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도서관에서 <고구려> 6편을 빌려왔는데 너무 오래된 나머지 앞 부분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처음 책을 읽었던 게 2014년 8월(블로그 참조)이었으니 가물거릴만도 했다. 그래서 간략하게나마 1편부터 5편까지 정리를 하고 6편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구려>의 1권부터 3권까지는 15대 미천왕 을불이 도망자 신세에서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는데, 그 배경에는 을불의 큰아버지인 14대 봉상왕이 있다.

 

 

 

14대 봉상왕은 어린시절 아버지(13대 서천왕)가 왕위에 오르고 형제들이 역모를 꾸며 왕위를 노리는 사건을 경험하며 모진 세월을 보내게 되면서 의심많은 성정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이후 왕위에 오른 봉상왕은 작은 아버지인 안국군 달가를 죽이고 미천왕의 아버지이자 자신의 동생인 돌고를 죽이며 폭군이 되어간다.

 

 

큰아버지에게 위협을 느낀 을불은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음모라는 자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게 되는데,  음모라는 자가 심성이 고약하여 갖은 구박과 멸시가 이어지자 집을 나와 소금장수로 살게 된다. 그러나  소금 마저 탐내던 자의 계략으로 을분은 도둑으로 몰려 갖은 고초와 수모를 겪게 된다. 이 시기에 봉상왕의 곁을 지키던 국상 창조리는 폭군이 되어가는 봉상왕이 더이상 나라를 돌볼 수 없음을 깨닫고 새로운 왕으로 을불을 추대하며 봉상왕을 몰아낸다.

 

 

국상 창조리의 도움으로 15대 미천왕이 된 을불은 자신이 겪었던 고초와 수모를 떠올리며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한편 영토를 넓히기에 힘써 고구려를 크게 발전시킨 인물로 꼽히는 게 실제 역사적인 부분이다.

 

 

소설(1권~3권)에서는 을불이 왕위에 오르기까지 험난한 과정들을 드라마틱한 소재를 활용하여 스릴 있게 그리고 있는데, 고구려뿐 아니라 주변 국가의 정세까지도 살펴볼 수 있어 읽는 재미가 쏠쏠했고,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 박영규의 <한 권으로 읽는 고구려 왕조 실록>과 비교하며 읽어서인지 더욱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특히 소설에서는 폭군인 봉상왕을 속여가며 을불을 보위하기 위한 국상 창조리의 책략과 왕위에 오른 을불이 고구려를 지키기 위해 선택해야 했던 수많은 전쟁과 충신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변주되고, 천하 통일을 꿈꾸는 진나라 최비가 낙랑국에서 벌이는 계략들과 선비족들을 통일 시킨 모용족의 모용외가라는 거친 인물과 그들의 지략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던 기억이 난다.

 

 

1권부터 3권까지가 미천왕 을불의 전성기였다면, 4권에서는 진나라의 몰락으로 세력이 강성해진 모용족의 이야기와 고구려에서는 16대 왕위를 두고 고민에 빠진 을불과 왕후의 갈등을 그린다.

 

최비가 고구려에 몰락하면서 진이 패망하게 되는 모습을 그린 3권을 토대로 정리해보자면 진나라는 280년 중원을 통일한 사마염이 전국 27개 지역을 친족들에게 맡기면서 사마씨가 통치하는 시대가 되었다가 사마염이 죽고 사마충의 즉위로 16년 동안 친족끼리 죽고 죽이는 정권다툼이 벌어지게 되는데 이를 '팔왕의 난'이라 한다.

 

 

팔왕의 난으로 어지러워진 진의 조정을 틈타 북방에서는 5호(흉노, 갈, 선비, 저, 강족)에 의한 16국의 흥망으로 거듭된 시대가 생겨나고(이를 5호 16국 시대라 한다),이 시대에 가장 으뜸은 영토분쟁을 치뤄 세력 확장에 힘을 쏟기 시작한 모용족 이었다.

 

 

이런 어지러웠던 시기를 틈타 미천왕 역시 영토 확장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하야 황하 이북에서는 진의 잔존 세력과 선비족, 고구려라는 세력으로 압축될 수 있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진나라 최비는 단과 우문, 고구려에게 모용을 치차는 은밀한 연합을 이뤄내고 모용의 수도 극성으로 몰려가지만, 급작스러운 연합임을 눈치챈 모용이 꾀를 내어 우문대인의 실독관에게 음식을 보내 은밀히 모용과 내통하고 있는 것처럼 꾸미게 된다. 모용의 꾀에 속은 고구려와 단은 우문을 의심하여 철수하게 되자 남아있던 진과 우문은 막강한 모용에게 패하게 되고, 이 모든 게 최비의 작전임을 알게 된 모용은 최비를 잡기에 혈안이 되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최비는 고구려로 망령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리고 있다.

 

이런 불안정한 시국에 나라의 강경을 위해서 왕후 주씨는 무예가 뛰어난 둘째 아들 무에게 왕위 계승을 바랬지만, 을분은 백성들의 아픔마음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첫째 아들 사유에게 왕위를 계승하게 되면서 둘의 갈등은 깊어진다.

 

곡창지대가 끝없이 펼쳐진 하성을 중심으로 고구려와 모용족이 큰 전투를 치르게 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미천왕 을불은 두 아들의 부축 속에 숨을 거두 게 되고 을불의 뒤를 이어 16대 왕이된 사유(첫째 아들) 고국원왕은 포악한 성격의 모용황과 피할 수 없는 전투를 5권에서 그린다.

 

4권에서의 포인트라면 고구려에 망령한 진나라 최비가 모용족의 큰 전투를 앞두고 위기에 빠진 고구려를 구출하기 위한 책략을 쓰게 되는데 그 부분이 기막히게 좋았다는 것과 왕위 계승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던 을분이 사유가 왕이 되어야 하는 까닭을 태후 주씨에게 설명하는 이야기가 가슴에 두고두고 울렸던 기억이 난다.

 

 

5권에서는 왕위를 이어받은 16대 고국원왕의 성정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데 전쟁보다 백성의 안위를 소중하게 여기며 병든 백성들을 구제가 먼저인 고국원왕의 모습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태후와의 갈등을 깊게 그리고 있다.

 

 

그시즘 세력이 커진 모용족은 남하정책으로 고구려의 신성까지 위협하게 되고, 5호 16국 시대에 세력을 확장하기 시작한 백제에서는 북진정책을 감행하게 하며 고구려를 궁지로 몰고 간다.

 

 

위협을 느낀 고구려에서는 모용족과 동맹관계를 위해 맏아들 구부(제 17대 소수림왕)을 모용황에게 인사시키는 다소 굴욕스러운 결정을 내리지만, 그러한 고구려의 노력에도 모용족의 계속되는 침략에 342년 2월 일시적 천도를 단행하게 된다.

 

 

고구려의 천도를 간파한 모용족은 지략으로 퇴로를 차단하고 이를 눈치채지 못했던 고구려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는데 급하게 호위병만 거느린 고국원왕은 도망자 신세가 되고 몸을 피하지 못했던 왕후와 태후 그리고 백성들은 모용족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된다. 돌아가던 길에 고구려의 반격을 걱정한 모용족이 미천왕 을불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꺼내가는 파렴치한 악행을 저지르는 모습 등을 그리고 있다.

 

 

5권에서 바라본 고국원왕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이해하지만, 그래도 한 번쯤 큰 결단을 내려 모용족과 전쟁을 치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모용족에 패배한 고구려는 이후 치욕적인 외교 관계 속에서 343년에 미천왕의 시신을 돌려받고 348년에 태후 주씨와 왕후가 다시 고구려에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어 6권에서는 17대 소수림왕(구부)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한때 김진명 작가님의 소설을 즐겨 읽었던 적이 있는데 어느 순간부터 등장 인물들에 변화가 발견되지 않아 아쉬워 했던 기억이 난다. 예를들어 멋들어진 외모에 비상한 머리를 가진 남자 주인공와 아주아주 아리따운 여자 주인공이 호흡을 맞추는 이야기들이 장소만 바뀌어 계속 등장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한동안 멀리하게 되었던 소설을 <고구려>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나게 되어 기뻤고 역사에 기반을 둔 풍성한 인물의 등장과 스토리가 참 매력적이라서 이 소설이 완간이 되면 드라마로 제작되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조금 불필요해 보이는 장면들도 보였지만 다시 김진명 작가를 만나게 해준 책인지라 역사와 소설을 즐기는 분들에게 강력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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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7-03-12 1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흡입력 최고라는 김진명 작가님의 글을
전 한 권도 안 봤네요 ㅠㅠ 해피북님 리뷰 읽고 나니 을분이 엄청 가깝게 느껴지고요. 후계 문제로 다투었다는 을분과 태후 이야기에 ... 아, 왕은 어떤 사람이어야하는가..
그런 생각도 잠깐 해보네요. ㅎㅎㅎㅎㅎㅎ
잘 읽고 배우고 갑니다^^

해피북 2017-03-13 01:04   좋아요 1 | URL
김진명 작가님의 책은 정말 흡입력 짱인데..음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 물리는 경우도 있는거 같아요 ㅋㅋ 저도 이 소설을 읽었던 당시가 2014년도 였기에 ‘왕은 어떤 사람이어야하는가‘를 깊이 생각해봤던거 같아요~~이제 그 생각의 결실을 잘 맺어야 할텐데 아직도 걱정이 많고 고민중인거 같아요 ㅋ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내일 조금 쌀쌀하다하니 감기조심하시구 오늘 저녁은 꿀밤 되셔요^~^

고양이라디오 2017-03-13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진명 작가의 소설 전에 재밌게 봤었는데요. 고구려도 재밌을 것 같네요~ㅎ

책장에 <시드니!>가 보이는데 재밌게 읽으셨나요ㅎ? <시드니!> 정도면 그분이 오실만한 책인데요ㅋ

2017-03-16 0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16 2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