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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양이로소이다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평점 :
땡스북 두 번째 책이 도착했다. 이번 책은 나쓰메 소세키의 <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다. 전작으로 강상중 저자의 책 <마음의 힘>때문에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을 읽어본 터라 저자가 생소하진 않지만, 받아든 책의 두께에 깜짝 놀랐다. 무려 642페이지에 달해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싶은 걱정스런 마음이 앞서기도 했다.
그런데 첫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문장 때문에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읽어갈 수 있었다.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 p16
태어나자마자 누군가에 의해 길에 버려진 불쌍한 고양이가 찾아 들어간 곳은 구샤미 라는 영어 선생의 집이다. 그런 구샤미 선생의 집에는 아내와 세명의 딸들 그리고 동정심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하녀와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허풍쟁이 메이테이란 친구와 제자 간게쓰 그리고 이웃에 살면서 호시탐탐 구샤미를 골탕먹이는 사업가 가네다씨의 이야기가 축으로 이뤄졌다.
그런데 구샤미 선생의 모습이 참으로 묘했다. 나쓰메 소세키가 평소 잼을 좋아했고 신경성 위염을 앓고 있으며 얼굴에 곰보자국이 있었다고 하는데 구샤미 선생의 모습이 이와 같았으니 한마디로 구샤미는 나쓰메 소세키의 다른 이름이라 생각이든다. 구 시대의 문명과 서양의 신식 문명의 충돌이 있던 1901년을 배경으로 소설은 고지식한 지식인을 대변하여 나쓰메 소세키가 구샤미 선생으로 둔갑되었고, 친구를 모델로 그렸다는 메이테이는 서양문물을 듬뿍 받아들인 인물로 등장하여 고지식한 이와 순 허풍쟁이의 대화가 웃음을 준다.
그렇다면 그 시대에 지식인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고양이 시선으로 바라본 구샤미라는 인물을 살펴보자면, 선생이라는 자는 온종일 서재에 틀어박혀 낮잠이나 자고 어려운 책을 습관처럼 펼쳐들지만 몇 자 읽지못하고 덮어버리는가 하면, 읽지도 않을 책을 꼭 침대 머리맡에 둬야 잠을 자는 습관은 허세스럽다. 잘못된 일은 좀처럼 인정할 줄 모르고 남이 싫다는 일은 꼭꼭 우겨 해줘야 직성이 풀리는 청개구리 소양도 다분하지만, 옳다는 신념 앞에서는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 꼿꼿함과 고집스러움이 참 매력적인 인물이라는게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구샤미에게서 느낀바다.
여기서 말하는 위협은 대부분 사업가 가네다 씨로부터 나온다. 구샤미의 제자 간게쓰를 사위로 맞고 싶어 그에대해 알아보고자 찾아온 하나코(가네다의 아내)에게 시종일관 무시와 면박을 주며 상대도 해주지 않는 도도한 모습에 화가난 가네다가 돈을 이용하여 구샤미를 은근히 괴롭히는 장면들이 코믹하게 그려지지만, 어느 순간에도 굴하지 않는 구샤미의 고지식하며 우직스러움에 빠져들게 된다.
검은 울타리가 무너진 집엔 밥풀로 수시로 부쳐야하는 문패가 있고 심지어 천장은 빗물이 새어 선명한 자국을 남겼을 정도로 궁색스럽지만, 그런 와중에도 돈을 이용하여 괴롭히는 가네다씨의 힘에 굴하지 않고 시종일관 정신적 수양으로 승화시켜 나가는 모습이 구샤미 혹은 나쓰메 소세키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돈을 앞세워 괴롭히는 모습이 왠지 낯설지 않다. 100년 전이 되어버린 소설속 모습이나 현대의 모습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슬프다. 세상은 빠른속도로 변하지만, 변화속에서도 변화하지 않는 진실. 그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그런데 여기 까지 생각해봤을때 고양이의 역할이 자못 궁금해진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 고양인고 하니,
고양이의 발은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디를 걸어도 서툴게 소리를 내는 일이 없다. 하늘을 밟는 듯, 구름 속을 가는 듯, 물속에서 경(磬- 고대 중국의 타악기)을 치는듯, 동굴 속에서 슬(瑟- 고대 중국의 현악기)을 타는 듯, 불교의 깊은 가르침을 말로 설명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깨우치는 것과 같다..... 가고 싶은 곳을 가서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고, 혀를 내밀고 꼬리를 흔들며 수염을 바짝 세워 유유하 돌아올 뿐이다"167
인간으로써는 혹은 강아지였다면 할 수 없었을 능력들, 살금 살금 잠입해 적진(가네다 씨의 집)을 염탐하고 남몰래 돌아와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주인 무릎에 살포시 올라앉아 인간들의 행태를 비웃으며 혀를 내두르는 모습은 유쾌한 웃음과 뜻하지 않는 통찰력을 일깨우며 소설의 구성적인 요소가 없어도 재미를 주는 부분이였다. 또한 스스로 지식이 충만한 고양이라 너스레를 떠는 모습은 주인 구샤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결코 경솔한 고양이가 아니다. 한 글자, 한 구절 안에 오묘한 이치를 담은 것은 물론이고, 그 한 글자 한 구절이 층층이 연속되면 수미가 상승하고 전후가 호흥하며 자질 구레한 이야기라 여기며 무심코 읽었던 것이 홀연 표변하여 예사롭지 않은 법어가 되니, 아무렇게나 누워서 읽거나 발을 뻗고 한꺼번에 다섯줄씩 읽는 무례를 범해서는 안된다p402
여기서 말하는 '홀연 표편하여 예사롭지 않은 법어가 되니, 누워서 읽거나 발을 뻗고 한꺼번에 다섯줄씩 읽는' 것은 무례라고 표현하는 대목은 이와 같다.
이 탕에 몸을 담그고 머리만 내밀고 있는 자들, 몸씻을 곳에 우글 거리고 있는 자들은 문명인에게 필요한 복장을 벗어던진 요괴 집단이니 일반적인 규칙이나 도덕으로 다룰 수는 없다. 무슨짓을 하든 상관 없다. 폐가 있어야 할 자리에 위장이 진을 치고, 와토나이가 세이와 겐지가 되고, 다이 씨가 신뢰를 얻지 못해도 좋다. 그러나 일단 몸 씻는 곳을 나가 탈의실로 가면 더 이상 요괴가 아니다. 보통의 인간들이 살아가는 사바세계로 나온 것이다. 그러니 문명에 필요한 옷을 입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다운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p358
끈적끈적한 털옷에 둘러싸인 고양이가 목욕탕 지붕에 올라 인간들의 모습을 염탐하는 장면에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용서받을 수 있었던 벌거숭이 아담처럼 벌거벗은 인간들은 규칙이나 도덕이 필요없다. 그져 진실하다고 믿는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이야기 나눌 뿐이다. 하지만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고 잘못을 깨닫게 되던 그 시점처럼, 목욕이 끝나고 옷을 입는 순간은 문명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문명의 세계에는 어떠한 거짓도 용서될 수 없는 인간다운 규칙과 도덕을 지킬 의무가 있을 뿐임을 이야기한다. 그러니 수다쟁이 고양이라 치부해버리지 말자. 또한
하오리를 벗고, 잠방이를 벗고, 하카마를 벗고, 평등해지려고 애쓰는 벌거숭이들 중에서 또 벌거숭이의 호걸이 나와 다른 군소 벌거숭이들을 제압한다. 아무리 벌거숭이가 되더라도 평등을 얻을 수 있는것은 아니다p360
모든 문명을 벗어던지면 평등해질 수 있을거라 믿는 인간들에게 안타깝게도 그 집단 속에서도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여 다시 먹이사슬의 구조를 갖게 된다는 사실을 100년 앞서 이야기한 나쓰메 소세키의 통찰력이 놀랍다. 모두 평등한 세상을 외치지만, 마치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처럼 그 평등함 속에 숨겨진 이기심이 도리어 혼란을 가중 시키고 날카롭고 세밀하게 표출되고 마는 그런 세상. 인간에게 진정한 '평등'이란 존재하지 않는것일까 하는 생각은 100년이 지나도 이토록 똑같다니 참 놀라운 일이 아닐까?
주인은 뭐든 잘 모르는 것을 존중하는 버릇이 있다. 꼭 주인만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잘 모르는 것에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잠복해 있고, 헤아릴 수 없는 것에는 어쩐지 고상한 마음이 일어나는 법이다. 그러므로 속인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떠벌리지만, 학자는 아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설명한다.p438
메이테이 선생은 주인이 고집을 부릴수록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주인은 자신이 고집을 부릴수록 메이테이 선생보다 대단해진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이렇게 종잡을 수 없이 엉뚱한 일이 간혹 있다. 끝까지 고집을 부려 이겼다고 생각하는 동안, 그 사람의 인간적 가치는 뚝 떨어지고 만다. 고집을 부린 당사자는 죽을 때까지 자기 체면을 세웠다고 생각하고, 그때 이후로 사람들이 경멸하여 상대해주지 않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으니 신기할 따름이다p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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