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서재 속 고전 - 나를 견디게 해준 책들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나무연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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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직장생활에서 대인관계 때문에 힘들던 시기가 있었다. 차라리 업무가 힘이 들면 쉬엄 쉬엄할 수 있으련만, 매일 마주해야 하는 사람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 이었다. 내겐 탈출구가 필요했고 그렇게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더랬다. 그때 읽던 책이 카네기 <인간관계론> 이었는데 나보다 상대가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나는 이렇듯 내게 직면한 문제 속에서 책을 찾아 읽는 걸 좋아하고, 또 그렇게 삶을 비춰낸 책들을 좋아한다. 물론 시대의 명저를 여러 학자의 이론으로 풀어 헤치며 쉴 새 없이 지적인 일깨움을 주는 책도 좋아하지만, 삶과 삶에 직면 된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사유하며 새로운 시각을 선사하고 삶을 느슨하게 조율해주는 책 읽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이 책 <서재 속 고전>의 저자 서경식 님은 재일교포 2세로써, 1971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두 형님이 구속되는 아픔을 겪고, 1980년대엔 어머니가 암 투병을 그리고 3년 뒤에는 아버님이 같은 병으로 잃는 아픔을 겪었다. 이런 삶의 문제에 직면한 저자의 고전이란, 윌리엄 셰익스피어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나  베르길리우스가 아닌 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시대의 사상가이자 계몽 가인 '루쉰'이나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의 생존자인 프리모 레비나, '유대인 벗에게 보내는 편지'의 저자 이브라힘 수스를 이야기하는 것이 정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 추운 아침 작심하고 일어나 이 글을 쓰고 있다. 루쉰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셀 수도 없을 만큼 썼는데, 책장에서 꺼낸 것은 닳아빠지도록 읽은 『루쉰 평론집』이다. 또 루쉰인가 하고 생각할 독자도 있겠지만 이 책이야말로 나의 '고전'이다'p49

 

' 이 「망각을 위한 기념」을 나는 20대 후반부터 30대에 걸쳐 글자 그대로 읽고 또 읽었다. 그때, 즉 197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친 시대는, 일본에서는 세상이 탈정치에서 버블(거품) 경기로 향해 가던 시절이지만 한국에서는 유신체제 시절이다. 야만적인 정치폭력이 횡행하고 다수의 학생과 지식인 들이 투옥돼 학대와 고문을 당했다. 그런 시절에 나는 조국의 동포들이 겪고 있던 고통을 "잊고 싶었다." 그래서 루쉰의 이 글을 읽고 또 읽었던 것이다.p51'

 

그러니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 속에 투영된 삶을 읽는 것과 같다. 한 저자의 삶에 침잠된 고통과 고민의 부스러기들이 어떻게 책을 통해 여과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란 생각이 들면서  코리아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들, 팔레스타인을 떠나온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이르는 말)라는 저자의 입장을 충분히 공감하게 된다. 또 전쟁에 대한 고통을 경험해보지 못한 현시대의 젊은이들이(나를 포함해서) 고통과 아픔, 분노와 두려움 탄식을 모르고서 어떻게 '평화'를 이해하고 지킬 수 있겠느냐는 침울한 물음엔 질타와 비난들로 아프고 따가웠지만 '이렇게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p53이라던 울림으로 내 상황에 놓인 문제뿐 아니라 함께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하는 생각을 잠시나마 하게 되었다. 더불어 유럽을 여행하며 느꼈던 생각들이 몽테뉴의 『몽테뉴의 여행일기』와 버무려지는 대목이 참 좋았는데 여행과 독서의 변주는 이런게 아닐까 하는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대목을 만나면 여행의 기쁨과 책을 읽는 기쁨이 일체화하면서 내 상상은 단숨에 활성화된다. 바로 몇 달 전 내가 걸어다녔던 오랜 도시의 성당, 광장, 다리가 그대로 여기에 등장한다. 그곳을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 대열을 지어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아플정도의 경이와 호기심으로 바라보고 있는 인물이 몽테뉴가 아니라 나 자신인듯한 느낌마저 든다'p106

 

저자는 말했다. 어떤 책도 짧은 문장으로는 그 내용을 충분히 전달할 수 없다고. 그러니 자신만의 '고전'을 찾아 그것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자세야말로 지적 태도로서의 교양인이자, 인간을 단편화하려는 힘에 맞서는 저항이라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알려진 권장도서 목록은 지극히 참고적인 사항일 뿐, 개인 각자의 삶 속에서 직면된 문제를 바라보고 적재적소에 알맞은 책을 찾아 읽으며  그 책 속에서 투영된 삶을 바라보며 문제를 끊임없이 변주해 갈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고전'의 의미이자, 독서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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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10-14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마다 마음을 살리는 고전을
차근차근 쌓으면서
아름답게 삶을 빛낼 수 있기를 바라요.
차근차근 그렇게 될 테지요.

해피북 2015-10-15 21:32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이세요. 저도 차근차근 쌓아올리기 위해 열심히 읽어야겠어요^~^ 행복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숲노래님~^^

북깨비 2015-10-15 0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은 책으로 저장해 두었는데 하루 빨리 데려와 읽어야겠어요.

해피북 2015-10-15 21:35   좋아요 0 | URL
북깨비님~^^
저는 이 책 읽으며 놀란 부분은 여러 저술활동에 교수님이라 내용이 어렵거나 딱딱할 줄 알았는데 글이 편안해서 참 좋았어요. ㅎㅎ 북깨비님두 즐겁게 읽으시면 소식 전해주세요 행복한 저녁시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