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6일 "명확한" 목표. 2권. [아이 갖기를 주저하는 사회]는 몇 년 전, 산만한 가지치기에 피곤해져서 읽다 중단했었다. [아이 사라지는 세상]은 2022년 다시 읽었다. 



[아이 갖기를 주저하는 사회] 저자는 "왜 지리 교과서에서 맬서스를 언급하면 안 되나? 인구 논의에 지리학이야 말로 유용하지!" 하는 문제의식에서 책 쓰기를 마음 먹었다고 한다. 지리학을 향한 애정을 드러내는 저자 윤정현은 고등학교에서 지리를 가르친다. 참고 문헌만 14쪽에 이르는 꼼꼼한 문헌연구로 축적한 자료 보따리를 [아이 갖기를 주저하는 사회]에서 다 풀어 놓았다. 



목차를 살피며, [아이 갖기를 주저하는 사회]의 전체 윤곽을 그려보았다. 책을 끝까지 읽으니 도리어 윤곽선이 흐려지다니! 목차 소제목 배열로도 추정할 수 있겠지만, 키워드들이 교집합인지 차집합인지 알기 어렵게 교차된다. 저자는 미셸 푸코를 소개하며 프랑스어 포풀라시옹을 만지작거렸다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인구론의 우생학적 함의를 언급한다. 피임약 챕터에서는 한국 사회 출산장려정책에 젠더 감수성이 부족하다고 성토한다. 중국의 '한 자녀 정책'을 소재로 한 소설 [개구리], [미생], [설국열차] , [올리버 트위스트] 등을 예시로 들어 독자의 주의를 환기한다. 그러나 [걸리버 여행기]가 왜 필독서인지 설명하는 데 페이지를 과하게 할애했다. 고령화 사회 디지털 격차 문제를 언급하며 노령공학gerontechnology과 노인친화적 도시까지 등장시킨다.  

저자가 헌신적 노력으로 자료를 수집하였음이 행간에서 느껴지기에 독자로서 저자에게 감사드린다. 하지만 자료의 잡곡을 두세번 체에 걸러 내었더라면 훨씬 맛있는 밥이 되었을 텐데, 아쉽다.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에서 2018년 12월,  "#헬조선 #소확행 #자식농사?" 라는 제목의 토크쇼가 열렸다. 이를 활자로 풀어낸 책이 바로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 출산율 제로 시대를 바라보는 7가지 새로운 시선]이다.




책의 서문에서, 대한민국 저출산 현상을 사회구조의 문제나 출산장려정책 실패로만 볼 게 아니라,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런 이유로 7가지 시선을 대표하는 7분야 (인구학, 진화학, 동물학, 행복심리학, 역사학, 빅데이터)의 전문가가 토크쇼에 참석했다. 각자 전공 분야의 관점에서 저출산 현상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한다.  



7가지 시선을 요약해 본다. 


1. 장대익(진화학) 

 "짝짓기"나 "번식"이라는 단어를 종종 쓰는 장대익에게 불편감을 느낄 독자도 있겠다. 진화학자의 언어이다. 진화학자 장대식은 현대 한국 사회 저출산 현상을 "주위 환경에 오래 적응해온 인간 마음이 본능적으로 작동한 결과" (25)라고 파악한다. 경쟁이 치열한(혹은 치열하다고 인식되는) 사회 성원들은  K-선택, 그러니까 '양보다 질' 전략을 취한다.

2018년 12월 토크쇼 당시에는 장대익 교수가 "한국 초저출산 문제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모델"을 수립하는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라고 했다. 2022년 시점에서 이 프로젝트의 진행상황이 궁금하다. 장대익은 흥미롭게도 진화학자의 장기적 관점으로 현시대 저출산 문제를 진단하면서도 굉장히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짝짓기에 성공한 커플을 지방으로 유도하는 제도를 마련하면 어떨까요아이들 교육문제가 본격화되기 전까지 지방에서 지내도록 하는 거죠 커플이 다시 수도권에 올라올 즈음에  결혼한 커플을 순환보직으로 내려보내고요삶의 물리적 심리적 밀도를 낮추려면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요?" (205) 인구학자 조영태 역시 장대익과 마찬가지의 입장에서  "제주도 5년 살기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당신이 소위 "지방민"이라면 이런 해법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2. 장구 (동물학)


서울대 수의학과 장구 교수는 '서가명강과 '차이나는 클라스'의 스타강사라고 한다. 그가 쓴 [멍이가 임신을 했어요]의 제목처럼, 그는 인간 특화의 저출산 문제보다는 비인간까지 포괄한 '출산' 전문가이다.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에서는, 수의학과 생명공학의 교점에서 재생산신기술을 소개하고 이 기술이 어떤 윤리적 문제를 일으키는지 정리해준다. 하지만 이것이 한국 사회 저출산 현상에 특화되었다기보다는 일반론적 강의라고 느꼈다. 장구 교수는 동물 세계에서도 불임과 난임은 환경오염, 기후(heat wave 같은 변화), 대사변화의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하다가, 출산의 감동을 끌어오며 이야기를 마무리짓는다. 그는 편의점 정크푸드가 생물학적 불임을 초래하니, 디저트세를 부과해야한다고도 주장한다. 저출산 현상을 생물학적 원인과 연결지으려는 그의 시도를 긍정하면서도, 그가 제시하는 해법이 추상적이고 적시성이 낮아보여 아쉬웠다. 



3. 서은국(행복심리학)

행복 분야 전문가인 Ed Diener 밑에서 공부한 서은국 교수(UC Irvine) 역시 '세계 100인의 행복학자'이다. 최근 [임신중지: 재생산을 둘러싼 감정의 정치사]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서은국 교수 역시, 재생산을 행복감과 연결해 파악한다. 그에게 감정이란 "진화의 여정에서 습득한 생존 지혜"(58)를 담은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행복할 때, 즉 뇌의 파란 신호등이 켜져 있을 때 더 많이 출산한다는 것이다. 서은국 교수는 저출산을 인간의 '자연에 대한 반역'으로 규정하면서, 쉬운 말로 설명한다. "신혼부부가 책을 200 읽은  아이를 낳을지 말지 결정하지는 않습니다….아이를 인생에 착륙시킬 활주로가 확보" (70)된 후에 출산을 결정한다고 표현했다. 





    4. 허지원


    뇌인지과학을 전공한 허지원 교수는 "비출산의 심리학적 기제와 기능"에 초점을 둔다. 그녀는 현대인이 사소한 좌절을 차단하는 방향으로 동기화되었는데, 이는 회복탄력성을 기를 기회를 차단하는 셈이라고 안타까워한다. 허교수는 그 연장선상에서 요즘 젊은이들의 비혼, 비출산 결정을 해석한다. 결혼생활처럼 성공 여부를 예측하기 어려운 도전 앞에서 사람들은 감정적 에너지 투자를 축소한다는 것이다. 

    나는 허지원 교수가 "좋은 엄마"에 대해 서은국 교수와 사뭇 다른 해석을 내리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두 분 모두 심리학 전공인데도, 서교수는 에릭슨을 인용해가며 "좋은 엄마=행복한 엄마"의 공식을 제시한다. 반면 허지원 교수는 "좋은 엄마" 압박이야말로 불행의 시작이라면서 "그럭저럭 좋은 엄마 good enough mother"로도 충분하다고 다독인다. 가족 역시, 미디어에서 신화화한 정상가족을 벗어나 '느슨한 가족'을 사회가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5. 송길영

        




    송길영은 저출산이 바로잡아야 할 문제라기보다는 현실이라면서, 데이터를 통해서 그 현실을 명확히 들여다 보려 한다. 저출산 정책집의 추상적인 통계나 딱딱한 조항이 아닌, 말랑말랑한 구체의 현실을 보여주는 그의 접근법은 무척 흥미롭다. 현실을 외면한 국가주의적 발상 '1-2-3 운동'이 왜 '1-2-3-4 운동'으로 패러디되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결혼 후 1년 내 임신하고 2명의 자녀를 30세 이전에 낳았다가는 40대에 파산할 수 있는 현실부터 파악해야 프로파겐다라도 설 자리가 있는 것이다. 


        



      송길영의 문장을 그대로 옮겨와 본다. "구글 검색창에 '엄마처럼' 써넣으면 연관어가 ' 살아' '살기 싫다' 뜹니다...저출산의 책임과 해결책을 해당 세대에게만 미룰 것이 아닙니다대신 이제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한명의 엄마와 아빠를 위해서 시스템을 갖춘 배려' 준비해야   입니다." (139) 


      6. 주경철(역사학)

      역사학자인 주경철은, 저출산 현상이 우리 시대한국만의 문제인가유사한 사례는 없는가다른 사회와의 비교를 통한 우리 사회 문제를 어떻게 진단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에서는 사회병리적 수준의 인구감소 사례를 1990년대 러시아에서 찾는다. 


      7. 조영태(인구학)


      조영태는 "한국 정부의 저출산 대응 정책에는 '역사학적이며 생물학적이고 심리학적 본성에 대한 고찰이 빠져 있다"(173)고 비판한다. 그는 저출산 논의가 제도와 구조에 집중되어, 관련 예산 역시 보육환경 개선에 주로 쓰이지만 복지정책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고 경고한다. 현재 대한민국 청년들은 이 사회에서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고밀도를 지각하면서, 각자의 생존에 에너지를 축적하여 살아남으려 하지 재생산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초저출산 현상은 밀도 높은 사회에 청년들이 적응하는 과정" (189)인데  "기성세대 중심의 제도와 규범으로 사회질서를 유지"(193)하려는 시도는 실패가 뻔하다는 입장이다. 청년들에게 좀 더 살만한 세상, 경쟁 밀도가 낮아진 세상을 경험하게 하면 자연스럽게 아이를 낳게 된다는 입장. 조영태가 내놓은 구체적 해법으로는 '서울로 집중된 청년 관련 인프라를 지방으로 분산,'획일적인 사회 규범 느슨하게 풀기' 등이 있다. 


      한국 사회 저출산을 "문제"나 "국가적 재앙"으로 "병리화"하기 이전에 "현상"으로 놓고, 그 현상부터 파악하려는 시도. 7가지 시선에서 파악하려는 시도가 굉장히 흥미롭고 유익하다. 코로나 때문에 별다방 도서관 오프라인 회동이 어렵겠지만, 7분의 전문가를 다시 한 자리에 모시고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 시즌 2를 진행해주기를 독자로서 부탁드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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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ni74 2022-02-17 0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들도 새끼를 키우기 힘든 불안정하고 위험한 상황이 되면 알을 버리고 간다던 글이 생각납니다 ㅠㅠ알라님 정리 정말 잘하셔서 편하게 잘 읽었습니다 *^^*

      얄라알라 2022-02-17 00:47   좋아요 1 | URL
      얼마 전 최재천 교수님께서, 운영하시는 유투브 갑자기 조회수 치솟은 이유가 저출산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해석한 동영상 때문이었다고 하셨어요.
      상대적으로 덜 친숙한 설명이라 그랬을 텐데, <아이가 사라지는 세상>에서는 비중있게 다루어서 재미있었습니다.

      새들이 알을 버리고 간다는 건, mini74님 덕분에 처음 들어봅니다. 엄마새의 심정(?)을 상상한다는 게 인간 중심적이긴 하지만 새들도 얼마나..흑...

      2022-02-17 07: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8 1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9 02: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22-02-17 08: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제 들은 정희진 선생님 강의에서도 남편에게 매 맞고 돈도 벌어야 하고 수발해야하는 노부모 있고 자식까지 있는 경우 도망치는 여인들이 있는데 이때 이 여인들을 두고 사람들은 모성애도 없고 자식까지 버리고 도망치는 비열한 여인들로 그리는데 만일 이런 상황에 처했을때 상상하보라 하시더라구요. 임신중단과 모성애 관련 이야기 나올때였는데 뒤통수를 누가 세게 친듯 했어요.

      얄라알라 2022-02-18 12:45   좋아요 2 | URL
      vita님 말씀하시니 생각나는 친구가 있어요

      친구는 남편도 대학원생
      본인도 대학원생
      소득은 적고
      아이들은 둘이고

      ˝전쟁 통에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어머니도 있었다. 더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도 많다˝ 이런 뉘앙으로 이야기했던 기억이 납니다....지금 와서 보면 큰 충격파의 말이 아닌데도 당시에는, 충격을 주었던 생각이었어요...

      2022-02-17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8 1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2-02-19 10: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을 낳는 것도 중요하
      지만 건사하는 것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인 결혼 시스템에서
      태어난 아이들만 케어하는
      국가 정책도 바뀌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얄라알라 2022-02-19 11:31   좋아요 3 | URL
      레삭매냐님 정말 중요한 말씀이십니다.

      김희경 선생님의 스테디셀러 영향도 있겠지만
      요즘은 워낙 정상가족 프레임 깨기에 대해 많이 생각 공유하시니
      대놓고 생각 이야기하기 더 편해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론상 그렇고 가끔 제가 결혼 관계 내의 가족만 생각하고 있는 걸 깨닫고 부끄러워 화끈거릴 때도 있습니다.

      레삭매냐님께서는 [페인트] 혹시 읽어보셨는지요?^^

      mini74 2022-03-08 18: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배울 점 많았던 글 , 알라님 당선 축하드려요 ~~

      얄라알라 2022-03-10 11:06   좋아요 0 | URL
      mini74님, 들려주셔서, 부족한데도 좋게 말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북플 그렇게 열심히 활동했어도 깜냥이 깜냥인지라
      당선은 수 년 만에 처음입니다.
      부끄럽네요^^

      새파랑 2022-03-08 18: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열정 독서 북사랑님 당선 축하드려요~!!

      얄라알라 2022-03-10 11:15   좋아요 1 | URL
      ˝열정˝ 오랜만에 듣는 말이라 감사한 선물입니다.^^ 새파랑님!
      여유로운 목요릴 보내시기를

      2022-03-08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3-10 1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2-03-08 18: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북사랑님 축하드령요

      얄라알라 2022-03-10 11:16   좋아요 1 | URL
      ^^ 그레이스님, 제가 요즘 북플 조금 덜 자주 들어와서 인사가 늦어버렸어요 늘 따뜻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서니데이 2022-03-08 18: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얄라알라 2022-03-10 11:17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제가 요새 조금 게을러져서 책과도 어색해진 사이가 되었는데 많은 플친님들께서 축하해주시니 다시 열심 읽어야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리고요 서니데이님께서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이하라 2022-03-08 19: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알라님^^

      얄라알라 2022-03-10 11:18   좋아요 1 | URL
      이하라님 감사드립니다.
      올려주시는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
      행복한 목요일 보내시고 계시기를

      독서괭 2022-03-09 00: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럭저럭 좋은 엄마˝라는 표현 넘 좋은걸요??
      얄라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얄라알라 2022-03-10 11:19   좋아요 2 | URL
      그쵸? 꼭 ˝엄마˝가 아닌, 다른 많은 영역에서도 밖에서 그려놓는 이상적 타입이 아닌, 내가 추구하는 상으로 가면 좋을 것 같아요
      독서괭님도 축하드립니다!!!