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책 읽는 시간 -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때
니나 상코비치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책을 읽을때 가슴이 벅차 올라 '정말 미칠것 같아!'라고 외칠 때가 제겐 종종 있습니다. 읽는 글자마다 가슴에 박혀 자꾸만 제 생각 속으로 파고들어 지나온 일들을 끄집어 내며 그 글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때, 말 할 수 없는 전율을 느끼며 노트에 베껴 쓰곤 하는데 당신의 책이 그랬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때'라는 표지의 글귀부터 시작해서 '책은 삶속으로 들어가는 도피처'라던 글귀가 알알이 박혀들며 저는 2005년의 어느 여름날 속으로 끌려 들어갔습니다. 예후가 좋은 병으로 알려졌지만, 이미 제 목 전체에 퍼진 갑상선암은 제겐 예후가 좋지 않다라던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저는 스물여섯이라는 제 나이를 떠올렸습니다. 7시간의 수술, 수술 후 한동안 잃어버린 목소리, 부종, 방사선 치료, 허리의 통증등 제 삶은 어두운 먹구름으로 뒤덮여 버렸습니다. 2006년 재발 수술과 이어지는 방사선 치료로 인해 제 미래는 더욱 어둡고 음습했습니다. 그때 문득 '내가 죽는다면 주변 사람에게 어떻게 기억될까'라는 주제로 깊은 고민에 빠져 들기도 했습니다. 학업 성적이 좋았던 것도 아니고 회사에서 인정받는 사원도 아닌 그저 그런 평범한 삶. 아니 평범하단 색채조차 표현할 수 없는 제 삶에서 제가 사라진다고 해도 어느 누구하나 기억해줄 것 같지 않다는 사실이 가장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열정적인 삶을 살아보고 싶었고, 좋아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고. 주변 사람들과 멋진 추억으로 장식하며 어느날 거짓말 처럼 제가 사라져 버린다고 해도 그들의 기억속에 멋진 사람으로 남아주길 간절히 바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책을 찾아 읽고, 학교를 다시 다니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 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던 그 시기가 깊이 깊이 떠올랐습니다.

 

준비가 되었다. 보랏빛 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을 준비가 되었다는 말이다. 오랫동안 책은 내게 다른 사람들이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삶의 기쁨과 슬픔과 단조로움과 좌절감을 어떻게 다루는지 내다보는 창문이 되어 주었다. 그곳에서 공감과 지침과 동지 의식과 경험을 다시 찾아보려 한다.... '나는 왜 살아갈 자격이 있는가'라는 무자비한 물음에 대한 '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책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p47

 

 니나 당신은 언니 마리의 죽음으로 부터 삶의 허무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 했습니다.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라는 주제로 깊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1년 동안 하루에 한 권의 책을 읽으며 삶에 대한 성찰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각기 다른 아픔이였지만, 제 아픔과 당신의 아픔이 하나로 만나는 지점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책 속에서 길을 찾고 방황했던 시간들이 당신의 이야기와 만났습니다.

 

 

책을 읽는 행위가 삶으로 부터 멀어지는 도피가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라던 글귀를 읽을땐 한동안 책을 넘길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책을 찾아 읽으며 고독하게 지나온 시간들에  왈칵 눈물이 쏟아질것 같았습니다. 고작 스물 여섯의 나이였습니다. 인생에 대해 논하기엔 너무 부족한 시간이였습니다. 그리고 살아가고 싶은 날들이 많은 나이였습니다. 원망, 아픔, 미련 , 슬픔, 고통, 좌절이라는 덩어리가 뭉떵거리며 누구에게도 표현해 보지 못했던 아픔에 당신의 손길이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힘들어 하는 당신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신이 그토록 마음 아파하고, 슬퍼하고 고통의 시간 속에서 마리 언니에 대한 기억으로 그리워하는 당신에게 당신의 언니 앤 마리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였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언니의 모습. 버스를 잘 못탄 당신을 구해줬던 때, 함께 추리소설을 읽으며 책을 권했던 때, 휴가를 함께 보내던 때, 다리가 아픈 당신을 대신해 서점에서 책을 찾아다 주고 함께 병원에 가던 때, 우아했고 다정다감 했으며 똑똑했던 언니에 대한 모습을 기억해주는 당신과 가족이 있기에 언니 마리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당신의 책을 읽기 전까지도 추억이란 한때의 순간들이 모여 무지개빛으로 떠오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여행을 가거나 어떤 특별한 순간들이 모여 추억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삶을 더욱더 특별히 만들기 위해 노력했는지도 모릅니다. 주변 사람들이 저를 기억할때 어떤 특별한 일들이 떠오를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책을 읽으며 추억이란, 삶의 공기처럼 일상적인 것들이 모여 기억을 이루고 추억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서툰 젓가락질로 놀림을 받을때. 책을 읽다가 안경을 쓴채로 앉아 잠이 들던때, 웃을때 한쪽 입꼬리만 올라가던때, 첫 지하철을 타며 긴장하던 때 등 주변 사람들이 알고 있던 제 모습들이 모두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느꼈습니다. '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는 당신의 말처럼 전적으로 내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언제든 좋다. 무엇이든 좋다. 모든게 다 좋다. 내 반응은 내게 달려 있다. 적절한 종결이란 삶이 그에게 무엇을 주는가가 아니라 그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하지만 삶이 빼앗아 가는 것에 관해서는 뭐라고 해야 하나? 언니를 잃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갈까. 그 반응 역시 전적으로 내게 달려 있다p246

 

제게 달렸습니다. 하루 하루를 특별한 추억으로 만들기 보다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되며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정답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말할 수 없는 위안과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기뻤습니다. 십년을 맞이한 지금까지도 고민스러웠던 일들이 그리고 더 특별한 추억을 만들기 위한 조급했던 마음들에 평화가 깃들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책을 읽으며 하고 싶은 목록에 하나 더 추가 되었습니다. 저도 당신처럼 하루에 한 권 책을 읽어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하루에 한 권이란 계획을 세우려면 저도 당신처럼 일과 독서 시간을 배분하고,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책을 선별하고, 좋아하는 책과 싫어하는 책들을 분류하고, 난감하게 선물받거나 권유 받은 책들에 대해 적절한 이야기를 생각해내야 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꼭 한번 노력해 보겠습니다. 더욱더 열정적으로 책을 읽고 당신처럼 깊이 깊이 느낄 수 있는 그날을 위해서 말입니다.

 

내가 책에서 발견한 내 기억과 얽혀 있는 것들을 공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읽은 것들을 글로 쓰려고 한다. 그것은 내 노력을 기록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내가 빠져든 책들의 마법을 나의 '하루 종일 책 읽기' 사이트에 들른 모든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서 이기도 하다p65

 

나는 규울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계획에 따르면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 운전하는 시간, 청소, 요리, 장보기 등에 필요한 시간도 배분 되어 있고 그러면서도 도피와 배움과 즐거움이라는 목표도 달성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어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독서가 주는 단단함과 책 한 권을 들고 내 보랏빛 의자에 앉는 즐거움을 고대하고 있었고 그것을 일이라 규정했다. 일이라 부름으로써 그것을 신성하게 만들었다.p50

이제 이런 책을 읽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이해 할 수 있다. 온갖 종류의 경험을 목격 한다는 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데만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게 무엇이 중요한지 규정하는 것, 누가 중요하고 왜 중요한지를 규정하는데 그것은 필요하다.p177

나는 독서를 하나의 규율로 정해두려 한다. 독서에는 즐거움도 있는 줄은 알지만, 그래도 스스로 어떤 일정에 맞출 필요가 있다. 그렇게 몰두하지 않으면 삶의 다른 부분들이 슬금 슬금 침범해 들어와 시간을 훔쳐가버릴 수 있다. 읽고 싶은 만큼 읽지 못할 수도 있다.p43

하지만 내 삶의 의미는 결국은 내가 그런 기쁨과 슬픔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연대와 경험의 빗장을 어떻게 만드는가, 또 제각기 다양한 구불 구불한 존재의 길을가는 동안 어떻게 손을 뻗어 사람들을 돕는가에 따라 결정된다.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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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4-15 0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다보니..해피북님 스토리인지 책이야기인지..절묘하게 엮어놔서..^^

해피북 2015-04-15 18:40   좋아요 0 | URL
워낙 와닿는 부분이 많아서 그런거 같아요 ㅎㅎ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맛있는 저녁식사 하세요^~^

Juni 2015-04-15 1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는 행위가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라는 이야기에 공감합니다

해피북 2015-04-15 18:42   좋아요 1 | URL
저두 그 부분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어요 어쩜 같은 책이라는 텍스트를 읽으면서도 이런 문장을 만들어 내는지요 참 신기한거 같아요 저녁식사 맛있게 하세요^~^

cyrus 2015-04-15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서민 교수의 칼럼을 읽으면서 독서는 삶을 도피하는 행위라기보다는 내 삶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을 좀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행위라는 걸 확신했어요. 아마도 해피북님이 읽으신 책의 저자도 그런 메시지를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

해피북 2015-04-15 23:13   좋아요 0 | URL
`타인의 삶을 좀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행위` 참 좋은 구절이예요^~^ 책을 읽다보니 책을 가까이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는 언제들어봐도 울림이 있고 힘이있는거 같아요^^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꿀밤 되세요

둘리마미 2015-04-15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할때˝를 보고 책을 골랐답니다 와닿는 부분도 많고 그렇게 의식하지 못하고 했던 부분도 있고해서 공감이 많이되는 책이네요~

해피북 2015-04-15 23:15   좋아요 0 | URL
저두 둘리마미님 말씀처럼 많은 공감을 받았어요 다른 독서 에세이 집과는 다르게 실제 생활에서 깨닫게된 이야기들이라 더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던거 같아요^~^말씀 감사합니다 꿀방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