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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견문록 (문고본) ㅣ 요네하라 마리 특별 문고 시리즈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17년 1월
평점 :
맛있게 차려진 음식을 한 입 떠먹는 순간 맛의 평가가 끝나는 것처럼, 책도 한 페이지를 읽어보면 책의 평가가 끝나버리곤 한다. 재밌는 책일지 진부한 책일지 때론 무슨 내용인지 알아채지 못하고 끝나버릴지 판단이 서곤한다. 그러나 그중 10% 정도는 오판단으로 자칫 소중한 책을 던져버릴뻔 했던적도 있음을 고한다.
명절에 이불에 폭 파묻혀 읽기 시작했을적에 천천히 아껴가며 읽자고 생각했다. 요네하라 마리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된 날이기도 했고 워낙에 평판이 자자해서 그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었기 때문인데 책을 집어들고 읽기 시작하여 정신을 차려보니 그만 중간쯤 당도해 있음에 화들짝 놀랐다.
첫 페이지부터 재밌었다. 제목이 미식 견문록이라고 해서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닌 기행문쯤으로 짐작했는데 그것보다는 음식에 기원을 찾아 이야기를 파헤쳐 나가는 솜씨가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의 뿌리를 찾아 수없이 많은 사전에 대한 언급을 할때면 김연수 저자의 <소설가의 일>에서 사전에 관한 이야기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음식에 곁들인 재미난 일화를 읽을땐 <내 밥상위에 자산어보>를 쓴 한창훈 저자가 떠오르기도 했다.
뛰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하여 바깥의 어스름함에 정신을 차렸을때는 이미 번역자의 소감을 읽고 있었다. 마지막장 까지 즐겁게 읽고 책을 덮으며 이 책은 첫 시작부터 마지막 번역자의 소감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릴것이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이 책을 다 읽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을 쇼지 사다오라는 '베어먹기 시리즈'의 저자가 '뜻밖의 음식사'라는 타이틀로 해설을 다 해버리고 말았다. 어쩜 내가 하고 싶던 이야기를 조목조목 재밌게도 써 놓으셨는지! 그러니 어쩌랴. 이 글을 옮길 수밖에!
요네하라 씨는 '안심되는 사람'이다.
그리고 '듬직한 사람'이다
또한 '푸근한 사람'이다
내 멋대로 단정해버렸지만, 실은 나는 한 번도 요네하라 씨를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요네하라 씨가 쓴 글을 읽고 있으면 언제나 그런 생각이 든다.
요네하라 씨라면 언제 어디서 어떤 궁지에 몰리더라도 독자들은 안심할 수 있다. "요네하라 씨니까"하고 안심할 수 있다. 물로 외모나 체격을 보고 하는 말이 아니다. 요네하라 씨의 글은 푸근한 '어머니 말투'를 느끼게 한다. 마치 '어머니가 자식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아무튼 어머니가 들려주시니까. 하고 아이들은 안심하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처럼 독자들은 어느새 자식이 되어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사이, 이 책 한 권을 다 읽는다.
듬직한 어머니는 어떤 곤경에 처해도 끄떡없다. 첫 장 「닭이 먼전 달걀이 먼저냐」에서도 요네하라 씨는 곤경에 처한다. 사람들은 대개 크게 당황할 테지만, 이런 엄청난 위기에서도 요네하라 씨는 약간 당황할 뿐이다. 국제 문제와 관련된 통역 때, 발언자가 한 말의 의미를 몰라도 잠시 당황 했을 뿐 금방 정신을 가다듬고, 제목대로 이야기를 닭과 달걀로 옮겨가고 병아리가 불쌍했던 이야기로 옮겨간 뒤, 닭이 불쌍하다고 하다가도 이 또한 금방 툭툭 털고 일어나 우적우적 먹어대기 시작한다.
이즈음에서 아이들은 어머니의 꿋꿋함에 푹 빠진다. 어머니만 따라가면 안전하다며 다음 장을 넘기게 된다. 이 책 한 권에는 온통 먹는 애기들만 37편이 나온다. 한 얘깃거리로 시작해서는 늘 의외로 전개되며 어느 때는 헛소문, 뜬소문, 뒷소문을 들려주지만, 결국에는 깊이 있는 지식을 보여준다.
어느 장이건 지식이 넘치지만, 그 지식은 숨막히지 않고 재미있는 이야기 한 가락이 되니, 독자는 ' 요거 한번 써먹어야겠네"라고 할 만한 이야깃거리 서너가니는 금방 수확하게 된다<p268~269>
쇼지 사다오 씨의 말처럼 이 책은 펼치는 순간 어느새 다 읽게 된다. 우화와 신화가 똬리를 틀고 역사와 일화가 뒤썩여 원래 있었던 하나의 이야기 덩어리 같은 느낌에 몰입하다 보면 러시아의 속담도 감자의 수난도 터키 꿀엿과 철갑상어 그리고 대단한 먹성에 관한 이야기들도 너무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책 후반에 실린 동생에 관한 이야기. 동생의 이름이 '우이치'라고 했는데 응아라는 발음과 비슷해 많은 놀림이 있었다던 일화와 먹성 좋은 동생에 관한 짤막한 이야기가 즐거웠다. 그 동생이 <언니 마리>라는 책을 최근에 출간한 것을 발견하고 빨리 읽어보고 싶어 서점에 뛰어가고 싶은 심정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