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 지금 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당신에게 주고 싶은 시 90편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1
신현림 엮음 / 걷는나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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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힘들었던 한 해가 몇일 밖에 남지 않았다. 저 깊고 푸른 바닷속에 잠들어 있을 어린 영혼들의 아픔이 있던 시기에 내게도 뜻하지 않는 아픔이 찾아왔다. 슬픔은 겹치고 겹쳐 내 자신을 침몰 시키고, 문득 문득 느껴지는 삶의 허무함에 몸서리칠때 어떤이의 위로도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좋은일, 싫은일, 기쁜일, 슬픈일, 아픈일, 고통스런 모든 일들이 잠시 반짝이는 불빛에 불과하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머리는, 내 마음에 잠시 스쳐가는 일일 뿐이라 말하지만 허약해질때로 허약해진 나의 마음은  불빛과도 같은 고통에도 몸서리치며 그렇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있는적이 많았다.

 

어느날 문득 펼쳐든 시집에서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를 읽게 되던날 나도 모르게 앉아 펑펑 울어버리며 시가 주는 위로는 한 알의 알약과도 같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수선화 에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정호승-

 

<낚시질>

 

낚시질하다

찌를 보기도 졸리운 낮,

문득 저 물 속에서 물고기는

왜 매일 사는 걸까.

 

물고긴는 왜 사는가.

지렁이는 왜 사는가

물고기는 평생 헤엄만 치면서

왜 사는가.

 

낚시질하다

문득 온몸이 끓어오르는 대낮,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만은 없다고

중년의 흙바닥에 엎드려

물고기같이 울었다.

 

- 마종기-

 

나는 그렇게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 에게>에 기대어  모든 만물의 외로움이 나와 같다는 사실로 위로받고, 마종기 시인의 <낚시질>을 읽으며 삶의 허무함에 같이 엎드려 펑펑 울었다. 기형도 시인의 <빈집>을 읽을땐, 에일듯한 사랑의 감정들도 영원불멸은 없노라 위로받으며 지금 나의 사랑의 공허함을 이해해 보았다. 루쉰의 <희망>을 만났을땐 아무도 걷지 않던 그 길위에 홀로 서있는 내 모습이 다른이의 위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했다는 사실을 느꼈다.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의 <기도>를 만났을땐 그동안의 나의 기도가 모두 부질없는 일이였음을 알게되었다. 모든것들로 부터 안전한 보호를 원했던  나의 기도는, 모든 것들로부터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달라 기도하지 못했던 나의 무지함을  깨닫게 했다. 나는 이렇게 각기(各其) 다른 한 편의 시들을 통해 공감하고 위로받으며 허약해진 나의 마음을 달랠수 있었다.

 

     

 <희망 >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곳은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루쉰-

 

    

 

< 기도 >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 기도하지 말고

위험에 처해도 두려워하지 않게 해 달라 기도하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고통을 이겨 낼 가슴을 달라 기도하게 하소서.

생의 싸움터에서 함께할

친구를 보내 달라 기도하는 대신

스스로의 힘을 갖게 해 달라 기도하게 하소서.

두려움 속에서 구원을 열망하기 보다는

스스로 자유를 찾을 인내심을 달라 기도하게 하소서.

나의 성공에만 신의 자비를 느끼는

이기주의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나의 실패에서도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

 

           -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

 

 

 

시집 한 권에 수록된 모든 시들이 나를 위로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상황에 따라, 감정에 따라 펼쳐들다 우연히 만나게되는 한 편의 시들이 위로가 되어갈뿐. 그래서 비상약을 비치해두는 것처럼 마음에 드는 시 집 한권을 비치해두는 것도 참 좋은 일 같다. 그 어떤이의 손길보다, 위로보다  허약해진 마음을 달래주는 한 편의 시가 주는 감동과 여운은 어느날 흥얼거리는 노래 가사들 처럼, 조용히 읊조리게 된다는 사실을 나는 시를 통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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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요다 2014-12-26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가 마음을 위로해주는 약이 된다는 것. 참 좋죠?

해피북 2014-12-26 11:45   좋아요 0 | URL
네^^ 어떤 약보다 이롭게 힘이 되는것 같아 좋아요^^ ㅎㅎ

cyrus 2014-12-26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창 힐링 열풍이 불었을 때 사람들이 인문학에서 위로를 받으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이보다 더 쉽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시집이 있는데 말이죠. 시집이야말로 힐링 독서에 적합한 책이라고 생각해요.

해피북 2014-12-26 14:11   좋아요 0 | URL
아마 좋은 시집 한 권씩 발견하지 못하셔서 그런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저두 시집을 읽고나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힐링독서라는 표현에100%공감 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