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달이였던가. 시댁에 가는길에 서점에 들러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공지영 작가의 책을 샀다.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중에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 몇 장 읽다보니 시댁에 도착했고 책은 어머님께로 전달되어졌다.
시댁 책장에 보면 여러권의 공지영 작가의 책이 있다. 그중에 읽어본 책이 없어 그동안 어머님과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없었는데 문득 시댁에 오는길에 읽던 내용이 떠올라 말씀드렸다. " 어머니 공지영 작가가 남편에게 폭행을 당했나봐요" 라며. 그 이야기가 반가웠던지 어머님은 환한 표정을 지으시며 그간 공지영 작가의 사정에 대해 알려주셨다. 세번의 결혼, 세번의 이혼. 세명의 아이들. 그런데 아버지가 모두 다른 아이들. 그런 이야기가 담겨진 <즐거운 나의집> 이란 책이 있노라고.
어머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인생사 사연없는 사람은 없다던 말이 떠올랐다. 여리여리하고 예쁜 얼굴의 베스트 셀러 작가인줄만 알았는데 깊은 아픔이 느껴지고 보니 공지영 작가는 눈에 밟히는 이름이 되었다. 이후로 기회가 되면 읽어볼 심산이였는데 때마침 <딸에게 주는 레시피>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구입해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스물 여덟 꽃같은 나이를 보내고 있는 큰 딸 워령에게 엄마이자 친구와 때론 인생의 선배로써 들려주는 인생 레시피 라는 타이틀이였지만, 책을 읽어가는 동안 내게도 생을 앞서산 선배 혹은 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끄덕거려지고 마음에 와 닿는 부분들에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혼자 먹어야 하는 음식은 늘 간단하게 차려 먹던 습관들. 간단하다 말하기 조차도 부족한 탁자에 앉아 몇번의 젓가락질로 끝나버린 식사시간들을 떠올리며 내 삶의 기준이 내가 아니였음을 느꼈다. 스스로를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라던 작가의 이야기가 맴돌면서 나는 내 자신을 무척 아껴주지 못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정말 간단하게 만들어 낼 수 있는 음식 앞에서도 자신을 귀히 생각할 수 있다는것, 어른 이란 부모로부터 받고자 했던 많은 것들을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사람이 라는것, '사랑'이란 상대가 어떤 행동과 말을 해도 마음에 동요가 없어야 한다는것. 그렇기에 내가 사랑이라 불렀던 많은 행동들이 잘못이었다는 생각이 들던 시간들. 간단하게 차려낼 수 있는 음식 처럼 간단하고 소박한 인생이 더 멋지고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나자 얼마전 연애 상담을 했던 동생이 떠올라 카톡을 보냈다. 꼭 읽어야 할 책이 있노라고. 그랬더니 글이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며 퉁을 놓는 동생. 그렇지. 책은 음식과도 같으니. 자신의 취향이 아니면 절대 선택할 수 없는 부분이였지 싶은 생각에 어떻게 하면 읽힐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렇게 카톡을 보냈다.
'네가 얼마전에 내게 연애상담을 했자나. 그때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표현력이 부족해서 다 해줄 수 없었어. 근대 이 책을 읽어보니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 여기에 있더라고. 그러니까 꼭 읽어봐라. 너랑 결혼을 앞두고 있는 니 친구 소라에게 꼭 전해주고' 라고. 조금있다 들어온 답장엔 '그래'라며 썩 시원치 않은 대답을 듣긴 했지만 이 책은 꼭 읽게 해주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나보다 앞선 시간을 보낸 공지영 작가의 메세지 만큼이나, 동생보다 앞선 시간을 살아가는 내가 동생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가득한 이 책을 만날 수 있게 해준 사람은 다름아닌 어머님 이란 생각이 들면서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음식이나 책이나 편식하지 말자고. 다른 사람이 내게 권할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거라며 그동안 어머님이 내게 권하셨던 공지영 작가의 책을 하나 둘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제라도 알게되어 감사하다고. 한 작가를 만난것보다 인생의 선배이자 언니 같은 작가를 만나게 되어 참 기쁘다고. 그러니 어머님 고맙습니다!!
명심해라. 이제 너도 어른이라는 것을, 어른이라는 것은 바로 어린시절 그토록 부모에게 받고자 했던 그것을 스스로에게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것이 애정이든, 배려든 혹은 음식이든 p30
어른이 된 우리에게는 이제 두 가지 임무가 있다. 곧 가는 것과 되는 것(to go and to be)이다. 성숙을 위한 첫번째 임무는 도전, 공포, 위험 그리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인정을 받건 그렇지 않건 간에 단호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다. 인정은 다른 사람의 마음 안에 나의 투사가(projection)가 함께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p70
우울해지려고 하면 몸을 움직여라. 딱 한번만 움직이면 돼. 이럴때 제일 좋은 게 바로 요리나 집안 청소 혹은 음악을 들으며 걷기 등인거 같아. 네가 우울해하는 데는 수 만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딱 한가지야.우선 몸을 움직이고 맛있는 것을 먹고(네 몸에 좋은 것, 살도 안찌는 것) 따뜻하게 너를 감싸는 것, 그리고 좋은 말씀을 읽거나 듣고 밝은 생각을 하는 것.p241
손에 가득 든 은을 버려야 금을 얻을 수 있고, 금을 버려야 다이아몬드를 얻는다. 삶은 우리에게 온갖 좋은 것을 주려고 손을 내미는데 우리는 받을 수 있는 손이 없을지도 몰라p231
집착과 사랑을 어떻게 구별하냐고?..... 그것으로 부터 고통이 온다면 그건 집착인 거야 그가 이렇게 하면 네가 기쁘고 그가 저렇게 하면 네게 슬픔과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진다면 그게 집착이야.
사랑은 그가 어떻게 하든. 그가 너를 나쁘게 대해도 그가 다른 사람과 가버린다 해도. 심지어 그가 죽는다고 해도 변하지 않아. 그가 너를 아프게 할때. 얼른 그와의 심리적 거리를 조금 더 떨어뜨려 그가 다시 회복되기를 바라며 바라볼 수 있으면 사랑이고, 그렇지 않으면 집착이다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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