라보는 방청객, 검사, 재판관들의 시선에서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이 모호성을 띄는 부분은 바로 이 후반부이다. 모르쇠에게서 느껴지는 이 이질감을 통해 그는 더 이상의 가해자 신분이 아닌, 자신을 어떤 식으로도 변호하지 못한 한 인간으로써 남게된다. 여기서 그에게 더 이상 책임을 물을 수 없고, 공정성이 없는 재판의 과정이 진행될수록 갖가지 의문점을 갖는것이다. 바로  '모든것이 사실이라지만, 사실은 하나도 없습니다'p103 의 표현처럼, 엄마의 죽음이라는 사실적인 이야기속에 슬픔을 느낄 수 없었던 근본적 이유를 찾았어야 했던 법이라는 심판대는 근본적인 이유를 외면해버린채 우리의 도덕성과 윤리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내몰았다는  사실과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고도 재판에 참여되지 못한 존재감이 바로 "모든것이 사실이지만, 사실인것은 하나도 없다"는 이방인을 만들어낸것이 아닐까

 

 

결국 소설속 강렬하게 등장하는 '빛'의 요소는 모르쇠가 들어가지 못한 다른 세상의 문이 아니였을까? 소설 속 죽음과 사랑, 우연의 연속성은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소재일뿐이다. 사실이라 믿고 있는 문제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방인들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우리가 사실이라고 단정짓는 그것으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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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학창시절 고전 한 권 읽기가 의무적 사항이 되었을때 권장도서 목록에 있던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읽은 적이 있었다. 내가 첫 고전으로 선정했던 이유가 다른 고전들에 비해 사랑이야기라는 묘한 끌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사랑이라는 개념과는 다른 사랑의 모습이였다. 도대체 에밀리 브론테는 왜 이런 글을 썼을까? 히스클리프 와 캐서린이 반 미치광이 처럼 보이기만 했던 이 소설을 왜 읽어야만 할까란 마음에 답답했고, 고전이란건 나와 맞지 않는 머나먼 세계의 이야기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히 줄거리를 따라 읽기만 했을뿐 행간에 숨어든 깊이를 느끼지 못해 열정적인 사랑이 반 미치광이의 몸짓에 지나지 않게 되었던듯 하다. 그때 이후로 나는 책을 읽는 방법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이 무엇일까란 물음들에 답을 찾기 위해서.

 

 

수많은 책들 속을 떠돌아다니며 얻은 결론은 천천히 깊게 읽어라 였다. 글자 속에 숨어든 깊이를 느껴야 진정한 책 읽기란 글을 접할때마다 도리어 답답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어떻게 깊게 읽으란 말일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생겨지는 의문 앞에 속 시원하게 대답해주는 저자를 만나지 못했었다.

 

 

 

박웅현님의 <책은 도끼다 > 역시 시작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 어떤 책은 찍어 읽어야 하고, 어떤 책은 흘려 읽어야 하고, 어떤 책은 문맥으로 읽어야 하는데, 그게 안 잡히면 책이 재미없는 겁니다"p16 책을 읽는 방법에 관한 수많은 책들에 의하면 책을 읽을땐 책을 읽는 목적을 정하고 , 빨리 읽을 책, 천천히 읽을 책, 훑을 책을 정하라 했다. 하지만 80%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할애하는 책들 속에서 건져 올린 20%는 다분히 이론적인 기준에서 설명될 뿐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줄 책은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은 좀 다를까 하는 은근한 기대심이 일었는데 ' 인문학 강독회'라는 글귀가 그랬고,<여덟단어>라는 책을 통해 그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창의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광고를 24년간 만들 수 있었던 바탕에는 '인문학'이 있고, 그 인문학의 중심에는 '책'이 있었다는 저자 박웅현님은 서로 소통하고 교감하기엔 '책'만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자신만의 독법으로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지, 그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이 바로 < 책은 도끼다> 이다. 책과 교감하며 자신에게 울림을 주고 얼어붙은 감수성을 깨드려준 책들과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올바른 통찰력을 만들 수 있는 책들을 소개 한다.

 

 

 

여덟 번의 강의 내용을 다듬어 묶어놓은 책이라 그런지, 여느 책처럼 딱딱하지 않고 강의를 듣고 있는듯 쉽고도 강하게 다가온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들보다도 생소한 작품들이 많았는데 산문, 시, 기행, 고전, 미술 등 다루는 주제가 다양하면서도, 그 주제들에서 얻을 수 있는 울림들은 저마다 달랐다.

 

 

어떤 울림은 툭 스치듯 “ 꽃 보내고 보니/ 놓고 가신 작은 선물 /향기로운 열매<이철수- 작은 선물>” 어떤 울림은 여운을 남기듯 “하루 종일 봄을 찾아 다녔으나 보지 못했네/ 짚신이 닳도록/ 먼 산 구름 덮인 곳까지 헤맸네/ 지쳐 돌아와보니/창 앞 매화향기 미소가 가득/ 봄은 이미/ 그 가지에 매달려 있었네”<- 작자 미상> 또 어떤 울림은 강한 충격을 남겨주기도 했다. “ 여행지에서 그렇게 만났다가 그렇게 떠나 보낸 사람들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우리 일생이 한갓 여행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행길에서 우리는 이별 연습을 한다. 삶은 이별의 연습이다. 세상에서 마지막 보게 될 얼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한 떨기 빛. 여행은 우리의 삶이 그리움인 것을 가르쳐 준다.<김화영- 예술기행문>

  

 

이철수, 김훈, 알랭 드 보통, 고은, 김화영, 니코스 카잔차키스, 알베르카뮈, 앙드레지드 마리아 릴케, 밀란 쿤데라, 톨스토이, 손철수 까지 마치 느린 템포의 연주가 시작되다가 절정의 클라이맥스로 치닫을 때 처럼 한 호흡도 느슨하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무릎을 치기도하며, 그간 어렵게만 느꼈던 깊게 읽는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다.

 

미나리는 발랄하고 선명하다. (....) 그러므로 미나리는 된장의 비논리성과 친화하기 어렵고 오히려 고추장의 선명성과 잘 어울린다. 봄 미나리를 고추장에 찍어서 날로 먹으면서, 우리는 지나간 시간들과 전혀 다른, 날마다 우리를 새롭게 해주는 전혀 새로운 날들이 우리앞에 예비되어 있음을 안다.” 김훈이 표현한 미나리에 관한 글귀를 읽고 작가 박웅현이 설명하기를 우리가 이 미나리를 고추장에 찍어먹는 이유를 설명하는데요. 단어의 선택을 보세요. 발랄, 선명, 비논리, 듣고보면 미나리의 특성을 잘 집어내고 있어요. 그러면서 자연의 특성을 인문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부분입니다.’라고 한다. 솔직히 김훈의 이야기만을 들었을땐 아 그런가 하고 말일을 박웅현님의 깊이 읽기의 독서법으로 풀어내니 미나리의 특성과 인문학적 요소들을 깨닫게 되는것이다.

 

 

마찬가지로 ‘ 옷 깃 여며라 광주 이천 불구덩이 가마 속 그릇하나 익어간다’ 는 표현을 접하면 그릇이 익어가는건데 이게 뭐? 라는 생각으로 지나가며 별 볼일 없는 책이네 라고 표현했을것을, 박웅현님의 깊이 읽는 독서법으로 만나니 8백도가 넘는 불가마 속에서 빚어진 흙덩이 하나’라는 행간의 깊이를 파악해보면 아! 그런 의미가 숨어있었구나 싶은 생각에 정신이 번쩍 띄었다.

 

 

자동차가 달리는 속도가 아니라 걷는 속도로 봐야 보이는 것이 분명 존재합니다”p66 라 표현하는 박웅현님은 일상의 속도를 조금 늦춰서 책을 읽고 그 행간 속에 숨겨진 깊이를 파악할 때 울림이 시작 되는것이고, 그 울림이 삶을 풍요롭고도 즐겁게 만들어준다고 한다. “가끔 왜 책을 읽느냐고, 왜 음악을 듣느냐고 누가 물을 때, 이런 즐거움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어떤 때는 삶의 위안이 되니까요.p73 " 다시 한번 말하지만, 책을 왜 읽느냐, 읽고 나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볼 수 있는게 많아지고, 인생이 풍요로워 집니다”p77 맞다. 풍요로움. 적막한 내 인생에 풍요로움은 일상에서 자연스레 얻어지는것이 아니였다. 관심을 기울이며 인생을 풍요롭게 해줄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아야 했는데 저자는 일찍이 책에서 발견하였고 그 풍요로움을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다양한 시각으로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 비가 오는 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보면서 짜증을 낼 것이냐, 또 다른 하나는 비를 맞고 싱그럽게 올라오는 은행나무 잎을 보면서 삶의 환희를 느낄 것이냐입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p346 라는 말처럼, ‘행복은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이다p123라는 표현처럼. 책들의 행간에 숨겨진 깊이를 찾아 자동차가 달리는 속도가 아닌 걷는 속도로 천천히 거닐며, 깊이를 느낄때 즐거움을 만끽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책의 후반부에서 다루고 있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리나> 혹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등장 인물의 관계속에 웅크리고 있는 사회적 모순과 인간의 심리를 통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야할 인생의 지도를 선물 받았다는 박웅현님의 말은 깊은 공감을 갖게 했다.

 

 

“그래요. 제가 이 책에 빠진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다른 많은 분들이, 특히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고 삶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으면 합니다. 어떤 행동을 할 때 혹은 어떤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의연히 삶의 길을 걸어갔으면 합니다. 저는 지금도 때때로 내가 어디에서 있는지 돌아보며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받은 지도로 길을 찾습니다. 그러면 나를 더 이해하고 상황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p312

 

 

박웅현님의 책을 접하면 책과 미술, 음악을 한꺼번에 소개받는것 같아 좋다. 마치 다양한 교양과목을 수강한것처럼. 물론 너무 많은 책들을 소개받아 지갑이 얇아져 간다는 사치스런 비명을 질러야 할지라도. 그렇더라도 다음엔 어떤 책을들고, 내게 울림과 감동을 줄지 그날만을 손꼽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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