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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무를 보다 - 전 국립수목원장 신준환이 우리 시대에 던지는 화두
신준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참나물 씨앗>
아무리 많은 욕심으로 씨앗을 뿌린다 한들 때가 되지 않으면 새싹을 만날 수 없다. 어두운 흙속에서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조금씩 잠에서 깨어나 새싹으로 돋아나기 까지 흙, 물, 시간이라는 박자가 맞아야 한다.
< 미니 토마토 새싹>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자신보다 무거운 흙을 힘겹게 뚫고 나온 새싹은
흙 깊숙이 뿌리를 뻗으며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고서는 움직일 수 없는 곳에서
사람이 주는 물과 비료만을 가지고 순리에 적응하며 생활한다.
<스위트 바질>
적당한 햇빛, 적당한 물, 적당한 비료.
넘쳐서도 안되고 부족해서도 안되는 '적당한' 박자.
욕심을 부려 주는 물과 비료는 죽음으로 내몰고
방치하다 싶이 키운 마음은 볼품 없는 결과를 만들어 놓는다.
그래서 항상 순리에 거스르지 않는 '적당함'이 필요하다.
<방울 토마토 꽃>
<오이 꽃>
<방아 꽃>
<방울 토마토 열매>
<미니오이>
그렇게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는 적당함 속에서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으며 결실을 보여주는 식물을 베란다에서 키우다 보면 삶 속에서는 배우지 못했던 욕심부리지 않고 순리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삶에 대해 배우게 된다.
『다시, 나무를 보다』의 신준환 저자의 책을 읽으며 순리에 순응하는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평생을 나무연구로 살아오셔서 인지 나무를 통해 일상을 들여다보는 성찰들이 좋았고, 나 역시도 식물을 키우며 치유되었던 마음들이 낯설지 않게 다가와 친근하게 읽을 수 있었던거 같다.
특히나 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곧은 나무는 하나도 없다라는 말씀이 참 인상적이였다. 구부러지고 꼬아지고 휘어지며 볼품 없어 보여도 그것이 바로 '잘 살아내기 위한 하나의 몸부림' 이라는 글귀를 읽는 순간 강한 충격을 받기도 했다.
나무는 여러 기관이 각자 할일을 하면서도 서로 협력하여 동시에 한 나무가 된다. 온몸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그늘에 있는 나뭇잎도 이런 원리를 안다. 햇빛이 숲 지붕을 통과 할 때 청색광과 적색광은 주로 흡수되고, 원적색 광이 많이 도달하기 때문에 밑에 있는 잎의 색소 단백질이 이를 감지하면 곁가지는 발달을 억제한다. 그러니 나무 모양이 이상하다고 나무라면 안 될 것이다. 그 모양은 그때 그때 그곳에서 가장 잘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이다'p153
식물을 키우다가 모나고 곧게 뻗지 않은 잎사귀들은 정리해 예쁜 모양으로만 만들려고 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단지 모나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잘라내고 꺽어내며 예쁘고 곧은 모습만 추구했던 내 모습을 되돌아 보게 된다.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생각해본다. 늘 도전과 용기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며 살아가는 삶이야 말로 곧고 예쁜 삶이라던 나의 편견은 지금의 내 모습을 잘라내고 꺽어내 곧게만 만들려고 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남들과 똑같은 모습은 아닐지라도 순리에 순응하며 구부러지고, 꼬아지고, 휘어지는 모습이진짜 내 모습이고 함께 어울어져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나무도 흔들린다. 아무리 큰 나무도 흔들린다. 큰 나무는 더 많이 흔들린다. 밑에서는 모르지만, 바람이 불 때 나무 우에 올라가보면 큰 나무가 멀미가 날 정도로 많이 흔들린다. 나무는 흔들리지 않아서 강한것 이 아니다. 서로 어울려서 강하다. 숲을 이루기 때문에 강한 것이다.p153
매사 평온한 삶은 없다. 고민도 생기고 아픔도 생기고 고통도 생겨난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만이 견고해지고 단단해진다. 덩치큰 나무라고 해서 고통이 없진 않다. 때론 모진 바람에. 건조한 날씨에, 무심코 버린 불씨에, 흥건한 폭우로 끊임없는 시련 속에놓여 있다. 그런데 나무는 움직일 수 조차 없다. 평생을 그 자리에서 박혀 인간의 해꼬지에, 자연의 재앙 속에 살아가지만 꾸준히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며 좋은 공기와, 맑은 에너지를 뿜어주며 조금씩 성장해 간다. 인간이 자연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은 하나의 축복이다.
이 책을 읽은 후 길가의 나무들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하나같이 비슷한 모습인거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양각색의 모습에 놀라게 된다. 아무것도 없는 횡한 가지 사이로 꽃을 먼저 돋아내는 나무, 다른 나무들은 화사한 벚꽃잎을 돋아내는데도 죽인듯 고요히 때를 기다기는 나무, 조금이라도 더 햇빛을 받아볼 요량으로 줄기를 더 길게 뻗어 휘어져 버린 나무까지 살피다 보면 어쩜 이리도 인간의 모습과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하나 다른점이라면 놀라운 생명력으로 어느 순간에도 스스로 생을 마감하진 않는다. 삶을 포기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절벽끝에 매달려 있는 나무라 할지라도.
책에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저자가 학문은 넓지만, 식견이 많아 보이지 않아 아쉬울 따름이다. 체화되지 못한 문장과 용어들에 가끔씩 책을 읽다가 꾸벅거리며 졸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은 딱딱하지 않게, 전 국립 수목원장으로 지내셨을 시간속 이야기들을 더 살뜰히 써주는 책이 다음 권으로 만날 수 있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