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 81호 - 2014.겨울 - 창간 20주년 기념호
문학동네 편집부 엮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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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먹으면 1초에 여러 매체를 다운로드 할 수 있는 디지털 세대들에겐 계절에 따라 1년에 4회에 걸쳐 발행하는 계간지(季刊誌)라면 속도를 거슬러가는 행동이라 여길 수 있겠다. 대형서점만 해도 하루가 다르게 베스트셀러 순위가 바뀌고, 신간서적들이 줄줄이 쏟아지는 마당에 세 달에 한 번 발행한다는 베짱 여간해선 보기 힘들 테니 말이다. 나 역시도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웅진지식하우스.2005년. 를 읽지 않았던들, 크게 관심 갖진 않았을 성 싶다.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책에 대한 기다림과 아릿함이 전해지지 않았던들, 또 다분히 아날로그적 기다림의 애뜻함을 느끼고 싶지 않았던들 이 책을 선뜻 집어 들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고리타분한 기다림 끝에야 만날 수 있는 이야기들, 계절마다 참담했던 사건사고를 날카롭게 비틀거나 또는 아련하게 그리거나 또는 직설적으로 파고드는 글을 읽으며 계간지가 주는 '즐거움' 내지 '맛' 혹은 '통쾌함'은 읽은 사람만이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단편소설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시간들, 생경한 단어들이 무뎌진 어휘력을 일깨우며 무던히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던 여러 편의 시(詩)와(그러나 사실 그 시들을 전부 이해할 수 없었기에 아쉬움이 크게 남기도 했다), 이십 주년 특별 대담으로 실린 토마 피게티와 『21세기 자본』에 대한 뒷이야기가 참 흥미로웠다. 유독 아픔이 많았던 계절들을 견디며 일반인들의 뭉텅이진 마음을 소설로써 깊이 있고 심도 있게 부려 놓을 줄 알아야 진정한 문학인 이라는 사실을 뒷면에 실린 심사평들을 읽으며 공감해보기도 했다.

 

여러 색깔로 그려진 단편소설에서 하나의 공통된 주제를 느낄 수 있었는데 그것은 ‘회상’에 관한 이야기였다. 김훈의『영자』는 노량진 고시텔을 배경으로 영자라는 인물에 관한 회상을 김연수의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는 인디가수 희진과, 희진의 노래를 기억하는 후쿠다를 통해 그리고 은희경의『불연속성』에서는 공항에서 짐을 바뀌는 해프닝을 통해 나와 그 사이의 기억을, 모두 기억에 관한 단상들이 릴레이처럼 연결되는 듯 했다. ' 그 먼 기억이 되살아났다'(영자),와 ‘그렇다면 그 기억은 나에게, 내 인생에, 내가 사는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려고 애쓸 때, 이 우주는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또는 ’의도하지 않게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건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나는 어떤 얼굴로 눈을 떴을까. 어떤 얼굴을 갖고 또 다른 생에 등장했을까‘(불연속선) 같이 ’기억‘ 이라는 주제가 주는 물음들. 예를들어 우리가 각기 다른 기억으로 상대방을 그리고 이야기할 때 생각의 편린들을 과연 확신해도 좋은 것 일까나, 혹은 다분히 과거에 자신의 모든 이야기들을 담고 추억이라 부르는 일들이 삶에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와 같은 물음들 이였다.

 

 

 

김영하의 『아이를 찾습니다』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괴리를 극명하게 보여준 소설이라 느꼈는데, 실종아동을 둔 부모로써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의 문제를 잘 표현해준 작품이란 생각이든다. 티비에서 종종 헤어진 부모를 만나는 모습을 보면 더 이상 아픔을 겪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부분들이 하나의 모순에 지나지 않았음이 생각되었다. 긴 세월동안 함께할 수 없었던 공백을 사이에 서로 응어리진 상처가 생길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천명관의 단편 『퇴근』은 21세기 자본사회를 축약해놓은 이야기들이라 섬뜩했고, 김언수 단편『항구의 문법』은 닭똥 같은 눈물로 시야가 희려 두 번 읽어야만 했으며, 손보미의『임시교사』는 충분히 주위에서 많이 보았던, 사람들의 이기심을 두드러지게 그려주었던 소설이라 생각되었다. 자신의 온전한 신앙심에도, 자신의 어린 자식이 왜 죽어야만 했는지 신을 찾아 물음을 던지는 박민규의 단편 『대면』이나,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성석제의 단편 『블랙박스』와 잘 이해하지 못해 더욱이 궁금증을 크게 남겼던 김유진의 단편 『믿을 수 없는 얼굴』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았고, 서로 각기 다른 색깔의 이야기들을 한 권으로 만날 수 있어 읽는 동안 행복했다.

 

 

특별대담 에서는 1970년대 후반의 ‘신자유주의’의 시작으로 양극화의 악몽, 브르디의 표현을 빌려 ‘세계의 비참’이 일상적인 풍경이 되어버린 현상들이 ‘왜 정치적 대규모 저항으로 연결되지 않았을까’하는 물음이 중심적 내용 이였다. 결과적으로 그 책임이 우리 내부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경재 제정적 문제들을 우리는 모른다는 이유로, 또는 귀찮다는 이유로 전문가에게 양도함으로써 보수파들은 자신의 이익되는 지점을 알고, 유리한 방향으로 흘려버린다는 점인데, 늘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때 투명한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문학을 기반으로 쓰인 책이라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문학은 삶을 기반으로 다양한 문제를 다양한 시각으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중요하다 여기는 저자의 모습에서 『21세기 자본』을 꼭 읽어야겠다 생각한다.

 

 

 

리뷰 좌담형식의 한국 소설에 관한 평론들은 다양한 소설들에 대해 정보가 되고, 소설을 읽을적에 방향을 잡아주는것 같아 좋았다. 아직 독서모임에 참여해보지 못했던 궁금증을 해소했다고나 할까? 함께 모여서 책을 주제로 이야기 나눌때 어떤 시각에서 표현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시선이라 놀랍기도 했고, 서로의 의견이 충돌하여 좁혀지지 않을때 서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받아들이려했던 부분들이 참 좋았던거 같다. 이런 리뷰 좌담은 다양한 소설들을 다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꼭 한국 소설에 국한되지 않길 바래본다.

 

 

앞으로 삼개월의 기다림이 필요 할 터다. 기가 시대를 살아가면서 기다림이란 지극히 세상물정 모르는 쑥맥이처럼 고리타분하고 아날로그적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쑥맥이면 어떠하리! 순수한 기다림의 미학에 행복이 있고 즐거움이 있음을 나는 이미 알아버렸으니, 다음호에 실린 이야기들이 벌써부터 기대가 되고 즐거워지는 이 기분을 늘 간직하고 싶다.그 옛날 박완서 선생님의 유년기 시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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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덕 2015-01-08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동네 계간지를 보시는군요. 요즘은 워낙 빠름의 미학에 취해서인지 월간지도 느리게 느껴지죠. 계간지이기에 더더욱 그렇겠네요. 좋은 작품을 기다리는 마음에 설렘도 있을 것이고...... 계간지라니까, 예전에 월간 신동아를 받아보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해피북 2015-01-09 17:33   좋아요 0 | URL
저두 우연찮게 보게된거지만 왠지 책에 대한 추억거리가 많지 않아 아쉬웠거든요 예를들어 시리즈를 기다리며 설래였던 순간이랄지 서점에서 다음 호가 나왔다 기웃댄달지 하던일들이요ㅎ 봄덕님 처럼 그런 기억을 가지고 계시던분들이 참 부러웠는데 이제 저도 그런 추억을 꺅!3

페크pek0501 2015-01-09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계간지네요. 시에 대해 공부하겠다고 시 계간지를 1년 구독 신청을 해서
보던 생각이 나네요. 책이 배달되어 누런 봉투를 뜯어 꺼내 보던 설렘...
벌써 책이 올 때가 되었나, 그새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흘렀나 놀라곤 했죠.

아, 그런데 이 멋진 글에 공감 수가 적네요.
제가 보태드리고 갑니다. ^^

해피북 2015-01-09 20:05   좋아요 0 | URL
ㅎ 그런 설렘을 저두 무척 느껴보고 싶었어요~^^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큰힘이되는거 같아요 ㅎ 즐거운 불금보내시고 좋은 이야기로 자주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