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 개정판 ㅣ 한창훈 자산어보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8월
평점 :
우리 가족은 회를 무척 좋아한다. 어린시절 온 가족이 바닷가 등지를 다니며 회를 먹던 기억이 난다. 그 시끌벅적한 시장통에 들어서면 어김없이 코를 자극하던 비릿한 냄새. 식구들 모두 비린냄새나는 그 시장통에서 통통하게 물오른 생선들을 구경하며 입맛을 다시느라 정신없던 기억이 난다.
그 복작복작한 곳에서도 유독 인상 좋아보이는 아주머니와 실랑이를 벌이는 어머니. 그 곁에 서서 꼬물꼬물한 게불이며 낚지, 게를 구경하는 재미에 빠져있으면 어느새 아주머니와의 신경전은 타결되고 바다위로 설치해놓은 자리로 안내되었다. 아무렇게나 놓여진 형형 색색의 플라스틱 탁자 위로 새햐얀 속살을 드러낸 회가 한 상 차려지면 나는 회 한 점 입안에 넣고 그 쫀득거리는 맛에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또는 들어오는 배에서 횟감을 바로 구입해 직접 회를 떠먹던 순간들도 기억에 남아있다. 하얀 속살대신 붉은 색깔이였던걸로 봐서 아마도 숭어를 먹었던것 같다. 우리 어린 시절에 이런 추억담은 왕왕 회자되곤 하는데 횟집에서 떠먹는 그 맛은 산지에서 먹던 그 맛과 비할바 아님으로 결론을 맺곤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 부모님의 꿈은 퇴직후 트럭을 개조해 세간살이를 넣고 바닷가 등지를 돌아다니며 낚시로 고기를 잡아 직접 회를 떠 먹는 즐거움을 누리겠노라 이야기하곤 하셨다. 갓잡아 올린 횟감은 잘 손질해 자식들에게도 보내주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시곤 했다. 드디어 35년이라는 기나긴 직장생활을 마무리하시고 퇴직하시던날, 우리 남매는 부모님이 이루실 꿈에 한껏 기대했지만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부모님의 꿈은 마냥 꿈인채로 머물러 있다.
아버지께 다녀오시라 종종 말씀을 드렸지만, 아버지는 세월을 짐작하지 못하셨노라 이야기하신다. 좀 더 젊었을적에는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지낼 수 있을꺼라 생각하셨는데 퇴직 후 긴장도 풀리고 세월에 묵직해진 몸을 이끌고 돌아다니려고 하니 영 엄두가 안나신다는 이야기에 참 속상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니 부모님과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반평생을 넘게 자식들 뒷바라지로 세월을 보내신 아버지가 이젠 무한한 자유 앞에서 망설여하시고 걱정하시는 모습이 왠지 낯설면서도 마음을 찡하게 울렸다.
얼마전 한창훈 저자의 <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라는 책에서 힘이 장사라는 박씨 일화를 읽게 되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박씨 부부는 마당위에 널부러진 책가방과 학용품을 보고 깜짝놀랐다고 한다. 살펴보니 자신의 아들이 코피를 흘리며 마당에서 다 죽어가고 있었고, 그 곁에는 큼지막한 문어 한 마리가 먹물을 흘리며 있더라는것. 부부가 사는 집은 바다와 붙어있어 그믐때 물이 길 높이까지 차오르는데 그때 들어온 큼지막한 문어를 아들은 아들대로 집안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하고 문어는 문어대로 바다로 나가려고 하다보니 때아닌 사투를 벌였던것.
박씨 부부는 잘했다고 연신 칭찬을 해주며 내다팔 생각을 했는데, 아들왈 부모님 잡수시라고 목숨을 다해 잡아놨으니 내다팔지 말라는 말에 감동하여 9일간의 몸보신을 할 수 있었고 힘의 원천이란 바로 거기에서 부터 시작된다던 이야기가 마음을 울렸다. 이제라도 문어를 잡아드리면 우리 아버지도 힘이 솟아나실까. 생전에 몸보신 마음껏 해드리지 못해 지금은 이렇게 쇠약해지셨나 싶은 생각에 절로 숙연해진 마음이 들었다.
한창훈 저자의 글은 활어같았다. 수면 위로 튀어올라 제 힘을 자랑하는 활어처럼 짧은 문장의 호흡들에 힘이 있고 맛깔스러움이 묻어났다. 거문도 앞 바다에서 유년시절의 추억담들, 낚시 포인트별로 잡아올렸던 싱싱한 생선들을 맛깔난 사진으로 버무려낸 이야기는 바다의 짠내보다도 그의 굽어진 삶의 시간을 말해주는것 같았다.
그래서 이 책을 부모님 앞전에 밀어 들이고 싶다. 자식 나이 70이 되도 부모 눈에는 영원한 새끼들로(자식들)보인다던 부모님께 그만 자식들의 앞 일은 놓아버리시고 마음껏 인생을 즐기시라는 메세지를 담아 보내드리고 싶다. 그토록 원하는 바다를 마음에 품고 자연이 주는 그 맛을 생생하게 느끼는 한창훈 저자처럼. 그다지 큰 욕심 없으신 부모님이라면 괜찮지 않겠냐는 메세지를 전달해보고 싶다. 바다란 파랗고 커다란 덩어리가 아니라, 맺힌 꿈을 풀어주는 품이 있다는 메세지와 함께.
--------------------------------------------------------------------------------------
"저는 당신이 바다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늘 바다를 동경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쩌다 찾아가더라도 회 사먹고 바닷가 조금 걷다가 돌아오고 말지 않나요? 그렇다면 바다란 늘 그곳에 있는, 파랗고 거대한 덩어리일 뿐입니다.
좋아하는 것과 잘 아는 것은 다릅니다. 제가 이 책을 쓴 이유이죠. 깊숙이 친해지게 되는 것, 어린아이처럼 깔깔대게 하는것, 이윽고 뒤엉킨 매듭을 하나하나 매만지게 되는 것, 머물다보면 스스로 그러하게 되는것 말입니다. 산은 풀어진 것을 맺게 하지만 바다는 맺힌 것을 풀어내게 하거든요". -작가의 말중에서-
--------------------------------------------------------------------------------------
밤낚시의 묘미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 남들 돌아올 때 찾아가는 여행의 맛도 있고 모든 소음을 쓸어낸 적막의 맛도 있다. 넓은 바닷가에서 홀로 불 밝히는 맛도 있고 달빛을 머플러 처럼 걸치고 텅빈 마을 길 걸어가는 맛도 있다. 그리고 새벽 5시에 회 떠놓고 한잔 하는 맛도 빼놓을 수 없다. 사람이 밤에 하는 짓이 몇 가지 되는데 가장 훌륭한 게 이 짓이다.p101
----------------------------------------------------------------------------------------------
나는 거문도 에서 63년에 태어나 여수, 광주, 대전, 천안, 서울 등지를 옮겨다니며 살다가 4년 전에 이곳에 다시 들어왔다. 오전에 원고를 썼고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먹고 잠시 누워 있는데 당숙이 방어 낚으러 가자며 연락해 왔다.
당숙은 오전에 여수 나가려고 했는데 손님이 찾아 들어온다는 소식에 눌러 앉았던 것이다. 빗방울이 서너 개 떨어져서 어떻게 할까 하고 있다가 비가 더 이상 들 것 같지가 않아서 바다로 함께 나갔다. 이렇게 방어와 나는 이 넓은 바다에서 그 시간, 딱 그 자리에서 만난 것이다. 녀석은 수 만 킬로미터를 돌아다녔고, 나는 수 천 킬로미터를 이동했는데 말이다.
- 확률에 대하여 생각하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