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의 나
아사오 하루밍 지음, 이수미 옮김 / 북노마드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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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책방 책방일지'의 조경국 저자는 말했다. '윤미네 집'이라는 사진집이 위대한 이유는 '26년의 꾸준함과 끈기'에 있다고 말이다. 이 '꾸준함'과 '끈기'라는 말은 요 며칠 적어놨던 다이어리와 일기장만 들춰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일주일에 반이상을 날리고나서야 일기가 떠오르고 다이어리를 기록하는 내 자신을 돌아만봐도 일상을 매일 기록한다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며, 얼마나 많은 인내심이 요구되는 일인지 느낄 수 있다.

 

그런면에서 아사오 하루밍의 '3시의 나'라는 그림 에세이를 높이 평가하게된다. 1년동안 3시의 일상을 귀여운 만화와 글을 곁들어 낼 수 있는 그녀의 끈기와 꾸준함은 이 책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요인이 된다. 정말 소소하고 작은 일상들이라 큰 재미를 느낄 수 없지만, 이런 평범한 일상들이 나와 다르지 않아 더 정겹게 읽었던거 같다.

 

1월 4일 (월)

컴퓨터 앞에 앉아 우동을 후루룩 거리고 있다.

빨리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방구석 여기저기가

자꾸 신경 쓰여서 청소기 돌리고,

고양이 밥그릇 씻어놓고, 우동까지 삶았더니

어느덧 이 시간이 되었다. 올해도 이렇게 시작된다.

일에 쫓겨 컴퓨터를 가족 삼아 지내는 나날이

앞으로 언제까지 이어질까? p13

 

1월 4일이면 연초에 해당된다. 연초라면 얼마나 많은 계획을 세우고 다짐하는 날들인가. 그런 계획들도 하루 일상안으로 들어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나와 다르지 않아 참 좋았다.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영화 한 편도 봐야지' 라는 계획을 세워놓고 일상으로 되돌아오면 치워야할 빨래감, 식탁에 널려있는 신문뭉치들,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책상의 필기구들이 눈에 들어온다. 서둘러 정리하고 들뜬 마음에 책상에 앉아볼라치면 등뒤에서 들려오는 ' 밥줘~' 란 소리에 견고하게 쌓아올린 계획이라는 장벽은 와르르 무너져내리고, 오늘 일상도 어제와 다르지 않을것임을 예감하게 되는데 이런 나와 다르지 않는 그녀의 일상들에서 친근감을 느끼게 되었다.

 

 

3월 25일 (목)

무척 우울한 일주일 이였다.

전화로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 사람은 늘 전화로 자기 용건을 말하기 전에 일단

내 근황을 묻는다, 그러면서도 사실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따로 있으니 '흐음,힘들겠네'라고 건성으로

대답한다. 그럴거면 처음부터 자기 얘기를 하라고

말하고 싶다. p96

 

 

이 부분을 읽으며 뜨끔한 마음을 느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잔뜩 입에 머금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게되는 날이면 급한 내 마음을 내비치고 싶어 이런적이 많았음을 느끼게 된다. 혹시나 엄마에게 이런 내 마음이 들킨건 아닌지 반성하게 되는 글귀. 이 부분을 읽으며 잠시 책을 내려놓았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용건없이 전화를 걸어놓고 엄마 목소리를 무한정 듣자 생각했다. 그랬더니 엄마왈 ' 나 바빠~~' 뚜뚜뚜뚜.... 어....엄마~~~~~~~~~~!!!

 

 

 

5월 17일(월)

진보쵸 다무라 서점 앞에 있다. 오늘은 고서를 좋아하는 선배들의 모습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균일가 매대를 독차지 하여 '정원에 오는 새'라는 사진집을 발견했다. 사에키 도시코 라는 분이 찍은 작은 새들의 사진집인데 1962년에 출간 되었다. 소매 있는 앞치마를 입은 채 카메라 릴리즈를 손에 들고 있는 이분의 모습도 찍혀 있다. 이 사진 한 장만으로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근무했던 회사 사장이 '아사오씨, 이거 살까 말까 망설여지는 책이 있지요? 책이란건 좋은 페이지가 한 장이라도 있으면 사야 되는 거예요. 나중에 반드시 사길 잘했다고 생각하게 되죠' 라고 말했는데, 나는 지금도 그 교훈을 지키고 있다 p152

 

 

살까 말까 고민되는 책들이 있다. 첫번째로 꼽는건 역시 비싸지만 좋은 책이다. 권당 삼만원을 호가하는 책들은 망설여지게 된다. 저 책이면 다른책을 더 살 수 있는데 하는 얄팍한 생각들. 그럴때마다 떠올리는 말이 있다. '그 책에 너만에 값어치를 더하라'는 말이다. 손때를 입히고, 형형색색의 줄을 긋고 메모를 하고 생각을 적어 넣으면 세상에서 없는 나만의 책을 만들 수 있다는것. 삼만원이 아니라 삼십만원의 값어치로 만들어내는 일, 쭈글쭈글 주름진 내 얼굴 만큼이나 푸석거리고 너덜거리는 표지를 바라보는 즐거움. 책만 봐도 함께 살아온 세월의 덧깨를 짐작할 수 있는 일. 얼마나 멋진 일인지!

 

 

두번째로 꼽는건 한 테마만 마음에든 경우다. 전체적인 내용들은 흥미가 없는데 어떤 특정한 부분에 마음이 생겼을때 구입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스러울때 역시 구입하는게 좋다는건 오랜 시간 책을 구입하며 터득한 생각이다. 왜냐면 절판이라는 무시무시한 변수가 생기는 경우가 허다 하기 때문인데 일단 구입해놓는 편이 좋다. 그렇게 곁에 두다보면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들, 관심없던 부분들도 좋아지게 되는 경우도 많고 세월이 흘러 꺼내들었을때 이해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인데 하루밍의 글을 읽으며 나와 같은 생각들에 미소짓게 된다.

 

특히나 책 속에서 책방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 좋았다. 그 유명한 진보쵸 헌책방 거리가 있는 일본이라서 가능한 이야기들. 헌책방에서 책을 '만나'는 기쁜 순간과 지인들과 함께 서점에서 만나 책을 고르거나 선물 받거나 하는 모습에 흐믓함과 부러운 마음이 교차하며 우리동네에도 작은서점들과 헌책방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된다.

 

 

 

 

 < 하루밍의 아기자기한 그림들>

 

 

 

 

 

이제 코 앞으로 다가온 연말과 연초. 또 부질없는 계획을 세울테지만 새해엔 꼭 하나 해보고 싶은 일이 이렇게 꾸준함과 끈기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일이다. 니나 상코비치처럼 매일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긴다던가, 하루에 한가지 단어를 외우며 기록으로 남긴다던가하는 계획을 세우고 싶다. 책을 읽다보면 고양이 이야기도 간간하게 나오는데 찾아보니 <고양이 스토커><고양이 눈으로 산책하기>라는 책도 있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니 조금 더 그녀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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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5-10-11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꾸준함과 끈기의 관점에서 본다면 저도 한없이 부끄러워요^^ 알라딘 다이어리를 받고 올해는 매일 하루에 한 줄이라도 꼭 메모를 해봐야지 했던 연초의 다짐이 벌써 흐지부지 된지 한참이거든요^^ 일년간 매일 세시의 나를 기록하는것! 멋진데요~^^

해피북 2015-10-11 15:45   좋아요 0 | URL
무언가 매일 매일 한다는게 정말 큰 마음 아니고선 힘든거 같아요.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부럽기도 하고 제 다이어리 들여다보면 부끄럽기도 하더라구요 ㅎㅎㅎ 그래서 더욱 한번쯤 해보고 싶은 일이 되었어요 ㅎㅎㅎ

지금행복하자 2015-10-11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일 어려운일이 작은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알아주는 일도 아니고..
그러다보니 하다가 마는 일이 대부분이라는 불편한 진실 ㅋㅋ

해피북 2015-10-12 22:23   좋아요 0 | URL
맞아요. 꾸준함과 끈기는 정말 왠만한 정신 수양으론 어려운거 같더라구요 ㅎㅎ
말씀처럼 작은 보상이라도 자꾸 생겨서 상기시킬 수 있다면 좋으련만,
스스로 해야하는 일들은 자꾸 포기하게 되는거 같아 아쉽습니다 ㅎㅎ
그래도 내년에는 꼭 뭔가 하나 이뤄보고 싶은 마음이예요 으흐흐흐!!

2015-10-11 19: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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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2 22: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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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3 22: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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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4 09: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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