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읽었는데... 어딨더라?'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다. 며칠 전 <책과 삶>독서 신문을 읽고 나중에 다시 읽어야겠다 싶어 어딘가 꽂아 뒀던 걸로 기억되는데 이곳저곳 아무리 들춰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찾는 시간이 길어질 수 록 기억은 점차 확신에서 불안으로 바뀌어 갔다.

 

내가 읽었던 게 맞나? 다른 신문이었던가? 혹시 버린 건 아닐까? 아니면 아주 오래전에 읽어놓고서 얼마 전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들. 그러고 보면 기억이라는건 작은 불안에도 얼마든지 변형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요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무엇이든 확신하는 건 좋지 않겠다는 생각을 잠시하며 더 열심히 신문을 찾아댔다. 내가 읽었던 기사에 확인이 필요했기 때문에.

 

 

아침 청소를 하다가 불현듯 떠오른 신문이었고 청소기를 팽개치고 찾기 시작해 집안 구석구석 널부러진 책들과 책들 사이에서 지쳐갈 무렵 간신히 일본어 교재 사이에 꽂혀있던 신문을 발견하게 되었다. 쯧. 이러니 못찾지.

 

 

아침부터 그렇게 찾고자 했던 기사는 2016년 12월호 이너뷰 코너에 실린 소설가 장강명 작가님 편이다. 근래에 보게된 kbs 1 <책번개> 프로그램에서 노홍철씨의 철든책방을 무대로 패널들이 모여 책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좋았는데, 노홍철씨와 호흡을 맞추는 장강명 작가님의 모습도 친근하게 느껴져 도서관에서 책도 대출하고 기사도 보면서 그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2017년 2월 26일 (일요일) 3회에서는 유시민 작가님도 출연하셨다.>

 

 

 

 

이 프로그램의 장점은 패널들이 제시된 주제에 관련된 책을 가지고 와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공감과 이해를 거쳐 프로그램을 이끌어 간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티비를 시청하고 있는 나도 함께 하고 있는 것처럼 몰입을 하게되고, 그렇게 프로그램이 끝날쯤이면 참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책을 읽으며 사유하고 소통하려 노력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런 티비에 비친 장강명 작가님의 모습은 너무 순박한 이미지라 느꼈다. 모든지 yes로 대답할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더랬다. 그랬는데 왠걸. 그의 에세이 <5년만에 신혼여행>을 읽으며 내 첫 인상이 완전히 산산조각나버렸다.  그의 제기발랄한 생각들에 웃음과 공감 그리고 깊이 떠도는 사유들에 그가 천상 작가로 살 수 밖에 없음을 느꼈다고나 할까.

 

'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 지 불과 5년 만에 5개의 문학상을 탔으니 말이다. 2011년 <표백>이 한겨레 문학상을 받으면서 화려하게 데뷔하였고, 2014년 <열광금지,에바도르>로 수림 문학상을, 2015년 <댓글부대>로 제주 4.3 문학상을,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작가상을, 그리고 다시 <댓글부대>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 그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여느 작가들과 다르다는 말이 혹 뛰어난다로 오해 받을 소지가 있어서 그 질문은 부담스럽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고요. 다만 다른 스타일을 추구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직선적이고 효율성을 강조하고 허세 안부리고...."

                                                    <책과 삶> 독서신문 2016년 12월호.

 

그의 인터뷰 기사처럼 자기자신을 객관적으로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작가라는게 내가 책을 읽으며 내린 결론이었고 '실용주의 작가'라는 수식어가 과장된 게 아님을 느꼈다.

 

공대생이었던 그가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고 채용되기까지 고단했던 과정은 채용된 이후의 삶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입사 후 일에 대한 회의감과 무의미함을 깨닫고 힘들게 들어갔던 기자 생활을 접고 작가의 길로 들어서기 까지 많은 실패와 좌절, 낙심을 경험하며 인생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던 거 같고 그런 삶의 회한들이 그의 글 속에 투영된 게 지금의 장강명이라는 작가를 만든 게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짐작을 해본다.

 

'인격자, 리더, 세계사의 위인들, 일일드라마의 주인공들이라면, 그런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믿고 ' 난 할 수 있다'며 결의를 다지겠지. 나는그런 훌륭한 인간이 못 되었으므로 끊임없이 번민했다.

내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걸까?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마흔이 되어서까지 그런 걸 고민한다는 게 이상했다. (P21)

 

특히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은 지금 그의 아내 HJ이고 남자친구였던 지명은 작가님이었다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나와 다르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이. 각자의 삶의 무게만큼 주어진 고민덩어리를 어찌하지 못하고 끙끙거리며 살아가는 모습이. 사춘기적인 방황을 지금에서야 하는 내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5년 만에 신혼여행>은 장강명 작가님이 대학 커플이었던 아내와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결혼생활이라는 울타리에서 부딪쳐 나가야하는 가족간의 무거운 문제들을 직설적으로 짚어내고 있어서 그의 강단과 뚝심을 엿볼 수 있게 된다.

 

겉치레가 싫어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혼인신고만 마치고 5년 후, <댓글부대>라는 소설의 당선으로 갖게 된 오천만원은 그간 다녀오지 못했던 신혼여행과 휴식을 위해 필리핀의 섬 보라카이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여행에 대한 계획들과 일정이 여행하던 첫 날부터 틀어지면서 여행의 마지막 날에 이르고서야 촘촘하게 세웠던 계획들이 얼마나 부질 없던가를 깨닫게 된다는 내용들이 담겨있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책을 빌리러 구청 도서관을 이용한다는 점. (그냥 작가님들도 도서관을 이용한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는 이 엉뚱한 느낌은 뭘까) 그리고 여행지에서 읽을 책은 지루한 책을 고른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지루한 책을 읽을 수 록 여행지에서 보내는 행복지수가 올라간다나?

 

 

 그리고 <댓글부대>를 통해 받은 두 번의 상금이 과분하다는 이유로 의미 있는 일에 사용하고 싶어서 <한국 소설이 좋아서>라는 무료 E북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소설의 가치를 알리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나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나 <표백>을 통해 사회 문제들을 외면하지 않고 부딪쳐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티비에서 보이던 순박한 YES 맨의 이미지는 어느새 벼리어진 한 작가의 삶의 감각을 엿보게 하며 개방하듯 투영한 그의 글을 조금더 읽고싶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런데 도서관에서 빌린 책의 표지를 보고 조금 놀랐더랬다.

굳이 바코드를 저 그림에 붙여놔야 했을까 싶은. 우리 도서관 사서님들께서 작가님에게 무슨 원한이라도?

 

 

 

 

그리고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출판사에 있는데..

 

이 한 권의 책속엔 장강명 작가님 뿐 아니라 씽크로율 100% 일러스트를 넣어준 방현일님과 책의 디자인을 완성한 송윤형님이 있다. 그런 분들의 이름이 책 날개에 눈이 나쁜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크기로 적어놓은 부분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혹시 책에 넣을 이력이 없어서 일까나. 이력이 대체 뭐라고.. 한국이라는 나라는 이렇듯 많은 것들이 눈에 밟히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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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7-03-10 0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5년만에 신혼여행>은 반정도 읽었구요. ㅎㅎㅎㅎ
<한국이 싫어서>랑 <표백> 읽어봤는데, 저는 와하.... <표백> 읽고 정말 놀랐어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절망과 아픔을 이렇게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데 놀랐구요.
그리고, 이런 작가를 여태까지 모르고 살았다는데 또 놀랐습니다.

장강명에 대한 해피북님 글을 읽었더니, 장강명을 마저 다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드네요.
기대됩니다. ㅎㅎㅎ

해피북 2017-03-10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는 아직 <표백>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책번개 프로그램에서 그 책을 읽으신 여성패널분이 단발머리님과 같은 이야기를 하셔서 마구마구 궁금했는데 얼른 읽어보고 싶어요. 그리고 이 에세이집은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 솔직하셔서 살짝 걱정스런 마음도 들었지만 (가족들도 읽어보실텐데 하는 걱정이요 ) 그런 여러가지 일들이 우리네 삶하고 다르지 않아서인지 글에 공감하고 이해되는 부분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특히 소설에서 공감되던 부분이 단순히 허구가 아니었구나 싶던 그런 생각들이요 ㅎ 저두 좀 더 깊이 알고 싶은 사람이 되었는데 함께 알아보아요~ㅎㅎ 즐거운 저녁시간 보내셔요^~^

달팽이개미 2017-03-10 2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 장강명 작가님 작품과 만나보지 못했는데 해피북님 리뷰 읽으니 바로 만남의 욕망지수 업!업!업! 됩니다~^^ㅋ

해피북 2017-03-11 01:43   좋아요 0 | URL
저두 소설은 <한국이 싫어서>한 편밖에 못읽었지만 조금 추천해드리고 싶은 작가님이세요 기회가 되신다면 꼬옥 만나보시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