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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의 마지막 편지 - 어제보다 아름다운 오늘을 살고 싶은 그대에게
구본형 지음 / 휴머니스트 / 2013년 7월
평점 :
한때 '고전읽기'라는 ebs 팟캐스트를 들으며 구본형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중저음의 음성도 좋고 고전에 대한 쉽고 재밌는 해설이 귀에 쏙쏙 들어와 즐겨듣게 되었다. 그러다 일에 치어서 듣는 횟수가 줄어들고 거즘 듣지못하는 시간들이 쌓여가던 어느 날 구본형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비보에 화들짝 놀랬던 기억이난다. 너무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기에 안타깝기도 했고 더이상 그 멋진 중저음을 들을 수 없다는 생각이 참 슬펐던 기억이 난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생전에 못다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것 같아 기대심도 들었고 책을 펼쳐들고 읽기 시작하면서 선생님의 멋진 중저음이 귓가에 들리는것만 같았다. 이 책은 살아생전에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에게 편지 쓰기를 즐기셨다는 선생님이 쓰셨던 편지를 모았는데 결혼, 직업, 가족, 여행등에 관한 이야기들이 짤막하게 담겼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여행에 관한 이야기다. 일밖에 모르는 지인에게 제발 여행을 떠나 세상을 보라는 선생님의 당부가 담긴 편지였는데 젊었을때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셨다.
' 정말 나를 놀라게 하여 여행에 대한 인식을 송두리째 바꾸게 만든것은 바로 그 초로의 부부 였다네. 사회가 주는 의무와 책임을 마치고, 퇴직후 오래 미뤄둔 여행을 시작하는 것은 모든 퇴직자의 즐거운 미래 계획이지만, 그때는 이미 진정한 여행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네. 왜냐하면 그때는 이미 육체가 모험을 거부하기 때문이네. 정신 역시 새로운 공간에 열망하고 도취하여 삼빡하게 반응하는 쾌감을 잃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네....
여행의 맛은 육체를 마음대로 굴릴 수 있어야 그 맛을 십분 향유할 수 있다네. 몇 시간의 여정에 피곤함을 느끼고, 시차 적응때문에 며칠간의 숙면을 희생한 것에 대해 불편해 하며, 깨끗한 호텔을 선호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모험 정신을 잃어버린 여행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네p73'
여행에 관한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이제는 거리낄것 없이 살 수 있는 초로의 나이이기에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시기이건만, 평소 계획했던 여행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미적거리는 자신을 질책했던 김서령 저자의 말들이 떠올랐다(참외는 참 외롭다, 나남출판사). 초로의 시기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여행은 단순히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퇴화되고 있는 신체의 문제임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기에 김서령 저자 역시 젊었을적에 많은 경험과 생각들로 풍성해지라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 끝에 닿게 되자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정년 퇴임후 작은 트럭을 개조해서 방방곳곳을 여행하시며 낚시를 즐기시겠다던 당찬 계획은 퇴임 이후 지금까지 실행되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실행될 가망은 없었다. 그러니. 나중으로 미루지 말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가슴에 콕 박힌다. 모든 사람들이 삶과 죽음 속에 놓여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삶과 죽음의 시간을 부여받은게 아니라고. 또 젊었을적의 여행과 노년의 여행은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와 나중에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냐 묻는 선생님의 말씀에 공감을 하게된다. '나중은 없다. 지금 당장 실행하라'고 내 귓가에 울리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