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코 씨, 영어를 다시 시작하다 - be동사에서 주저앉은 당신에게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연말과 연초가 가까워오면 자책과 다짐의 경계를 넘나들며 부끄러운 기억들을 끄집어낸다. 그중 나를 가장 부끄럽게 만드는 계획들은  '~~를 하겠다' 라는 다짐들이었다. '영어 공부를 하겠다''한자 공부를 하겠다''일본어 공부를 하겠다'와 같이 단 한 번 성공 해보지 못한 계획을 세워두고 늘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자기혐오에 빠지는 시간이 찾아들면, 마치 무슨 마법에 걸린 것처럼 또 다시 열심히 해보자는 굳은 각오를 다지는 시간들이 찾아든다.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 무수한 계획들은 한낱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수표처럼 덧없고 터무니 없다는 것을. 

 

마흔을 향해 달려가는 나이에 공부가 굳이 필요한가를 놓고 본다면 내 실생활에는 필요성을 딱히 느낄 수 없다. 한국말만 장착하고 살아도 다 뱉어내지 못하는 시간에 굳이 영어나 일본어 또는 한자어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 이유를 찾아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책을 읽을때 사전을 들춰야하는 불편함에서 시작 되었다. 이불에 폭 파묻혀 책을 넘기다가 덜컥 만나게되는 생소한 단어들. 그래. 모른척 넘어가주마 라고 생각하며 은근슬쩍 읽어보지만 분명 걸리고 넘어지는 부분이 찾아든다. 그럴때마다 답답함과 불편함 그리고 번거러움들이 공부에 대한 의욕을 불태우게 했다. 그러나 작심삼일. 이젠 '공부 할꺼야'라는 내 공허한 외침은 가족들에게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 처럼 '그래 또 시작이군' 이라는 한심스런 눈길만 받을 뿐이다.

 

 

나는 정말 안되는 사람일까? 내겐 끈기라는건 없는 걸까. 하는 한심스런 자책의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마스다 미리의 책 '미치코씨, 영어를 다시 시작하다'가 눈에 띄었다. 그렇지만 이 책을 보자마자 손에 집어들진 못했다. 기초가 부족한 사람이 이 책을 읽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인데 표지에 보니 '영어 입문 전에 읽는 입문서'라는 글귀를 나중에 보고서야 펼쳐들게 되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아오야마 미치코는 마흔살에 딸아이 한 명을 둔 워킹맘이다. 쇼핑센터에서 근무하는 그녀가 뉴욕 여행을 앞두고 영어공부를 시작하려는 포부 앞에서 단번에 '금방 실증 낼 것'이라고 못을 박는 아이의 말이 가장 인상적이며 깊은 공감이 되었다.

 

 

 작심삼일이라는 단어 조차 부끄러워 사용하지 못할 시점이 되어버린 내 모습 마냥 앞으로 미치코가 정말 잘 해야할텐데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 걱정은 기우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공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생기게 되었다.  학창시절 손에 묻은 볼펜 똥 만큼이나 새카매진 깜지노트를 과제로 제출하며 공부란 무조건 외우는것 이라는 습관에 길들여진 내게 모르는 것은 그냥 넘어가지 말고 '언어의 유희'를 즐겨보라 넌지시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원래 자신의 민족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나

존재하지 않는 감정, 알지 못하는 시각을

다른 언어집단에게서 배우는 일입니다.

...........

자신이 태어나서 계속

그곳에 갇혀 있었던

'민족 사상'의 감옥에 균열이 생기고,

그 균열로 부터 느껴본 적 없는 감촉의

'바람'이 들어오는

그런 생성적生成的인 경험 입니다.

외국어 공부라는 것은

그 '한 줄기 산들바람'을 경험하기 위한

것 입니다.'p143  '우치다 다쓰루

<시가지의 문체론 중에서>

 

 

모국어와 외국어를 조목조목 비유하며 한 걸음씩 전진하는 미치코는 작은 걸음에 조급해하지 말고 또 잘 모르는 부분을 이해한척 넘어가지 말고 묻고 답을 찾는 과정을 즐겨보라는 메세지를 전달해주는 것만 같았다. 학창 시절에 다급했던 공부가 더이상 필요치 않은 나이이기에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즐기며 해보라 권유하는 마스다 미리의 책은 '영어 입문서'라기 보다 '언어학 입문서'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역시~역시~ 하는 감탄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생각이 잠시 스치고 지나가는 시간일 수도 있고 2016년의 연말이 되면 나는 다시 자괴감에 빠져 스스로 머리를 쥐어 뜯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마스다 미리의 권유대로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내딛는 작은 걸음으로 계획해볼 생각이다. 마음이 힘들고 공허해질때 다시 이 책을 펼쳐들어 마스다 미리의 다독이는 손길을 느끼게 된다면 꾸준히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서.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팽이개미 2015-12-28 1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피북님!!! 화이팅요!!! ^ ^

해피북 2015-12-29 09:3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달팽이개미님도 올 한 해 마무리 잘하시고 새해에 이루고자 하시는 모든 것들 이뤄나가시길 바랄께요.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살리미 2015-12-28 1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매해 다짐하지만 잘 안되는 것들이 있어요. 이젠 창피해서 계획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은데.. 매해 `그래도 또 다시 도전해볼까?` 하는 것들요 ㅎㅎ
저도 한때는 영어공부가 목표였던 때도 있었고, 중국어를 배워보겠다 한 적도 있었는데 늘 그렇듯 다 흐지부지 되었죠.
그리고 새해에 절대 빠지지 않는 목표 다이어트!!! ㅋㅋㅋ
아... 진짜.... 다이어트는 제발 좀 성공 한번 해보고 싶은데 운동 보다는 앉아서 책보는게 좋고 저녁에 술마시러 나오라는 유혹은 절대로 거절을 못하는 성격때문에 매번 요요의 늪에 빠지지요 ㅠㅠ
저는 이모양이지만 ㅋ 해피북님 새해다짐은 꼭 이루시길!!! 응원합니다^^

해피북 2015-12-29 09:32   좋아요 0 | URL
크헉. 이렇게 격하게 공감이 되는 댓글 너무 좋아요 ㅎ 저두 이번에 살이 3k나 쪄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예요. 다이어트 하려고 밥을 적게 먹으면 또 배가고파져서 자꾸 뭘 먹게되고요 ㅋㅋ또 술은 월메나 좋아하는지 잘마시지 못해도 넙죽 받아먹곤한답니다. 어휴..내년에 다이어트 성공할 수 있을까요? ㅋ 함께 힘내보아요 ^~^

2015-12-28 2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29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