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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엄마들 - 인문학 초보 주부들을 위한 공부 길잡이
김혜은.홍미영.강은미 지음 / 유유 / 2014년 8월
평점 :
대학 시절엔 공부하는 언니들을 '공주'라고 불렀다. '공부하는 주부'를 줄여 '공주'라고 부른것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중에 갑갑한 마음이 들어 뛰쳐나왔다는 사연이나, 아이들을 키우며 하루 하루 살아가는 삶속에서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뛰쳐 나왔다는 (꼭 그냥 왔다고 하지 않고 뛰쳐나왔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였다) 사연 혹은 배움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해 찾아왔다는 사연들이 영글어져 우리 학과는 공주들의 열기로 후끈 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처럼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때면 그때의 시절이 생각이 난다. 모두다 사연 가득한 얼굴로 앉아 열망으로 빛나던 그 눈빛들을 교수님도 무척이나 흐믓해하셨던 그 기억들. 그런데 막상 졸업도 하고 결혼이라는 산을 넘어보니 그 시절처럼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이런 아쉬운 마음을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 나눠보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때가 많아 괜시리 내 마음이 머쓱해 질때가 있다. 대부분의 반응이란게 '공부를 왜?' 라는 물음뿐.
매일 똑같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어제와 같이 미적거리며 살아가는 모습 싫지 않아? 무언가를 읽고 배우고 생각하고 토론하는 시간들 속에 가슴 떨리고 뿌듯했던 감정들, 더 알고 싶어 찾아보고 알았을때의 그 쾌감을 느껴보고 싶지 않느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차마 내뱉을 수 없었다. 무언가에 대한 열망은 상대가 이해하지 못했을때 일종의 사치처럼 보여질 수 있다는 느낌 때문이랄까. 그져 실없는 여자 처럼 실실 웃기만 했던 내 모습이 참 바보 같아 보였다.
그렇게 마음적으로 방황하던 날들이 계속되던 어느날 눈에 띄는 책을 발견했다. 『공부하는 엄마』라는 타이틀에 '인문학 초보 주부를 위한 공부 길잡이'라는 부제를 읽으며 가슴 설레이는 기분을 경험했다. 역시 책에도 임자가 있어 주인에게 찾아간다던 말이 이럴때를 두고 하는 말일까 하는 깊은 착각도 해본다.
책의 저자가 세 분인게 인상적이다. 김혜은, 홍미영, 강은미님 모두 아이들을 둔 주부이자, 인문학 공동체라는 곳에서 『장자』『노자』『순자』『한비자』를 읽고 토론을 하며 각자의 생각이 담긴 글을 써서 제출하는 숙제를 진행하기도 하고, 시를 짓거나, 영어, 한문 원서를 읽으며 서로의 공부를 돕고 돕는 공동체의 모습에 큰 부러움을 느끼며 책을 읽게 되었다.
모두 '어느날 문득'에서 시작되었다. 어느날 문득 공부하고 싶다던 열망이 생겨나 책을 찾아 읽게 되고, 책을 찾아 읽다가 답답한 부분이 생겨 주위를 돌아보니 인문학 공동체를 알게되 참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에 깊은 공감을 갖게된다. 마흔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의 열정들. 자만심에 숙제를 해갔다가 호되게 혼이났던 일화를 들려주며 이곳에서는 어떤 자만이나 만족이 성립되지 않는 곳임에 스스로 낮아지고 겸손해지는곳 임을 느끼게 된다.
제일 큰 변화는 아이들이라고 했다. 공부하라고 잔소리하지 않아도 엄마가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으니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때론 숙제를 들고, 때론 책을 꺼내들고 엄마 옆에 앉아 함께 읽게 되었다는 모습이 가장 큰 행복이라 말한다. 더불어 아빠 역시 주말에 책을 꺼내 함께 읽고, 때론 아이들의 제안으로 같은 책을 읽고 토론을 나누기도 한다는 이야기는 내가 꿈꿔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이자 단란한 가정이란 생각을 들게했다. 처음부터 책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관심을 책에 투영해서 찾아 읽고 그 책에서 또 궁금한 점을 찾아내어 다른 책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독서에 굳은 살이 박히게 되고, 그런 독서 습관이 만들어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간을 분배하게 되고 독서에 적합한 환경을 위해 주위를 정리하게 된다는 이야기는 언제들어봐도 물리지 않던 이야기였다.
책을 읽을 적에 저자의 생각을 따라 술래잡기 하듯 읽지 말고, 비틀고 할퀴고 꼬집어 가며 질문을 만들어 내는 읽기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읽기가 된다는 이야기에 큰 공감을 하면서도 그러니까 '어떻게' 하라는 걸까하는 의문을 갖는다. 나도 책을 읽을때 술래잡기식의 읽기 습관으로 답답함을 느끼곤 한다 . 한 권을 읽고 나면 저자의 생각은 한 뭉큼인데 내 생각이 보이지 않을때. 그러니까 어떻게 질문을 만들고 꼬집어 내야하는걸까. 그렇게 질문을 만들 수 있는 책은 소위 양서를 말하는것일까 .
저자는 양서란 자신에게 유익한 책으로 규정했다. 아무리 세상의 모진 세월을 견딘 고전이라고 해도 자신에게 맞지 않으면 양서가 될 수 없다는 이유를 들며 자신에게 꼭 필요하고 몇 번을 읽어도 읽고 싶은 책을 양서로 규정한다. 더불어 책을 읽으며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은 무엇인가, 또 내가 생각하는 문제 의식은 무엇이며 책을 통해 찾을 수 있는지 찾을 수 없다면 어떤 자료를 더 찾아봐야 하는것인지 등을 따져가며 읽고, 모르는 개념은 물고 늘어지는 습관을 들여 끈질기게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쳐야만 공부의 시작이자 습관이 될 수 있음을 이야기 한다. 끊임없이 질문을 만들려는 노력은 예민한 감각에서 시작된다. 모든 만물에 대한 호기심,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노력하는 관심등이 어울어질때 비로서 눈이 트인다는 이야기에 공감을 하게된다.
책의 뒷편에는 공주들의 공부 ,쓰기, 철학의 입문을 돕는 책과,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을 소개하고 있어 도움이 된다. 읽었던 책이 몇 권 보여 반가운 마음도 드는데 양자오 저자의 『종의 기원』과 알베르트 망구웰의 『밤의 도서관』 강유원의 『책과 세계』는 집에 있는 책이라 얼른 읽어야 겠다는 반성도 한다. 마지막 장에는 인문학 공동체 홈페이지를 소개하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모임이 있는거 같아 반가운 마음도 드는데 홈페이지를 방문해가며 나와 맞는 곳이 있는지 알아보는 일도 참 좋을것 같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세상이지만, 세상에는 끊임없는 생각들이 일어나고 변화하고 그 변화한 사람끼리 모여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변화를 꿈꾸고 있다는 생각에 흐믓함을 느낀다. 집안 일과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한발짝 물러나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길 희망하는 공주들이 많아지고 마치 전염병의 물결처럼 퍼져나가 반란으로 일어나는 공주들이 많아지길. 또 그 곁에 나도 함께 포함되길 바래본다.
주부, 즉 아줌마의 탐욕이 사교육 열풍과 부동산 투기의 진원이 된 건 주부가 인간으로서 꿈조차 차압당한 사회적 소외 계층이자 약자라는 반증 p10
혼자 책 읽는 습관에 길들여졌던 나는 수동적으로 저자의 논리를 좇아가기 급급했다. 책 한 권을 읽어도 덮고 나면 저자의 문제 의식이 무엇인지, 이 책의 주제가 무엇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분명히 책을 읽었는데 어떤 책이냐고 물으면 대답할 말이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p22
오랜 시간 공부를 해 온 동학들은 책을 읽으며 끊임없이 질문을 만들었다. 저자의 생각에 동의 하는가? 저자의 문제 의식은 무엇인가? 나의 문제 의식은 무엇인가? 참ㄱ로 더 찾아봐야 할 자료는 없는가? 나는 끊임없이 읽고 질문했다. 책의 여백에는 읽은 중에 생긴 질문이나 생각을 적어 두었다. 읽다가 모르는 개념이 나오면 끈질기게 찾고 물어서 의문을 해결했다. 질문을 화두로 삼고 끝까지 밀고 나가기.그것이 내 공부의 시작이다.p23
쇼펜하우어 - 독서한 내용을 모두 잊지 않으려는 생각은 먹는 음식을 모두 체내에 간직하려는 것과 같다 p34
글을 쓰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취미는 산책이다. 그들은 산책을 하며 책의 구절을 곱씹고 사유를 다듬는다. 많이 읽고 질문을 만들면서 생각을 정리해야만 쓸 거리가 생긴다. p53
생각을 모으기 위한 방법 하나가 질문하기다. 그런데 질문을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였다.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저자도 공부하며 자료를 모으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개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독자는 저자의 사유에 끌려가기 마련이다.
질문을 만들려면 내 감각을 예민하게 할 필요가 있다. 감각이 예민해 지면 세상에 관심이 생기고 보아도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게 된다 p54
글쓰기는 벌거벗고 거리를 뛰어다니는 것과 같다. 자신을 모두 드러내 보이는 것이 글쓰기다. p56
우리는 신체적 힘의 한계는 쉽게 인정하면서 지적 능력은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능력이 있는데 드러나지 않는게 아니라 꾸준히 못하기 때문에 능력을 갖추지 못하는 것이다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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