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 국어시간이면 시를 짓고 발표하는 활동을 했었다. 엉터리 같은 시를 쓰고나면 어찌나 민망하고 낯뜨겁던지 몇 번이고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발표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와 생활하다보니 어느새 낯뜨겁고 민망스럽던 시구들은 홀연히 사라지고 팍팍한 가슴만 남아 있곤 했다.
때로 가끔씩 서점에 가면 시집 한 권 들고오고 싶은 마음에 들여다보지만 대체적으로 마음을 잡아 끄는 시집을 찾을 수 없어 빈손으로 돌아오곤 했다. 활어처럼 팔딱 거리는 언어를 한순간 붙잡아 놓은 시인들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광활한 우주를 이해하는 것처럼 심오한지라 내겐 늘상 풀지못할 숙제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플 활동을 하고, 많은 이웃님들과 소통을 하며 시를 무척 사랑하는 분들이 많음을 느꼈다. 시를 통해 모임을 갖는 야나님, 예쁜 사진과 좋은 시들을 소개해주시는 후애님과 애플트리제님 그장소님 cyrus님 보슬비님등 좋은 이웃님들 덕분에 광할한 우주 같았던 시구들이 눈에 밟히고 입을 달썩거리게 만들며 마음에 덜컥 찾아듬을 느꼈다.
그 덕분인지 요즘은 시집을 고르는게 그리 어렵지만은 않게 되었다. 이웃님들을 통해 알게된 시인의 시집을 우선순위로 구입한다거나, 좋은 시가 담겼던 시집을 사는 방법으로 구입하게 되었고 그렇게 구입하게된 책이 정호승 시인의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다.
신영복 선생님의 책 <담론>에 보면 언어란 삶속에서 경작된 인품과 체온 같은 것이며 詩는 그 언어를 기본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감정이고, 무엇인가 안다는 것은 복잡한 것을 요약할 수 있는, 한마디로 시적인 틀에 넣을 담을 수 있을때야 비로소 안다고 했다. 그런면에서 시를 꼭 외워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최대호 시인의 <읽어보詩집>을 흉내내어 '외워보詩집' 페이퍼를 만들어 보았다. 읽을수록 입을 달싹거리게 만드는 시구들, 뜨거운 체온이 느껴져 울컥하게 만드는 시구들, 이웃님들에 의해 알게된 시구들을 담아두고 자주 읊조리고 외우며 함께 체온을 느껴보는 시간. 참 좋지 않을까?
정호승 시인의 시집을 읽다보니 총 4개의 포스트잇이 붙었다. 아직까지 시인의 체온을 온전히 느낄 수 없었지만, 내 마음에도 뜨거운 체온이 쌓이다보면 포스트잇 역시 늘어나 있지 않을까? 그런날들을 기대하며 오늘은 내 마음을 달래주는 '강물'이라는 시를 외워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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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
그대로 두어라. 흐르는 것이 물이다.
사랑의 용서도 용서함도 구하지 말고
청춘도 청춘의 돌무덤도 돌아보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흐르는 것이 길이다
흐느끼는 푸른 댓잎 하나
날카로운 붉은 난초잎 하나
강의 중심을 향해 흘러가면 그뿐
그동안 강물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은
내가 아니었다 절망이었다
그동안 나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은
강물이 아니었다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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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얼마전 대구 알라딘 중고샵에 들렸다가 구입한 시집.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었던, 마음이 되었던 책인데 내게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